Wid.312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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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级 大众 无倾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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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12 21:30
황곰 - Holelic(홀릭)
Prologue
젖은 피부가 마찰하는 소리와 뜨거운 숨소리가 방 안을 울리고 있었다. 간간이 교성이 들리기도 했다. 여자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은 음성이다. 금발머리의 남자 밑에서 꿰뚫리고 있는 건 남자였다.
까맣고 짧은 머리카락이나 판판한 가슴 그리고 다리사이에서 덜렁거리는 성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침대 위에서 얽혀 짐승 같은 자세로 섹스 중이었다.
"아, 흐으.... 으응."
엎드려 사내를 받고 있는 남자는 잔뜩 힘을 주고 시트를 부여잡고 있다. 흰 손은 하얗게 질려 뼈가 보이고 괴로움과 쾌락이 반쯤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가 그의 목에서 새어 나온다. 금발머리의 남자는 그런 상대를 보며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허리를 농염하게 쓰다듬으며 그가 날개 뼈 부분을 깨물자 밑에 있는 상대가 작게 비명을 지르며 아래를 조였다.
감도가 좋은 몸이다. 게다가 남자를 즐겁게 할 줄 아는 구멍을 가지고 있다.
"좋아?"
"으응, 좋아."
"더 세게 박아줄까?"
"아아..... 으응."
밑에 잇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보채는 그 움직임에 금발은 피식 웃으며 그의 엉덩이 양 바깥쪽을 세게 잡았다. 퍽, 크게 소리가 나며 곧 살이 철썩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아! 아읏!"
검은 머리의 남자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상체가 무너져 시트에 얼굴을 박은채 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몸은 금발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돌리고 있었다.
남자가 사타구니를 부딪쳐 올 때마다 안으로 후벼 파이는 기분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뒤에 있는 남자는 빠르게 박아 넣으며 정확히 전립선을 긁어내린다. 온몸에 저릿한 쾌감이 파도치듯 밀려왔다.
어느새 그의 성기는 찔끔찔끔 정액을 흘린다. 남자가 피치를 올려 더욱 강하게 쑤시자 왈칵 액을 쏟아내며 사정하고 말았다. 남자는 침대를 더럽히는 자신의 흔적을 멍하게 바라보며 탈력감에 숨을 몰아쉬었다.
"이리와 봐."
하지만 금발은 아직 사정하지 못했다. 남자는 얌전히 그에게 몸을 맡겼다.
자신의 입 쪽에 성기를 갖다 댄 사내에게 순종적인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맘에 드는지 남자는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입가에 사정했다. 입술에 흘러내리는 정액이 허벅지로 투둑 떨어진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그것을 혀로 핥았다. 머리카락에 감겨있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며 목소리가 들렸다.
"더 하고 싶어?"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연의 금발을 가진 벽안의 사내는 유창한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한다. 금발은 정확한 발음으로 남자에게 오럴을 요구했다.
"빨아."
검은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내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머리와 같은 밝은 금색의 음모와 굵고 큰 성기가 반쯤 발기한 채다. 사내는 과시하듯 다리를 크게 벌리고 앉아 자신의 페니스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것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검은 머리의 남자는 이내 혀를 내밀고 그것을 핥기 시작했다. 탄탄하고 근육질의 허벅지는 오일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흘렀다. 탐욕스런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를 보고 사내는 웃음을 흘렸다. 한쪽 다리를 올리며 남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반쯤 치켜뜬 눈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새까만 눈동자는 마치 유리구슬 같았다. 페니스를 머금은 채로 자신의 유혹에 고스란히 넘어오는 모습이 꽤 자극적이었다.
사내의 성기가 입안을 들락거리며 질척한 소리를 냈다. 그 밑으로 점점 크기를 더해가는 남자의 페니스가 보인다. 자신의 것을 빨면서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 밝히는군, 금발의 사내는 그 생각을 하며 웃었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반항을 몰랐다. 자신이 말하는 대로 어색하게 몸을 놀렸고 말로는 늘 싫다면서 쉽게 다리를 벌린다. 냉정하고 무뚝뚝한 얼굴과는 달리 안은 뜨겁다.
간혹 모국어로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만족스러운 교성인 것 같다. 조곤조곤 말하던 목소리가 억센 발음으로 바뀌며 더욱 자신의 분신을 잘라내듯 조이곤 했다.
남자의 머리를 잡아 일부러 깊숙이 박아 넣었다. 아픈지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힘들어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실수인 척 사과를 했다. 유쾌하게 웃으며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사내가 남자를 발견한 것은 고층빌딩의 자신의 사무실에서였다. 한국 지사에서 올라온 남자는 동양인 특유의 검은 머리와 눈을 갖고 있었다. 특유의 노란 피부가 아닌 조금 창백해 보이는 하얀 얼굴과 무표정이 그의 흥미를 갖게 했다.
마치 어린 소년같은 이 청년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도 했다. 지퍼를 열면 머리색과 같은 검은색의 음모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는 싱긋 웃는 표정 아래 음탕한 생각을 품고 악수를 했다.
'Mr.서, 이름이?'
'한입니다.'
'그게 이름의 다인가? 보통 한국인들은 이름이 두 글자던데.'
'.......'
묻는 대로 대답을 잘하던 남자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한영이요.'
'하니 영?'
'한, 영입니다.'
한영이라고 밝힌 자는 영어와는 다른 딱딱한 어투로 말을 했다. 그는 한국 지사에서 출장 온 직원 중의 하나였다. 자신의 새 보스가 된 라이오넬에게 공손하긴 했지만 거리가 느껴지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라이오넬은 바로 그 이유로 그에게 흥미를 느꼈다. 비밀을 파헤치는 짜릿함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법이니까. 뻣뻣하게 서서 다음 말을 기다리는 한영을 보며 자신이 어울리던 사람들과 다른 차이점을 찾았다.
라이오넬은 진성게이였고 그가 상대하는 사람은 99%가 남자였다. 이성과 우정을 나누는 스타일도 아니었기에 회사, 사생활, 과거의 주변인까지 전부. 게다가 라이오넬의 성격과 비슷하게 대부분 자기 주장이 강한 이들뿐이다.
하지만 한영은 소극적인 건 아님에도 매우 조용하다.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고 늘 무표정했다. 쾌활하고 시끄러운 친구들과는 사뭇 다른 성격이었다.
꼬시는 데 오래 걸리겠구나. 라이오넬은 그런 각오를 품고 접근했다. 그가 게이라는 확신도 없기에 퇴근 후에 술이나 한잔하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쉽게 넘어오는 상대에게 놀라움을 느꼈다.
사실 넘어왔다기보다는 거부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동적인 태도는 아마도 국민성 때문일 것이라 판단했다.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동양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걸 꺼린다. 보수적이고 예의가 바르다니 빠른 베드인은 낯선 문화겠지. 제 마음대로 생각하며 라이오넬은 한영과 잤다.
"다음엔 언제 만날 수 있지?"
샤워를 마친 후 늘 그랬듯이 한영은 바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조금 쉬었다 가도 될 텐데, 언제나 후다닥 가버린다.
"어차피 매일 보잖아요."
무뚝뚝한 말투로 한영이 대꾸했다. 어느새 넥타이까지 다 맨 후였다. 서류가방까지 들고 그는 현관으로 향했다.
"잘 가."
뺨에 키스하자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조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부끄럼 많은 아이 같아서 라이오넬은 웃었다.
문이 닫히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 한영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마자 소리 내어 욕을 했다.
"망할...."
엉덩이가 얼얼했다. 제 것이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마구 쑤셔넣으니 당연히 지끈거릴 수밖에. 아무리 큰 게 좋다지만 저놈은 너무 크다. 그가 쓰던 바이브레이터들은 전부 장난감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일부러 큰 사이즈로 미리 예행연습을 해뒀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실전은 다르다. 그 커다란 걸 입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못 견딜 노릇이다. 목구멍 깊숙이 찔러올 때마다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가뜩이나 정신없는 와중에 영어로 쏼라쏼라 거리는 것도 귀찮다. 느끼한 발음으로 지분거리면 간혹 가운뎃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른 상대를 찾을걸. 장기출장에서 재미를 보려고 했는데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다. 한영은 한숨을 쉬며 택시를 잡았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한영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러자 예상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인물의 이름이 뜬다.
".....Hello."
한영은 내키지 않지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쾌활한 음성이 들린다. 흑인 특유의 울림이 깊은 목소리.
"지금 뭐해요?"
"....집에 가는 길이야."
"만날 수 있어요?"
"불가능해."
한영은 차갑게 대꾸했다. 지금은 도무지 이 남자까지 감당할 기운이 없는 것이다. 상대는 매우 안타까운 듯 한숨을 쉬었지만 한영은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에휴.... 못 살아."
그는 휴대폰을 재킷에 집어넣으며 한숨 쉬었다. 영국에 온 지 두 달째의 날이었다.
HOLELIC #1
기업 소속의 연구원인 한영이 갑작스레 해외 출장을 명령받은 건 삼 개월 전이다. 그전까지 국외라곤 어학연수 일 년 다녀온 게 전부였다. 문법은 어느 정도 하지만 히어링이나 회화가 약한 한영은 갓뎀을 외치며 급하게 회화학원에 등록했다.
영어를 안 쓴지 얼마나 되었더라. 그는 당황해서 부랴부랴 원어민 선생에게 수업을 받았다. 언어문제가 심각한 건 아니었다. 다행히 다시 시작하자 늘었고 유학 경험으론 발음이 구려도 악센트만 제대로 주면 대부분 알아듣는다.
하지만 그가 다녀왔던 곳은 미국에 있는 시카고였고, 출장은 영국 런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영국으로 가는 거야?"
"응. 런던 지사로 가."
한영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 외국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유일한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진서는 이 사실에 매우 흥분했다.
"나도 따라갈래!"
"뭐야?"
"어차피 너도 가면 심심할 거 아냐? 내가 가서 놀아줄게. 지금이랑 달라지는 것도 없네 뭐."
사진작가인 진서는 마침 잘 됐다며 자신에게 따라붙었다. 진서야 어디에 내놓아도 잘 살 녀석이다. 워낙 철판이라 히치하이킹으로 전국 일주를 한 녀석이기도 했다. 지금도 '아싸! 런던 간다!'를 외치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삼 개월간의 해외체류기간 동안 외롭기도 하겠고, 딱히 방해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데려가도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진서 녀석이 춤을 추다 한마디를 했다.
"그래. 잘 됐어. 이 기회에 양키 한 마리 잡아드세요."
"뭐?"
"안 그래도 욕구불만이잖아 너. 막대기 갖다 장난 그만 치고 실제로 한 번 해보란 말이지."
그 말에 한영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영은 게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적당한 상대도 없었고, 그래서 연애도 한 번 못 해봤고, 그렇다고 아무 놈이나 자는 건 싫고, 혹시 주위에 게이인 걸 걸리면 어쩌나 기타 등등의 문제로 여태껏 백버진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서른 가까이 되는 이 나이까지 말이다.
"이 기회에 백마든 흑마든 골라잡아봐. 외국인들은 대물 많으니까."
편견에 얼룩진 말을 지껄이며 진서는 계속 한영을 부추겼다.
혹해서 그 말에 넘어간 게 사실이다. 왠지 외국에 가면 개방적일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 한영에겐 존재하고 있었다. 유학시절에도 느꼈지만 외국에 가면 왠지 자유로운 분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방종해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러 영어를 배우려고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곳으로 간데다 성격상 게으름도 못 부렸던 한영은 이 기회에 좀 놀아보고 싶었다. 진서는 갈팡질팡하는 한영에게 부채질을 했다.
"외국 애들은 피임도 잘하고 에이즈 검사도 받는다고 하더라. 오히려 이쪽보다 더 안전하지."
"그, 그래?"
"게다가 테크닉도 죽일 거야."
".....그런가."
"아는 사람도 없을 테니 더 좋지. 이 기회에 처녀딱지 떼고 한번 옴므 파탈로 거듭나 봐. 물 건너온 테크니션! 멋지다!"
진서가 계속 헛바람을 집어넣자 한영은 그럴까 생각을 굳혀버렸다. 거의 기울어진 그를 보며 진서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영국가면 꼭 본토 초콜릿 맛 좀 보고 싶다."
"....초콜릿?"
초콜릿이라면 마트만 가도 사 먹을 수 있는데 무슨 소린가 싶어 한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서는 눈을 빛내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도 볼래?"
진서는 냉큼 자신의 노트북에서 영상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물건을 가진 근육질의 흑인과 백인 청년이 뒹구는 완벽한 흑백 포르노 영상이었다. 어린 아이 팔뚝만 한 크기에 놀란 한영은 붉어진 얼굴로 에엑 소리를 질렀지만 차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거기 가면 이런 게 지천에 널렸을 거야."
저게 무슨 열대 해변에 널린 코코넛 열매도 아니고, 한영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설마."
"진짜야! 너 외국 야동에서 작은 놈 봤어?"
진서는 마치 자기가 실제로 본 듯 확언을 했다. 한영은 의심스럽긴 했지만 혹시 외국은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버렸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친구의 계략에 휙 넘어가 버린 한영은 에라 모르겠다 하곤 진서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 같이 가자. 어차피 나 혼자 가면 외롭긴 할 거야."
친구라곤 진서 하나뿐이고, 어차피 가도 혼자는 소심해서 게이바 근처에도 못 갈 것이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여태껏 그래왔으니 이제 자신조차 겁쟁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코앞까지 갔지만 혹시 아는 사람 만나면 어떡하나 싶고, 아직은 준비가 안 됐다는 기타 등등의 이유로 늘 도망쳤던 것이다. 못난 것도 아니지만 예쁜 얼굴도 아니고 학창시절 내내 공부만 하느라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
게다가 여태 짝사랑조차도 한번 못해봐서 연애라는 건 도통 모르겠고 원나잇을 해서 아무한테나 내주긴 싫다. 굳이 자신이 바텀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처음은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랑 해 봐야겠다는 순정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서른한 살이 된 지금까지 동정이었다.
"에드워드 노튼 같은 남자라면 아깝지 않은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한 배우의 이름을 대며 중얼거렸다. 사실 얼굴 자체만으론 에단 호크가 좋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노튼이다. 진서는 그런 한영을 보더니 쯧쯧 혀를 찼다.
"야! 꿈은 크게 가져. 이왕이면 키아누 리브스나 브래드 피트 정도를 거론하란 말이다."
"노튼이 어디가 어때서! 웃을 때 얼마나 선하고 귀여운데. 게다가 연기도 잘하고 학벌도 좋고."
한영은 팬심을 숨기지 않으며 되받아쳤다. 둘은 이내 할리우드 스타 이름을 거론하며 누가 더 나은가 토론을 시작했다.
둘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었다. 모범생인 한영과 그때부터 까불거리기도 유명했던 진서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지만 유일한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게이라는 것, 하지만 천성이 소심한 한영은 그걸 혼자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서는 일찌감치 성벽을 깨달아 중학교 때 이미 동정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영은 진서가 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고 비밀을 지켜주려다 자신의 성향까지 실토해버렸다. 그 이후로 둘은 서로 감시하려고 붙어다니게 되었다. 늘 같이 있는데다 성적인 취향이 같고, 고민과 궁금증을 털어놓을 상대도 둘밖에 없었다보니 자연히 우정을 키우게 된 것이었다.
진서는 상대에 따라 포지션이 틀리지만 한영은 확실하게 바텀이었다. 생일선물로 진서에게 받은 바이브를 쓰며 확실히 깨달았다. 몰래 숨겨놓은 서랍 안엔 바이브만 종류별로 열 개가 넘는다.
위험하게 아무나 뒹굴 바엔 차라리 고독한 유희를 즐기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활이 지겨웠다.
"외국에 나가서 이 소심한 성격 좀 고쳤으면 좋겠다."
"될 거야.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잖아."
"....그렇겠지?"
"응. 그리고 외국에선 동양 남자들 인기 많대."
매사에 긍정적인 진서의 말에 한영의 귀가 또 팔랑거린다. 길어봤자 삼 개월이다.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니니 실제로 해보고 싶긴 했다. 게다가 외국 사람들은 자유분방하니까, 자신도 쉽게 총각 딱지를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런던에선 자신을 알아볼 사람도 없을 것이다. 거기서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여태까지 상상으로만 벌어졌던 일들을 직접 해 본ㄷ고 생각하자 한영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한영은 실전은 경험이 없지만 여타 시청각자료들과 실습을 통해 자신이 어떤 점에 집착하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남자의 탄력있고 건강한 근육질의 허벅지다. 브이존과 단단한 육봉은 말할 필요 없고 꽉 조여진 근육질의 엉덩이과 기타 등등, 하도 밝혀서 근육질의 몸이 아니면 서지 않을 거야, 라고 내심 좌절하고 있었다.
"하아.... 아..... 윽!"
지금도 머릿속으론 근육질의 남자가 다정하게 자신을 애무하고 있다. 자신의 젖꼭지를 비틀며 음탕하게 속삭인다. 다리를 더 벌려, 이년아. 오늘의 남자는 거칠고 예의가 없다. 얼마 전에 본 소설의 영향인 것 같다. 진서가 보라고 던져준 야설은 늘 수위가 강하다.
다리를 크게 벌린 채 자신의 구멍 속에 바이브를 꽂는다. 진동하는 바이브는 끄트머리 귀두 부분에 구슬이 돌아가며 어느 곳을 스칠 때마다 저릿한 쾌감이 온몸을 강타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페니스를 꽈악 쥐고 강하게 훑으며 귀두를 문질렀다. 질질 흘러나온 액으로 어느새 흥건히 젖어있는 그곳을 엄지로 세게 문지르자 젖은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아무나 좋으니 여길 강하게 빨아줬으면, 그리고 이런 장난감 대신 내부를 찔러주면 좋을 텐데.
"하아아....."
안타까운 숨을 흘리며 한영은 더욱 빠르게 손을 놀렸다. 퍽퍽, 내벽이 마찰하는 소리가 요란해지고 그의 입에선 더욱 거친 숨이 흘러나온다. 허리가 비틀리며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빨고 깨물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마침내 사정의 순간이 찾아왔고 하얀 액이 배 위로 떨어졌다. 욕구는 풀었지만 시원한 기분은 없다. 오히려 허망할 뿐이다.
환상이 너무 커서 눈이 높아졌는지도 모른다. 웬만한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사실 현실에 있는 남자는 별 관심이 없긴 했다. 굳이 진심인 상대가 아니라면 만나고 싶지도 않고, 귀찮고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도 싫다.
이런 얘길 하면 비겁한 변명이라고 진서는 욕하지만 정말 그랬다. 맘에 드는 상대가 없는 걸 어떡해, 한영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티켓을 끊고 바로 이틀 후면 출국이었다. 비자 받고 이것저것 미리 준비해놓느라 바쁜 진서는 오늘도 친구들과 환송회 한다며 들어오지 않는다. 어젠 업계 친구들, 오늘은 대학 친구들이다.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인데다 아는 사람도 많으니 환송회는 이 주에 걸쳐 밤마다 이루어졌다. 고작 삼 개월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한영은 그럴만한 친구가 없다. 왕따는 아니지만 가깝게 지내는 이는 진서 딱 한 사람뿐이다. 그 외엔 전부 공적인 사이, 아니면 겨우 안면만 튼 정도랄까. 회식 겸해서 환송회를 하긴 했는데 그냥 술자리였다. 누구 하나 아쉽다 생각하지 않고 당사자 또한 그리울 사람이 없다.
쓸쓸하다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친구는 진정한 우정 하나면 된다. 많이도 필요 없다. 사랑이 없는 관계는 어차피 허무할 뿐이고 차라리 혼자가 낫다. 이런 생각을 하며 우울함을 버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다. 사실임에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한영은 영국에서 돌아오면 앞으로는 이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이가 먹어도 여유가 있고 자신감만 있다면 상대는 구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심심한 인생을 바꿀 좋은 기회였다.
미리 부쳐둬야 할 짐을 꾸리며 한영은 결심했다. 돌아올 땐 확실하게 변해 있겠다고.
혼자 낯선 타국에 왔다면 많이 위축되었을 테지만 다행히도 한영의 옆에는 늘 쾌활한 진서가 있었다. 말 없는 자기 대신 많이 떠들어줘서 심심하진 않았다. 가장 바쁜 공항중 하나라는 히스로 공항에서 내리자 전 세계의 모든 인종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백인, 흑인, 황인 여러 사람이 홍수처럼 떠밀려온다. 오랜 비행도 지겨운데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엑스레이를 찍어야 했다. 그 후엔 게이트를 나가 현재 영국에서 생활한다는 진서의 친구를 찾았다.
"우리랑 동갑이고 이름은 승주야. 대학 다닐 땐 모델 하다가 지금은 여기서 유학중."
진서가 예전에 작업 하다가 알게 되었다는 승주라는 여자가 마침 마중 나오기로 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동양인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갈색머리를 가진 스타일이 좋은 미인이었다.
"진서야! 여기!"
"승주! 오랜만이네."
"너도. 변한 게 거의 없어서 바로 알아봤어."
여자는 너무 말라서 살집이 거의 없지만 밝은 분위기 탓인지 건강해 보였다. 진서와 인사를 나눈 그녀의 눈이 한영에게로 향했다. 낯가림이 심한 그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난 최승주에요."
악수를 하긴 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한영이 어색해 하자 승주는 별 말없이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간단한 짐만 든 두 남자는 그녀의 차로 향했다.
"차도 있네? 여기 기름 값이랑 택시비도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기름 값은 비싸도 중형차는 그렇게 안 비싸."
진서와 승주가 대화하는 걸 들으며 한영은 얌전히 그 뒤를 따랐다. 승주는 모델출신답게 키도 남자들만큼이나 컸다. 자신은 178cm 진서는 182cm인데 힐을 신고 있어서인지 비슷했다. 그녀는 운전석에 앉으며 백미러로 한영을 살폈다.
"이웃인데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텐데 편하게 생각해요. 아, 말 그냥 놓을까?"
"....네."
"하하, 말 놓자니까. 그 쪽은 천천히 놔도 되고. 내 쪽에선 편하게 대할게."
미리 진서에게 말을 들은 모양이다. 승주는 한영의 서먹한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성격이 무척 털털해 보였다.
"일단 짐 풀고 내가 예약한 레스토랑에 가자고."
"영국엔 먹을 거 없다던데."
"그렇지도 않아. 설마 여기 사람들이 전부 미각을 잃었겠니."
영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둘은 승주의 안내를 받았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계약한 집이었다. 사진에서도 그랬지만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 더 넓었다. 기본적인 가구와 생활용품은 옵션으로 붙어 있어 딱히 새로 살 게 없었다.
"와, 집 좋네. 승주야 안내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 신세질 게 많을 것 같으니 미리 잘 부탁할게."
"자주 밥 사리라 믿어."
유럽답게 낡은 양식 건물들이 많았고 그런 건물 중 하나가 그들이 살 집이었다. 한영의 회사에서 지정해 준 곳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여러 가구가 생활하는 공동주택을 Flat라고 부른다고 승주가 설명해주었다.
구조가 주택치고는 특이하다고 했더니 승주가 이곳은 예전에 공장이었다고 했다. 런던에선 공장이나 관공서가 주택으로 개조되는 예가 흔핟고 한다.
미리 부친 짐들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가구가 없어 안은 썰렁했다. 허기가 진 셋은 짐만 풀고 일단은 식사를 하러 나갔다.
"내가 사는 건물은 골목 뒤야. 나중에 마트도 알려줄게."
한영과 진서는 어린아이처럼 승주의 뒤만 쫓아다녔다.
"New Malden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아서 농담으로 뉴물동이라고 부르기도 해."
그녀는 영국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안내한 곳은역시나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 피쉬 앤 칩스 전문점이다. 이 년동안 살았던 사람답게 꽤 맛있는 곳으로 데려갔지만 밥이 없으니 어째 허전하긴 했다. 그 사이에 점점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안개로 유명한 도시라 걱정했는데 날이 맑았다.
"템즈강 야경이 참 예뻐. 보고 갈래?"
한영은 그녀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처음으로 온 런던에 흥분해 있었다. 갖가지 색깔로 빛나는 야경을 바라보며 역시 역사 깊은 도시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건물들이 장엄하게 도시를 지키고 있는 기분에 한영은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장 모레부터는 새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 다행히 혼자 온 게 아니라 상사 한 명이 내일 도착해 같이 다니게 되지만 낯선 환경에 잘 적응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든다.
"왜 그래?"
"....그냥."
긴장이 되어 얼굴이 굳어지자 진서가 눈치 빠르게 물었다.
"기운 내. 새 환경이잖아. 자신 있게 하라고."
그가 등을 두들기자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언제나 넉살 좋게 웃는 얼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곳이다. 평소와 달리 조금은 뻔뻔해져도 괜찮을지도. 서양은 자기주장이 확실한 사람들이 많으니 스스로도 달라져야겠다고 결심한 한영은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다음 날, 아침엔 샌드위치를 사들고 승주가 찾아왔다. 그 후엔 런던 시내를 구경했는데 어제 갔던 빅 벤을 낮에 다시 보니 느낌이 달라 둘은 또다시 감탄을 했다.
런던 최고의 쇼핑거리인 옥스퍼트 스트리트와 코벤 가든과 트라팔가 광장까지 다 구경한 뒤 저녁에 돌아와선 짐을 정리했다. 승주의 도움을 무지막지하게 받은 둘은 저녁은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사와 답례로 저녁을 해주었다.
진서는 가장 잘하는 음식인 파스타를 만들고 한영은 한국에서 가져온 담배를 선물로 주었다. 현지인들 사이에선 현금 대신 통할 정도로 담뱃값이 비싸다는 말에 혹시 몰라 사온 것인데 승주는 매우 기뻐했다.
"담배잖아? 나 정말 피우고 싶었어."
이곳에 와서 금연을 했다며 승주는 한영의 뺨에 키스를 했다. 한영은 인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사실 이곳에선 인사로 하는 스킨십이 그리 일상적인 건 아니라고 했다.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며 그 이후의 시간을 보내다 주말엔 런던의 자랑인 뮤지컬을 보기로 하고 그녀는 돌아갔다.
"승주는 성격이 참 좋은 것 같아."
생긴 건 새침한데 행동은 의외로 털털하다. 낯가림이 심한 한영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응. 그러니까 친해졌지. 까탈스러우면 같이 놀기 힘들어."
진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진서는 이곳에선 백수라 한영이 출근할 동안엔 혼자 관광을 즐기겠다고 했다.
둘은 진서의 방에서 짐 정리를 했다. 진서가 대충대충 짐을 풀어놓은 것과는 달리 한영 자신의 방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그래서 진서의 방에 가서 정리를 도와주던 참이다.
사진작가라 그런지 대부분의 짐이 촬영에 관계된 것들이다. 본격적인 장비가 아니라 카메라 몇 대와 필름들뿐인데 상당하다.
영국은 촬영차 몇 번 와 본 적이 있지만 장기거주는 처음이라 그런지 신이 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같이 살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은 적었다. 생활하는 시간대도 다른데다 진서가 촬영 때문에 나가있는 시간이 많은 탓이었다. 옷을 개서 정리하자 옆에서 카메라를 닦던 진서가 물어온다.
"회사 가면 전부 외국인인가?"
"글쎄, 전에 갔던 사람 말로는 여러 인종이 많다던데. 그래도 영국지사는 대부분 백인이래."
사실 외국인들은 뛰어난 미인이 아니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안 된다. 외국에선 미남이라고 해도 자신이 보기엔 그냥 코쟁이인 경우도 허다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와 남자 구경은 거의 하지 않았다. 외국 사람이란 인식이 깔려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한영은 생각했다.
"확실히 외국인들은 뭔가 거리가 느껴져."
생긴 것도 다르고 하는 말도 다른 탓인지 이성적으로 그다지 연관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다른 인종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였다.
"이래서 작업은 무슨 작업."
한영은 투덜거리며 옷걸이를 봉에 걸었다.
출근하자마자 같은 지사출신 사람이 데리러 왔다. 그와 짧은 면담을 마치고 한영은 자신의 사무실을 안내받았다. 백인들이 역시 많았다. 공항에서 느끼는 낯선 기분이 계속 유지되어 짧게 인사를 하고 소개를 나누면서도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왕이면 회사에 내 취향에 맞는 게이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는 자신이 봤던 포르노에 나오던 외국인들을 떠올렸다.
그가 원하는 조건은 세 가지였다. 어차피 삼 개월만 만날 거니 인물은 적당하면 되고 페니스는 조금 컸으면 좋겠고, 게다가 바람둥이에 테크닉이 좋은 적극적인 상대라면 더욱 금상첨화였다.
얼마 전에 봤던 영화가 떠오른다. 금발머리에 새파란 눈동자,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배우가 있었다. 청바지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긴 다리와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 한영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외국인 중에선 마음에 드는 얼굴을 발견하기 힘든데 그는 꽤 잘생겨보였다.
그런 외모에 대물에 바람둥이라면 당장에라도 다리를 벌려 주리라. 노 콘돔이라도 용서할지도. 한영은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그런 음탕한 생각을 했다. 비록 그 나이까지 처녀지만 딱히 순결에 집착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시큰둥한 성격에 유독 겁이 많을 뿐이다.
'자고 싶은 상대가 없어.'라는 이유와 '잘못하다 성병이라도 옮느니 그저 자위로 끝내야지.'라는 생각이 합쳐지자 정말 딱지 뗄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차곡차곡 쌓이자 그런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옆에서 회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동료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동료는 어느 사무실 앞에서 멈춰 선다.
"보스. 들어갑니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동료가 먼저 들어갔다. 어차피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중년의 외국이 아저씨 제임스 따위를 떠올린 한영은 심드렁하게 그 뒤를 따랐다. 문을 닫자 동료의 목소리가 들린다.
"인사해요 한영씨. 이쪽은 라이오넬 스펜서."
그리고 보스라는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새파란 눈동자,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굳고 말았다.
맙소사, 앞에 있는 상대는 배 나온 뚱땡이 제임스가 아니라 젊은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따귀를 오백만 대쯤 후려칠 외모의 소유자였다. 완벽한 조각이 슈트를 입은 채 나른하게 책상 위에 기대앉아 있었다.
결 좋은 백금발 머리카락, 새파란 눈동자, 하얀 피부는 도자기인형 같았다. 패션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완벽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건 속마음이었고 사실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아마 남들은 째려본다고 오해할지도 모르는 시선이다. 아마 사무실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면 침을 삼켰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자 슬쩍 시선을 옮길 때였다. 조각이 한영에게 말을 걸었다.
"Mr.서, 이름이?"
라이오넬 스펜서라 불리는 조각이 빙긋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묻는다. 한영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름을 얘기했다. 물론 목소리는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어쩔 수 없다. 성격이니까. 외모감상과 일은 다른 것이다. 한영은 이런 분명한 성격이 자신의 단점이란 것을 절절히 깨달았다.
"그런 남자를 만났어?"
진서는 부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한영은 기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그림의 떡이지."
일단 상사니까. 직장 내에서 상대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ㄷ. 게다가 게이라는 확신도 없다. 한영은 무덤덤한 얼굴로 진서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씹었다. 진서는 그런 한영을 보며 오우 노를 중얼거리더니 진지하게 충고했다.
"하긴 상사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앞으로 그런 놈을 만나거든 한마디만 해."
"뭐라고?"
"Fuck me please."
".......뭐냐."
한영이 기가 찬 얼굴을 하자 진서는 쓰읍 소리를 내더니 구구절절 설명을 시작했다. 외국 야동에선 이런 신음 소리가 나오는데 혀를 굴려서 너도 따라하라는 둥의 헛소리였다.
"그만해!"
한영은 헛소리를 외치는 진서를 포크로 위협했다. 진서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음탕한 말들을 지껄인다. 전부 포르노에서 나오는 대사들이었다. 기브 미 퍽 미 등등을 외치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진서에게 한영은 포크를 집어 던질까 고민했다.
하지만 화보다 웃음이 먼저 터진다. 진서의 저런 성격은 자신과는 다르지만 익숙해지면 꽤 유쾌했던 것이다. 진서는 음담패설을 좋아하고 욕망에 솔직해서 한영과는 달리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둘은 곧 사이좋게 설거지를 한 뒤 맥주를 마셨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둘은 진서의 여행이야기로 떠들었다.
"너 여행 간다며?"
"응. 스코틀랜드에 가보고 싶어."
진서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웃으며 대꾸한다. 한영은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마저 질문을 던졌다.
"그렇군. 언제 갈 거야?"
"승주 친구도 마침 간다더라고. 그래서 얹혀 갈 수 있나 부탁해놨어. 만약 그쪽에서 허락한다면 바로 따라갈 생각이야."
"승주 친구?"
"응. 같은 대학 친구래."
아무래도 혼자 가긴 힘들고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싶다며 진서는 들떠서 말했다. 하지만 그 좋은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헤에 소리를 내는 한영을 보며 버럭 화를 냈다.
"그나저나 넌 대체 언제 프로젝트를 실현시킬 셈이냐! 그래서 언제 양키랑 사귈 거냐고!"
"아직 일주일도 안됐잖아."
소심하게 대꾸하니 진서는 그런 친구를 보며 도끼눈을 뜬다.
"안되겠다. 지금 당장 게이바 가자. 가서 해치우자고."
"야! 내일도 나 출근해야 돼. 가려면 주말에 가자."
"그것도 변명이라고."
진서는 비겁한 변명이라고 투덜거렸지만 한영은 슬쩍 꼬리를 말고 제 방으로 도망쳤다. 진서는 다 좋은데 너무 성질이 급했다. 방에 들어온 한영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양키 애인이라, 굳이 외국인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자신은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 단지 섹스 경험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사실 누구보다 급한 건 자신이었다.
어서 빨리 상대를 구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자 마침 떠오르는 건 라이오넬이다. 조각 같은 얼굴과 큰 키, 그리고 새파란 눈동자와 백금발의 머리카락. 패션 화보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
"그런 사람이 나한테 수작을 부린다면 바로 넘어갈 텐데 말이지."
어쨌든 잘 생겼으니까. 이분 주말엔 꼭 게이바 가고 만다. 한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곳이 게이바였고 라이오넬이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면 자신은 아무 저항 없이 따라갔을 것이다.
어두운 게이 바, 그곳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양키 미남. -한영은 외국인이면 전부 양키라고 판단했다.- 나가자는 말에 순순히 따라갔지만 모텔에 가기 전에 으슥한 뒷골목에서 키스를 나누고 점점 더 농염해지는 혀의 섞임과 함께 옷 속으로 들어오는 하얀 손가락.
"빌어먹을."
한영은 너무 자세하게 진행되는 망상에 자신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하반신에 열기가 몰린다.
그는 스스로의 밝힘증에 진저리를 내며 화장실로 향했다. 출근한지 이틀째부터 상사를 대상으로 이런 음란한 망상을 즐기다니, 아무래도 자신이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선 이것저것 바빠서 전혀 장난질을 못했지. 오늘 밤엔 오랜만에 뒤나 풀어줘야 할 것 같다.
'진서는 오늘 늦는다고 했으니 퇴근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실컷 즐겨야지. 딜도를 챙겨오길 잘했어.'
겨우 삼 개월간의 출장인 만큼 무수한 장난감 중에서 고무모형하나만 챙겨왔다. 더 챙겨올 걸 그랬나. 한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 입구로 들어갔다. 마침 입구에선 누군가 나오는 중이다. 한영은 슬쩍 옆으로 비켜 지나가려 했지만 상대가 자신을 알아보며 인사를 건넨다.
"한."
"네?"
뒤를 돌아보니 라이오넬이 있었다. 한영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어제처럼 빙긋 웃었다. 마치 여자를 꼬실 때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무언가 진득한 시선이다.
"마침 잘 만났어. 혹시 오늘 밤 시간 있나?"
"있긴 합니다. 그런데 왜요?"
"괜찮다면 술 한잔하지 않겠어?"
"네?"
친목도 다질 겸 말이지, 라고 말하며 라이오넬이 한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난 당신과 친해지고 싶거든."
무슨 의미로? 한영은 그런 얼굴로 라이오넬을 바라봤다. 갑작스런 스킨십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부할 순 없었다. 라이오넬의 얼굴은 쉽사리 노를 외칠 수 없는 외모였고, 완벽한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는 본토박이였으며, 또한 미남이었다.
"오케이?"
"......."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딱 부합되는 완벽한 상대였다. 한영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가 아니더라도 술 한잔하고 싶은 상대임에 틀림없었다.
비기너스 럭, 초심자의 행운이란 걸까? 한영은 자신 옆에 앉아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슈트를 입은 채 멋지게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미남, 마치 스크린 속의 영화배우 같다.
어쩐지, 두근거리긴 하는데 현실감이 없다 했지. 한영은 슬쩍 목을 긁으며 그것이 정답이란 걸 느꼈다. 왜 이렇게 자신이 시큰둥한 것일까 고민했던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같이 있는 것만으로 눈이 즐거워지는 남자였다.
"삼 개월 동안 근무한다고 했지?"
"네."
"짧군."
라이오넬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도 어째 멋지긴한데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라이오넬은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한영을 보며 물었다.
"원래 그렇게 표정이 없나?"
"그런 편이죠."
"웃으면 더 좋을 텐데."
진심이라는 얼굴로 라이오넬이 말했다. 한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속으로 뭐 어쩌라고를 외쳤다. 외국에서도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하는 건가. 그래서 나쁠 일은 없지만 그는 원래가 무뚝뚝했다.
"한국은 어떤 곳이지?"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스킨십도 인색해서 연인 사이가 아니면 하지 않을 정도에요."
한영은 성의없이 대꾸했다.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라이오넬은 열심히 경청한다. 정말 궁금했나. 한영은 속으로 이 사람 혹시 동양에 관심이 있나 생각하며 추가로 몇마디를 덧붙였다.
라이오넬은 이번에도 한영을 바라보며 진지한 눈빛을 했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열심히 듣는 청중을 보다 한영은 문득 그가 자신의 말보다 얼굴에 더 집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부러 말을 느리게 해도 전혀 변함이 없다.
듣고 있는 게 아니라 보고 있었나. 한영은 조금 허탈한 기분으로 말을 끝냈다.
"실례되는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좋아."
라이오넬은 흔쾌히 대꾸했다. 그 반응에 용기를 얻은 한영은 잠시의 고민도 없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게이에요?"
"그래."
라이오넬은 순순히 고백했다. 어차피 가족이나 회사 내 측근들 중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 한영에게 새로운 기쁨을 알려주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어차피 들킬 것이면 말해줘도 상관없었다.
그는 한영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껴안았다. 놀라서 움찔거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라이오넬은 긴장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한영을 보며 짙은 미소를 흘렸다.
하지만 예상외로 한영은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괜찮아요."
무엇이 괜찮다는 것일까. 한영은 무언가 한 짐 덜어 낸 사람처럼 홀가분한 얼굴을 했다. 그리곤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영이 빠져나가자 팔이 허전해진다.
"나가죠."
뭐야 의외로 가까이에서 건졌잖아. 한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게이바 순례는 안 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을 보며 잠시 어이없는 얼굴을 했지만 재빨리 일어나 그의 옆에 섰다.
"어디로 갈 거예요?"
마치 밥 먹고 이제 뭐할까 묻는 천진한 얼굴이다. 라이오넬은 혹시 이 남자가 타고난 바람둥이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호텔로 가죠. 그쪽이 편할 것 같으니."
라이오넬은 그런 속내를 티 내지 않기 위해 웃었다. 한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라이오넬의 차에 탔다. 안전벨트를 매며 조금 실망감을 느꼈을 때였다. 한영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아, 참고로."
"왜?"
조금 시큰둥하게 묻자 한영은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나 처음이에요."
라이오넬은 하마터면 벨트 끈을 놓칠 뻔했다.
처음, 처녀라는 말에 다시 의욕이 불타올랐다. 거짓말일까 의심도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한,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스물여덟. 곧 스물아홉이 되요."
사실은 서른이지만 이곳은 만으로 나이를 치는 곳이기에 그렇게 대꾸했다.
"나보다 많군."
라이오넬은 놀랍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한영은 역시 외국인은 늙어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라이오넬은 왠지 즐거워 보인다. 차에서부터 묘하게 들떠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설마 이 남자 그동안 궁했던 걸까. 한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재킷을 벗었다. 왜소하진 않지만 마른 체구는 라이오넬의 옆에 서자 작아 보인다.
"키가 꽤 크네요."
한영은 솔직하게 느낀 바를 말했다. 역시 양놈들은 크구나.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라이오넬은 칭찬으로 받아들인 듯 기쁘게 웃는다. 사실, 한영의 속마음은 이랬다.
'그래 봤자 거기가 안 크면 말짱 꽝이잖아.'
멀쩡한 얼굴로 음탕한 생각을 하고 있다. 어차피 호텔에 온 거 한영은 부담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한 번쯤 만져보고 싶었던 머리카락을 슬쩍 손으로 건드리자 부드럽게 흩어진다.
"염색 아니죠?"
"그래."
자신의 머리카락이 마음에 드는 것일까. 라이오넬은 새까만 머리카락과 눈이 더 신기하기만 하다. 어두운 색인데도 정갈해 보이고 왠지 금욕적이면서 섹시한 이미지를 풍기는 것이다.
한영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다 곧 손가락을 떼어내며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아래도 이 색인가."
"응? 무슨 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영은 무심코 본심을 드러냈다. 상대가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딴청을 피웠다. 라이오넬은 심중을 알 수 없는 무표정과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가진 한영이 점점 궁금해졌다.
"정말 처음이야?"
"네."
"어째서?"
"우리나라는 보수적이니까요. 게이인 것이 들통나면 살기가 무척 불편해요. 동성애는 범죄처럼 취급하니까."
자국의 보수성은 좋은 핑계가 된다. 한영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변명을 했다.
"그럼 아무도 당신을 만진 적이 없나?"
"키스조차 안 해봤으니 당연하지요."
한영은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자 라이오넬의 눈이 반짝거렸다. 새파란 눈이 미묘하게 색기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자 한영은 그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황홀한 미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의 미모는 잘 모르지만 이 남자는 어딜 가도 미인 소리를 들을 것이다. 보석 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리고 매끈하고 탄탄한 피부를 보며 한영은 비스크 인형을 떠올렸다.
"나에겐 행운이로군."
라이오넬이 웃으며 한영에게 다가왔다. 점점 입술이 가까워지자 한영은 멍청하게 생각했다. 아, 키스하는구나. 물컹한 촉감이 낯설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 바로 코앞에서 푸른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까지 금발머리의 미남을 상대로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자신의 망상이 현실로 펼쳐지다니. 길고 하얀 손가락이 뺨을 감싸자 한영은 눈을 감았다. 왠지 눈을 뜨고 있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할짝, 혀가 입술을 핥고 지나간다. 입술을 벌리며 뜨겁고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안으로 침범한다. 혀를 장난치듯 건드리고 다시 뒤로 물러나 치열을 핥고 잇몸을 훑었다. 다시 혀 밑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마치 뱀처럼 움직이는 혀의 촉감이 낯설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한영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어느새 라이오넬의 손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몸을 붙여온다. 얇은 셔츠 아래로 서로의 맨살이 느껴지고 사타구니가 바싹 밀착된다. 아직 발기도 안 했을 텐데 꽤 큰 물건이 고스란히 느껴져 한영은 얼굴을 붉혔다.
어느 정도나 될까. 대충 자신보다 큰 건 알겠다. 하얀 피부니까 포르노에서 보던 대로 핑크빛 혹은 살굿빛을 띨까. 그러고 보니 외국 사람들은 포경을 하지 않는다던데. 부끄러운 와중에도 그런 의문이 든다.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뒤로 뺐다. 하지만 라이오넬이 다시 자신 쪽으로 당겨 끌려오고 말았다.
슬쩍 눈을 뜨자 가늘게 눈웃음을 치고 있는 푸른 눈이 보인다. 그 사이에도 그의 혀는 음탕하게 자신의 혀를 휘감았다. 한영은 작게 신음을 흘렸다. 라이오넬이 그의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잡게 했다.
한영은 순순히 그의 뜻대로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은 실전 경험이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혀가 세게 빨리고 입술이 통째로 먹히는 등 정신이 없다. 안을 휘젓는 낯선 촉감에 움찔거리자 라이오넬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입술을 뗀 한영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창피해서 시선을 마주치기가 불편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데 라이오넬이 그의 허리를 잡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는데 갑자기 귀가 깨물린다.
"아!"
작게 신음을 흘리자 혀가 귓속으로 들어온다. 슥- 안을 훑고 나가는 촉감에 진저리를 치자 다시 웃음소리가 들린다. 귀를 약하게 깨물며 뜨거운 숨을 불어넣자 한영은 더욱 얼굴이 달아올랐다.
"처음 맞는 것 같군."
"....거짓말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한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자 라이오넬은 다시 진하게 미소지으며 그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이 건드릴 때마다 흠칫 몸을 떠는 것이 제법 귀여웠다. 무표정한 얼굴에 붉게 열이 오른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즐거움을 주는 남자다.
"성욕이 없을 리도 없고 그동안 혼자 욕구를 풀어왔겠군."
"........"
한영은 입술을 깨물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아니라고 해도 상대는 안 믿을 테지만 그래도 자폭하는 기분이다.
어린 새끼가 갈구기는, 한영은 슬쩍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아프게 하지 말아요."
아픈 건 딱 질색이다. 성인용품으로 장난을 치긴 했지만 아직까지 실전 경험은 없는 한영은 라이오넬을 올려다보며 당부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붉어진 얼굴과 촉촉해진 눈으로 그런 말을 하다니. 유혹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울컥한 라이오넬은 바로 한형을 끌어안았다. 다시 격렬한 키스가 이어진다. 한영은 어리둥절했지만 자신의 셔츠를 벗기는 그를 보며 어벙하게 생각했다. 아, 시작하는 거구나.
몸이 감기에 걸린 것처럼 뜨거웠다. 부드러웠지만 또 거칠기도 했던 긴 키스가 끝나자 한영은 숨을 격렬하게 몰아쉬었다. 어느새 그의 몸은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처음으로 한 키스가 너무 길었고 또 흥분한 탓이다. 혀를 섞는 와중에도 연신 자신을 쓰다듬고 가슴을 자극해 추위를 타듯 몸을 떨었다.
라이오넬은 어느새 자신의 셔츠를 벗어 던지고 위로 올라탔다. 한영은 자신의 벨트가 풀리고 바지가 벗겨지는 것을 바라보자니 덜컥 겁이 났다. 도망치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몸이 떨렸다. 바지 천이 맨살을 스치면서 벗겨지고 이내 다리가 드러난다. 라이오넬은 몸을 움츠리는 한영의 양말을 벗기며 웃었다.
자신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무방비하게 다리를 벌리고 있는 동양인이 귀엽게 느껴졌다. 걸치고 있는 건 셔츠와 브리프뿐이다. 하지만 한영은 그런 것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눈만 굴리며 눈치를 보는 것이 마치 성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 순진해 보였다. 물론 그 정도로 순진할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어째선지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라이오넬은 손가락으로 한영의 페니스를 훑었다. 천 밑으로 물컹한 살덩어리의 촉감이 느껴진다. 움찔, 한영이 어깨를 움츠린다. 라이오넬은 그 반응이 재밌게 느껴졌다.
"그럼 이곳도 다른 사람 손을 탄 적이 없겠군."
한영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손을 들어 이번엔 위로 천천히 훑어 올렸다. 한영이 눈썹을 찡그리며 긴장하는 것이 선연하게 보였다.
"아...."
한영은 작은 탄성을 흘리며 허벅지를 오므렸지만 사이에 있는 라이오넬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그의 손이 느리게 허벅지를 쓸자 한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날 만난 건 당신에겐 행운이야."
라이오넬은 한영의 셔츠 속으로 손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유가 궁금한 한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난 처녀를 좋아하거든."
"왜요?"
"개척하는 기분이니까. 내 취향으로 만드는 즐거움도 있고."
그의 대답에 한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바람둥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한영은 그가 어떤 생활을 하건 상관없다.
"....콘돔은 꼭 사용해요."
설마 자기 관리조차 못하는 병신이 높은 위치에 있을까. 그래도 혹시나 싶어 한영은 진지하게 말했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을 보다가 풋- 웃음을 터트렸다.
"Don't worry."
역시 외국인들은 너무 혀를 굴려. 한영은 순순히 대답하는 남자에게 안심을 했다. 그 사이 가슴을 어루만지는 느릿한 손길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타인의 손길이 닿는 것은 처음이었다. 움찔거리며 솔직하게 반응을 보이는 게 귀여운지 라이오넬은 시종일관 즐거운 웃음을 흘렸다.
그의 손이 브리프에 닿았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뛸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천이 내려가고 자신의 성기와 음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까맣군."
검은색의 음모 가운데 자리 잡은 성기는 보통 크기였다. 자신의 손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가 라이오넬의 맘에 들었다. 천천히 주물럭거리자 한영의 허리가 튕기며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걸 만져주는 것도 내가 처음이겠군."
키스, 애무, 삽입 전부 자신이 처음이라니. 예상외의 즐거움이 라이오넬을 흥분시켰다. 고개를 끄덕이는 한영의 얼굴은 부끄러움을 잔뜩 내비치고 있다. 라이오넬의 허리에 닿은 허벅지 근육이 긴장해서 뻣뻣하게 굳어있고 애써 태연해 보이려고 했지만 껌뻑거리는 눈동자가 겁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이가 있으니 지식은 충분하지만 실제 경험은 없기에 모든 반응이 신선했다. 라이오넬은 음흉한 속내를 미소로 감추며 그의 브리프를 다 벗기지 않고 허벅지 중간쯤에 걸쳤다. 벌려진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자 한영이 당황해 엇 소리를 냈다.
가슴이 훤히 내비치는 셔츠와 허벅지엔 브리프가 걸쳐진 채 다리가 들려져있다. 걸려있는 천 때문에 무릎 쪽은 오므리고 있지만 밑은 국부가 훤히 노출된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덜렁거리는 성기를 보며 라이오넬은 심술궂게 웃음을 흘렸다.
당장에라도 게이 포르노에 내보내도 되겠는걸. 동양인 바텀은 인기가 좋았다. 라이오넬은 휘파람을 불며 그 모습을 감상 했다.
"어떻게 해줄까?"
".....네?"
무슨 뜻인가 싶어 한영은 멍청하게 물었다.
"어느 쪽을 좋아하냐고 묻는 거야."
"어느 쪽이라니?"
순진하게 묻는 한영을 보며 라이오넬은 피식 웃었다.
"이곳과 이곳, 두 곳 중 어떤 곳이 더 민감하지?"
라이오넬의 손가락이 유두를 스치고 밑으로 내려가 사타구니를 훑었다. 귀두를 손가락으로 툭 튕기자 한영은 오싹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그동안 혼자 했을 테니 잘 알잖아."
"......"
그 말에 한영이 인상을 징그렸다.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그가 화를 낼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영은 뭐라하려다 갑자기 브리프가 벗겨지는 바람에 말을 삼켜야 했다. 다리가 공중에서 크게 벌어진다. 그리고 어느새 라이오넬의 얼굴이 가슴쪽으로 내려온다.
"좋아. 직접 확인해 보지."
셔츠 위로 혀가 닿는 느낌이 스산했다. 다시 움찔거리는 한영을 보며 라이오넬은 속으로 키득거렸다. 겁먹은 초식동물처럼 제자리에서 몸을 떠는 작은 체구의 남자,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얼굴과 깨끗한 피부가 맘에 든다. 젖은 천위로 선명하게 튀어나온 유두를 혀로 건드리자 가녀린 신음 소리가 들린다.
라이오넬의 하얀 손가락이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감질나도록 느린 행위에 한영은 조바심이 나 침을 꿀꺽 삼켰다. 돌기에 혀가 직접적으로 닿자 짜릿한 쾌감이 온몸으로 퍼진다. 다른 피부보다 예민한 유륜을 혀로 덧그리듯 핥고 이로 살짝 깨물어댄다.
"아....."
한영은 젖은 숨소리를 흘리며 시트를 움켜쥐었다. 가늘게 떨리는 몸을 보며 라이오넬은 만족스럽게 한영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확실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평소에도 이곳을 스스로 만져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조금만 자극해도 바로 반응을 흘리는 것을 보니 퍽 예민한 몸이었다. 어떻게 이런 몸으로 그동안 굶고 살았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조용한 방 안엔 혀가 피부와 마찰하는 젖은 소리와 간간이 한영의 신음만이 흘렀다. 하지만 한영은 그걸 의식할 틈도 없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타인이 주는 쾌락, 그것에 빠져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오넬의 혀가 배 쪽으로 내려갔다. 배꼽을 혀로 건드리자 간지러움에 몸을 뒤틀었다. 골반까지 쭈욱 핥아 내리다 이내 성기에 당도한다. 한영의 것은 이미 흥분해서 발기되어 있었다.
라이오넬은 기둥을 잡아 귀두에 입을 맞췄다. 쪽 소리가 나며 입술이 닿자 한영은 흠칫 놀랐다.
곧 자신의 성기가 라이오넬의 붉은 입술 사이로 사라진다. 뜨겁고 축축한 내부로 들어가자 한영은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혀가 기둥을 핥고 치아가 가볍게 스칠 때마다 선명하고 낯선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아....흐읏!"
한영은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왠지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시트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불가능했다. 취기가 이제야 도는 건지 몽롱해진다. 겨우 위스키 석 잔을 마셨을 뿐인데. 그때, 라이오넬이 입술로 조이기 시작했다. 한영은 놀라서 허리를 튕겼다.
"하아....아......으응."
뜨거운 점막에 둘러싸여 자신의 성기가 조여진다. 손으로 하던 것고는 사뭇 다른 감각이 짜릿했다. 하악, 그의 입에선 조금 전보다 더 음란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군가 자신의 성기를 빨고 있다니, 그것도 금발 벽안의 미남이 말이다. 게다가 입술로 강하게 조이며 때론 혀로 기둥을 핥아올리고, 뾰족하게 혀를 세워 귀두를 찌르다 입속에서 굴리는 행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의 눈은 피부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그, 그만."
사정감이 몰려 한영은 울먹거리며 멈추려고 했다. 그러자 라이오넬의 눈이 가늘게 접히더니 오히려 더욱 세게 한영의 것을 조였다.
"아, 싸, 쌀 것 같!"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영은 질끈 눈을 감았다.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그의 페니스에서 하얀 정액이 솟구쳤다. 바로 그 전에 라이오넬은 한영의 성기에서 입을 뗐다. 그의 하얀 손에 끈적거리고 탁한 액체가 쏟아진다.
"좋았나 보군."
"....쿨럭!"
라이오넬의 말에 한영은 기침을 터트렸다. 창피함에 숨을 참고 있다가 놀란 탓이었다.
기침을 하자 열만 더 올랐다. 한영은 생리적으로 나온 눈물을 슬쩍 닦았다. 순간 라이오넬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영은 놀라서 움찔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라이오넬은 침대 앞에 서서 바지를 벗었다. 속옷까지 한 번에 끌어내려 침대 옆으로 던진다. 곧 하얗고 긴 다리가 드러났다. 상체도 탄탄했지만 아래쪽도 훌륭했다.
겉보기엔 호리호리해 보였지만 건강해 보이는 근육질의 다리사이엔 그의 예상대로 살굿빛을 띠는 거근이 보인다. 한영은 그것을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라이오넬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서랍을 뒤지던 그는 빙긋이 웃으며 한영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손이 한영의 손을 잡아 자신의 중심을 가져다 댄다. 한영은 뻣뻣하게 굳었지만 차마 그의 손을 쳐내진 못했다.
실제로 처음 만져보는 타인의 성기는 신기하기만 했다.
금색의 털이 무성한 페니스는 만져보니 뜨거웠다. 아직 물렁물렁한 것으로 보아 발기가 덜 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훨씬 커서 한영은 남자로서 자존심이 약간 상했다.
꿀꺽, 다시 침이 넘어갔다. 라이오넬이 가늘게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성기를 쥐게 했다.
"똑바로 잡아. 스스로 했을 때처럼."
짓궂게 덧붙이는 한 마디에 한영은 울컥했지만 이미 서비스를 받았기에 군말 없이 그의 성기를 잡았다.
이것이 자신의 뒤로 들어오늘 걸까. 왠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인제 와서 그만둔다고 하면 어떻게 되려나.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의 페니스를 흔드는 한영을 보며 라이오넬은 미소를 지었다.
반응 하나하나가 재미있는 남자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평소에 무심함은 사라지고 순진한 소년처럼 구는 것도 꽤 즐거운 갭이었다.
하지만 한영은 그런 여유가 없었다. 남자의 것을 제 딴엔 애써 만지작거렸지만 점점 커지기만 해 공포를 느끼는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라이오넬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 것도 빨아 봐."
자신의 페니스를 가리키는 라이오넬을 보며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걸 빨라고? 저 크고 긴 걸? 경악한 눈초리를 보내자 라이오넬은 어서 하라는 턱짓을 했다.
".....으음."
한영은 약간 울상을 지으며 주춤주춤 고개를 내렸다. 어쩐지 반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굵고 긴 살덩어리가 위협적으로 흔들린다. 끄응, 한영은 속으로 신음을 흘리며 일단 귀두 부분을 물었다. 어설픈 솜씨에 라이오넬은 웃음을 흘렸다.
"그냥 물지만 말고 조금 더 성의 있게 대해봐. 혀를 쓰라고."
"....."
목소리를 들어보니 즐기는 게 분명했다. 한영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가 했듯이 혀를 움직였다. 입에 물고 혀로 할짝이자 만족스러운 숨소리가 들린다. 앞부분을 입술로 조이며 조금씩 삼켰다. 역시나 반도 들어가지 못했다.
"조금 더 세게."
"으으....."
"네 뒤를 즐겁게 해줄 물건이잖아. 미리 친해져야지."
"......."
이 새끼가 진짜, 한영은 또다시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지만 참기로 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마초로구나. 이년 저년 소리 안 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하나. 하지만 외국욕은 어쩐지 욕으로 안 느껴진다.
고국의 질펀한 욕에 익숙해져서 그럴지도. 한영은 그를 흥분시키려고 애썼다.
곧 라이오넬의 입에서 색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아... 어설퍼."
어설픈 솜씨라서 죄송하구먼. 한영은 속으로 빠직 했지만 티내지 않고 그의 것을 최대한 강하게 빨았다 그래도 여전히 반 이상은 삼킬 수가 없었다. 최대한 깊게 빨라들이려고 했지만 길어서 불가능했다. 그것이 불만족이었는지 라이오넬이 허리를 움직였다.
"욱!"
목젖을 치고 들어오는 행위에 한영은 잠시 구토기를 느꼈다. 갑자기 목구멍 안으로 깊이 쑤셔 들어오자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라이오넬은 규칙적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한영을 괴롭혔다.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한영은 다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엎드린 채로 라이오넬의 것을 물고 있던 한영은 치켜든 엉덩이에 손이 닿는 것을 느꼈다. 엉덩이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이 슬금슬금 안쪽으로 향한다. 입안에 머금은 것에 열중하느라 몰랐는데 갑자기 차갑고 끈적거리는 것이 입구에 닿는다. 젤을 바른 모양이다.
흠칫 놀라자 달래듯이 엉덩이를 쓸어내린다. 한영은 속으로 긴 사지를 잘도 써먹는 놈이라고 빈정거리며 그의 것을 빨기 위해 애썼다.
그 사이 젤이 잔뜩 발라진 입구에 손가락이 파고들어온다. 흠칫, 몸이 굳어졌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의 몸을 또 다른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허리와 등, 엉덩이를 오가며 안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 긴장 풀어."
그 와중에도 허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한영은 규칙적으로 목을 찔러오는 행위에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손가락은 천천히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뒤가 뚫리고 있는 뚜렷한 감각, 이물질이 파고드는 생경한 느낌에 한영은 덜컥 두려움을 느꼈다.
손가락은 매우 느리게, 그렇지만 확실히 안으로 쑤시고 들어온다. 한마디가 묻히자 그 뒤는 조금 빨랐다.
"읍!"
당황한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라이오넬의 것을 치아로 긁고 말았다. 라이오넬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조심해."
조금 아프긴 했지만 참을 정도는 됐다. 라이오넬은 한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긴장을 풀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이라 바짝 긴장한 한영은 솜씨가 더 어설퍼지기만 했고 어쩔 수 없이 성기를 빼야만 했다. 입안을 가득 메우던 살덩어리가 빠져나가자 한영의 숨통이 겨우 트였다.
라이오넬은 숨을 몰아쉬는 한영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 뒤엔 한영의 몸을 뒤로 눕혀 오른쪽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다시 구멍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푹, 손가락이 들어가는 소리가 분명히 들린다. 한영은 차마 아래를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개를 젖혔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붉어진 것이 뻔히 보였다.
순진한 반응에 라이오넬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어느새 깊이 파고든 손가락은 이미 두 번째 마디까지 들어가 안을 휘젓고 있었다.
쿨쩍, 미끄러운 내부와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움직일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났다. 한영은 밑이 따끔따끔 거리는 것 같아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으으."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하얀 살결의 남자가 자신의 밑을 파헤치는 것을 보기가 무섭다. 손가락은 갈고리가 되어 안을 넓히며 내부를 긁어내린다.
"하나 더 넣을 거야."
그리고 익숙해지기도 전에 손가락 하나가 더 들어왔다. 라이오넬이 말을 함과 동시에 쑤셔 넣었다.
"헉!"
조금 넓어진 작은 구멍으로 두 개의 손가락이 동시에 넣어진다. 이번엔 조금 아팠다. 한영은 괴로웠지만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아플 것이라고 결심했으니까. 이 정도면 괴롭진 않다.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아....아아."
게다가 남자의 손이 자신의 포인트에 점점 근접하고 있다. 수 년 동안 혼자 자위를 하며 자신의 약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영은 슬쩍 엉덩이를 움직여 남자를 인도했다. 한영이 움직이자 라이오넬은 눈치 빠르게 한영의 의도대로 손을 이동했다. 한마디정도 더 파고들어 와 짐작되는 곳을 누르자 한영은 예상대로의 반응을 보인다.
"하악!"
한영의 허리가 튕겨지더니 이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빙고, 라이오넬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부근을 지분거렸다. 하지만 아직 안이 충분히 풀어지지 않았다. 처녀라면 조금 더 세심하게 대해 줄 필요가 있었다.
라이오넬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안을 휘저었다. 움직이면서 슬쩍 그 부분을 건드리며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영은 계속 그곳을 만져주길 바랐지만 아직은 이르다. 라이오넬은 그를 달래며 손가락을 하나 더 늘렸다. 그는 상대를 배려하는 친절한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가 옴짤달싹 못하며 매달리는 걸 좋아했다. 느릿하게 애를 태우다 마지막엔 애원하도록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처녀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경험이 부족한 상대들은 솔직하지 못하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수치심을 느끼고 음란한 행위에 죄책감을 느낀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고 몰아붙여야만 그제야 소심하게 고백한다.
제 몸뚱이를 제가 원하는 대로 굴리는 것이 뭐가 나쁟는 건지 원. 하지만 구경하는 입장에선 그 부조리가 무척이나 재밌었다.
세 개의 손가락이 내부를 유린하자 한영의 입에선 괴로운 신음이 흘렀다.
"흐으.....윽!"
시트를 부여잡은 손은 하얗게 질려 뼈마디가 보인다. 잔뜩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두라곤 하지 않는다.
제길, 라이오넬은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안을 넓게 휘저었다. 자신도 슬슬 한계였다. 어서 저 좁은 처녀지에 자신의 남근을 박아 넣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안 되겠다 싶어 라이오넬은 손가락을 빼냈다. 쑥 빠져나가자 한영이 헉 소리를 낸다. 천천히 귀두부분을 입구에 대고 밀어 넣었다. 쿡 찔러 넣자 한영이 움찔 허리를 떨었다. 질척한 입구는 두꺼운 귀두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라이오넬은 조급함을 최대한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며 다시 시도했다. 그의 성기가 조금씩 안으로 파묻혔다.
"으...... 흐윽!"
한영은 괴로운 숨을 흘렸다. 최대한 힘을 빼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물론 힘든 것은 라이오넬도 마찬가지였다. 빡빡한 입구는 손으로 풀었음에도 삽입이 수월치 않았다. 어쩔 수 없다. 라이오넬은 일단 제 것을 밀어 넣는데 집중했다. 한영이 날카로운 비명을 흘렸지만 반 정도 들어가자 움직임을 멈췄다.
"한, 긴장 풀고 힘을 빼."
한영은 괴로운 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그의 말을 따르려고 애썼다. 밑에서 올라오는 화끈한 아픔도 시간이 흐르자 점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숨을 내쉬며 그는 긴장을 풀었다. 그와 동시에 라이오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굵은 성기의 감촉이 낯설었다.
그동안 사용했던 딜도나 바이브보다 훨씬 더 큰데다 실제였다. 한영은 얼떨떨함을 느끼며 밑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받아들이려했다.
시선을 내리자 찌걱거리며 안으로 파고드는 살덩어리가 보였다. 하체가 들려진 탓에 결합부가 훤히 보였다. 얼굴이 화끈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드디어 첫 경험을 한다는 실감이 들었다.
"하...."
맙소사, 내가 정말 양키 새끼랑 하는구나. 백인은 전부 양키라는 편견을 가진 한영은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나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아!"
어느새 잔뜩 흥분한 라이오넬이 제 것을 다 밀어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아직까진 괴로움이 더 컸기에 한영은 다시 한 번 시트를 콱 움켜쥐었다.
처음 오 분 정도는 지옥이었다. 첫 경험의 아픔을 방지하겠다는 핑계로 장난감으로 길들여놨던 밑이 실전에선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적응력이 뛰어난 생물인지라 조금씩 익숙해지자 참을 만 해졌다.
커다란 성기가 드나들자 어느새 그 사이즈에 맞춰 벌어진 구멍을 보며 한영은 자신의 몸임에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제일 놀란 것은 슬슬 몸이 달아오른다는 사실이었다.
"아! .....으응."
어느새 두 다리가 접혀진 채 들려져 있다. 다리 사이엔 라이오넬의 성기가 부지런히 드나드는 입구가 보인다. 살이 부딪힐 때마다 젤이 녹아 철퍽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질척하게 젖은 내부는 하얀 거품을 질질 흘리고 있다.
"아! 아아.... 흐으......응."
다시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있다. 그는 절박하게 시트를 움켜쥐며 자신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남자의 움직임에 최대한 맞추려고 애썼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금발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하아....."
허스키하고 낮은 숨소리, 그리고 긴 속눈썹이 보인다. 푸른 눈은 정염에 물들어 색스러웠고 미묘하게 찡그려진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영은 이 모든 상황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다시 입에서 날카로운 교성이 터져 나온다.
"아! 아아.....아!"
라이오넬이 강하게 제 것을 밀어 넣고 다시 빠져나갈 때마다 밑이 빠지는 것 같았다. 한영은 헐떡거리며 얼얼한 하체에서 올라오는 섬뜩한 감각에 몸서리쳤다. 질퍽거리는 소리가 요란해진다.
점점 빠르게 안으로 박아오는 행위에 한영은 미칠 것 같았다. 내부를 긁어내리며 느끼는 부분을 정확히 찔러오고, 둥글게 휘젓다가 다시 세게 찔러 넣었다. 정신 차릴 틈이 없다.
"아! 아아.....하악!......아으."
눈꼬리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미칠 것 같았다. 밑이 근질근질 거리는 이상한 감각에 온몸이 떨려온다. 라이오넬의 성기가 빠르게 안을 스쳐 지날 때마다 화끈한 감각과 함께 머리에 불꽃이 튀긴다.
"하... 아응...."
왠지 복부 아래쪽이 묵직해지는 것 같은 느낌, 온몸의 피가 끓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혼탁해져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때, 갑자기 라이오넬이 제 것을 빼냈다. 한영은 멍청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 갑자기 몸이 뒤집어졌다. 엎드린 자세가 되자 라이오넬의 성기가 입구에 빠르게 파고든다. 푹- 예고 없이 꽂혀 들어온 살덩어리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영은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곧바로 목이 돌아가며 입술이 먹혔다. 자세 때문인지 힘들어 뻣뻣하게 반응하자 라이오넬이 으르렁 거리듯 명령했다.
"혀 내밀어."
반사적으로 혀를 내밀자 곧 상대의 혀가 다가온다. 허공에서 얽히는 키스가 음탕한 느낌이 들었다. 곧 라이오넬은 한영의 뺨을 깨물었고 입술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목이 세게 깨물린다. 작게 비명을 지름과 동시였다. 라이오넬이 제 것을 푹 쑤셔박았다. 뿌리까지 전부 밀어넣고서 짓누르는 움직임에 한영은 상체가 허물어졌다.
한영의 입에서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라이오넬의 움직임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 그는 빠르고 난폭하게 안으로 피스톤 질을 했다. 안으로 살이 거세게 부딪쳐 엉덩이 사이가 쓰라리기까지 하다.
젖은 음모가 비벼지며 따끔한 아픔이 느껴졌다. 회음부를 타고 흐르는 질척한 액체의 감촉, 어느새 아프도록 발기한 성기가 마구 흔들렸다. 잡힌 허리가 아프도록 조여진다.
"하아....아.....아아!"
아프고 힘들다. 그런데도 반항하고 싶은 의지는 들지 않는다. 오히려 흥분하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이제는 간절할 정도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기분이다. 그 사이 뒤에 있던 남자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쾌감에 정신이 팔려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가 다시 한영의 턱을 잡아채며 똑바로 물어왔다.
"어때, 한?"
"뭐....뭘. 흑!"
"나랑 하는 행위가 어떠냐고 물었어."
"아......아앗!"
"대답해."
한영이 대답하지 않자 라이오넬이 제 것을 더 세게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영은 헐떡거리며 겨우 대답했다.
"조....좋아....하.....앗!"
"사실인 것 같군."
"아....으윽.....하아....."
"네 페니스도 잔뜩 젖어 있어."
라이오넬의 손이 한영의 성기를 틀어잡았다. 한영은 흠칫 놀라 몸을 움직였지만 등 뒤에 딱 달라붙어 있는 상대 때문에 다른 행동이 불가능했다. 라이오넬은 뿌리까지 박아 넣은 채 느리게 원을 그리며 안을 휘저었다. 그리고 손으론 한영의 것을 강하게 쥐고 귀두를 손톱으로 살짝 긁기까지 한다.
"아!"
한영은 어느새 어깨까지 무너져 볼을 시트에 비비며 신음했다. 그 사이에도 부지런히 두 곳을 공략해온다. 앞으론 한영의 귀두를 엄지로 꾹꾹 누르며 뒤로는 그곳을 쿡쿡 찔러온다.
온몸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은 기이한 쾌감이 한영의 전신을 지배했다. 한영은 울먹거리며 애원했다.
".....놔..... 그만."
하지만 라이오넬은 웃음만 흘릴 뿐이다. 오히려 더욱 세게 한영의 것을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느리게 움직이던 그의 허리도 어느새 다시 빨라진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아! 아아! 하으....으응.....아!"
몸이 마구 흔들리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퍽, 퍽 연달아 들리는 타격음과 한영의 울부짖음이 뒤섞인다.
"아!"
마침내 머리를 강하게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사정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한영은 그의 손에 두 번째 정액을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아네도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 넘쳤다.
한영은 그가 사정한 것을 느끼자마자 쓰러졌다. 지쳐서 당장에라도 눕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벌써 뻗는 거야?"
지친 자신과는 달리 조금 탁해지긴 했지만 기운이 넘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라이오넬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영의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매우 즐거운 웃음을 흘리며 한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꼼짝도 할 수 없는 한영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받아들이기만 했다.
라이오넬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웃고서 그의 뺨과 이마 코에 차례차례 키스했다.
"분명히 좋다고 했어. 만족했다는 거지?"
".....아아."
처음 치곤 매우, 한영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오넬은 기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뻗을 것처럼 기운 없는 한영을 눕히곤 그의 가슴 위에 자리 잡았다.
"다행이군."
뭐가? 한영은 이놈이 왜 이러나 싶어 의아한 눈빛을 했다. 공 그의 물건이 자신의 코앞에 닿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 번 더 가능하겠지?"
협박 같은 소리를 하며 라이오넬은 웃었다.
"겨우 1라운드였잖아. 기운 내라고."
달콤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잔인했다. 한번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못 박아두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 앞에 있는 것은 정액과 젤로 하얀 거품이 범벅된 페니스였다. 놀랍게도 그것은 전혀 시들지 않았다.
어느새 발기한 것일까? 그리고 지금 이걸 들이대는 이유는 빨아달라는 것? 한영은 설마 라는 눈으로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대로 반짝이는 푸른 눈을 본 순간 그는 오랜만에 고국의 친근한 언어를 떠올렸다.
씨팔 좆 됐네. 한영은 입술을 콱 깨물었다.
눈을 뜨자마자 엄청난 근육통이 몰려왔다. 도저히 일어날 기운이 없어 멍청하게 침대 위에 누워 있던 한영은 출근을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얼떨떨한 기분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직도 낯선거리의 풍경과 뒤쪽의 얼얼함, 그 두 개가 합쳐져 자신의 인생이 확 달라진 기분이다.
어젯밤, 호텔을 나와 라이오넬이 집 앞까지 데려다 준 뒤 피곤함에 지쳐 쓰러졌다. 밤새도록 거근이 들락거렸던 엉덩이 사이를 생각하며 그는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피로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낄 기력도 없다.
건조하게 어젯밤 정사를 떠올리던 그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서 밖으로 나왔다. 진서는 아직 스코틀랜드에 있어 혼자 식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식사를 다 마친 그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정말 했구나.'
버스정류장 앞에 서자 뒤늦게 깨달음이 찾아왔다.
서른 해 만에 처음으로, 진짜로, 정말 해버렸구나.
그것도 양놈이랑.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느끼고 타인의 손길에 사정하고 뒤가 뚫리고..., 거기까지 생각한 한영은 자신의 머리를 탁 치며 언어생활이 문란해짐을 자각했다.
외국에 나와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특히나 적었던 말수가 더 줄어들어 부작용이 생긴 모양이다.
한영은 머리를 휘휘 돌리며 평상심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업무생각이나 영국에서 다른 할 일은 없나, 살 물건은 없던가, 그는 최대한 건전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회사에 도착해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데스크에 앉아 PC를 부팅했다. 그 사이 같은 한국인 동료가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그는 한영의 얼굴을 보더니 가엾다는 얼굴을 한다.
"한, 얼굴이 피곤해 보이는데요? 어제 잠 못 잤어요?"
"티나요?"
"네. 아직 시차적응이 덜 된 건가?"
회사에선 영어를 쓰는 원칙이 있기에 둘은 한국어로 대화하지 않는다. 호칭도 영어식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개인주의가 심하긴 하지만 같은 지사출신이라서 신경 써주는 동료가 고마워 한영은 최대한 웃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고마워요."
잠시 대화를 나누고 동료가 돌아가자 한영은 의자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억지로 웃었던 볼 근육이 아프다. 게다가 잠을 못자서 그런지 졸리기도 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셔볼까 해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급탕실로 향했다.
한데 지나가는 길에 낯익은 사내가 다가온다.
"Good morning."
라이오넬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상쾌한 얼굴로 다가왔다. 여전히 잘빠진 몸과 멋진 슈트를 입은 모델 같은 남자. 그런 생각을하며 한영 또한 아침인사를 건넸다. 그 후엔 바로 원래 목적지로 들어갔다. 그의 머릿속엔 커피 생각만이 간절했다.
바로 어젯밤 정사를 나눈 남자, 게다가 첫 상대이지만 한영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상대 또한 티를 내면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그에겐 재미였고 자신에겐 경험일 뿐이다.
한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 티백을 탔다. 그런데 예상외로 라이오넬이 바로 뒤따라와 자신의 어깨를 잡아온다.
"이봐."
"네?"
한영은 뜨거운 물에 데일까 봐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푸른 눈의 남자가 보였다. 무슨 일일까? 한영은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커피 드시려고요?"
급한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라이오넬의 얼굴이 구겨진다. 아닌가? 그럼 뭘까? 한영은 궁금함에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굴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더 험악해질 뿐이었다.
"왜 그러세요?"
한영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라이오넬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다. 한영은 그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라이오넬이 물었다.
"몸은 괜찮나?"
"네. 어제 잘 들어가신 모양이네요."
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의 티백을 빼냈다. 티백을 오래두면 맛이 떫어져 그는 약간만 담가두는 편이었다.
"잊지는 않은 모양이군. 조금 전엔 모른 척하기에 난 어젯밤 일이 꿈이었나 했어."
"제가 언제요?"
모른 척이라는 말에 한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라이오넬은 약간 화난 말투로 대꾸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잖아."
"....아닌데."
내가 그랬나. 한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전을 회상했다. 자연스럽게 인사한 기억뿐이다. 무언가 오해한 모양이라고 판단한 그는 곧 자신의 잔을 들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한영은 일을 하려고 자신의 데스크로 돌아갔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허를 찔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한영은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었지만 묻기도 뭐해서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라이오넬이 그의 어깨를 잡아온다.
"혹시 무신경하다는 말 안 들어봤어?"
갑작스러운 물음에 한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이오넬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가끔 들어요. 근데 왜요?"
스스로는 이해 못 하지만 사람들은 한영에게 무심하다느니 성의가 없다느니 등의 말을 하며 몰아붙이곤 했다. 물론 한영은 그 사라들의 말이 맞지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신경은 쓰지 않았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역시나 하는 얼굴이다. 의아한 한영이 왜 묻느냐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휙 뒤돌아 가 버린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한 말만 묻고 가버리다니.
"저 사람이 왜 저러지?"
한영은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지 멀쩡한 그가 그동안 애인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무신경하고 눈치가 없기 때문이다. 한영은 그런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진 못했다. 지금도 사라진 라이오넬보다는 손에 들린 커피의 무게가 더 중요하게 다가온 것이다.
"아, 커피."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커피가 식을 까 봐 재빨리 자리로 돌아갔다.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은 각자의 구역이 파티션으로 나뉘어있다. 라이오넬은 멀찍이 떨어진 한 데스크를 주의 깊게 바라보다 곧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모범사원의 표준처럼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집중하고 있다. 라이오넬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신경에 거슬렸다.
"말도 안 돼."
왜 또 저럴까. 레베카는 자신의 상사를 지그시 노려보며 안경을 치켜 올렸다. 분명 별거 아닌 일이겠지만 그가 자신의 업무를 방치하게 할 순 없기 때문에.
"대체 왜 그러시는데요?"
뭐 때문에 스토커처럼 블라인드 앞에서 죽치고 있는 것일가. 레베카는 그가 몰래 훔쳐보는 것이 무엇인가 확인하고자 옆으로 다가갔다. 곧 라이오넬의 시선 끝에 닿은 사람이 보인다. 새로 파견 온 한국인 서한영이었다.
"설마?"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그새 건드린 거야? 레베카는 지져스를 외치며 자신의 상사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아랫도리가 짐승 같고 본능에는 무척 충실하다지만 벌써 파견 사원을 공략할 줄이야. 재빠르기도 하지, 레베카는 감탄과 경악을 동시에 느끼며 자신의 보스를 째려봤다.
"한이랑 무슨 일 있어요?"
직설적으로 묻자 바로 라이오넬의 표정이 변했다. 벌써 삼 년째 그의 밑에서 일해온 레베카다. 그가 얼마나 단순한 인간인지 아는 것이다. 결재서류에 도장 찍어 달라는 간단한 요구에도 벌써 십 분째 저러고 있다.
레베카는 무시하고 저렇게 벽에만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차라리 적당히 어드바이스를 해준 다음에 업무를 처리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그때 라이오넬이 레베카를 불렀다.
"레베카."
"네."
"당신이라면 어젯밤을 즐긴 상대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심하게 대할 수 있어?"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이죠."
"그게 나라도?"
라이오넬은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덕분에 레베카는 잠시 말을 잃고 얼빠진 얼굴을 하고 말았다. 자신의 상사는 외모와 능력은 출중한 인물이다. 반면에 정말 어린애 같은 구석도 있는 인물이기에 가끔 이런 식으로 레베카를 놀라게 하곤 했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다.
"관심을 끌고 싶은 건가? 일부러 냉정하게 대해서?"
라이오넬은 그런 말을 진지하게 중얼거리며 바싹 붙어 있던 벽에서 떨어졌다. 오전에 한영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부터 계속 이 상태였다.
그는 오른 아침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노리고 있던 상대도 얻었고 어젯밤은 꽤 만족스러웠다. 처음이라고 했지만 상대또한 자신에게 달라붙어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 마지막엔 힘들어서인지 지쳐 보였지만 매너있게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고정적인 상대는 만들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동양인은 마음에 들었다. 순진한 것 같으면서도 대담하고 무심한듯하지만 의외로 열정적인 모순되는 성격이 있다.
"동양인들은 역시 신비한 것 같아. 겉과 속이 다른 오묘한 매력이 있어. 하지만 너무 내외하니 기분이 좋진 않군."
라이오넬은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레베카는 속으로 '퍽이나.'를 외쳤지만 잽싸게 서류를 내밀었다.
"회사에선 티 내지 않는 게 당연하지요."
"역시 그런 거겠지?"
"물론이죠. 어른이니까."
레베카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싱긋 웃었다. 그래야 이 철없는 보스가 서류에 사인할 테니 말이다. 곧 라이오넬은 환하게 웃으며 서류에 사인을 했다. 단순하기는, 레베카는 속으로만 혀를 차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돌아가고 라이오넬은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한영은 삼 개월 후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게이이며 정조관념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은 그가 맘에 든다. 그렇다면 영국에 있을 동안은 제대로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그는 요즘 맘에 드는 상대가 없어 슬슬 섹스에도 질려가고 있던 참이다. 그러던 차에 평소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동양인을 만나 다시 밤 생활에 활기를 찾았다. 아직 창창한 이십 대에 벌써 섹스 리스가 될 순 없지. 라이오넬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언제 다시 두 번째 데이트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오늘 당장은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어제가 처음이었는데 바로 또 데이트를 하자고 하면 한영 쪽에서 오해할지도 모른다. 조금더 시간이 흐른 뒤가 좋지만 그때는 한영이 다른 상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있다. 라이오넬은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에 빠졌다.
물론 한영은 그런 건 까맣게 모른 채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벌써 쌀밥이 그리워진다는 소박한 불만을 가지고 커피를 마시러 급탕실로 들어갈 때였다.
"한, 내일 시간 있어?"
상대가 다른 곳에 시선을 팔기 전에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라이오넬이 급히 물었다. 한영은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며 흠칫 놀랐지만 차분하게 대꾸했다.
"네, 왜요?"
"같이 공연이라도 보지 않겠어? 런던에 왔으면 역시 연극을 봐야지. 뮤지컬 좋아해?"
라이오넬은 가까이 다가오며 묻는다. 연극이라, 한영은 한 번 보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어차피 진서가 돌아오지 않아 심심하던 차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해 수락하자 라이오넬은 빙긋 미소를 짓는다.
"그럼 내일 퇴근 후에."
"네."
"......."
늘 그렇듯이 한영은 단답형으로 대꾸했다. 그것뿐이냐? 라이오넬은 웃음을 유지하면서도 서운함을 드러냈다.
"말이 참 짧군."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요."
".....흠."
변명마저도 짧다. 라이오넬은 조금 전까지 심어져 있던 자신감이 조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며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보고 싶은 작품 있어?"
"아뇨. 그냥 당신이 보고 싶은 걸로 보도록 하죠."
한영은 단호하게 말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덕분에 라이오넬의 웃음은 서서히 사라져 갔고 한영은 그제야 자신이 조금 무성의한 건가 반성을 했다. 아침에도 무신경하다느니 소리를 들어 살짝 미안해진 것이다.
"그쪽엔 문외한이라서 잘 몰라요. 그러니 추천해 주세요."
수습할 자신은 없지만 어쨌든 웃으며 말했다. 최대한 공손하게 말하면 이해해주겠지. 그런 생각으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반응 없이 자신만 내려다보고 있다. 미묘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라이오넬?"
한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혹시 자신이 실수했나 싶어 슬쩍 그의 손을 건드렸다. 라이오넬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왠지 뻣뻣한 태도로 라이오넬이 그곳을 떠났다. 한영은 의아하긴 했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 사이 라이오넬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옆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게 아닌데, 무언가 어긋나는 것 같은 찜찜한 느낌 때문이다. 어쩐지 한영의 반응이 시원찮다. 거절은 하지 않는데 적극적이지도 않고 상관없다는 느낌이 강하다.
"원래 동양 사람들은 좀 내성적이지? 그 때문이겠지?"
"그럼요. 특히 한국인은 적극적이지 못해요."
레베카는 성의없이 대꾸했다. 갑자기 왜 자신의 사무실에 찾아왔나 싶었더니 역시 또 애정 문제였다. 대충 어르고 달래면 되겠지. 안일한 생각을 하며 그녀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달랐다. 레베카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그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다음 날,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한 라이오넬은 곧바로 티켓 사이트에 접속했다. 평이 좋은 것 중에서도 지루하지 않은 연극의 표를 예매했다. 기분 좋게 결제를 끝낸 후에 한영을 호출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를 부팅하다 라이오넬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동그랗게 뜬 눈은 왜 자신을 부르는지 의아해 하는 것 같았다.
"잠깐 내 방으로 와줘."
손짓을 하자 한영은 순순히 라이오넬을 따라왔다.
"무슨 일이세요?"
한영은 문을 닫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라이오넬은 정말 궁금해서 묻는 한영을 보며 잠깐 실망하기도 했지만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약속했잖아, 잊었어?"
"아, 연극이요?"
한영은 금세 떠올렸다. 잊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불렀다곤 생각 안 했어요. 정한 거예요?"
연극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영국에 왔으니 한 번은 보고 싶었다. 흥미를 보이자 라이오넬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함께 뮤지컬의 중심지인 런던 웨스트엔드에 간다는 것은 한영을 약간이나마 설레게 했다.
"어떤 연극이에요? 뮤지컬?"
한영의 질문에 라이오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맘에 들면 좋겠군."
고전을 제외하고 요즘 가장 흥행하고 있는 작품으로 골랐다. 한영은 캐츠 정도나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생소한 제목에 고개를 갸웃했다. 라이오넬이 간략히 내용을 이야기해주자 헤에 소리를 내며 진지하게 듣고 있다. 라이오넬은 중간까지 이야기하다 그만 두었다.
"너무 많이 얘기하면 재미가 반감될 테니 그만하지."
"봤어요?"
"티켓 예매하느라 평을 계속 봤더니 알게 됐어."
"아아."
한영은 뒷내용이 궁금한지 아쉬운 얼굴을 했다. 표정이 거의 없지만 눈빛이나 미세한 변화로 알 수 있었다.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동양인들은 목소리에 톤도 없고 제스처도 거의 없는데다 정적인 느낌을 준다. 한영은 특히 더 했다. 라이오넬은 한영의 의중을 알려고 그의 모습을 주시했다.
"영국 관광은 많이 했나?"
"조금. 출근하기 전 이틀 정도 근처는 둘러봤어요."
활기찬 진서와 승주에게 끌려다니느라 바빴다. 진서는 원래 혈기왕성한데다 승주 또한 활발해 둘이 같이 있다 보니 하루 종일 걷고 돌아다니느라 무척 피곤했었다.
"재밌었어요. 거리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작가인 진서도 어느 곳을 찍어도 그림이 된다며 칭찬을 했다. 거리 풍경을 떠올리자 한영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린다. 출장이지만 반쯤은 여행객이 된 기분이다. 지금도 퇴근길에 동네 주변을 걸어다니며 혼자 시간을 보낸다.
영국은 5월부터 해가 길어져서 밤이 되어야 어두워지기에 요즘은 관광하기 딱 좋은 시기였다. 한영은 무심코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는 라이오넬의 시선과 마주쳤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에 머쓱해진 그는 문으로 다가섰다.
"그럼 퇴근하고 봐요."
한영은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밖으로 향했다.
라이오넬이 고른 뮤지컬은 무척이나 재밌었다.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내용은 알 수 있었고 모르는 부분은 나중에 라이오넬에게 물어서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식사 후 뮤지컬 관람을 하고 그 뒤엔 라이오넬이 안내한 술집으로 향했다. 생각 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한영은 사실 신기했다.
이 사람은 왜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걸까. 사실 딱 한 번의 관계로 끝날 줄 알았던 한영은 진심으로 의문을 가졌다. 자신이 보기에 그는 외모도 출중했지만 능력도 있어보였다. 당연히 저 말고도 상대가 많을 것이라 추측했던 것이다. 처음 봤을 때도 자신에게 호감을 느낄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마시던 잔을 내려놓은 한영은 힐끔 옆을 바라보았다. 라이오넬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노골적인 시선에 한영은 민망해서 뒷목을 긁었다.
"공연 정말 잘 봤어요. 술은 내가 살게요."
"내가 보자고 했는데 뭘."
"미안해서 안 돼요."
그전에도 본의 아니게 얻어먹었던 것이 신경쓰였다. 한영이 고집을 부리자 라이오넬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손을 젓는다.
대화할 때 태도도 여유가 넘치고 무슨 일을 해도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니 역시 이 사람은 능수능란할 거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잠시 동안의 흥미겠지, 한영은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또 다른 상대를 찾기가 어려울 게 분명하니 당분간 그와 지내도 상관없었다. 결심이 든 한영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주시했다.
"라이오넬."
"응?"
"스테디나 애인은 없는 거죠?"
그러나 불륜은 달랐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깨끗한 육체관계를 원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라이오넬은 순간 사레가 들릴 뻔했다.
한영은 가끔 너무 직설적이다.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그는 당황함을 애써 숨기며 대꾸했다.
"물론이지."
남이야 어쨌건 적어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미안할 대상은 없었다. 단호한 대답에 한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뭐가?"
한여잉 안심하자 라이오넬은 혹시 하는 기대로 물었다. 자신에게 애인이 없어서 기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영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긴 싫어요."
"흐음."
쳇, 라이오넬은 작게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한영은 이미 다른 화제로 넘어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외양은 괜찮은 남자였다. 사적으론 두 번 만났지만 신사의 나라에서 자라서 그런지 매너도 좋았다. 게다가 처음인 자신을 쾌락에 빠져들게 할 만큼 테크닉도 좋은데다 물건도 크다. 한영은 슬쩍 밑으로 내려가는 시선을 다잡고 고민했다.
과연 이 남자가 오늘도 나에게 자자고 할까? 물론 자신은 거절할 생각은 없다. 만족스러운 밤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라이오넬."
"음?"
"내가 맘에 들어요?"
아마 이런 말은 영어라서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고국의 언어라면 너무 적나라해서 물어보지도 못할 테니까. 그렇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아채는 건 불가능하다. 한영은 스스로 눈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금 긴장한 채로 라이오넬에게 물었다. 상대는 조금 놀란 눈을 하다가 다시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척."
듣기 좋은 긍정에 한영은 잠시 민망해졌다. 자신이 물어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행이네요."
"당신은?"
하지만 안심하자마자 라이오넬이 되물었다. 한영은 당황해버렸다. 상대가 자신이 맘에 든다고 했으니 비슷하게 대꾸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서둘러 대꾸했다.
"나도 당신이 좋아요."
정확히는 마음에 든다지만 어쨌든 비슷한 뜻이었다. 하지만 원래 무뚝뚝한 성격이라서 말을 꺼내는 것이 조금 창피할 뿐이다. 당황한 탓에 타국의 언어를 너무 단순하게 설명했다는 것이 걸리기도 한다.
한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할 때였다. 옆에 있던 라이오넬은 고백과도 비슷한 그 말에 놀라고 있었다. 좋다, 그에게는 그 말만 유독 크게 들렸다. 게다가 말해놓고 후회하는 한영의 모습은 고백 뒤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착각하기 쉬웠다. 덕분에 라이오넬은 정말 자기 위주로 판단해버리고 말았다.
'역시 한영은 보수적인 나라에서 태어나 소극적인 성격인 게 틀림없어.'
그는 한영이 자신을 좋아하고 매우 큰 관심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무척 흡족해진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이제 나가지."
"에? 왜요?"
한영은 난데없이 자신의 팔을 끌어당기는 라이오넬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혼자 생각에 빠져있느라 놀란 탓이다. 그런 한영의 귀에 라이오넬이 속삭였다.
"여기선 당신에게 키스할 수가 없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여긴 게이바가 아닌 평범한 술집이었다. 한영은 당황했다가 곧 주위를 둘러보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래요. 나가죠."
하지만 너무 급하게 준비하다 테이블에 다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정신없던 와중이라 너무 서둘렀고 황급히 재킷을 챙기다가 그런 것이다. 그런 자신이 창피해졌다. 이건 꼭 자신이 키스하고 싶어서 서두르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얼굴이 붉어졌다.
아픈 허벅지를 문지르며 스타일 구겨진다며 투덜거릴 때였다. 옆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라이오넬이 다른 쪽을 보며 애써 웃음을 참고 있다.
"웃지 말아요."
쪽 팔리게, 한영은 인상을 찡그리며 재킷을 입고 먼저 바깥으로 향했다. 곧 라이오넬도 느긋한 걸음으로 따라온다. 계산을 하고 바깥으로 나온 둘은 라이오넬의 차에 탔다. 그때까지도 상대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영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자신의 한심함을 부끄러워했다.
차가 출발하고 한참 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라이오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괜히 더 민망해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기랄, 작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쉴 때였다. 창을 바라보던 한영의 얼굴에 무언가 닿았다.
잠깐 신호대기로 멈춘 사이 라이오넬이 자신을 건드린 것이다. 왜 그러나 싶어 돌아보자 바로 입술이 닿았다.
짧은 순간 입술이 닿고 혀가 핥으며 지나간다. 곧 입술을 뗀 라이오넬은 아쉬운 웃음을 흘린다.
"이것보다 더 길게 하고 싶은데."
".....운전 중이잖아요."
"바로 그게 아쉽다는 거야."
라이오넬은 다시 똑바로 앉아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들기다 지나가듯 물었다.
"그때 갔던 호텔 괜찮지?"
한영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더니 두 번째는 긴장이 덜했다.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입을 맞추는 라이오넬의 행위에 전보다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상대는 자신의 어설픈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창피할 것도 없는 것이다.
라이오넬은 느리지만 자극적으로 혀를 이용해 키스만으로도 흥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셔츠와 바지 위를 쓸어오는 손길에 한영은 느리게 한숨을 흘렸다. 라이오넬은 그 솔직한 반응이 만족스러웠다. 뻣뻣하게 자신의 목을 껴안으며 붉어진 얼굴을 한 남자가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다.
입술론 한영의 귀를 깨물고 손으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게 신음을 흘리는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온다. 예전 대학시절에 자신의 친구가 한국인 여자와 사귄 적이 있었다. 잠자리에서 무척이나 수동적이고 순진한 여자였다고 했다.
경험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스킨십을 먼저 하지도 않고 할 때도 무척이나 수줍어해서 묘하게 더 끌리더라는 것이다.
한영도 비슷했다. 자신이 리드하는 대로 따라오지만 아직까진 서투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자신의 페니스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정작 오럴을 요구하면 빼는 것이다. 라이오넬은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그의 쇄골선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키스하는 동안 넥타이가 풀리고 셔츠의 단추도 세 개나 풀어졌다. 좁은 틈으로 라이오넬의 손가락이 훑고 지나간다. 맨살에 타인의 손이 닿는 느낌이 오싹했다.
키스만으로도 흐물흐물해진 한영은 무방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움켜잡자 깜짝 놀라 허리를 뒤로 뺐지만 라이오넬은 더욱 강하게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재빠르게 그의 벨트를 풀고 바지와 속옷을 함께 밑으로 내린다. 한영은 당황했다.
"저기, 아.....으응."
옷도 다 벗지 않고 아직 씻기도 전인데 라이오넬이 자신의 것을 움켜쥐자 한영은 흠칫 놀랐다.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문 앞에서 일을 벌이긴 창피했다.
"저, 침대로...."
그러나 라이오넬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손을 놀렸다. 페니스를 쥐고 흔드는 손길이 농염해졌다.
"아......하아."
한영은 벽에 등을 기대로 숨을 몰아쉬었다. 라이오넬의 혀가 어느새 자신의 목을 핥고 있다. 이로 약하게 깨물고 움푹 파인 쇄골 부분을 찌르듯이 자극한다. 엄지손가락이 귀두를 간질이는 감촉도 동시에 치고 올라온다. 그와 닿은 모든 몸이 바싹 긴장한 채로 흥분하고 있다. 입술은 점점 밑으로 내려와 결국 자신의 것을 머금는다.
맨살보다 셔츠를 타고 흐르는 손길이 더 짜릿하다는 것을 느끼며 한영은 고개를 젖혔다. 이미 라이오넬의 뜨거운 혀가 자신의 분신을 감싸듯이 핥고 있었다. 곧 샤워와 침대 생각들이 깡그리 날아갈 정도의 쾌감이 찾아왔다.
어느새 바지가 벗겨졌는기 기억나지 않는다. 사정 후 나른함에 졸음과 비슷한 감각이 찾아온 것이다. 흐릿한 의식으로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다리를 더 벌려."
조금 전 그의 오럴에 흥분했던 기억이 얼핏 스쳤다. 순순히 그의 말대로 다리를 더 벌렸다. 지금 자신은 침대 위에서 셔츠를 반쯤 걸친 채로 앉아있는 그의 앞에 마주 선 자세로 무릎을 꿇고 서 있다. 곧 차가운 느낌이 애널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하아.... 흣!"
두꺼운 성기가 질척한 액체로 적셔진 안을 뱀처럼 휘젓는다. 피스톤질하듯 거칠게 공격하다 때론 감질나도록 느리게 움직였다. 덕분에 한영은 죽을 맛이었다. 저번의 행위 덕분에 한영의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한 라이오넬은 그의 포인트는 건드리지 않고 그 주변만 맴돌며 자극하고 있었다. 한영은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라이.....윽!"
"왜?"
라이오넬은 모르는 척 대꾸했다. 한영은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곳을 만져달라고 하고 싶지만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탓이다.
"거기 말고 조금 더 위....인데."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그는 붙잡고 있던 상대의 어깨를 조금 움켜쥐었다. 물론 라이오넬은 그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는 모른 척 안 들린다는 얼굴을 하며 일부러 더 느리게 안을 긁어냈다. 가늘게 허리를 떨며 신음을 참는 한영을 구경하는 게 즐거웠다. 라이오넬은 입술을 깨물며 원망스레 자신을 보는 그를 보다 이내 웃어버리고 말았다.
소원대로 조금 더 위쪽을 빠르게 긁어내렸다.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린다.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곳만 집중적으로 꾹꾹 누르자 한영은 끙끙거리며 절박하게 자신에게 기댄다.
"괜찮아?"
느긋한 목소리로 묻자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약하게 투덜거리는 것도 같았지만 영어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그는 기운없이 주저앉는 한영의 허리를 잡아 똑바로 눕혔다.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자신의 것을 갖다 대자 그의 표정이 기대 반 두려움 반이 섞인 얼굴이 된다.
라이오넬은 그의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입구에 자신의 것을 대기만 하고 삽입하지 않았다.
"넣어도 돼?"
이 상황에서 무슨 소리일까. 한영은 어이가 없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확답을 원했다.
"당신 입으로 직접 말해줘. 원한다고."
약하게 유두를 꼬집으며 라이오넬은 단호하게 말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조르는 목소리로. 한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미간을 찡그렸다.
".....직접?"
설마 자신의 입으로 넣어달라고 말하길 바라는 건가. 한영은 상상만으로 닭살이 돋을 것 같았다.
"그래."
라이오넬은 즉각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한영은 식은땀을 흘렸다.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자 라이오넬은 조금 흥이 식은 얼굴로 물어온다.
"하고 싶지 않아?"
"......"
"응?"
"......그."
그건 좀 싫은데. 그렇지만 딱 잘라서 거절하기엔 상황이 좀 애매했다. 싫은 게 아니라 창피하고 쑥스러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무척이나 원하고, 또 이미 작정을 한 것 같은 분위기다.
거절하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것 같기도 했다. 끄응, 한영은 어서 빨리 진도를 나가고 싶기도 하고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서 결국 결단을 내렸다.
".....해줘요."
작게 속삭이자 라이오넬은 반응이 없다.
"안 들려."
놀림당하는 기분이다. 사실 그렇긴 하지만 아직 눈치를 못 챈 한영은 다시 조금 더 크게 말했다. 그에겐 꽤 큰 용기를 발휘한 셈이었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더 큰 것을 바랐다.
"더 구체적으로."
쿡, 입구에 그의 것이 닿았다. 애 태우는 동작에 한영은 이제 울상이 되어버렸다. 태어나서 그런 말은 해본 적도 없고 상상만 해도 낯 뜨거운 일이다.
"라이오넬.... 제발. 난 못해요."
나 좀 봐주라, 한숨을 쉬며 부탁조로 말했지만 라이오넬은 오히려 더 졸라 댄다.
"듣고 싶어. 응?"
"......제길."
그는 한국말로 욕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 같아선 발로 차버리고 싶지만 이미 달궈진 몸을 방치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단을 내린 한영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외쳤다.
"넣어줘요."
말이 씨가 된다더니, 진서가 농담으로 했던 말을 진짜 하게 될 줄이야. 억울한 기분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냥 하면 되지 뭐 또 주문까지 하라 그래. 한영은 라이오넬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새빨개진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 귀여웠다.
"분부대로."
라이오넬은 곧바로 한영의 안으로 침입했다. 빠르고 정확하게 안으로 꽂히는 묵직한 성기의 느낌에 한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두꺼운 페니스가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질량감이 엄청났다. 화가 난 것도 잊을 정도였다.
"아.....아아!"
곧바로 세게 박아 왔다 다시 빠르게 빠져나간다. 난폭한 움직임이었다.
"아....라이오넬.... 좀, 윽!"
살살 좀 해라. 한영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다시금 몸에 열기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젖은 내부에 달라붙는 살덩어리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아 내부를 마구 유린한다.
"하앗....아....아으....."
안으로 세게 쑤셔 박힐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팠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푹푹 소리가 나도록 세게 꽂힐 때마다 번개가 치는 것처럼 쾌감이 전신을 강타한다.
그때마다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것을 세게 조였다. 강하게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뜨거운 내부의 움직임에 라이오넬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무방비하고 음탕한 한영의 모습이 좋았다. 라이오넬은 그의 다리를 들어 올리며 더욱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당신은 침대에선 요부 같아."
"....뭐라고요?"
제대로 듣지 못한 한영이 물어왔다. 하지만 라이오넬의 움직임에 다시 교성을 흘렸다.
"아....천천히.... 흐윽!"
거의 다 풀어헤쳐 진 셔츠 한 장만 걸치고 남자에게 꿰뚫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밀려 올라가 배꼽과 복근은 다 드러내고 있는데다 사정의 흔적이 남아 사타구니 위엔 희멀건한 액체가 묻어있다.
작은구멍은 한껏 늘어난 채로 자신의 것을 조이고 있다. 내부를 드나들 때마다 아가미처럼 움찔거리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더 졸라봐. 어떻게 해주길 바라지?"
라이오넬은 한영이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건 다 한다는 걸 파악했다.
"모르겠....아아!"
"내숭떨지 마. 이렇게 음란한 몸을 가졌으면서."
빳빳하게 선 젖꼭지를 비틀자 한영은 날카로운 신음을 흘렸다. 이로 자근자근 씹자 목을 젖히며 울부짖는다. 그 와중에도 라이오넬은 부지런히 한영의 안을 오갔다. 거칠게 침입했다가 다시 느리게 허리를 돌리고 깊숙이 찔러 넣자 자지러지듯 교성을 지른다.
"솔직하게 말해봐, 좋지?"
타락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라이오넬의 말에 한영은 얼굴을 붉히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전에도 이런 말은 한 적이 있었다.
"으응... 좋아."
"더 기분 좋게 만들어줄까?"
"....응."
한영은 마치 아이처럼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자신이 낯설었다. 라이오넬의 두 손이 한영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입구가 더 벌려지며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뿌리까지 완전히 삽입되고 벌려진 다리 사이로 사타구니가 바싹 달라붙었다. 젖은 음모가 살에 비벼져 간지러웠다.
"그러니까 말해. 어떻게 해줄까?"
라이오넬이 다리를 잔뜩 들어 올려 자연스레 허리가 접혀진다. 한영은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앞을....."
"응?"
"앞에도 해줘요."
"정확하게."
라이오넬은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한영은 다시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페니스도 같이 만져줘요."
"뒤만으론 허전해?"
"아.... 으응...."
한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음인지 긍정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이미 흥분해서 젖어있는 성기를 틀어쥐자 움찔거리며 시트를 부여잡는다. 라이오넬은 키득거리며 그의 성기를 세게 잡아 흔든다.
욕심 많은 몸이야. 벌써부터 이러면 나중엔 웬만한 남자로는 성에 안 차겠군."
그만 좀 놀리지. 한영은 죽을 맛이었다. 라이오넬이 이럴 때마다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고 올라온다.
사실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수치심 속에 숨은 쾌감이 커질 뿐이다. 혼자 수음할 때 자신이 품고 있던 욕망과 망상들은 이보다 더 심할 때도 있었다. 실제적인 경험은 없지만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이 금욕과는 거리가 멀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알고 있어?"
".....멀?"
"내가 당신 성기를 자극할 때마다 끊어낼 것처럼 뒤를 조여. 아까보다 훨씬 강하게."
라이오넬이 귓가에 속삭였다. 한영은 반쯤 뜬 눈으로 그를 흘겼지만 라이오넬은 기분 좋게 웃을 뿐이다.
못됐다. 한영은 그 생각을 했지만 곧 한눈팔 틈도 없이 라이오넬의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그의 성기는 빈틈없이 자신의 내부에 연결되어있어 그가 주는 쾌락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위치와 자세만 바뀌었을 뿐 그렇게 몇 번이고 몸을 섞었다. 밤새 행위는 반복됐고 숫자를 헤아리는 것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한영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라이오넬의 도움을 받아 샤워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자 바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누군가 자신을 흔들었다.
"야! 일어나."
분명히 아무도 없던 집안에서 누군가 자신을 깨운다. 한영은 흠칫 놀라 일어났다가 처음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상대를 보고 놀랐고 다음엔 허리에서 격렬하게 치고 올라오는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척추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아윽! ....너 언제 왔어?"
"새벽에. 넌 세상모르고 자더라."
상대는 진서였다.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난 것이 며칠 전인데 벌써 돌아온 모양이다. 그는 상쾌한 얼굴로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자, 먹어."
한영은 순순히 그가 주는 그릇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 멍한 얼굴로 빵을 입에 문다.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오물오물 먹고 있다. 진서는 그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더니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주말이라 출근 안 할 것 같아서 안 깨웠어. 괜찮지?"
"아아. 응."
주말이었던 것도 잊고 있었다. 한영은 샌드위치 한 개를 다 먹은 후에 옆에 걸쳐진 티셔츠를 주워 입었다. 트렁크만 입은 채로 잠들었던 것이다. 진서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싱글벙글한다.
"흐흐."
"여행간 동안 좋았나 봐?"
갑자기 웃음이 헤퍼진 친구를 보며 한영이 물었다. 진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그동안 이태원에서도 이루지 못한 염원을 여기 와서 한큐에 풀었다는 거 아니냐."
"이태원?"
갑자기 웬 이태원 얘기를 하는 걸까. 한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서는 크크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영국제 다크 초콜릿."
한영은 그제야 진서의 염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는 깜짝 놀라 번쩍 눈을 크게 뜨곤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흑인이랑 잤어? 정말?"
"응. 말했잖아. 승주친구랑 갔다고."
"너! 설마 그 친구랑?"
한영이 삿대질을 하며 묻자 진서는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영은 자신도 외국인과 했음에도 진서가 신기하기만 했다.
"승주 친구가 게이였어?"
"아니. 바이라던데."
"진짜 완전 흑인? 혼혈이나 그런 건 아니고?"
까만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입술이 너무 두껍거나 눈이 튀어나온 특징들은 취향이 아니었기에 한영은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혼혈인데 잘 생겼어. 게다가 몸매가 완전."
진서는 헤벌레한 얼굴로 완전 말 근육이라는 칭찬을 했다.
"이름은?"
"션. 영국인이고 대학생이야."
"대학생? 어리네."
대학생이면 기껏해야 스물다섯 정도일 테니 한참 어리다. 한영은 우유를 마시며 능력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진서가 친절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응. 스물하나."
"푸흡!"
만으로 셌을 테니 거기서 두 개를 더 올려도 스물셋, 진서는 자신과 동갑이니 서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영은 입에 있던 우유를 장렬하게 뿜고 말았다. 진서가 잤다는 흑인은 자그마치 일곱 살이나 어렸던 것이다.
"그렇게 어려?"
한영은 황당한 얼굴로 진서를 바라보았다. 진서는 여전히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나 보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진서야 원래 자유분방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한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이 흘린 우유를 닦았다.
그 사이에 진서는 다 먹은 그릇과 컵을 모아서 부엌으로 향했다. 한영이 휴지통에 티슈를 버리는데 진서가 밖에서 물어온다.
"그런데 넌 잘 지냈어?"
"어. 그럭저럭."
"별일 없었고?"
"별일이랄 게 있, 다. 맞다."
한영은 그제야 진서에게 보고할 일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한영은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진서는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되나, 한영은 고민하며 냉장고에 기댔다. 마침 진서는 설거지를 다 마쳤을 때였다.
"진서야."
"응? 왜?"
"나 했어."
"뭘."
"섹스."
한영은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진서가 입을 쩍 벌리며 담배를 빼내더니 한걸음에 다가왔다.
"뭐? 언제? 대체 누구랑?"
"라이오넬 스펜서. 내 상사."
"라이오넬? 전에 말했던?"
금발에 푸른 눈에 키도 크고 외국인치곤 잘생겼다던 남자. 진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보는 그 정도였다. 한영은 더 이상은 말하지 않고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웬일이냐? 설마 네가 꼬셨을리는 없고."
한국에서도 눈치라곤 쥐뿔도 없고 게다가 의욕까지 없어서 서른이 되는 동안 동정을 지킨 한영이었다. 요즘은 우스갯소리로 스물다섯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된다는 유머도 있는데 말이다. 진서의 말에 한영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사람도 게이였어."
"정말? 완전 굿 잡인데?"
진서는 휘파람을 불며 식탁에 앉았다. 그는 축하파티라도 열어야 하나 진지하게 물었지만 한영은 단칼에 거절했다. 아쉬운 푸념을 하던 진서는 담배를 꺼트리며 물었다.
"좋았냐?"
한영은 못들은 척 했다. 하지만 진서가 발로 툭 무릎을 치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걸 보니 창피한 모양이다. 진서는 짓궂게 웃으며 더욱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다.
"어땠어?"
"뭐가?"
"빼지 말고 말해 봐."
"그냥.... 좋았는데."
말재주가 없는 한영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겨우 그것뿐이냐? 진서는 쯧쯧 혀를 차다 갑자기 다른 생각에 손을 튕겼다.
"그럼 내 경험을 얘기해줄까?"
"응? 무슨?"
한영은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가 이내 진서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건지 깨달았다.
"아......"
한영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식탁에 똑바로 앉았다. 어서 이야기하라는 듯 진서를 또랑또랑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진지한 청중의 자세를 보자 진서는 웃음을 터트렸다.
HOLELIC #2
여행을 떠나던 날, 진서는 아침 일찍 아파트 앞에서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와는 면식도 없었고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기 때문에 설레기도 했다. 진서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이런 만남도 즐기는 편이었다. 외국에서 다른 국적과 환경에서 만나는 인연은 특별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승주의 친구도 갑작스럽게 결정한 여행이라 갑자기 일이 진행되어 시간만 통보받아 부랴부랴 여행준비를 해서 나왔다. 잊은건 없나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진서 앞으로 차가 세워졌다.
끽- 소리와 함께 퍼뜩 정신을 차린 진서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진서 앞에 창문이 내려갔다.
"Mr.sin?"
창문이 마저 내려가고 운전사가 보이는 순간, 진서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툭 떨어트릴 뻔했다. 그의 앞에는 자신이 꿈에도 그리던 잘생긴 흑인이 앉아있던 것이다.
"승주 친구 맞죠?"
차에서 내리자 건장한 체구가 제일 먼저 보였다. 건강한 팔뚝을 드러내는 헐렁한 민소매 티셔츠에 카고 바지를 입은 남자는 진서보다 키가 한 뼘은 커 보였다. 게다가 매너 좋게 진서의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브라보! 진서는 이것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되는대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는 차에 타기 전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느님,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를 타고 떠나는 그 순간부터 진서는 기분이 좋았다. 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친절했고 젊은 사람답게 이야기도 잘 통했다. 미국출신인 그는 현재는 대학 때문에 영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어떤 전공?"
"언론학이요. 나중에 보도 쪽에서 일하고 싶어요."
"기자?"
"그것도 괜찮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점 외에는 자신과 취미도 잘 맞았다. 카메라맨이라고 하자 자신도 관심이 많다고 했고 자연스럽게 여자친구를 물었다.
"2개월 전에 헤어졌어요. 당신은?"
나이스! 진서는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승주의 친구 중에선 이반이 많았고 혹시 바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난 게이야. 여자 친구는 없어. 물론 지금은 남자도 없고."
"아하."
커밍아웃에 상대는 별 반응이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의 말은 없었다. 혹시 차별만 안 하지 정말 일반이면 어쩌나 싶어 진서는 고민하다 물었다.
"혹시 불편해?"
"아뇨. 그런 거 상관 안 해요."
"남에게만?"
진서가 날카롭게 묻자 상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반은 동류라는 이야기였다. 혹시 몰라서 챙겨온 콘돔이 쓸모가 있겠구나, 진서는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런던에서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까지는 약 여덟 시간이 걸리기에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저녁때쯤 도착했다. 중간에 경치 좋은 곳에서 진서가 사진을 찍느라 조금 지체된 것이다.
"8월 말에도 또 올까 생각중이에요. 축제가 있거든요."
"축제?"
"네.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각국의 예술가들이 다 모여서 도시 전체가 극장이 되죠."
"아, 들어는 본 것 같아. 그런데 그 시기엔 와본 적이 없네."
직업상 외국에도 나가지만 그 지역의 행사와 겹치기는 힘들었다. 런던에는 촬영차 몇 번 왔지만 스코틀랜드에 온 적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성들과 아름다운 자연풍광에 진서는 내내 감탄을 하며 플래시를 터트렸다.
저녁은 션이 안내한 곳으로 갔는데 처음으로 먹은 양의 내장이 꽤 맛있었다. 들떠있던 그는 저녁을 먹고 나서야 숙소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숙박은 어디서 하지?"
"아, 깜빡하고 말을 안 했는데. 미리 예약해놨어요. 고성을 개조한 유스호스텔이에요."
"고성?"
그 말에 진서의 눈이 다시 반짝거렸다.
"성에서 한 번쯤 자보고 싶었어!"
만세를 부르는 진서를 보며 션은 웃음을 터트렸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활기찬데다 어린 아이 같은 성격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어린애 같아요."
"예술가란 정신은 자라면 안 되는 법이지."
진서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와 함께 예약한 유스호스텔로 향했다. 예상대로 성은 멋졌고 멋진 풍경, 맛있는 식사, 근사한 남자. 모든 게 완벽했다.
숙소에 도착한 그는 짐을 풀다 앤틱 가구들에 또 다시 정신을 홀려서 마구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실컷 직업욕구를 풀고서 진서는 옆에서 옷을 갈아입는 션에게 시선을 돌렸다.
"헤이, 션."
션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옷을 반쯤 걸치고 뒤로 돌았다. 셔터 소리가 들린다. 진서가 씨익 웃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옷을 마저 입기 시작했다.
"찍지 말아요."
"훌륭한 모델인데 왜?"
진서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션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진서의 카메라를 가져갔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는 곧 진서에게로 초점을 맞춘다.
"내가 보기엔 당신도 훌륭한 모델 같은데요?"
"안 돼, 찍지 마."
그대로 복수하는 건가. 진서는 웃으며 상대를 만류했다. 그러나 팔 길이의 차이 때문인지 카메라를 뺏을 수 없었다.
"왜요?"
"찍히는 것보단 찍는 걸 좋아하니까."
션의 물음에 진서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든 건지 션은 이번엔 순순히 카메라를 넘겼다.
"나도 마찬가지에요."
"....쳇."
카메라를 받아든 진서는 혀를 찼다. 어느새 사진이 지워져 있었다. 견갑골이 돋보이는 근육 사진이었는데. 진서는 아쉬워하며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다음 날 진서와 션은 유명한 관광명소들을 가볍게 둘러봤다. 애초의 여행 계획은 이 박 삼일이었다. 저녁에 도착해 느긋하게 쉬고 이틀 동안 관광 뒤 오후에 런던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하루 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은 진서는 의욕이 넘쳤다.
"와아, 정말 좋다."
"그렇죠? 이 풍경이 좋아서 가끔 와요."
션은 일 년에 한 번씩은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온다고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들어보니 진서만큼이나 여행경험이 풍부했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어디였어?"
"다 좋았어요. 어디라고 딱히 뽑기 힘들 만큼."
진서의 물음에 션은 잠시 고민하다 대꾸했다. 그러나 진서는 심심했기 때문에 그 말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곳 없었어?"
"한 군데 있긴 하죠."
"어디?"
"인도."
둘은 심심할 때마다 서로 여행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인도 이야기가 나오자 진서도 대학시절에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나도 좋았어. 정말 고생이긴 했지만 그래도 보람 있었어.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일이 특히 기억에 남아."
"봉사활동으로 간 건가요?"
"응. 대학 다닐 때. 너는?"
"그냥 배낭여행이었어요."
"배낭여행 좋지."
최소한의 짐으로 고생해서 돌아다니는 배낭여행, 진서도 예전엔 자주 즐겼다. 하지만 직업으로 사진을 찍고 나선 경제적인 여유나 기회가 많이 생겨 예전처럼 고생은 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의 생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여행의 매력은 바로 그 낯설음이라고 진서는 생각했다. 일상이 아닌 일탈, 자신의 자리를 떠남으로써 생기는 또 다른 기회. 평소 생활이나 주변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고여 있는 것을 싫어하는 그에겐 가장 즐거운 취미였다.
"난 방랑벽이 있어서 이 직업이 딱 좋은 것 같아."
성격상 틀어박혀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말을 하자 션은 같은 여행자로서 긍정의 미소를 띠었다.
관광을 다 마친 둘은 잠깐 들렸던 위스키 증류소에서 사온 술을 마시기로 했다. 생명의 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위스키, 그 본고장이니만큼 증류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원래는 맥주나 한 잔하려고 했지만 본토에서 마시는 맛도 궁금해졌다.
"작은 걸로 딱 한 병만 먹자."
진서는 내일 또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션을 결국 꼬셨다. 물론 위스키 맛도 궁금했지만 사실 진서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차피 내일 헤어질 상대라면 오늘 밤이 너무 아쉬운 탓이었다.
술을 마시면 분위기도 풀어질 테고 상대가 바이라면 이야기는 쉬웠다.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고 그 이상의 진도로 넘어가게 되겠지. 진서는 속으로만 킬킬 웃으며 잔에 술을 따랐다.
시커먼 속도 모르고 션은 주는 대로 잘 받아먹었다. 젊어서 그런지 마시는 속도도 빨랐다. 둘은 여행에서 느낀 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션이 궁금했던 점이라며 물어왔다.
"그런데 왜 룸메이트와 안 왔어요?"
"아, 룸메이트는 회사원이거든. 그래서 주말 외엔 불가능 해."
"어떤 일?"
"연구원이야."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진서도 잘 모른다. 그저 기업 소속의 연구원이고 영국 지사엔 연수 비슷한 걸 왔다고만 들었다.
"실무보다는 타국에 있는 지사의 회사 실정을 파악해서 국내에서 활용하게끔 배우는 입장이라던데, 잘은 몰라."
서로 하는 일이 많이 다르고 진서는 기업의 일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둘은 일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자세한 건 안 물어봤네. 영국엔 여행으로만 온 건가요?"
"아니, 룸메이트가 출장 와서 따라 온 거야."
"출장까지 따라올 정도면 룸메이트가 혹시 애인이에요?"
"엑? 아냐."
한영과 그런 사이라는 오해를 받자 진서는 인상을 찡그렸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한영과의 공통점은 게이라는 것뿐, 그 외엔 너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진서에게 한영은 공부벌레에 무신경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급우일 뿐이었다. 그때 사귀던 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것만 걸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대로 졸업하고 길거리에서 만나도 모른 척했을 아무것도 아닌 사이. 평범의 극치를 달리는 저 범생이가 헛소문이라도 내면 어떡하나 싶어 진서는 무척 겁을 먹었었다.
그러나 한영은 입을 함부로 놀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비밀로 해주기로 약속했고 피임이나 잘하라는 당부를 했을 뿐이다.
그는 너무 무신경해서 남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무정하진 않아서 진서의 애정상담도 들어주었고 나중엔 자신도 게이임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때의 기억이 나자 진서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게이야.'
평소와는 다르게 우울한 얼굴과 목소리,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고백을 하던 한영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석처럼 사는 한영의 유일한 의외성은 성벽이었다.
그런 한영을 진서는 무척 좋아했다. 대학 시절에 집에서 게이인 것을 들켜 쫓겨났을 때도 한영은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을 받아주었다. 진서는 미안해서 거절했지만 상대는 만나던 남자 집을 연연하며 살아도 돌아올 곳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며 짐을 맡아주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눌러 살게 됐다.
지금은 돈을 벌지만 그때는 학비를 스스로 버느라 꽤 가난했는데 식비조차 보탤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한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룸메와는 그냥 친구야."
"그쪽은 스트레이트?"
"아니 나랑 같은 부류."
"그럼 편하겠군요."
"응. 그리고 한영이랑은 순수하게 친구로 지내고 싶어."
너무 좋아하는 친구라서인지 특이하게도 연애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아마 관계를 깨고 싶지 않은 두려움일지도. 진서는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다. 여태껏 수많은 남자를 만나 왔지만 오래간 상대도 없거니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면 우정에 손상이 가는 일도 흔하기 때문이다.
"남자들끼린 그렇잖아? 욕구에 솔직하니 관계가 너무 빠르게 진전이 돼. 마음보다 몸이 먼저 가니 늘 문제가 생긴단 말이야. 그래서 정말 친구가 되고 싶다면 손대고 싶지 않아지더라고."
"정말 좋아하나보네요."
"응."
진서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지만 정말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는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서에게 한영의 존재는 정말 소중한 것이다.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나한테도 손대지 않을 건가요?"
"어?"
"정말 친구가 되고 싶다면 손대기 싫다면서요."
션이 장난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물었다. 진서는 처음에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 뜻을 알아차렸다.
"물론이지. 여행에서 만난 좋은 친구잖아?"
말하면서도 진서는 약간 후회가 들었다. 제기랄, 텄구나. 머릿속에서 커다란 다크 초콜릿이 날아간다. 하지만 정말로 션이 마음에 들었기에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렇게 궁한 것도 아니고 우연히 만났지만 이 젊은 흑인은 꽤 좋은 사람 같았다. 아깝지만 좋은 친구 사귀었다고 생각하자. 영국에 있는 동안 잘 지낸다면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길 때였다.
갑자기 소파가 푹 꺼지며 무게가 자신 쪽으로 기우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니 션이 바싹 다가와 있었다.
"그럼 내가 손대는 건요?"
".....어?"
"난 당신이 마음에 드는데?"
새까만 손가락이 자신의 뺨을 쓸었다. 굵직한 아이라인이나 시웒게 뻗은 콧날, 적당히 굵어 섹시해 보이는 입술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진서는 당황스러움을 느꼈지만 딱히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지금 나 간 보냐?"
건방진 검둥이, 어디서 감히 한참 위의 형님에게 장난질을. 진서는 자신도 모르게 한국어로 말해버렸기 때문에 션은 알아듣지 못했다.
"What?"
".....한국말로 좋다는 소리야."
무슨 소리냐는 얼굴의 상대에게 진서는 빙긋 웃으며 거짓말을 했다. 어쨌든 잘 먹겠습니다, 를 외치면서."
어쩐지, 이 박 삼일동안 놀러간 애가 나흘이나 안 오더라. 한영은 그제야 여행이 왜 늦어졌는지 깨달았다. 진서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도.
"실제로 하니 좋았어?"
"젊은 애라 역시 다르더라. 안으로 냅다 박을 때마다 내장이 쓸리는 기분이었어. 어찌나 힘이 좋은지...... 게다가 크기가."
진서는 아련한 눈길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았나 보다. 한영은 약간 부러움을 느꼈다. 눈치 빠른 진서는 그것을 알아채고 곧바로 능글거리며 한영의 옆구리를 찔러온다.
"왜? 너도 백마 타봤다며. 아무튼 우리 한영이 드디어 동정 뗐구나. 축하한다."
"됐어. 안 기뻐."
한영은 자신에게 달라붙는 진서를 떼어내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가뜪이나 서른이나 돼서 그동안 경험이 없었다는 것도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는데 축하 받아봤자 창피할 뿐이다.
한영은 남들이 보면 화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차갑게 돌아섰지만 진서는 저것이 부끄러워하는 걸 알고 있기에 웃기만 했다.
"근데 한영아. 이따 뭐할 거냐?"
"이따? 예정 없는데?"
주말이니 편히 집에서 쉬거나 아니면 근처 구경이나 나갈 예정이었다. 이를 닦던 한영은 안에 있는 거품을 뱉어내며 대답했다. 진서는 마침 잘 됐다는 얼굴을 한다.
"주말인데 나가지 않을래? 마침 션이랑 약속 있는데."
"응?"
조금 전까지 지겹도록 들었던 이름에 한영은 고개를 퍼뜩 일으켰다. 션이라면 진서가 지금 만나는 흑인 남자였다. 한국에서도 흑인이야 본적이 있고 회사에도 있다. 하지만 은근히 궁금하긴 했다.
"그래. 헌데 내가 나가도 되나?"
"어차피 승주도 나오니까 상관없어. 편하게 술 마시면 돼."
진서의 설명에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집에서 좀 쉬다가 주말이라 근처에서 Car boot가 열렸다며 나가자고 제안하는 진서 때문에 외출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일종의 벼룩시장으로 공원에서 주말마다 열리는데 자동차 트렁크에 중고물건을 가득 싣고 와서 파는 것이다.
간편한 캐주얼 차림으로 나선 한영은 머리감기가 귀찮아서 모자를 눌러썼다. 반소매 폴로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느릿느릿 거리를 걸었다. 진서도 비슷한 차림이었다.
"아! 저거 맛있겠다."
"뭐?"
"아이스크림."
진서가 가리킨 것은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콘에 넘치도록 담아주는 커다란 꽃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진서는 어느새 달려가서 두 개를 사왔다. 한영은 그것을 든 채 한동안 그 크기에 놀랐다. 살짝 혀를 내밀어 맛을 보니 달콤하고 맛있긴 했다. 둘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이미 벼룩시장은 활발하게 열리고 있었다. 진서는 열심히 구경을 했고 한영은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다니며 힐끗거리기만 했다. 그는 중고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필요한 물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졸려서다.
약간 더운데다 늦잠을 잔 덕인지 나른했다.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하는데 셔터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진서가 다지털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한영은 또냐 라는 얼굴로 진서의 어깨를 주먹으로 약하게 쳤다.
"찍지 말랬지?"
"뭐 어때."
진서는 뻔뻔하게 대꾸하며 사진기를 넣었다. 진서는 스냅 사진을 좋아했고 한영은 번번이 방심해서 추한 사진을 찍힌다. 집에는 진서가 만든 굴욕 사진집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여간 하지 말라는 건 꼭 한다니까."
한영은 투덜거리며 진서의 뒤를 따라 걸었다. 잡다한 생활용품들이 널린 그 곳은 사람이 참 많았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에 한영은 새삼 한국의 풍경이 떠올랐다. 서울은 외국인들이 신기해할 정도로 단일민족이 많은 도시였다.
그러나 오래 생각에 잠기진 못했다. 진서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길 쑤시고 다녔다. 결국 한영은 그를 포기하고 벤치에서 쉬기로 했다.
"나 잠깐 쉬고 있을게. 구경하고 와."
"오케이."
진서는 아예 마음 놓고 구경을 하러 갔다. 혈기왕성한 모습에 한영은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혀 변한 게 없는 그가 신기하기만 하다. 한영은 더워서 모자를 벗고 머리를 빗어 넘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마침 눈에 들어온 건 한 남자였다. 키가 큰 백인으로 머리가 은색으로 빛났다. 순간 한영은 익숙한 상대를 떠올렸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라이오넬은 아니었다. 머쓱한 그는 외국인은 역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볼을 긁었다.
그제야 실감이 들었다. 오늘 진서가 갑자기 돌아와 잊고 있었지만 어느새 벌써 두 번이나 그와 잤다. 그 사실을 상기하니 무언가 오묘한 느낌이었다. 애인은 아니고 단순히 직장 상사지만 왠지 익숙해졌다고 해야하나. 몇 번이고 몸을 섞는 동안 정이라도 든 것일까? 왠지 비슷한 느낌의 사람을 보자 친근감을 느낀 것이다.
".....희한하네."
이런 감정은 여태껏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낯설고 신기했다. 한영은 뒷목을 긁으며 벤치에 등을 편히 기댔다. 아마 진서의 쇼핑은 오래 걸릴 것이다.
태양빛이 강해 그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조금 눈이나 붙일까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팔짱을 낄 때였다.
"왁!"
갑자기 어깨가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며 곧 무언가에 갇혔다. 한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어둡다는 것이었다. 눈앞이 시커먼 것으로 뒤덮여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보니 어떤 흑인이 자신을 앞에서 껴안고 있었다.
가뜩이나 어두운 피부 톤에 검은 옷까지 입고 있으니 착각할 수밖에, 한영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는 그제야 자신이 찾던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한영을 놓아주었다.
"아, 실례. 제 친군 줄 알았습니다."
흑인치고는 제법 잘생긴 청년이었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그는 체격이 굉장히 좋았다. 마치 농구선수처럼 키가 크고 말랐지만 골격 자체는 굵다.
"제 친구도 같은 모자를 가지고 있거든요. 게다가 동양인이라 착각한 모양입니다."
모자는 흔한 양키즈 모자였다. 이걸 가진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닐 텐데. 한영은 처음엔 놀랐지만 상대가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한영은 일어나며 모자를 조금 추어올렸다. 하지만 삼 초도 안 되어 격악하고 말았다. 마주 보고 서자 차이가 엄청났던 것이다. 앞에 선 남자는 키도 컸지만 막상 나란히 서니 몸의 크기가 너무 달랐다. 과연 외국인이다. 한영은 감탄하듯 그를 바라봤다.
소매 밑으로 드러난 팔뚝은 특히 대단했다. 탄력있는 근육질의 피부는 정말 새까맣고 건강해 보인다. 와아, 한영은 슬쩍 보고 속으로 감탄을 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왠지 남자로서 믿음직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디 가서 기죽을 일은 없겠다. 그때였다.
"어? 이게 누구야? 션!"
갑자기 진서가 한 아름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언제 샀는지 못보던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다. 션? 한영은 그제야 진서가 자기대신 제 옆에 있는 상대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웬일이야? 너도 여기 물건 사러 나왔어?"
"응. 어차피 약속도 있어서 조금 일찍 나와 봤지."
"잘됐네! 안 그래도 우리 둘이 놀기도 심심하던 차였는데. 승주 오기 전까지 차나 한 잔 하자."
둘은 곧 한영을 가운데 놓고 자기들끼리 어디로 갈지 정하기 시작했다.
션 그레이. 나이는 스물 하나. 뉴욕 출신의 청년으로 언론을 공부하는 대학생. 여행이 취미라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진서의 친구이자 섹스파트너. 스코틀랜드에서 3박4일 동안 뒹굴었다던 진서의 자랑이 생각나 한영은 왜닞 그를 제대로 보기가 쑥스러웠다.
경험이라면 나름대로 백전노장인 신진서 입에서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능력이 얼마나 걸출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상대는 자신의 건너편에서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국은 차가 유명하잖아. 그래서 한 번쯤 이런 것도 경험해보고 싶었어. 호화스런 티타임."
진서는 자신의 앞에 있는 과자의 탑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자 션이 티타임의 유래를 설명했다.
"원래는 귀족들의 취미지만 점점 미들 클래스에도 확대되서 보편화 됐지. 사실 귀족들이야 밤새 놀고 정오쯤 일어나 브런치를 즐겼을 테니 이 시간에 출출했을 거야."
그들은 차와 케이크가 유명한 카페에 앉아 에프터 눈 티를 즐겼다. 어느 백작부인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오후 세시만 되면 친구들과 차와 과자를 마시던 것이 시초가 되었다는데 한영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샌드위치에 더 관심이 갔다. 늦게 일어나서 샌드위치 한 조각과 시리얼만 먹었더니 배가 고팠던 것이다.
한영은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한 귀로 흘리며 열심히 주워 먹었다. 그런 한영을 보며 션은 웃음을 흘렸다.
"맛있어요?"
"네. 그런데 이건 간식이 아니라 밥인데요. 배부르네요."
샌드위치, 케이크, 스콘, 쿠키와 초콜릿 등이 너무 다양한데다 차를 같이 마시니 배가 부르다. 손으로 입을 닦자 션은 냅킨을 건넸다.
"영국 사람들은 차 마시는 걸 좋아해서 하루에 약 다섯 잔을 먹어요. 그리고 시간에 따라 다 이름이 따로 있죠."
"에프터 눈이랑 블랙퍼스트는 아는데 다른 것도 있어?"
진서가 무슨 차에 이름이 다 다르냐며 귀찮다는 얼굴을 했다. 한영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션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더니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얼리 티라고 아침에 잠자리에서 마시는 차는 남편이 부인에게 만들어줘요. 이건 애정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하죠. 그리고 일레븐 티는 오전 열한 시경에 마시는 가장 가벼운 티타임이고, 미드데이티라고 해서 점심 이후에 기분 좋게 마시는 차가 있어요. 하이티는 저녁부터 밤까지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기고 에프터 디너티는 저녁식사 후에 주로 초콜릿과, 나이트 티는 잠자리 전에 마시는 거죠. 물론 차 종류도 다 다르고."
"카페인 엄청 나겠는데. 불면증 안 걸려?"
진서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에 션은 웃음을 터트렸다. 한영도 피식 따라 웃었다. 사실 자신도 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른 거지. 모든 영국인이 설마 차 중독이겠어?"
"하긴 나도 한국인인데 김치를 좋아하진 않으니까."
대화는 곧 문화적인 상대성으로 흘렀다. 진서와 션은 마치 예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서의 사교성에 새삼 감탄했다. 그러나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잠시 후에 션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러나 싶어 한영은 자신도 똑같이 상대를 바라봤다.
"원래 말이 없나 봐요?"
"네."
사실이었다. 한영은 별다른 말없이 긍정했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어디에서도 말을 길게 한 적은 없다. 그게 허무했는지 션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듣던 대로네요."
"네?"
"진서에게 듣던 이미지랑 똑같아요."
".....아, 예."
진서가 자신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어차피 주위에선 다들 재미없고 무신경하다란 소리밖에 안하기에 한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이기에 새삼스럽게 상처받거나 반성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예전엔 고쳐볼까 노력했지만 그게 의식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라 한영은 아예 포기해버렸다. 게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진서도 그 점에 불만이 없다면 자신은 더욱 상관없었다.
"그치? 한영이 귀엽지 않아?"
"그러네요."
그러나 나이가 일곱 살이나 어린 상대에게 귀여움을 인정받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한영은 슬쩍 진서를 흘기곤 마음대로 하라며 차를 홀짝였다. 션은 그런 한영을 보더니 곧 뜻 모를 미소를 짓다가 진서에게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두 분 다 참 어려보여요. 동양인들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더라고요."
"그건 우리가 할 말인데. 외국인들은 너무 조숙하단 말이야. 그런데 또 나이가 들면 젊어 보이고. 헷갈려."
진서의 말을 들으며 한영은 픽 웃음을 흘렸다. 결국 외국인은 겉늙어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상대도 그걸 알아들었는지 웃으며 정말이냐고 묻는다. 물론 진서는 곧바로 긍정해버렸다.
에프터 눈 티를 다 마시자 셋은 자리를 옮겨 원래 약속장소인 술집으로 향했다. 승주의 단골 pub으로 맥주가 맛있다고 한다. 전에도 와봤지만 일어나서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 여전히 신기했고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느 나라든 술집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계산을 먼저 하고 먹는 것은 다르지만 가장 대중적인 음식은 안주가 된다는 점은 비슷하다.
"영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뭐죠?"
"당연히 피쉬 앤 칩스."
션의 대답에 한영은 역시나를 외치며 안을 구경했다. 이곳의 펍들은 거의 주택과 비슷하고 오래된 것처럼 꾸며져 있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창이 작고 밀폐된 분위기가 있었다.
"그나저나 여긴 왜 이렇게 창이 작아? 답답하게."
"술 마시는 모습을 보이는 걸 꺼리기 때문이야. 빅토리아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지."
진서가 궁금한 걸 물어보면 션은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타국의 역사에 조예가 깊다는 생각에 한영은 은근히 감탄을 했다. 전공이 역사였는지 헷갈릴 정도다.
여태껏 영국에 와서 만난 외국인은 직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라이오넬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그나마 제대로 인연이 닿은 것도 라이오넬뿐, 그와는 두 번의 데이트뿐이었지만 지금처럼 편안하진 않았다.
라이오넬이 데려가는 곳은 대부분 고급스러운 바, 레스토랑, 호텔이었다. 연극을 봤던 곳도 소극장이 아닌 시어터였고 좋은 좌석이었기 때문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선을 나누자면 라이오넬과는 정장을 입어야 하는 곳으로 갔고 지금은 무척 편안한 차림과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션의 해박한 지식은 정말 국적이 다른 친구를 사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진서도 이런 면에 끌린 것일까? 한영은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그러자 션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린다. 한영은 찔끔해서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들켰다.
"왜요?"
"....아니 그냥, 참 해박하신 것 같아서요."
"하하, 하지만 다 믿진 마세요. 혹시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간혹 헷갈리기도 하거든요."
션은 능청스럽게 말하며 웃었다. 스스럼없이 구는 태도에 한영은 자신도 따라서 조금 웃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다들 나 없이도 재미있나 보네?"
"승주 왔구나. 어서 와."
때마침 승주가 도착했다. 진서와 손을 가볍게 부딪치며 인사를 한 그녀는 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승주는 전화통화만 했지 직접 본 것은 한 달 만이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녀는 웨이터에게 자신의 술을 계산하고서 진서와 션에게 물었다.
"둘이 여행은 잘 다녀왔고?"
"그럼. 네 덕분에 좋은 경험했어."
"다행이네. 둘이 잘 맞을 것 같았어. 취미가 같잖아."
진서의 말을 승주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반면에 한영은 좋은 경험이란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을 했다.
승주가 오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인생경험이 풍부한 세 사람이 뭉치자 각각의 여행경험이나 영국과 한국의 차이 등등 화젯거리가 넘쳐나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결국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즐거운 분위기에 흠뻑 젖다 보니 예상외의 과음을 한 한영은 슬슬 피곤함을 느꼈다.
"미안한데 난 먼저 들어가 볼게. 졸려서."
한영은 반쯤 감기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더 놀다가."
"그래. 더 놀자."
승주와 진서가 만류했지만 한영은 정말 졸렸다. 미안하다고 하고 먼저 나왔다.
"한!"
밖으로 나와 어떻게 갈까 고민할 때였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션이 따라오고 있다.
"데려다 줄게요. 길 잘 모르죠?"
"아.... 고마워요."
안 그래도 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한영은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조금 전까지 술을 마시던 사람이 왜 밖으로 나온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나온 거예요? 나 때문이에요?"
"아, 모레까지 제출할 리포트가 있어서 나왔어요. 아무래도 과음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렇구나."
자신 때문은 아니니 한영은 한시름 놓고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동안 침묵만 흘렀다. 한영은 말수가 원래 적었고 션 또한 용건없이 떠드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게 오 분 정도가 흘렀다. 한영이 어서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작게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였다.
흑인들은 목소리가 깊은 울림이 있다. 타고난 악기라는 말처럼 그도 무척이나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부러워요."
"네?"
"목소리 정말 좋네요."
자신은 음치수준인데 상대는 가수 뺨치는 실력을 갖고 있다. 별생각 없이 칭찬을 하자 션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난 정말 노래 못 부르거든요. 그렇다고 다른 걸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가수 아니면 잘해서 뭐해요. 그냥 즐기면 되는 거지. 듣는 건 좋아해요?"
"그것도 별로. 사실 즐기는 게 없어요."
진서와는 달리 자신은 예술적인 감각이 꽝이었다. 사실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딱히 재능 있는 게 없었다.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 그리고 제일 슬픈 사실은 취미가 없는 것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냥 킬링 타임용이고. 영화 보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기회가 생기면 보는 정도죠. ....재미없는 인생이에요."
딱히 불만은 없지만 가끔은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오늘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땐 특히 더 했다. 아마 평소라면 이런 이야긴 하지 않았을 테지만 술을 마셨더니 조금 기분이 풀어졌는지 술술 나온다. 션은 담담히 말하는 한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능력 있다면서요? 일도 잘하고, 대기업에 다닌다던데.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건 직업이고, 일이니까요. 남의 돈 버는 게 쉽나요."
한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쓰게 웃었다. 하지만 상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건 멋진 거예요."
".....고마워요."
어떻게 보면 뻔한 소리지만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된다. 한영은 머쓱하게 웃었다. 션은 그런 한영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웃으니까 보기 좋네요. 사실 계속 무표정해서 처음엔 화가 났나 했어요."
"아아.... 내가 좀 무뚝뚝해요."
눈치도 없고, 비위도 못 맞추고, 출세하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한영은 진서가 예전에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새삼 인정했다. 확실히 맞는 말이니까. 그러나 션은 다른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처음부터 실수했잖아요. 그래서 찍힌 건가 했는데, 신경 쓰는 거 아니죠?"
"실수?"
한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첫 만남에서 그가 자신을 친구로 착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아 그거, 이미 잊었어요. 걱정 말아요."
남자끼리 좀 껴안았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게이들끼리라도 그 정도쯤은 상관없었다. 한영은 흔쾌히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때쯤엔 슬슬 익숙한 거리풍경이 보였다. 집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여기까지 데려다 주면 돼요. 이 길부터는 아니까."
"다행이군요. 조심해서 들어가고 잘 자요."
"네, 잘 가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한영은 손을 흔들고 곧 자신의 아파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네?"
뭐 잊은 거라도 있나 싶어 돌아보자 션이 어느새 자신 쪽으로 다가와 있다.
"왜요?"
"다음에 또 봐요. 꼭."
"예. 안녕히 가세요."
"꼭이에요. 내가 재밌는 곳에 데려가 줄게요."
"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겠지. 한영은 별생각 없이 수락했다.
한영은 주말을 바다사자처럼 종일 누워서 보냈다. 식사는 간단한 파스타나 빵으로 대충 때우고 TV만 봤더니 한국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지만 김치찌개와 쌀밥이 그리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나니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귀찮았다.
한영은 출근하자마자 하품을 하며 커피를 마셨다. 습관적으로 차를 마시는 영국인들 덕분에 급탕실 시설은 정말 잘 되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코가 간지러웠다. 아무도 없기에 한영은 입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했다.
"Bless you"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영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라이오넬이 서 있었다. 한영은 조금 민망한 얼굴을 하며 코밑을 닦았다.
"좋은 아침."
"감기라도 걸린 거야?"
"아니에요. 그냥 터져 나온 거예요."
기침 한 번에 감기는 무슨. 한영은 매일 아침마다 먹는 엷게 탄 원두커피를 손에 들고 대꾸했다. 이젠 라이오넬을 급탕실에서 만나는 것이 익숙해진 기분이다. 한영은 멀뚱멀뚱 서 잇기도 뭐해서 늘 그렇듯이 라이오넬에게도 음료를 권했다.
"커피 드실래요?"
"아니. 괜찮아."
출근 전에 마셨다며 라이오넬이 거절했다.
"주말동안 잘 지냈어?"
"네."
"여전히 대답은 짧군."
라이오넬은 한영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아쉽다는 얼굴을 했다. 할 말이 없는 걸 어쩌라고. 한영은 웃으며 생각했다.
서른 해 동아 발전 안 된 말재주를 그 한 사람 때문에 고칠 순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만큼 적당히 맞장구칠 순 있지만 그것도 썩 잘하진 못했다.
"당신도 잘 지냈어요?"
"으음, 귀찮은 파티에 불려가긴 했지만 그럭저럭."
파티라, 자신과는 별 인연이 없는 단어였다. 한영은 그러려니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은 편히 쉬어야 하는데."
"맞아. 그러니까 다음에 같이 쉬도록 하지. 레이크 어때?"
"....아.....네."
거긴 또 어디일까. 근처 호숫가인가? 영국 사람들은 참 친절하기도 하지.
레이크 디스트릭트, 잉글랜드의 북서부에 있는 호수 지방으로 자연경광이 빼어난 곳의 줄임말이다. 그것을 모르는 한영은 서울의 석촌 호수쯤으로 생각하곤 쉽게 허락을 했다.
"그곳은 굉장히 아름다워. 혹시 영화에서 봤을 수도 있겠군."
"영화요?"
영국 배경의 영화가 한두 개인가. 기껏해야 노팅힐이나 런던거리밖에 모르는 한영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라이오넬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물었다.
"미스 포터, 안 봤나?"
미스 포터라는 영화는 금시초문이었다. 원래도 예술작품이랑 거리가 먼 한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해리 포터는 아는데, 그 시리즈인가요?"
해리 포터의 엄마라도 되는 건가. 한영은 정말 궁금해서 물었고 덕분에 라이오넬이 드물게 당황해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한영은 자신이 바보 취급당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건 사실이었다.
검색해본 결과 피터 래빗은 잡화에 많이 그려져 있는 익숙한 캐릭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자신을 우주인처럼 보는 건가 했더니. 한영은 자신의 무식함이 조금 창피했다. 게다가 레이크도 근처 호수가 아니었다.
"....아는 게 없구나."
자신이 영국에 대해서 파악하는 건 지도상의 위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영은 그래도 이왕 온 김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 좋을 거란 생각을 했다. 기차로 세 시간 정도면 그리 멀지도 않았다. 금요일 밤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사진을 보니 정말 좋은 곳인 것 같았다.
한영은 마침 보고할 일이 있어 라이오넬의 사무실에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했다.
"제의 고마워요. 알아보니 참 좋은 곳이더군요."
"....갈 거지?"
아까의 기막힌 사건 때문인지 라이오넬은 조금 불신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한영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번쯤이라면 나쁘지 않다. 조금 긴 데이트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여태 여행이라곤 진서와 짧게 떠난 국내여행이 전부지만 같이 있기에 그리 부담스러운 상대는 아니니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진 보니 참 예쁘던데요."
아름다운 호수와 주변 환경을 보니 피로가 다 씻길 것 같은 느낌이다. 라이오넬과 가지 못하면 진서와 다녀오고 싶을 정도였다. 한영은 파일을 건네받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진심이었다. 라이오넬은 한영의 흔쾌한 대답에 조금 마음이 풀렸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다 입을 열었다.
"이번 주말 어때?"
"....상관없어요."
어차피 약속이 없어 한영은 수락하기로 했다. 볼일도 끝났고 이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인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라이오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네?"
한영은 무엇이 더 남았나 싶어 돌리려던 몸을 멈췄다. 라이오넬이 성큼 자신의 앞으로 걸어왔다. 한영은 갑작스러운 동작에 움찔했지만 라이오넬은 블라인드를 치고 문을 조용히 잠갔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가만히 기다렸다.
보통 중요한 일이나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는 블라인드를 내리곤 했다. 업무이야기든 아니든 할 말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한영은 라이오넬이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그러나 용건은 대화가 아니었다.
라이오넬의 긴 팔이 한영의 얼굴에 닿았다. 빠른 속도로 다가온 입술은 거부할 틈도 없이 달라붙는다.
"아......"
강하게 빨아들이는 입술, 질척하게 내부를 휘젓는 물컹하고 뾰족한 혀의 촉감이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회사에서 스킨십이라니, 한영은 놀라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라이오넬의 손이 단단하게 허리를 붙잡고 있어 불가능했다.
"여긴.... 회사잖아요."
한영은 자신의 뺨을 핥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는 웃기만 할 뿐이다. 귓가를 만지작거리는 손은 농염하게 목을 타고 내려온다.
겨우 얇은 유리벽 하나로 가려진 곳이다. 문을 잠그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게 낯설고 무서웠다. 한영은 라이오넬이 어서 떨어져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한영의 등을 쓸어내리며 몸을 더 밀착시켜온다. 게다가 그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고 다시 키스가 시작된다.
키스한 것은 그가 처음이지만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꿀꺽, 목으로 침을 삼키며 한영은 점점 더 곤란해졌다. 그가 다가오면 거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라이오넬은 그제야 한영을 놔주었다.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한영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열이 내리면 같이 식사하러 가지. 마침 점심시간이군."
열? 한영은 고개를 갸웃했고 라이오넬은 그의 뺨을 두들겼다. 유독 손가락이 차갑게 느껴진다.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개."
"......"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한영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류를 부채처럼 부치며 열을 식혔다.
몇 번이나 느낀 거지만 참 손이 빠른 남자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그의 행동력엔 혀를 내둘렀지만 한영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의 차를 탔을 때만 해도 그저 식사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자신이 정말 백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하."
한영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가슴에 파묻은 남자의 머리카락을 약하게 틀어쥐었다. 백금발을 띠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땀 때문에 끝이 젖어 평소의 단정함과는 달리 흐트러져 있다.
라이오넬의 혀가 한영의 유두를 혀로 굴리며 장난을 친다. 한영은 최대한 신음을 참으려 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이 세게 깨물어오자 날카로운 교성을 지르고 만다.
"아!"
돌기가 잘근잘근 깨물릴 때마다 저릿한 쾌감이 퍼졌다. 음탕하게 움직이는 혀가 가슴골을 핥아 올린다. 한영은 헐떡이며 그의 목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곧 라이오넬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파란빛이다.
"한."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한영은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러나 다음 말은 없다. 라이오넬은 몸을 움직여 한영의 뺨에 입을 맞춰온다. 조금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들어오고 다시 키스가 시작됐다.
"하아....으응."
부드러운 키스와 달리 라이오넬의 손은 한영의 유두를 짓이겼다. 손톱을 세워 긁어내리고 세게 잡아당기는 행위에 한영은 앓는 소리를 흘렸다.
손이 점점 더 밑으로 내려온다. 벨트를 푸르고 지퍼가 내려가고 곧 브리프 안의 물건이 꺼내졌다. 반쯤 흥분해있는 물컹한 페니스에 라이오넬의 긴 손가락이 스쳐 지나가자 아래에서 지끈거리는 쾌감이 치고 올라온다.
"아....흐으....응."
여자들의 신음과 비슷하지만 좀 더 굵고 안으로 삼키려는 목소리였다. 라이오넬은 빙긋 웃으며 한영의 것을 더욱 강하게 쥐고 흔들었다. 기둥을 세게 틀어잡고 위아래로 훑는 손길에 한영은 끙끙거리며 허리를 뒤로 뺐다.
"하지....마....아!"
바깥인데다 차 안에서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듣지 않는다. 오히려 한영의 귀 안을 젖은 혀로 희롱하며 농을 던질 뿐이다.
"벌써 이렇게 흥분했으면서."
"으응......"
원인을 따지자면 라이오넬 때문이지만 그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의 손길은 점점 빨라졌고 한영의 분신은 이미 완전히 발기해 액을 흘리고 있었다. 사정감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의 엉덩이가 절로 들썩이며 어느새 라이오넬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절정이 찾아왔다. 라이오넬의 손에 희고 묽은 액이 젹셔진다. 한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시트에 몸을 기댔다. 옆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머지는 저녁에."
라이오넬이 입술을 살짝 맞대며 속삭였다. 한영은 기운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했다.
역시 양키들은 정력이 세구나, 라고. 그에게 외국인, 특히 백인은 여전히 양키일 뿐이었다.
사무실에 돌아간 한영은 정오의 행위 탓인지 조금 나른했다. 게다가 저녁에 약속이 잡혔다는 것은 또 섹스를 한다는 것이라 어색한 기분으로 오후를 보냈다. 이게 데이트인가? 고정적인 만남이 되는 건가 의문도 들었다.
서류를 보다 오 초 정도 생각하고, 한가한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십 분 정도 추리해보고, 화장실에 가는 틈틈이 고민해 본 한영은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섹스 파트너가 되었구나! 자신과 라이오넬의 관계가 발전 했다는 것을 드디어 느낀 것이다. 그럼 앞으로 자신과 라이오넬은 어느 한 쪽이 질리기 전까진 섹스를 한다는 것일까? 아니, 그는 바람둥이니까 어차피 쉽게 질리겠지?
한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결심했다.
빨리 테크닉을 좀 익혀야겠다. 할 때마다 초보인 티를 내면 상대가 우습게 볼 것이고 자신도 부끄럽기 때문에. 한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업무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았다.
긜고 주위 동료들은 그런 한영을 보며 오해를 하고 있었다. 바로 맞은편에 존과 레이놀드였다.
"한국 지사에서 온 사람 정말 성실하군."
"재미없는 친구지만 일은 열심히 하더라고."
말도 없고 재미도 없지만 일은 열심히 하니 딱히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한영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같은 시간, 한영의 집에서는 진서가 무척이나 바빴다. 수업이 끝나고 찾아온 션과 뒹굴고 있었기 때문에.
"아아! 좋아.... 더.....좋아."
그는 누워있는 션의 위에 올라타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고 잤지만 삽입될 때마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오히려 좋았다. 내부를 가득 메우며 안을 휘젓는 커다란 성기가 주는 쾌감에 온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
"너무 커.... 아, 찢어질 것 같아.... 으응....."
작은 구멍은 한계까지 벌려져 새까만 성기를 탐욕스럽게 삼키고 있었다. 그런 진서를 바라보며 션은 느릿하게 허리를 쳐올렸다. 깊숙이 꽂히는 느낌에 진서는 목을 젖히며 교성을 지른다. 뱃속을 강타당하는 기분이다. 아프기도 하지만 그 감각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다.
"더.....더 깊이, 아! 하아, 아!"
진서는 조르듯 허리를 움직였다. 행위는 조금씩 더 빨라지고 과격해진다. 밑에 있는 상대의 입에서도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활짝 벌려진 다리 사이에선 이미 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진서는 자신의 것을 매만지며 스스로 가슴을 애무했다. 좋아, 너무 좋아. 그의 입에선 계속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 갈 것 같아 으응, 아! 아아!"
퍽퍽, 강하게 안으로 쑤셔 박힐 때마다 아래가 얼얼했다. 내장이 모두 쏠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센 움직임. 진서는 신음을 지르며 아래를 조였다. 내벽이 달라붙어 자신을 빨아 당기는 기분에 션 또한 고통스럽게 신음을 흘린다.
얼마 안 가 진서는 상대의 배에 하얀 액을 흘렸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만족스러운 정사에 그는 빙긋 미소 지으며 상대의 입술에 키스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달궈진 몸은 더 즐기고 싶었다. 진서는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 전 사정을 마친 페니스는 조금 줄어있긴 했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의 팔처럼 굵고 길었다.
콘돔을 벗기고 정액에 젖은 페니스를 진서는 아이스크림을 먹듯 빨고 핥았다. 너무 커서 반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는 성기를 입에 머금고 혀로 굴렸다. 귀두를 혀로 쑤시자 상대의 입에서 웃음 섞인 신음이 들린다. 진서는 가늘게 웃으며 고개를 조금 들어 물었다.
"좋아?"
"무척."
반응을 묻자 상대는 솔직하게 대꾸했다. 진서는 상대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건 션도 마찬가지였다. 여행 둘째 날부터 시작된 정사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의외로 속궁합이 잘 맞기도 했던 데다 서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둘은 키스를 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을 애무했다. 그러다 션이 새로운 콘돔을 꺼내자 진서가 말렸다.
"이번엔 하지 마."
"괜찮겠어?"
션이 묻자 진서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임도 좋지만 껄끄러운 느낌이 싫었다. 진서는 그의 가슴을 입술로 애무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무 느낌이 싫어. 뻑뻑하단 말이지."
질척한 내부를 단단한 살덩어리가 파헤치는 느낌을 상상하자 척추에서부터 무언가 오싹한 느낌이 치고 올라온다. 진서는 자신의 다리를 잡아 벌렸다. 조금 전의 정사로 이미 입구는 풀어져있다. 마치 숨을 쉬듯 속살을 드러내고 남자를 유혹한다. 션은 사양하지 않고 삽입해 들어갔다.
"아....하아....앙......"
진서는 음탕하게 울부짖으며 남자의 허리를 다리로 감았다. 자신의 안으로 거세게 파고드는 페니스를 내벽은 움찔거리며 달라붙듯 조여온다.
상대는 익숙하게 포인트를 찌르고 도망가듯 물러난다. 그러나 아쉬워할 틈도 없이 다시 긁어내리는 게 느껴졌다. 진서는 미칠 것 같은 기분에 마음껏 교성을 지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하으응, 좋아. ....굵어서.....아아!"
"흣, 너무 조이지마. 이러다 싸겠어."
"안에다 가득 싸줘. ....잔뜩 적셔져서 쑤셔지는 게 좋아."
"넌 정말 음탕한 년이야."
교태를 부리는 진서에게 션은 웃으며 더욱 강하게 허리를 쳐올렸다. 허리를 조이며 강하게 몰아붙이자 진서는 우는 것 같은 신음을 흘리며 성기를 조여 온다.
"아, 좋아.... 더, 더 힘껏, 아....으응."
힘껏 박아 올릴 때마다 안에서 젤이 찔끔찔끔 흘러내린다. 션의 사타구니가 세게 비벼지고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질퍽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정사가 끝나자 남은 것은 잔뜩 구겨지고 정액과 땀으로 더러워진 침대였다. 샤워를 하고 나온 진서는 방 안을 보더니 혀를 차며 시트를 걷어냈다.
옆에선 션도 샤워를 하고 나와 맥주를 마시는 중이다. 진서는 시트를 세탁기에 돌리고 자신도 캔을 따서 한입 머금었다. 알싸한 액체가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좋아 그는 캬아 소리를 냈다.
역시 정사를 끝내고 샤워한 뒤 마시는 맥주는 최고였다. 션은 그런 진서를 보며 웃다 시계를 보며 물었다.
"한은? 퇴근 안 하나?"
"평소라면 한 시간 뒤쯤이면 오는데 모르지, 약속이 있으면 늦을지도."
요즘은 라이오넬이라는 상사와 만난다니 잘 모르겠다. 시큰둥하게 대꾸하던 진서는 잠시 후 고개를 돌렸다.
"왜? 한영이한테 관심이 있어?"
그러고 보니 오늘도 놀러 오자마자 한영의 퇴근시간을 물었다. 진서의 물음에 션은 어깨만 으쓱했다.
노코멘트라는 뜻이다. 진서는 그런 상대를 가늘게 위아래로 노려보며 말했다.
"초보자가 사용하기엔 넌 너무 위험한데."
자신이야 경험이 많으니 그렇다 쳐도 너무 위협적인 크기였다. 빅매그넘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진서가 혀를 차며 말하자 션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
"아니. 별로 중요한 말은 아니야."
그냥 너 말자지라고. 물론 진서는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렇지만 지금 화제는 그냥 넘어가기 힘든 문제였다. 정말로 션이 한영에게 관심이 있다면 이건 중요하다.
진서가 션을 좋아하기 때문에는 아니다. 어차피 션은 섹스파트너이자 친구일 뿐이라 그가 누구와 자든 사귀든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즐기고 살아야 하니까. 그가 찝쩍거리는 것도 자신이 집착하는 것도 싫다.
문제는 한영이다. 진서는 한영을 좋아하고 그가 경험이 풍부해지길 원했다. 혼자 집구석에서 궁상맞게 자위하느니 나가서 대머리에 배불뚝이 아저씨라도 붙잡고 하는 게 낫지. 그게 진서의 신조였다. 물론 아직 그런 전적은 없지만 말이다.
"근데 한영인 아마 굉장히 어려울 거야."
자신이야 워낙 솔직하고 알기 쉽지만 한영은 달랐다. 한영은 일단 주위에 관심이 없다. 대놓고 고백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눈에 들기 어렵다. 그 말을 하자 션이 관심을 보인다.
빙고, 역시 관심이 있었군. 진서는 속으로 웃으며 계속 말을 꺼냈다.
"한국에서도 내 친구들 중에서도 한영이한테 관심 보인 애들이 있었는데 말이지. 결국 다 포기했잖아."
이유는 한영의 눈치 없음이었다. 간혹 집에서 마주치거나 밖에서 우연히 보거나 해서 한영에게 관심이 생긴 이들이 서넛 있었다. 그러나 한영은 일단 관심 없는 사람을 기억 못 했다. 그래서 인사를 해도 모르고 지나가거나 정말 무뚝뚝하게 대답만 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곤 했다. 물론 한영은 그런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나중에 진서가 이야길 해도 그게 누구냐 물어 더욱 씁쓸했다.
"사지 멀쩡한 놈이 서른 해 동안 동정인 이유가 다 있지. 그렇게 눈치 없고 게을러서야 애인이 어떻게 생기겠어."
진서는 끌끌 혀를 차며 맥주를 집어들었다. 피곤한데다 맥주까지 마시니 왠지 노곤해진다. 그는 소파에 길게 누워 카우치에 발을 걸쳤다. 옆에선 션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것 봐, 노리고 있었구먼. 진서는 속으로 웃으며 맥주를 홀짝였다.
"그래도 지금은 회사에 한 놈 있는 모양이더라. 그나마 다행이지. 영국까지 와서 허탕치면 정말 아깝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영의 남자 복이 터진 모양이다. 갑자기 영국에 오자마자 바로 동정 탈출에 이젠 울트라 빅매그넘까지 손에 넣게 생겼다.
"....여기 터가 좋은가."
땅 좀 사놓을까. 그런데 돈이 없네. 진서는 잡생각을 하며 머리를 긁었다. 그 옆에서 션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있는 건가.'
회사에 한 놈, 그놈이 신경 쓰였다.
사실 한영은 그의 취향은 아니었다. 딱히 취향이랄 건 없지만 아직 젊은 만큼 사실 진서같이 깔끔한 성격이 맞았다. 여자든 남자든 너무 질척이는 것은 싫었다. 그는 개인주의였고 얽매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영은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위고 미인도 아닌데 묘한 매력이 있다. 왠지 위태롭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무리에 끼지 못하는 소심하고 약한 생물 같은 느낌이 있다.
사실은 무신경하고 단체생활이 귀찮을 뿐이지만 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한영을 모르기 때문에, 승주나 진서야 이미 알고 잇으니 그가 대화에 끼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는데 그만 조금 걸렸던 것이다.
그날 술집에서 혼자 돌아가는 한영이 괜히 신경 쓰여서 리포트 핑계를 대고 따라나왔다. 일행들은 취해있었고 누구 하나 그를 배려하지 않는다. 셋이서 떠드는 것이 미안해 가끔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하는 모습이 어른임에도 괜히 안쓰러웠다.
사실 션은 그런 타입에 약했다. 어리숙하고 약은 구석이 없어서 조금 바보 같은 스타일. 자신과는 다르게 답답한 타입에 끌리는 스타일인 것이다. 만나는 건 진서 타입이 좋지만 연애를 한다면 한영처럼 유순한 스타일이 좋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다 마신 맥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서의 방으로 들어간 그는 자신의 옷과 가방을 챙겨 나왔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봐."
"어, 잘 가."
진서는 미련 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션이 일부러 자신의 물건 하나를 진서의 방에 두고 간 것을. 나중에서야 발견한 그는 알아서 찾으러 오겠지 생각하곤 서랍장 위에 내버려두었다.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힘들어 하는 것이 식성 때문이라더니, 한영은 자신의 앞에 놓인 밀가루 요리들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영국은 음식 맛없기로 소문난 나라이긴 하다. 그렇다고 먹을게 없는 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요리점들이 즐비하니까.
김치찌개가 유독 첫사랑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돼지고기를 넣어 많든 김치찌개, 고추장으로 잔뜩 버무린 매콤한 낙지볶음, 바지락을 넣은 얼큰한 된장찌개. 지금 눈앞에 놓인 이 빵 덩어리들과 고기들이 지겹고 또 지겨웠다.
배고파서 먹긴 하는데 참 죽을 맛이다. 그런 한영을 바라보며 라이오넬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왜? 맛이 없나?"
라이오넬은 그런 속사정을 모르니 그의 탓을 할 수도 없다. 한영은 작게 아니라고 대답하고서 예의상 열심히 씹어 넘겼다. 아무래도 빨리 한국음식점을 찾아야겠다. 한영은 샐러드를 씹으며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냥 고향이 생각나서요."
"향수병이라도 걸린 거야?"
"약간."
식탐도 병이라면 병이겠지. 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건 아니라고 변명했다. 반면에 마음속으론 누가 고추장이나 김치 좀 갖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와인도 이왕이면 소주였으면 좋겠고, 미각까지 재능 없는 한영은 속으로 푸념을 던졌다. 이제 겨우 열흘을 살았을 뿐인데 벌써 이러면 곤란했다. 아직 구십일이 남은 것이다. 참을 인을 되새기는 데 라이오넬이 물어온다.
"혹시 한국에 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
".....김."
"킴?"
".....아니에요."
한영은 자기도 모르게 김치라고 할 뻔했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그것이 사람이라고 착각해버렸다.
'혹시 김씨 성을 가진 남자인가?'
한국엔 김씨가 많다던데. 혹시 마음에 둔 남자라도 있는 것일까? 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라이오넬은 한영을 빤히 바라봤다.
한영은 얼굴을 가린 채 간절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김치 생각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침이 고인 탓이다. 씹으면 아삭하고 소리가 나는 그 사랑스러운 음식, 빨갛고 매운 배추김치가 너무도 그리웠다. 저런 모습이 남이 보기엔 무언가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설마, 라이오넬은 더더욱 의심스럽게 그를 노려봤지만 한영은 눈치 채지 못했다.
'설마 남자가 있는 건가! 육체적인 관계는 아니어도 사실 마음을 둔 상대가 있을지도?'
그 생각을 하자 무언가 울컥 치고 올라오는 기분이다. 사실 스물여덟이나 돼서 그런 상대가 하나도 없다는 게 더 믿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한영은 딱히 못난 구석도 없으니 당연했다.
"무슨 소중한 거라도 추억하고 있어?"
자기도 모르게 약간 비꼬는 말투였다. 한영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려다. 그는 약간 멍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네?"
"소중한 거라도 추억하고 있냐고 물었어."
"......소중?"
김치가 소중한 존재인가? 한영은 곰곰이 고민해봤다. 음식이란게 평소엔 몰라도 이렇게 외국에 나오면 간절해지는 법이니 소중할지도 모르겠다.
"네. 소중하죠."
어쨌든 외국에서 김치 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진서는 몰라도 한영은 김치 없이 밥 먹으면 서운하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모르는 라이오넬은 그 말에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혹시나 싶어서 물었더니 정말이었던 것이다.
"가까운 존재야?"
"늘 옆에 있었으니.... 가깝죠."
김치는 늘 냉장고 한구석에 존재한다. 어딜 가도 나오고 생활에 밀접하니까 가깝다. 자꾸 생각하다 보니 정말 먹고 싶어진다. 한영은 우울한 얼굴로 라이오넬에게 말했다.
"그만 얘기하죠. 속상하니까."
당장 김치 구하러 떠나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한영의 속을 모르는 라이오넬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속상해?"
게다가 늘 옆에 있었어? 그런 상대가 있었다고? 그러나 한영은 복장 터지는 라이오넬의 속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정말 보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걸 생각하니까 또 다른 것들까지 생각나요."
"어떤?"
"고...아니에요. 됐어요."
고? 고씨 성 가진 남자인가? 남자가 또 있어? 라이오넬은 뜨악한 얼굴로 한영을 바라봤다. 한영은 고추장으로 만든 음식들을 회상하는데 바쁘다.
갓 버무린 무말랭이에 따끈따끈한 보쌈 한 점, 매운탕에 소주, 고추장불고기와 쌀밥, 비빔냉면에 갈비 싸먹는 맛 기타 등등, 모든 게 너무 그리워 미칠 지경이다.
"하아...."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를 생각하다니, 그것도 한 명이 아니다. 괘씸했다. 게다가 슬픈 표정까지 짓다니, 자신의 수많은 데이트 중에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 그는 애써 화낸 기색을 숨기며 냅킨을 테이블 위에 가볍게 던졌다.
"이만 일어나지."
"네."
어차피 먹을 생각이 없던 한영은 라이오넬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데 라이오넬의 걸음이 빠르다. 한영은 궁금했지만 그러려니 넘기곤 뒤를 따랐다. 평소와는 달리 기다려주지 않는 점도 눈치 채지 못했다.
"바로 호텔로 가도 상관없지?"
평소엔 식사 후에 가볍게 술을 한잔하더니 오늘은 바로 호텔로 직행이었다. 그렇지만 한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섹스를 위해 만나는 상대니까.
"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라이오넬은 그런 점마저 괜히 화가 났다. 상대가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기분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사실이지만 라이오넬은 한 번도 그럴 거라 예상해본 적이 없어 기분이 상했다.
방에 도착한 그는 거칠게 옷을 벗어 던졌다. 한영은 그가 씻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은 천천히 재킷을 벗고 침대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라이오넬은 괜히 울화가 치밀었다.
"같이 씻지 않겠어?"
"아, 그래요."
전에도 한번 같이 샤워한 적이 있었다. 한영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도 옷을 벗었다. 오늘따라 라이오넬의 기운이 흉흉하다는 건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라이오넬이 먼저 들어가고 한영은 천천히 욕실로 향했다. 두 번이나 몸을 섞었는데도 아직 나체를 보이기는 창피하다. 머뭇거리며 들어가자 라이오넬은 욕조에 걸터앉아 있다. 이미 가볍게 씻은 듯 몸은 물에 젖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젖어서 넘겨져 있고 촉촉히 젖은 흰 피부에선 물방울들이 흘러내린다.
그 모습이 굉장히 섹시하다고 느껴져 한영은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라이오넬의 옆으로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하,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배신감이 느껴졌다. 자신을 피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 피하지?"
그는 한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강한 악력에 한영은 라이오넬 쪽으로 몸이 끌려왔다.
"그냥....."
창피하다고 하면 비웃겠지? 한영은 말끝을 흐렸다. 강경하게 나오자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다른 생각을 했다. 그 킴이나 고라는 작자 때문에 자신을 피한다는 망상을 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비척거리며 자신을 피하는 한영 때문에 라이오넬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흥, 그는 약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 봤자 지금 한영을 안는 것은 자신이고 그의 처음을 가진 것도 자신이다. 그는 비뚤어진 생각을 하며 샤워기를 틀었다.
"내가 먼저 씻겨주지."
한영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한영은 작게 "네."라고 대꾸하곤 얌전히 그의 앞에 섰다.
샤워기로 몸을 적시고 얼굴 쪽으로 가까이 대자 한영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얌전히 자신에게 몸을 맡긴 상대를 보자 라이오넬은 조금이나마 만족스러워져 웃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따듯한 물이 둘의 몸을 적셨다. 높은 욕조에 걸터앉은 라이오넬과 그의 다리 사이에 선 한영의 눈높이는 비슷했다.
눈을 꼭 감고 있는 한영은 무표정했다. 입술을 만지작거리자 살짝 눈을 뜬다. 왜 그래요? 라고 묻는 것 같았다. 물기 때문에 눈을 깜빡이니 마치 인형 같았다.
물에 젖어 빛나는 까만 머리카락, 약간 노란 기운이 있는 피부. 깊고 검은 눈동자는 의중을 알기가 어렵지만 이렇게 얌전히 자신을 따라 주니 귀엽게만 보인다. 그는 조금 전에 느꼈던 분노를 억누르며 친절하게 웃어주었다.
"이런 것도 처음이겠지? 누군가 함께 샤워하는 건."
없다고 대답하길 바라며 질문을 던졌다. 육체적인 관계가 없었다고 했으니 아마 자신이 처음일 것이다. 그는 한영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런데 상대의 입에선 뜻밖의 소리가 나왔다.
"아뇨, 많이 있어요."
목욕탕에 간 것만 해도 수십 번이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가 씻은 것만 해도 오십 번은 될 것이다. 커서도 친구들과 같이 찜질방에 갔던 일도 있으니 아마 백 번쯤?"
"뭐?"
그러나 라이오넬이 한국의 문화를 알 리가 없다. 그는 다시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목욕을 같이 하는 일이 흔해요. 공중목욕탕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라커룸의 샤워실과 비슷한 거예요. 커다란 욕실이 있는."
"그, 그래도 서로 씻겨주진 않잖아?"
"아뇨. 서로 씻겨줘요. 모르는 사람들도 곧잘 해줘요."
등 미는 건 힘드니까. 그러나 라이오넬의 머릿속에선 단순한 샤워가 아니라 음란한 상상이 떠올랐다. 일본의 마사지 숍 같은 것들이었다.
뭐지, 한국이란 나라는? 대체 어떤 곳이야? 물론 그런 생각뿐만 아니라 단순히 서로 씻겨주는 문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웬일로 한영이 눈치 있개 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처럼은 아니에요. 목욕탕은 온천과 비슷한 개념이니까. 씻겨준다고 해도 기껏해야 등과 허리 정도? 아니면 돈을 내고 맡기기도 하는데 그건 장사니까 열외로 치죠."
"아... 그렇군."
"그러니 당신이 처음이에요. 게다가 단순히 씻는 행위뿐만이 아니니까."
이제 곧 섹스도 할 거고. 라는 말을 뺐다. 두 번의 만남동안 라이오넬이 자신을 건드리지 않은 적은 없으니까. 그는 씻기면서도 지분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그 말을 듣자 크게 안심했다.
"다행이군."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한영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묻지는 않았다. 자신의 별거 아닌 행동이 한 남자에게 용기를 줬다는 것도 모르는 한영이었다. 그렇지만 라이오넬의 찜찜함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는 한영이 자신 외에 남자를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느릿하게 거품을 묻혀 목가를 문질렀다. 타인의 손이 닿자 한영은 움찔거린다. 애무하듯이 스폰지로 몸을 닦아냈다. 가슴부분을 일부러 스펀지 대신 손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문지른다.
".....아."
한영은 금세 반응을 보였다. 유두를 손가락으로 짓이기자 몸을 뒤튼다. 라이오넬은 조금 더 집요하게 손을 움직였다. 유륜의 모양을 따라 덧그리자 한영은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저.....저기."
단순히 씻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한영이 주저하며 불렀다.
"왜?"
능청스럽게 묻자 한영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무어라 말하기 애매한 상황인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결국 한영은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라이오넬은 씨익 웃으며 한영의 몸을 더욱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마사지하듯 팔을 씻기고 허리를 쓰다듬었다. 한영의 가쁜 숨소리가 욕실 안을 진동했다. 미끄러운 거품과 함께 라이오넬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저릿한 쾌감이 인다.
곧 라이오넬이 움푹 파인 배꼽을 긁어내자 한영이 허리를 튕겼다. 간지러움에 참을 수가 없었다.
"아......"
한영은 상대의 어깨를 붙잡았다. 입에서 부끄러운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걸 의식할 틈도 없었다. 스펀지에서 짜낸 비눗물이 사타구니를 타고 흘렀다. 라이오넬의 손이 그곳에 닿았고 곧 음모가 쓸려진다. 빗질을 하듯 부드럽게 매만지다 이내 페니스를 지나 밑에 주머니까지 손이 뻗어 왔다.
"아!"
그는 다시 허리를 튕겼다. 라이오넬의 손은 재빨리 그것을 움켜잡고 손으로 쓸어대기 시작했다.
".....하아...."
부드럽게 만져주는 손길에 한영은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아래를 살살 문지르다 페니스를 잡아온다. 아직 발기가 되지 않은 물렁거리는 살덩어리가 그의 미끌미끌한 손안에서 굴려진다.
"아...으응......"
그런데 여운을 느끼기도 전에 손은 떠나버리고 만다. 한영은 갑자기 손을 떼는 상대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스펀지로 엉덩이를 문질렀다.
"더 만져주길 바래?"
"......"
"응?"
".....됐어요."
이놈은 꼭 이러더라. 한영은 입술을 깨물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웬일로 한영이 거부하는 걸까. 라이오넬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못이기는 척하고 애원하더니.
"정말?"
라이오넬은 일부러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살살 쓸어내리며 말했다. 윽, 한영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렀다.
".....아."
"정말 원하지 않는 거야?"
도대체 정말 하고 싶은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네. 한영은 기가 막힌 숨을 내쉬었다. 눈을 찡그리며 바라보자 라이오넬은 피식 웃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한영의 양 엉덩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마음대로 하세요."
한영은 부루퉁하게 대꾸했다. 정말 웬일이지? 라이오넬은 한영의 반응에 조금 놀랐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때마침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조금 전의 한영이 말했던 상대였다.
역시 그 김 뭐시긴지 하는 놈 때문인 건가. 혹시 그 남자가 그리워서 자신에게 관심이 식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다시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영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아!"
고통에 한영의 입에선 반사적으로 작은 비명이 터졌다. 그제야 라이오넬은 자신이 힘 조절을 못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위를 올려다봤다. 한영이 약간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혹스러워 눈을 깜빡이는 얼굴은 순진해 보인다. 그것이 라이오넬에겐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파악하기도 어렵고, 만나면 만날수록 종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다른 남자, 마지막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다시 스펀지를 움직였다. 허벅지를 씻기자 한영은 처음엔 당황스러워 했지만 얌전히 몸을 내맡긴다. 이런 태도조차 괜히 의심스럽다.
"혹시 말이야."
"네?"
".....다른 남자가 당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면 어쩔 거지?"
라이오넬이 낮게 물었다. 조금 전부터 궁금해진 것이다. 이외의 질문이라 한영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건 왜요?"
한영은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상대가 무슨 생각으로 물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 궁금한 건지, 아니면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혹은 자신에게 질려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 없는 라이오넬은 조급하게 대답을 촉구했다.
"일단 대답해봐."
"그런 상황이 없었는걸요."
"그래도.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어쩔 거지?"
"아마 받아들이겠죠."
어쨌든 만약이라니 한영은 부담 없이 대답했다.
진서의 말로는 섹스파트너는 애인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섹스를 하는 친구 정도, 자신과 그의 사이를 '섹파'라고 알고 있는 한영은 별생각 없이 대꾸했다. 그런 관계에선 라이오넬과 자신은 서로 구속하면 안 되는 것이다. 또 이 관계가 끝나면 또 다른 상대를 찾아야 했다.
혹시 라이오넬은 자신이 그런 착각을 한다고 걱정하는 건가? 안 받아들인다고 하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부담스러워할지도? 여러 가지 생각이 복합적으로 든다.
고민해서 나온 대답을 듣자 라이오넬은 웃었다.
"아.... 그래?"
"네."
웃는 걸 보니 마음에 드는 대답인가 보다. 한영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가 자신의 등 뒤로 스펀지를 찢을 듯이 세게 쥐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 씻은 것 같군."
라이오넬은 최대한 평상시처럼 굴며 말했다. 물론 한영은 그가 화가 난 건 꿈에도 모른 채 "그러네요."라는 심심한 대답을 했다. 샤워기로 거품을 씻어내고 한영은 먼저 나가 있으라는 말에 순순히 가운을 입은 채 밖으로 나왔다.
침대에 앉아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 있자 곧이어 라이오넬도 침대로 온다. 한영은 평소대로 그가 다가오겠지 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라이오넬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한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한영도 그를 바라봤다. 아마 곧 자신에게 와서 키스하겠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이 없다.
왜 저러지? 궁금했지만 묻기도 뭐하다. 경험이 없는 한영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지 모르니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 물음표만 늘려갈 때였다.
라이오넬이 천천히 다가왔다. 가운을 입은 한영과 달리 그는 맨몸이었고 잘 짜여진 근육과 단단한 몸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몇 번 봐서 익숙하지만 볼 때마다 참 감탄이 나오는 몸이다. 얼마 전에 봤던 션이 농구 선수 같은 근육질이라면 라이오넬의 몸은 모델처럼 마르고 탄탄하다.
보기 좋은 완벽한 몸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보기는 창피하니 한영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라이오넬은 그런 모습에 또 울컥 화가 난다.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 싫었다.
라이오넬은 자신의 앞에 앉은 한영을 나직하게 불렀다.
"한."
"네?"
왜 부르나 싶어 돌아봤다. 그러자 곧 눈에 보이는 것은 금색의 음모에 둘러싸인 커다란 페니스였다.
"빨아."
평소의 권유형이 아닌 명령조였다. 한영은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원래 섹스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니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벌려 상대의 물건을 머금었다. 물기가 약간 남아있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라이오넬은 불만스럽게 다시 명령한다.
"제대로 해. 입을 더 크게 벌려."
"......."
화가 난 것 같은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한영은 순순히 그가 시키는 대로 입을 더 크게 벌렸다. 라이오넬은 그가 천천히 하는 것이 싫은 듯 불시에 깊이 파고들었다.
"윽!"
갑자기 목에 성기가 처박히자 숨이 막힌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더욱 깊이 쑤시며 허리를 움직였다.
"입술로 조여. 혀를 굴리면서. 그것 하나 제대로 못 하나?"
".....읍......큭."
머리가 잡혀 안쪽으로 당겨질 때마다 목을 찌른다. 게다가 굵어서 물고 있는 것도 답답했다. 그럼에도 라이오넬은 더 세게 조이라며 위에서 잔소리를 했다. 한영은 최대한 그의 말대로 움직이도록 노력했다.
살덩어리가 젖어 입술에 비벼질 때마다 쩝쩝거리는 소리가 난다. 아직도 적응이 안 돼 창피하기만 했다. 타인의 것을 입으로 애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이제야 좀 제대로 하는군."
점점 더 커진다. 발기하기 전엔 그나마 참을 만했는데 이젠 반 조금 넘게 물 수 있었다. 그래도 한영은 상대가 만족하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사실 그는 펠라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크고 굵은 성기를 빨면서 희열을 느꼈다. 물론 솜씨는 서툴지만 상대가 기뻐하는 것도 좋고 자신도 흥분이 됐다.
"하아....흣."
낮은 탄성 소리가 들리자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된다. 한영은 입술을 의식적으로 조이며 혀로 기둥을 감쌌다. 라이오넬이 알려준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라이오넬이 자신의 성기를 빼낸다.
그는 곧 성기를 한영의 얼굴에 문질렀다. 한영은 갑자기 산소가 들어오자 머리가 어지러워 멍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 행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오넬의 사타구니에 얼굴이 처박히는 것은 가히 유쾌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단지 낯설고 기이할 뿐이다. 라이오넬은 한영의 뺨에 자신의 성기를 잡아 문지르며 속삭였다.
"핥아."
한영은 그의 말대로 혀를 내밀어 그의 성기 주변을 혀로 핥았다. 금색의 음모가 혀에 닿았다. 젖은 음모가 턱에 비벼지고 움직일 때마다 고환이 흔들려 턱에 부딪힌다.
한영은 그가 자신에게 해주던 것을 떠올리며 그곳을 입에 물고 혀로 굴렸다. 그러자 라이오넬은 한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많이 좋아졌군. 좋아. 더 혀를 굴려."
칭찬 받은 건 좋았다. 근데 왠지 개가 된 기분이다. 한영은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고분고분하게 그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성기가 입속으로 강하게 처박힌다.
완전히 발기한 성기는 목젖을 세게 치고 들어왔다. 빠르게 빠져나간다. 한영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기침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동시에 토기도 같이 치밀었다. 한영은 고통스러워하며 신음을 흘렸다. 아픔에 눈물이 찔끔 흘러나온다.
그와 동시에 입속에 있던 성기도 빠져나갔다.
"괜찮아?"
".....아, 괜찮, 쿨럭!"
대답과 달리 한영의 입에선 기침이 터져 나왔다. 붉어진 얼굴은 눈꼬리가 젖어 있어 라이오넬은 혀를 차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떼어냈다.
"쳇, 어쩔 수 없군."
그는 겨우 진정한 한영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그를 침대에 똑바로 눕힌다. 갑자기 체위를 바꾸는 행동에 한영은 눈만 굴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과격하고 무엇인가 다르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라이오넬?"
한영이 의아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라이오넬은 대답하지 않고 한영의 가운을 풀었다. 끈 하나만 풀면 전부 벗겨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너무나 쉽게 치부를 내보이게 되자 한영은 조금 당황했다. 곧 라이오넬이 고개를 숙였다.
"앗!"
라이오넬의 입속으로 한영의 페니스가 삼켜졌다. 뜨겁고 축축한 내부의 느낌에 한영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튕겼다. 발기하지 않은 성기는 라이오넬의 입속으로 전부 빨려 들어갔다. 질척한 혀로 감아오고 안에서 굴려지자 한영은 시트를 움켜쥐었다.
".....하으응."
라이오넬은 집요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열중해서 한영의 성기를 애무했다. 그의 입안에서 철저하게 희롱당하고 있다. 아랫배 쪽에서부터 무언가 묵직한 느낌이 들며 점점 가쁜 숨이 터져 나온다. 강하게 입술로 빨아들이자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따갑기도 하다.
"하.....아....아아. 라, 라이오넬."
점점 자라는 한영의 성기를 라이오넬은 쪽쪽 소리가 나도록 세게 빨았다. 한영은 강한 쾌감에 헐떡거리며 신음했다. 라이오넬의 움직임에 따라 저절로 허리가 흔들렸다.
"아.....아아......흣!"
갈라진 끝 부분을 라이오넬의 혀가 쪼듯이 자극해 온다. 한영은 움찔거리며 뜨겁고 긴 숨을 내쉬었다. 쾌감이 전신을 후끈하게 달구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라이오넬, 나올 것, 아!"
갑자기 약하게 깨물렸다. 이가 기둥을 스쳐 지나가자 한영은 손톱을 세워 시트를 꼬집었다.
"아! 아아! 하읏!"
라이오넬의 혀가 다시 귀두를 파헤치듯 움직인다. 갈라진 선단에 뾰족하게 날을 세워 쿡쿡 찔러왔다. 게다가 손으로는 기둥을 느리게 훑으며 자극하고 있었다. 이젠 정말 쌀 것 같았다. 한영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러나 갑자기 무릎 아래가 잡혔다. 그걸 인지한 순간, 이번엔 허리 아래쪽이 붕 뜨는 느낌에 한영은 어- 소리를 냈다.
몸이 뒤집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아래에서 느껴지던 자극도 사라졌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한영은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했다.
"한, 엉덩이 들어."
뒤에서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영은 당황했지만 그가 말하는 대로 다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 순간 강한 손아귀 힘이 엉덩이 살을 벌리는 것이 느껴졌다.
벌써 삽입하는 걸까? 한영은 긴장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닿은 것은 성기가 아니었다. 물컹하고 축축한 혀였다.
"아!"
엉덩이가 양쪽으로 벌려지며 입구주위의 주름을 핥아온다. 예민한 부위였기에 한영은 다시금 손에 잡히는 천을 움켜쥐었다. 곧 혀가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한영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안을 조였다. 곧 혀가 피스톤 질을 하듯 안을 오간다. 안에서 뱀처럼 요동치고 들어왔다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아....아응......"
혀가 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찔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영은 더 이상 붉어질 수도 없을 만큼 새빨개져 신음했다. 좋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라이오넬의 얼굴이 엉덩이에 닿아 비벼진다. 그의 혀는 더욱 깊숙이 들어와 안을 휘젓는다. 내벽을 핥을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전신을 자근자근 밟는 느낌이다.
"아, 라이오넬, 하아...."
한영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좋긴 하지만 한 편으론 아쉬웠다. 쾌감을 느낄수록 좀 더 큰 것, 안을 꽉 채워주는 것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라이오넬이 혀를 떼며 물어왔다. 젖은 입술을 핥는 움직임이 야하게 느껴진다. 한영은 붉어진 얼굴로 그를 올려 봤다. 어느새 입구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혀로 미리 풀어둔 내부는 수월하게 손가락을 삼킨다. 라이오넬은 한영의 엉덩이를 정신없이 핥았다. 맨살에 닿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져 한영은 몸을 떨었다.
"너....."
넣어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성격상 잘 못하겠다. 말을 꺼내긴 했지만 끝까진 할 수 없었다.
"뭐?"
라이오넬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뻔히 알면서 그러는 것 같아 한영은 분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 라이오넬은 어느새 한영의 등 위까지 자리르 옮겼다.
"넣어....줘요."
"뭘."
이번엔 좀 더 능글맞은 목소리였다. 한영은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는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그 사이에 손가락은 하나 더 늘어나 있다.
"그....페....스."
페니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영이 말했다. 이미 그의 얼굴은 상처받은 아이 같았다. 라이오넬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의 다른 손은 한영의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랫배를 살살 어루만지는 손길은 다정했지만 성격은 그러지 못하다.
"분명하게 말해."
".....아!"
어느새 젖꼭지를 잡아당기는 손길에 한영은 움찔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똑바로."
"흣!"
두 개의 손가락이 안에서 넓게 벌려지자 한영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그 뿐만 아니었다. 아픔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엔 목을 깨물렸다.
"아....아프....읏!"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젖꼭지를 긁어내리고 또 어깨를 깨문다. 결국 한영은 참지 못해 입을 열었다.
"페니스.... 넣어줘요."
크진 않지만 아까보다는 분명한 목소리였다. 반면에 표정은 아까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 자신이 말해놓고 창피해 죽겠다는 얼굴이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의 얼굴을 보며 낮게 웃었다.
"넣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
그걸 말이라고, 한영은 잠시 당황해 했다. 끝난 줄 알았는데 첩첩산중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라고 외치기도 전에 내벽 안을 긁어내리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갈고리처럼 손가락을 휘어 안을 자극하자 절로 허리가 휘었다.
"아흑!"
"넣어서 어떻게 해주길 바라지?"
"....으....."
한영은 이젠 정말 케첩으로 샤워한 것처럼 시뻘겋게 변했다. 황인이 아니라 적인이라고 해도 믿겠군. 라이오넬은 키득거리며 그의 귓가를 혀로 핥았다.
"말해봐."
"뭐, 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귀에 숨을 불어넣자 한영은 움찔거리며 옆으로 피했다. 라이오넬은 얼굴을 피하자 이번엔 목을 핥아온다. 뜨거운 혀가 쭉 핥아 내리는 느낌에 한영은 진저리를 쳤다.
"범해달라고."
"......에?"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친절하게 다시 설명해주었다.
"범해달라고, 마구 쑤셔달라고. 그렇게 애원해봐."
"그......"
그건 절대 못한다. 한영은 고개를 저으며 반항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그의 허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손가락이 더 깊숙이 들어와 안을 마구 휘저었다.
"아! 아아! .....흐윽!"
어느새 손가락이 하나 더 늘었다. 세 개의 손가락은 빠르게 박혀와 안을 긁어내리고 마구 흔들어댄다. 라이오넬은 한영을 꼼짝못하게 한 뒤 괴롭혔다.
"응? 한. 그렇게 말해 봐."
"모, 못해.... 윽!"
"기분 좋게 만들어 줄게. 네가 원하는 대로."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느껴진다. 달콤하지만 잔혹한 요구, 음탕한 말을 지껄이는 라이오넬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금발의 머리카락이 조명에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러나 자신의 밑을 쑤시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단호하고 잔인하다.
"아......"
한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플레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화를 내야 하는 걸까.
이럴 땐 그동안 보던 모든 자료들도 전부 소용없다. 그것들은 대부분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닌 단순한 설정들이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한영은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그 사이에도 라이오넬의 자극은 계속 되었다. 손과 입으로 한영의 뇌와 육체를 잠식해나간다. 여전히 밑에선 라이오넬의 손이 뱀처럼 움직이며 내부를 자극한다. 그것은 마치 마취주사처럼 한영의 뇌를 흐물거리게 했다.
"아.....흐으...으응."
"만족시켜줄게. 좋아서 울부짖게 해주지."
".....아."
"이런 손가락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좀 더 굵고 뜨거운 것으로.... 너도 원하잖아? 네가 좋아하는 페니스로 안을 휘저어 줄게. 네가 원하는 것도 그거잖아."
그 말과 동시에 라이오넬의 사타구니가 엉덩이에 밀착되어 비벼진다. 뜨거운 성기가 입구 주변을 맴돌자 한영은 이성이 침몰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으....으응."
"그러니 말해 봐. 어서."
"....나."
아주 단순한 단어 하나면 되는데 선뜻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한영은 눈을 굴리며 라이오넬을 바라봤다. 친절하고 다정해 보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상대가 보인다. 한영은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계속 할 것인가.
"나를......"
"그래."
어서 다음 단어를 말해. 라이오넬은 한영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재촉했다. 어쩔 수 없다. 한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날....범해줘요."
결국 말하고 말았다. 한영은 말이 끝나자 바로 입을 깨물었다.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손가락이 빠르게 안을 빠져나간다. 갑자기 이물감이 사라지며 내벽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에 안이 쑥 빠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굵은 성기가 재빨리 안을 메우고 들어온다. 푹 소리가 나도록 빠르고 깊숙이 들어왔다. 한영은 헉 소리를 내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라이오넬이 더 빨랐다. 그는 한영의 허리를 잡아 고정하고 뿌리까지 깊이 삽입했다.
갑작스러운 삽입이 시작되고 한동안 한영은 고통 때문에 날카로운 비명만 질렀다. 아픔에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도망치려고도 했다. 그러나 양 허리가 단단하게 잡혀 피할 수가 없었다. 좁은 구멍 안으로 푹푹 소리가 나며 빠르게 성기가 꽂혔다. 라이오넬은 잔인하도록 분명하게 그곳을 공격했다.
"아....아윽! ......흐윽......"
"큭......."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라이오넬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내부가 너무 빡빡했다. 자신의 것을 끊어낼 듯이 조이는 감각에 라이오넬은 낮은 신음을 쉬며 한영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불시에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힘 풀어."
둥글고 하얀 엉덩이를 때리자 찰싹 소리가 난다. 허리를 놓자 곧바로 한영의 상체가 쓰러졌다.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흐으.....아.....읏."
아픈 것만은 아니었다. 꼿꼿하게 치켜 올라간 엉덩이와 탐욕스럽게 남성을 삼키는 입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라이오넬의 성기가 흉포하게 안으로 처박힐 때마다 구멍은 그에 알맞게 벌려졌다. 그리고 라이오넬이 정확하게 어느 부분을 찌르기 시작하자 그 비명은 신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아아.....으응.....하읏!"
어느새 고통에 찬 비음 대신 색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온다. 한영의 엉덩이가 움찔거리며 움직인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을 내려다보며 포식자의 미소를 짓는다. 느리게 페니스를 뺀 그는 갑자기 뿌리까지 단번에 박아 넣었다.
"하악!"
한영의 허리가 활처럼 휜다. 이미 눈동자는 풀어졌고 흥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하이오넬의 성기가 자신의 안에서 거세게 움직일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쾌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앙.....그, 그만...흐읏....으...으응."
한영은 이따금 애원과도 같은 말이 섞인 신음을 흘렸다. 그럴수록 라이오넬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거칠어질 뿐이다."
정말 범해진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평소의 부드러움은 모두 사라지고 라이오넬은 제 뜻대로 자신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쾌감에 몸서리가 처지는 이 상황에서 한영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성기가 날뛸 때마다 분명히 쾌락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아...하앗!.....아아.....아!"
한영은 그의 말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커다란 성기가 오갈 때마다 내벽이 쓸리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굵은 귀두가 포인트를 찌르고 비벼질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를 졸랐다. 한영의 성기는 이미 발기해서 흔들렸다.
애처롭게 덜렁거리는 성기 끝엔 방울이 맺혀져 있다. 묽은 액이 시트 위로 뚝 떨어진다.
라이오넬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에라도 한영의 안에 정액을 토해낼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것을 빠르게 빼냈다. 갑자기 안이 허전해지자 한영은 견딜 수가 없었다.
"라이오넬?"
라이오넬은 한영의 엉덩이 사이에 자신의 것을 비벼댔다. 한영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위에 당황해 했다.
어째서? 한영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라이오넬의 것이 입구 주변에 비벼진다. 그 느낌에 다시 지끈하고 아래에서 자극이 온다.
"왜......"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사타구니에 엉덩이를 비비며 움직였다. 다시 넣어달라는 움직임이었다. 순진한 얼굴로 대담한 행동을 하는 한영을 라이오넬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더 해줘?"
"........"
한영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전히 붉어진 얼굴과 멍한 표정이 색정적으로 느껴졌다. 라이오넬은 비릿하게 웃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리 와."
그가 손짓하자 한영은 엉거주춤 일어나 라이오넬에게 다가왔다. 자신의 앞에 무릎으로 선 한영을 뒤로 돌게 했다. 한영은 의아했지만 얌전히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는 한영의 허리를 잡고 천천히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허리 천천히 내려."
라이오넬이 시키는 대로 하자 곧 성기가 입구를 쿡 찔러왔다.
감질나게 입구주변을 배회하던 그것은 이내 매우 느린 속도로 안으로 파고들어왔다. 너무 느려서 한영이 답답함에 몸을 비틀 정도였다.
"아.....으응."
천천히, 뿌리까지 삽입이 됐다. 곧 라이오넬은 자신의 가슴에 한영의 등을 맞대게 앉히더니 그의 다리를 벌리게 했다. 마치 어린애가 볼일을 보는 자세 같았다. 한영은 부끄러워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지만 라이오넬은 힘을 줘서 더 크게 벌렸다.
"다리 잡아."
한영은 라이오넬의 명령대로 순순히 자신의 다리를 벌려 고정했다. 아무도 없지만 남자의 골반 위에 앉아 치부를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앞에 거울이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정통으로 보이자 한영은 그것만으로도 흥분한 것처럼 붉어졌다.
왜 하필 화장대가 저기 있는 거람. 한영은 울적한 얼굴로 라이오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음흉한 웃음만 지을 뿐이다. 그는 일부러 그 자리를 고른 것이다.
원망할 틈도 없었다. 갑자기 그의 성기가 안으로 푹 쑤셔 박혀왔다.
"헉!"
한영은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곧 라이오넬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응, 윽!.....아아!"
라이오넬의 움직임에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 안에서 적나라하게 보인다. 다리를 활짝 벌린 채 남자에게 범해지며 흥분하는 자신의 모습, 입을 벌리며 신음하고 있는 것까지도.
자신의 음란한 모습을 보자 한영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허락하지 않는다.
"봐, 저 모습을."
"아.....으응."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한영은 자신을 괴롭히는 라이오넬의 손에서 얼굴을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힘을 줘 다시 거울 쪽으로 돌렸다.
"절경이잖아. 잘 봐."
"으윽......"
"네 구멍이 내 것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이어진 접합부에서는 라이오넬의 움직임에 맞춰 꿈틀거리는 입구가 보인다. 한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퍽 소리가 나며 라이오넬이 강하게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
푹 소리가 나며 세게 쑤셔 박혀 들어온 그것은 상하운동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한영을 괴롭힌다. 한영은 교성을 흘리며 본능적으로 그의 것을 조이고 풀었다.
"아.....아아! ......아응, 읏!"
"좋지? 원하는 대로 내 페니스를 먹여주지 흥분하고 있잖아. 탐욕스레 빨아들이고 있어. ...게다가 여긴 벌써 울고 있고."
라이오넬은 한영의 분신을 만지작거리며 음탕하게 속삭였다.
"아....흐으."
무언가 오늘은 이상했다. 평소보다 더 흥분되는 건 사실이지만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영은 반쯤은 흥분해서 울먹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싸늘했다. 그러나 여전히 하얗고 굵은 기둥은 자신의 내부를 희롱하며 자신을 쾌락에 허덕이게 한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반쯤 뜬 눈에 거울 속의 자신이 보인다. 남자의 명령처럼 다리를 잡아 벌리고 정신없이 교성을 지르고 있다.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의 성기는 부지런히 안으로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한다. 그리고 남자의 것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들길 반복하는 자신의 음탕한 구멍, 남자의 말처럼 탐욕스러웠다.
몸은 뜨겁고 흥분해있지만 기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남자를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복잡한 감정. 그리고 몸 곳곳에서 피어나는 거센 열기와 아래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쾌감. 한영은 어찌할 줄 모른 채 울부짖으며 어서 이 상황이 끝나길 빌었다.
HOLELIC #3
정사가 끝나고 한영은 샤워를 했다. 라이오넬이 목이 마르다며 물을 마시는 동안 몸만 대충 닦은 그는 재빨리 나왔다.
"벌써 다 씻은 거야?"
라이오넬이 말을 걸어왔지만 한영은 대답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자신의 속옷을 입었다. 어색한 태도에 라이오넬은 표정을 굳혔지만 자신도 화가 난게 있어 풀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데려다 줄 테니 기다려."
"됐어요. 혼자 가도 돼요."
라이오넬이 요길로 가며 말하자 한영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바지를 다 입은 그는 셔츠를 주워 걸쳤다. 라이오넬은 그제야 한영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났어?"
오늘 자신이 화가 나서 평소보다 더 강도를 높이긴 했지만 딱히 한영이 기분이 나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에요."
화가 안 건 아니다. 단지 마음이 복잡할 뿐. 한영은 고개를 저으며 셔츠 단추를 잠갔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 단추를 잠그던 한영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는 셔츠를 안으로 넣고 벨트를 채운 뒤 통보했다.
"하지만 당신과 또 자고 싶진 않아요."
이것만은 확실한 진심이었다. 오늘은 섹스하는 내내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아무리 플레이라고 해도 자신은 적응할 수 없다. 한영은 재킷까지 걸치고 자신의 가방을 찾았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이봐!"
그러나 라이오넬은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가방을 들고 나가려던 한영을 그가 낚아챘다.
"왜요?"
한영은 무심하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라이오넬은 울컥 화가 나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먼저 실례한 건 그쪽이야."
"네?"
"네가 먼저 날 도발했잖아. 옛 남자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면서."
"....옛 남자?"
"킴인지 뭔지 다른 남자 이야기를 꺼냈잖아. 나랑 있는데 다른 남자 얘길 하는 건 실례라고."
"킴? 그건 또 누구죠?"
한영은 그가 무슨 얘길 하는지 알 수 없어 잠시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지? 한영은 황당해서 인상을 구기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난 다른 남자 없어요."
남자는커녕 여자도 없다. 자신이 여태 작은 인연을 맺은 건 라이오넬뿐이다. 그 외엔 친구나 아는 사이뿐.
"그럼 킴은 누군데? 그리고 고는?"
고는 또 뭐야? 한영은 이번엔 정말 짜증을 숨길 수 없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아무튼 갈래요."
혹시 자신은 모르지만 라이오넬에게 마음의 병이 있나. 한영은 오해까지 받으니 더욱 기분이 저조해져선 그의 만류를 뿌리쳤다. 문을 벌컥 열자 라이오넬이 놀란 눈을 하며 다가온다.
"이봐! 기다려!"
라이오넬은 나체였기 때문에 밖으로까지 따라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급하게 자신의 옷을 가지러 갔다. 그러나 한영은 이미 문밖으로 나간 후였다.
"내일봐요. 스펜서씨."
킴이고 고고 더 이상 귀찮아서 상대하기 싫었다. 한영은 호텔문을 냉정히 닫아버렸다.
피곤한 하루였다. 한영은 어제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씻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바로 잠을 이루진 못했다. 분했기 때문이다. 킴과 고, 알 수 없는 소리들과 그의 지나친 행위가 시간이 지나서야 화가 난다. 아마도 쓸데없는 오해 때문에 더욱 기분 나쁘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빵으로 대충 아침을 때우며 한영은 영국에 온 지 보름도 안 돼 이곳에 있는 게 싫어졌다. 음식과 남자, 두 가지가 형편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이 그리워."
"뭐? 진짜? 벌써?"
한영이 푸념하듯 말하자 옆에서 컵 스프를 마시던 진서가 뜨악한 얼굴을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무엇이 그립다고 말하는 한영이 낯설어서고 두 번째는 이 아름다운 도시가 지겹다는 한영의 감각이 무서워서다.
"무슨 일 있어?"
답지 않은 행동에 진서는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물었다. 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불쾌한 얼굴로 출근준비를 하고는 나가버렸다.
그런 행동을 진서는 멍하니 바라보다 잠시 후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보통 날이 아니었다. 삼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한영의 화난 날인 것이다.
"이게 웬일이야?"
한영이 화가 나는 건 가장 가까운 진서조차도 굉장히 드물게 보는 장면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영의 우울한 날은 입영통지서 받았을 때와 1지망 대학에서 떨어졌을 때뿐이다. 화나는 날은 그보다도 많지 않았다. 잠시 짜증을 내긴 해도 화낸 적은 손에 꼽는다. 한영은 웬만해선 감정의 변화가 적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 때문에 화가 났을까? 진서는 궁금했지만 이미 한영은 출근한 후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릇을 치웠다.
그 사이 한영은 늘 그랬듯이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 갇힌 한영은 서울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 도시, 하지만 이곳은 서울보다 더 큰 메가 시티였다.
관광객과 주민들이 어울려 엄청난 사람들의 물결에 갇힌 그는 문득 옆을 바라보다 인상적인 메모를 발견했다. 길거리의 작은 포스터에는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사무엘 존스의 명언이 적혀 있었다.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도 싫증이 난 것이다. 런던에는 인생이 누려야 할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애정과 오만이 동시에 느껴지는 문장이라고 한영은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곳에서 얻은 게 없기 때문에. 그는 쓰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자리를 벗어나서도 그 문장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것. 그것은 무엇일까.
한영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서른 해를 살아오는 동안 고향인 서울에서 누리지 못한 것은 단순히 연애뿐이다. 얼마 전에 동정을 떼긴 했지만 그것은 굳이 영국에 오지 않았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영국에 왔어도 힘들게 찾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인생의 싫증 같은 거창한 것은 느껴보지도 않았다.
무신론자이자 운명론을 믿지 않는 한영은 그것이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 한 편에서 그 문장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왜일까? 한영은 이제는 익숙해진 출근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러나 딱히 이유를 찾을 순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부터 진서가 말하던 자신의 성격을 떠올렸다.
'넌 너무 기대하는 게 없어. 욕망이 있어야 뭐를 얻지.'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으니 가진 것도 없는 것이라며 진서는 한영에게 아쉬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사무엘 존스가 이런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돈과 시간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고.
이유는 그 두 가지가 인생의 가장 무거운 짐이기 때문에. 제법 멋진 말을 많이 한 시인이다. 역시 시도 아무나 짓는 게 아니란 생각을 하며 한영은 회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문을 통과하는 그 순간 한영은 불행하게도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말았다.
그에게 가장 많은 것은 시간과 돈이었다.
한영의 통장엔 꽤 많은 돈이 모여 있다. 그의 부모는 한영에게 손을 벌릴 정도로 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계시지만 일찍이 재혼했기 때문에 한영과는 왕래가 없어 책임질 필요도 없었다. 어릴 적 이혼하며 한영은 어머니에게 키워졌다. 그런 어머니는 얼마 전에 돌아가셔 고아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낭비벽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취미가 없고 친구가 적으니 돈이나 시간이나 쓸데가 없는 것이다. 생활비도 최저선, 식비는 진서가 집세 대신 내고 옷은 진서와 사이즈가 비슷해서 그의 옷을 빌려 입어서 정장 외엔 사지도 않는다.
대학시절부터 성실하게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까지 합쳐 지금 당장 장가가도 될 정도긴 했다. 문제는 장가는 절대 갈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돈을 풀 데도 없다는 것.
'돈 많으면 뭐하나. 인생의 낙이 없는데. 이건 뭐 스크루지도 아니고.'
그런 한영을 보며 진서는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사실 한영은 돈복이 있는 편이었다. 돈이 나가기는커녕 더 불어나는 게 다반사였다. 그 증거로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산으로 펀드를 했더니 수입이 꽤 짭짤했다.
그 뒤에는 주식을 했는데 대박은 아니지만 중박은 터졌고, 예전부터 자신의 학벌보다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과외를 했다. 취업도 예상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들어왔다. 외국계 기업이라 연봉도 높다.
희한하게 돈이 꼬였다. 그래서 평생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집 있고 차 있고 통장 잔고 넉넉한데도 일을 하는 건 사실 심심하기 때문이다.
천성이 부지런 해 놀지 못하는 체질인 것이다. 그래서 진서는 최종적으로 이런 결론까지 내리기도 했다.
'신은 너에게 감정을 거의 가져가고 대신 돈을 좀 주었구나.'
감정결핍, 진서가 그에게 내린 병명이었다. 물론 진서야 한영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고 신경 써준다는 점에서 한영이 정서적으로 문제 있는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단지 남들보다 조금 감정의 폭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왜 화가 났으며, 상대는 왜 그런 헛소리를 하는지 감을 잘 못 잡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한영은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아, 머리야."
답지 않게 생각을 많이 했더니 머리가 아프다. 감정적인 부분을 워낙 간과하고 살다보니 이런 일은 쥐약인 것이다. 한영은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난 김에 인터넷뱅킹으로 잔고확인하고, 코스닥 주식을 확인하는 건 쉬운데 이런 일은 어려웠다. 그는 휴식을 취할 겸 커피를 타러 급탕실로 향했다.
늘 그렇듯이 뜨거운 물을 받아 티백을 우려낼 때였다.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한영은 누군가 차 마시러 왔구나 생각하곤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티백을 물에 타고 있을 때였다.
"이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한영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고 그곳엔 라이오넬이 서 있었다. 평소처럼 세련된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그는 여전히 모델 같았다. 하지만 마음이 상해있던 한영은 그를 흘낏 보곤 고개를 돌렸다.
"왜요?"
예상했지만 역시 차가운 반응이다. 라이오넬은 눈가를 찌푸리며 한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어떤 말부터 꺼낼지 고민하다 이내 낮은 목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어젠 그게 뭐야?"
"뭐가요?"
"몰라서 묻는 거야?"
"모르니까 묻죠."
알면 묻겠어요? 한영은 덧붙이며 투덜거렸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의 반응에 황당하다는 얼굴로 숨을 들이켰다.
"그렇게 가버리는 법이 어디 있어? 사람 민망하게."
민망이라, 그 말은 자신이 해야 할 것 같았다. 한영은 미미하게 인상을 쓰며 라이오넬처럼 작은 목소리로 따져 들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 사람 창피하게나 하고."
"내가 언제?"
"어젯밤에."
"어제 뭐?"
"....나한테 이상한 말 하게 했잖아요."
마치 자신이 야설이나 야동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다. 볼 때도 창피한 걸 직접 시키니 생각할 때마다 수치스럽다. 한영은 얼굴을 붉히며 그를 흘겼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오히려 당당했다. 그는 한영의 말에 그게 뭐, 라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좋아했잖아. 너도 즐겼으면서 왜 따지는 거지?"
"........"
그 대답을 듣고 한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뻔뻔한 남자다. 한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바싹 다가온 라이오넬을 밀었다.
"내 옆에 오지 말아요."
"왜?"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거북해요."
"뭐?"
".....부담스럽다고요."
거북하다는 말에 라이오넬은 움찔하며 행동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폭언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한영은 자신이 한 말에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았다.
라이오넬과 같이 있으면 자꾸 화가 난다. 이상한 헛소리를 하고 수치스런 말이나 시키고. 한영은 우울한 얼굴로 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그 말을 한 덕분인지 라이오넬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당분간 그와 함께 있기 싫었던 한영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편한 마음으로 퇴근했다. 한영은 맥주와 중국음식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나 왔어."
들어가자마자 인사를 던졌지만 대답은 없다. 진서는 외출한 모양이다. 혹시나 싶어 냉장고를 보니 포스트 잇이 붙어 있다.
ㅡ 승주가 자기네 대학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시켜줬어. 무대 세트 만드는 일이랑 사진 촬영이야. 오늘은 외박.
진서와 같이 먹으려고 사왔는데 음식이 아깝게 됐다. 한영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거실에 음식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 뒤엔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할 때였다. 현관에서 벨이 울린다.
한영은 급하게 티셔츠를 내리고 밖으로 나갔다.
"누구세요?"
"한영?"
낯선 목소리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한영은 경계하며 다시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상대는 밝은 목소리로 이름을 밝혔다.
"나 션이에요."
"아..... 오랜만이에요."
한영은 뒤늦게 기억나는 인물을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곧 까만 얼굴이 문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며 나타났다.
"오랜만이죠? 잘 지냈어요?"
상대는 쾌활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온다. 한영은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근데 웬일이세요?"
"얼마 전에 놀러왔을 때 두고 간 게 잇어서요.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아....네."
한영은 그가 들어올 수 있게 문 앞에서 비켜났다. 문과 비슷한 키 때문에 그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한영은 어색하게 옆에 서 있었다. 한 번밖에 보지 않은 상대라서 집에서 만나니 조금 껄끄러웠던 것이다. 반면에 상대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곧 거실 테이블의 음식들을 발견했다.
"식사 중이었어요?"
"네."
"죄송해요. 전 금방 나갈 테니 식사하세요."
션은 웃으며 진서의 방으로 향했다. 한영은 그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다 문득 음식이 많다는 것을 떠올렸다. 오늘은 진서와 술도 한잔하며 안주로 먹으려고 꽤 많은 양을 사왔던 것이다.
한영은 잠시 고민하다 진서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션을 불렀다.
"션."
"네?"
문고리를 잡고 있던 상대가 고개를 돌린다. 한영은 그에게 다가가며 거실 테이블을 가리켰다.
"혹시 식사 전이면 같이 먹지 않을래요?"
"정말? 그래도 되요?"
"네. 좀 많거든요. 진서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나가는 바람에, 어차피 저걸 혼자 다 먹을 수도 없고."
"저야 감사하죠."
션은 난데없는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한영은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을 하며 그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중국 음식 좋아해요?"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어요."
젓가락을 건네주자 그는 별 무리 없이 음식을 집었다. 한영은 외국인이 젓가락질을 잘하는 것이 신기해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션은 그 시선을 느끼고 한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요?"
"아니, 젓가락질을 잘하니 신기해서요."
"아, 친한 친구가 일본인이에요. 그래서 자주 젓가락을 사용했거든요. 녀석의 어머니가 자주 우동이나 라멘을 만들었어요."
션은 젓가락을 자유자재로 벌리며 설명했고 한영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군요. 일본인 친구가 요리를 잘하나 봐요?"
"네. 매우 잘하는 편이죠. 덕분에 저도 곁다리로 배워봤는데 꽤 재밌어요."
"요리 잘해요?"
"그럭저럭."
말은 겸손하지만 표정을 보니 정말 잘할 것 같았다. 한영은 헤에 소리를 내며 젓가락을 문 채로 부러움의 눈빛을 보냈다.
"난 라면이나 토스트 정도가 전분데. 대단하네요."
"요리 못해요?"
"네. 거의 안 해요. 대부분 시켜먹거나 외식을 하죠."
"중국은 남자들이 요리를 잘하던데. 일본이나 한국은 아닌가 보군요. 제 친구도 자신이 남자치곤 특이하게 요리를 잘 한다고 했거든요."
한영은 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국에선 여자들이 요리를 잘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션은 확실히 덩치가 큰 만큼 식욕이 왕성했다.
"제가 치울게요."
게다가 매너까지 좋았다. 그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한영의 몫까지 깨끗하게 치워버렸다. 그의 손길은 굉장히 빠르고 깔끔해서 집주인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한영은 머쓱하게 소파에 앉아있다 냉장고로 다가갔다.
"맥주 마실래요?"
션은 두말없이 예스를 외쳤다. 한영은 그에게 맥주를 건넸다. 원래는 낯선 사람과 둘만 있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딱히 할 말도 없고 심심해서다. 그러나 션은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데다 전의 인상도 좋았기 때문인지 불편한 느낌이 없다.
"그런데 집엔 뭘 두고 간 거예요?"
"참고자료를 프린트 한 파일이요. 깜빡하고 진서 방에 놓고 갔네요."
한영이 묻자 션은 주저 없이 대꾸했다. 사실은 일부러 놓고 간 것이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 한영은 그 말에 별 의심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기 전에 말해요. 내가 찾아줄게요. 진서 방은 어지러워서 찾기 힘드니까."
진서는 툭하면 아무 데나 물건을 던지고 다녀서 방 안이 늘 어지러웠다. 그래서 한영은 가끔 시간이 나면 대청소를 하곤 했다. 션은 얼마 전에 와서 그 방을 봤기에 웃으며 조금 어지럽긴 하다며 맞장구를 쳤다.
친구지만 한영과 진서는 상당히 달랐다. 직업도 그렇고 성격도 다르지만 생김새도 그렇다. 진서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지만 한영은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니었다. 속 쌍꺼풀이 있는 동그란 눈매에 유순한 생김새, 그래서 나이보다 더 어리게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은 데이트 안 해요?"
"네? 데이트라니 무슨?"
"진서한테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안 만나나 보네요?"
션은 슬쩍 운을 띄웠다. 어떤 사람과 만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잘하면 어느 정도의 사이인지 알아낼 수도 있고. 그는 속마음을 숨긴 채 자연스레 물었다. 그러자 한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런 사람 없어요."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화를 참는 얼굴이다. 저 얼굴을 보니 관계가 제대로 발전할 일은 없다고 봐도 되겠군. Yes, 션은 속으로만 외치며 겉으론 미안한 듯 웃었다.
"아, 미안해요. 헤어졌군요."
"그럴만한 사이도 아닌 걸요. 아무튼 그 이야긴 넘어가죠."
한영은 손을 휘휘 저으며 귀찮다는 얼굴을 했다. 싸운 걸까 아니면 끝난 걸까. 션은 속으로 가늠하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한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
"네?"
갑자기 바싹 다가온 션을 보자 한영은 조금 놀랐다. 그는 감자칩을 손에 든 채로 상대를 멍하니 바라봤다. 션은 그 모습을 귀엽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
"모레 저녁에 뭐해요?"
"모레요? 아직 일정 없는데."
연수를 온 것이라 야근할 일도 없으니 저녁은 늘 한가하다. 한영이 별생각 없이 대꾸하자 션은 손가락을 튕기며 방금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잘 됐네. 그럼 나와 파티 가지 않을래요?"
"파티?"
"제가 자주 가는 클럽에서 모레 파티가 있거든요."
션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갑자기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한영은 그런 상대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런 곳에 내가 가도 돼요?"
"물론이죠. 원래 파티란 게 여러 사람이 모이는 거니까요. 그리고 약속했잖아요."
"약속?"
한영은 언제 자신이 그와 약속을 했나 회상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 약속."
재미있는 곳에 데려가 준다던 그의 외침이 이제야 기억이 난다. 한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션을 올려다봤다. 그 얼굴이 마치 '이제야 기억났는데 그거 정말이었어?'라고 뻔히 써져 있어서 션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왠지 놀려주고 싶어진다. 그는 짐짓 실망한 척하며 물었다.
"잊고 있었어요?"
".....네. 미안해요."
그것마저 한영은 솔직하게 대꾸했다. 션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 순진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꼭 같이 가요. 굉장히 재미있을 테니."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션은 빙긋 웃음 지었다.
".....예."
한영은 대체 어떤 파티일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저 사람과 파티에 가는 거지? 하지만 약속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 미안해서 거절도 하지 못했다. 제 무덤을 팠다는 것도 모르는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과자를 먹으며 고민했다.
드레스 코드는 딱히 없었다. 답답한 정장만 아니라면 올누드도 허용되는 곳이라니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괜히 껄끄러웠다.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룸메이트 때문이었다.
"진서야."
"응?"
한영은 진서가 돌아오자마자 그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한영이 부르는 목소리에 느리게 대답한 그의 시선은 여전히 TV에 고정되어 있다.
"왜?"
시큰둥한 태도에 한영은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다 이윽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 션이랑 파티에 가게 됐어."
"아? 그래? 잘 다녀와."
예상과 다르게 진서는 흔쾌히 허락한다. 한영은 그 반응에 조금 놀랐다.
"그래도 괜찮아?"
"네가 무슨 내 아들이냐? 파티 가는 거 허락 맡게?"
진서는 외출할 때 입었던 옷을 벗어 던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대꾸한다. 한영은 그 대답에 당황해 하며 다시 설명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션이랑 너랑 그런 사이잖아. 그런데 내가 가도 돼?"
"몇 번 잤다고 사귀냐? 신경 쓰지 마."
진서는 한영의 반응이 우스운지 킬킬거리며 대꾸하곤 침대에 누워 쿠션에 고개를 처박는다.
어제부터 진서는 승주가 다니는 예술대학에 공연 무대 설치와 촬영을 하러 나갔다. 외박을 한다더니 정말 아침에야 녹초가 되어 들어왔다. 그리고 오후에 또 나가서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온 것이다. 그는 무척이나 피곤한지 소파에 눕자마자 바로 눈을 감는다.
"나 잘게. 내일 아침에 깨우지 마라."
"응. 내일은 안 나가는 거야?"
"다 끝났어. 잘 자."
진서는 대충 손을 흔들고 나선 이불을 덮어 썼다. 인제 그만 자겠다는 신호였다. 다행히 깊은 사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영은 안심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제 션은 꽤 늦게까지 머물다 돌아갔다. 한영은 단순히 맥주나 한잔하고 보낼까 했는데 그의 화술에 말려든 탓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화제들이 나왔고, 박학다식한 션이 말하는 것들이 신기해서 듣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낯선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한참 어린 사람과 말이다. 만약 같은 나라 사람이라면 나이차이 때문에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어리다고 생각되지도 않았고 상대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친절하고 싹싹하고 말도 잘하고.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그리고 예의도 바르고. 사실 이 이유가 가장 맘에 든다. 누구와는 다르게 배려심도 있다는 것. 물론 그 누구는 라이오넬이었다. 처음엔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실망한 뒤로 한영은 그를 피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차피 그는 사무실 안에 있고 자신은 파티션들 사이에 있으니 얼굴을 마주할 일은 회의시간뿐이다. 물론 라이오넬은 한영을 계속 주시했지만 그는 일에 집중하느라 시선을 깨닫지 못했다.
보통 사내에서 엮이다 깨지면 이렇게 되는 걸까? 나중엔 자연스럽게 안면 몰수하는 건가?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한영은 혼자 침대에 누워 이런 고민을 했다. 사실 진서에게 묻고 싶지만 그는 피곤하니 불가능했다.
그러나 고민하다 보니 또 머리가 아프다.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그는 속 편하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약속 당일, 어쩌다 보니 번호를 교환한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왔다. 내용은 일곱 시에 데리러 오겠다는 것이다. 한영은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다시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오늘 오후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의 손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바삐 움직였다.
마침 그의 옆을 지나가던 레베카가 한영을 보더니 조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 그거 언제까지 가능해?"
"두 시간 이내로 끝낼 것 같아요. 급해요?"
"조금."
"그럼 한 시간 내로 해볼게요. 마무리하는 중이니 금방 끝날 거예요."
"고마워."
레베카는 손으로 키스를 날리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영은 다시 집중해서 화면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자났을 무렵, 일을 끝낸 한영은 레베카의 사무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자 곧 안에서 들어오라는 방주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 끝났, 어요."
한영은 조금 어색하게 말을 끝냈다. 왜냐하면 그곳엔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주인은 그런 한영의 기색을 알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와 한영이 들고 있는 파일을 가져갔다.
"와아, 정말 다 끝낸 거야? 고마워."
그녀는 파일을 펼치며 집중했고 한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옆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곳엔 라이오넬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창가에 몸을 기댄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못마땅한 기색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 상대를 무시하며 한영은 그럼 이만 나가보겠다며 짧게 인사하고서 밖으로 나섰다.
"한, 잠깐 나 좀 보지."
그러나 문고리를 잡기 직전에 붙잡히고 만다.
".....무슨 일이시죠?"
한영은 싫었지만 회사 안이라 거절하지도 못하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다른 말이 없었다.
"따라 와."
그는 레베카가 다 본 서류를 빼앗듯이 가져가선 먼저 앞장섰다. 어차피 그녀가 본 뒤 라이오넬에게 갔을 서류이긴 했다. 하지만 태도가 무례했다. 한영은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레베카는 익숙했기에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내용 괜찮던데? 아무튼 수고했어요."
그녀는 한영의 어깨를 살짝 두들기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한영도 짧게 인사를 한 뒤 라이오넬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상대는 어느새 문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한영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자 문을 닫고 곧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영은 조금 열린 문을 잡아당기며 들어가기 싫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라이오넬은 책상에 걸터앉으며 물어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 킴이 누구지?"
"예?"
"네가 그립다던 상대 말이야. 성이 김씨인가?"
"....그런 사람 없다니까요."
한영은 또 그 소리인가 싶어 인상을 구겼다. 그런데도 라이오넬은 이번엔 단단히 작정을 했는지 집요하게 물어왔다.
"넌 잊었는지 몰라도 난 똑똑히 기억해. 분명히 한국에서 보고 싶은 존재라도 있냐고 물었더니 킴이라고 말하다 끝을 흐렸잖아. 게다가 그 말이 끝난 후엔 말없이 생각에 잠겼고."
"네?"
"그리고 너한테 무척 소중하다고 말했어. 기억 안 나?"
".....그게."
한영은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봤다. 분명 그런 이야길 나누었던 기억은 있엇다. 그렇지만 뚜렷하게 떠오르진 않는다. 그는 열심히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레스토랑에서 그 이야길 한 것 같은데 근데 내가 한국에 보고 싶고 소중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었던가? 한영은 끙끙거리며 머리를 쥐어짰다.
"나중엔 고라고 말하다 또 끝을 흐렸어."
".....그러니까."
"게다가 식사도 거의 남겼잖아. 무척이나 우울한 얼굴로."
"아!"
라이오넬의 말에 한영은 그제야 감을 잡았다. 식사를 떠올리자 그날 먹기 싫어서 남겼던 일이 기억난 것이다. 웬만해선 남기는 일이 없지만 그날따라 음식이 너무 느끼했던 것이다.
그러자 당시 간절하게 생각했던 존재도 동시에 떠올랐다. 한영은 드디어 생각이 나자 기뻤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에 인상을 구겼다. 설마 이 남자, 그것 때문에 자신을 오해하고 있었던가? 그렇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혹시 김치 얘기하는 거예요?"
"뭐?"
라이오넬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김치 얘긴 왜 나오는지 궁금해서였다. 한국의 건강식품 김치, 라이오넬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김치가 왜....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김치의 스펠링도 kim으로 시작한다는 게 떠오른 것이다.
"....정말 김치 생각했어?"
라이오넬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그냥 김씨 성을 가진 남자인 게 낫지. 라이오넬의 얼굴이 굳어가기 시작했고 한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나 보군요."
둘은 상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영은 세상에 다시없는 바보를 바라보는 눈빛이었고, 라이오넬은 대낮에 귀신을 본 표정이었다. 그의 하얀 얼굴은 핏기가 가셔 마치 밀랍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람 아니었어?"
"사람이라고 한 적 없는데요."
한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냉정하게 대답했다. 라이오넬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문다. 그리고 잠시 후엔 이해가 덜 되었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김치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한 거야?"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라이오넬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영은 당당하게 어깨를 피며 대꾸했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다 그래요."
김치 없이 밥 먹는 건 한국인에겐 힘든 일이다. 게다가 같은 동양권도 아닌 외국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다시 김치 생각이 나자 우울해진다.
"샐러드와 피클 없이 피자를 끼니마다 먹어봐요. 그럼 내 심정을 이해할 테니. 난 여기 와서 늘 그런 기분이었다고요."
프랑스 요리도 지겹고 중국요리도 지겹고 스테이크도 햄버거도 지긋지긋했다. 느끼함으로 다져진 속을 시원하게 풀고 싶었다. 이 순간, 격렬하게 먹고 싶은 것이 있다.
"순대국 먹고 싶다. 제기랄."
그는 암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당황한 얼굴을 한다.
"그럼 고는? 고는 뭔데?"
이 인간, 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이런다. 한영은 고개를 치켜든 채 싸늘한 눈으로 라이오넬을 흘겼다.
"고추장 몰라요?"
"......그게 뭔데?"
말을 말자. 한영은 얼어붙은 라이오넬을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상대하는 자신이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사무실에선 진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한영, 내가 정말 미안해."
평소에 거만하기로 소문난 라이오넬이 자신보다 작고 직급도 낮은 상대에게 애처로운 목소리로 애원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것을 본 직원들 중 반은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자신이 낮잠을 자다 개꿈을 꾸는 건가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더 신기한 건 평소에 말이 없는 한국인이었다.
"됐어요. 제가 오해하게 했으니까 그런 거겠죠."
아까 전까지의 멍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분명하고 날카롭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그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덕분에 라이오넬은 애가 바짝 타들어갔다.
"내가 실수했다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원래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잘 모를 수도 있는 거예요."
"화 풀어. 설마 김치 얘기인 줄 몰랐어."
"사실 김치를 아는 외국인이 신기한 거죠."
단단히 삐친 한영은 삐딱하게 대꾸했다. 급탕실에서 냉수를 마시는 한국인과 그 곁에서 쩔쩔매는 왕자님이라. 직원들은 오만하고 남부러울 게 없는데다 남 부려 먹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라이오넬을 왕자님이라 부르며 빈정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은 것이 사실 라이오넬은 이 회사 회장의 손자인 것이다.
희귀한 장면을 바라보며 한영의 맞은편에 근무하는 존과 레이놀드는 시큰둥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 친구, 회장 이름 모르는 거 아냐?"
"모를 걸, 그러니까 저러는 거겠지."
"그래도 대단한데. 왕자한테 저렇게 세게 나오는 걸 보니 배짱도 두둑하잖아. 왕자가 자기 나라 험담이라도 했나?"
"모르지. 아무튼 조용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터프하군."
그들은 만담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커피로 건배를 했다. 안그래도 졸린 오후였는데 덕분에 잠이 깼다. 둘은 아직도 급탕실 안에서 싸우는 둘을 보며 커피를 들이켰다.
라이오넬은 그날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귀찮게 했다. 한영은 나중엔 정말 괜찮으니 그만 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듣지 않는다.
"내가 사과하는 의미로 저녁 살게. 응?"
라이오넬은 어느새 자신의 사무실까지 끌고 와선 한영을 달래기 시작했다. 사뭇 다른 태도에 한영은 어색해 했지만 라이오넬은 한영의 허리를 껴안아선 은근슬쩍 허리와 엉덩이를 매만진다. 떼어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약속 있다니까요. 정말 오늘은 안 돼요."
"그럼 데려다 줄 테니 기다려. 알았지?"
".....알았어요."
"좋아. 그럼 주차장에서 만나지."
"네. 그럼 전 나가 볼게요."
하도 끈질기게 굴어 어쩔 수 없이 수락하고 말았다. 한영은 겨우 그의 품에서 풀려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자신을 흘낏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영이 고개를 들자 사람들은 잽싸게 시선을 돌려 각자 퇴근하거나 일하는 척을 한다. 그 사실을 눈치 못 챈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PC를 끄고 퇴근 준비를 마친 그는 가방을 챙겨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다. 같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한영은 라이오넬의 자리로 향했다. 보통 직원들과 다르게 간부들은 자신만의 주차공간이 있다. 잠시 기다리자 곧 라이오넬이 나타났다.
그가 문을 열어줘 차에 탄 한영은 안전벨트부터 맸다. 라이오넬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야길 꺼냈다.
"다음엔 당신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데려갈게. 기대해도 좋아."
".....네."
한영은 성의 없이 대꾸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굴하지 않고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한."
"네?"
"키스해도 돼?"
언제는 허락 맡고 했나. 한영은 얼떨떨한 얼굴로 라이오넬을 바라봤다. 그는 한영이 예스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요."
그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워 한영은 고개를 돌리며 허락도 거절도 아닌 대답을 했다. 그러자 라이오넬의 파란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고 곧 입술이 마주 닿는다. 그의 손은 어느새 한영의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와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라이오넬이 재킷 안으로 손을 넣어 한영의 등과 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다정하게 쪼는 듯한 키스도 얼굴에 비처럼 쏟아진다. 그러자 화가 조금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한..... 한......"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니 마음이 약해진 걸지도 모른다. 한영은 어쩔까 고민하다 하나만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가장 기분 나빴던 점이었다.
"의심하지 말아요. 그런 거 질색이니까."
"응, 내가 잘못했어."
라이오넬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한영의 뺨을 한 웅큼 깨물고 입술을 핥아왔다. 이로 살짝 입술을 깨물어 오며 혀를 조심스레 밀어 넣어 굴리자 한영은 어쩔 수 없이 키스에 응했다.
혀가 얽히는 사이, 밀착된 하체에서 어느새 부풀어있는 중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라이오넬은 은근슬쩍 허리를 움직여 한영의 중심에 자신의 사타구니를 비벼온다. 슬쩍 뒤로 몸을 물렀지만 재빨리 엉덩이를 움켜쥐어 다시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아.....여긴....."
"괜찮아. 안 보이니까."
차는 선팅 되어 있고 주차장 내부는 어두웠다. 라이오넬은 한영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셔츠를 빼내어 손을 집어넣었다. 배를 느리게 쓰다듬다 점점 가슴 쪽으로 다가온다. 이윽고 젖꼭지를 꾸욱 누르다 그 주변을 짓누르는 행위에 한영은 약하게 신음을 흘렸다.
"당신이 다른 남자를 생각한다고 하니 질투가 났어."
"으응.....아....."
"당신 입으로 내가 처음이라고 했잖아. 그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도 없는 거지? 나뿐인 거지? 그렇지?"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관계를 맺는 건 라이오넬 뿐이었다. 라이오넬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의 셔츠를 위로 들어올렸다. 밑에 있는 단추를 풀자 그리 헐렁하지 않은데도 쉽사리 끌어올려 진다.
라이오넬은 한영의 유두를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이내 혀를 굴려 넓게 핥아 오자 한영은 달콤한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젖힌다.
라이오넬은 빙긋 웃으며 손으로 젖꼭지를 비틀었다. 쾌락에 약한 몸이었다. 여태껏 동정을 지킨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래서일까? 조금만 자극을 줘도 쉽게 무너지고 마는 이 육체가 사랑스러웠다.
옆구리를 스치듯이 쓸어내리며 라이오넬은 그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하앗, 한영이 약하게 비음을 흘리며 근육을 경직시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는 잽싸게 한영의 바지를 벗기고 다리를 들어 올려 자신의 허리에 감게 했다. 조금 당황해 하긴 했지만 적극적인 반항은 없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살필 뿐이다. 곤란해 하는 표정이 귀여워서 그는 다시 한영의 뺨에 키스했다.
"괜찮아..... 착하지? 그래. 엉덩이를 더 들어봐."
살살 달래며 어루만져주자 한영은 곧 몸의 긴장을 풀고 자신에게 몸을 맡긴다. 좁은 곳이라 바지를 벗기는 것은 어려웠다. 한영의 신발을 벗기고 브리프와 함께 일단 무릎까지 내리고나서 다리를 오므리게 했다. 그러자 쉽사리 벗겨진다. 라이오넬은 뒷좌석으로 그의 바지를 던지고 자세를 잡았다.
어느새 한영은 밑을 훤히 드러내고 다리를 벌린 자세가 되었다. 자신의 벨트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리던 라이오넬은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꽂아 넣고 싶지만 최대한 인내하며 그의 곁에 바싹 붙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침으로 적신 뒤 한영과 자신의 페니스를 맞잡았다. 반쯤 흥분해있던 두 개의 성기는 점점 크기를 더해나간다. 뜨거운 살덩어리가 커다란 손에서 부딪친다. 완전히 발기가 되자 라이오넬은 한영의 위로 자신의 몸을 눕힌다.
"끝까지 가진 않을 거야."
".....아.....으응."
하체가 맞닿아 비벼지자 한영의 입에서 들뜬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라이오넬은 그가 흥분하는 것을 알고 더욱 난폭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어느새 끝 부분에서 조금씩 액이 스며나와 점점 질척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터질듯 부푼 성기가 자신의 것을 짓눌러오며 자극하자 한영은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는 마음 편히 이 상황을 즐길 순 없었다. 만약 누가 지나간다면, 다리를 벌린 채 남자에게 깔려 신음하는자신을 보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자신들의 움직임에 맞춰 차가 움직이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영은 걱정이 되었지만 도무지 이 행위를 멈출 수가 없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화끈한 감각이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아.....아아! 아."
"하아....윽."
어느새 땀이 흘렀다. 밀폐된 공간은 뜨거운 숨소리와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랫배 쪽이 지끈거리며 사정감이 치고 올라온다. 한영은 허리를 뒤틀며 라이오넬의 중심에 자신의 것을 비볐다.
"아......나......나, 하아......아!"
밀려오는 쾌감에 한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라이오넬의 어깨를 꽉 쥔 그는 이내 토정하고 말았다. 하얀 액체가 자신의 배와 라이오넬의 성기를 적신다. 한영은 시트에 몸을 기대며 나가떨어졌다.
라이오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영의 다리를 들어 올려 좁은 입구에 자신의 것을 비볐다. 쿡쿡 찔러오는 느낌에 한영은 몸서리를 친다. 곧 뜨거운 액체가 한영의 애널에 가득 퍼부어진다.
흘러내린 액체가 시트를 적셨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라이오넬은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남들보다 큰 성기를 한영의 엉덩이 사이에 비비며 나른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하아....한."
"으응......."
"넣고 싶어. 당신의 안에 내걸 가득 퍼붓고 싶어."
"안 돼.... 약속이."
라이오넬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한영은 안 된다고 말하려했지만 입이 막혀 끝까지 거부하는 건 불가능했다. 라이오넬은 열정적인 키스를 퍼부으며 한영을 몰아붙였다.
다행히 그걸로 차에서의 행위는 끝이었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키스를 했고 한영은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얼얼한 입술을 매만지며 그는 차에서 내렸다.
"그럼, 내일 봐."
라이오넬은 한영의 입술을 매만지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붉게 충혈된 입술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눈빛은 흡사 포식을 끝낸 야수의 기분 좋은 미소 같았다. 약간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한영은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십오 분 뒤엔 션이 데리러 오기로 했지만 기운이 없다.
그는 느리게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대충 옷만 갈아입고 나가야지, 그 전에 씻긴 해야 하는데. 휴지로 닦긴 했지만 왠지 찝찝했다. 끈적한 액이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 아직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욕실로 향했다. 스펀지로 빨리 몸을 닦고 물로 헹굴 때였다. 밖에서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의 시간을 두고 두 번쯤 울리자 한영은 아차 싶어 재빨리 몸을 헹궜다.
"한? 안에 없어요?"
"잠깐만!"
한영은 허리에 대충 수건만 두르고 욕실을 나섰다.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문으로 반쯤 뛰어갔다. 급하게 문을 열자 앞엔 역시 션이 있다.
"아, 미안해요. 씻느라고."
"아."
션은 조금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본다. 한영은 아무생각없이 사과를 하고는 제 방으로 향했다.
"잠깐만요. 금방 준비할게요."
골반에 걸쳐진 수건은 훤히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훤히 드러난 상체에선 묘하게 붉은 기를 띠는 피부가 선명했다. 물기를 제대로 닦지도 않아 촉촉이 젖은 살결이 실내조명에 반사되어 션은 자신도 모르게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긴 시간은 가능하지 않았다. 한영은 곧 방으로 사라졌고 부스럭거리는 소음만 들려온다.
약 오 분 정도가 지나자 한영은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조금 헐렁한 티셔츠와 구제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고 나타난 그는 션의 곁으로 다가왔다.
"가죠."
".....당신 옷이에요?"
전에도 느꼈지만 한영의 평상복은 이미지와 안 어울리게 조금 화려한 감이 있었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믹스매치가 의외로 과감한 것이다. 션의 물음에 한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난 여기 올 때 정장만 가져왔어요. 사이즈가 비슷해서 평상복은 진서 옷을 입으면 되니까."
사실 옷 사기도 귀찮아해서 자신의 옷은 얼마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진서가 옷장을 채우는 데 굳이 자신까지 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군요. 하긴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니 서로의 것이 구별 없겠네요."
"네, 속옷 외에는 거의 같이 써요."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유행에 전혀 민감하지 못한 한영은 사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속옷부터 스킨 하나까지 진서가 전부 골라주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머리스타일도 마찬가지다. 단정하면서 얼굴형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짧은 커트 머리는 진서가 정해준 것이다. 정장은 물론, 넥타이 하나도 진서에게 카드를 주면 알아서 사다준다. 그리고 옷을 입을 때도 진서가 입었던 대로 따라 입는 의외의 비열함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영은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에 혹시 몰라 얇은 재킷을 챙겨들었다.
"다 됐어요. 가요."
젖은 머리카락이 귀찮은지 머리를 털면서 한영이 말했다. 그를 쳐다보느라 깜빡 잊고 있던 션은 뒤늦게 대답을 하곤 한영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런던의 밤거리는 우아하면서도 신선한 매력을 가득 흩뿌린다. 안개에 젖은 밤거리의 불빛들을 도시의 아름다움을 한껏 돋보이게 한다. 맑은 날씨의 거리도 아름답지만 이런 풍경도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속편하게 생각하는 한영과 달리 션은 진지하게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비가 올 것 같군요."
"어? 우산 없는데 어쩌죠?"
"아마 가랑비 정도나 올 것 같아요. 급하면 우산을 사면 되니 너무 걱정 말아요."
한영이 당황해 하자 션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한영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예요?"
"따라와 보면 알아요."
위치를 물었지만 션은 쉽사리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거의 다 왔다는 말을 흘리며 계속 어딘가로 향했다. 한영은 이곳이 소호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밤거리는 무척이나 밝았다. 대부분의 클럽이 모여 있고 카페나 bar, 나이트클럽까지 즐비하다. 밤거리 문화가 활발한 곳, 이른바 런던의 환락가였다.
션과 같이 있기에 무서운 건 아니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서울에 있어도 진서와 두 번 정도밖에 가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과 함부로 인연을 맺는 것, 인위적인 만남이 싫기도 했고 귀찮기도 해서 게이바조차 한 번밖에 가보지 않았다.
션은 이곳이 능숙한 듯 골목들을 잘도 알아서 들어간다. 한영은 아무 생각 없이 그의 뒤를 따르다 점점 여자들의 비율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남자들이 유독 많다고 느끼는 어느 건물 앞에서야 왠지 분위기가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션, 여기 혹시?"
"맞아요. 게이 클럽이죠."
런던에선 꽤 유명한 곳이라고 덧붙이며 그는 한영의 팔을 잡아왔다.
"한은 운이 좋았어요. 오늘은 흥미로운 파티가 열리는 날이거든요. 무척 재미있을 거예요."
그는 주머니에서 티켓 두 장을 꺼냈다. 한영은 당황스러워 그를 멍한 얼굴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션은 그런 한영을 보며 친절하게 미소 짓더니 천천히 팔을 끌어당겼다.
사람들의 줄이 꽤 길었지만 션은 문지기와 안면이 있는지 바로 얼굴만 보고 패스였다.
"여기서 일이라도 했어요?"
한영이 호기심에 묻자 션은 조금 표정이 바뀌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황당한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아니고, 몇 번 왔었죠. 주인이랑 친하기도 하고."
"아.... 그런구나."
션은 그 이후로도 몇몇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악수를 하거나 가볍게 포옹을 하는 등의 몇 차례 인사가 끝나고 그가 앉은 곳은 구석진 곳에 있는 테이블이었다.
한영은 자리에 앉아서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클럽 안은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밖과 달리 안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진한 스킨십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사람들의 복장이 대부분 맨살을 드러내고 있던 것이다.
나비넥타이에 브리프만 입은 자들과 혹은 청바지만 입고 있는 남자들, 드랙퀸, 심지어 속옷만 입고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남자들까지. 파티라더니 정말 화끈했다.
"맙소사."
이런 풍경은 처음 보는 한영은 입을 떡 벌리고 구경에 열중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차이점을 알아냈다. 나비넥타이에 흰 브리프만 입은 사람들은 직원들인 듯 서빙을 하기도 했다. 플로어에서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전문적인 게이 스트리퍼 같았다.
관객에게 다가가 스트리퍼는 농염하게 웃으며 브리프를 끌어내렸고 한 남자의 어깨를 다리로 휘감는다. 남자들은 환호하며 그의 얇고 작은 팬티에 돈을 꽂아 넣었다.
".....대단하네요."
자신은 차마 흉내 낼 수도 없는 일이다. 한영은 민망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양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백인과 흑인 들이었다.
"게이바도 처음인가요?"
멍한 얼굴로 연신 눈을 굴리는 한영에게 션이 물었다.
"그건 아닌데, 예전에 갔던 곳은 조용한 곳이었거든요.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에요."
남자들끼리 몸을 부대끼며 춤추는 걸 보니 정말 별세계에 온 기분이다. 한영은 괜스레 열이 올라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목으로 넘겼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왠지 목이 뜨겁다.
"이거 물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건 보드카."
션은 으엑- 소리를 내는 한영을 보며 웃었다. 겨우 목으로 넘긴 한영은 혀를 내밀어 질색을 했다. 물인 줄 알았네. 그는 다른 걸 찾았다. 하지만 테이블 위엔 그와 똑같은 잔들뿐이다.
"오늘 행사에 협찬해주는 곳이 보드카 브랜드라서 아마 무료로 제공되는 걸 거예요."
".....하아."
차라리 맥주가 낫지. 한영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보드카로 목을 축였다. 물론 마신다기보다는 맛만 보는 정도였다. 그런 한영을 보며 션은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독하니까 너무 많이 먹지 말아요."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얌전히 말을 듣는 상대가 귀여워 션은 기분 좋게 웃었다.
"파티지만 공연도 많아요. 댄서들이나 스트리퍼가 굉장히 섹시하기도 하고, 곳곳에서 포르노 뺨치는 장면도 벌어지는데다 또 멋진 남자들도 감상할 수 있으니 이만한 재미가 없지요."
션은 한영의 귀에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한영은 움찔거리며 피하려다 워낙 주위가 시끄러우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자신의 등 뒤로 그의 손이 올라오긴 했지만 몸을 숙이느라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원래는 런던의 밤거리를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런던아이는 좀 시시하겠죠?"
"관람차요? 그건 별로."
물론 겉보기에 예쁘긴 하지만 그다지 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한영의 말에 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기로 골랐어요. 한국에선 몰라도 외국이니 관광 왔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으니까."
"고마워요."
확실히 한국에선 이런 곳에 가는 것이 거북하긴 했다. 괜히 아는 사람 눈에 띄거나 해서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
"혹시 이곳이 재미없거든 말해요. 다른 델 가면 되니까."
"어딜?"
"당신이 즐거울 만한 곳?"
사실 그건 한영 자신도 몰랐다. 딱히 취미나 좋아하는 것이 없으니 어디에 가도 시큰둥한 것이다. 물론 그의 기본적인 취향은 대중적이었다. 예쁜 것을 보면 감탄하고 멋있는 사람을 보면 호감을 느낀다. 단 그 수치가 남들보다 현저히 낮을 뿐이다.
그래도 한영은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어쨌든 자신을 생각해서 데려와 준 것이니까.
"이곳도 충분히 재밌어요."
"그럼 다행이고요. 아, 춤출래요?"
"그건 사양할게요. ....술이나 먹죠."
춤이라곤 유치원 이후로 춰본 적이 없다. 자신의 뻣뻣하고 퇴화된 관절을 자랑하긴 싫어 한영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차라리 술을 마시고 말지. 그는 상대를 향해 잔을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술을 마시는 동안 몇 번의 공연이 펼쳐졌다. 스트리퍼들의 에로틱한 무대, 직원들의 유쾌한 군무에 이어 가수 뺨치는 실력을 가진 이들의 노래자랑까지.
사람들은 무척이나 흥겨워했고 개중엔 플로어에 올라가 춤을 추기도 했다. 모두 파티를 즐기고 있다.
한영도 무대에 누군가 나올 때마다 넋을 잃고 바라봤다.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에 자신도 조금씩 흥이 났다. 그렇지만 나서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아 즐겁게 구경할 뿐이다. 그러다 문득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션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자신이 너무 열중했나 싶어 한영은 미안해졌다. 옆에 사람을 놔두고 무대만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랑 있으면 가뜩이나 심심할 텐데."
한영은 쑥스럽게 웃으며 반성을 했다. 하지만 상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자신이 재미없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난 아니라고 생각해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정한 위로의 말에 한영은 머쓱한 기분을 느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르듯이 당신은 보통 사람들보다 조용한 것 뿐이죠. 적극적이지 못한 것이 꼭 나쁜 건 아니잖아요."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자신이 사교적이지 못한 건 알고 있다. 한영은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션을 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이상하게 정신이 몽롱하다. 실내가 어두운 탓도 있고 조명이 어지러운 탓도 있지만 취했기 때문이다. 홀짝거리다 보니 어느새 독한 보드카를 다섯 잔이나 비웠다. 여태껏 취할 정도로 마신 적이 거의 없는데 처음 마시는 술이라 정도를 가늠하지도 못하겠고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취기도 느끼지 못했다.
세수라도 하고 와야 하나. 한영은 어지러운 정신을 추스르려 애썼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는 자리에서 조심히 일어났다. 그런데 일어선 순간 머리가 핑 돈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는 균형을 잃었다.
"괜찮아요?"
옆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한영은 그제야 자신이 취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요. ....취한 것 같아요."
낭패 짙은 표정을 지으며 한영은 션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하지만 한 번 술이 돌자 계속 어지럼증이 일어났다.
"답답한데....."
한영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션은 그를 잡아 일으켰다. 상대적으로 작은 몸은 가벼워 그의 뜻대로 쉽게 움직인다.
"나가죠. 바람 좀 쐬면 나아질 거예요."
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이끄는 대로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사람이 워낙 많아 이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가는 동안 한영은 여러 사람과 부딪쳤다.
겨우 밖으로 나오자 비에 젖은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온다. 한영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 뱉어냈다.
"하아....."
하지만 술기운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벽에 기댔다. 취해서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러면 션한테 미안한데, 재미있게 놀지도 못하고 혼자 구경만하다 취하기까지 하다니. 최악이었다. 한영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옆엔 아무도 없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자신을 부축하던 션이 보이지 않는다. 한영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후엔 급하게 움직이다 벽에 팔을 부딪쳤고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팔을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그때 션이 다시 나타났다. 한영은 퍼뜩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션의 손엔 어디서 구해온 건지 생수병이 있었다. 그 병은 곧 자신에게 건네졌다.
한영은 그가 잠시 사라졌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기에 갑자기 나타나자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놀라움보단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되는 면이 강했다.
"졸려요."
한영은 벽에 몸을 기대며 솔직히 말했다. 졸렸다, 술기운이 몸을 잠식하자 계속 눈이 감기는 것이다.
"이런."
"차이나타운 부근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쓰러지면 안 되죠. 여긴 위험하다고요."
".....왜요?"
"몰라서 묻는 거?"
"응. 몰라요. 왜 안 되는데요?"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취해서 살짝 풀린 혀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아이의 서툰 발음 같았다. 취해서 상기된 볼과 반쯤 감긴 눈, 그리고 멍한 얼굴도 너무나 무방비했다.
"여긴 늑대들이 너무 많거든요."
션은 한영의 허리를 감아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한영은 순순히 기대온다.
"늑대?"
".....네. 늑대요."
"어떤?"
"그거야 모르죠. 늑대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괜찮아요. 당신이 있잖아요."
그 팔뚝이면 늑대쯤이야 뭐, 한영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런 한영의 말에 션은 실소했다. 가장 위험한 건 까만 피부와 2m에 가까운 체구를 가진 뉴욕 출신의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한영은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품에서 반쯤 조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느리게 깜빡이는 눈은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았다.
션은 한영을 근처 모텔로 데려왔다. 그는 거리에서 자신에게 안긴 채 잠이 들었고, 택시를 잡으러 가기엔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운 한영은 새근새근 잠만 잘 자고 있다.
"한? 안 들려요? 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조금씩 웅얼거리거나 몸을 뒤척이는 걸 보니 들리긴 하는 모양인데 일어나기 싫은 것 같다.
"후우."
션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한영의 위로 몸을 굽혔다. 어쨌든 옷이라도 벗겨 편하게 자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한영의 허리를 들어올려 재킷을 벗겼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쇄골 밑의 붉은 흔적, 다른 피부와는 색이 다르다.
알레르기나 피부 트러블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한영의 아파트에서부터 마음에 걸리던 그 붉은 기운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긴 것이 틀림없다.
'아직도 그 남자와 만나는 건가.'
얼마 전에 싸운 것 같았는데 아직 헤어진 건 아닌 모양이다. 션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곳을 쓰다듬었다.
"으응......"
그러자 한영이 간지러운지 몸을 뒤튼다. 잠결에 내뱉는 낮은 목소리에 션은 순간적으로 놀랐다. 손을 떼고 머뭇거리자 한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잠을 잔다.
션은 그 반응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잠시 뒤엔 왠지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게 재우는 것이 오늘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션은 오늘 한영과 친해지고자 약속을 정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고 그와 가까워지려고 일부러 만난 것이다. 경계심을 풀기 위해 게이바에도 데려갔다. 그런 분위기에선 조금 더 대담해지기 마련이니까. 비록 한영이 조금 답답한 성격이긴 해도 술과 분위기에 취하면 적당히 넘어오지 않을까 계산한 것이다.
그런데 한영은 술에 취해서 자고 있다.
"....정말."
션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한을 살짝 흘겼다. 그러나 자고 있는 한영이 알 리가 없다. 그는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새까만 속은 모른 채, 참 편한 성격이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믿는 그 단순함이라니.
션은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생각을 하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무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침대 옆에 앉아있던 그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재빠른 손길로 잠들어있는 한영의 티셔츠를 벗겼다. 누르스름한 피부가 백열등 아래 드러난다. 체모가 적어 솜털밖에 없는 상체는 근육은 없지만 적당히 말라 봐줄 만했다.
오늘 저녁에도 봤지만 제대로 감상하진 못해 아쉽던 차였다. 션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슬쩍 손으로 가슴골부터 배꼽까지 쭉 쓸어내렸다.
".....으응."
듣기 좋은 비음이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션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조금 더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다. 가슴을 문지르는 커다란 손의 움직임에 한영은 귀찮은 듯 몸을 뒤척였다. 그래도 션은 멈추지 않고 그의 몸을 쓰다듬었다.
손은 점점 밑으로 내려가 바지를 벗겨낸다. 자신의 티셔츠와 바지도 한 편에 던져버린 션은 한영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그의 가슴을 혀로 애무했다.
"아..."
누군가 자신을 귀찮게 만져대자 잠이 얼핏 깬 한영은 무거운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통증과 유사한 쾌감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할짝, 살을 빠는 외설적인 소리에 그는 눈을 깜빡이며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누구?"
아직 술과 잠에 취한 한영은 앞에 있는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까맣다는 느낌뿐이다. 그는 힘겹게 손을 올려 눈가를 비볐다. 시야가 조금 뚜렷해졌다. 곧 자신의 위에 올라탄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누구야.....으응."
아직까지 술이 덜 깬 한영은 멍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상대는 대답 대신 자신의 목에 얼굴을 묻어올 뿐이다. 이를 세워 어깨를 깨무는 행동에 한영은 흠칫 놀랐다.
".....아....."
"아직 취했나 보군요."
자신이 취했던가? 한영은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보드카를 몇 잔이나 비웠던 것이 떠올랐다. 분명 션과 함께 클럽에 간 기억은 있다. 헌데 어째서? 지금 이 상황은 뭐지? 한영은 술에 취해 어지러운 정신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션의 혀가 자신의 입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리고 커다란 손이 어깨뼈에서부터 엉덩이 위까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져대자 다시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으응......"
부드럽게 입안을 헤집는 뜨거운 혀, 술을 마셔 바싹 마른 내부가 적셔진다. 한영은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목말라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웃음소리가 들렸고 곧 맞닿아있던 온기가 사라졌다.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등이 잡혀 몸이 일으켜졌고 입술이 맞닿는다. 미지근한 액체가 입속을 타고 흘렀다.
그가 원하던 물이었다. 한영은 그의 입술에 매달렸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물이 흘러내려 가슴을 적셨지만 의식하지 못했다.
조금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한영은 션의 입속을 혀로 핥으며 아쉬운 듯 신음을 흘렸다.
"더 줄까요?"
그런 생각을 하자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한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머리가 다시 어지러워진다. 조금만 흔들려도 머리가 아프고 졸음이 밀려온다.
"졸려......"
한영은 작은 목소리로 칭얼거렸다. 그때 다시 상대의 입술이 닿는다. 물인가, 한영은 조금 전을 회상하며 자연스레 입술을 맞대었다. 한영은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에서 어깨로 짐작되는 곳에 손을 뻗었다. 상대의 목을 껴안고 물을 받아마셨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그는 션의 입술을 쪽쪽 소리가 나게 빨았다. 정성스레 입안을 핥는 움직임은 얼핏 간절하기까지 하다.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한영을 보며 션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입속에서 움직이는 한영의 혀를 건드렸다. 물기 묻은 혀는 매우 축축했다.
한영은 속에 남아있던 물기를 다 핥고 나서야 입술을 뗀다. 무의식으로 한 일에 틀림없는 듯 표정은 여전히 멍하다. 션은 한영의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이제 만족했어요?"
".....응."
갈증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한영은 이제 다시 자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단단히 잡힌 허리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션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션은 느리게 한영의 브리프 안으로 손을 넣었다. 부드러운 피부였다. 그는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아!"
한영은 갑작스레 밑에서 느껴지는 묘한 느낌에 작게 비명을 질렀다. 누워있는 동안 다른 피부보다 더 따듯하게 데워진 엉덩이는 제법 탄력이 있었다. 션은 느긋하게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입구 쪽으로 손을 뻗었다.
".....으응."
한영은 예민한 부분 바로 옆에서 맴도는 간지러운 움직임에 몸을 뒤틀었다. 힘없는 몸을 상대에게 기대며 그는 들뜬 신음을 흘렸다. 션은 더욱 짙게 미소 지으며 일부러 그 주변을 조금 더 자극하기 시작했다.
움찔거리던 한영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입구 주변을 느리게 쓰다듬는 손길에 허벅지 근육이 경직되며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세웠다.
한숨처럼 긴 숨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션은 상대가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얼굴 앞에 있는 한영의 가슴을 입술로 빨았다. 브리프를 살짝 내리자 한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엉덩이를 빼고 가슴을 젖힌 채 신음을 흘렸다.
"아....하아....으응."
점점 흥분하고 있는 자신의 중심을 상대의 가슴 아래에 비비며 그는 엉덩이를 흔들었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 솔직하게 반응한다. 션은 웃으며 한영의 중심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것과 달리 작고 귀여운 페니스였다. 입 안에 넣기 딱 좋을만한 사이즈, 피부색보다 조금 거뭇하고 새까만 음모에 둘러 싸인 그것은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션은 그것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아직 덜 발기 되 물렁하다.
엄지와 검지로 문지르자 조금씩 딱딱해진다. 그리고 한영의 입에서는 더욱 들뜬 숨이 터져 나왔다.
제법 딱딱해지자 션은 일부러 귀두 부분을 꾹 눌러 자극했다. 한영은 아-아- 소리를 내며 흠칫 허리를 떤다. 세게 주무르자 더욱 농염한 신음을 흘린다.
션은 그 반응이 재미있어 한동안 장난치듯 한영의 페니스를 주물렀다. 점점 한영의 상체가 허물어졌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가늘게 떨리는 몸, 션은 자신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한영의 손을 제 중심으로 가져다 댔다.
"내 것도 만져 봐요."
"....아."
갑자기 손에 뜨겁고 딱딱한 성기가 잡혔다. 무엇인지 제대로 자각할 수 없는 한영은 멍한 얼굴로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한 손에 잡기 힘든 길고 두꺼운 물체, 그런 감각뿐이다.
"어때요?"
"뜨거워."
한영은 느리게 대꾸했다. 그는 술에 취해 한국말로 대꾸하고 있었다. 션은 무슨 말인지 궁금했다.
"영어로 말해요. 난 한국말 모르니까."
"....오케이."
그는 한영의 귀에 영어로 말하라며 속삭였다. 약간 어눌한 발음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 순간에도 한영의 손은 션의 페니스를 주무르고 있었다. 단단한 성기는 아직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커....이게 뭐야?"
한영은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열이 오르니 술기운이 더 돌아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좆이에요."
션은 한영의 귀에 웃음기를 담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좆?"
순진한 얼굴로 한영은 그 말을 그대로 따라한다. 그러다 한영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뜻인지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Dick, 그래 딕이구나."
한영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딕이 누구야?"
그런 사람 몰라요. 딱 이런 표정이었다. 션은 그 반응에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더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당신 구멍에 들어갈 물건."
"내 구멍?"
"그래, 여기."
그는 다시 한영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입구를 손가락으로 쓸자 한영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나왔다.
"정말? ....이걸 넣을 거야?"
한영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그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너무 큰데....."
"보통은 큰 걸 좋아하지."
션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취해서 백치가 된 한영이 제법 우습기도 했고 이 상황이 즐겁기도 했다. 그는 한영을 침대에 천천히 눕혔다. 상대는 아무 반항도 없이 눈을 반쯤 뜬 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다. 션은 웃으며 한영의 뺨에 키스했다.
"당신도 좋아하지?"
"뭘?"
"섹스."
".....섹스?"
한영은 잠시 고민했다. 섹스가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몇 개의 영상이 동시에 떠오르자 슬슬 감이 잡힌다. 알싸한 감각이 몸을 훑고 지나가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섹스, 타인과 몸을 섞는 행위. 얼마 전에 겪었던 정사의 기억을 더듬으며 한영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자꾸 귀찮게 굴었다. 잠을 깨우고 그리고 물을 주고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눕혀지더니 다리가 들어 올려지고 무언가 뜨거운 것이 닿았다.
예민한 부위에 닿은 그것은 느리게 피부를 핥아 온다. 한영은 몸을 뒤틀었지만 단단하게 고정된 무엇 때문에 벗어날 수 없었다.
".....하아....아....."
혀와 젖은 피부가 마찰하는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그럴 때마다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한영은 간지러움을 피해 허리를 움직였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아응."
뾰족하지만 물컹하고 작지만 부드러운 덩어리가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짜릿한 감각,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기이한 느낌에 한영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상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기이한 촉감이었다. 탁한 머릿속은 제대로 상황을 감지하지 못했다. 한영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저 알 수 없는 것이 안으로 더, 더 깊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목소리를 흘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밑에서 움직이던 것이 사라진다. 아쉬움에 엉덩이를 들썩이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좋아?"
"아....좋아."
"이걸로 만족해?"
"아니..... 부족해."
한영은 고개를 저었다.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까보다 더 딱딱한 것이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아까의 그것보다 더 길었다. 하지만 이게 아니다.
"으응......."
한영은 안타까운 숨을 내뱉었다. 조금 더 굵고, 그리고 긴 것.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까 만졌던 것이 떠올랐댜. 무척이나 뜨겁고 단단한 물체. 그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자신의 안에 파고들어 와주길 바랐다.
안으로 세게 치고 들어와 전신을 흔드는 감각, 깊게 찔러 넣어져서 어느 곳을 쑤실 때마다 느끼던 강렬한 쾌감이 떠올라 견딜 수 없다. 젤을 바른 질척한 손가락이 내부를 넓혀 오자 그 목마름은 더욱 커졌다.
그 사이, 손가락이 하나 더 늘어났다. 두껍고 긴 손가락은 속살을 파고들어 둥글게 휘저어댄다. 한영은 고개를 젓히며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조금만 더 참아 봐."
뜨겁게 손가락을 조이는 내부는 마치 처녀 같았다. 손을 꽉 물어 놓아주지 않는다.
"그냥 들어가고 싶지만 그러다간 다치니까."
진서와 달리 한영은 경험이 거의 없을 테니 그랬다간 피를 볼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의 성난 페니스를 달래듯 훑으며 한영의 아래를 정성스레 풀었다.
한영은 그것이 못내 아쉬운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졸라댄다. 선정적인 모습에 션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손가락을 세 개로 늘렸다. 갑자기 늘어난 손가락에 한영이 아픔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괜찮아?"
션이 걱정스럽게 물었을 때였다. 끙끙거리던 한영이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넣어."
"뭐?"
"그만하고 넣으라고.... 못 참겠어."
한영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의외의 상황에 션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멈춘 사이, 한영은 급한 목소리로 허리를 흔들며 재촉했다.
"빨리.... 윽!"
손가락이 주는 압박에 힘들어하면서도 그는 션을 졸라댄다.
"하......"
션은 어이없이 웃으며 자신의 손을 뺐다. 그는 상황적응력이 빠른 남자였고 기회를 잡는 것에 주자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원한다면."
그는 빙긋 웃으며 한영의 다리를 잡아 벌렸다. 한영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몇 번의 정사로 삽입의 쾌락을 알고 있는 것이다. 션은 얌전하게 자신을 받아들이는 한영을 바라보며 낮게 속삭였다.
"조금 아플 거야."
".....으응."
션의 거근이 입구에 닿았다. 커다란 성기의 귀두는 유독 굵었고 앞에 있는 작은 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혹시나 싶어 션은 한영의 애널과 자신의 성기에 젤을 가득 부었다. 미끄러운 살덩어리가 입구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예상보다 더 큰 물건이 침입하자 한영은 고통스러워했다.
"아, 아파!"
"네가 원한 거잖아. 참아봐."
한영은 몸부림쳤지만 션은 냉정하게 말을 자르고 밑을 우악스럽게 밀어넣었다. 귀두가 꾸욱 안으로 밀려 들어가자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하악! .....아! 아......아악!"
"힘 풀어."
"아....안 돼....아, 아파....아!"
한영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션의 강한 악력이 그의 무릎 아래를 잡고 고정시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깊숙이 침입해온다.
어느새 한영의 눈에선 눈물까지 흐르고 있다. 술에 취해 어느 정도 고통이 중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파....하지 마."
한영은 어린애처럼 울먹였다. 션은 그런 한영을 보며 혀를 찼다. 그는 한 손을 풀어 한영의 중심으로 가져갔다. 어서 흥분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부드럽게 페니스를 쓸어올리는 커다란 손의 움직임, 그래도 고통이 더 컸다. 션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시켜 한영의 것을 쥐고 흔들었다.
"아....흑.....으읏."
"참아 봐. 힘 풀라니까."
"싫, 싫어....앞.....윽!"
한영은 아픔을 호소했다. 아래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흉포하게 밀고 들어오는 성기는 내장을 짓뭉개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혀왔다. 하지만 한영이 울부짖어도 돌이킬 수 없었다. 션은 자신의 물건을 끊어낼 것처럼 조여 대는 내벽에 이미 흥분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영은 아프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자신의 것을 야금야금 잘도 머금고 있다.
새까만 성기와 확연히 비교되는 살색의 피부, 그리고 붉은 속살까지 적나라하게 보인다.
"잘 삼키고 있어. 그러니 진정해."
"흣......."
션은 여전히 한영의 성기를 애무하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끈한 아픔이 치고 올라온다. 한영은 다시 울먹이며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커다란 성기가 주는 엄청난 압박감, 치고 들어 올 때마다 마치 뱃속을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잡아 뺄 때면 내장에 다 쏠려나가는 기분이다.
"아! 아.....아아!"
한영은 아픔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울었다. 마치 자신이 강간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눈물범벅이 되어선 하지 말라고 울먹이는 상대를 보며 그는 인상을 썼다.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낫겠군. 그렇게 생각한 션은 속도를 높였다. 어서 싸고 빼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한영의 아래는 자신의 것을 힘겹게 머금은 채 꿈틀거리고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것을 느리게 뺀 션은 불시에 깊이 쑤셔 넣었다. 퍽- 소리가 나며 꽂혀 들어가자 한영은 더욱 소리를 높여 비명을 지른다. 션은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한영의 안으로 제 물건을 찔러 넣었다. 몇 번이고 강하게, 한영의 몸이 그때마다 크게 흔들렸다. 울음소리는 점점 높아진다.
그때였다.
"하앗!"
어느 곳이 쿡 찔리자 한영이 몸을 크게 꿈틀거린다. 머리에 하얀 스파크 같은 것이 터진다. 헉, 그는 숨을 멈추며 허리를 젖혔다. 곧바로 다시 같은 곳이 찔렸다.
"앗!.....아......아아!"
갑자기 한영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션도 그것을 느끼고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그는 다시 한 번 같은 곳을 세게 찔렀다. 그러자 역시 똑같은 반응이 온다. 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연달아 그 부분을 공격했다.
"하악.....하.....하아....아앗!"
빙고, 역시 포인트였다. 한영의 얼굴이 어느새 쾌락으로 물들어있는 것을 보며 션은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느리게 안을 휘저었다. 그러자 한영의 허리가 부르르 떨린다.
"아....아아. .......으응."
확실히 느끼고 있다. 한영은 반쯤 풀린 눈으로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음탕하게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아프다고 난리를 치더니, 션은 비릿하게 웃으며 성기를 귀두만 걸치듯 빼냈다가 빠르게 쑤셔 박았다. 그러자 한영이 자지러지는 신음을 흘린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어느새 흐물흐물해진 몸은 자신에게 착 감겨온다.
"아! 아아!.....하악!"
강하게 쑤셔 박자 여자보다 더 야한 신음을 흘리며 한영은 울부짖었다. 난잡하게 허리를 흔들며 좋아한다. 취해서 자제력을 잃어 온전히 본능만을 따르고 있었다. 션은 평소와는 달리 음란하게 교태를 부리는 한영이 낯설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한영의 허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단번에 체위가 바뀐다. 한영 자신의 무게까지 합쳐져 조금 전보다 션의 육봉이 더 깊이 박혀 들어온다. 뿌리까지 완전히 안으로 삼켜졌다. 허리를 강하게 쳐올리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푹, 강하게 치고 들어갈 때마다 안이 꽉꽉 조여 오는 감촉이 엄청나다.오히려 자신이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 정도다. 션은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쉬기로 했다.
"아.....하아....왜."
한영은 션을 젖은 눈으로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다. 조급해하는 한영을 보며 션은 키득거리며 물었다.
"움직여줘?"
"응.....으응....."
내부에서 격렬하게 움직일 때마다 전신이 부서질 것 같던 쾌감이 그리웠다. 한영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보챘다.
"움직여 줘! 아!.....아! 아앙!"
말을 꺼낸 순간, 션이 느리지만 깊숙이 박아온다. 한영은 새된 신음을 흘린다.
"하으으아아앙!"
"어떻게?"
션은 짓궂게 물었다. 한영은 그가 허리를 움직이며 자신의 안을 찌르자 신음을 흘렸다.
"더 깊이, 아! 아아!"
한영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의 안을 꽉 채우는 커다란 페니스, 그것이 내부를 긁고 비빌 때마다 입에선 뜨거운 탄성이 터져 나온다.
"좋아, 더 세게! 으으..... 좋아!"
하지만 그걸론 부족하는 듯 한영은 션의 사타구니에 자신의 엉덩이를 비비며 더 보채왔다. 허리를 내려 돌리자 더 깊이 파고든다.
"으응.....깊어....아아.....좋아....아!"
끙끙거리며 절정에 이르려 노력하는 한영의 모습에 션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는 난잡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더 집요하게 한영을 자극했다.
"귀여워. 마치 발정 난 암캐 같아."
"아....으응."
션은 한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암캐라는 단어에 한영의 얼굴이 수치로 붉게 물든다. 라이오넬보다 더 질 나쁜 언어 공격이었다. 션은 창피해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주는 쾌락에 헐떡거리는 한영의 페니스를 희롱했다.
"앞에도 이렇게 잔뜩 젖어선."
"하앙......"
민감하게 세워진 페니스가 손에 잡혀 굴려지자 한영의 입에서 비음이 터져 나온다. 어느새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절정에 이르려 하고 있다. 뜨겁고 격한 숨을 몰아쉬며 남자의 커다란 성기를 세게 조이며 빨아들인다.
"아....아아.....앙....하앗!"
벌려진 다리 사이로 남자의 거근을 받으며 한영은 날카로운 교성을 질렀다. 남근과 애널 내부는 녹아버린 젤과 거품으로 질척하게 젖어 음란한 마찰음을 내고 있다. 그의 내부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좋아....아....으응....세게, 더 세게!"
퍽 소리가 나게 연달아 세게 박아오자 한영은 울부짖으며 남자의 목에 팔을 감는다. 아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컫란 쾌감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새벽 내내 비가 내렸는지 아침의 공기는 싸늘하다. 천 밖으로 드러난 피부에 닭살이 돋을 것 같다. 침대 우에 있는 남자는 추위를 느끼며 이불 안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맨살에 닿는 천의 촉감을 보니 자신이 벗고 있다는 자각은 들었다.
일어나 옷을 걸치고 따듯하게 자고 싶은 욕망이 잠시 일었지만 그것은 게으름에 지고 만다. 꼼짝도 하기 싫은 피로가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마치 중노동을 한 것처럼 노곤하고 무겁다. 하지만 잠에 취한 정신은 그 이유를 굳이 캐내려 하기보다는 더 잘 것을 요구한다.
"으응......"
그는 몸의 명령대로 더 자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자꾸 수면을 방해한다. 왠지 몸이 무거운데 그것이 자신의 무게가 아니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옆으로 누워 있는데 등은 무척이나 따듯하고 드러난 발과 어깨는 추운 것이다.
남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갈증도 찾아온다. 목이 마른 것을 자각하자 갑자기 수분 섭취에 대한 격렬한 욕망을 느낀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듯이 남자는 주변 환경과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다.
머리가 아프고 목이 마르고 몸이 뻐근하다. 마치 과음을 하고 밤새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물도 못 먹은 사람의 상태 같았다.
".....끄응."
한영은 아침부터 왜 이렇게 자신의 상태가 불우해졌을까 고민하며 눈을 떴다. 그러나 왠지 잘 떠지지도 않고 눈도 아프다.밤새 울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뻑뻑한데다 뜨거운 것이다.
뭐지? 한영은 눈을 비비며 어제 기억을 회상했다. 그러나 조금 움직이자 바로 머리가 찡 울려서 그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허리에 무게감이 이제는 구속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깼어요?"
"아?"
한영은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뒤엔 얼마 전에 알게 된 흑인이 누워 있다.
션 그레이, 자신의 친구의 섹파이자 어제 만난 사람. 단순한 정보가 인식되자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아침....인가?"
무심결에 아침인사를 하려고 했던 그는 지금이 몇 시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다 보니 회사 생각도 난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한영은 눈을 껌뻑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대답은 옆에서 들린다.
"오늘은 회사 안 가는 날이에요."
".....아."
맞다. 어제가 금요일이었다. 한영은 멍한 얼굴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럼 더 자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편안하게 다시 잠들려고 했을 때였다.
갑자기 의문 하나가 치고 올라왔다. 한영은 번쩍 눈을 뜨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엔 역시나 션이 팔로 머리를 받친 채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누워 있었다.
허억, 한영은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왜 당신이 내 옆에서 자고 있죠?"
진서도 아니고 션이 어째서 자신의 방에 있는 것일까? 한영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상대는 설명은커녕 힘 빠지는 소리를 내며 황당하다는 얼굴을 한다. 하지만 그의 상태를 돌아볼 여력이 그에겐 없었다. 왜냫면 션의 손이 자신의 배 위에 얹어져 있는데다가 자신이 나체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악!"
한영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삼 초도 안 돼 그는 후회하고 말았다. 왜냐면 갑자기 움직이자 온몸의 뼈들이 각기 따로 노는 고통을 맛봤기 때문에.
"이, 이게 무슨....윽."
한영은 찔끔 눈물을 흘리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션을 노려봤다. 그는 황당함을 넘어 이젠 배신감까지 느끼는 표정으로 자신을 흘기고 있다.
"....기억 안 나요?"
션의 물음에 한영은 고개를 격렬히 끄덕거렸다.
"안 나니까 물어보는 거잖아요. 대체 뭐죠?"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목소리다. 그러자 션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는 곧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하나도?"
"예.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어제 만난 거 외에는."
"게이클럽에 간 것도?"
"게이바? ....아, 거기까진 기억나는데 우리가 언제 나온 건지는 모르겠네요."
한영은 잠시 고민하다 침착하게 말했다. 정말 그 부분부터 기억이 없었다. 션은 그런 한영을 유심히 살피다 되물었다.
"어제 당신 구멍이 내 물건을 밤새 물고 있었는데도? 그래도 기억 안 나요?"
"예?"
구멍이 물건을 어째? 한영은 션의 말을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생각하자 똑바로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입을 쩍 벌리며 다시 말해보라고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계획도 실행되지 못했다.
불시에 엉덩이가 잡혔다. 한영은 그것을 거부하며 뒤로 비켜나려고 했지만 둔한 몸은 이미 잡힌 후였다. 션은 그것을 양손으로 세게 잡아 벌렸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자 내부의 정액이 흘러나와 다리 사이를 흐른다.
한영은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뒤틀었다. 그럴수록 안에 있던 액체들이 바깥으로 찔끔찔끔 흘러나올 뿐이다.
"이, 이건."
션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그런 한영의 허리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똑바로 누워 있던 한영은 어느새 옆으로 누운 자세가 됐다. 엉덩이는 그의 사타구니에 딱 달라붙고 등은 가슴에 밀착된 자세다.
"어제 당신이 날 유혹했잖아요."
"무, 무슨!"
내가 그럴 재주가 어디 있다고! 한영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쿡, 엉덩이 사이에 무언가 닿았다. 두껍고 단단한 것, 한영은 설마 하는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션은 작정을 한 듯 그의 엉덩이를 벌리며 자신의 것을 밀어 넣었다.
"바로 이렇게."
쑥, 젖어있는 내부는 조금 빡빡하긴 했지만 션이 힘주어 ㅍ고들자 그 커다란 물건을 무리 없이 삼켰다.
"허억!"
한영은 자신의 몸임에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 허리를 흔들면서, 내 위에 올라타서 박아달라고 마구 애원했잖아요. 기억 안나요?"
".....에엑?"
한영은 인상을 구기며 설마 라는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션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리고 그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밑에서 찌릿찌릿한 감각이 치고 올라온다.
"아!.....으윽!"
"이렇게 내 정액으로, 가득 젖어있으면서. 밤새 울부짖은 기억이 안 난다고요?"
"아.....아아!"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듯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보이진 않지만 느낌만으로도 대단한 크기인데, 저렇게 쉽게 삽입되는 것만으로 증거는 충분한 것이다. 한영은 그 사실에 쇼크를 느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션은 짙은 웃음을 흘리며 한영의 뒤에 자신의 것을 세게 찔러 넣었다.
"그럼 기억나게 해줄게요."
"아!....으응.....흐읏!"
"어제 상황을 확실하게."
션은 말을 하며 연달아 푹푹 쑤시고 들어온다. 그때마다 흥건히 젖어버린 안에서 액체가 흘러 다리 사이를 적신다. 도대체 얼마나 쏟아 넣은 건지 짐작도 못 하겠다.
어느새 침대 위에 엎드린 자세가 된 한영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기억을 뒤져봤지만 그건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젯밤의 기억은 정말 깨끗하게 포맷된 것이다.
"아....아아.....앗! .... 그만."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아래는 탐욕스레 페니스를 휘감았다. 마치 빨판처럼 착 달라붙어 자신을 조이는 움직임은 어제보단 덜했지만 충분히 자극적이어서 션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정말 더없이 순진한 성격과 달리, 몸은 이렇게나 음란하다니. 션은 순진한 처녀를 강간하는 듯한 묘한 쾌감을 느끼며 한영의 포인트를 일부러 계속 찔러댔다.
"어제처럼 예쁘게 울어봐요."
"아! ......아아!"
그는 어제 밤새도록 물고 빨아 부어있는 한영의 유두를 꼬집으며 귀에 속삭였다. 몇 번 문지르자 예민하게 일어나는 돌기를 긁어내리자 한영이 숨을 들이키며 허리를 튕긴다. 션은 그 반응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는 앞으로 도망가려는 한영의 허리를 잡아 더욱 깊이 삽입해 들어갔다. 상체가 고꾸라지자 엉덩이만 높이 치켜든 자세가 되었다. 시트를 움켜쥐며 끙끙거리며 신음하는 한영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성기를 뿌리 깊이 박아 넣었다.
사실 션은 오늘 아침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한영을 보며 내내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좁은 구멍은 주인의 성격과는 달리 열정적이고 뜨겁고 음탕하다.
자신이 쏟아낸 정액으로 가득 찬 내부, 그곳은 아직도 희멀건 액을 질질 흘리며 거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탐욕스레 자신의 것을 잡아먹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영의 몸은 거부의 몸짓이 줄어들었다.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움직이며 더욱 달콤한 신음을 흘린다.
"그래, 그거야."
션은 한영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의 등에 키스했다. 땀에 젖은 등은 유연하게 젖혀지며 그의 손길이 기쁜 듯 듣기 좋은 비음을 흘리고 있었다.
HOLELIC #4
지독한 피곤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한영은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욕실에서 뜨거운 물에 한참 동안 몸을 담그고 나왔다.
"악, 수증기!"
바로 다음에 화장실을 쓴 진서가 짜증을 냈지만 그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너 욕실을 무슨 사우나로 만들 셈이야?"
투덜투덜, 진서는 담배를 피우며 작은 욕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한영은 정말 꼼짝도 하지 못할 만큼 피곤했기에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자고 일어났는데도 마찬가지다. 그런 한영을 보며 진서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한 마디를 던졌다.
"노가다 뛴 사람마냥 힘이 없냐?"
노가다라, 그것과 비교하면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한영은 매우 유사한 기분을 느꼈다. 한영은 거실 소파에 쓰러져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침 진서는 신문을 들고 옆에 앉았다. 그는 회화는 되지만 문법은 안 되는 자신의 빈약한 영어실력을 키워보겠다며 요즘 신문을 읽고 있었다.
진지하게 신문을 보는 그를 보며 한영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나 션이랑 잤어."
"어, 잘했어."
"........"
진서는 성의없이 대꾸했다. 그 시큰둥한 반응에 한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정확히 십 초가 흐르자 갑자기 진서가 신문을 구기며 버럭 외쳤다.
"뭐야?"
딴생각 하느라 못 알아들었다가 나중에야 파악한 모양이다. 그는 펄쩍 뛰듯이 일어나더니 잽싸게 한영의 옆으로 다가왔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좋았어? 안 아파?"
동시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진서 때문에 한영은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그는 차근차근 하나씩 대꾸해주었다.
"금요일에, 모텔에서, 셀 수 없이, 좋았어. 좀 아팠어."
"아아, 그놈이 좀 크긴.... 잠깐, 셀 수 없이?"
"응. 셀 수 없이."
왜냐하면 모텔에서 24시간 넘게 있었으니까. 한영은 일요일 저녁인 지금에서야 그 사실을 돌이키며 자신을 반성했다.
"짐승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됐어."
"헤에, 너 진짜 요즘 남자 복이 아주 제대로 트였구나."
그런 말자지랑 자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진서는 히죽거리며 농을 던졌다. 하지만 한영은 그런 당연한 말은 패스하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부터 꺼냈다.
"근데 섹파가 두 명이어도 되나?"
일단 자신에겐 고정된 상대인 라이오넬이 있었다. 그런데 다른 남자와 자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싱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진서는 한영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섹파야 열 명이든 백 명이든 네 마음이지. 야, 섹파는 그냥 서로 꼴릴 때 섹스하는 친구 같은 거야. 사생활 간섭은 노 터치, 정말 친한 사이라서 충고하는 거라면 몰라도 네가 누구랑 자던 상관 하면 안 되지."
그게 섹파의 예의라고 진서는 단호하게 말했다.
"앙.... 그럼 다행이고."
한영은 그럼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고민거리를 삭제해버렸다.
그는 서랍장을 열어 혹시나 몰라 가져왔던 약 봉투에서 파스를 꺼냈다. 간혹 잠을 잘못 잘 때마다 붙이곤 하는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껍데기를 띤 그는 자신의 어깨에 철썩 붙였다.
가운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얼룩덜룩했다. 그것을 본 진서는 히익 소리를 내며 쪼르르 달려왔다.
"야, 너 무슨 부황 떴냐?"
".....어려서 그런지 애가 아주 체력이 넘치더라."
마치 귀찮은 손자와 놀아준 것처럼 한영은 담담히 대꾸했다.
어제 일어나자마자 시작된 섹스는 밤늦게까지 지속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은 내내 뒹굴었다. 술기운이 남아있는 나른함 몸은 다시 잠이 들었고, 션이 음식을 사오자 먹고 쉬다가 또 덤비기에 했다. 그리고 씻겨준다기에 욕실에 들어갔더니 또 다시 덤볐고 그러다 헤어지려니까 재차 덤비고.
무슨 스파르타 섹스 체험기처럼 격렬한 하루였다. 나중엔 손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다. 마치 끈 떨어진 인형처럼 뻗은 자신을 안고 션은 잘도 박아댔다. 나중엔 아래가 너무 얼얼해서 감각을 상실한 줄 알았다.
그것뿐이면 말을 안 한다. 하는 동안 어찌나 말이 많던지. 오리지널 양키라서 그런지 몰라도 음탕한 단어들을 가득 쏟아내며 자신을 몰아붙였다. 원래 섹스를 할 땐 그런 건가. 야동에서 괜히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구나. 야설만 봐도 이년 저년 하며 수치대사를 뻔뻔하게 내뱉는 것은 사실에 기초했기 때문인 듯하다.
한영은 새로운 사실을 습득함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무척이나 피로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자신의 등을 두들겼다.
삶에 지쳐 몇 년이나 늙은 그는 너무나 아저씨다웠다. 진서는 쯧쯧 혀를 차며 그에게 다가가 발로 등을 꾹꾹 밟았다.
"아! 아파..... 근데 시원하네. 더 밟아라."
"오냐."
한영은 처음엔 엄살을 부리다 나중엔 편하게 엎드려 누웠고 진서는 사양하지 않았다. 그는 발로 자근자근 한영의 등을 밟으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한영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저 시원하다를 중얼거리며 소파에 얼굴을 비비고 있을 뿐이다.
남자가 생겨도 저 성격은 변하질 않는구나. 진서는 그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션이랑 사귈 생각은 없어?"
"뭐? 왜?"
"여기 있을 동안 사귈 생각 없냐고. 그 정도면 제법 괜찮지 않아? 밤일 잘해, 얼굴 잘났어."
"흑인치고 잘생긴 건 알겠는데 별 느낌 없어."
그건 라이오넬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은 이상하게 아무리 잘생겨도 빠져드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한영은 진서의 발놀림을 즐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 사귈 땐 제대로 사귀고 싶어."
"어떻게?"
"서로 알아가고 그러다 시간이 흘러서 자연스럽게 자고, 서로에게 충실한 연인 관계. 그런 게 좋아."
"뭐엇?"
진서는 한영의 말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그의 등을 세게 밟았다. 한영은 갑작스런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소파에서 굴렀다.
"너! 내 허리를 아작 내려고 작정했냐?"
드물게 한영이 화를 냈다. 하지만 진서는 너무 당황해서 그의 반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심이냐? 설마?"
"뭐가?"
"그 연인 관계 운운. 진심이야?"
감정결핍 서한영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나 로맨틱해서 차마 믿을 수가 없다. 이건 마치 첫사랑이랑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고, 결혼할 남자 아니면 안 잘 거다, 라고 외치는 십 대 초반의 소녀 같은 연애관 아닌가!
삶에 너무 찌든 진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제 주위에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경악했다. 하지만 한영은 한 마디를 더 추가해서 기어코 진서를 기절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거 아냐? 원래 사랑은 그런 거잖아."
사랑! 서한영의 입에서 절대 들을 일 없을거라 생각하던 단어가 나오자 진서는 몸에 힘이 빠져 털썩 넘어지고 말았다.
"....내가 못 할 말 했냐? 왜 오버하고 그래."
서한영에게도 나름 연애관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매우 평범하다고 믿는 인종이었으며, 제대로 연애를 해보지 못했기에 남들의 두 배는 운명을 증오하면서도 한 편으론 그것을 믿는 편이었다.
짚신도 짝이 있으면 나도 있겠지. 내년엔 생기겠지, 라고 마음 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서른이 넘도록 남자는커녕 여자도 없으니 슬슬 짜증이 났다. 그래서 정조는 포기하기로 했다. 나중에라도 자신의 행동에 파트너가 화를 내도 그는 꿋꿋하게 할 말이 있었다.
과거는 과거, 책임질 대상이 없는 싱글 상태에서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또, 그렇게 억울하면 일찍 오시든가. 왜 그동안 옆구리에 동상 걸리게 만들고 방바닥 긁게 했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므로 상대에게도 관대할 자신이 있었다.
또한 나이가 들어 깨달은 사실은 진서처럼 밖에 나돌고 적극적이어야 남자가 걸린다는 것이다. 영국에 와서, 자신이 조금 개방적으로 변한 것 같다는 걸 깨달은 한영은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이 있다는 말을 절절히 공감했다.
"어차피 영국에선 삼 개월만 있을 거잖아. 난 애인 사귈 마음없어. 그냥 즐기면서 배울 건 배우고 돌아갈 거야."
아무래도 같은 민족이 더 당기는 한영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는 스스로의 의견에 만족하며 한 가지 불만을 덧붙였다.
"게다가 양놈들은 너무 느끼해."
고추장도 모르고 말이지. 그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제 방으로 향했다. 고추장? 웬 고추장? 남은 진서는 그런 한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거실바닥에 멍청하게 앉아 의문을 떠올렸다.
월요일이 되어 다시 출근 한 한영은 아직도 뻐근한 몸을 출근 전 국민체조로 가볍게 풀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관절 푸는 덴 최고였다. 12년 동안 교육받아 잊기도 어려운 그 동작들을 무심한 얼굴로 행하니 온몸의 관절들이 삐그덕, 뚝뚝 소리를 내며 오케스트라 뺨치는 장엄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뒤엔 정장을 빈틈없이 차려입고 출근을 했다. 수많은 인파를 해변의 모래 보듯이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간다. 버스에서도 길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제 일에 열중하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개인주의가 심해서 버스든 지하철이든 책이나 신문을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이 점 하나는 한영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바로 급탕실에 가서 커피를 탔다. 아침잠을 쫓아내고 일에 집중하기 전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좋은 아침."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급탕실엔 라이오넬이 나타났다. 한영은 이제 익숙하게 자신도 아침인사를 했다.
"커피 드실래요?"
"고맙지만 사양하지."
라이오넬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예의상 물어본 것이라 한영은 담담하게 거부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컵을 들고 후후 불었다. 한 모금 맛보니 평소의 맛과 비슷하다.
다 우려졌나 싶어 티백을 휴지통에 버릴 때였다.
"이게 뭐야?"
갑자기 라이오넬이 바싹 다가온다. 한영은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다.
"왜요?"
"당신, 나 말고 다른 남자 없다면서?"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남자라니, 라이오넬이 어떻게 안 것일까, 속이 뜨끔한 한영은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남자요?"
"그래. 대체 이건 뭐야?"
라이오넬은 셔츠 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하지만 한영의 눈엔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의아해진 한영은 넥타이를 푸르고 슬쩍 셔츠 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붉게 멍이 든 피부가 보인다.
제기랄. 한영은 낭패 짙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사정이 있어요."
나도 작정하고 이런 건 아니거든요. 한영은 식은땀을 삐칠 흘리며 대꾸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의 표정은 더욱 살벌해지기만 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한영의 손을 틀어쥐었다.
"그럼 내 사무실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지."
"....전 거기 아니어도 되는데."
한영은 본능적으로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왠지 그곳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등을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강력하게. 하지만 라이오넬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끌어당겼다.
"아니, 급탕실에서 나눌만한 이야긴 아닌 것 같아. 그러니 거기서 느긋하게 얘길 하자고."
"....일을 해야."
"오늘은 그리 바쁜 일 없지 않아?"
핑계를 댔지만 먹히지 않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한영은 찔끔해선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업무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던 걸까. 외모로 승진한 건 확실히 아닌가 보다. 한영은 우울한 얼굴로 라이오넬의 뒤를 따랐다.
"어제 무슨 약속이 있었어?"
라이오넬은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추궁했다. 한영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진 기분이 들었다.
"아는 사람과 술을 마셨어요."
"어디서?"
"소호에서."
소호라는 말을 하자 라이오넬의 눈이 가늘어졌다. 환락가로 유명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 저런 자국을 남기고 왔다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여러 가지 상상이 가능했다.
"단 둘이?"
낮아진 목소리에 한영이 우물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먹고....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예요."
왜 자신이 이렇게 구차하게 변명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분위기가 삭막해 따지기도 어렵다. 한영은 자신을 노려보는 라이오넬이 왜 화가 난 걸까 고민해 봤지만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섹스파트너는 사생활에 간섭 안 한다던 진서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데 왜 자신은 마치 바람피운 사람처럼 이실직고를 해야 하는 걸까? 한영이 난감해 할 때였다.
"잤어?"
".....네."
라이오넬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거짓말을 할 필요성도 마음도 없던 한영은 잠시 침묵하다 소리 내어 말했다. 그 대답에 라이오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커다란 노성이 사무실을 강타했다.
"당신 미쳤어?"
그 소리는 라이오넬의 사무실 밖으로까지 삐져나왔다. 갑작스런 고함에 직원들은 모두 당황해 한 곳으로 시선이 몰린다.
"역시 왕자가 벼르고 있었군. 그럴 줄 알았어."
"성질이 좀 더러워야지. 저번에도 직원 하나가 실수했다고 컵을 집어던졌잖아."
"불쌍한 코리안, 급탕실에서 끌려갈 때부터 알아 봤어. 쯧쯧."
존과 레이놀드는 이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커피를 마셨다. 주위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안에 있는 한영은 가장 피해가 심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강한 외침에 귀를 막고 어리벙벙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정신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라이오넬은 씩씩대며 계속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다. 십 년 사귄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었을 때, 혹은 몸바쳐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했을 때 같은 얼굴이었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한영은 황당했지만 그의 기세에 눌려 뭐라 말도 못하고 곤란한 얼굴로 어쩌지를 되풀이했다.
라이오넬은 우물쭈물하는 상대의 어깨를 세게 잡아당겼다. 한영이 아픈지 신음을 흘렸지만 흥분한 그의 눈엔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어깨를 흔들었다.
"말해.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왜요?"
전혀 이유를 알 수 없는 한영은 어벙한 얼굴로 물었다. 더욱 화를 부추기는 행동에 라이오넬은 이를 드러냈다.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죠."
알면 묻겠어요. 한영은 초지일관 눈치 없는 태도를 보였다. 덕분에 화가 난 라이오넬의 얼굴은 완전히 분노로 물들었다. 다시 한 번 그의 입에선 사무실을 뒤흔드는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너 바보야?"
다시 시작된 잔소리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그때 한 말은 뭐였냐 등등. 아마 레베카가 뒤늦게 말리지 않았다면 퇴근할 때까지 들볶였을 것이다. 한영은 귀가 먹먹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끄러워요! 여기가 당신 회사에요?"
생리 둘째 날이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다 배에선 에어리언 튀어나올 것 같이 아프고, 어제 애인과 싸운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하직원의 실수로 계약이 날아가 기분이 무지막지하게 나쁜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모두의 소망을 대신 해서 라이오넬에게 하이킥을 날려버리고 싶었으나, 차마 해고되긴 싫어서 가슴팍을 매우 세게 밀치는 정도로 끝났다.
"당신이 회장 손자지 회장이야? 응? 너무 잘나서 눈에 뵈는 게 없어? 아직 물려받지도 않은 주제에 이게 무슨 난장판이야?"
빠르게 걸어온 그녀의 팔엔 가속도가 붙어 갑자기 밀어버리자 라이오넬은 자칫하면 바닥에 넘어질 뻔 했다.
"당최 일을 못하겠네! 계약 또 파토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응? 기획부터 재계약까지 처음부터 다 해 줄 거야?"
레베카는 라이오넬의 가슴을 콕콕 찌르며 계속 몰아붙였다. 그러다 문득 뒤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한영이 눈에 걸렸다. 그녀는 캬악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라렸다.
"뭘 봐! 가서 일이나 해! 당신이 있으면 더 시끄러워!"
"네!"
기회였다. 그 사이 한영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잽싸게 도망가버렸다.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라이오넬을 최대한 피해 다녔다. 다행히 그는 레베카의 속사포 같은 인신공격에 기가 죽은데다 나중엔 그녀가 픽 쓰러져버려서 병원으로 간 후였다. 생리통이 심한 그녀는 요즘 들어 과로를 해서 그런지 화를 내다 혈압이 올라가자 기절한 것이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 다시 돌아온 그는 아까보다는 고요했지만 더 깊어진 분노로 한영을 노려보았다.
'퇴근하고 보자.'
텔레파시처럼 그 뜻이 바로 전해져 온다. 그러나 사무실 안에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시선을 느끼고 아멘을 외칠 때 한영 혼자만 왜 저러지 하는 얼굴로 라이오넬을 바라본다. 그에겐 째려보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영은 떨떠름한 얼굴로 일을 했다. 옆에선 레이놀드와 존이 한영이 강제귀국 당한다는 것에 10파운드 내기를 하고 있었다.
한영이 생각하기에 라이오넬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왜 자신이 다른 남자와 자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남자와 괜히 잤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한영이 후회를 하건 말건 시간은 흘렀다. 퇴근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그는 귀찮은 얼굴로 슬슬 퇴근 준비를 했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잘 가요."
다른 사람들의 인사를 대충 흘려들으며 한영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한영은 내일도 저러면 어쩌지 생각을 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잡아 온다.
"어디 가?"
"헉!"
익숙한 음성에 한영은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어났다. 뒤를 돌아보자 역시나 예상한 상대가 자신을 째려보고 있었다.
"라, 라이오넬? 어떻게."
"어디 가냐니까."
"집에......"
깜짝이야. 갑자기 나타나니 간 떨어질 뻔했다. 한영은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라이오넬은 기묘한 표정으로 한영을 내려다보며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던진다.
"흐응.... 정말 집에 가는 건가?"
"그럼 어딜 가요?"
"오늘은 약속 없어?"
"없는데요."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라이오넬은 한 걸음 다가와 한영의 옆으로 섰다.
"그래? 그럼 같이 가지."
"괜찮은데."
하지만 라이오넬은 한영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열린 엘리베이터 문으로 그의 어깨를 잡아끌고 들어간다.
"데려다줄게."
"....안 그래도 되는데."
"거절하지 마."
거절은 듣지 않겠다는 듯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쥔다. 아프다, 한영은 인상을 찡그리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그보단 라이오넬이 더 빨랐다. 지하 주차장 버튼을 누른다. 어깨를 틀어쥔 손은 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하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다. 더 강한 힘으로 자신을 구속하고 있다.
이 남자 진짜 왜 이래, 한영은 인상을 구기며 억지 춘향 같은 얼굴로 끌려갔다. 라이오넬은 자신의 차에 도착하자 한영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아!"
차 천장에 머리가 부딪친 한영은 아픈 부분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재빠르게 운전석에 앉은 라이오넬은 능청맞게 미안하다고 하더니 안전벨트를 매게 했다. 그것이 끝나자 한영이 어리바리하고 있는 사이 바로 급출발을 했다.
"악!"
한영은 이번엔 시트 윗부분에 머리를 거세게 박았다. 머리를 두 번이나 세게 부딪치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번엔 쿠션이라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아픈 건 싫었다.
"왜 이래요!"
"Sorry."
말과는 달리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런 라이오넬이 얄미워 한영은 잔뜩 눈을 흘겼다.
차는 빠르게 주차장을 벗어났다. 몸이 뒤로 쏠리는 기분에 한영은 안전벨트를 부여잡고 다시 한 번 라이오넬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회사와 멀지 않아 집에는 금세 도착했다. 한영은 차가 세워지자마자 부리나케 밖으로 나왔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어서 빨리 상대와 헤어지고 싶었던 그는 바로 뒤돌아서려고 했지만 라이오넬은 성큼 다가와 한영의 팔을 잡았다.
"뭐가 그렇게 급하지?"
"....급한 건 아니고."
단지 네가 싫어. 한영은 속으로만 그 말을 삼키며 슬쩍 눈을 피했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여전히 집요하게 캐물어왔다.
"난 아직 당신과 할 얘기가 많아."
"전 없는데요."
"난 있어."
라이오넬이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한영은 정색을 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뭐해요?"
"헉!"
이 목소리는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한영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을 자각하며 뒤를 돌았다.
"션....."
왜 하필, 라이오넬 하나로도 감당하기 힘든데 부담스러운 인물 2위가 나타나자 한영은 골치가 아팠다. 눈치 빠른 라이오넬은 그가 인상을 굳히자 바로 팔을 세게 잡아당긴다.
"한, 저 남자는 누구지?"
"그게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한영은 곤란한 얼굴로 우물거렸다. 이미 션은 바로 지척에 다가와선 인상을 구긴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야?"
이상함을 느낀 건지 션이 평소보다 까칠한 말투로 물었다.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라이오넬을 바라보다 마침내 한 곳에 눈이 닿는다. 한영의 팔을 잡고 있는 손, 그것을 보자 기분 나쁜 얼굴을 한다.
"그거 놓지?"
션이 위협적으로 말하자 라이오넬은 인상을 쓰며 한영에게 되물었다.
"한, 저 negro 아는 놈이야?"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인상이 더 구겨지더니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션을 위아래로 훑었다.
"한, 저 건방진 cradker는 뭐지?"
서슴없이 다른 인종을 경멸하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racial slur가 난무하는 대화에 한영은 잠시 인상을 구겼다. 조만간 자신에게 'You bastard'나'fucking gook'이라는 모욕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창과 누렁이, 둘 다 듣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은 욕들이다.
"이봐, 한."
그때 션이 한영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라이오넬은 그것을 보자마자 인상을 찡그리며 바로 션의 손을 쳐냈다.
"건드리지 마."
라이오넬이 으르렁거리자 션의 눈에서도 불꽃이 튄다.
"뭐야, 해볼래?"
".....monk."
라이오넬이 경멸을 담아 중얼거렸다. 저게 무슨 뜻이덜. 스님이 아니라 뭐였는데....아 병신이란 뜻이지. 한영은 잠시 멍해져 있다 이내 상황의 심각을 깨달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당장에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한영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 둘을 갈라놓았다.
"잠깐, 이러지 말아요."
대화로 해, 대화로. 사실 그것도 싫지만 일단은 둘의 가슴을 밀어 거리를 벌렸다.
".....집에 가서 얘기하죠."
이 둘을 동시에 들이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다. 싸움이 벌어지니 지나가던 이들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옘병, 오랜만에 떠오르는 정겨운 단어를 중얼거리며 한영은 둘의 팔을 동시에 잡아끌었다.
인생을 살면서 곤란한 상황은 수도 없이 겪어봤다. 하지만 오늘처럼 절실하게 하느님을 찾았던 기억이 있던가. 한영은 자신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선명한 흑과 백의 조화, 이곳이 영국이기에 가능한 치정이었다.
"너부터 꺼지시지."
"웃기지마. 한은 나랑 예전부터 섹스를 했어. 나와 더 가깝다고. 그러니 네가 사라져."
"횟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
"그의 첫 남자도 나야!"
"나는 별로 신경 안 써."
라이오넬이 잘난 척하며 말하자 션은 코웃음을 쳤다. 그에겐 숫제 여유마저 느껴진다. 얼마 전 한영을 충분히 만족하게 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Shut up you fucking faggot."
라이오넬은 화를 내며 그의 어깨를 밀쳐냈다. 션은 한 걸음 뒤로 밀려나 주먹을 불끈 틀어쥔다.
한 명은 흑인으로 친구의 친구이자 자신의 얼마 전 섹스 상대 션이었고 다른 쪽은 백인인 자신의 상사 라이오넬이었다. 사실 자세한 인종 따위 한영은 모른다. 그저 흑인 백인 황인 정도로밖에 사람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에겐 사실 외국인은 미모를 잴 수 없는 존재였다. 아쉽게도 그의 미적기준은 세계화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흑인, 백인 중에선 잘생겼다 정도뿐.
라이오넬과는 몇 번이나 몸을 섞은 섹스파트너였다. 그리고 션은 어쩌다보니 술김에 자버린 미묘한 관계였다. 덕분에 입장이 곤란했다. 자신은 게이였지만 굳이 상사나 친구의 보이프랜드와 엮이고 싶진 않았는데도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좋아. 양보 못하겠다는 거지?"
"그래. 이 망할 검둥아."
션이 묻자 라이오넬이 맞받아쳤다. 살벌한 악센트에 한영은 몸을 움츠렸다. 곧 영어로 무언가 격렬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네까짓 검둥이한테 한영이 만족할 것 같아?"
"충분히 만족하거든?"
"웃기지 마. 그가 경험이 별로 없어서 착각했겠지."
"네놈이 좆질을 제대로 못하는 걸 어쩌라고. 그리고 네 좆은 꽤 작은가 봐? 한영이 내 걸 무척이나 벅차하던데."
"......."
차마 그 말을 해석하기도 싫은 한영은 그들에게서 슬쩍 멀어졌다 자신의 귀가 썩을 것 같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길거리에서 싸울까 봐 자신의 아파트로 왔지만 후회가 든다. 하필이면 룸메이트는 외출 중이고 이 둘 사이에 껴버렸다. 한영은 한숨을 쉬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 사이 둘의 대화가 끊겼다. 혹시 다툼이 끝난 것일까? 한영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라이오넬과 션은 재킷을 벗고 있었다.
"이, 이봐요. 여기선 싸우지 마!"
너희 같은 거구가 싸웠다간 집주인한테 쫓겨난다고. 게다가 지금은 한밤중이라 더욱 시끄럽다며 한영은 그들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한영의 반응엔 아랑곳없이 옷을 벗을 뿐이다.
"그럼 어쩔 수 없군."
"그래."
"으응?"
주먹이 오고 갈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둘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아까 전 길에서만 해도 자신을 두고 싸우던 두 남자가 갑자기 의기투합해서 스트립쇼를 벌이다니. 이 상황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한영이 머뭇거리는 사이 먼저 옷을 벗은 션이 청바지의 벨트를 풀며 말했다.
"한, 네가 골라라."
"그래. 네가 선택해."
라이오넬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는 둘은 서로를 견제하듯 바라보며 마저 아래까지 벗어재끼는 것이다.
"우리 둘과 동시에 자보면 알겠지.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에엑?"
한영은 기겁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흑백을 띠는 거구들이 그에게 달라붙어 옷을 벗기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 진심이야?"
한영은 외쳤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션의 입술이 덮었다. 그의 비명은 소리 없이 방 안에 메아리쳤다.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한영은 얼마 전까지 백버진이었다. 자신의 게이 셩향을 알고있지만 타고난 소심함 때문이었다. 혼자 손장난을 치거나 바이브나 로터 등으로 장난을 친 것 괴에 단 한 번도 몸을 섞은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바로 영국 출장이었다.
삼 개월 머무는 동안 그는 결심했다. 출장을 와서 동정을 떼어버리고 섹스 테크닉을 발전시킬 거라고. 그 뒤에 홀가분하게 한국에 가서 파트너를 구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3P 따윈 예정에도 없었다. 그저 자신은 촌스럽지만 나이 스물여덟에 동정 딱지만 떼면 충분했다. 그리고 처음 라이오넬이 자신에게 작업을 걸어왔을 때, 거부하지 않은 잉는 단순히 그가 가까이 있던 상대여씨 때문이다. 게이바에 가도 번번이 도망치듯 나왔던 그였기에 바람둥이인 라이오넬은 무척이나 구미가 당겼다.
처녀라고 하자 개발하는 즐거움을 만끽해보겠다며 몹쓸 발언을 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런 무책임함에 끌렸다. 잠깐 놀기엔 부담없는 상대니까.
"아.....하응."
걸출한 테크닉으로 자신을 만족시켰던 그다웠다. 지금도 약한 부분인 허벅지를 주욱 핥아 내리자 한영은 신음을 흘렸다. 허벅지 근육이 긴장되어 자신도 모르게 발가락을 오므렸다.
하지만 허리를 뒤틀 수도 없다. 뒤에선 션이 자신의 허리를 꽉 붙든 채 어깨를 깨물었다.
"당신은 정말 피부가 좋아. 치즈케이크처럼 노랗고 부드러워."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자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동시에 몇 군데를 공격당하자 한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둘은 자신을 끌어당겨 순식간에 옷을 벗기더니 사이좋게 위아래로 괴롭혀댔다. 옷을 벗으니 더더욱 선명하게 흑과 백으로 구분되는 남자들의 살결이라니, 한영은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든 그들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이미 막무가내였다.
라이오넬은 이미 몇 번의 정사로 한영의 성감대를 파악했다. 다리를 들어 올려 허벅지 안쪽을 핥자 그가 반응한 것이다. 재빠른 행동에 션이 혀를 차며 한영의 목가를 애무했다.
귓가에서 축축한 혀가 맴돌며 서서히 귓바퀴를 따라 움직인다. 뜨거운 숨소리가 가까이 들리자 움츠리는 한영의 상체를 강하게 안아 목을 깨물어댄다.
"하앗....."
한영은 가늘게 떨리는 몸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두 남자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션의 손이 허리를 쓸며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다. 간지러워 약하게 신음을 흘리자 유륜의 모양을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마치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아래쪽 다리 사이에선 라이오넬의 금발머리가 찰랑대고 있다.
불을 켜두어 밝은 실내에서 적나라하게 보이는 행위에 한영은 수치심을 느꼈다.
허벅지에서 사타구니로 점점 다가오는 그의 혀는 애를 태우듯이 느리게 움직인다. 션에게 안겨 그의 가슴에 등을 기댄 채 다리 사이엔 라이오넬이라니. 어느 쪽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 앞은 훤히 드러난 데다 엉덩이 사이엔 뜨겁고 굵은 성기가 위협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으응....하지 마."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구. 하나만으로도 버거워. 한영은 이런 상황이 너무 놀라워 그저 도망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둘은 번갈아 키스하며 그의 기운을 쭉 빼놓더니 이제는 아래위를 나누어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허리를 션이 단단하게 틀어쥐었고 양다리는 라이오넬에게 잡혀 있다. 두 손은 션에게 잡힌 채다.
"너희 둘, 강간으로 고소해버린다!"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둘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그저 즐기면 된다고 속삭인다. 그렇지 않아도 한은 그들의 움직임에 점점 목소리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동조하고 있다.
션이 유두를 아프도록 잡아당기며 손으로 굴리자 하앙 소리를 내며 허리를 꺾었다. 새까맣고 탄력 있는 피부가 자신의 가슴위에서 움직인다. 커다란 손이 젖은 젖꼭지를 희롱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입에서 점점 젖은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인지했다.
"아.....흐읏!"
그리고 페니스를 틀어쥔 라이오넬이 귀두를 핥아대기 시작했다. 아까 전부터 반쯤 발기해있던 한영의 것은 그의 손에서 점점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다.
"아, 안.....돼. 하지....."
안 되는데, 이러면. 처녀 딱지를 뗀지 삼주 밖에 지나지 않았다. 출장 오자마자 라이오넬의 꼬임에 넘어가 일을 치르고 그와 삼일이 멀다 하고 섹스를 했다. 그리고 삼 주가 되자 친구의 섹스 파트너인 션과 술김에 섹스를 했다.
둘의 공통점은 벅찬 정력, 다른 점은 피부색뿐이다.
"걱정 마. 한, 아프지 않게 해줄 테니까."
라이오넬이 혀로 자신의 것을 핥으며 색기 어린 눈짓을 한다. 바다색처럼 푸른 눈이다. 눈처럼 하얀 피부와 황금을 녹인 것 같은 금발까지, 어딜 봐도 귀족적인 외모를 갖춘 남자였다. 상황을 잊고 잠시 멍하게 바라보자 바로 뒤에선 션이 뺨에 키스하며 지지 않겠다는 목소리로 대응한다.
"그래. 저 녀석이라면 몰라도 난 믿으라고."
션은 그의 고개를 꺾더니 혀를 섞으며 달콤하게 중얼거렸다. 부드럽게 입술을 핥아오는 혀에 한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다크 초콜릿처럼 새까만 피부, 하지만 혼혈이라서 그런지 이목구비는 흑인 특유의 개성이 없다.
하지만 외모가 어쨌건 한영에겐 그저 양놈들일 뿐이다. 남들이야 어쨌건 그는 외국인의 미모가 크게 다가오진 않는다. 게다가 그에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한텐 너희 둘 다 상종 못 할 놈들이거든? 한영은 차마 입 밖으로 항의할 수 없음을 원망했다. 그의 중심을 라이오넬이 덥석 물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입속에서 혀로 굴리며 강하게 조였다. 한영은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션은 그를 자신 쪽으로 꺾어 흉포한 키스를 퍼부었다. 혀를 뿌리째 강하게 빨아들인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강하게 유두를 잡아당긴다. 긁어내리는 손길에 움찔거리며 반응하자 꼬집듯이 짓눌러온다.
"읍! 으으....읍!"
신음조차 마음대로 내뱉을 수가 없다. 한영은 괴로움에 몸을 뒤틀었다. 앞에선 자신의 페니스를 물고 있는 라이오넬이 있고 뒤에선 제 입속을 헤집으며 가슴을 희롱하는 션이 있다. 배수의 진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걸까.
한영은 울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마저도 오래할 수 없었다.어느새 몸이 앞으로 쏠렸다. 라이오넬은 능수능란하게 몸을 돌려 한영의 것을 물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로 다리가 벌려진다.
"읏!"
갑작스럽게 몸이 굽혀지고 머리는 라이오넬의 사타구니에 처박혔다. 어리둥절해 하는데 션이 한 웅큼 엉덩이 살을 깨문다.
"앗!"
작게 비명을 내지르자 혀가 예민한 살을 훑고 지나간다. 하아, 한숨 같은 신음을 흘리는 사이 깊숙이 자신의 것을 입에 문 라이오넬이 입술로 강하게 조인다.
"윽!......"
한영은 갑작스러운 쾌감에 허리를 움츠리며 라이오넬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비볐다. 그리고 곧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왜 거부하지? 당신은 섹스를 좋아하잖아. 정신없이 울면서 넣어 달라고 조르기 일쑤잖아."
"그, 그건!"
"알아. 흥분한 상태에서 말한 진심이라는 거."
션은 조롱하듯이 물었고 한영은 울컥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아래에서 따듯하고 축축한 감촉이 사라진다.
"하아? 그 정도면 나도 해줄 수 있는데?"
라이오넬이 잠시 한영의 것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닥, 닥치라고 너희들!"
한영은 당황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키득거리며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애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시금 성기가 부드러운 입술에 조여졌다. 이어서 엉덩이 살을 벌리며 혀가 핥고 지나가자 한영은 조금 일으켰던 몸이 무너지고 만다. 주름을 펴듯이 강하게 잡아 놀려 혀를 놀리자 한영의 입에선 다시 앓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아....하아.....아."
한영이 얼굴을 비비는 단단한 복근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살 빠는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를 울린다. 두 군데가 동시에 빨리자 미칠 것 같았다. 혀가 구멍 안으로 파고 들어와 느릿하게 움직이며 피스톤 질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부족함을 느낀다.
"이걸론 부족하겠지?"
혀를 뗀 션이 놀리듯 물어왔다. 한영은 가뜪이나 열이 오른 얼굴이 확 붉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사실이기에 부정할 수 없다. 이미 그의 허리는 앞뒤로 음탕하게 흔들리고 있다.
라이오넬이 입으로 한영의 페니스를 강하게 조이며 삽입하듯 움직이고 션이 어느새 젤을 발랐는지 질척이는 손가락으로 구멍주변을 지분거린다. 행동이 재빠른 녀석들이었다.
점점 멍해지는 머리로 한영은 헐떡였다. 어느새 완전히 발기한 성기가 라이오넬의 입속에서 사정감을 느끼고 있다.
"아...흐윽!"
하지만 그 사이에 손가락이 잽싸게 파고들어 와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하나만으로 매우 두꺼웠다. 2m에 가까운 거구인 만큼 손 또한 커다랬고 손가락은 마치 성기처럼 굵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 더 늘어나자 한영은 괴로움에 신음을 흘렸다.
"아.....아파."
"조금만 참아봐."
허스키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션은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목소리와 달리 단호하게 안을 꿰뚫었다. 앞에서 까딱이는 성기가 보인다. 하얀 피부와는 달리 금색의 털이 무성한 살굿빛의 성기였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는데 라이오넬의 손이 다가온다. 그의 손이 자신의 것을 만지작거리며 과시하듯 훑는다. 한영은 저것을 몇 번이나 빨았던 기억이 있다. 뒤가 쑤셔지며 점점 고통은 희미해지고 야릇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어느새 한영은 라이오넬의 의도대로 그의 것을 물었다. 그가 착하다는 듯 허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곤 자신의 것을 뱉어내며 귀두를 빨았다. 살 냄새와 함께 약간의 시큼하고 짠맛이 혀로 느껴진다. 다 머금을 수도 없는 커다랗고 굵은 성기. 그리고 자신의 뒤를 농락하는 크고 긴 손가락.
살 빠는 소리, 그리고 내부를 휘젓는 질척한 소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어느새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구는 두 남자와 자신. 한영의 어지러운 머릿속은 유일하게 쾌감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션이 강하게 포인트를 긁어내리자 한영은 허리를 튕기며 라이오넬의 입에 사정하고 말았다. 라이오넬이 그의 허리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영은 그대로 엎어졌을지도 모른다. 밑에서 천천히 몸을 뺀 라이오넬과 동시에 션이 한영을 끌어당겨 제 품에 가두었다.
"하아....하아."
숨을 몰아쉬는 한영을 바라보며 라이오넬은 정액을 뱉었다. 그리곤 그것을 자신의 성기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색스러워 한영은 멍한 와중에도 인상을 찡그렸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않은 쾌감에 뇌가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벌써 뻗으면 안 돼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기운 없는 몸을 일으키는 잔인한 검은 손이 느껴졌다.
"내 쪽은 전혀 서비스 받지 못했거든?"
션은 한영을 잡아 끌어 똑바로 눕히고 다리를 잡아 엉덩이를 높이 치켜 올려졌다.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션의 검은 성기가 천천히 안쪽으로 파고들어왔다. 피부색보다 더 짙은 시커먼 성기는 여전히 엄청난 크기였다.
그 사이즈에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삽입해온 성기는 반쯤 파고들자마자 퍼억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쑤셔 박혔다. 갑작스러운 성기의 침입에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아!"
내부를 꽉 채우며 안으로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느낌에 한영은 눈물을 흘렸다. 충분히 풀어둔 덕에 찢어지진 않을 테지만 삽입만으로도 힘겨웠다.
"무식하게 크기만 해선."
라이오넬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빈정거렸다. 그 자신도 어디가서 자랑해도 좋을만한 사이즈긴 했다. 하지만 션에 비해선 조금 더 얇고 길었다. 션의 것은 길이도 길이거니와 굵기도 무시무시해서 한영은 덜컥 두려움이 느껴졌다. 저런 걸 넣었다간 아래가 찢어질지도 몰느다.
겁에 질린 한영은 울먹이며 흔들렸다. 아픔 때문이기도 했지만 왠지 피를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 심리를 알아챘는지 션은 조금 부드럽게 움직임을 바꾸었다.
"괜찮아. 절대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까."
"그...그걸....아!"
그걸 어떻게 믿느냐며 한영은 따지려고 했다. 하지만 원을 그리듯 안에서 크게 움직이자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빡빡하게 채워진 성기가 내벽을 긁어내리는 섬뜩한 쾌감에 한영은 다시 눈물을 찔끔거리며 신음했다.
"엄청나게 조이는군. 마치 처녀 같아."
션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더욱 다리를 크게 벌렸다. 새까만 성기가 제 안을 들락거리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히 보였다. 한영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션의 움직임에 따라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것이 못마땅한지 옆에서 라이오넬이 따져온다.
"nigga 너만 재미 볼 셈이야?"
라이오넬의 지적에 션은 아깝다는 얼굴을 했다. 자신의 것을 빼낸 그는 한영의 몸을 돌려 후배위로 다시 삽입을 한다. 그러자 라이오넬은 곧바로 한영의 얼굴 앞에 자신의 것을 들이밀었다.
"이번엔 제대로 빨아. 한. 내가 그동안 잘 알려줬잖아."
한영은 울컥했지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신음을 흘리느라 벌어진 입 사이로 살구색의 성기가 쑤셔 박힌다. 숨이 막혔다. 길고 커다란 성기가 목젖까지 치고 들어와 입 안을 꽉 채운다. 뒤로는 시커먼 성기가 이미 내부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다.
쾌감은 전혀 없었다.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다. 한영은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를 잡으며 허리를 움직이는 라이오넬과 뒤에서 박아대는 션 때문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다. 질퍽한 소리가 앞뒤로 울렸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살덩어리가 입과 뒤로 사정없이 부딪쳐 들어온다.
마치 윤간당하는 느낌이다. 한영은 왠지 울고 싶어졌다. 조금전에 애무로 노곤해진 몸은 점점 피곤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만다.
"읍!"
션의 성기가 다시금 그곳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하게 안으로 치고 들어오며 긁어내리는 성기의 촉감,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 문 성기를 강하게 조이며 시트를 꽉 쥐었다. 파들거리며 떨리는 몸을 보며 뒤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여긴가."
션이 다시 그곳을 의도적으로 건드린다. 그러자 다시 머릿속에 스파크가 터졌다.
"읍! .....으읍!"
라이오넬의 성기가 물려있어 답답한 소리만 흘러나온다. 한영은 온몸이 저릿한 쾌감에 휩싸이는 기분을 느꼈다.
퍽퍽, 션은 연달아 강하게 쑤셔 박았다. 그때마다 한영은 몸서리를 치듯 강하게 반응했다. 어느새 다시 일어난 성기가 덜렁거리며 질질 액을 흘리고 있다. 입속에 머금은 성기를 절박하게 빨았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라이오넬의 뜨거운 숨소리가 느껴졌다. 그가 허리를 쳐올렸다.
깊숙이 입안으로 박히는 성기의 느낌과 더불어 뒤에서도 자신을 부숴버릴 것처럼 강하게 박히는 또 다른 성기가 느껴졌다.
미칠 것 같다고 한영은 생각했다. 이런 것은 처음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오르가즘을 느꼈을 때와 유사한 감각. 난잡하게 허리를 놀리며 안으로 파고드는 굵은 성기가 주는 쾌감.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뒤를 조이며 허리를 흔들었다. 보채듯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사타구니에 비볐다.
그리고 라이오넬의 것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빌어먹을, 라이오넬 또한 참을 수 없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욕을 중얼거린다. 바로 전에 사정햇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다시 강한 욕구가 치밀었다. 그리고 라이오넬이 자신의 입에 토정한 순간 한영 또한 시트에 자신의 것을 흩뿌렸다.
그리고 힘없이 쓰러진 몸 위로 션이 겹쳐왔다. 그는 누워있는 한영에게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한영은 자신의 입 앞에 있는 새까만 물건을 멍하니 바라보다 입에 머금었다. 빨아, 라고 션이 낮게 명령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꽂혀있던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혀로 핥고 몇 번 빨자 급했던 모양인지 션이 얼마 지나지않아 그의 얼굴에 사정했다. 마치 영역표시를 하는 수컷의 행위 같다.
하지만 이제 어찌 되든 모르겠다는, 자포자기적인 생각이 든다. 허리를 떨며 숨을 몰아쉬던 그는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한영을 껴안고서 키스했다.
입에서 뺨으로, 다시 목에서 가슴으로 내려간 그의 입술은 점점 내려가서 젖꼭지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혀로 부드럽게 장난치듯 터치하자 한영의 입에선 작은 신음이 흘렀다. 새까만 피부에서 유독 튀는 핑크빛의 혀가 살을 빨아대자 달구어진 몸은 금세 반응한다. 하지만 곧 뜨거운 혀의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젠 내 차례야."
라이오넬이 한영을 채가고 만 것이다. 션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다시 으르렁거리는 두 수컷의 싸움을 보며 한영은 모든 걸 체념하고 기운 없이 말했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는 모양이니 그는 차라리 포기하기로 했다.
션이 먼저 삽입했던 아래는 완전히 풀려있었다. 라이오넬이 들어오자 쉽게 그를 받아 들였던 것이다.
"아! 아아!......하아....앗!"
몇 번이나 몸을 섞었던 상대다웠다. 한영은 그의 목에 매달려 힘겹게 신음했다. 그의 다리는 라이오넬의 허리를 양 다리로 조이고 있다. 타인 앞에서 정사를 벌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션은 그런 둘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것을 훑었다. 마치 과시하는 것 같은 행위였다. 라이오넬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채 션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은 부끄러웠다.
한영은 시선을 피하려고 했지만 라이오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흥분하는 한영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먼저 시작한 션과 한영을 보며 안 그래도 어서 빨리 삽입하고 싶었던 그는 급히 제 것을 꽂아 넣더니 평소보다 더 몰아붙였다.
"처음부터 무척 밝히긴 했지만, 오늘 보니 꽤 대담한 걸?"
"읏....하아....아, 하앗!"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틈도 없었다. 라이오넬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강하게 허리를 쳐올렸다. 한영은 더욱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헤에? 좋은 게 있네."
그때 션이 갑자기 무언가를 들고 다가왔다. 그것은 딜도였다. 페니스 모양의 고무 장난감은 혹시나 싶어 한영이 고국에서 유일하게 챙겨 넣은 장난감이었다. 침대 옆 서랍장에 넣어둔 것인데 션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담배나 한대 피울까 해서 뒤진것인데 예상외의 물건이 나오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마침 잘 됐는데."
자신의 것보다는 작지만 애널을 늘리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라이오넬 또한 그의 생각을 알았는지 빙긋 웃었다. 그는 몸을 눕히며 자신의 위에 탄 한영도 따라오게 했다. 한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라이오넬과 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라이오넬이 그의 엉덩이를 양쪽으로 크게 잡아 벌렸다. 삽입된 채로 벌어지자 한영은 아픔에 인상을 찡그렸다. 곧이어 엄지손가락이 파고들어 왔다. 아픔과 생소한 느낌에 한영은 펄쩍 뛰었다. 하지만 라이오넬의 손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자리를 넓히기 시작했다.
"아파! 아! 하.....아아.....윽."
라이오넬의 손은 집요하게 안을 헤집었다.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한영은 몸을 뒤틀며 벗언려고 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용서 없이 그의 허리를 아래로 내렸다. 끝까지 삼킨 성기와 함께 깊숙이 파고드는 손가락에 한영은 어느새 눈물을 흘렸다.
"아.....아아..... 하읏."
"조금만 참아봐. 너도 좋아할 거야."
자신도 모르게 허물어진 상체는 라이오넬의 가슴 위로 쓰러졌다. 눈가를 핥는 다정한 행위도 인식하지 못했다. 키스가 시작되는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위로하듯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아들이는 행동에 조금 진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픔에 훌쩍거렸다.
다 커서 이렇게 울먹거리는 상황이 오다니, 그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 황당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느새 라이오넬에게 휘말리고 만다. 키스를 하면서도 부드럽게 삽입하고 있다. 어느새 성기와 함께 움직이는 손에도 익숙해졌다.
"으응......"
곧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차지한다. 달도였다. 그것이 서서히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아! 아아!하.....아윽!"
허리를 꽉 잡는 라이오넬 때문에 몸부림도 칠 수 없었다. 션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안으로 그것을 꽂아 넣어 천천히 피스톤 질을 하기 시작했다. 꽉 차인 내부에서 두개가 번갈아 상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아슬아슬한 쾌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하아....아....."
너무 아픈데도 그와 비례하는 낯선 쾌감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한영은 어느새 침을 흘리는 것도 모르고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라이오넬이 그의 허리를 매만지며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다.
괜찮다, 착하다 따위의 위로였다. 하지만 한영은 다른 것들은 느낄 수 없다. 그저 뒤로 느껴지는 확연한 감촉, 쾌감, 아픔, 그리고 흥분과 굴욕감이 뒤섞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타고났군."
뒤에서 션이 중얼거리며 딜도를 빼내었다. 그리곤 제 등 뒤로 바싹 붙었다. 앞뒤로 따뜻한 맨살이 비벼지는 촉감에 한영은 움찔거렸다.
이미 꽂혀있는 살굿빛 성기와 더불어 새까만 성기가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딜도보다 훨씬 굵어 눈물이 찔끔 났다. 한영은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싫어....싫.....하악!"
하지만 적극적으로 거부하진 못했다. 아까 전에 느꼈던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두꺼운 귀두부분이 파고들어오자 숨이 턱 막혀온다. 미끄럽고 질척한 성기가 맞부딪치며 자신의 안에서 요동친다.
뒷골이 서늘할 정도로 분명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한영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손톱을 세워 라이오넬의 어깨를 긁었다. 누워있는 그의 위에 엎드려서 션까지 받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행위를 중단시킬 수가 없었다.
"아.....하악!"
션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으로 꾹꾹 파고들어오는 성기와 빠져나가는 또 다른 성기, 전혀 다른 색을 띠며 서로의 존재를 증명했다. 마치 두 마리의 굵고 커다란 뱀 같았다. 그리고 한영의 속으로 침입해 독니를 박아 넣듯이 그의 사고와 신체를 마비시킨다.
"아!아! 하아! 아아......읏!"
"하아......미치겠군."
"정말 죽이는, 걸. 큿."
라이오넬과 션이 번갈아 가며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한영에겐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내부를 긁어내리며 마구 자신을 유린하는 성기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아앙.....하으응."
어느새 젖은 신음을 흘리며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자신 또한 허리를 흔들었다. 죽을 것 같ㄷ는 생각이 들면서도, 좀 더 강하게 파고들길 바라는 모순적인 기분이 들었다.
"아앙.....하.....으으.....나.....아."
한영은 갸르릉거리며 라이오넬의 배에 자신의 성기를 문질렀다. 미칠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행위에 흥분하는 자신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선명한 쾌감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다른 무엇으로 변해가는 기분이다.
한영의 반응이 달라지자 두 사람의 성기가 조금 더강하게 안으로 박혀온다. 번갈아가며 움직이자 한영은 목을 젖히며 쾌감에 울부짖었다.
좋아, 너무 좋아. 아아, 더 세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영은 한국어로 울먹였다. 그 말을 알 리가 없는 션과 라이오넬은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간간이 섞인 흐느낌과 교성으로 그가 흥분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더욱 강하게 허리를 쳐올리고 깊이 삽입했다.
퍽! 퍼억! 살이 거세게 부딪치고 안에서 강하게 후벼 파듯이 움직였다. 뱃속이 꽉 차고 장이 너덜거리는 느낌이었다. 두들겨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좋았다. 조르듯이 엉덩이를 흔들며 더욱 안을 조였다.
더 깊이 자신의 안에 박아 넣어 안을 마구 휘저어주기를 바랐다. 모든 신경과 사고는 오로지 쾌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처음 라이오넬과 자면서 쾌감을 느꼈을 때보다 더 강한 오르가즘이 찾아왔다.
이런 음란한 자신의 내면을 깨닫자 수치심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쾌감으로 변화했다. 욕망이 온몸을 휘감아 이성을 찾을 수 없다.
"더, 더 세게 박아 넣어줘. 아, 좋아."
찢어져도 좋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한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없는 와중에 사정하고 말았다.
곧이어 두개의 성기에서 폭발하듯 정액이 터져 나와 안을 흠뻑 적셨다. 한영은 넋이 나간 채 그들 사이에 끼어 눈을 감았다. 꼼짝도 할 수 없는 피로가 갑자기 찾아온 탓이었다.
한영이 바랐던 것은 단지 경험이었다. 고국에 돌아가서 새 출발을 하기 위한 적당한 몇 번의 섹스. 하지만 그날의 경험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더 이상 순진하게 밤마다 장난감과 놀던 시절은 다시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내심 느끼고 있었다.
"오늘 밤 또 어때?"
서류를 제출하는 사이 아차 하는 순간 손이 잡혔다. 한영은 어쩔까 고민했지만 상대는 선택의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키스를 하는 사이에 어느새 벨트가 벗겨지고 브리프가 내려간다. 전면유리창인 고층빌딩에서 상사의 책상 위에 엎드려 엉덩이를 내보인채 꿰뚫리는 것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금발의 미남이 사무실에서 호시탐탐 그를 노렸기 때문이다.
".....아, 하아.....응."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은 한 달이 남았다. 그래서 라이오넬은 더 조급한 모양이다.
"돌아가지 마. 한영. 계속 이곳에서 근무해."
이제는 제법 본명을 그럴싸하게 발음하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젖꼭지를 비틀며 대답을 촉구한다. 한영은 책상 위에서 흔들리며 신음을 죽였다. 회사 동료에겐 이 꼴을 들키긴 싫었다. 게다가 예전에 느꼈지만 방음이 별로였다.
"....모르겠, 앗! .......하아......아!"
대답을 외면하자 곧바로 거세게 치고 들어오며 난폭하게 허리를 움직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교성을 지를 뻔했다. 가까스로 입을 막아 창피는 면했지만 아슬아슬했다.
"한국에 돌아가도 널 만족시킬 남자는 없을 거야."
부루퉁한 목소리로 라이오넬은 중얼거렸다.
"글쎄요......"
한영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다시 세게 삽입을 한다. 어서 예스라고 대답해, 강요하는 말투에 한영은 끙 소리를 냈다.
"모르겠지만 넌 사실 엄청나게 음란하다고. 그런 답답한 나라에서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아, 아....으응."
그건 외국인의 편견이고, 나름 할 건 다 하는데.
한영은 머릿속으로만 대꾸했다. 도무지 대답할 틈을 안주는 라이오넬 때문이었다.
"호텔을 잡아놨어. 오늘 또 즐기자구."
체력 한번 대단하군. 사무실에서뿐만 아니라 사적인 시간까지 빼앗는 그를 보며 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거절할 순 없었다. 그가 초대한 곳에선 다크 초콜릿 같은 피부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결국 라이오넬의 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문을열고 들어서자 미리 와있던 션이 그에게 키스를 했다. 몇 번의 만남을 반복하며 이제 그들에게 익숙해진 한영이었다.
옷이 벗겨지고 욕실이든 바닥이든 침대든 가리지 않고 그들은 한영의 몸을 탐했다. 물론 한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젠 둘이 동시에 삽입해도 아픔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인간은 정말 적응력이 뛰어나구나.
한영은 자신의 변화를 느끼며 감탄했다.
내심 영국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도. 하지만 제명에 못 죽을 건 확실했다. 이렇게 생기를 빨리다간 아마 미라가 될 것 같다. 한영은 신음을 지르는 와중에 생각했다.
fin.
ONE HOLE TWO STICK
고층빌딩은 전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언제나 바깥 날씨가 훤히 보였다. 실내에 있지만 실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영은 급탕실 한 편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런던의 거리를 내려다봤다.
"얼마나 남았지?"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이미 상대를 알고 있던 한영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을 본 것이다. 한영은 그가 무엇을 묻는지 고민하다 얼마 전에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고 날짜를 헤아렸다.
"회사에 나오는 건 열흘 정도."
"그렇군."
상대는 쓴웃음을 지으며 테이블 끝을 두들긴다. 한영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뒤 남자에게 말했다.
"전에 말했던 일은 어떻게 된 거야?"
"모레까지 대답해줄게."
"그래. 그리고 나중에 확정되면 당신 쪽에서 회사에 연락해. 그게 더 빠를 테니까."
"오케이. 그럼 난 먼저 갈게."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남자는 곧 컵을 들고 급탕실을 나간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국인 동료였다. 알고보니 나이도 같고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었다.
요즘은 같이 하는 작업이 있어 술자리도 몇 번 하다 보니 친해진 것이다. 그는 커피를 마시며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온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성큼 돌아갈 때와 가까워진다.
그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 라이오넬이 찾아요."
"지금 갈게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커피를 버리고 라이오넬의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 벽은 유리창으로 되어있지만 블라인드가 쳐져있다. 예전엔 중요한 일이나 기분이 나쁠 때만 그랬는데 요즘은 항상 안을 가려 놨다.
사무실엔 라이오넬이 조울증에 걸렸다는 소문이 들렸다. 성격도 더 까칠해지고 조금만 실수해도 불호령이 내린다. 하지만 가끔은 기분이 굉장히 좋아질 때도 있다.
그 기분의 주기는 주로 한영과 관련되어 있다.
"불렀어요?"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라이오넬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에게 오라는 손짓을 한다.
"내일 뭐해?"
"약속 있어요."
그 말을 하자 라이오넬의 인상을 바로 굳어진다. 그는 기분 나쁨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션이랑?"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한영은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션뿐만 아니라 진서와 캐리랑도요."
"뭘 하는데?"
"피크닉 가기로 했어요. 날짜가 안 맞거나 날씨 때문에 한 번도 공원에 놀러 간 적이 없거든요."
언제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간과하기 쉽다. 늘 지나가는 하이드 파크라도 안을 들여다보진 못했다.
"한, 날 좋아해?"
".....네. 좋아해요."
그가 원하는 답과 자신의 답은 아마도 깊이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영은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했다. 라이오넬은 금세 풀이 죽은 얼굴을 하며 그의 손에 키스했다.
"난 그 사건을 후회하고 있어. 당신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지나간 일은 후회해 봤자....."
소용없어.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라이오넬은 한영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자르고 들어온다.
"그래. 내가 어리석었어. 하지만 한, 잘 생각해봐. 한국에 가도 어차피 달라질 건 없잖아. 당신은 계속 일을 할 거고. 그럼 이 곳에 있는 것과 달라질 게 없잖아."
".....그건."
"한국에서 당신이 누리던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이 있을 거야. 그리고 필요한 건 내가 모두 준비할게. 응?"
가지 마. 라이오넬은 그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한영의 몸을 어루만지고 키스를 퍼부었다. 그는 회사에서도 부쩍 스킨십이 강해졌다. 예전엔 키스와 페팅 정도로 끝났지만 요즘은 강압적으로 삽입까지 해치우곤 한다. 어떻게든 닿아 있고 싶어 하고 또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한.... 영국에 계속 있어줘. 응? 날 위해서."
".....흐음."
"불가능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으음."
한영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권유에서 강요로, 강요에서 애걸로 바뀌는 영국체류건, 가면 갈수록 끈질겼다.
문제는 이게 라이오넬 한 사람뿐이 아니라는 거다.
영국엔 참 공원이 많다. 영국에서 가장 크다는 하이드 파크는 면적 또한 무척 넓고 사람도 많았다. 피크닉 하기 좋은 맑은 날씨라 진서의 제안으로 놀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야! 공을 어디다 던지는 거야!"
"미안!~ 똑바로 할게."
승주가 던진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고 진서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조금 멀리서 들려온다. 둘은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한영은 진서의 폴라로이드를 만지작거리며 사진이나 찍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뭘 찍으려고?"
"음, 정한 건 아니고."
꼼지락거렸더니 밑에서 바로 반응이 온다. 자는 줄 알았더니 눈만 감고 있던 모양이다.
"깼으면 일어나지?"
슬슬 다리가 아프다. 한영이 매몰차게 말하자 상대는 다시 눈을 감고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싫어. 편해요."
"난 불편하거든?"
쳇, 한영은 자신의 허벅지에 느껴지는 남자의 머리무게를 원망했다. 나무에 기대 다리를 뻗고 있어 다행히 저리진 않았다.
푸근한 햇살 덕분에 기온은 꽤 따듯했고 활기찬 외침들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이렇게 있으니 세상은 평화로워 보였다.
한영은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것을 지켜보던 션은 문득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무슨 생각해요?"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한영은 잠시 생각을 고르며 차례대로 말했다.
"빙하가 녹는 걸 어떻게 멈출 수 있는가. 자원의 고갈은 정말 사실인가. 과연 백 년 뒤 지구의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 후손들은 어찌하면 좋을까. 역시 자식을 안 낳아야 하는 건가."
"푸핫!"
너무나 진지한 표정과 말투에 션은 옆으로 몸을 돌리며 키득거렸다. 한영은 가끔 이런 식으로 본의 아니게 개그를 한다.
"아아, 너무나 훌륭한 생각이에요. 한, 당신의 따듯한 마음에 정말 감동했어요."
"아, 그래?"
한영은 은근한 비꼼을 느끼곤 흥 소리를 내며 시선을 돌렸다. 마침 눈에 띄는 건 바구니다. 안에는 시장에서 사온 과일과 승주가 싸온 도시락이 있다. 한영은 그것을 한참 뒤적거렸다. 그리고 샌드위치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물었다.
"배고파요?"
"응. 그런데 저 배드민턴에 미친 두 사람은 돌아올 생각이 없네. 먼저 먹지 뭐."
한영은 의리라곤 없는 사람처럼 곧바로 입에 한 웅큼 물었다. 볼이 부풀려지며 오물오물 씹은 그는 금새 씹어 넘기고 다시 한모금 물어 샌드위치를 모두 없앤다. 승주는 여자라서 그런지 음식을 작게 만든다. 한영은 그것을 다 씹어 넘긴 뒤 물을 마시고는 션에게 말을 걸었다.
"샌드위치와 햄버거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뭐죠?"
"전투적으로 먹어야 흘리지 않는다는 거야."
"으하하!"
한영의 진지한 표정에 션은 벌떡 일어나 배를 잡고 웃었다. 그는 한참을 킬킬거리다 한영의 뺨에 키스를 했다.
"밖에서 이러지 마."
한영은 거부했지만 션은 웃기만 할 뿐이다. 자신의 욕망대로 한영에게 세 번의 키스를 하고 나서야 떨어진다.
"뭐 어때서 그래요."
"남들이 보잖아."
"보라 그래요.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인 걸."
"시끄러워."
한영은 무심하게 그를 밀어냈다. 션은 안타까웠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는 한영의 손을 슬쩍 잡아온다.
"한."
"왜?"
"돌아가지 말아요. 계속 여기서 함께 지내요."
언제나의 그 말이다. 한영은 정색하며 아예 대답을 회피했다. 얼굴만 보면 매일 해대니 이제는 인사처럼 느껴진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
국적문제도 있고 회사 문제도 있다. 자신은 런던으로 여행을 온 게 아니었다. 출장기간이 끝나면 그대로 돌아가야 했다. 영국생활은 익숙해졌지만 이곳에 남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러다 다음 약속에 생각이 미친 한영은 시계를 봤다. 오후 네 시, 저녁 약속까지는 세 시간이 남아있었다. 아직 넉넉하니 벌써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시계를 내리자 승주가 땀을 흘리며 다가오고 있다.
"지친다, 진서 쟤 왜 저렇게 열심이니? 나랑 교대할 사람?"
그녀는 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다. 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배드민턴 채를 받았다.
"내가 할게."
"한, 잘 쳐?"
"한국에선 가끔 쳤지."
운동 대신에 진서와 휴일에 집 앞 공원에서 가끔 하곤 했다. 한영은 그립을 똑바로 잡고는 진서에게로 향했다. 그가 라켓을 휘두르자 붕붕 소리가 났다. 제법 강한 스윙에 진서가 오오 소리를 내며 공을 허공에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훗, 서한영. 나에게 도전하는 거냐?"
진서가 거들먹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한영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공이 던져지길 기다릴 뿐이다. 곧 진서가 웃으며 강하게 공을 날린다. 한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라켓을 움직였다.
강력한 스매쉬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션과 승주는 동시에 입을 벌렸다. 특별활동으로 약 십 년을 배드민턴에 쏟은 베테랑의 실력이었다. 졸지에 1점을 뺏긴 진서는 공을 주우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후후, 전혀 실력이 녹슬지 않았군. 하지만 난 쉽게 지지 않아. 받아라! 나의 환상적인 서브 에이스를!"
"시끄러워. 빨리 치기나 해."
진서가 떠들자 한영은 무표정하게 잘라냈다. 사실 한국에서도 그들은 이렇게 승부를 즐겼다. 귀찮은 걸 싫어해서 운동도 안 하는 그들이 유일하게 즐기는 스포츠였다.
영국에서의 생활은 순식간에 흘렀다. 어느새 돌아갈 날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난다. 한영은 아직도 해가 지지 않은 하늘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닭요리에 털이 있거나 말끝에 플리즈를 붙이는 것도 익숙해졌는데 유독 이 하늘만은 언제 봐도 새롭다.
진서와 배드민턴을 하느라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션이 진서와 노닥거리는 동안 옷을 갈아입고 나온 한영은 션을 불렀다.
"이제 가지."
"알았어. 그럼 나중에 봐."
"잘 가."
둘은 원래 친구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한영은 그 장면을 보며 쿨한 건지 속 편한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아직 안 늦었죠?"
"택시 타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원래 계획과는 달리 집에 들르는 바람에 시간이 늦어졌다. 오늘 저녁엔 라이오넬과 약속이 있었다. 얼마 전에 데려가 준 한인식당을 한영이 마음에 들어 하자 가끔 둘이 같이 갔는데 오늘은 션이 자신도 궁금하다며 끼어든 것이다. 물론 라이오넬은 못마땅해 했지만 션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 뒤는? 호텔?"
"몰라."
션이 짓궂게 웃으며 말하자 한영은 딱 잘라 대꾸했다. 하지만 션은 웃기만 할 뿐이다. 어차피 마지막은 늘 호텔임을 알기에.
어느새 두 남자는 자신을 두고 동맹을 맺은 모양이다. 페어플레이하고 한영과 데이트를 즐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영은 둘의 방식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따로 만날 경우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만나지 말고, 적어도 한번은 3p를 즐길 것, 한영이 어느 쪽에 더 반응하는지 공정하게 판가름하며 지켜본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남자들이란, 결국엔 유치하다. 한영은 비싼 택시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약속 시간에 늦어지는 건 질색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옆에선 션이 한국 음식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낸다.
"한국 음식은 어떨지 기대 되요."
"맛있어. 적어도 내 입에는."
소주가 한 병에 10파운드가 넘는 점만 빼면 매일 가고 싶은 곳이었다. 한영이 딱 잘라 대답하자 션은 머쓱한 얼굴을 한다. 요즘들어 그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다. 원래도 과묵하고 표현이 적었지만 알면 알수록 무뚝뚝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면에 밤만 되면 요부처럼 군단 말이지, 션은 그 생각을 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깔끔한 외모, 정적인 겉모습은 일상생활이지만 침대에선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건 다하고 의외로 밝히는 것이다.
말로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엉덩이를 빼지만 일단 넣어주면 내숭은 사라진다. 특히 그곳을 세게 찔러주면 여자보다 더 야릇한 교성을 흘리며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침대가 아니었고 한영은 어디로 보나 반듯한 청년이었다. 그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가늠하고는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심각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사소한 것들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영국 물은 석회수가 많아서 맛이 없다. 물을 돈 주고 팔다니 정말 마음에 안 든다. 한영이 생각하는 것들은 주로 그런 것들이었다.
션은 그런 한영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이내 라이오넬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자신의 최대 라이벌, 얄밉게도 나이까지 많아서 묘하게 불쾌감까지 준다.
아직 대학생인 자신과는 달리 이미 사회인에 귀족 출신인 그는 오늘은 자신이 속한 클럽모임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
라이오넬 스펜서, 꼴에 백작가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다국적 기업 D&S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D&S는 스펜서 가문의 사람이 미국에서 만든 기업이다. 미국 본사에 있는 회장은 라이오넬의 종조부로 그는 후계자가 없어 자신의 친형제의 손자인 라이오넬을 후계자로 점찍고 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나이가 있어 이미 능력까지 인정받는다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션은 아직 대학생이라 배워하 할 것이나 넘어야할 산이 많았다.
"한."
"왜?"
"당신은 나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경이나 과거를 갖고 있는지."
"....별로."
한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가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유학와서 현재 UCL을 다니고 있다는 것만 안다. UCL은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일명 옥스브리지와 함께 영국에서 손꼽는 명문대였다. 언론을 전공하고 있고 아르바이트는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보이는 점과 브랜드제품을 애용하는 걸 봐선 중산층 정도 되는 것 같다.
냉정하게 댇답하는 한영을 보며 션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영은 이미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기에 궁금하지 않았다.
"그럼 라이오넬은요?"
"그도 너처럼 알만큼 알아."
같은 회사에 있고 직급은 높다. 그도 간부지만 더 높은 자리에 있는 분과 연줄이 닿아있고, 알고 보니 귀족출신이라더라. 한영이 아는 건 그게 전부였다. 전에 레베카가 얘기할 때는 그녀의 과격함에 놀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라이오넬은 내 상사이자 부자에 미남에 귀족 출신, 넌 뉴욕 출신의 중산층인 것 같은 미국 유학생. 뭐가 더 필요해?"
귀족이라지만 한국인 중에 양반 출신 아닌 사람도 있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분제는 곧 부의 축적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한영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 한영을 보며 션은 의문이 들었다. 대답은 똑 부러지지만 과연 제대로 알고 있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묻기도 뭐하고, 시큰둥한 태도를 보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마 영국의 여왕과 베컴 외엔 다른 유명인을 모를 것이다. 션의 아버지가 얼마나 유명한 존재인지,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의 가치도 모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파티에 초대되는지도.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션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당신, 헐리우드 스타 누굴 좋아하죠?"
"나? 에드워드 노튼. 연기를 잘하거든."
유일하게 좋아하는 외국 배우다. 예전에 프라이멀 피어를 보고 빠져서 그가 나온 영화는 모두 봤다.
"그 외엔?"
"몰라. 브래드 피트 정도는 알아. 음, 키아누 리브스나 니콜라스 케이지 정도로 유명하다면 알지만."
한 마디로 무지하다는 이야기다. 한영은 그 사실을 매우 담담히 이야기했고 션은 쓴웃음을 지었다.
"J.G는 알아요?"
"아니, 그게 누군데?"
존 그레이, 미국의 유명한 흑인 가수로 그래미상을 몇 번이나 휩쓸었고 현재는 자신만의 레이블을 가진 음악계의 큰 손이다. 당연히 모를 줄은 알았지만 정말 모를 줄이야. 션은 황당함을 느꼈다. 슈퍼모델 출신인 자신의 어머니는 더욱 모르겠지. 그는 아예 포기해버렸다.
션은 어차피 이곳에 와선 평범하게 생활하려고 했다. 그는 유명한 부모를 둔 덕에 미국에선 어린 시절을 너무 방탕하게 보냈다. 모델 활동도 했으며,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사귀었다. 마약부터 난교까지, 모든 유흥을 하이스쿨에 가기도 전에 떼버렸다.
그런 생활은 즐겁긴 했지만 지겨웠다. 때문에 이제는 정신 차리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사정은 궁금해 하지도 않고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내릴 채비를 하고 있다.
"다 왔네. 내리자."
하긴, 그게 한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사람을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만 본ㄷ는 것. 그게 너무 지나치긴 했지만 누군가를 이용하려 하질 않는다. 심지어 자신과 만날 때는 더치페이를 하면서도 연상이고 사회인인 자신이 더 부담하려고 한다. 션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한영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식당에 들어가자 한영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그는 자신의 메뉴를 결정하는 것에 집중했고 션에게도 슬쩍 자신이 먹고 싶은 다른 것을 추천했다. 라이오넬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나중에야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야 약속이 있다는 자각을 했다.
"늦어서 미안하군."
"아니에요. 어서 앉아요."
한영의 무관심에 이제는 익숙해져서 서운하지도 않다. 라이오넬은 앉아서 자신도 주문을 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션을 바라봤다.
"오랜만이군. 여전히 한가한가 봐?"
"그쪽만 하겠어?"
만나자마자 이죽거린다. 이제는 당연해진 신경전이었다.
"끈질긴 새끼."
"남 말 하네."
둘은 서로 사이좋게 악담을 퍼부었다. 한영은 지겹지도 않느냐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다 코리안 헤럴드를 펼쳐들었다. 반가운 한글이 보이자 그것을 읽는데 열중한다.
당사자가 저렇게 무심하니 싸우는 맛도 아지 않는다. 처음엔 말리는 척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아예 수수방관이었다.
"난 한국 사람들은 겨우 세 명을 알지만 전부 냉정해 보여. 캐리나 진서나 한이나 다 똑같이 너무 쿨해."
"난 한만 봐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처음으로 뜻이 맞았군."
캐리는 승주의 영어 이름이었다. 둘이 투덜거리자 신문을 읽던 한영은 피식 웃음을 흘린다.
"한국엔 이런 명언이 있어."
"먼데?"
션과 라이오넬이 동시에 물었다. 한영은 여전히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무심하게 대꾸했다.
"이기는 편 우리 편."
"......."
둘은 입을 다물었다. 둘이 피 터지게 싸우든 말든 관심도 없다는 얼굴, 그리고 정 고르라면 이긴 쪽에 붙겠다는 냉정함,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한영은 신문을 보느라 둘의 얼어붙은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는 음식이 나오자 신문을 접고 고개를 들었다. 반듯하게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숟가락을 잡는다.
"맛있네."
흰 쌀밥을 한 입 머금자 보기 드문 미소가 흘러나온다. 매우 기쁜 표정이었다. 요즘 그의 유일한 삶의 낙은 바로 한인식당에서 먹는 쌀밥과 고추 양념이 들어간 요리인 것이다.
라이오넬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거만하게 웃었다. 마치 '여기는 내가 데리고 왔지. 이게 다 내 덕인 줄 알아.'라고 뻐기는 듯했다. 그러나 션도 만만치 않았다.
"라이오넬, 아직도 젓가락질이 서툴군. 좀 배워야겠어."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그는 빙긋 웃었다. 라이오넬은 인상을 구겼다. 확실히 그는 젓가락질이 서툴렀다. 유치하기는, 한영은 둘의 신경전을 무시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밥상 앞에서 싸우지들 마. 어린애도 아니고."
그는 밥 먹는 데 방해하는 둘이 무척이나 못마땅했다. 졸지에 어려진 두 남자는 입을 다물고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잘하면 일주일 후엔 다시 흔해지겠지만 아직은 소중한 고국의 맛이다. 한영은 반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매우 조용히, 그리고 많이 먹었다.
다른 두 사람은 평소 양보다 적게 먹고 있었다. 이곳은 외국인의 입맛보다는 토종 한국인들을 위한 식당이라 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맛들뿐이다. 맛이 이상해. 매워, 썩은 내가 나. 이런 말을 했다가는 한영이 젓가락을 놓으며 서슬 퍼런 눈으로 분명히 먹지 말라고 할 테니 조용히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이미 이주 전에 한영의 집에서 당했던 것이다. 빠른 말로 '된장을 퍼 먹이기 전에 닥쳐' 라고 하는데 한국말이라 알아듣지 못했다.
다른 곳에 가고 싶지만 한영이 이곳을 가장 좋아하니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들은 기뻐하는 한영의 얼굴을 반찬 삼아 어색하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반대편에선 이제야 조용하다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는 한영이 있었다.
둘이 만나면 싸움질에, 음식 갖고 투정부리는 모습이 그는 무척이나 언짢았다. 한때는 화가 나서 확 삭힌 홍어를 먹여버릴까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일 것 같아 참았다.
그러고 보니 삼합이 먹고 싶네. 홍어와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김치를 한입에 먹고 바로 막거리를 마시는 상상을 하자 입에 침이 고인다. 이곳에 오기 전 회식자리에서 먹었는데 그 맛이 갑자기 떠올랐다. 환성적인 세 가지 맛의 조화, 그리고 막걸리의 달달하고 구수한 맛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역시 한국인은 한국에서 사는 게 제일 행복하지."
그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은 영어였기에 두 남자의 귀에도 들리고 말았고 순간 심장과 젓가락을 동시에 떨어트릴 뻔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한영은 그 사실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머릿속엔 누룽지 막걸리, 해물 파전, 족발, 보쌈 등등이 둥실둥실 떠올라 그의 식탐을 자극하고 있다.
그들은 무언가 아련한 눈으로 떠올리는 한영을 보며 두려운 눈을 했다. 진짜 가는 건가? 설마? 여태 가지 말라고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간절하게 부탁했는데도 어렵다는 말로 딱 잘라 거절하는 대답만 돌아왔다. 게다가 출장기간이 끝나는 건 바로 일주일 뒤, 넉넉잡아도 열흘이었다.
라이오넬은 심각한 눈빛으로 한영을 바라보았다. 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머릿속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걸 어떻게 붙잡지? 그리고 저 식탐을 어떻게 돌리지?
아무리 자신들이 그의 모든 성감대를 파악하고 몸을 길들여놔도 서른 해 동안 철저하게 길들여진 미각에 대항할 순 없다. 그들은 매우 암울한 얼굴을 했다.
식당에서 기분이 좋아진 한영은 평소보다는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라이오넬의 차 뒷좌석에서 포만감에 휩싸여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앞좌석에 있는 남자 둘의 심기는 불편했다. 애용하는 호텔에 가는 동안 그들의 인상은 잔뜩 굳어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서도 그들의 고민은 계속됐다. 한영은 본국에서 전화가 걸려 와서 욕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봐."
"왜."
라이오넬의 부름에 션은 웬일로 순순히 대꾸했다. 라이오넬은 턱을 쓸면서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넌 그냥 보낼 거야?"
"그러는 넌?"
".....당연히 못 보내."
만약 한영이 미국인이었다면 본사로 자신이 옮기면 된다. 하지만 한영은 션이 아니다. 라이오넬은 심각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난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야."
션 또한 단호한 얼굴을 했다. 둘은 그 순간에만 강한 동지애를 느꼈다. 물론 인간적인 호감은 제외하고서.
"그런데 어떻게 붙잡지? 말로 해선 도통 들어먹질 않는데."
"내 말이. 한이 고분고분한 건 침대뿐이야."
일상생활에선 의외로 고집이 세다. 독선이 심한 게 아니라 개인주의가 심한 것이다. 션은 분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저번에 데이트 신청을 했더니 보고 싶은 책을 봐야 한다고 거절 했어. 기껏 책 한 권 때문에 밀릴 줄이야."
그러나 라이오넬도 만만찮게 맺힌 게 있었다.
"나는 귀찮다고 대놓고 말했어. 그게 더 심하다고."
"....그거 정말 가엾군."
션은 그를 동정하는 눈길로 바라봤다. 라이오넬은 울컥해선 그를 발로 찼다. 하지만 션은 재빨리 피해버린다. 결국 불이 붙은 둘은 서로 베개를 집어 던지며 싸우기 시작한다.
"뭐야 이건."
밖으로 나온 한영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 큰 녀석들이 또 싸우고 있으니 한심했다. 넓은 침대에선 흑인과 백인이 상대방을 비방하며 아웅다웅하고 있다.
"난 정말 네가 마음에 안 들어."
"나야말로 처음부터 네가 싫었다! 망할 검둥이!"
"....잘들 논다."
한영은 혀를 차며 침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사실 그는 두 남자가 불평하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지만 둘은 눈치를 못챘다.
서른 해 가까이 솔로로 살아온 한영은 자신의 생활 패턴이 있었다. 두 남자에게 갑자기 시달리자 피곤했던 것이다. 책도 보고싶고, 혼자 빈둥거리는 것이 적성에 맞았다. 지금 두 남자는 한영이 무심하다며 투덜거리지만 한영은 각자 일주일에 두 번씩, 동시에는 한번, 모두 5일을 그들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물론 요즘엔 귀찮아서 한 삼 일 정도만 내어주고 있다.
회사든 밖이든 지분거리는 행동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한 놈만 사귀어도 귀찮은데 두 놈이 동시다발적으로 덤비니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정말 신기한 건 서로에 대해 폭언을 퍼붓지만 둘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라는 거다. 백인 우월주의는 있어도 흑인이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는 라이오넬과, 특별히 백인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데도 라이오넬에게만 적의를 드러내는 션이었다.
언젠가 둘에게 그건 나쁜 사상이라고 잔소리를 하자 둘은 '쟤 빼고 다 괜찮다.'라고 매우 단호하게 대답한 것이다. 그럼 인종차별 발언은 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 이후부턴 검둥이나 흰둥이 정도로 끝난다. 하긴, 자신에게 하는 것만 봐도 그런 썩은 사상을 가진 남자들은 아니었다.
한영은 느긋하게 옷을 벗었다. 그들이 싸우는 동안 자신은 샤워나 해야겠다. 평소엔 둘이 서로 같이 들어간다며 귀찮게 했는데,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앗! 한, 어디가?"
"잠깐 샤워할 거면 나랑 같이!"
물소리가 들리자 두 남자는 뒤늦게 기회를 놓쳤음을 알았다.
"내가 먼저야!"
"웃기시네!"
한영은 샤워기를 틀어도 묻히지 않는 두 남자의 외침에 키득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혼자 있으면 멀쩡한데 뭉치면 덤 앤 더머같은 바보 콤비가 되는 것이다.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다투더니 곧 조용해진다. 한영이 시선을 돌리자 그들은 무언가를 던지고 있다.
"Let's toss it up."
오늘은 동전 던지기냐. 한영은 샤워 부스에 기대서서 그들이 하는 짓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전에는 서양식 가위바위 보인 Rock, Paper, Scissor를 외치더니 오늘은 동전으로 순서를 결정하고 있었다.
처음 순서만 정해지면 싸울 일이 줄어들어 차라리 편하다.
"바보들."
한영은 냉정하게 그들을 결론지었아. 하지만 그의 얼굴엔 기분좋은 미소가 어린다. 하지만 손은 냉정하게도 욕실 문을 잠가버렸다. 으악! 문이 닫히자 안타까운 비명이 들린다. 한영은 키득거리며 샤워를 시작했다.
"너 때문이잖아!"
"닥쳐 멍청아!"
둘은 닭 쫓던 개가 된 심정으로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한영은 이십 분 정도 지나야 나올 것이다. 섹스 전에는 샤워를 오래하는 편이니까. 라이오넬은 작게 욕을 중얼거리다 마침 옆에 있는 션의 가슴을 툭 쳤다.
"남은 건 겨우 일주일이야. 너라도 좀 어떻게 해보라고."
"너나 잘해."
"난 최선을 다 하고 있어. 심지어 그가 살 집도 알아보고 있다고."
경제력을 자랑하는 그의 말에 션은 인상을 구겼다. 그는 머리를 거칠게 쓸며 옷을 벗었다.
"나야말로, 마음 같아선 그를 감금시키고 싶어."
"이봐, 그건 범죄야."
그러자 라이오넬은 바로 정색을 했다. 션은 그 반응에 짜증스럽게 인상을 구겼다.
"그러니까 마음 같아서라고 말했잖아!"
말이 통해야 하지. 그는 자신의 벗은 옷을 라이오넬에게 집어던졌다. 라이오넬은 그걸 쉽게 잡아내더니 진지한 표정을 했다.
"하지만 괜찮은 방법이긴 하군."
".....미쳤어?"
이번엔 션 쪽에서 정색을 했다.
"네가 꺼낸 얘기잖아!"
"그러니까 마음만 그렇다니까!"
둘은 다시 말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한영이 나온 후엔 서로 먼저 욕실을 사용하겠다고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기를 해서 이긴 쪽은 션이었다. 먼저 씻고 나온 그는 라이오넬이 투덜거리며 씻으러 간 사이 한영에게 다가왔다. 가운을 걸친 채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다 션이 갑자기 어깨를 끌어안자 조금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뭐해요?"
"아, 연락할 게 있어서."
한영은 휴대폰 폴더를 닫으며 대답했다. 답지 않게 놀라며 숨기는 모습이 션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그는 굳이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꺼둬요. 방해되니까."
"아, 잠깐만."
바로 답문이 오자 한영은 자신만 볼 수 있도록 가까이 가져가 재빨리 확인한다. 그는 자신을 주시하는 션의 눈초리를 피하며 폴더를 닫았다.
"회사 문제라서. 이젠 끝났어."
그는 휴대폰을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방해꾼이 오기 전에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션은 급히 그의 몸을 끌어안는다. 가운을 벗기고 한영의 몸을 번쩍 들어 치대 위로 간 션이 입술을 부딪쳐 온다.
입술을 빨아들이며 혀로 샅샅이 훑어오자 한영은 나른한 비음을 흘리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예전엔 이런 키스조차 부끄러웠지만 익숙해지자 꽤 적극적으로 변한 것이다.
한참 동안 내부를 샅샅이 훑고 혀를 빨아들이던 입술은 이윽고 목으로 이동했다.
얇은 피부에 닿는 부드러운 입술의 촉감을 즐기며 한영은 그의 허리를 다리로 감았다. 션의 혀가 점점 밑으로 내려와 유두로 향했다. 이로 약하게 씹어대자 한영의 몸이 움찔거리며 반응한다.
"....하아."
혀를 뾰족하게 세워 건드리자 듣기 좋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션은 한영의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사타구니에선 어느새 발기한 두 성기가 맞물려 비벼진다. 션은 느릿하게 허리를 돌리며 한영을 애태우기 시작했다.
"내 위로 올라와요."
어느 정도 발기가 되자 션이 말했다. 한영은 얌전히 그의 배 위에 거꾸로 올라탔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엉덩이를 상대의 머리 쪽으로 내밀고 있는 건 몇 번을 경험해도 창피했다.
쭈뼛거리며 허리를 숙인 한영은 혀를 내밀어 션의 성기를 잡고 혀를 내밀어 핥았다. 성기를 꼼꼼히 핥아 침으로 적셨지만 워낙 굵어 입에 물기도 힘든데다 반도 들어가지 않는다. 한영은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며 그의 것을 물고 입술로 조였다. 벌려진 다리 사이로 그것을 지켜보던 션은 한영의 것을 혀로 핥는다.
주인이 움직일 때마다 위에서 대롱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혀로 끝부분을 건드리자 한영의 몸이 움질거리며 반응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할짝, 혀가 기둥을 쓸고 지나가자 허벅지 근육이 뻣뻣하게 경직된다. 션은 그것을 한입에 덥석 물로 볼이 홀쭉해질 만큼 세게 빨아 들였다. 밑에서 거센 쾌감이 일자 한영은 허리를 튕겼다.
"아!"
자신도 모르게 입술에 힘이 들어가 세게 션의 것을 물고 말았다. 션은 키득거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입으로는 한영의 것을 머금은 채 안에서 혀로 굴리며 허리를 쳐올렸다.
그의 것이 입안으로 깊이 들어오자 한영은 숨이 막혀왔다. 굵은 기둥은 반만 머금어도 목구멍을 아프게 찔러 온다.
"좋아요? 한?"
"으읍....으!"
심술궂은 션의 목소리에 한영은 불만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괴로워하는 걸 뻔히 알면서 물어오다니. 하지만 이젠 익숙해져 화도 아지 않는다. 한영은 자신이 물고 있는 남자의 성기를 핥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귀두 부분을 혀로 핥자 기분 좋은 숨소리가 들린다. 동시의 자신의 밑에서도 자극이 온다.
살을 빨고 빨리는 소리가 앞뒤로 들려왔다.
새까만 피부와 그보다 더 어두운 색을 가진 음모와 성기, 뻣뻣한 음모가 자신이 흘린 침에 흠뻑 젖어 턱에 쓸릴 때마다 따가웠다. 어느새 션의 혀가 회음부를 타고 입구 쪽으로 향한다.
쿡, 안으로 찔러 들어와 주름을 샅샅이 핥는다. 간지러움에 허리를 뒤틀자 넣을 듯 말듯 혀를 놀리며 살살 애를 태웠다.
한영은 밑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그의 성기를 문 채로 헐떡였다. 귀두 부분을 강하게 빨자 션의 혀가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혀가 갈라진 부분을 파고들자 동시에 내부로 침입한 혀가 안에서 똑같이 움직인다.
"하아....아....으응."
한영은 참지 못하고 션의 것을 뱉어냈다. 숨이 차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엉덩이를 상대의 얼굴에 비비듯 천천히 움직였다. 션의 성기를 손으로 애무하며 그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비볐다. 엉덩이만 살짝 들린 채 아예 션의 몸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진다. 그리고 앞에 또 다른 성기가 나타난다.
"하여간 재빠른 자식이라니까."
라이오넬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한영의 입에 가져다 대고선 혀를 찼다. 션은 벌써 왔냐는 얼굴로 그를 슬쩍 보더니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 사이 라이오넬의 성기가 한영의 입속으로 찔러 넣어진다. 한영은 숨쉬기도 힘들었지만 애써 그의 것을 혀로 핥은 뒤 입술로 물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작지만 그래도 충분히 벅찬 크기다.
한영이 힘겹게 그의 것을 머금으니 라이오넬이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상체가 조금 들리자 라이오넬의 손이 유두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이미 흥분해서 빳빳하게 일어선 젖꼭지를 비틀어 잡아당기자 약하게 신음을 흘리며 자신도 모르게 뒤를 조였다. 션의 혀는 안에서 피스톤 질하듯 움직이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손은 한영의 것을 강하게 움켜잡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한영은 괴로웠지만 입에는 라이오넬의 성기가 입안에 꽉 차서 신음조차 흘릴 수 없다. 그는 괴롭게 끙끙거리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라이오넬은 한영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그를 끌어당겼다.
"숨쉬기 힘든가 보군."
"하아....하아."
한영은 숨을 몰아쉬며 그의 품에 안기듯이 쓰러졌다. 라이오넬은 작게 웃으며 한영의 허리를 잡았다. 뒤에 있던 션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똑바로 앉았다.
라이오넬은 한영을 편하게 눕혔다. 뒤에 앉아 있던 션이 쿠션이 되어 한영의 몸을 지탱했다. 라이오넬은 그의 입술에 짧게 키스하며 속삭였다.
"이번엔 편할 거야."
"하아....."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다리가 크게 벌려지고 젖어있는 아래에 손가락이 닿아온다. 젤을 가득 바른 손가락의 끈적끈적한 감촉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천천히 아래를 어루만지던 손은 슬금슬금 입구 쪽으로 다가온다.
감질나도록 느리게 주변을 자극하던 손이 불시에 입구로 찔러넣어진다.
"아!"
한영이 작게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빠르게 안을 긁어내린다. 그러자 뒤에서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얍삽하기는."
이번엔 새까만 손이 가슴으로 기어올라온다.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 혀가 느리게 등에서부터 타고 올라온다. 한 손은 가슴을 애무하고 다른 손은 흥붕해있는 성기를 틀어잡는다. 천천히 기둥을 잡아 흔드는 새까만 손, 그 밑으로 하얀 팔이 자신의 밑을 들락거리는 것이 보인다.
손가락은 어느새 두 개가 되어 내부를 휘젓고 있다. 네 개의 손이 자신의 몸을 쓰다듬으며 흥분시키고 있었다.
한영은 견딜 수 없는 자극에 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얗고 까만 손이 교대로 자신을 자극해 온다. 그리고 손가락이 빠져나가자마자 곧바로 라이오넬의 것이 침투해왔다.
"앗, 하악!"
단단한 성기가 안으로 곧게 찔러들어 온다. 윤활제 덕분에 어렵지 않게 미끄러져 들어온 그것은 천천히 움직이며 한영의 내부로 더욱 깊이 뿌리를 박는다. 잔뜩 벌려진 데다 엉덩이가 들려 삼키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현의 손은 그런 한영의 고개를 돌려왔다. 밖으로 내밀어진 혀는 한영의 입술을 핥으며 자신을 바라보게 유도했다. 라이오넬에게 신경이 쏠리는 것이 싫은 듯 그는 한영의 것을 더욱 농염하게 손으로 애무한다.
남자의 것을 받으며 또 다른 남자와 키스를 했다. 아래는 라이오넬에게, 위는 션에게 약탈당한다.
허리가 꺾일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지만 한영은 최대한 몸을 움직여 그 둘의 움직임에 맞췄다.
라이오넬이 강하게 허리를 움직일 때면 몸이 흔들린다. 하지만 단단하게 허리를 붙잡은 션 때문에 위험하진 않았다. 혀가 얽히고 강하게 빨아당겨 진다. 아래에선 빠르게 자신의 안을 드나드는 성기가 주는 쾌락에 허리가 뒤틀렸다.
"하아.....하.....아응."
곧 라이오넬이 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내부를 강하게 긁어내리고 또 그곳을 집중적으로 두들기듯 강하게 쑤셔 박자 그의 입에선 더욱 색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온다.
"아......하아.....아아, 아!"
라이오넬은 내부를 마구 유린하듯 강하게 찔러 넣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온다.
"아아, 아! ....하앙.....아, 하......아응."
한영은 잔뜩 흥분해 교성을 질렀다. 라이오넬의 단단한 성기가 자신을 뒤흔들며 세게 처박히고, 귀두로 강하게 포인트를 문질러오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라이오넬은 그가 흥분하자 더욱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찔끔찔끔 액을 흘리던 한영의 성기는 곧 하얀 액체를 쏟아냈다. 사정감을 느낀 건 라이오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거세게 허리를 움직이다 이내 한영의 안에 사정했다. 방출을 마친 성기가 살짝 시들자 약간의 틈이 생겨 내부에서 정액이 새어 나온다. 라이오넬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한영의 뺨에 키스를 몇 번이나 퍼부었다.
하지만 곧바로 더 큰 흉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션은 한영의 몸이 쓰러지듯 앞으로 쏠리자 바로 자신의 것을 박아 넣었다.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치고 들어온 그의 거근을 한영의 내부는 반갑게 맞아들인다. 착 달라붙어 강하게 조이는 내부에 션은 만족스러운 숨을 흘리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귀두 부분이 움푹 들어가자 곧바로 빠르게 박아 넣었다.
"벌써 뻗는 거야? 아직 만족 못 했을 텐데?"
거칠게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흘렀다. 젖은 입구에 흘러내린 정액이 사타구니 쪽 피부와 부딪쳐 철퍽철퍽 소리가 난다.
"아! .....아아! .....살살, 윽!"
강하게 꽂히는 성기는 내부를 꽉 채웠고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그 충격에 몸이 마구 흔들린다.
션은 한영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연이어 강하게 박아 넣었다. 한영은 자지러지듯 신음을 흘리며 울먹였지만 그것은 남자를 더 흥분시킬 뿐이다.
"아! 아.....아응.....하앗!"
"밑으론 이렇게나 조이고 있으면서. 사실 원하고 있지?"
"아파.....아! 아응....."
"하지만 좋아하잖아?"
션은 짓궂게 놀리며 한영을 몰아붙였다. 한영은 시트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 흐느꼈다.
"이것 봐. 이렇게 야하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밑으론 내 좆을 꽉 물면서."
"아! 앙.....아응.....아! 아아! .....하아, 아!"
션은 양손으로 한영의 엉덩이를 더욱 벌리며 음탕한 말들을 쏟아냈다.
"박아달라고 애원해봐."
"으응....싫어....읏!"
"흥분하면 잘 하면서."
션은 아쉬운 듯 말하며 안에 크게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한영은 아픔에 울먹이며 고통스러운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성기는 어느새 다시 자라 밑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구멍은 남자의 성기를 더욱 강하게 빨아들였다.
"정말 음란한 구멍이야."
션은 한영의 귓가를 혀로 핥으며 중얼거렸다. 흠칫하고 그의 몸이 강하게 떨리자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목에 이를 박아 넣는다.
"하악!"
콱 소리가 나도록 깨물리자 아픔과 함께 오싹한 쾌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한영은 멍한 눈으로 따끔한 아픔에 몸서리쳤다.
"당신을 꽁꽁 묶고 마구 범하고 싶어. 숨겨놓고 나만이 당신을 독차지하고 싶어. 이 마음 알아?"
션은 한영의 손을 잡아당겨 뒤에서 결박하듯 교차시켰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올려 더욱 강하게 쑤셔 박는다.
"아! 아아! ....하앗, 아!"
한영은 두 번째 사정을 했다. 그러나 션의 성기는 아직도 생생했다. 그는 멈추지 않고 한영을 말 그대로 범해나갔다.
거센 피스톤 질에 마구 흔들리고 안이 유린당한다. 한영은 쉰 목소리로 계속해서 교성을 흘렸다.
그때였다. 옆에서 둘을 지켜보던 라이오넬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 오늘 밤은 포기야?"
"시끄러워. 멍청한 검둥이."
션이 묻자 라이오넬은 차갑게 대꾸하곤 자신의 옷가지를 뒤졌다. 곧 그는 자신의 넥타이를 가져와 교차된 한영의 손에 묶기 시작했다. 션은 그것을 보자 웃으며 한영의 팔을 내밀었다. 뒤로 꺾이자 한영이 고통스러워한다.
둘은 서로 비방하면서도 이럴 땐 죽이 척척 맞았다. 한영은 갑자기 손이 묶이자 당황했지만 그들이 자신을 해칠 거란 생각은 안 하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더 좋은 생각도 났지."
라이오넬은 리본까지 묶은 뒤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션은 그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자 잠시 미간을 찡그리긴 했지만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어떤?"
그는 느릿하게 한영의 안을 찌르며 물었다. 아래에서 간드러진 신음 소리가 들린다. 라이오넬은 씨익 웃으며 션의 귓가에 속삭였다. 션은 얌전히 그가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그의 허리는 쉬지 않고 움직였고 한영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며 끙끙거리고 있다.
잠시 후에 라이오넬이 션에게서 떨어졌다. 그는 웃고 있었고 션은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라이오넬은 눈을 크게 뜬 채 고민하는 션의 어깨를 두들겼다.
"안타깝게도 너랑 같은 생각을 했거든."
"....덜 떨어진 백인 치곤 쓸모 있는 생각인데?"
"네가 모자란 거지."
둘은 여전히 비난을 멈추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난 후였다. 곧 라이오넬이 어딘가로 가버렸다. 한영은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션이 여전히 뒤에서 움직였기에 어찌할 줄 모른 채 신음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손이 묶여있어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다. 밑에서 꼼지락 대자 션은 한영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마주보도록 걸터앉게 한다.
"풀면 안 돼?"
"안 돼."
한영이 묻자 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순간, 라이오넬이 다시 나타났다. 그 손엔 어떤 통이 들려져 있었다. 한영은 그것이 젤이나 그 비슷한 것으로 생각했다.
".....어?"
한영은 손이 뒤로 묶인 채 엎드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한, 미안."
"그래도 우릴 이해해주길 바래."
두 남자가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한영은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뭐, 뭘?"
"........"
하지만 두 남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 션이 움직였다. 그가 한영의 안으로 재빨리 자신의 것을 찔러 넣는다. 퍽! 세게 처박힌 성기는 내부에서 날뛰기 시작했고 한영은 속절없이 흔들리며 다시 울부짖었다.
"라이오넬."
션은 한영에게 짐승처럼 삽입하면서 라이오넬을 불렀다. 라이오넬이 못마땅하게 대꾸한다.
"왜?"
"술 가져와."
"그건 왜?"
"긴장을 완화 시키니까."
"....오케이."
라이오넬은 두말없이 바로 찬장에서 양주를 꺼내왔다. 그것을 건네받아 입에 잔뜩 머금은 션은 그것을 한영의 입으로 흘려 넣었다. 입안에 부어진 독한 양주는 목을 화끈하게 자극하며 넘어갔다.
일부는 흘렸지만 션이 혀로 강하게 밀어 넣자 거의 삼키고 말았다. 꿀꺽, 그의 목으로 술이 넘어가자 션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계속 허리를 강하게 쳐올렸다.
세 번의 사정을 마치자 손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다. 평소라면 이렇게 기운을 빼놓고 둘이 삽입을 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그런 낌새가 없다.
션은 늘어진 한영의 몸을 일으켜 새우더니 자신의 품에 안고 손을 다시 앞으로 묶었다. 그의 손에 묶인 넥타이는 바로 뒤에 있는 철장처럼 생긴 침대 기둥 장식에 고정 되었다. 옆에서 라이오넬은 통을 열어 하얀 크림을 잔뜩 묻힌다.
두 번의 삽입으로 나른해진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게다가 션이 술을 먹여 졸리기까지 했다. 한영의 다리는 힘없이 션의 허벅지 위에 걸쳐진 채 벌려져있다.
"뭐하려고?"
어눌한 발음으로 한영이 묻자 션은 웃기만 할 뿐이다. 그는 한영의 뺨에 몇 번이고 키스를 했다. 라이오넬의 손이 한영의 사타구니로 다가와 크림을 잔뜩 바른다. 차가운 느낌에 닭살이 돋을 것 같다.
"이게 뭐야?"
"크림."
"이걸 왜 발라?"
혹시 젤이 떨어졌나? 한영은 졸린 눈으로 물어 온다. 그러나 션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사이 라이오넬은 충분히 크림을 묻혔다. 음모와 성기에 미끄러운 크림이 발리자 한영은 움찔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한영의 눈이 번쩍 뜨이고 말았다. 라이오넬의 손에 들린 건 칼이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한영이 허리를 뺐다.
"뭐하려는 거야?"
"아무 짓도 안 해. 겁 내지마."
그가 겁에 질려 묻자 라이오넬은 그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대답한다. 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므리려는 한영의 무릎을 세워 한영의 가랑이를 더욱 벌려왔다. 한영은 반항하려 했지만 손이 묶인 데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 고이더니 곧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남자라면 당연히 느끼는 거세의 공포 때문이었다. 성기 앞에 칼이 닿자 무서워 견딜 수 없었다.
션과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을 다독였다.
"우리를 믿어."
"울지 마. 정말 다치게 하지 않아."
샤악, 칼이 피부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영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하지만 션이 단단히 틀어잡는 바람에 불가능했다.
"움직이면 다쳐. 가만히. 그래, 착하지."
라이오넬의 손이 다시 한 번 사타구니 사이에서 움직인다. 피부를 약하게 긁어내리는 금속의 감촉, 한영은 굳어버렸다.
그들은 지금 제모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음모를. 사타구니 사이에 한 웅큼씩 사라지는 거품과 털에 한영은 눈을 크게 뜨고 경락했다.
"뭐하는 거야!"
"움직이면 다친다니까. 쉿, 얌전히."
션이 그의 귓가에 속삭이며 배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한영의 몸은 여전히 뻣뻣했다. 션은 그런 한영의 몸을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손은 배를 살살 쓸다 점점 밑으로 내려간다. 배꼽 밑으로 기어들어간 그것은 이내 성기를 잡아온다.
"아!"
한영은 그곳이 잡히자 잔뜩 경계했다.
"괜찮아. 진정해."
크림이 묻은 질척한 손이 성기를 애무하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평소에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지만 더욱 달콤하다. 션은 한영의 성기를 마사지하듯 매만지며 그의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긴장 풀고, 그래. 잘하고 있어."
여전히 뻣뻣하긴 하지만 조금씩 풀리고 있다. 한영은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말대로 힘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 순간, 라이오넬의 혀가 귀두에 닿는다. 사악, 살덩이를 핥는 혀의 촉감에 한영은 움찔거리며 몸을 움츠린다. 그가 행동을 멈추자 라이오넬은 다시 칼을 움직였다.
샥, 샤악. 칼이 움직일 때마다 크림과 함께 음모가 있던 부분은 거뭇한 흔적들만 남는다. 깨끗하게 잘려나가는 자신의 음모를 보자 한영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무, 무슨!"
포르노 배우나 할 만한 짓이란 말인가. 한영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황당하지만 차마 다칠까 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션은 그런 한영의 목을 애무하며 중얼거렸다.
"한국에 돌아가서 이 꼴로 아무나 만날 순 없겠지."
"그 빌어먹을 공중목욕탕도 못 갈 거고."
라이오넬이 받아친다. 당연한 말에 한영은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션이 성기를 틀어쥔 채로 다시 움직이자 그의 입에선 약한 신음이 흘렀다.
"아!"
"미안, 당신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적어도 몇 달은 걸려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라이오넬은 다시금 혀로 국부를 핥아온다. 한영은 간지러운 느낌에 몸을 뒤틀었다. 크림이 잔뜩 묻은 칼의 뒷면이 사타구니 사이를 긁고 지나간다.
"이러면, 한국에 가서도 나를 잊긴 힘들겠지."
그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남은 부분을 깎기 시작했다. 한영은 두 사람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어버버거렸다. 그 사이 그의 사타구니는 점점 깨끗해지고 있었다.
"그, 그만 해!"
하지만 발기한 성기주변까지 어느새 정리가 되고 있었다. 션은 라이오넬이 움직이기 편하게 도와주고 있었고 마치 십 대 초반의 소년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성기 주변을 보며 한영은 말을 잃었다. 남은 거품이 미끌거리며 피부를 타고 흐르고 있다.
"미, 미친."
입을 떠억 벌린 채로 황당해 할 때였다. 갑자기 허리가 들렸다. 그리곤 몸이 빙글 하고 돌아가더니 아래가 쿡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푹, 입구를 찔러오는 커다란 성기의 촉감에 한영은 더욱 패닉에 빠졌다. 입은 헉 소리를 냈지만 조금 전까지 남자를 받던 입구는 쉽게도 션을 맞이했다.
"으윽....."
익숙하다고는 해도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한영은 허리를 뒤틀며 괴로워했다. 거기에 두꺼운 손가락까지 파고들어 오자 그는 비명을 질렀다. 성기와 함께 찔러 넣어진 엄지손가락은 내부를 마구 넓히기 시작했다.
한영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런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익숙해지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밑이 조금 풀어지자마자 또 다른 성기가 입구를 찌르며 들어온다.
굵은 귀두가 들어오자 밑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한영은 아픔에 정신없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아! ......아흑!"
강하게 내부를 조이는 압박감에 두 남자도 신음을 흘렸다. 라이오넬은 자신의 것을 고집스레 찔러 넣었다. 지끈, 아래에서 느껴지는 강한 아픔에 한영은 고개를 젓히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굵고 커다란 성기들은 내부를 꽉 채우다 못해 터트릴 것 같았다. 한영은 괴로워하며 허리를 흔들었다.
"아, 아윽.....흐윽!"
안에서 꽉꽉 들어차 꿈틀거리는 성기의 느낌, 강한 이물감에 그는 헛구역질까지 했다.
라이오넬은 그런 한영의 허리를 껴안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허리를 움직이자 한영의 몸도 자연스레 흔들렸고 내부에서 두 개의 성기가 엇갈리며 안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아, 아아! 흣, 아, 아파."
"한....아아......한."
뒤에서 라이오넬이 자신의 등에 키스하며 내부로 조금씩 전진해 들어온다. 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난폭하게 움직이며 한영의 온몸에 키스를 퍼붓는다. 영역을 표시하듯이 물고 빨고 어루만지면서.
내부에선 두 남자의 성기가 강한 자극을 주며 날뛰고 있다. 아프다, 너무 아파. 한영은 그 생각에 울먹이며 신음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아픔도 어느 순간 익숙해진다. 그리고 뒤늦게 쾌감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아, 하아.....아흣!"
점차 넓혀진 안은 두 야수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젤과 정액, 면도크림과 거품으로 앞이나 뒤나 흠뻑 젖어있다. 엉덩이에서 비벼지는 라이오넬과 앞쪽 가랑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션의 사타구니가 미끄럽게 마찰하며 흥분을 도왔다. 엎드려있느라 짓눌려진 성기는 션의 배 위에서 몸이 흔들릴 때마다 쓸려 비벼진다.
"....으윽!"
내벽에 비벼지고 쓸리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 쾌감이 너무 강렬해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아, 너무.....깊어....흐윽!"
퍼억! 퍽! 철퍽! 질퍽한 소음이 요란하다. 둘은 교대로 한영의 내부에 자신들의 성기를 거칠게 박아 넣었다. 아래의 느낌이 너무 강해 몸 전부가 뚫리는 느낌이다. 깊이 쑤시는 느낌에 한영은 몸부림치며 비명에 가까운 교성을 지른다.
그래서 한영은 그들에게 어떠한 설명도 할 여유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지만, 화를 내야할 것 역시 너무나 많은데도, 또한 이 상황이 무척이나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지이이이잉,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린다. 그는 겨우 눈만 돌려 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 동작조차도 매우 힘겨웠다. 확인해보니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확답을 주기로 했던 그 용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자신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두들겨 맞는 것처럼 아프고 뒤가 얼얼했다. 그런데도 둘은 멈추지 않고 한영을 괴롭힌다.
"한, 가지 마."
"여기 있어줘."
그 사이 시끄럽게 울리던 진동은 오래가지 않아 멈췄다. 테이블 위에 있던 한영의 핸드폰이 깜빡이며 메시지를 표시한다. 메시지는 오늘 저녁까지 한국지사와 본사와 상의해서 대답해주기로 한 같은 지사 동료의 대답이었다.
ㅡ 한영. 본사에서 오케이 했어. 영국에서도 당신을 마음에 들어하니 다행이라고 하더군. 앞으로 영국에서 잘 지내길 바랄게. 정말 고마워. 한국에 돌아오면 크게 한 턱 쏠게.
삼 년 전, 오 년 약정으로 파견을 온 그는 요즘 향수병이 심해 한영에게 남은 기간을 채워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한영은 그것을 수락했고 확답이 오면 며칠 내로 말하려고 했다.
"한, 응? 제발 가지 마."
"제발."
두 남자는 애원을 하며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여 한영의 안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와 조금이라도 더 연결되고자 안간힘을 쓴다.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둘을 한영은 어이없이 바라봤지만 뭐라고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귀를 콱 틀어막고 싶다. 하지만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두 남자 사이에 끼인 채 옴짝달싹할 수도 없다. 그 와중에도 두 남자는 시끄럽게 가지 마 가지 마 타령을 한다.
"하아......"
극악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영은 꼬여버린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다 이윽고 눈을 감아버렸다. 생각하면 피곤하고, 억울하고 화딱지 나니 그냥 방관해 버리는 게 나았다.
헌데 그 순간, 진서가 지나가며 한 말이 떠오른다.
'신은 네 인생의 남자를 자잘하게 안 주고 저 둘을 내린 모양이다. 마치 네가 다른 건 다 모자라는데 돈 복만 있는 것처럼. 남자도 굵고 짧게 딱 둘만 줬나봐. 그것도 동시에.'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이 순간 왜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걸까. 그 엄청난 설득력은 또 뭐란 말인가.
갑자기 유명한 영국의 명언이 떠오른다.
두 사람의 우정에 한 사람의 인내가 필요하다. 뜻은 다르지만 일맥상통하는 상황에 한영은 한없이 우울해졌다.
BONUS #1 전래동화 ver.
대충 옛날에 서씨 성을 가진 한영이라는 평범한 총각이 살고 있었어요. 그 총각은 근면 성실하지만 애인도 없이 수많은 밤을 외롭게 지내고 있었지요. 서당동기인 건넛마을 신도령은 한참 성기 발랄해 띵까띵까 거리며 주색잡기를 즐기는데 한영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는 오로지 학문만 열심히 닦았답니다.
그래서 결국엔 마을에 작은 서당을 차리게 되었지요. 안정적인 생활에 그는 만족하고 살았답니다. 하지만 노총각으로 살다 보니 외로움에 찌들어 표정은 늘 어두웠지요.
그 모습을 보며 친구 신도령은 툭하면 놀려대곤 합니다.
"이보게, 그럴 시간 있으면 항문을 닦에."
진서도령이 저질개그를 하며 놀려도 한영은 눈썹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답니다. 그는 조용히 책을 덮고 근엄하게 말했지요.
"뭐 병신아."
한영은 성격이 까칠했어요. 무표정이라서 더 무서웠답니다. 진서도령은 농담이었는데 정색한다고 삐쳐선 돌아가 버렸어요. 한영은 그런 진서의 모습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답니다. 한영은 책을 덮은 김에 바람이나 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오늘 공부는 다 마쳤으니 산책이나 할까."
그는 자신의 집을 벗어나 근처 산으로 향했습니다. 등산은 그때나 지금이나 웰빙 문화의 선두주자였던 것이지요.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배가 나올까 걱정된 한영은 산을 부지런히 올라갔어요.
"염병, 산 길 좀 제대로 닦아 놓지."
매일 도로만 엎지 말고 제대로 정치하란 말이야. 그는 요즘 정세를 괜히 비판하며 길을 걸었답니다.
그때였어요. 갑자기 길가에 웬 성기 모양의 무언가가 떨어져있었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송이버섯이었어요. 한영은 그걸 냉큼 주웠어요. 하지만 그 크기가 형편없이 작았답니다.
"뭐, 이런 초코송이 같은."
딱 봐도 중국산이구만. 물렁물렁한 게 입맛 다 버리게 생겼네. 그는 미련 없이 옆에 있는 연못에 던져버렸어요. 금붕어도 침을 뱉을 크기와 모양이었지요.
그는 가던 길을 마저 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어요. 그때, 갑자기 연못에서 펑 소리가 나며 갑자기 커다란 곰이 나타났어요. 커다란 곰은 꼬질꼬질한 황금색의 털을 갖고 있었지요. 딱 보기에도 노숙자 포스가 났어요. 곰은 한영을 보며 물었어요.
"여기에 이걸 버린 게 너냐?"
헉, 설마 공무원인가? 쓰레기 무단불법투기로 걸렸나싶어 한영은 바싹 겁을 먹었답니다. 세금 떼는 것도 짜증 나는데 벌금까지 내려니 돈이 아까웠거든요.
그런데 곰은 딱지 뗄 생각은 없이 다짜고짜 황금색으로 빛나는 딜도를 내밀었어요.
"이 금잦이 버섯이 네 것이냐?"
"아니오."
저게 버섯이야? 딜도가 아니라? 한영은 그것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꾸했어요. 그러자 곰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번엔 커다란 흑색의 딜도를 내밀었지요.
"그럼 이 말잦이 버섯이 네 것이냐?"
"그것도 아니오. 내가 던진 것은 중국산 불량 버섯이요."
갖고 싶긴 하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한영은 정직하게 대답했어요. 그러자 곰은 매우 감동하며 그것을 모두 한영에게 주었답니다.
"알아. 그냥 물어본 거야."
"...근데 왜 물어봤소?"
이 님 보게, 한영이 인상을 구기며 묻자 곰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수줍게 대답했어요.
"페이지 늘리려고."
"......."
"사실은 관심 받고 싶었어."
한영은 입을 쩍 벌리며 당혹스러워했어요. 하지만 곰은 마이페이스였답니다.
"아무튼 난 필요 없으니 너 가져."
옛다 관심. 한영은 악플을 날려주고 싶지만 혹시나 곰한테 후려치기 당하면 바로 목숨을 잃을까봐 참았어요. 동정으로 세상을 로그아웃한다면 너무 억울하니까요.
한영이 그렇게 목숨을 save 시킬 때였어요. 황곰은 미련없이 그것들을 휙 던져버리곤 다시 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한영은 졸지에 두 버섯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그는 딜도인지 버섯인지 구분이 안 가는 단단하고 굵은 기둥을 안아 들고 황당해했어요.
"이걸 뭐에 쓰라고?"
두 버섯은 먹으면 이빨리 전부 깨질 것처럼 단단했답니다. 먹지도 못할 걸 받은 한영은 어이가 없었지만 곰은 이미 사라진 후였어요. 그는 황당해서 집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때 갑자기 촥 소리가 나며 곰이 다시 나타났어요.
"그걸 음지 바른 곳에 묻으면 좋은 일이 생길거야."
곰은 음흉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다시 연못으로 사라졌어요.
"꿹!"
하지만 잠수를 하던 중 옆에 있던 바위에 부딪치고 말았지요. 저질 몸개그에 기겁한 한영은 그 자리를 후다닥 떠나버렸어요.
집에 돌아온 한영은 자신의 방 뒤에 있는 그늘에 버섯을 묻었어요. 항상 그늘이 져 있는 음침한 공간이었답니다.
"이걸 묻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혹시 순금이라 묻어놓고 있으면 금값이 뛰려나. 아니면 번식이 강한 종자인가. 버섯 재배가 돈이 좀 되려나. 한영은 현실적인 생각을 하며 그것들은 대충 묻어놨어요. 그리고 격렬한 산보를 했더니 피곤해 바로 잠자리에 들었지요.
바로 그날 밤이었어요. 휘영청 보름달이 뜬 하늘은 밝은 빛을 내비치고 있고 아침형 인간인 한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는 점점 커져 쿵쿵 집을 울리기 시작했어요. 가뜩이나 잠귀가 어두운 한영도 깨울 만한 커다란 소리였답니다.
훔쳐갈 것도 없는데 도둑이 들었나. 한영은 졸린 눈을 비비며 생각했어요.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어떤 망할 도둑인지 몰라도 쫓아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장롱 밑에서 쇠빠따를 꺼냈답니다.
요즘 세상은 위험해서 당최 안심할 수가 없어 호신용 무기를 늘 상비하고 있었거든요. 박봉이라 무술인 경호 시스템 쇠콤에 들 수가 없었어요. 변강쇠들로 이루어져서 든든한데다 밤을 절대 외롭게 하지 않는다는 쇠콤시스템은 이 시절 부의 상징이었답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어요. 한영은 쇠빠따를 틀어잡고 스윙을 날릴 준비를 했답니다. 하지만 앞에 있는 건 나체의 두 남자였어요. 그들은 한영을 보더니 갑자기 넙죽 바닥에 엎드리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주절 나불거리기 시작했어요.
"저희는 저주를 받아 낮에는 버섯으로 변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희들의 저주를 제발 풀어주세요!"
"예?"
"그리고 풀어주시는 김에 여기서 좀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옷도 좀."
버섯으로 변해? 이게 무슨 슈퍼마리오도 아니고. 한영은 당혹스러워서 피하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잽싸게 다가와 다짜고짜 한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옵션까지 붙이기 시작했어요. 뭐지 이 땅그지들은? 한영은 당황했답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너무 잘생겨서 차마 바로 쫓아낼 마음은 들지 않았어요. 게다가 보기 드문 벽안의 금발, 다른 한쪽은 말근육이었거든요. 그리고 남자들의 다리 사이엔 오늘 자신이 봤던 금잦이버섯과 말잦이 버섯이 달려있었답니다.
'꿀꺽.'
그것들은 정말 위협적인 크기였답니다. 그것을 보자 한영은 침이 절로 넘어갔어요.
그러자 눈치빠른 금잦이 총각이 말했답니다.
"대신 저희를 거두어 주시면 이젠 밤마다 방바닥 안 긁으시게 해드릴게요."
"매일 만족시켜드릴 수 있어요."
말잦이 총각도 덩달아 뻐꾸기를 날렸어요. 한영은 당황해 했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남자였거든요.
"같은 사내끼리 무슨, 이러지 마시오."
남색은커녕 여자 손도 못 잡아본 한영은 거절했어요. 하지만 그들을 떼어내지는 못했답니다. 속보이는 내숭에 말잦이 총각은 비열한 웃음을 띠며 한영의 손을 잡았어요.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밤마다 잊지 못할 재미를 선사해드리지요."
제비 같은 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말잦이 총각도 비슷한 멘트를 날리며 그에게 다가왔답니다.
"아니 무슨, 남자끼리 재미를....."
한영은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들은 힘까지 좋았답니다. 둘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더니 한영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어요.
"자.....잠깐!"
"걱정 마세요."
"저희는 후로게이랍니다. 자격증도 있어요."
".....그, 그게 아니라!"
두 총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음 말을 기다렸어요. 한영은 수줍게 고개를 돌리더니 문 쪽을 가리켰어요.
"쪽팔리니 문이라도 닫읍시다. 동네 사람들 다 듣겠소."
"......."
두 총각은 조금 당황했답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회복하고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시작했어요. 한영은 버둥거리긴 했지만 그들의 손과 혀가 오갈 때마다 신세계를 체험했답니다.
BONUS #2 스포츠 중계 ver.
ㅡ 안녕하십니까. 월드 페니스 리그 중계입니다. 아, 금잦이 총각 시작하자마자 제대로 들어가는데요. 삑사리가 없어요. 무조건 홀인원이에요. 이게 골프였으면 이글인가요?
ㅡ 그건 잘 모르겠고 분위기는 정말 이글이글 거립니다.
ㅡ 님, 지금 그거 개그? 마이크로 쳐 맞을래요?
ㅡ 죄송, 닥치고 관람.
ㅡ 아무튼 두 선수 모두 체력이 막강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시즌에 데뷔한 서한영 선수에게는 힘든 상대가 될 것 같은데요.
ㅡ 그렇죠. 아무래도 빅사이즈, 가 아니라 빅리거니까요. 일단 금잦이 선수의 선빵, 아 죄송합니다. 선공이 대단해요. 어쨌든 자기가 먼저 맛보겠다는 저 도둑놈 심보. 욕심이 많은 친구거든요. 홀 욕심은 특히 더해요.
ㅡ 그렇죠. 아무튼 너무 큰 좆.....치 않아요.
ㅡ 스타리그에서 쓴 거 표절하지 마시고요.
ㅡ 죄송.....아무튼 허리 탄력이 대단해요. 초보인 서 선수는 아주 울부짖고 난리가 났어요. 엎드려 통곡을 하는군요.
ㅡ 아프긴 하겠어요. 워낙 커서. 근데 저거 삽입이 너무 급한 거 아닙니까? 패널티 줘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ㅡ 그래도 좋다는데 내버려두죠. 어, 어! 아니 갑자기 말잦이 선수가 치고 들어와요. 노리고 있었던 거죠.
ㅡ 그렇죠. 계속 금잦이 선수가 독주하니 아무래도 열이 받았겠죠. 아.....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성공할 것인가!
ㅡ 성급한데요....아무래도 서 선수는 신인이고. 바로 1라운드에서 공격을 하면 선수생명이 위험할 염려가 있어요.
ㅡ 앗! 골! 골! 골이에요!
ㅡ 맙소사, 정말 넣다니. 이거 참....대단한데요. 저 자세에서 저걸 성공시키다니.
ㅡ 역시 서 선수, 잠재력이 대단하군요. 저 큰 페니스를 어떻게 두 개나 넣고 있을 수가. 보통이 아닙니다.
ㅡ 자, 슬슬 버티기 들어가는데요.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거든요. 경험치 깎이면 아깝죠.
ㅡ 원래는 딜도로 조금 길들여 놔야 하는데. 이건 뭐 작가 개념이 판타지라.
ㅡ 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나저나 서 선수. 많이 힘들어 하는데요. 그래도 잘 버티고 있어요. 자 이제 다 삼키기만 하면 반은 성공인데요.
ㅡ 아무래도 공격수들이 프로니까 알아서 잘 하겠죠. 저희는 구경이나 합시다.
ㅡ 그럽시다.
BONUS #3 뉴스속보 ver.
경기도에 아직 땅값이 안 오른 비 개발지역, 이곳에 버섯재배로 큰돈을 벌었다는 한 청년이 살고 있습니다. 요즘 대세가 투잡이라곤 하지만 농사로 큰돈을 벌긴 어려운데요. 이 청년이 파는 버섯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조법 또한 극비라고 해서 많은 사람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것입니다. 바로 이게 그 유명한 금잦이 버섯과 말잦이 버섯인데요. 맛있게 생겼죠? 하지만 주의하셔야 합니다. 겉보기엔 먹음직하지만 워낙 단단해 함부로 물었다간 강냉이 다 빠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특이한 점은 이 먹지도 못할 버섯이 많은 여성과 일부 남성들에게 주문폭주라는 겁니다. 게다가 이웃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집에서 밤마다 귀곡성까지 울린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저희는 '브이게이 특공대'와 연계해 잠입 취재를 해봤는데요. 그리고 조사 결과 귀곡성은 사실 교성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자료화면 보시죠.
보시다시피 어느새 집주인 서한영(가명/ 미혼, 30세)의 옷은 다 벗겨져 있었습니다. 뜨겁고 격렬한 숨소리 메아리치는 좁은 15평짜리 저택, 집주인은 지금 헐떡거리며 두 남자 사이에 갇혀 엎드린 채 신음하고 있습니다.
"어이쿠! 나 죽네!"
"그래, 내가 오늘 죽여준다니까."
버섯총각들은 어느새 반말을 찍찍거리며 한영의 위에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어댑니다. 방아 찧는 소리가 무척이나 요란합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른다고 발뺌하던 집주인은 지금은 말로만 싫다 싫다 할 뿐 어느새 허리를 흔들며 좋아하고 있습니다. 역시 내숭이었던 걸까요? 아무래도 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에는 커다란 검은색의 육봉이 물려 있습니다. 숨이 막힌 것처럼 표정은 잔뜩 굳어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다물린 입술은 정성스레 빨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뒤에선 백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삽입을 하고 잇는데, 집주인을 능욕하려고 열심히 혀를 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시에 두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집중력이 저하된 모양입니다. 제대로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어린아이 팔뚝과 비슷한 커다란 육봉이 동시에 두 개나 들어가다니, 참으로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이걸 전문용어로는 3P라고 하는데 이와 유사한 말로는 고스톱에 일타삼피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뜻은 전혀 다른 것으로 우리말 연구원에선 사용하지 마시길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주위 이웃들의 증언을 들어봅니다.
"어머,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카메라 치워요!"
"저기 가서 물어 보슈."
"그 노총각 원래부터 음침하긴 했는데, 나는 잘 몰러. 요즘은 뭐 버섯 재배해서 꽤 돈 많이 벌었다드만."
"그 집에 밤마다 귀신 나타난대요. 밤마다 귀곡소리가 들려요. 아우 소름끼쳐."
이웃집에선 이 교성을 귀곡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호미질도 아니고 호모질 50년차의 며느리도 모르는 창작 활동으로 동인 인간문화재 명예의 전당에 오르신 장안봉 할머니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소리는 보통 소리가 아니여. 한 놈만 상대하면 저런 소리가 안 나. 적어도 두 놈이랑 붙어먹어야 저런 소리가 나. 딱 들어보니 경험이 별로 없어. 그리고 교성이라고 다 똑같지가 않어. 후배위랑 정상위랑은 소리부터 틀린 법이여. 근데 저 집주인은 타고 났어. 아주 그냥 신이내린 구멍이여. 천상 마짜구먼. 소리가 귀에 착착 감겨. 초보가 저러기 힘들지."
"쓰잘데기 없는 말씀 감사합니다."
무당 싸닥션을 날리는 장할머니의 감에 저희 제작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BONUS#4 인간극장 ver.
갑작스런 3P는 운동부족인 한영에게는 너무나 벅찬 일이다. 난생처음 당하는 일이라 속수무책, 한영은 가녀린 목소리로 남자들을 달래려 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밤마다 더욱 거세어진다.
어제는 난생 처음으로 69에 도전했다. 목구멍이랑 입이 찢어질 뻔했는데도 남자들은 어서 하라고 안달한다.
"내 팔자야."
한영은 씁쓸한 목소리로 쪼그려 앉아 한숨을 내쉰다. 그는 요즘 밤마다 기력이 쇠해져 시내에 가서 한약을 받아왔다. 쓴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그의 이마엔 주름살이 깊게 파였다.
원망을 해 보지만 그래 봤자 버섯을 받아온 것은 자신. 밤마다 벌어지는 화끈한 방아찧기에 그는 점점 수척해진다. 그래도 희망이라면 은근히 피부가 좋아진다는 것. 이것이 회춘일까?
그리고 버섯을 묻은 자리에서 매일 새로운 금잦이와 말잦이 버섯이 자란고 있어 살림에 보탬이 된다. 어느새 옥션에선 프리미엄이 붙어 팔리고 있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쇼핑몰을 열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하루에 하나밖에 자라지 않아 그것은 무리였다.
사실 돈은 많이 벌지만 나가는 것도 많다. 그리고 콘돔 값이랑 한약 값 제하면, 밤마다 시트가 더러워져 세탁비랑 입이 늘었으니 식비도 생각하면 남는 게 없다.
생활비 빼고 딱 본전이다. 저 버섯 총각들은 자기 형편도 모르고 명품만 입는다. 한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팔자타령을 시작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란 말인가.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하지만 버섯을 캐자마자 바로 다가오는 검은 손, 밤만 되면 나탄는 버섯총각이 벌써 나타났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져 요즘은 이르게 기어 나온다.
말잦이 총각은 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너무 이르잖아요. 이따가 해요."
한영은 연약한 목소리로 반항해보지만 그는 옷을 풀어헤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만 급급하다.
"잠깐만요! 좀 씻고."
"안 씻어도 돼."
"....아 놔. 피곤한데."
한영은 남자의 처사에 불평을 하지만 언제나 독불장군처럼 구는 둘에겐 이길 수가 없다. 또 다른 남자도 이불 밖으로 기어 나와 하악거리며 달라붙는다.
박고, 또 박고 남자들은 섹스밖에 모르나 보다. 그러나 한영은 어느새 이런 삶에 길들여졌다. 무엇을 원망하냐. 밝히는 건 자신도 만만치 않은데. 오늘도 한영의 집에선 쿵덕쿵덕쿵 엇박자로 요란하고 질척한 음악이 흐른다.
미디엄템포로 울부짖은 한영의 목소리는 늦은 새벽이 되어야 수그러진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