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392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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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级 大众 无倾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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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12 21:03
야미
프롤로그
덜컹거리는 창문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창문이 흔들리는 것이 과연 밖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비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창문에 기대고 있는 남자의 흔들리는 몸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 흑…!”
창문에 기대고 있던 어깨를 붙잡는 억센 손길에 하염없이 흔들리던 하벤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새어 나갔다. 등 뒤에서 무자비한 손이 자신의 어깨를 잡은 순간 구멍을 쑤시는 허리 짓이 더욱 빨라졌다. 당장이라도 굵은 성기가 좁은 내부를 찢어발길 것만 같아서 등 뒤로 기분 나쁜 소름이 돋았다.
“아, 아… 그만, 그만!”
덜컹, 덜컹! 귀가 아플 정도로 흔들리는 창문에 덜컥 겁이 났다. 더는 빨라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추삽질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점차 빨라지는 허리의 움직임, 정액으로 푹 젖어 버린 구멍을 파고드는 성기.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은 아래로 내려가 인정사정없이 뭉개지는 하벤의 하얀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금방이라도 두툼한 엉덩이 살을 잡아 뜯을 것 같은 자비 없는 손길에 녹진하게 녹아 있던 구멍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으, 으윽… 음!”
하벤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손길에 숨을 헐떡거리다가 배 속 깊은 곳을 쑤시는 성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익숙한 사정감과 다른 기분 나쁜 배뇨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미 수차례 사정을 해서 쪼그라든 성기 끝에 묽은 물줄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 쌀 거 같아! 당장 소변을 지릴 것 같은 느낌에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거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아…!”
등 뒤로 뜨거운 호흡과 함께 정염이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벤은 등 뒤에서 들리는 애타는 부름과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는 끈적한 손길에 눈을 감고 말았다.
쪼르륵……. 어느새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묽은 물줄기가 터졌다.
“형, 다리에 힘주세요.”
등 뒤에 선 동생은 제 형의 다리에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집요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열락이 아직 끝나지 않음을 알리는 동생의 명령에 하벤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세차게 흐르는 빗물 사이로 광활한 초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목장. 자신은 분명 일을 하고 유산을 받으려 했는데…….
퍽!
“아!”
“집중해요.”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후…….”
“하아… 아앙! 흑… 아, 아!”
덜컹, 덜컹. 다시금 창틀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이어 달뜬 신음 소리도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1. 행운
이른 아침부터 걸려 온 전화는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세상에, 그러면 자기 몫의 유산을 받게 되는 거야?”
“물론이지.”
샤워를 하고 나온 파트너는 가운을 입으며 침대 위로 올라왔다. 문밖에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똑똑하게 내용의 핵심을 알아차렸다.
하벤은 그런 파트너의 몸을 안아 들며 코를 킁킁거렸다. 깜찍하게 장미 향 바디 워시를 사용했는지 목과 어깨 사이에서 향긋한 향이 풍겼다.
품에 안긴 파트너는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 하벤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돈으로 받는 건가? 어느 정도 되는데?”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 사람 재산이 꽤 많았어.”
“그런데 자기는 왜 땡전 한 푼 없는 건데?”
파트너의 순진하지만 얄궂은 질문에 하벤은 입을 벌려 목을 깨물었다. 머리 위에서 아야!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혀를 내밀어 깨문 곳을 진득이 핥았다.
“아프잖아.”
“내가 왜 땡전 한 푼 없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거면 없는 거지, 뭐.”
맞는 말이라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하벤은 입을 꾹 다물며 손을 뻗어 느슨하게 묶인 가운 끈을 잡아당겼다. 끈은 금세 풀어지고 가운이 벌어졌다. 벌어진 가운 사이로 탄탄한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에 하벤은 만족스레 웃으며 손을 뻗었다.
“대답해 줘, 아버지가 부자인데 아들인 너는 왜 아닌 건데.”
“아, 진짜.”
“궁금하단 말이야.”
진도 좀 빼 보려고 하는데, 이상한 데 꽂힌 파트너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벌어진 가운을 다시 여미는 꼴을 보아하니 대답해 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 파트너의 고집에 결국 하벤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별로 안 친했어. 어릴 때 엄마랑 이혼하고 나서는 더 멀어졌고. 그리고 애초에 그 양반이 구두쇠 같은 부분이 있어서 원체 자식들에게 잘 쓰지 않았어.”
“자식들? 자기 외동 아니었어?”
“동생이 하나 있어. 이복동생. 됐지? 이제 나한테 집중해.”
지금 엄청 급하거든? 하벤은 으름장을 놓으며 가운을 잡았다. 당장 이걸 벗기고 새하얀 가슴부터 빨아야겠다.
머릿속으로 착착 상황을 그려 나가던 하벤은 파트너가 무심코 던진 말에 멈칫했다.
“그러면 동생도 받겠네?”
“뭘?”
“유산 말이야.”
자식이 둘이면 둘 다 받겠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던진 파트너는 굳은 하벤의 목을 끌어안으며 뺨에 입을 맞췄다. 사람 짜증 나게 했던 궁금증이 다 해결됐는지 이내 엉겨 붙기 시작했다.
가운만 입고 있어서 몸이 춥다는 둥, 얼른 뜨겁게 해 달라는 둥, 교태를 부렸다. 파트너의 노력에 방 안 분위기가 점차 달아오르려는 찰나,
“자기, 이제 나랑 재미있는…….”
“젠장!”
“억!”
하지만 줄곧 굳어 있던 하벤이 엉겨 붙는 파트너의 몸을 밀치면서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푸시시 가라앉았다.
하벤의 거친 손길에 옆으로 나가떨어진 파트너는 침대 위에 엎어져서 버둥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져 물으려는데 상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왜, 왜 그래?”
“잊고 있었어…….”
“뭘?”
볼썽사납게 엎어진 파트너의 물음에 하벤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납게 대답했다.
“유산을 그 자식하고 나눠 가져야 한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어!”
인정사정없이 구겨진 하벤의 살벌한 얼굴에 파트너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 * *
“진짜 가야 해?”
어쩌다 한 번씩, 그것도 늦은 밤에 고작 몇 시간만 같이 시간을 보냈던 파트너가 한껏 침울한 표정으로 눈앞에 서 있었다. 하벤은 자신의 앞에 서서 발끝으로 땅을 툭툭 치는 예쁘장한 남자를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이렇게 이별 인사를 할 정도의 사이였던가?
어젯밤, 파트너는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겠다는 하벤의 말을 듣고 한참 떼를 써서 출발 시간과 장소를 알아냈다.
설마 찾아오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알려 줬는데 이게 웬걸? 진짜 찾아와서 하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누가 보면 절절한 연인 사이인 줄 알겠다. 하벤은 주변을 살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 어제 섹스 못 해서 안타까운 건 알겠지만…….”
이렇게까지 찾아올 일인가? 하벤은 차마 뒷말을 내뱉지 못하고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몇 차례 원나잇를 보낸 둘 사이에 이어진 것이라고는 서로에게 잘 맞게 개발된 성적 취향과 종이처럼 얇고 별 볼 일 없는 얄팍한 인연뿐인데,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심히 당혹스럽고 부담스럽다.
그런 하벤의 얼떨떨한 표정을 바라본 파트너는 입술을 삐죽이며 손을 뻗어 상대의 목을 끌어안았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서 있던 두 몸이 찰싹 붙었다.
대낮에 다 큰 남자들의 진득한 포옹이 펼쳐지자 주변의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호기심이 반 거부감 어린 시선이 반이었다. 그런 시선에도 파트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꺼냈다.
“꼭 돌아올 거지? 나 기다리고 있을게.”
“어, 어. 그래.”
고향에서 받을 것만 받으면 지체 없이 도시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하벤은 꼭 기다리겠다며 칭얼거리는 남자의 어깨를 밀어내며 정차한 기차에 올라탔다. 자리를 찾아 앉으니 창밖으로 파트너가 다가와서 두 손을 흔들었다.
“하벤! 꼭 돌아와야 해!”
창밖에서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에 하벤은 황급히 밖을 내다봤다. 서서히 출발하는 기차를 따라 조금씩 따라오던 파트너가 울먹이는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아니, 왜 저 녀석 혼자 영화 찍고 있어?
당황스러워서 벙해 있다가 계속 달려오는 파트너의 모습에 기겁하고 말았다. 대답하지 않으면 계속 달려올 기세였다. 인사를 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고 말을 하려는데,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상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몇 번이나 살을 섞은 파트너의 이름을 몰랐다.
“어… 너! 자, 잘 있어!”
어쩌나 고민하다가 그냥 대충 인사하기로 했다. 이름이야 어쨌든, 인사만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또 볼지는 모르겠지만, 잘 있어라. 대충 인사한 하벤은 냉큼 기차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여전히 기차 밖에서 애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하벤은 두 눈을 감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몰라, 난 저 밖에 있는 녀석 모른다고.
창밖의 소동이 사라지고, 달라붙었던 시선들도 금방 떨어져 나갔다. 이제야 고요해진 주변에 하벤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도심에서 고향까지 족히 네다섯 시간을 달려 하는데, 이왕 가는 거 조용히 가는 게 좋았다.
하벤의 고향은 도심 외곽에서도 한참 떨어진 지역으로 넓은 초원과 그 가운데에 흐르는 맑은 강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주변 환경도 좋고 사람도 많이 없어서 꽤나 평화로운 고향은 남들이 보기에는 살기 좋은 곳이겠지만, 활기 넘치는 젊은 하벤에게는 평화롭다 못해 끔찍하게 지루한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매일 똑같은 일의 연속이었고, 매일 만났던 사람만 만났다.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어린 시절에는 일주일 내내 똑같은 친구와 똑같은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 적이 허다했다.
시골 마을에서는 재미있는 것도, 그렇다고 특별한 것도 없었다. 늘 일을 하거나 커피, 술 등을 마시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하벤은 그런 삶이 너무 지루했다. 게다가 편히 쉬어야 하는 집에서는 자신을 옭아매는 끔찍한 아버지가 있어서 더욱 숨이 막혔다. 결국 그 모든 것을 견디다 못해 5년 전, 고향에서 도망쳐 도시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도망쳤던 고향인데, 스스로 다시 찾아가게 될 줄은…….
끼이익-.
한참을 달리던 기차가 드디어 멈췄다. 가방을 들고 기차에서 내린 하벤은 기차역 옆으로 펼쳐진 드넓은 초원을 바라봤다.
드디어 고향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집이 나온다. 딱히 차가 없던 하벤은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에게 다가가 히치하이킹을 부탁했다. 한가로이 신문을 보던 그들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금액은 지불할게요.”
“됐네, 거기까지 얼마나 된다고. 그냥 지루하지 않게 말동무나 해 주게.”
멋있는 턱수염이 인상 깊은 나이 든 남자가 낡은 지프차를 가리키며 타라고 손짓했다. 하벤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냉큼 조수석에 올라탔다.
거친 시골길 위를 달리는 지프차는 덜컹하는 요란한 소리를 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소리에 긴장했지만 다행히 차는 잘만 달렸다. 하벤이 슬그머니 손잡이를 잡자, 옆에서 핸들을 돌리던 남자가 말을 붙였다.
“도시에서 왔나?”
“네, 고향에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내려왔어요.”
“여기가 고향이라고? 그럼 클로이드 목장이 집인가?”
다소 놀란 듯한 남자의 물음에 하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목장에 젖소 보러 가겠는가, 당연히 집이니까 가는 거지. 남자는 툴툴거리는 하벤을 보며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 집 아들인가 보군.”
“네, 그렇죠.”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뿔싸. 운 좋게 공짜로 얻어 탄 차의 주인이 아버지와 어느 정도 면식이 있는 사이였나 보다. 생전 친구 따위는 만들지 않을 것처럼 살던 아버지라 방심하고 말았다.
남자는 짙은 눈썹을 일그러뜨린 채 부담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정작 죽은 사람의 가족은 자신인데 옆에 앉은 남자가 더 가족 같았다. 하벤은 좁은 차 안에 가득 찬 어색함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빨리 숨 막히는 차 안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뭐, 지금이라도 찾아와서 다행이지. 안 그런가?”
“그렇죠, 하하.”
다행이고말고. 지금이라도 유산이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남자는 하벤의 작은 대답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몰라도 욕심으로 가득 찬 하벤의 속마음과는 확연히 다른 건 확실했다.
덜컹거리며 달리던 차는 이내 멈춰 섰다. 창밖을 바라보니 울타리가 쳐진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익숙한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하벤이 태어나서 성년이 될 때까지 자랐던 집이었다. 지금까지 관리를 잘했는지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낡은 구석이 없어 보였다.
하벤은 남자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조수석에서 내렸다. 남자는 그런 하벤을 따라 내리며 가방을 챙기는 그에게 말했다.
“이제 아들 둘이서 아버지의 목장을 돌봐야지.”
“네?”
“혼자서 일하는 거 같던데, 이왕이면 형제들이 사이좋게 일하는 게 훨씬 좋지 않겠는가?”
무슨 소리야, 나보고 이런 시골에서 일하라고? 하벤은 남자의 엉뚱한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재빨리 표정을 풀었다. 여기까지 데려다준 고마운 사람에게 차마 짜증을 낼 수 없었다.
어물쩍 대답을 하며 남자를 보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지프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하벤은 벌써 지쳐 버렸다. 여기까지 조용히 오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벌써 이리저리 시달렸다. 출발하기 전에 한 번, 그리고 방금 전에 또 한 번.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내 가까워지는 목장 입구를 보며 두통이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유산이다, 유산.
즐거운 발걸음으로 울타리 안에 들어가니 저 멀리 지겹게 봐 왔던 축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자식은 어디 있을까. 목장을 지키고 있을 동생을 찾아 걸음을 옮기자 때마침 그 안에서 나오는 커다란 남자를 발견했다.
“오호… 반갑다?”
하벤은 축사에서 나오다가 자신을 보며 멈칫한 남자에게 이죽거렸다.
자신과 같은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앳된 얼굴의 남자는 오 년 만에 보는 이복동생이었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은 여러모로 하벤과 생김새가 비슷했다. 둘 다 아버지의 핏줄을 진하게 타고 태어난 덕분이었다.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선명한 녹색 눈동자, 거기다 눈이 가는 잘빠진 이목구비까지. 차이가 있다면 핏줄이 보일 정도로 창백한 피부를 가진 하벤과 달리 그의 동생은 짙은 구릿빛 피부를 가졌다는 것뿐이다. 게다가 동생은 그동안 목장에서 열심히 일했는지, 그 짙은 색의 피부가 더욱 검게 타 있어서 차이가 명확해졌다.
하벤은 그런 제 동생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5년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사뭇 달라져 있었다. 훌쩍 커진 키가 그랬고, 넓어진 등이 그랬다. 형인 자신보다 큰 키를 가진 거구를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 막 스물이 된 녀석이라 조금 더 자랄 것 같았다.
남몰래 키를 가늠하다가 멀뚱히 서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봤는데, 안 반가워?”
당연히 안 반갑겠지. 아버지 죽었을 때도 얼굴 하나 비치지 않았는데 뭐가 반갑겠어. 하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다짜고짜 본론을 꺼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상대는 그런 인사에도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나타난 하벤의 멀끔한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도 않고 쳐다보는 시선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여기서 계속 시간만 보낼 거야? 안으로 들어…….”
“어쩐 일이에요?”
착 가라앉은 굵직한 목소리에 순간 깜짝 놀랐다. 전에는 자신과 비슷했던 거 같은데 그새 목소리가 낮고 탁해졌다.
놀란 마음도 잠시, 하벤은 제 말을 자르고 묻는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한 번쯤은 와야지.”
“…….”
“우선 다리 아프니까 안으로 들어가자, 페트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손짓하자 망부석처럼 서 있던 동생, 페트로의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앞장서는 페트로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깔끔하다 못해 사람 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 하나 없는 가구와 각 맞춰 정리된 물건들을 질린 눈으로 본 하벤은 마치 오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휘유, 여전하네.”
변한 게 있기는 한가. 하벤이 중얼거리자 집 안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하던 페트로가 힐끔 뒤를 돌아봤다. 말없이 쳐다보는 시선에 하벤의 한쪽 눈썹이 휘어졌다.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뜻으로 턱을 까딱거렸지만 페트로는 시선을 거두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재미없는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활발하고 장난기 많은 하벤과 달리 그의 동생은 차분하고 과묵해서 마치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찍어 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거부감이 들고 정이 가지 않았다.
하벤은 동생의 사라진 뒷모습을 쫓다가 이내 소파에 앉았다. 그가 앉은 오른쪽 끝자리는 예전부터 자주 앉았던 전용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보기도 하고, 벽에 걸린 몇 없는 액자를 구경하기도 했다. 마치 달라진 점을 찾는 듯 샅샅이 훑는 시선이었다.
탁.
“아, 고마워.”
가족사진이 걸린 액자를 보던 하벤은 제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보며 인사했다. 묻지도 않고 멋대로 내놓은 커피는 놀랍게도 예전에 자주 즐겨 마셨던 원두커피였다. 마을에서도 찾는 이가 없어서 늘 어렵게 구했던 기억이 있다.
이 원두가 아직 있었단 말인가. 특유의 쌉싸름한 맛보다는 산미가 훨씬 강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눈을 돌려 제 동생을 바라봤다. 페트로는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제 앞에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그를 향해 하벤은 말했다.
“계속 서 있을 거야?”
옆자리를 가리키며 묻자 페트로가 느릿한 걸음으로 소파에 앉았다. 아직 여름이 다 가시지 않아서 그런가, 옆자리에 앉은 동생에게서 뜨거운 체온이 훅 느껴졌다.
괜스레 불편한 느낌에 엉덩이를 옆으로 옮겨 팔걸이에 바짝 붙어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아버지 돌아가신 지 좀 됐는데, 혼자서…….”
“그러는 형은, 어떻게 지냈어요?”
또 말을 자른다.
상대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물어보는 태도는 늘 차분하고 조용했던 자신의 동생이 보일 법한 태도는 아니었다.
하벤은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옆자리에 앉은 페트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살포시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나야 뭐, 잘 지내고 있지. 여기랑 다르게 놀 거리도 있고… 여러모로 심심할 틈이 없었어.”
“…….”
“너도 이참에 도시로 올라오지 그래? 여기는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이 있기에는 지루한 곳이잖아.”
예의상 한 말이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거창한 애정 따위는 없는 형제 사이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보다 어린 녀석이 이런 시골에서 썩고 있는 것은 썩 보기 좋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휴식을 취하며, 똑같은 시간에 하루를 정리할 것이다. 그것을 겪어 봤던 하벤은 여전히 그 지루한 일상을 겪고 있을 페트로에게 조언했다.
“잘 들어 봐. 도시에서는 배울 기회도, 경험을 할 기회도 넘쳐 나. 마음만 먹으면 네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말이야. 하벤은 굳이 암울한 현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답지 않은 진심 어린 조언에 페트로는 제 형을 쳐다볼 뿐, 이렇다 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동생의 심심한 반응에 하벤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은 사이인데 더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이제 네 얘기를 해 봐. 어떻게 지내고 있어?”
“똑같아요.”
“똑같아요.”라는 대답에 하벤은 입을 벌렸다. 별다른 말이 붙진 않았지만 저 “똑같아요.”라는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똑같다니, 똑같다니!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독실한 신부님도 너보다는 낫겠어.”
호기심이 많은 녀석들은 성년이 되기도 전에 일을 치르곤 했다. 그러고는 여자와, 혹은 남자와 자는 것을 자랑하고 으스댔다. 그것은 그들에게 어른이 되었다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정도로 성관계에 대해서는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하벤이 처음 남자와 잤던 것도 도시로 올라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처음 친해진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백인 남자였는데, 그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환상적인 하룻밤을 보내는 인물로 유명했다. 경험이 없던 하벤은 그런 남자의 어른스러운 리드에 난생처음으로 섹스를 맛보았다.
그렇게 성년이 되자마자 딱지를 뗀 자신도 친구들에게 얼마나 놀림을 당했던가. 하벤은 제 옛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페트로, 그 나이 먹도록 연인과 섹스 한 번 하지 않았다는 건 큰 문제가 있는 거야. 진작에 도시로 갔다면 나처럼 지겹게 했을 텐데.”
노골적인 묘사는 없었지만, 말의 의미를 단숨에 알아차린 페트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활발한 성생활의 중요성을 알려 주는 하벤은 점차 굳어지는 동생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한 채 태평하게 페트로의 어깨 위에 팔을 올렸다.
손으로 단단한 어깨를 어루만졌다. 이것 봐라, 어깨도 넓고 몸도 좋고. 오랜 목장 일로 인해 근육도 차고 넘치는데 이런 시골에 처박혀 있어서 빛을 못 보고 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생이지만 같은 남자로서 정말 안타까웠다. 이런 몸이면 다른 사람들한테 섹스어필이 되고도 남을 텐데.
“…이런 얘기 하려고 온 거예요?”
안타까운 마음에 어깨를 토닥이자 낮고 음울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먼저 물어봤잖아. 아, 숫총각이라고 놀려서 골이 났구나. 하벤은 힘내라는 의미로 페트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그러자 페트로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아니, 아니. 당연히 다른 얘기 하려고 온 거지.”
“뭔데요.”
“오랜만에 와서 이런 이야기 꺼내는 게 조금 민망한데, 그… 아버지 유산 말이야.”
드디어 꺼냈다! 호기롭게 고향으로 내려왔던 것과 달리 본론으로 들어가니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돈 얘기는 꽤 민감한 주제였다. 왜, 가족끼리 재산 싸움으로 멀어지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긴장한 얼굴로 페트로의 눈치를 살피자, 가만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하고 마주쳤다. 똑같은 눈동자이건만 동생의 눈동자는 무언가 달랐다. 확연히 감정이 드러나는 자신의 것과는 달리 마주하는 저 눈동자는 안개가 낀 것처럼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하벤은 먼저 시선을 돌려 버렸다.
페트로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조막만 한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유산 말이죠?”
“그래. 설마… 없는 거야?”
왜 이렇게 뜸을 들여? 하벤은 눈살을 찌푸렸다. 유산이 없다는 소리만 해 봐. 당장 빽빽한 숱을 자랑하는 머리털을 쥐어뜯어 줄 테다.
그런 하벤의 사나운 눈초리를 바라본 동생이 입을 열었다.
“물론 형 몫의 유산이 있어요.”
“역시!”
“대신 조건이 있어요. 나를 도와서 6개월 동안 목장 일을 해야 해요.”
“…뭐?”
높낮이 없이 평온하게 내뱉는 목소리에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벤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거리자 페트로가 눈을 찌푸리며 턱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멍청하게 넋을 놓고 있던 제 형에게서 우수수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일을 해?”
“형이요.”
“내가 왜?! 아니 누가 나보고 여기서 일을 하라는 건데?”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법적 효력도 있으니까 의심하지 마세요. 정 못 믿겠다면 다음 주에 변호사가 올 테니까 그에게 물어보도록 해요.”
저답지 않게 길게 주절거리는 동생의 말에도 하벤은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유산이 있다고 하니 다행인데, 거기에 거지 같은 조건이 붙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유언으로 골머리 앓는 건 제가 즐겨 보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자신도 저 유언에 발목이 잡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벤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다가 고개를 들어서 페트로를 쳐다봤다. 말도 안 돼, 농담이겠지? 하는 무언의 시선에 페트로는 농담 따위는 모르는 무미건조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에 하벤은 절망하고 말았다.
“아아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고요한 주택에는 하벤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제정신이 아닌 듯한 그의 모습에 페트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빈방으로 향했다.
“그럼 쉬고 있어요. 앞으로 형이 쓸 방을 준비해 놓고 있을게요.”
그토록 기다리던 형이 왔으니 방을 정리해야 했다.
* * *
“아, 지친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하벤의 발악이 멈췄다. 아무리 발버둥 치며 부정해도 페트로의 입에서 ‘거짓말’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벤은 제 동생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열 살이 조금 넘었을 때 이 집에 들어온 페트로는 단 한 번도 아이다운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어린아이라면 누구든지 사 달라고 떼쓸 법한 간식에도 관심이 없었고, 하벤이 어렵게 구한 히어로 코믹북에도 시큰둥했다. 또래 친구들에게 큰 관심도 없었고, 어린아이가 할 만한 장난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그런 녀석이 5년 만에 온 제 형제에게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진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망할 노인네…….”
결국 이 유언은 마음에 들지 않은 자신의 큰아들을 엿 먹이기 위한 아버지의 꼼수라는 거다. 죽기 직전까지 이런 엿을 선사하다니. 역시 마지막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작자다.
소파에 누워 한참을 버둥거리던 하벤은 눈꺼풀이 점차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른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쉼 없이 달려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 잘까. 아까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동생을 기다리던 그는 그냥 눈을 감았다. 하루 정도 여기서 잔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사방이 고요했다. 간간이 동생이 들어간 방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쓸 만한 건 아니었다.
하벤은 소파 위에서 편한 자세를 잡으며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벌레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도시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벌레 우는 소리가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유년 시절 내내 자장가 삼아서 들었던 소리인데 도시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졌다고 그새 까먹었나 보다.
한참을 벌레 우는 소리에 추억에 잠긴 것도 잠시, 그것도 어느 정도 들으니까 벌써부터 질린다. 역시 자신은 재미없는 시골 밤보다 시끄러운 도시의 밤이 더 어울린다. 하벤은 불만을 곱씹으며 깊은숨을 푹 내쉬었다.
깊은숨을 여러 차례 내쉬자 얕은 잠에 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야겠다.
“읏, 뭐야?”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불현듯 등과 다리 아래서 느껴지는 낯선 손길에 화들짝 놀랐다. 감았던 눈을 뜨자 코앞에 페트로의 얼굴이 다가와 있었다. 서로의 코끝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얼굴에 하벤이 기겁했다.
“뭐, 뭐 하는 거야?”
“…자고 있는 거 같길래.”
자는 거 같아서 직접 옮기려고 했다는 뜻에 기가 찼다. 그냥 깨우면 되는 거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걸까. 우애 깊은 형제 사이도 이러지는 않겠다. 남처럼 지낸 데면데면한 형제 사이에서는 더더욱이고. 하벤은 부담스러운 제 동생의 가슴을 밀었다.
페트로는 자신을 밀어내는 단호한 손길에 순순히 밀려났다. 등과 다리 밑에 넣었던 손도 치우자 하벤이 벌떡 일어나서 방으로 걸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사용했던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방이라 어느 정도 먼지가 쌓여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 동생이 말끔하게 치운 모양이었다. 하벤은 그런 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재빨리 방문을 닫으려 했다.
“형.”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페트로의 부름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을 부른 동생이 소파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앞으로 잘 지내요.”
뜬금없는 인사였다. 하벤은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눈동자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없는 인사인데도 이유 모를 긴장감이 느껴진다. 하벤은 동생의 눈동자를 마주 보다가 겨우 문을 닫았다. 생각지도 못한 고향에서의 하룻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멍! 멍!
하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숙면을 취하던 하벤의 귓가로 어딘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릴없이 집 주변을 뛰어다니며 짓는 소리. 분명 목장에서 키우는 개일 것이다. 또 어디서 얻어 온 거람.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짖는 소리에 하벤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예전부터 클로이드 목장에는 젖소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들도 함께 키웠다. 닭부터 시작해서 개, 토끼 등 어디서 얻어 왔는지 모를 녀석들이 늘 함께했다.
하벤이 어렸을 때도 이웃집에서 작은 보더콜리 한 마리를 얻어 와 키웠는데 틈만 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드넓은 초원을 달렸었다. 워낙 똑똑하고 애교도 많아서 나름 정을 주고 키웠는데, 고향을 떠났을 때 이미 노견이었기에 지금쯤이면 무지개다리를 건너지 않았을까 싶었다.
멍! 아직도 짖고 있는 개 때문에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내던 하벤이 결국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놈의 개 때문에 늦잠을 잘 수가 없다.
“진짜 시끄럽네.”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창문에 다가갔다. 아직 이른 아침인지 살짝 불그스름한 하늘이 보였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창밖을 내다보니 창문 앞에서 정신 사납게 뱅글뱅글 돌고 있는 큰 개가 보였다. 하벤은 그 개를 보며 창문을 열었다.
“야, 아침부터 매너 없게…….”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자 개가 또 짖기 했다. 그런 개를 보며 한마디 하려는데, 자신을 보고 짖는 개가 어딘가 눈에 익었다. 쫑긋 올라온 뾰족한 귀, 긴 하얀 털과 검은 털. 긴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니던 개는 창밖으로 드러난 하벤을 발견하고는 정신 사납게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컹, 하고 작게 짖는 모습을 보며 하벤은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일어났어요?”
“이 녀석 살아 있네?”
하벤은 축사에서 나오며 인사하는 페트로에게 물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키웠던 개가 맞다는 뜻이었다. 하벤은 그 대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을 반기는 개가 어린 시절에 키웠던 강아지라는 사실에 단숨에 밖으로 나갔다.
“세상에, 아직 건강하잖아?”
밖으로 나가니 반가운 녀석이 겅중 뛰어올랐다. 이제 보니 예전과 조금 달랐다. 하얗게 벗겨진 코가 그랬고 조금 뿌옇게 변한 눈동자가 그랬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엉덩이를 세우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은 똑같았다.
“어제는 안 보이더니.”
“아마 이웃집에 놀러 갔을 거예요. 지금도 종종 놀러 나가거든요.”
하긴, 예전에도 틈만 나면 다른 집으로 놀러 가서 하루 종일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웃집이라고 해도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야 겨우 갈 수 있는 긴 거리인데 개는 지치지도 않는지 줄기차게 놀러 갔다.
다 늙은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한가 보다.
“친구, 그동안 잘 있었어?”
하벤은 개를 친구라고 불렀다. 딱히 생각나는 이름도 없고, 부를 때마다 꽤 어울린다는 생각에 붙인 호칭이었다.
개는 친구라는 부름에 힘차게 짖었다. 꼬리를 더 빠르게 흔드는 걸 보니 신이 난 듯했다. 하벤은 그런 개를 품에 안으며 웃었다. 이미 세상을 떠났을 거라 생각했던 친구가 아직 정정하게 움직이고 있다. 물론 전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말이다.
얼굴을 핥는 개와 그런 개를 끌어안으며 긴 털을 어루만지는 하벤의 곁에 어느새 페트로가 다가왔다. 말끔한 평상복 차림에 장화만 신은 그는 시선을 내려 둘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보기 좋아서요.”
낯간지러운 말에 의아하게 쳐다보자 더 이상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그저 알 수 없는 시선을 마주할 뿐이었다.
하벤은 어젯밤에 봤던 의미 모를 시선을 떠올리며 먼저 고개를 내렸다. 품속에 안긴 개가 혀를 내밀며 헥헥거리고 있었다.
“씻고 나와요. 일해야죠.”
“…알았어.”
페트로의 말에 하벤은 냉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오려는 개를 달래서 내쫓고 나서야 씻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목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젖소의 먹이를 챙겨 주는 것이다. 미리 준비한 먹이를 고개를 빼꼼 내민 젖소들 앞에 놓아 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꽤 많은 양의 먹이를 옮겨야 한다는 점에서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하벤은 무거운 짚을 들고 나르자 벌써부터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어릴 때는 이 일을 어떻게 매일같이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힘든 것도 모르고 부지런히 했었다.
“윽.”
먹이를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데, 너무 욕심을 부렸는지 무거워서 나가질 않는다. 낑낑거리며 밀어도 요지부동인 수레는 결국 중심을 잃고 옆으로 기울어졌다. 이대로 넘어지면 일이 더 커진다. 황급히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지만 무게 중심이 완전히 넘어간 수레는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젠장, 이대로 넘어지겠다. 곧 옆으로 넘어질 수레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데, 순간 등 뒤로 나타난 손이 수레를 붙잡았다.
“형.”
수레를 잡은 장갑 낀 손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올려 팔뚝을 쳐다봤다. 힘이 잔뜩 들어가 핏줄이 선명히 보이는 팔이 눈길을 끌었다.
하벤은 가만히 페트로의 팔을 보다가 제 손에서 수레를 뺏어 가는 손길에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됐어, 내가 할게.”
자신의 일을 대신하려는 페트로의 행동을 막고 똑바로 세워진 수레를 밀었다. 있는 힘껏 힘을 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으로 잘만 간다. 하벤은 뒤에 우두커니 선 페트로를 뒤로하고 바삐 먹이를 옮겼다.
짧은 아침 일과가 끝이 나고 하벤과 페트로는 늦은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변호사는 다음 주에 온다고?”
“네.”
“정확히 언제?”
“다음 주 주말에 온다고 했어요.”
집 안까지 들어온 개에게 물과 사료를 챙겨 준 페트로가 부엌으로 돌아오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아침 식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일주일도 넘게 남은 거네? 아, 언제까지 기다려.”
식탁에 엎어져 있던 하벤은 식탁 위에 놓인 토스트를 힐끔 보며 중얼거렸다. 변호사가 오면 당장 따져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일주일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하고 일어나서 아침 먹어요.”
엎드린 하벤이 일어날 생각을 않자 곁으로 다가온 페트로가 어깨를 붙잡았다. 커다란 손으로 다소 마른 어깨를 감싸 쥐었다. 손가락을 말아 쥐어 단단히 붙잡은 손길이 은근히 강압적이었다. 하벤은 제 어깨를 붙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에 괜스레 손을 밀어냈다. 거부한 손은 잠깐 어깨 위에서 머물다가 떨어졌다.
하벤은 제 맞은편 자리로 돌아간 페트로를 꺼림칙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상하게 아까부터 동생의 손이 신경 쓰인다. 그 꺼림칙한 느낌에 괜스레 푸념했다.
“빨리 가고 싶다, 진짜.”
“…왜 이렇게 돌아가고 싶어 해요?”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에 페트로가 질문을 던졌다. 왜 돌아가고 싶냐는 물음에 하벤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지루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시간을 죽이기 싫어. 당장 도시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하고 시간도 보내고 싶다고.”
여기서 벌레 소리 들으면서 이른 잠에 들 게 아니라 당장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이름 모를 파트너를 만나서 격렬한 밤을 보내고 싶다. 도시에서도 하루걸러 한 번 잠자리를 했는데, 여기서 몇 개월이나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니, 하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시간을 보낸다고?”
조용히 말을 듣던 페트로가 입을 연 것은 맞은편에 앉은 하벤이 토스트 조각을 손에 집어 들었을 때였다. 그는 식사를 시작하려는 하벤과 달리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벤은 아침을 먹을 생각도 않고 앉아만 있는 제 동생을 보며 픽 웃었다.
“그래, 여기서 썩고 있을 게 아니라 환상적인 상대하고 밤을…….”
“그거면 되는 거예요?”
“뭐?”
구구절절 말하려던 하벤의 입이 다물어졌다. 페트로가 내뱉은 말의 의미를 생각하려는데, 순간 커다란 손이 자신의 손을 감싸 쥐었다.
“쉽네요.”
제 것보다 작은 하벤의 손을 움켜쥔 페트로가 입꼬리를 당겼다. 줄곧 무표정이었던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진한 웃음을 보였다.
늘 딱딱하게 굳어 있는 얼굴에 입꼬리가 올라가니 누가 봐도 혹할 만큼 멋들어졌다. 하벤은 그 얼굴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형인 자신이 봐도 눈이 갈 정도로 멋있기는 했지만 어딘가 이질적이고 위험해 보였다.
그거면 되냐는 뜻이 무엇일까. 자신은 분명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말했는데, 그거면 되냐니. 마치 자신이 그 쉬운 것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벤은 은연중 제 손을 잡고 있는 커다란 손을 쳐다봤다. 핏줄이 돋아 있는 성인 남자의 손이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붙잡힌 제 손을 빼냈다.
“뭐라는지 모르겠네. 이상한 소리 말고 아침이나 먹어.”
뜨거운 손아귀에서 빼낸 손으로 겨우 컵을 잡았다. 애써 태연한 척 커피를 마셨지만 둘을 감싸고 있는 어색한 기류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보내오는 시선도 거북하기 그지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도 이렇게 동생이 이유 없이 거북했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생각나진 않지만 대략 사춘기를 맞이했을 때부터, 그것도 하벤이 자신의 성향을 알아차렸을 때부터였다.
작고 예쁜 여자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남자에게 눈길이 간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경멸 어린 눈빛을 보냈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어린 페트로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내왔었다. 좋다, 싫다의 단순한 감정이 아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시선이었다. 안 그래도 이복동생이라 데면데면한데, 도통 속을 알 수 없으니 더욱 꺼림칙하게 느껴졌었다.
몇 년이 지나도 거부감이 여전하다. 하벤은 묵묵히 토스트를 먹으며 화제를 돌렸다.
“다음엔 뭐 하면 돼?”
“조금 쉬어요. 오후에 바쁠 테니까.”
아마 오후에는 소젖을 짜거나 축사를 청소할 것이다. 둘 다 별로이기는 하지만 냄새나는 축사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소젖을 짜는 게 훨씬 났다. 마지막 한 모금의 커피를 들이켠 하벤은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다 먹었으니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집 앞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아침을 먹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개가 다가왔다. 꼬리를 흔들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에 놀아 달라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발아래에 자리를 잡고 엎드린다. 그러고는 큰 숨을 푹 내쉬며 눈을 감는다. 느리게 오르내리는 등을 보니 잠이 든 것 같았다.
“너도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새삼 세월이 느껴진다. 변하지 않은 집, 여전히 살아 있는 친구, 그리고 하염없이 이곳을 지키는 동생. 변한 것은 떠난 자신과 죽은 아버지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잠이 든 개를 쓰다듬으며 남은 휴식을 보낸 하벤은 어느새 밖으로 나온 페트로의 손짓에 따라 축사 안쪽에 자리한 착유실로 향했다. 작업복을 건네지 않은 것을 보니 그토록 바라던 우유 짜는 일을 하려는 것 같았다.
페트로는 은색의 우유 통을 꺼내 들어 홀로 묶여 있는 젖소의 몸통 옆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멀뚱히 서 있는 하벤을 불러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겼다.
소 옆에 앉은 두 사람은 묵직하게 부푼 젖을 보며 손에서 장갑을 뺐다. 그러고는 익숙하게 소젖으로 손을 뻗었다. 축 처진 커다란 젖을 잡고 살짝 손가락에 힘을 주니 끝에서 많은 양의 우유가 터져 나왔다. 진하고 하얀 우유가 은색 통 안으로 쏟아졌다. 페트로는 제가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하벤에게 말했다.
“짜는 방법 기억하죠?”
“기억은 하지.”
어째 자신 없는 말투다. 페트로는 잡고 있던 젖을 놓고 하벤에게 손짓했다. 한번 해 보라는 뜻이었다.
비켜 준 자리에 앉은 하벤은 눈앞에 있는 커다란 젖을 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맨손에 뜨겁고 물컹한 젖이 닿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 기색을 읽은 젖소도 뒷다리를 들썩였다. 예민한 짐승답게 사람의 불편함을 읽은 것이었다.
여러 차례 젖을 잡고 힘을 줬지만 어째 우유가 시원스레 나오지 않는다. 그냥 부드럽게 짜면 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소 젖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다. 손에 조금만 힘이 들어가면 젖소가 싫어하고, 그렇다고 마냥 조심스럽게 짜면 우유가 나오지 않는다.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하벤의 얼굴에 페트로가 말을 꺼냈다.
“못하네요.”
“소 젖 짜는 건 예전에도 못했어.”
“하긴.”
어릴 때부터 목장 일을 도왔던 둘은 대부분의 일에 능숙했지만 유난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도 있었다. 하벤의 경우에는 소젖 짜는 일이었다. 여러 번 하면 말로 하지 않아도 손끝이 안다는데, 하벤은 몇 번을 해도 어렵고 까다로웠다.
그런 형을 잘 아는 페트로가 나서서 도와주기 시작했다. 한쪽 팔을 어깨너머로 뻗어 어색하게 젖을 잡고 있는 손을 붙잡았다.
“부드럽게… 손에 힘을 풀어요.”
어느새 힘이 들어간 손가락 사이로 페트로의 긴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왔다. 장갑을 벗은 맨손이라 굳은살이 박인 따뜻한 손바닥이 느껴졌다. 하벤은 자신의 손을 덮은 커다란 손에 당황하다가 능숙하게 이끌어 주는 손길에 따라 젖을 감싸 쥐었다.
“뿌리에서 아래로 쓸어요. 천천히 힘을 주고…….”
소 젖통을 쓸어내려 뿌리를 부드럽게 감싸 쥐고 천천히 젖 끝으로 향한다. 손바닥 옆면에서 뭉툭한 젖 끝이 걸리자 커다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끝에서 힘을 줘야 우유가 잘 나오죠.”
물컹한 젖을 강하게 쥐자 끝에서 하얀 우유가 터져 나온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우유가 쏟아지자 젖을 잡고 있던 둘의 손이 젖어들어 갔다. 하벤은 혀를 차며 젖을 잡아당겼다.
“얼마나 안 짠 거야? 우유가 엄청 나오네.”
“그러게요.”
무심코 한 혼잣말에 페트로의 대답이 들려왔다. 하벤은 어느새 제 어깨로 고개를 내민 페트로를 보며 흠칫 놀랐다. 이제 보니 페트로가 자신의 등 뒤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귓가에서 간지럽게 느껴지는 호흡과 등 뒤로 닿는 가슴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엉덩이에 닿는 딱딱한 허벅지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벤은 주저 없이 팔꿈치로 페트로의 몸을 밀어냈다.
“이제 괜찮으니까 떨어지지?”
“괜찮다고요?”
버티지 않고 순순히 물러난 페트로가 되물었다. 그의 물음에 코웃음을 친 하벤이 호기롭게 젖을 다시 잡았다. 아까의 느낌대로 잡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뿌리를 움켜쥐자 얌전히 있던 젖소가 버둥거렸다. 생각보다 거친 젖소의 움직임에 하벤이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하벤은 정신 사납게 움직이는 젖소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까까지는 얌전하더니 자신이 잡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인다. 손길이 영 별로인가? 제 손을 바라봤지만 명확한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기분이 상한 하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어, 난 다른 일 하는 게 낫겠어.”
“지금 이거 말고 딱히 할 일은 없어요.”
페트로는 자리에 서서 눈살을 찌푸린 하벤을 잡아당겼다. 얼른 마저 우유를 짜라는 말에 하벤이 툴툴거렸다. 또 꺼림칙한 동생의 손길을 빌려야 할 판이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니 또다시 등 뒤로 커다란 몸이 붙었다. 어깨너머로 나타난 손이 하벤의 손을 붙잡았다. 하벤은 등 뒤를 감싼 뜨거운 체온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 진짜 이거 싫다고…….”
“일을 해야죠. 그래야 유산을 받을 거 아니에요.”
맞는 말이어서 하벤은 투덜거림을 멈췄다. 그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착실히 젖을 짰다. 빨리 혼자 짜는 법을 터득하든가 해야지, 계속 이런 식으로 페트로와 붙어 있는 거면 무척 곤란하다.
페트로는 자신의 팔 안에서 잔뜩 똥 씹은 얼굴로 일을 하는 하벤을 바라봤다. 골이 나서 못난 표정을 지어도 그 미모가 어딜 가지 않는다. 페트로는 그런 제 형의 얼굴을 마음껏 구경하다가 잡고 있는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눴던 대화가 문뜩 떠올랐다.
환상적인 상대하고 밤을…….
페트로는 제 형이 욕구불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 유언이 아니었다면 제 몫의 유산을 받자마자 자신을 버리고 도시로 갔을 것이고 얼굴도 모를 수많은 상대들하고 침대에서 뒹굴었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페트로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미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싫으면 제대로 알려 줄까요?”
“뭘?”
“이것만 익히면 혼자서 할 수 있을 거예요.”
제대로 알려 주겠다는 페트로의 말에 하벤이 그를 쳐다봤다. 혼자서 착유할 수만 있다면 이 거지 같은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벤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페트로는 그런 제 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제대로 알려 준다면서 되레 손을 떼는 것에 의아했다. 하지만 그 의아함도 이내 경악으로 바뀌었다.
“너, 너 뭐 하는…!”
우유로 흠뻑 젖은 손이 하벤의 상의 안으로 들어갔다. 두 손 모두 셔츠 안으로 들어가 가슴을 어루만지자 하벤이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뒤에서 끌어안듯 힘을 준 팔에 벗어날 수 없었다.
“직접 느껴 봐야 알죠.”
“야!”
“잘 기억해요.”
덩치의 차이는 대체로 힘의 차이였다. 족히 머리 하나가 큰 키와 자신보다 넓은 어깨를 가진 사람을 밀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하벤은 몸부림을 치다가 고개를 돌려 페트로를 노려봤다.
“좋은 말로 할 때 놔라.”
“형, 집중해요. 그래야 빨리 끝나죠.”
“야 인마!”
귀 옆에서 지르는 고함에도 페트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을 쓰다듬었다. 긴장을 했는지 거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크게 벌린 손으로 왼쪽 가슴을 움켜쥐자 하벤의 버둥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바로 젖을 잡는 게 아니라 젖통을 움켜잡는 거예요. 우선 손가락으로 젖통을 쓸어내려야 우유가 잘 모이거든요.”
“야…! 윽!”
왼쪽 가슴을 움켜쥐며 가슴 주변 살을 주물렀다. 엄지손가락으로 살을 쓸어 내고 남은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살결을 쓰다듬었다.
강압적이지 않은 조심스러운 손길에 하벤은 점차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흡사 애무 같은 손길에 예민한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정성 들여 만지는 손길에 입 밖으로 억눌린 호흡이 새어 나왔다.
페트로는 하벤의 할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손에 착 붙는 가슴을 마음껏 만졌다. 제법 단단하고 보드라운 살이 구미를 당기게 했다.
“우유를 충분히 모았으면 그다음은 짜는 거예요. 곧바로 젖의 끝이 아니라 뿌리를 누르고…….”
“아, 그만, 그만.”
살결을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어느새 딱딱하게 선 유두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유륜을 누르던 두 손가락이 조금 강하게 유두를 꼬집었다.
“아.”
하벤은 난생처음 느껴 보는 느낌에 움찔거렸다.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유두를 꼬집자 통증과 함께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 너무 이상해. 하벤은 제 옷 속에서 움직이는 손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만났던 바텀들 중에서도 유두로 느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물고 빨면 분위기상 흥분을 느끼기도 했고, 꼬집었을 때 느껴지는 통증에 흥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만났던 바텀들의 얘기였다. 탑인 자신이 아니라!
“그만… 아, 으읏!”
달뜬 호흡을 내뱉던 하벤의 입에서 결국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 입에서 나온 높은 신음 소리에 깜짝 놀랐다. 평소와 다른 간드러진 목소리에 정신이 반짝 든 하벤은 아직 가슴에 머물고 있는 손을 붙잡았다.
“장난이 지나치잖아.”
정색하며 내뱉는 말에 페트로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봤다. 딱히 이렇다 할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에 하벤은 미간을 찡그리며 사납게 으름장을 놨다. 한 번만 더 이런 장난을 하면 가만 안 두겠다 경고했다.
하벤의 으름장에 페트로는 힐끔 눈을 아래로 내렸다. 아래로 향한 시선이 다리 사이에 닿았지만, 이내 하벤이 벌떡 일어나면서 시선이 다시 위로 향했다. 그러자 이쪽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초리와 마주쳤다.
“이제 너 혼자서 해. 난 들어갈 거야.”
잔뜩 성을 낸 하벤이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줄곧 잠자코 있던 페트로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팔뚝을 잡는 강한 악력에 의해 하벤의 몸이 엎어질 뻔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치려는데 페트로가 입을 열었다.
“왜 화를 내는 거예요?”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방금 나한테…!”
“우유 짜는 방법을 알려 준 거잖아요.”
허, 하벤은 페트로의 표정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은 언뜻 순진무구해 보였다. 진짜 고작 젖을 짜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형제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단 말인가? 그것도 젖꼭지를 꼬집으면서까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적당히 해, 진짜 화나려고 하니까.”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아까 받은 자극에 아직 딱딱하게 서 있는 유두가 불편했다. 하얀 셔츠 하나 입은 터라 가슴 한가운데 선 유두가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벤은 당장 제 팔을 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페트로는 떨어져 나가기는커녕 도리어 가까이 몸을 붙였다. 하벤은 벌떡 일어나 가까이 다가온 몸에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아직 팔을 잡고 있는 손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손을 놓으라고 소리를 치려는데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입이 다물어졌다. 마주 보는 얼굴은 똑같았지만 번들거리는 눈은 어딘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하벤은 그런 동생의 얼굴을 보며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숨이 막혔다.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팔을 잡았던 손은 어느새 어깨 위로 올라갔다.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천천히 주무르다가 다시 아래로 향한다. 그 손이 향한 곳은 가슴팍이었다.
페트로는 단단한 가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다가 딱딱하게 서 있는 유두를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하벤은 또다시 시작된 동생의 희롱에 얼어붙었다. 아까와 달리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마치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제 동생이 달려들어서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았다.
“하아, 하…….”
“이렇게 흥분한 게 부끄러워서 도망가려고요?”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달리 자극받은 몸은 착실하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제 양쪽 가슴을 건드는 손가락에 작게 신음을 흘렸다. 처음 느껴 보는 야릇한 자극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자 페트로가 물었다.
“도망가면 어떻게 풀려고요?”
“놔, 으음…….”
“혼자 하려고요? 이렇게 가슴을 만지면서?”
얇은 셔츠 위에서 유두를 문지르던 손이 황급히 단추를 풀었다. 하나, 둘 풀려 나가는 단추에 셔츠 사이로 하얀 가슴이 드러났다. 페트로는 잡티 하나 없는 가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릴 때도 본 적 없는 제 형의 가슴은 상상한 거 이상으로 탐스러웠다.
“내가 도와줄게요, 형.”
반쯤 벗겨진 셔츠 사이로 페트로의 얼굴이 파고들었다. 하벤은 몸을 숙이고 제 가슴에 달라붙는 동생의 얼굴에 기겁했다.
페트로는 반항하는 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 한가운데를 핥았다. 다부진 가슴 사이에 난 깊은 골을 긴 혀로 쓸다가 훤히 드러난 한쪽 가슴을 크게 한입 물었다. 입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살을 욱여넣으며 게걸스럽게 빨아 대자 품 안에 안긴 몸이 파르르 떨었다.
“페트로, 뭐 하는 거야! 그만……. 흐윽! 그만, 그만해…!”
츕, 츄읍. 탐스러운 가슴을 빨면서 맛을 보니 어느새 입안 가득 타액이 고였다. 입안에 한가득 들어온 가슴을 입술로 빨아들이고 치아에 걸리는 유두를 잘근잘근 물자 타액의 질척한 소리가 여과 없이 들려왔다. 단단한 가슴을 빨며 비어 있는 손으로 하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애처롭게 떨고 있는 몸이 품속으로 들어왔다.
가슴살과 유두를 씹던 페트로는 줄곧 괴롭혔던 살을 놓아주고 타액에 푹 젖은 유두를 건드렸다. 혀로 유륜을 진득이 핥다가 앞니로 딱딱한 유두를 깨물었다.
“흐윽!”
한참을 깨물던 페트로는 어린 아기가 모유를 먹듯 정신없이 가슴을 어루만지며 젖꼭지를 빨아먹었다.
그런 페트로의 애무에 하벤이 자지러졌다. 떨어질 줄 모르는 입술에 속수무책으로 신음을 흘리다가 두 손으로 페트로의 몸을 붙잡았다. 밀어내려던 손짓이 어느새 매달리는 손짓으로 바뀌었다.
자신을 붙잡는 손길에 페트로는 빨고 있던 유두를 뱉었다. 붉게 부어오른 유두와 입술 사이에 가느다란 은사가 길게 이어졌다가 툭 끊어졌다.
“하… 형, 젖 빨리는 게 좋아?”
“흐, 흐응… 아, 아…….”
“동생이 빠는데 흥분하다니.”
페트로의 짓궂은 타박에 하벤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 동생의 손에 희롱당한 것도 모자라서 그 희롱에 흥분한 자신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하벤은 잠시 떨어진 페트로의 몸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지만 페트로가 금세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다가오는 동생을 피해 착유실 가장자리까지 밀려난 하벤은 등 뒤로 벽이 닿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몸을 피해 무작정 걸음을 옮기다 보니 나가는 출구와 멀어졌다. 하벤은 제 앞을 막아선 페트로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어딜 가요.”
“비켜!”
“아직 덜 풀렸잖아.”
페트로는 하벤의 앞섶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느새 흥분으로 불룩해진 바지에 하벤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앞을 막아선 몸을 밀쳤다. 꽤 거친 행동에도 페트로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아래를 보며 똑똑히 말할 뿐이었다.
“여길 풀어야지. 안 그럼 환상적인 상대다 뭐다 하면서 또 도시로 올라갈 궁리만 할 거잖아요.”
재빠르게 몸을 붙인 페트로가 하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허리를 맞붙이며 서로의 아래를 비벼 대자 제법 부푼 앞섶이 느껴졌다. 허리에서 머물던 손이 아래로 내려가 긴장한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긴장으로 힘이 들어간 엉덩이를 쥐고 자신의 하체에 문지르자 서로의 성기가 사정없이 비벼졌다.
“하아, 하!”
“나 때문에 이렇게 섰는데 어딜 가요, 응?”
하체가 맞닿은 채로 허리를 흔들자 또다시 뜨거운 호흡이 터져 나왔다.
하벤은 예상치 못한 쾌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단단하고 강인한 남자의 몸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데 제정신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동생이라도 제 취향인 몸으로 작정하고 덤비니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이렇게 밤을 보냈어요?”
“아, 거기 더, 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랑 해 봤기에, 이렇게 음탕해요.”
어느새 같이 허리를 흔드는 하벤의 모습을 보며 페트로가 이죽거렸다.
그는 제 형의 목덜미를 핥으며 앞섶을 풀어헤쳤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벨트가 풀리고 이내 바지가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앞이 젖은 속옷이 드러났다. 페트로는 망설이지 않고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뜨겁고 단단한 성기가 잡혔다.
“아!”
성기를 꺼내 어루만지자 하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굳은살이 박여 거친 손바닥이 예민한 피부를 인정사정없이 쓸어내렸다.
“으읏! 좋아… 좋아, 하아…….”
“가만히 있지 말고 내 자지나 만져요.”
페트로의 말에 하벤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나마 남은 이성이 동생의 성기를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억지로 손을 쥐고 제 성기로 이끄는 손길에 그 이성이 날아갔다. 어느새 둘은 서로의 성기를 흔들며 쾌락을 좇았다.
“하아, 아… 으읏! 페트로, 페트로 쌀 거 같아…….”
“음, 좋아요.”
페트로는 묽은 애액을 줄줄 흐르는 성기를 모아 잡아 허리를 흔들었다. 서로의 뜨거운 성기와 탱탱하게 올라붙은 고환이 문질러지자 사정감이 느껴졌다.
“하아, 하아… 아, 아! 으윽!”
점차 빨라지는 허리 짓에 맞춰 똑같이 허리를 흔들던 하벤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머리끝까지 치달은 사정감에 허리를 튕기자 성기 끝에서 진한 정액이 흘러내렸다.
페트로는 먼저 사정한 형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빠르게 허리를 흔들었다. 아직 사정감이 가시지 않은 하벤의 성기 끝에서는 정액이 꿀렁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아, 씨발…….”
그런 제 형의 성기를 보다가 사정한 페트로는 허리를 강하게 털어 내며 진한 정액을 쏟아 냈다.
힘차게 싸지른 정액이 퉁퉁 부은 하벤의 가슴께까지 튀었다. 가슴에 흥건하게 묻은 정액을 보니 꼭 우유를 질질 흘리는 젖소 같았다. 페트로는 또다시 느껴지는 갈급함에 마른침을 삼켰다.
2. 혼란
“아…….”
색색 내뱉는 거친 호흡 사이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자 진이 빠져서 반쯤 감겼던 하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부릅뜬 눈으로 자신과 페트로의 몸을 훑다가 하얀 정액이 묻은 성기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직 다 죽지 않은 성기가 꺼떡거리고 있었다.
“아, 젠장…….”
무섭게 치미는 욕구가 어느 정도 풀리자 이성이 돌아왔다. 하벤은 망연자실하게 자신과 동생의 꼴을 보며 갖가지 욕설을 중얼거렸다. 당장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형.”
하벤은 자신의 허리와 엉덩이를 붙잡고 있는 페트로를 밀치며 착유실을 나갔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혹여나 동생이 쫓아올까 걸음을 빨리했지만 다행히 따라오지 않았다.
축사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자 흔들의자 옆에서 늘어지게 자던 개가 고개를 들고 꼬리를 흔들었다. 반갑게 아는 척을 하는 녀석을 뒤로하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밖에서 들어오지 못한 개가 짖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닫힌 문에 기댄 채 제 모습을 바라보던 하벤은 깊은 탄식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얼굴을 쓸어내리려다가 끈적거리는 정액에 놀라 손을 멀리 떨어트렸다. 하벤은 엉망진창인 자신의 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퉁퉁 부은 가슴과 풀어진 바지춤이 축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훤히 드러난 상체에 난 붉은 상흔을 가리기 위해 옷을 여미려고 했지만 물고 빨려서 쓰라린 가슴에 여의치 않았다. 결국 하벤은 지저분한 셔츠를 벗어 제 몸에 묻은 타액을 닦는 것으로 흔적을 지워 갔다.
살짝 굳어서 잘 지워지지 않는 정액을 문질러 닦으며 지저분한 몸을 샅샅이 살폈다. 조금 전에 동생의 손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흥분을 하고 끝에는 결국 서로의 성기를 잡고 자위를 했다. 입으로는 싫다고 말했지만 예민한 살을 핥는 입술과 혀를 막지 못하고 성기를 쥐는 손을 떨치지 못했다. 심지어 제 손으로 동생의 발기한 성기를 잡기까지 했다.
정상이 아니다. 거리낌 없이 제 형을 만진 페트로가 이상했고 그 손에 휘말려서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않은 자신도 이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질 만큼 쾌락에 환장한 자신이라지만 동생의 애무에 동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벤은 페트로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괴로웠다.
탁.
순간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느릿한 발소리가 하벤의 방문 앞까지 가까워지다가 멀어졌다. 페트로였다.
집 안으로 들어온 페트로는 다행히 자신을 찾지 않았다. 방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하벤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에 안도했다. 당장 얼굴을 마주하기에는 너무 껄끄러웠다.
* * *
하벤은 늦은 밤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녁도 거르고 침대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데,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연 페트로가 나지막이 하벤을 부른다. 평상시와 똑같은 목소리에 괜히 움찔거린 하벤이 눈을 감으며 무시하려고 했지만 침대 곁으로 다가온 인기척에 그럴 수 없었다.
페트로는 한참을 말없이 내려다보다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어깨를 잡자, 잠자코 등 돌려 누워 있던 하벤이 그 손을 쳐 냈다.
“흠…….”
페트로는 떨어져 나간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까 싫었어요?”
“…당연한 거 아니야?”
잔뜩 가라앉은 형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페트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닌 거 같은데…….”
누워 있는 제 형의 몸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린 페트로는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옷 아래 감춰진 하얀 몸에 제 정액 냄새가 배었을 거라 생각하니 또다시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싸질러서 펴 바를 걸 그랬다.
페트로는 하벤의 몸 위로 상체를 숙이며 말했다. 훅, 하는 묵직한 숨결이 예민한 귓가를 간지럽혔다.
“저는 그냥 흥분한 형을 도와주려고 한 거예요.”
“너…!”
“여기서 형을 도와줄 남자는 없잖아요. 나 말고 누가 형의 욕구를 풀어 줘요?”
이런 촌구석에 있는 다 늙어 빠진 남자들하고 잠자리를 가질 게 아니라면 말이죠. 페트로가 덧붙이는 말에 등 돌리고 누워 있던 하벤이 벌떡 일어났다. 잠자코 듣다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흥분한 형을 도와줘? 그게 정상인가? 결국 참았던 의문을 쏟아 내고 말았다.
“그래서 형제랑 자겠다고? 제정신이야?”
“왜 복잡하게 생각해요.”
계속되는 물음에 페트로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반쯤 감긴 눈매와 아래로 내려간 입꼬리를 보니 계속되는 실랑이가 퍽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 표정에 더 어처구니가 없어진 하벤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나가라는 손짓이었다.
페트로는 그런 축객령에 한쪽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자꾸 밀어내는 태도를 보니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아까 제 손에 잡혀서 앙앙 울었을 때만 해도 금방 품 안에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고집이 있는지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무정하게 문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페트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그럼 한 번만 해요. 한 번 하고 싫으면 그만두면 되는 거잖아요.”
손가락을 잡아끌어서 슬며시 손깍지를 쥐었다. 예상치 못한 접촉에 놀란 하벤이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페트로의 손이 놓아주지 않았다.
“뭘… 아!”
“섹스 한 번 해요.”
하벤이 방심한 틈을 타 손을 잡아끌자 저보다 작은 몸이 품 안으로 들어왔다. 페트로는 제 품에 안긴 몸을 끌어안으며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속삭였다. 예민한 귓가에 입술이 닿으니 안긴 몸이 부르르 떨었다.
예민한 반응을 보며 페트로가 자신의 옷에 손을 댔다. 위에서부터 하나씩 단추를 풀어내자 하벤의 반항이 거세졌다. 하는 수 없이 침대로 밀쳤다.
“윽!”
페트로는 뒤로 넘어진 하벤의 위에 올라탔다. 하체를 깔고 앉으니 버둥거리는 몸이 얌전해졌다.
“내 몸 마음에 들어요?”
어느새 셔츠를 벗고 반라가 된 페트로가 자신의 몸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군살 하나 없는 아랫배와 단단한 복근을 훑자 하벤의 떨리는 눈이 손을 따라 움직였다. 어느 남자보다 훌륭한 몸이 눈앞에 있으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벤은 이 순간에도 본능에 충실했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얼굴을 보면 천천히 자신의 바지춤을 잡았다. 지퍼를 내리고 속옷을 아래로 끌어내리자 어느새 발기한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페트로는 울퉁불퉁한 핏줄이 솟은 성기를 쥐며 말했다.
“엎드려요.”
“너… 농담이지?”
엎드리라는 말의 뜻을 알아들은 하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농담이냐는 물음에도 페트로의 표정 변화가 없다. 완전히 선 성기와 여느 때처럼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 그제야 하벤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저 자식 진짜 섹스하려는 거다.
생각을 마친 하벤은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거구 아래서 빠져나오기에는 무리였다.
“왜! 너 왜 나랑 하려는 건데!”
“음란한 형의 외로운 밤을 위해서요. 그리고 저도 섹스가 궁금하고요.”
섹스가 궁금하다는 말에 하벤은 전날 페트로에게 충고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페트로, 그 나이 먹도록 연인과 섹스 한 번 하지 않았다는 건 큰 문제가 있는 거야’ 진짜 문제는 자신의 입방정이었다.
페트로는 형의 충고대로 첫 경험을 할 작정인지 하벤의 몸을 뒤집어 바지를 내렸다. 쑥 내려간 바지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제는 형제간의 섹스보다 제가 깔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더 큰일이었다.
“악! 나, 난 탑이었어! 깔리지 않았다고!”
“깔리는 건 처음이에요?”
“그래!”
“저도 처음이에요.”
페트로는 우리 둘 다 사이좋게 처음이라서 다행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개소리에 하벤이 빽 소리를 질렀다.
하벤이 화를 내거나 말거나 페트로는 제 눈앞에 보이는 엉덩이를 주무르기에 바빴다. 적당히 근육이 잡혀서 탄력적인 엉덩이는 평소 빛을 보지 못했는지 다른 피부보다도 더 하얬다. 처음 보는 제 형제의 하반신에 흥분이 점점 고양되었다.
“엉덩이 벌릴게요.”
이미 슬쩍슬쩍 벌리고 있으면서 예의상 묻는다.
하벤은 점점 벌어지는 자신의 엉덩이에 거세게 반항했지만 제 동생 앞에서 구멍이 드러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양쪽 살덩이를 쥐어 잡고 엉덩이 밑살을 밀어 올리는 손길에 질겁했다. 남 앞에서 엉덩이를 벌리고 있는 건 생각보다 더 수치스럽고 끔찍했다.
“와…….”
그런 하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페트로는 제 아래서 훤히 드러난 옅은 살색의 구멍을 보며 감탄했다. 하얀 엉덩이처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옅은 색의 구멍이 앙다문 채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깔리는 게 처음이라더니 진짜 처음이었나 보다.
“만지지 마!”
페트로는 엄지손가락으로 주변을 어루만지다가 구멍을 눌렀다. 여린 살이 움찔거리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손가락에 조금씩 벌어졌다. 구멍을 어루만지기만 하던 굵직한 엄지손가락이 이내 안으로 푹 들어왔다.
“악!”
전희 없이 들어온 손가락은 고통을 선사했다. 하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생경한 고통에 끅끅 앓았다. 젠장, 섹스고 뭐고 아파서 죽을 거 같다. 이불을 쥐어뜯고 심호흡을 내뱉었지만 통증이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이 엄청 뜨거워요.”
“뭐, 이… 으윽!”
“이대로 자지 박으면 녹아내릴 거 같아.”
겨우 끝만 들어갔던 손가락은 어느새 한 마디가 푹 들어갔다. 하벤은 좁디좁은 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야, 아파! 아파! …으응!”
깊게 들어온 손가락이 뜨끈한 내벽을 쿡쿡 찔렀다. 인정사정없이 찌르고 헤집고 문지르는 손가락에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던 하벤의 반응이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 아… 거기, 이상해… 응!”
내벽이 움찔거리며 침입한 손가락을 조였다. 꽉 물린 손가락이 더 깊숙한 곳을 푹푹 찌르자 끙끙 앓던 하벤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페트로는 엎드린 상태로 울먹이는 형의 모습을 보며 구멍에서 손가락을 뺐다. 손가락이 빠져나간 구멍은 살짝 벌어진 채 벌렁거린다. 아, 진짜 꼴린다. 이제는 자지가 터질 지경이었다. 페트로는 제 성기를 쥐고 하벤의 엉덩이 사이에 넣었다. 이미 쿠퍼액을 질질 흘려 번들거리는 귀두로 구멍을 쿡 찌르니 다물지 못한 구멍이 움찔거린다.
“아니, 아니야… 페트로, 치워!”
“치워요? 구멍은 벌렁거리는데.”
메마른 구멍에 진득한 쿠퍼액을 펴 바른 페트로는 자신의 성기를 잡았다. 천천히 안으로 진입하기 전에 하벤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형, 자지 넣어 줄게요.”
느릿하게 속삭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성기가 밑을 무섭게 파고들었다. 끝이 젖어서 매끈한 귀두가 메마른 구멍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뜨거운 내부를 헤집었다. 페트로는 민감한 성기 끝에서 느껴지는 쫀득한 조임에 낮게 숨을 내쉬었다. 끝부분만 쑤셔 넣었을 뿐인데 귀두 끝을 오물오물 먹는 구멍이 절경이었다.
페트로는 자신의 성기를 잡고 좁은 구멍 안으로 서서히 집어넣었다. 울컥 나온 쿠퍼액을 윤활유 삼아 쑤셔 넣으니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불룩한 귀두가 완전히 들어갔다.
“아, 아… 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성기에 밑에 깔린 하벤이 괴로워했다. 제대로 된 신음 소리조차 내뱉지 못하는 형의 상태에 페트로는 움직이던 허리를 멈췄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조금만 참아요. 다시 울게 해 줄게.”
머리카락을 넘기니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볼을 진득이 핥으며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애정 어린 애무와 달리 형의 구멍을 탐하려는 허리는 가차 없었다.
페트로의 성기가 안으로 진입하자 하벤의 입에서 고통 섞인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손가락이 들어왔을 때는 어느 정도 참을 만했는데, 굵은 성기가 들어오니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 처음에는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그다음에는 묵직한 것이 아랫배를 인정사정없이 묵직하게 누르는 고통이 수반됐다. 하벤은 이 모든 것들이 괴롭고 힘겨웠다.
“윽, 으윽… 힘, 들어…….”
“형, 그래도 잘 먹고 있어요.”
잘 먹는다고? 이 새끼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런 거지 같은 느낌을 겪고 있는데 저딴 소리를 지껄여? 하벤은 이불을 쥔 손으로 페트로의 입을 갈기고 싶었다. 분노가 치솟은 탓에 축 늘어졌던 몸에 힘이 들어갔다. 분노로 몸이 딱딱하게 굳자 등 뒤에서 거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페트로의 반응에 하벤이 할딱거리며 뒤로 시선을 보내자 흉흉한 시선과 마주쳤다.
“벌써 자지를 물어요?”
“흐응… 뭔 개소리… 흐윽!”
낮게 중얼거린 페트로는 하벤의 골반을 붙잡고 강하게 허리를 튕겼다. 그 탓에 반쯤 들어갔던 성기가 뿌리 끝까지 안으로 들어갔다. 악, 하는 하벤의 비명 소리를 시작으로 페트로의 허리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깊숙이 들어간 성기가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자 퍽퍽, 살끼리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굵직한 검붉은 성기가 하얀 둔덕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페트로는 두 손으로 엉덩이를 잡아서 벌렸다. 그러자 드러난 옅은 색의 구멍이 알 수 없는 묽은 점액질로 번들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으, 으윽…….”
아직은 아픈 듯 잔뜩 찡그린 옆얼굴에 페트로가 뭉근하게 허리를 놀렸다. 조금 전에 손가락으로 눌렀던 곳을 찾아서 쑤실 생각이었다.
“아, 아아… 응!”
이리저리 내벽을 깊숙이 찌르길 한참, 앓는 소리만 내던 하벤의 입에서 간드러지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구나. 원하던 지점을 찾은 페트로는 지탱하던 무릎에 힘을 주고 본격적으로 추삽질을 시작했다.
“아앙! 으… 흐응, 이상해… 읏… 응!”
“좋은 게 아니고요?”
안으로 들어온 성기가 난폭하게 들락거리자 하벤이 다리를 버둥거렸다. 성기의 끝이 내벽을 찌를 때마다 몸에 전기라도 통한 듯 움찔거렸고, 벌어진 구멍이 근질거렸다. 마치 온몸이 성감대가 된 것처럼 한껏 예민해져서 하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당장 위에 올라탄 녀석을 밀어내고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잡아먹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무섭게 안으로 들어오는 성기를 꽉 물어서 놓지 않았다. 내벽 가득 성기가 들어차면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벤은 그런 자신의 반응에 미칠 지경이었다.
“하, 내 좆이 마음에 들어요?”
“하아… 아, 응! …거기, 거기, 으응, 아, 아아!”
퍽!
뒤로 물러났던 성기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땀으로 젖은 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하벤의 입에서 애원하는 소리가 나왔다. 성기가 예민하게 달아오른 지점을 제대로 찔렀는지 하벤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페트로는 땀에 젖어 흔들리는 엉덩이를 쥐어짜며 있는 힘껏 허리를 털었다. 입을 벌리고 헐떡거리는 형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두 팔로 작게 경련하는 몸을 끌어안은 채 절정을 향해 흔들었다.
“흐윽… 흐, 으…….”
“으음…….”
작고 탱탱한 엉덩이를 때리듯 골반을 움직이자 구멍이 성기를 꽉 조였다. 강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에 미간이 구겨졌다.
하벤의 구멍은 생각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안에 정액을 싸지르고 싶다가도 조금만 더 쫀득한 구멍을 쑤시고 싶었다. 페트로는 뜨겁게 조여 오는 내벽에 낮은 숨을 내뱉었다.
“하, 안에 쌀 테니까 받아먹어요.”
“아, 안 돼… 페트로, 제발… 제발! 흐응, 응! 으윽!”
점차 빨리지는 추삽질에 울먹이던 하벤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위에 올라탄 페트로가 내리누르며 얼굴을 붙여 왔다. 그러고는 땀과 눈물로 젖은 하벤의 얼굴을 닥치는 대로 핥고 볼살을 빨았다. 게걸스러운 애무와 진탕 박아 대는 성기에 밑에 깔린 하벤만 죽어 나갈 듯 괴로웠다.
“하…….”
얼마나 박아 댔을까, 울부짖던 하벤의 입에서 애처로운 숨소리만 들릴 때쯤 등 뒤에서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은 게 짐승처럼 낮게 목청을 울리는 듯했다. 그 소리와 함께 짧고 강하게 쳐 대던 허리가 점점 느릿해졌다. 헐떡이던 하벤은 차분해지는 허리 짓에 간신히 정신이 돌아왔다.
“우으…….”
정신을 차리자마자 배 속에서 무언가가 뜨끈하게 퍼지는 것을 느꼈다. 하벤은 아랫배 깊숙한 곳에 퍼지던 액이 주르륵 흘러 엉덩이 사이로 느껴지자 그제야 이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울컥 흘러나오는 뜨거운 액체는 페트로의 정액이었다.
동생이 제 안에 사정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하벤이 굳어 있는 동안, 몸을 일으킨 페트로는 하벤의 엉덩이를 벌리며 그 사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보기 좋게 올라붙은 둔덕 사이로 주르륵 정액 덩어리가 흘러나왔다. 꽤 진한 정액이 덩어리져서 좁은 구멍 사이로 나오는 꼴이 또다시 성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페트로는 아직 빳빳하게 선 자신의 성기를 쓸어내리며 기진맥진한 하벤의 몸을 뒤집었다. 거친 섹스로 지친 탓인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벤은 별 반항 없이 페트로의 손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몸을 훑어 내리며 말했다.
“아직 밤이에요.”
아직 밤이 지나지 않았음을 알린 그는 천천히 하벤의 다리를 벌렸다. 그렇게 시작한 둘의 섹스는 이른 새벽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 * *
멍멍!
하벤은 밖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밤새 흘린 눈물에 푹 젖은 눈꺼풀을 여러 번 깜빡이자 뿌연 시야가 조금 맑아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뻐근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개가 시끄럽게 짖고 있는 걸 보니 벌써 아침인 모양이었다.
“윽.”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데 하반신에 묵직한 둔통이 느껴졌다. 넘어져서 허리를 삐끗한 것처럼 뻐근하게 느껴지는 통증이 꽤 아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시 눕는데 등 뒤로 들어오는 긴 팔이 느껴졌다. 갑자기 느껴지는 낯선 체온에 화들짝 놀라자 옆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바라보니 이쪽을 보고 누운 페트로의 얼굴이 보였다.
“너… 콜록!”
혼자 숙면을 취한 듯 번드르르한 얼굴에 울컥한 하벤이 언성을 높이려다가 기침을 터트렸다. 밤새 우느라 목이 메말랐던 탓이었다.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니 몸을 일으킨 페트로가 언제 떠 왔는지 모를 물잔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하벤은 잔에 한가득 담긴 물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어젯밤에 자신을 죽어라 괴롭히던 녀석이 자상한 척 물을 챙겨 주는 꼴이 아니꼬웠다. 하벤은 여전히 옆에서 물잔을 들고 있는 페트로를 흘겨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일어나니 끔찍한 통증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제 팔을 잡는 손길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이 새끼가, 놔!”
푹신한 침대 위에 앉았다고 해도 허리의 통증이 덜한 건 아니었다. 하벤은 자신의 팔을 잡은 손을 잡아떼며 버럭 화를 냈다. 잔뜩 모난 눈초리로 페트로를 노려봤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벤은 그 미소가 얄미워서 베개를 집어 던졌다.
“형, 오늘도 일해야 하는 거 알죠?”
“이…!”
순순히 베개에 맞아 준 페트로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젖소를 초원에 풀어서 방목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며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자 위에 덮고 있던 이불이 아래로 떨어졌다.
하벤은 훤히 드러난 동생의 몸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어젯밤에 제 시선을 빼앗았던 잘빠진 남자의 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서 있었다. 근육이 잘 잡힌 등과 가슴, 그리고 조각 같은 복근과 그 아래에 훌륭하게 달려 있는 성기까지. 하벤은 순식간에 동생의 몸을 훑은 자신을 자책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 망할 놈의 몸 때문에 어제 자신이 무슨 짓을 당했던가.
“기다릴 테니까 얼른 나와요.”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쩡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평소처럼 무덤덤한 반응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만족스러워 보였다.
* * *
꽁꽁 닫혀 있던 축사 문을 열자 안에 갇혀 있던 젖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특유의 느긋한 발걸음으로 드넓은 초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녀석들을 보니 수가 꽤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일한 사람은 페트로 한 명뿐이었을 텐데 용케도 혼자서 일했다 싶었다.
“얼른 나가자, 얼른.”
하벤은 축사 안에서 어물쩍거리며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젖소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젖소는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몇 번 큰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 마지막 녀석까지 나간 걸 확인하고 축사 문을 닫았다.
더위가 한풀 꺾인 쾌청한 날씨에 초원이 더욱 푸르렀다. 젖소들은 울타리 안에서 유유자적 풀을 뜯어먹었고, 그 사이에 외출하고 돌아온 개가 녀석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울타리로 향하는 젖소들에게 다가가서 알짱거리는 꼴을 보아하니 나름대로 소몰이를 하는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영리하고 똑똑한 녀석이다.
입을 우물거리며 풀을 먹는 젖소들의 머릿수를 헤아리며 초원을 거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와 대화 중인 페트로가 눈에 들어왔다. 걸음을 옮기던 하벤은 가만히 멈춰 서서 페트로의 뒤태를 바라봤다. 짙은 색의 작업복을 입은 다부진 뒷모습을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
귓가에서 들리는 헐떡거리는 소리와 어깨와 엉덩이를 붙잡던 우악스러운 손길. 그리고 밑을 파고들어 민감한 내벽을 푹푹 찌르던 굵직한 성기. 마지막으로 아랫배를 뜨겁게 적시는 정액까지. 기억을 떠올린 하벤은 자신의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분명 어제 엉덩이 사이로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릴 정도로 배 안에 질펀하게 싸질렀는데, 아침에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이 사라졌다.
하벤의 시선이 페트로의 뒤통수로 향했다. 저 녀석이 뒤처리를 한 거겠지. 생각할수록 민망하고 창피해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페트로가 뒤를 돌아봤다. 하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어색하게 다가갔다.
“오, 역시 있었구먼.”
페트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남자가 알은척을 했다. 누군가 봤더니 첫날 차에 태워 준 남자였다. 하벤은 저절로 눈이 가는 턱수염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솔직히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턱수염을 보고 단박에 알아차렸다.
남자는 지프차에 기댔던 몸을 바로 세우며 다가오는 하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둘이 잘 지내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군.”
“감사 인사를 제대로 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다행이에요.”
“감사 인사는 무슨… 아, 더글라스라고 불러.”
남자는 자신을 더글라스라고 소개했다. 마을에 하나뿐인 술집을 운영한다고 시간 날 때 한번 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더글라스의 말에 하벤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습관처럼 눈을 접으며 웃자 그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거 형제끼리 느낌이 다르네.”
“네?”
“저쪽은 심심하고 재미없는데, 이쪽은 다르잖아?”
더글라스는 턱으로 페트로를 가리켰다가 다시 하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미없다는 쪽은 동생이고, 다른 쪽은 자신인가 보다. 하벤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대꾸했다.
“형제여도 성격은 다르죠.”
“처음에 봤을 때는 말이 별로 없길래 페트로 녀석하고 같은 줄 알았거든.”
처음 차에 얻어 탔을 때는 얼떨떨해서 너스레를 떨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태워 준 남자가 아버지 지인이라는 사실에 놀라서 더욱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벤은 딱히 이렇다 할 변명을 하지 않고 멋쩍은 웃음을 보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런 웃음에 더글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서 있는 페트로를 불렀다.
“이렇게 된 거 저녁이나 같이하겠나? 자네하고 자네 형, 음… 뭐라고 불러야 하지?”
“하벤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 하벤하고도 인연인데 같이 저녁이나 하자고.”
더글라스가 페트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줄곧 조용히 있던 페트로가 대답 않고 하벤을 바라봤다. 왜 말없이 자신을 보는 걸까. 하벤은 뜻 모를 시선을 외면하고 더글라스에게 대답했다.
“좋아요.”
대답하면서 페트로를 쳐다보자 계속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곧장 눈이 마주쳤다. 하벤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는 페트로를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저 알 수 없는 눈빛부터가 문제다. 저 재수 없는 시선을 의식하고 나서부터 알게 모르게 동생에게 휘말리고 있다. 하벤은 질 수 없다는 듯이 마주 보다가 더글라스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 집에서 저녁 드시는 건 어떤가요? 페트로의 음식 솜씨가 꽤 훌륭하거든요. 준비해 놓을게요.”
“오, 그럼 나야 좋지.”
더글라스는 뭐든 좋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는 시답지 않은 안부를 묻고는 이내 초대의 답례로 비싼 술을 들고 올 테니 기대하라는 말을 남기며 차를 끌고 갔다. 하벤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지프차를 바라보다가 고갤 돌렸다. 페트로의 얼굴은 여전히 하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뭘 봐.”
“저 남자랑 저녁 같이 먹게요?”
“그래.”
계속 쳐다보길래 대단한 걸 물어보는 줄 알았다. 별거 없는 물음에 하벤은 눈썹을 휘며 대꾸했다.
더글라스는 겨우 얼굴 두 번 본 사람이라 어색하기는 했지만, 늦은 저녁에 제 동생과 단둘이 있는 것보다는 외부인과 함께하는 게 훨씬 나았다. 낮에야 일하느라 서로 신경 쓸 겨를이 없겠지만 일이 끝나는 이후에는 어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하벤은 잘됐다는 생각에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 사람이잖아.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그런 하벤의 웃음에 페트로는 따라 웃지 않았다. 그저 계속 응시할 뿐이었다.
* * *
더글라스와의 저녁 식사를 약속한 둘은 남은 일을 마무리했다. 젖소들이 풀을 뜯는 동안 축사를 청소하고 손봐야 할 우리를 고치며 바쁘게 일을 하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며 하벤은 페트로를 불렀다.
“나 먼저 들어갈게. 내가 손님을 초대했으니 내가 저녁을 준비해야지.”
하벤의 말에 젖소를 축사 안으로 이끌던 페트로가 힐끔 쳐다봤다. 그러고는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보면 무시하는 듯한 성의 없는 대꾸여서 하벤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처럼 무례하게 구는 것보다 저런 무심한 태도가 훨씬 낫지만, 뭔가 찝찝하다. 그는 잠시 의심 어린 시선으로 페트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관심을 끊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들어온 하벤은 가장 먼저 뒤따라온 개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 줬다. 제법 목이 말랐는지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을 닦은 뒤 찬장을 살폈다. 재료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찬장 안에는 여러 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토마토소스와 콩 통조림, 그리고 소시지와 정체 모를 다른 재료들까지. 요리에 큰 지식이 없는 하벤은 잠시 고민하다가 여러 재료들을 꺼내 들었다. 특별한 재료가 없는 터라 자주 만들어 먹었던 요리를 할 수밖에 없다.
통조림을 꺼내 들고 조리대로 향한 하벤은 조리대 한편에 놓여 있는 고기를 발견했다. 무슨 고기인가 싶었던 하벤은 재료를 내려놓고 고기를 집어 들었다. 양이 꽤 되는 걸 보니 오늘 저녁으로 먹으려고 준비한 소고기 같았다. 이거 먹어도 되겠지? 잘 됐다 싶어 냉큼 고기를 챙겨 들었다.
그렇게 허락도 맡지 않은 소고기로 그럴듯한 스테이크를 구워 낸 하벤은 플레이팅에 힘을 주며 나름 신경 쓴 저녁을 만들어 냈다. 고기도, 샐러드도, 통조림으로 간단하게 만든 디저트도 완벽하다. 이 정도면 초대한 손님에게 내놓아도 나쁘지 않았다.
재빠르게 만든 음식으로 식탁 위를 채워 갈 때쯤 드디어 일을 마친 페트로가 들어왔다. 그는 부엌을 지나치려다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하벤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준비한 게 이거예요?”
식탁 위를 보며 묻는 말에 하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페트로는 대답이 없었다.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기에 하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녁이 완성되고 얼마 안 가 멀리서 요란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통해 보니 익숙한 지프차, 더글라스의 차였다. 그는 약속대로 술을 가져왔는지 커다란 술병을 들고 있었다. 하벤은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하면서 힐끔 술병을 바라봤다. 그가 들고 온 술은 꽤 비싼 와인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더글라스는 외투를 벗고 식탁에 앉았다. 그런 그를 따라 하벤과 페트로도 맞은편에 앉았다. 값비싼 와인은 식탁 한쪽에 올려 두었다.
풍성한 식탁 위를 본 더글라스가 놀랍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이 집에 놀러 온 것도 처음인데, 이런 식사를 대접받게 되다니.”
“아버지가 초대한 적이 없나요?”
“그렇게 친한 게 아니었거든, 그냥 술집에서 대화나 나누거나 가끔 카드를 치면서 지낸 게 전부였지.”
더글라스의 말에 하벤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집 아니면 카드놀이라니, 평생 재미없는 삶을 살던 고리타분한 남자가 할 법한 지루한 유흥 거리였다.
그런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더글라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이끌어 갔으며 간혹 농담을 던져 하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정말 이상하군. 친구를 잃어서 슬프지만 새로운 친구가 생긴 기분이야.”
“새로운 친구라니, 저 말인가요?”
“그럼.”
식사에 곁들인 와인 때문인지 어느새 더글라스의 콧잔등이 벌겋게 물들었다. 이제 고작 두 잔 마셨을 뿐인데 급하게 마신 탓인지 약간 취해 보였다.
그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달아오른 얼굴로 하벤에게 말을 걸었다. 무뚝뚝한 페트로와 달리 웃는 얼굴로 맞장구를 치는 하벤의 태도에 신이 나 보였다.
하벤도 그가 퍽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있는 사람과는 친해지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격 좋고 재미있는 더글라스가 그 편견을 깨 주었다.
“자주 놀아 달라고, 친구. 이 마을은 심심하고 재미없으니까 말이야.”
“좋아요… 읏.”
반쯤 눈을 감은 더글라스가 손으로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에게 대답을 하던 하벤은 순간 제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손길에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응?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자 더글라스의 시선이 떨어졌다. 그는 술기운에 눈꺼풀이 점점 감기고 있었다.
하벤은 그런 그의 얼굴을 살피며 황급히 아래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움켜쥔 커다란 손이 있었다.
다리 사이에 놓인 커다란 손.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황급히 손을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고간을 꽉 쥐는 손아귀가 먼저였다.
“으윽.”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소리가 새어 나와 다급하게 입을 막았다. 혹시 들었을까, 눈을 들어 맞은편을 바라보니 더글라스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양새였다.
천만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간에 놓인 손을 붙잡았다. 이 망할 손의 주인은 옆자리에 앉은 페트로였다. 녀석을 노려보며 떨어질 생각을 않는 손을 잡아 떨어트리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움켜쥔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하벤은 강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으르렁거렸다.
“젠장… 무슨 짓이야?”
“혹시 섰나 싶어서요.”
“뭐?”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옆을 바라보니 페트로의 삐뚜름한 입꼬리가 보였다. 어딘가 못마땅해 보이는 표정을 멍하니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페트로의 말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웃는 걸 보니 저 남자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황당한 소리에 하벤이 목소리를 높이자 맞은편에 앉은 더글라스가 고개를 홱 들었다. 졸고 있다가 큰 소리에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하벤은 그가 보기라도 할까 봐 얼른 손을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페트로는 손을 떨어트리지 않고 더 대담하게 사타구니를 쓸어 올렸다. 손이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않자 하벤은 하는 수 없이 상체를 낮춰 다리를 가리려 애썼다.
눈이 반쯤 감긴 더글라스는 자신의 앞에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하벤은 그 시선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 웃어 보였다. 더글라스는 그런 하벤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도수가 꽤 높은 와인을 연거푸 마신 탓인지 말투가 약간 늘어졌다. 하벤은 더글라스의 얼굴을 살피며 그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행히 난처한 상황을 면했다. 안심한 하벤은 식탁 밑에서 페트로의 손등을 있는 힘껏 꼬집으며 물었다.
“뭐가요?”
“둘이 사이가 좋아 보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동생한테 좆이 잡혔는데 이게 좋아 보이나? 울컥한 하벤이 터져 나오려던 울분을 가까스로 참았다. 식탁 밑의 상황을 모르는 더글라스의 눈에는 가까이 붙어 있는 형제의 모습이 꽤 우애 깊어 보였나 보다. 술 취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할 수 없었던 하벤은 옆을 째려보며 손톱을 세웠다. 그리고 이미 잔뜩 꼬집고 쥐어뜯겨 벌겋게 부어오른 손등을 사정없이 긁었다.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더글라스는 어깨를 나란히 한 둘을 보며 한 손으로 턱을 괬다.
“이렇게 사이좋은 형제라니. 클로이드는 정말 좋은 아들들을 두었어.”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하벤의 움직임이 멈췄다.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의 이름에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그런 하벤의 반응을 알아차린 것은 줄곧 손등이 뜯겼던 페트로였다. 그는 제 형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더글라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왜 그 녀석은 자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까.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거 아니야.”
“…아버지요?”
“그래, 아들이 둘 있다고는 했는데 제대로 소개받은 건 페트로뿐이었거든. 자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고.”
그럴 수밖에. 애초에 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 가족에 대해서 떠버릴 사람이 아니고, 설사 가족에 대해 말했다고 해도 자신의 치부나 다름없는 첫째 아들에 대해서 말할 리가 없었다. 하벤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요. 아버지는 저를 싫어하셨으니까요.”
“자네를? 말도 안 돼. 자네 같은 아들이 어디 있다고.”
더글라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 싹싹하게 구는 하벤을 좋은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단호한 대답에 하벤은 멋쩍게 웃었다. 사정을 모르는 더글라스에게 더 말해 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벤은 그저 입꼬리를 당겨 그럴듯한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그러게요.”
“오, 하벤. 아버지에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그가 나랑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자네에 대해서 말하는 걸 깜빡했을 거야.”
“그럼요. 섭섭하지 않아요.”
딱히 섭섭할 것도 없었다. 이미 둘 사이에는 그런 서운함을 느낄 만한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하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마주 보는 더글라스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나 보다. 그는 불쑥 손을 뻗어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한쪽 손을 붙잡으며 쓸데없는 위로를 건넸다.
“나였다면 분명 자네를 자랑스러워했을 거야. 자네는 내게 이런 훌륭한 식사를 대접할 정도로 착하잖아?”
투박한 손이 하벤의 하얀 손등을 자상하게 쓸어내렸다. 하벤은 그런 더글라스의 행동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생긴 걸 보면 저런 와인쯤 몇 병을 마셔도 멀쩡할 거 같은데 예상외로 술에 약한 거 같다. 하벤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술주정을 부리는 남자에게 말했다.
“더글라스, 좀 취한 거 같은데 쉬어요. 방을 내줄게요.”
“아니야, 아니야. 아직 멀쩡하다고.”
살면서 순순히 술에 취했다고 말하는 주정뱅이를 본 적이 없는 하벤은 더글라스의 말을 가볍게 넘겼다. 빈방은 많으니 대충 아무 방이나 내어 주면 될 거 같다.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달라붙은 손들을 떼어 내는데 순순히 떨어지는 더글라스와는 달리 페트로는 물러날 생각을 않는다.
“놔.”
“그냥 쫓아내죠?”
“이 밤에? 술 취한 거 안 보이냐?”
“차도 있는데 알아서 가라고 해요.”
“저 상태로 운전하면 자살 행위야.”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죄다 말도 안 되는 소리뿐이다. 더 이상 대꾸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옆에서 커다란 몸이 훅 다가왔다.
“윽!”
성기를 강하게 움켜쥐는 힘에 하벤은 다시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딱딱한 의자에 부딪힌 엉덩이가 아파서 앓는 소리를 내자 눈을 감고 있던 더글라스가 웅얼거렸다.
“멀쩡해, 멀쩡하다고…….”
“…….”
진짜 미치겠네. 눈앞에는 주정뱅이가, 옆에는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동생이 상황을 난처하게 만든다. 하벤은 제 어깨를 끌어안으며 가까이 붙는 페트로의 몸을 밀어내려 애썼다.
“왜 이러는 거야…….”
“내 말대로 했으면 좋았잖아요.”
저 남자 내보내요.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맛이 간 놈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이 난리는 피우는지 모르겠다.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 하벤은 그저 무작정 들러붙는 페트로를 밀어냈다.
다급하게 밀어내는 손길에도 페트로는 멈추지 않았다. 이리저리 비트는 어깨를 끌어안고 다리 사이에 손을 쑥 집어넣어 말랑한 살을 주물렀다. 바지와 속옷 속에 숨겨진 성기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자극을 주자 버둥거리던 몸이 조금씩 바르르 떨었다.
“앞에, 앞에 사람이 있잖아.”
“그러니까 보내요.”
“어떻게 보내. 방 안에 옮겨야… 으응!”
따지려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엄지손가락으로 강하게 중심부를 누르자 숨을 헐떡거릴 만큼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하벤은 성기를 어루만지는 집요한 손길에 슬슬 흥분하는 자신의 몸을 느꼈다.
어제도 느낀 거지만 페트로의 애무는 숙맥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능숙했다. 아니, 정확히는 집요하고 맹목적이었다. 마치 손아귀에 든 먹잇감을 놓칠세라 끈질기게 붙들고 놔주지 않는 맹수 같았다.
고환 아랫부분을 쓸어 올리는 손바닥에 입술을 깨물며 바들바들 떨자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망할 놈,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하아, 아… 읍.”
가쁜 호흡을 내뱉는데 불현듯 어깨를 어루만지던 페트로의 손이 입을 막았다. 갑자기 틀어막힌 입과 코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앞에서 푹 숙이고 있던 더글라스의 고개가 조금씩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직 안 취했다고…….”
술주정이 끝나지 않았다. 더글라스는 눈을 감은 채 숙인 고개를 흔들며 웅얼거렸다. 뭉개진 발음으로 뭐라 중얼거리더니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안 되겠다 싶어 페트로를 밀쳐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문뜩 다리 사이가 불편했다. 하벤은 제 다리 사이를 보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젠장.”
어느새 앞섶이 힘을 받아 불룩하게 섰다. 줏대 없는 자식! 하벤은 힘을 받은 자신의 성기를 욕하며 엉거주춤 걸음을 옮기려는데, 옆에서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불편해요?”
“어, 안 불편…….”
“불편? 누가 불편해? 난 편한데…….”
페트로의 물음에 단호하게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더글라스가 끼어들었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상태로 손을 뻗어 와인병을 집어 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병을 떨어트릴 듯 아슬아슬하게 집어 들어 남은 술을 와인 잔에 쏟아부었다. 하벤은 갑자기 멀쩡하게 움직이는 더글라스의 모습에 황급히 자리에 앉았다.
언제 눈을 뜬 거지? 자신과 동생이 붙어서 지분거리는 걸 봤을까?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안절부절못하는데 다행히 더글라스는 별말 없이 술을 들이켰다.
그는 가득 담긴 술을 한입에 마실 작정인지 잔에서 입을 떼지 않은 채 꿀꺽꿀꺽 마셨다. 결국 남은 술을 모조리 끝낸 그는 술기운을 이겨 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무리하면서까지 마지막 술을 끝장내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글라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제대로 누워요.”
더글라스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감은 두 눈이 떠지지 않았다. 고른 숨까지 내쉬는 걸 보아하니 깨우는 건 소용없을 듯했다. 하벤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나름 좋게 봤던 사람이 골칫덩이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하벤은 불편한 몸을 일으켜 더글라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어깨를 잡고 일으키려는데 예상대로 축 늘어진 큰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한쪽 팔을 어깨에 들쳐 메고 걸음을 옮겼다. 더글라스의 몸이 볼썽사납게 질질 끌렸지만 알 바 아니었다.
만취한 더글라스를 힘겹게 작은 소파까지 끌고 간 하벤은 들쳐 멘 팔을 내던졌다. 아무렇게나 던진 탓에 상체만 소파에 걸쳐졌지만 자세가 불편하지 않은지 더글라스는 코까지 골기 시작했다.
하벤은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이 힘들게 고생하는 것도 모르고 속 편히 자는 꼴이 얄미웠다. 못마땅한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등을 돌렸다. 담요라도 덮어 줘야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옮기려는데 앞에 있던 몸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페트로가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하벤은 순간 느껴지는 섬뜩함에 뒤로 물러났다. 강하게 어깨를 움켜쥐는 페트로의 손에 의해 결국 소파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 위로는 나지막한 속삭임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해요. 질투 나게.”
어깨를 감싸 쥐는 악력에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으려는데, 옆자리에서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돌리자 바로 옆에서 상체를 숙인 채 입을 중얼거리는 더글라스가 보였다. 소파 위로 털썩 주저앉은 충격이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나 보다.
“야, 비켜.”
괜한 사람 깨울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페트로가 소파 위로 발 하나를 올리는 게 먼저였다. 하벤과 더글라스 사이를 지그시 밟은 발은 마치 둘 사이를 가로막는 거 같았다.
하벤은 영문 모를 발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발동한 촉에 알딸딸했던 정신이 돌아온 탓이었다. 이 느낌, 이 감각. 분명 어제 제가 앙앙 울기 전에도 느꼈던 아슬아슬한 분위기였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또다시 일을 치르겠다 싶었던 하벤은 앞을 가로막은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하벤의 얼굴을 살피며 상황을 파악한 페트로가 먼저였다. 그는 잽싸게 도망치려는 하벤의 머리를 붙잡고 다시 소파 위로 밀쳤다.
“아, 씨.”
다시 엉덩방아를 찍자 더글라스가 몸을 뒤척였다. 여기서 조금만 더 소란스럽게 굴면 일어날 판이었다. 그가 소파에 얼굴을 파묻으며 다시 고른 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며 하벤은 제 머리를 잡고 누르는 페트로를 노려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걸까. 아래서 올려다보는 얼굴은 평소와 같아서 도통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또 왜 지랄인데.”
“같잖아서요.”
페트로는 냉소적으로 말을 내뱉으며 하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조금 전에 봤던 제 형의 웃는 얼굴, 그것도 다 늙어 빠진 남자에게 향했던 말간 얼굴을 떠올린 그는 손가락으로 결 좋은 머리카락을 꼬며 말을 이었다.
“하도 웃으면서 대화를 하길래 꼬리라도 치는 줄 알았어요. 나이 많은 남자도 상관없나 봐요?”
“뭐?”
조롱이 가득한 말에 하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제 아버지뻘 되는 나이 많은 남자에게 꼬리를 치다니, 그 말을 들으니 예전에 아버지가 남자면 다 좋냐고 외쳤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군. 하벤은 울컥 올라오는 수치심과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그만해, 여기서 더 지껄이면 가만 안 둬.”
진심이 담긴 경고에도 머리를 쓰다듬는 페트로의 손이 떨어질 생각은 않는다. 기분이 바닥을 친 하벤은 그의 손을 내려치며 노려봤다.
도대체 저놈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구제 불능인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만난 제 형제와 섹스를 하고 수치심이 들 정도로 질 낮은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이미 하벤에게 있어서 페트로는 세상에 몇 없는 쓰레기였다.
하벤은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재빠르게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페트로가 그의 움직임을 막아섰다.
“윽!”
“그러면 저 남자에게 그렇게 굴지 말았어야죠.”
페트로는 하벤의 머리카락을 잡아 소파 등받이로 이끌었다. 그 손길에 등받이에 머리를 처박은 하벤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려는 순간 달칵, 하는 소리를 들었다. 질끈 감은 눈을 뜨자 바로 코앞에서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리는 페트로의 손이 보였다. 그는 한 손으로 능숙하게 지퍼를 내리고 어느새 우뚝 선 성기를 꺼냈다.
하벤은 믿기 힘든 광경에 눈을 홉뜨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미친놈아, 뭐 하는 짓이야…….”
“기분이 나빠져서요.”
페트로는 귀두 끝에서 번들거리는 쿠퍼액을 훔쳐 와 굵은 기둥에 문지르며 대꾸했다. 태평한 대답에 어이가 없어진 하벤이 옆을 가리켰다.
“옆에 사람이 있잖아. 정신 차리라고.”
“조용히 하면 모르지 않을까요?”
대수롭지 않아 하는 얼굴에 주먹을 갈기고 싶어진 하벤은 당장 자신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있는 손을 붙들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빠져나가려고 애를 쓸수록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은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두피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옆에서 자고 있는 더글라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난처한 상황에 어쩔 줄 모르는 하벤과 달리 페트로는 평온했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잡고 하벤의 얼굴에 들이대며 말했다.
“동생이 성났는데, 형이 달래 줘야죠.”
“닥쳐, 이 새끼… 웁!”
말을 하느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성기를 욱여넣자 방심한 턱이 벌어졌다.
입에 망설임 없이 성기를 넣으니 귀두 끝으로 축축한 타액과 뜨끈하고 물컹한 혓바닥이 느껴졌다. 약간 오돌토돌한 거친 혓바닥을 느끼며 긴 성기를 끝까지 집어넣자 성기 끝에 목젖이 닿았다. 잔뜩 고인 타액과 말캉한 입안에 페트로의 허리가 절로 움직였다. 그는 휘어잡았던 머리카락을 놓고 뒤통수를 잡았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허리를 튕겼다.
“하, 구멍에 넣는 거 같잖아.”
찌걱 찌걱, 목구멍 깊숙이 들어오는 성기에 헛구역질을 하니 입안 가득 묽은 타액이 고였다. 그 타액을 윤활유 삼아서 깊숙이 성기를 처박자 괴로워하는 소리와 찌꺽거리는 음란한 타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쿨럭, 웁.”
“쉿.”
페트로는 괴로운 듯 소리를 내는 하벤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때마침 옆에서 더글라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를 골며 몸을 뒤척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하벤의 눈에는 긴장감이 서렸다.
만약 저 남자가 일어나서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등골이 오싹해진 하벤은 페트로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우웁! 쿨럭!”
당장 그만두라는 손짓이었지만 어찌 된 건지 페트로의 허리 짓은 더욱 거세졌다. 그는 하벤의 머리통을 단단히 붙잡고 허리를 움직였다.
작정하고 추삽질을 하는 통에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은 하벤이 끅끅거리며 괴로워했다.
입안 가득 차는 대물이 거침없이 들어오니 입은 물론이고 목구멍까지 막혀서 숨을 쉬기 어려웠다. 하벤은 당장이라도 졸도할 거 같은 아찔한 기분에 페트로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마치 매달리는 모양새로 바지를 잡아당기자 빠르게 흔들던 허리가 서서히 멈췄다.
“켁, 하으…….”
머리를 붙잡는 손에 힘이 빠지자 하벤은 냉큼 고개를 뒤로 뺐다. 부족한 숨을 몰아쉬며 손으로 입을 가리니 질척한 타액으로 흥건한 입 주변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앞을 보니 아직 기립한 성기 끝에 주르륵 흐르는 묽은 액이 보였다. 그것이 자신의 타액임을 확신한 하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러났다.
빨았다. 방금 동생의 좆을 입안에 넣고 타액을 줄줄 흘렸다. 남자 좆을 빨아 본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동생의 좆을 빨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왠지 모르게 섹스를 했을 때보다 더한 충격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우뚝 선 축축한 성기가 다시 입 앞에 들이밀어졌다. 화들짝 놀란 하벤이 입을 꾹 다물자 끈적한 귀두가 입가를 쿡 찔렀다.
“물어요. 나 아직 안 풀렸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낮은 음색에 하벤이 부르르 떨었다. 시발, 짜증 나게 왜 목소리를 까는 거야. 속으로 욕을 읊조리며 고개를 홱 돌렸지만 단호한 손길에 머리를 붙잡히고 말았다. 머리통을 단단히 잡은 커다란 손에 막혀 다가오는 성기를 피하지 못한 하벤이 눈을 위로 치켜떴다. 그러자 번뜩이는 페트로의 눈과 마주쳤다.
저 눈이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제 파트너들에게서 봤던 농염한 시선과 비슷하면서도 근본적인 무언가가 달랐다. 하벤은 그 알 수 없는 차이에 미간을 찌푸렸다.
가까이 다가온 성기가 입 주변을 문질렀다. 어느 정도 마른 타액이 아닌 성기 끝에서 울컥 나오는 끈적한 쿠퍼액이 하벤의 입 주변을 더럽혔다. 얼굴을 구긴 하벤이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성기와 뒤통수를 잡고 누르는 손길에 벗어날 재간이 없었다. 결국 입술을 벌리고 꾸역꾸역 들어오는 성기를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읍…….”
비릿하게 느껴지는 맛과 턱 막히는 숨에 괴로워했지만 페트로는 신경 쓰지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를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을 작정인지 뒤통수를 잡고 제 배 쪽으로 꾹 누르는 손길에 하벤의 목에서 쿨럭하는 기침이 연달아 터졌다.
괴로워! 목에 들어찬 굵고 긴 성기에 말도 못 하고 팔을 버둥거리자 허리가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차 빨라지는 허리 짓에 성기도 좁은 목구멍을 들쑤셨다. 예민한 점막을 쿡쿡 찌르며 지나가자 옅은 구역감과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면 자신만 괴로울 거라 생각한 하벤은 입술을 조이며 성기를 빨기 시작했다.
츕, 츄웁.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벤은 입안 가득 고인 타액을 꿀꺽 삼키며 혀를 세웠다. 그러고는 기둥을 쓸어 올리며 강하게 흡입했다. 구강성교에 제법 뛰어났던 예전 파트너의 기술을 떠올리며 입술과 혀를 움직였다.
다행히 노력의 성과가 있었는지 페트로의 입에서 낮은 호흡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괴로움에 눈을 찡그리던 하벤은 목구멍을 조이며 성기를 압박했다. 이제 슬슬 반응이 올 텐데. 하벤은 녀석이 사정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있는 힘껏 성기를 빨았다. 그 순간 뒤통수를 잡은 손이 머리카락을 움켜쥐는 것이 느껴졌다.
“하… 좋아요.”
“읍! 켁, 으읍!”
머리카락이 뽑힐 거 같은 고통도 잠시, 빠르게 움직이는 허리에 괴로운 기침이 나오고 말았다. 하벤은 제 목구멍을 들쑤시는 성기에 콜록거리며 두 손으로 페트로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하벤은 힘겹게 숨을 할딱거렸다. 삼키지 못한 타액은 입 밖으로 줄줄 흘러 소파를 더럽혔고, 성기에서 나오는 쿠퍼액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하벤은 계속 흘러들어 오는 끈적한 액을 꿀꺽 삼키며 입을 크게 벌렸다. 어떻게든 숨을 쉬어야 했다.
찌꺽거리는 소리와 점차 빨라지는 추삽질이 한참 이어지고 드디어 페트로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정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하벤은 고개를 뒤로 빼려고 했지만 뒤통수를 꾹 누르는 손길에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목구멍 안에 싸지르는 정액을 받아먹고 말았다. 꿀렁거리며 목뒤로 넘어오는 정액을 삼키자 몸속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거 같았다.
“콜록, 콜록!”
“받아먹어요, 형. 끝나고 형도 싸게 해 줄게.”
페트로는 하벤이 어느 정도 정액을 삼키자 단단히 잡고 있던 머리를 놓아줬다.
하벤은 뒤통수를 잡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가자 곧장 뒤로 물러났다. 성기를 뱉어 내니 잔기침이 터져 나왔다. 손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하자 페트로가 천천히 등을 쓸어내렸다.
“망할… 콜록!”
그만하라는 뜻으로 몸을 밀쳤지만 페트로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낮춰 하벤의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예민한 귓가에 뜨거운 호흡이 내려앉았다. 작게 소름이 돋았다.
단단히 어깨를 잡은 손과 슬며시 가까워지는 숨결에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마 여기서 더 이어 갈 생각일까. 하벤은 아직 여미지 않은 페트로의 바지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 제발 그만해.”
“제발?”
결국 하벤의 입에서 애원하는 말이 나왔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터였다. 가령 잠에서 깬 더글라스가 형제끼리 붙어먹는 꼴을 본다든가 하는 거 말이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하벤은 물러날 생각을 않는 자신의 동생에게 애원했다.
“제발이라… 재미있네요.”
제발, 제발이라. 하벤의 말을 되풀이하며 음미한 페트로가 순순히 물러났다. 순순히 떨어져 나가는 체온에 하벤이 위를 쳐다봤다. 시선의 끝에는 재미있어 하는 페트로의 얼굴이 닿았다.
뭐가 즐거워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난처함에 어쩔 줄 모르는 꼴이 재미있었나 싶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화가 난 하벤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술에 취해 불편하게 자고 있는 더글라스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방에 들어가는 하벤의 뒤를 페트로가 따라붙었다. 하벤은 재빨리 문을 닫으려 했지만, 페트로가 문을 잡아채며 기어코 안으로 들어왔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날 가지고 노니까 재미있어?”
“가지고 논다뇨?”
페트로가 되물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슨 소리냐는 물음에 부글부글 끓던 하벤의 울화가 터져 나왔다.
하벤은 멀뚱히 서 있는 페트로의 어깨를 벽으로 밀쳤다. 커다란 몸이 벽에 부딪치며 쿵, 하는 소리를 냈다. 큰 소리가 난 만큼 부딪친 등이 꽤 아플 법도 한데 페트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벤은 그런 멀쩡한 얼굴을 보며 소리쳤다.
“더글라스 옆에서 네 좆을 물리는 게 가지고 노는 거지 뭐야!”
조금 전의 일은 굴욕적이었다. 난처한 상황을 이용해서 제 욕구를 채우는 녀석의 행동에 분노가 치솟았고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제 처지가 우스웠다.
원하는 대로 좆을 빨아 주고 정액까지 먹어 주니 재미있었나. 하벤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주먹으로 눈앞에 있는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가만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에 주먹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 결국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아 쥔 손을 풀어냈다.
그런 하벤을 말없이 바라보던 페트로가 정적을 깨고 말을 꺼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형은 말과 행동이 참 달라요.”
천천히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잠겼다. 목을 가다듬을 법도 한데 페트로는 신경 쓰이지 않는지 말을 이어 갔다.
“입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여기는 잘만 세우잖아요?”
페트로의 손이 하벤의 입을 스치다가 아래로 향했다. 쭉 미끄러져 내려간 손이 멈춘 곳은 허리춤이었다. 허리선을 따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손톱을 세워 잠겨 있는 지퍼를 툭툭 건드렸다.
하벤은 페트로의 말에 가만히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봤다. 녀석의 말대로 아래가 조금 부풀었다.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뻐근한 사타구니가 느껴졌다.
“아…….”
동생의 좆을 빨면서 가운데를 세웠다. 다름 아닌 형인 자신이 말이다. 하벤은 그 믿기 힘든 사실에 입을 달싹거리며 헛숨을 내쉬었다.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에 차마 거짓말할 수 없었다.
저번처럼 페트로에게 만져진 것도 아니고 섹스를 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동생의 성기를 빨고 정액을 받아먹으면서 흥분을 했다. 이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달갑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 확실했다.
이래서는 녀석에게 뭐라고 말할 처지가 못 되잖아.
망연자실해진 하벤은 고개를 떨궜다.
“이제 좀 솔직해지는 게 어때요?”
페트로는 고개를 숙인 하벤을 보며 살포시 웃었다. 멍하니 넋을 놓은 꼴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볼에 입술을 묻었다.
길게 붙었다 떨어진 입맞춤에도 자신의 형은 얌전했다.
* * *
이른 아침을 깨운 것은 더글라스의 호탕한 목소리였다. 그는 소파에 기대서 잤음에도 큰 불편함이 없었는지 쌩쌩한 얼굴로 형제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더글라스는 어제 식사에 대한 보답이라며 아침에 마실 커피를 손수 준비했다. 간단한 아침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하벤이 막았다. 손님에게 아침을 부탁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태평하게 아침을 먹을 정신도 없었다.
“내가 어제 실수한 건 없었지?”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며 더글라스가 물었다. 멋쩍은 웃음을 지은 그를 보며 하벤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한 실수라고는 술기운에 일찍 잠에 든 것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어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벤은 죄 없는 더글라스를 탓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잔 마시더니 금방 주무시더라고요.”
“내가 보기보다 술에 약해서 말이야.”
이런 주제에 술집까지 한다며 하벤을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는 제 말이 웃겼는지 혼자 낄낄 웃었다.
하벤은 그런 그의 농담에 함께 웃으려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제 페트로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뭐라고 했더라, 하도 웃으면서 대화하니 꼬리치는 줄 알았다고 했던가.
부글부글 끓는 속으로 표정을 굳히고 있자 어느새 씻고 나온 페트로가 다가왔다. 그는 자리에 앉지 않고 하벤의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어 올려 냄새를 맡다가 한 모금 마셨다.
“음, 왜?”
“형은 다른 원두를 좋아해서요.”
의아하게 묻는 더글라스에게 대답한 페트로는 커피 잔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별말 없이 남은 커피를 개수대에 쏟아붓고 찬장을 열었다.
“야.”
당황한 하벤이 페트로를 불렀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막을 수 없었다. 페트로는 하벤의 외침에도 묵묵히 원두를 꺼냈다.
“이거 아니면 잘 안 마시거든요.”
“오… 그렇구먼.”
하벤은 두 사람이 덤덤하게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제 동생의 예의 없는 행동에 대신 사과했다.
“미안해요, 더글라스. 기껏 준비해 준 건데…….”
“하하, 괜찮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 호탕하게 웃는 얼굴에 안심했다.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하벤은 멋쩍게 웃으면서 제 앞에 커피 잔을 놓은 페트로를 흘겨봤다. 이게 무슨 짓이냐는 눈빛을 보내자 돌아온 것은 나른하게 휘어지는 눈매였다. 어디서 웃음으로 때우는 걸까 싶어 옆자리에 앉자마자 발로 다리를 퍽 걷어찼다.
더글라스는 제 앞에서 투닥거리는 두 형제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역시 형제라서 그런가, 사이좋네.”
“그럼요.”
더글라스의 말에 페트로가 손을 뻗어 하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다정히 제 형의 어깨를 안으며 웃는 얼굴에 더글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듯한 그의 시선이 페트로의 얼굴로 향했다.
“자네가 그렇게 웃는 건 처음 보는군.”
더글라스의 말에 하벤이 옆을 바라봤다.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은 페트로는 살포시 눈을 접어 가며 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입꼬리를 올리며 작게 미소 짓는 건 여러 번 봤지만 저렇게 크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더글라스의 말에 뭐가 그리 좋아서 큰 웃음을 짓는지 모르겠지만 하벤은 그의 말과 시선이 불편했다. 그가 말하는 ‘형제’라는 단어가 하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어젯밤의 일로 자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아차린 탓이었을까. 그는 우애 좋은 형제를 보는 듯한 시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더글라스는 커피를 다 마시자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본의 아니게 하룻밤 신세를 져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는 자신의 술집에 꼭 놀러 오라는 말을 건넸다.
“다음에는 내가 끝내주는 대접을 해 주지.”
“…기대할게요.”
하벤의 대답에 더글라스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차에 오르기 전에 두 형제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벤은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고, 페트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인사를 받은 더글라스는 미련 없이 떠났다. 탈탈 소리를 내며 출발한 지프차가 저 멀리 사라지자 뒤로 물러나 있던 페트로가 하벤의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제 들어갈까요?”
허리를 안던 손이 밑으로 내려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놀란 하벤이 얼른 손을 떼어 내려 했지만 집요하게 들러붙는 손길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한쪽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슬며시 골을 쓸어내렸다. 예민한 곳을 어루만지는 농밀한 손길에 몸을 들썩이자 귓가에서 콧바람이 느껴졌다.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기분이 나빠진 하벤은 페트로의 손을 툭 쳐 냈다. 이번에는 순순히 떨어질 생각이었는지 손이 곧장 떨어져 나갔다. 하벤은 가까이 붙은 페트로를 피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뜨거운 체온도, 그리고 귓가를 간지럽히던 호흡도 멀어졌다. 그제야 긴장되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하벤은 페트로가 따라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식탁 위에 놓인 여러 개의 커피 잔이 눈에 들어왔다. 얼추 다 마셔서 텅 빈 커피 잔과 그와 반대로 반 이상이 남은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하벤은 새것과 같은 커피를 내려다보다가 한 입 마셨다.
“…….”
다 식어 빠진 커피에서 익숙한 향과 맛이 느껴진다.
예전에 제가 즐겨 마셨던 원두였다. 아침에 페트로가 당연하게 꺼내 들던 원두는 제가 이 집에 돌아온 첫날에도 마셨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치우지 않고 집에 두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조금 전에 페트로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페트로는 제가 이 원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한때 이것만 마셨다는 것도 알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제 취향의 커피를 주는 행동에서 확신이 묻어 있었다.
하벤은 입안에 감도는 쌉싸름한 맛을 느끼며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가차 없이 싱크대에 커피를 쏟아부었다. 많은 양의 커피가 하수구로 내려갔다. 가만히 싱크대를 내려다보던 하벤은 시선을 들어 현관을 바라봤다. 어느새 집 안으로 들어온 페트로가 우두커니 서서 하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 이제 일하러 가야지.”
하벤은 집요한 시선에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여유로운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숨기고 말을 하자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가셨다. 하벤은 그것에 만족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 * *
먹이를 주는 페트로를 피해 삽을 들고 축사 안쪽으로 향했다. 매일같이 바닥 청소를 한다지만 젖소의 수가 꽤 돼서 그런지 바닥이 금세 더러워졌다.
하벤은 미세하게 느껴지는 역한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며 삽질을 시작했다. 익숙하게 몇 번 삽질을 하자 끌고 온 수레가 금방 가득 찼다. 가득 찬 수레를 끌고 퇴비장으로 향하는데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하벤은 그것을 무시하며 묵묵히 일을 이어 갔다.
일에만 몰두하니 나름 괜찮았다. 힘을 써야 하는 노동을 계속 이어 가니 쓸데없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페트로도 간간이 바라만 볼 뿐 딱히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바닥을 치운 하벤은 삽을 들고 우리 안을 살피다가 큰 젖소 옆에 착 붙어 있는 작은 몸을 발견했다.
“어, 새끼다.”
지나치게 작은 몸과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다리. 갓 태어난 새끼 젖소였다.
하벤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우리 안을 들여다봤다. 새끼는 어미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찰싹 붙어 있었다. 그 탓에 어미의 큰 몸에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보이는 다리와 귀에 목을 빼고 기다리자 새끼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귀여워라.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나타나는 얼굴에 하벤의 표정이 풀어졌다.
털이 보송보송하고 아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니 태어난 지 몇 주 안 된 새끼인 것 같다.
새끼는 주둥이로 어미의 젖을 치다가 입을 벌려 물었다. 우유를 먹으려는 듯 작은 입을 벌려 몇 번 오물거리다가 툭 내뱉는다. 몇 번 젖을 물다가 뱉기를 반복하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젖을 못 먹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침입에도 순하게 있는 어미와 달리 새끼는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난리다.
하벤은 발발거리는 새끼를 뒤로하고 손가락으로 어미의 젖을 꾹 눌렀다. 부드럽게 여러 번 눌렀지만 어찌 된 건지 우유가 나오지 않는다. 젖이 안 나와서 못 먹었구나. 하벤은 다시 제 옆으로 와서 입으로 젖을 누르는 새끼를 보며 혀를 찼다.
안 나오는 젖을 계속 쥐어짜 봤자 소용없다. 우리 밖으로 나온 하벤이 주변을 살피자 저 멀리서 이곳을 주시하고 있던 페트로가 소리쳤다.
“막혀서 그래요.”
페트로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가서 젖병과 여러 물건들을 들고 왔다.
방금 짜 놓았던 우유를 젖병에 담고 새끼에게 다가가자 새끼가 냉큼 젖병을 물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는다. 하벤은 젖병을 빠는 새끼를 구경하다가 페트로가 들고 온 다른 물건을 바라봤다.
젖병보다 조금 작은 투명한 플라스틱. 하벤은 정체 모를 물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간이 유축기에요. 젖이 막혔을 때 종종 쓰죠.”
페트로는 그런 하벤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는 유축기를 들고 하벤의 앞에 들이밀었다.
이제 보니 투명한 플라스틱 관같이 생겼다. 뚫린 한쪽과 달리 다른 한쪽은 막혀 있었고, 그 끝에는 짧은 막대가 달려 있었다. 하벤은 페트로가 들고 온 여러 개의 유축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젖이 막힌 어미에게 쓸 생각인가 보다.
“젖에 부착해서 쓰는 거예요, 이렇게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페트로가 설명을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그는 유축기 안에 젖을 넣고 끝에 달린 긴 막대를 잡아당겼다. 막대를 천천히 당기자 유착기가 젖통에 흡착됐다. 그렇게 계속 잡아당기자 관 안에 들어간 젖이 부푸는 것이 보였다. 퍽 아파 보여서 괜찮은 거냐고 물으려는 찰나, 부푼 젖의 끝에서 우유가 터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막혔던 젖줄이 뚫리는 순간이었다.
“우유 짜는 걸 게을리하면 간혹 이렇게 막히는 경우가 있어요.”
“아…….”
페트로는 유축기를 떼고 젖을 쥐었다. 힘차게 터져 나오는 하얀 액체가 손등에 튀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벤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페트로의 얼굴에 흠칫 놀랐다. 녀석하고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 재빨리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어느새 팔을 붙잡는 손에 막히고 말았다. 하벤은 께름칙한 시선으로 자신을 붙잡은 페트로를 쳐다봤다.
“나 피해요?”
“…….”
대답은 없지만 시선을 피하자 페트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제 제 충고를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충고?”
“솔직하자고 했잖아요.”
어젯밤의 일을 상기시키는 말에 하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허를 찌르는 녀석의 말에 아무 말도 못 하던 어젯밤의 자신이 떠올랐다. 하벤은 눈을 부릅뜨며 제 동생을 노려봤다.
“하, 이게 솔직하게 행동하는 건데?”
“저를 피하는 게 솔직한 거예요?”
아침부터 노골적으로 피하는 제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하벤은 점점 굳어지는 페트로의 얼굴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여유가 넘치던 어제와 달리 딱딱하게 굳어지는 표정이 볼만했다. 하벤은 손목이 붙잡힌 제 처지도 잊고 낄낄거렸다.
페트로는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제 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잡고 있던 손을 당겼다.
“으윽…!”
그러자 탐이 나는 몸이 품 안에 들어왔다. 품 안 가득 들어오는 체구에 치솟던 불만이 조금 잠잠해졌다. 잠시라도 얌전히 안겨 있으면 얼마나 좋아. 페트로는 품 안에서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는 하벤을 보며 혀를 찼다. 하는 수 없이 챙겨 왔던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안 되겠네. 거짓말쟁이는 혼나야겠어요.”
그는 쓰지 않은 유착기를 들어 보이며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유착기를 바라보는 하벤의 허리를 붙잡아 어디론가 이끌었다.
“놔,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두 사람이 멈춘 곳은 텅 빈 우리였다. 여기를 왜? 하벤이 영문을 모르겠단 눈으로 깨끗하게 비어 있는 우리를 바라보는데, 등 뒤에서 우악스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등을 떠미는 거친 손에 우리 안으로 들어가니 거칠게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벤은 설마 하는 눈으로 다가오는 페트로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인 거야?”
“거짓말을 했잖아요. 솔직하게 말할 때까지 혼내 주려고요.”
페트로는 말이 끝나자마자 하벤의 어깨를 우리 끝으로 밀쳤다. 퍽! 소리를 내며 나무 우리에 등이 부딪친 하벤이 고통 섞인 소리를 냈지만 페트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에 묶인 밧줄을 챙겨 들었다. 그러고는 하벤의 손목을 우리에 고정해서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한쪽 손목이 묶인 하벤이 소리를 질렀지만 다른 쪽 손목을 묶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에 양쪽 손목이 묶였다. 멍하니 제 모습을 보던 하벤이 거칠게 양팔을 움직였지만 단단히 묶인 밧줄은 풀릴 생각을 않는다.
“정신 나간 새끼야! 풀어 줘!”
앙칼지게 지르는 소리에도 페트로는 유유자적 하벤의 옷을 벗겼다.
입고 있는 게 멜빵 작업복이라 벗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페트로는 멜빵끈을 풀고 바지를 아래로 쭉 내렸다. 그러자 상의만 멀쩡히 입고 바지만 내린 꼴이 되었다. 하벤은 남사스러운 제 옷차림에 입을 쩍 벌렸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을 보며 손을 뻗었다. 긴장으로 들썩이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아래로 내려가 쏙 들어간 마른 복근과 약간의 살이 잡히는 아랫배를 꼬집었다. 그러고는 곧장 타이트한 검은 속옷 위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형 젖을 짤 거예요.”
아직은 말랑한 성기를 어루만지던 페트로는 유축기 하나를 들어 올렸다.
얼추 굵기가 맞을까. 손가락으로 성기를 더듬으며 크기를 가늠했다. 전에 봤던 적당한 굵기라면 유축기가 작게 느껴질 거 같다. 페트로는 속옷을 내리며 아직 기립하지 않은 성기를 잡았다.
“하, 하지 마!”
말랑한 성기를 유축기 안에 넣자 하벤이 기겁하며 허리를 이리저리 틀었다. 유축기를 피하려고 아등바등했지만 소용없었다. 포기를 모르는 페트로 때문에 결국 유축기 안에 성기를 넣고 말았다. 참다못한 하벤은 결국 다리를 휘둘렀다.
“버둥거리면 힘들어요.”
페트로는 자신을 걷어차려는 다리를 여유롭게 피하며 유축기에 달린 막대를 당겼다. 막대를 당기기 시작하자 관 안에 공기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하벤은 헐렁하던 유축기 관이 성기를 조금씩 조이는 것을 느끼며 페트로를 쳐다봤다. 당혹스러워하는 시선에 페트로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말했다.
“분명 형도 좋아할 거예요.”
이제 시작이라는 듯 페트로는 막대를 계속 잡아당겼다. 그가 막대를 당길수록 공기가 빠져나간 유축기 안은 팽팽해졌다. 하벤은 점차 강해지는 압력에 헐떡거렸다.
성기 전체를 감싼 강한 압력은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감각을 선사했다. 두 손으로 성기를 쥐고 비틀어 짜내는 듯한 통증과 비슷하기도 했고 성기를 머금은 입이 있는 힘껏 빨아 당기는 느낌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확연히 달랐다. 조금 더 아찔하고 위험했다.
하벤은 뻐근한 사타구니에 아래를 내려다봤다. 유축기 안에 들어간 성기가 자극을 받았는지 어느새 힘이 들어갔다. 이걸 꼽고 발기를 했구나 싶어 얼굴에 열이 올랐다. 양팔이 묶인 하벤은 급한 대로 다리를 오므려 사타구니를 가리려 했지만 힘을 받아 서기 시작한 성기가 가려질 리 만무했다.
페트로는 유축기를 쓴 채 벌겋게 부어오른 성기를 가리려 애쓰는 하벤을 말없이 바라봤다. 붉은 양 볼과 퉁퉁 부어오른 성기가 페트로의 음심을 자극했다. 당장 혀를 내밀어 게걸스럽게 핥아 먹고 싶을 정도로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고민은 짧았다. 눈으로 탐하던 페트로는 곧장 행동에 옮겼다. 입고 있던 점프슈트 작업복의 지퍼를 내려 반쯤 벗었다. 그러자 하얀 티셔츠 차림의 상체가 드러났고 그 밑에 부푼 하체도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복을 벗어 내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속옷을 내려 성기를 꺼냈다.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성기가 툭 튀어나와 꺼떡거렸다.
페트로는 자신의 성기를 천천히 쓸어 올리며 말했다.
“보고 있으니까 꼴려요.”
“미친 새… 하으…….”
정신 나간 말에 한마디 하려는 순간 하벤은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유축기의 압력에 자극을 받은 성기가 완전히 발기하고 말았다. 커진 성기가 좁은 유축기 안에 있는 게 불편했지만 그 좁은 느낌이 또 다른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흡입력 좋은 작은 입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벤은 그 쾌감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였다.
“으윽… 하, 아…….”
어느새 쾌락을 좇아 할딱거리자 페트로가 들러붙었다. 그는 하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손에 쥔 성기로 유축기를 툭 건드렸다.
“좋아요?”
“아니… 안 좋아.”
“쯧, 아직도 거짓말이네.”
“흐읏!”
계속되는 부정에 기분이 나빠진 페트로가 유축기를 쥐고 거칠게 흔들었다. 성기를 뽑을 듯 잡아당기다가 크게 돌리는 손길에 하벤이 자지러졌다. 유축기에 부착된 성기가 당장이라도 뽑힐 것 같았다. 계속되는 괴롭힘에 하벤은 페트로를 불렀다.
“아! 페트로, 그만! 빠, 빠질 거 같아!”
“거짓말할 거예요?”
“아니, 안 해! 좋아, 좋다고!”
좋다고 소리를 지르자 페트로의 손이 멈췄다. 그는 쥐고 있던 유축기를 천천히 흔들었다. 부드럽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손길에 하벤의 고통 섞인 목소리도 잠잠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거친 숨을 내뱉었다.
호흡을 가다듬는 하벤을 바라보던 페트로가 웃음을 참는 듯한 미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짜 좋아요? 그럼 섹스하자고 애원해 봐요.”
“시, 발…….”
“얼른.”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무시하려던 하벤은 유축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내키지 않는 듯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하… 섹스하게 해 줘…….”
하벤의 말에 페트로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입꼬리가 찢어질 듯 큰 함박웃음에 그를 바라본 하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평소와 다른 환한 웃음은 어딘가 괴기하게 느껴졌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큰 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저도 형이랑 섹스하고 싶어요.”
나긋한 목소리는 마치 정인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상한 기분에 하벤이 움찔거리자 허리를 쥐고 있던 페트로의 손이 천천히 살결을 어루만졌다.
잘빠진 허리를 탐하던 페트로의 손은 아래로 내려가 힘이 들어간 엉덩이를 주무르며 그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탄력 있는 엉덩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그 안에 숨은 앙다문 작은 구멍이 느껴졌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꾹 누르자 구멍이 뻐끔거렸다.
“여기에 박아 줘요?”
노골적인 말에 하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메마른 구멍을 푹 쑤시는 손가락에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다시 물을게요. 박아 줄까요?”
웃는 얼굴은 여전했지만 음습해진 음성이 섬뜩했다. 눈치를 살피던 하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고분고분한 대답에 구멍을 거칠게 들쑤시던 손가락이 부드러워졌다.
또 다른 손가락이 말랑한 입구를 어루만지다가 벌어진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마른 입구를 억지로 벌려 들어간 손가락은 익숙한 듯 뜨거운 내벽을 이리저리 찌르며 영역을 넓혀 갔다. 손가락의 개수를 늘려 가며 느긋하게 풀어 주자 하벤의 입에서 달아오른 숨이 새어 나왔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유축기를 건드렸다.
“아, 흐윽!”
피가 몰린 듯 유난히 붉게 달아오른 성기가 한눈에 봐도 퍽 고통스러워 보인다. 페트로는 유축기를 잡아당기며 그 아래에 달린 고환이 딸려 올라오는 것을 구경했다. 평상시에도 탱탱한 고환이 더욱 부어오른 모양새였다. 페트로는 아파하는 하벤의 얼굴에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더욱 깊게 집어넣었다.
“미, 미칠 거 같아…….”
“어떤데요?”
페트로의 물음에도 하벤은 대답하지 못했다. 성기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이 아프다가도 깊숙한 곳을 푹푹 찌르는 손가락에 머리끝까지 흥분이 치솟았다. 숨이 가쁘고 머릿속이 어지러운데, 이게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흥분 때문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벤은 그저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를 내며 덜덜 떠는 몸으로 간신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을 보며 잡고 있던 유축기를 놓아줬다. 조심히 놓아줬음에도 하벤은 고통스러웠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매끈한 이마를 찡그리며 살짝 두툼한 입술로 소리를 내는 게 여간 꼴리는 게 아니다. 페트로는 자신의 형을 따라 입을 벌렸다. 그러고는 눈앞에 있는 탐스러운 입술을 한입에 먹어 버릴 듯 얼굴을 들이대다가 멈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흐응, 응…….”
“…형, 다리 올려 봐요.”
뚫어져라 하벤의 얼굴을 쳐다보던 페트로가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며 말했다. 하벤은 녹진하게 안을 늘려 주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몸을 작게 떨었다. 그 탓인지 다리를 들어 올리는 두 손에 별 저항을 하지 못했다.
페트로는 하벤의 두 다리를 들어 올려 종아리에 걸쳐 있던 헐렁한 멜빵바지와 신고 있던 장화를 벗겨 냈다. 그러고는 훤히 드러난 잘빠진 다리를 붙잡으며 하벤의 하체를 들어 올렸다. 그 탓에 손목을 묶은 우리에서 삐거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두 다리만 덜렁 들어 올려진 이상한 자세에 하벤이 당황해서 몸을 트는 순간 엉덩이 사이로 뜨거운 기둥이 느껴졌다.
“무슨… 아! 아파, 아파! 페트로!”
딱딱하고 굵은 기둥이 엉덩이 사이를 가르며 구멍을 억지로 벌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삽입에 놀란 하벤이 몸을 버둥거렸지만 단단히 다리를 붙잡은 손에 막히고 말았다.
좁은 구멍을 억지로 벌리고 들어간 성기가 멈추지 않고 좁은 내벽을 가르며 안으로 진입했다. 하벤은 뻐근해지는 구멍과 내벽에 숨을 할딱거렸다. 막혀 있는 곳이 억지로 벌어지는 느낌이 소름 끼쳤다.
“하, 하아… 아, 응!”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벤은 내벽 이곳저곳을 찌르는 성기에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뭉뚝한 귀두가 찌르는 모든 곳이 욱신거리고 간지러웠다. 안으로 들어온 성기가 깊숙이 들어왔다가 다시 천천히 빠져나가는 그 느린 움직임이 더해졌다. 하벤은 이 미칠 듯한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다리를 움직여 페트로의 허리를 감아서 조였다.
“…형, 조르는 거예요?”
“하, 간지러워… 가지… 헉!”
정신을 놓고 중얼거리던 하벤은 갑자기 거칠게 들어온 성기에 숨을 들이마셨다. 근질거렸던 곳까지 푹 찌르는 성기에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몸을 떨어 대자 허리를 흔들던 페트로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퍽! 퍽!
“헉, 허억…! 아, 아! 더, 더!”
“하…….”
거칠게 박아 대니 하벤의 성기에 낀 유축기가 덜렁거렸다. 둘은 아랫배를 때리는 유축기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서로의 몸을 탐하는 데 열중했다. 구멍을 들락거리는 페트로의 성기는 더욱 빨라졌고, 그런 성기를 꽉 물고 놓아 주지 않는 하벤의 구멍에는 힘이 들어갔다.
손을 묶어 놓은 우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쾌락만 좆아 몸을 섞는 두 사람은 흡사 정신을 잃은 사람들 같았다. 마치 당장 눈앞에 있는 몸을 탐해야만 한다는 목적만 있는 것 같았다.
“흐윽… 페트로, 풀어 줘… 하아, 아.”
하벤은 아랫배를 쑤시는 페트로의 성기에 울부짖으며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봤다. 유축기 안에 들어간 성기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당장 갑갑한 유축기를 빼고 자신의 것을 흔들고 싶다. 하벤은 치미는 사정 욕구에 입술을 깨물며 페트로를 쳐다봤다.
붉어진 눈매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벤의 얼굴에 페트로는 대답 대신 허리를 쳐올렸다. 아윽! 예민해진 몸이 곧장 반응했다. 페트로는 자지러지는 하벤을 보며 그의 머리에 입술을 묻었다.
“손대지 말고 싸 봐요.”
“아, 싫어. 흔들래… 으읏, 풀어 줘…….”
곧장 터질 것 같은 사정 욕구에 애원하자 페트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벤은 그 웃음이 허락이라 생각했지만 이내 빨라지는 추삽질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허, 윽!”
아랫배 깊숙이 들어오는 성기가 점차 빨라지더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거세게 쳐올려졌다. 지금껏 나름대로 박자를 맞췄던 하벤도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예민한 내벽을 때리는 성기와 어느새 유축기를 잡고 흔드는 손에 고개가 뒤로 넘어간 그는 사정감이 무섭게 치미는 것을 느꼈다.
살과 살끼리 부딪치는 노골적인 소리와 몸을 깊숙이 꿰뚫는 길고 굵은 자지에 순간 하벤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러고는 줄곧 페트로의 허리를 조였던 다리를 풀더니 아랫배를 들썩였다.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는 모양새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 하벤을 보며 페트로가 유축기를 건드렸다. 찌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축기에서 성기를 빼자 하벤이 신음했다.
“흐윽!”
페트로는 정액으로 흥건해진 유축기를 들어 보이며 얄궂게 웃었다. 그가 들어 올린 유축기 안에는 꽤 많은 양의 정액이 고여 있었다.
관 아래에 고인 정액은 마치 조금 전에 봤던 젖소의 우유처럼 새하얗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우유는 묽고, 저 정액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벤은 멍하니 제 정액을 보며 숨을 헐떡였다. 방금 저 유축기를 꼽고 섹스했다.
“하아, 하아… 응…….”
젖소처럼 유축기를 꼽고 사정했다는 충격도 잠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성기에 덜덜 떨었다. 뻐끔거리는 구멍 사이로 굵직하게 들어찬 성기가 부드럽게 빠져나갔다가 세차게 들어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하벤은 시선을 들어 페트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솔직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얄밉게 웃고 있던 페트로는 들고 있던 유축기를 흔들다가 바닥에 내던지고 하벤의 허리와 엉덩이 부근을 단단히 붙잡았다. 자신보다 작은 체구라고 해도 어엿한 성인 남자인데 무겁지 않은가 보다. 그는 여유롭게 하벤의 하체를 들고 마음껏 쫄깃한 구멍을 즐겼다.
“으응! 하읏…!”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침없이 구멍을 쑤시던 페트로는 하벤의 몸을 끌어안으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달뜬 숨소리는 예민하게 솜털이 선 하벤의 귓가로 내려앉았다. 귀가 간지러워진 하벤은 앓는 소리를 내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사정으로 예민해진 몸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큰 자극이었다.
“그만… 흐, 으응! 그만…!”
구멍으로 드나들던 성기가 순간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점차 깊어지는 추삽질에 아랫배가 뻐근해진 하벤은 구멍을 조이며 집요한 섹스의 끝을 기다렸다. 섹스가 길어질수록, 그리고 페트로의 끈적한 호흡이 의식될수록 한 발 뺀 성기는 다시금 힘을 받기 시작했다.
괴롭다. 지나친 쾌감에 머릿속이 녹아내릴 것만 같아서 겁이 난다. 늘 욕망에 충실했던 하벤도 이번만큼은 무서웠다.
“어흑!”
“그만? 형 구멍이 자지를 물고 놓지 않는데, 어떻게 멈춰요.”
나름대로의 항변을 한 페트로는 둥그스름하게 잘 빠진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박아 대는 속도를 높였다.
쫀득하게 성기를 무는 내벽과 구멍 때문에 가슴 깊은 곳에서 더러운 욕정이 기어 나올 것 같았다. 우는 하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입안에 성기를 물려 목구멍 안쪽까지 정액을 싸지르고 싶었고, 벌름거리는 앙큼한 구멍에 고환까지 집어넣어서 엉망진창으로 망가트리고 싶었다.
지금처럼 멀쩡한 모습이 아닌 정액으로 푹 적셔진 하벤의 얼굴을 상상한 페트로는 성기 끝이 저려 오는 것을 느꼈다.
퍽! 퍼억! 퍽!
“아! 아아! 찌, 찢어져!”
“후…….”
파정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의 움직임은 거칠기 그지없다. 페트로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박아 댔고 그런 그의 움직임을 받는 하벤의 몸은 애처롭게 흔들렸다.
한참을 무섭게 박아 대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느려졌다. 배 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하벤은 오싹한 오르가슴을 느꼈고 페트로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엉덩이에 힘을 줘 정액을 분출했다.
녹진하게 풀어진 구멍을 들락거릴 때마다 뿌연 정액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몸 안에 질펀하게 정액을 싸지른 페트로는 탄성을 터트리며 기나긴 사정감을 즐겼다.
“팔 좀 풀어 줘…….”
“기꺼이.”
하벤의 요구에 페트로는 곧장 밧줄을 풀었다. 움직이기 불편한 와중에도 요령껏 한쪽씩 풀어낸 그는 축 늘어지는 하벤의 몸을 안아 들었다.
두 손으로 엉덩이 밑을 받쳐 아기처럼 덜렁 안아 드는 행동에 기겁할 힘이 없었던 하벤은 그저 저릿한 팔을 들어 올려 눈앞에 있는 목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잡을 것이 있다는 게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하벤은 가물거리는 눈꺼풀을 꼭 닫으며 고단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페트로는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하벤의 몸을 어루만지며 우리를 빠져나갔다. 정액이 뚝뚝 흐르는 구멍에는 아직 성기가 꽂힌 채였다.
* * *
하벤이 기진맥진한 몸으로 눈을 감고 있으니 페트로가 뒤처리를 깔끔히 끝냈다. 안에 싸 놓은 정액을 긁어내고 앞쪽에 묻은 정액까지 닦아 낸 그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하벤을 침대에 눕혀 놓고 옆자리를 차지했다.
눈을 감고 색색 숨을 쉬는 하벤을 말없이 내려다본 페트로는 손을 들어 어깨를 짚었다. 우리에 결박되어 자신과 몸을 섞던 그는 이제 제 눈앞에 얌전히 누워 있다.
열이 올라 뜨끈했던 체온은 미지근해졌고 끈적하게 땀이 났던 피부는 어느새 뽀송해졌다. 페트로는 손끝으로 하얀 어깨를 긁으며 눈을 굴렸다. 옆에서 치근덕거리면 짜증이라도 낼 줄 알았는데 하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형.”
페트로는 그런 하벤을 불렀지만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그저 숨을 들이마셨다가 느리게 내쉬며 누워 있을 뿐이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가만히 내려다봤지만 지친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말없이 하벤을 바라보던 페트로는 하얀 어깨를 긁었던 손톱을 치우며 옆에 나란히 누웠다.
좁은 침대에 나란히 누우니 서로의 몸이 자연스럽게 밀착됐다.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페트로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하벤의 어깨를 끌어안아 서로의 거리를 없앴다. 씻느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둘의 몸이 찰싹 붙자 줄곧 감고 있던 하벤의 한쪽 눈이 떠졌다.
하벤은 제 앞에 있는 탄탄한 가슴팍에 짜증 섞인 시선을 보냈다. 제법 매서운 눈초리가 페트로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른 숨을 내쉬며 얌전히 안겼다.
“하하.”
얌전히 제 품에 안긴 모습에 페트로는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보다 고분고분한 형의 태도가 퍽 마음에 들었다. 비록 격정적인 섹스 때문에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어서 얌전히 있는 거겠지만 말이다.
페트로는 품 안에 있는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고는 어깨와 목 사이에서 은근하게 맡아지는 체향에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향을 탐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사내 같지 않은 포근한 체향은 어린 시절에도 맡아 봤던 향이었다. 언제였던가, 어린 시절에 둘 다 비 오는 밤이 무서워서 같은 방에서 잠을 청한 적이 있었다. 하나의 담요를 뒤집어쓰고 서로의 등을 맞대며 억지로 잠에 들었던 그날 밤. 하벤은 덜덜 떨었던 게 무색하게 금세 잠에 빠졌고, 자신은 제 형의 체향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었다.
“흐읍.”
어린 시절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향. 이 체향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페트로는 지난날의 그리움을 다 풀겠다는 듯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런 뜨거운 숨결이 목 부근을 간지럽혔는지 얌전히 눈을 감고 있던 하벤이 뒤척였다. 짜증을 내며 뒤돌아 누운 그는 페트로의 품에서 벗어나자 다시 얌전해졌다.
페트로는 제게서 돌아누운 하벤의 등을 바라봤다. 흉터 하나 없는 매끈한 등이 눈에 들어왔다. 페트로는 천천히 손을 올려서 조심스럽게 등을 쓰다듬었다. 금세 빠져나간 체온을 다시 되찾고 싶었다.
잠깐 떨어진 것뿐인데, 분명 별거 아닌 이 잠깐의 순간에도 페트로의 마음이 조금씩 비뚤어지고 있었다. 왜일까, 무엇이 마음에 안 들어서 기분이 바닥을 치다 못해 분노가 치미는 걸까.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페트로는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형.”
등 돌린 하벤에게서 집을 나갔던 그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에게서 큰 상처를 받은 그가 무작정 집을 나갔던 그날, 이대로 이별하는 줄 모르고 붙잡지 않았던 자신이 가장 한심했던 그날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페트로는 하벤의 등을 보며 그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형.”
무슨 마음에서인지 계속해서 하벤을 불렀다. 작게 속삭였던 부름이 점차 커져 갔지만 매정한 제 형은 대답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에 페트로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왜 대답이 없을까. 이 정도로 불렀으면 들었을 텐데 왜 돌아보지 않는 걸까. 하벤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페트로의 가슴은 더욱 거세게 뛴다.
결국 참다못한 페트로가 하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하벤이 번쩍 눈을 뜨며 돌아봤지만 페트로는 시선을 마주 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길 잠깐, 페트로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제 며칠 뒤면 변호사가 올 거예요.”
“뭐?”
뜬금없는 말에 벙해 있던 하벤이 눈을 깜빡였다. 피곤해 죽겠는데 잠도 안 자고 자신을 부르더니 생뚱맞게 변호사 타령이다. 물론 유산 때문에 변호사를 기다리는 건 맞지만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그랬잖아. 다음 주에 온다고. 며칠 지나면 오겠지.”
“그가 온다면 무엇을 물어볼 건가요?”
이어지는 물음에 하벤이 멍하니 페트로를 쳐다봤다. 저의를 알 수 없는 질문과 그 질문을 하는 페트로의 굳어진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왜 저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까. 짐작 가는 이유가 없어서 답답하기만 한 하벤은 눈을 돌려 다시 벽을 바라봤다. 등 뒤에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변호사에게 어떤 걸 물어볼 거냐는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향으로 내려온 지 며칠이 지났건만 그동안 일어난 일에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남긴 말도 안 되는 유언에 대해 물어보기는 할 건데, 정확히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정확한 유산 금액에 대해 물어야 하나, 아니면 유산 상속 조건에 대해 따져야 하나. 이쪽에 대해 무지하니 질문할 것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에 잠긴 하벤이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깜빡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몰라, 생각 안 해 봤어.”
“…정말요?”
작게 중얼거린 말을 용케 들은 페트로가 반응했다. 그는 돌아누운 맨등에 얼굴을 묻으며 다시 물었다.
“왜요?”
“아, 모른다고. 제발 입 다물고 자.”
계속되는 질문에 신경질이 난 하벤이 퉁명스럽게 답하며 눈을 감았다. 끈질긴 물음이 몹시 거슬렸다. 결국 눈을 감으며 쏘아붙이자 다행히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고른 숨을 내쉬며 잠에 빠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커다란 손이 넘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넘어온 손은 자신의 손을 톡톡 건드렸다가 슬며시 손등을 감싸 쥐었다.
조심스럽게 손등을 감싸 쥔 것이 마치 세상 연약한 생명체를 대하는 것처럼 부드럽기 그지없다. 하벤은 잠시 그 손을 쳐다보다가 작게 코웃음을 치며 눈을 감았다.
당장 떼어 낼까 고민했지만 조심스러운 페트로의 행동이 퍽 우스워서 내버려 두기로 했다.
하벤이 다시 눈을 감고 고른 숨을 내쉬자 어두운 방 안에는 금세 적막이 내려앉았다. 조용한 방 안에는 두 사람의 편안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 *
이른 오전, 깔끔하게 옷을 빼입은 신사 한 명이 낡고 허름한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른 낮부터 들어온 낯선 손님에 바닥을 청소하던 여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처음 보는 손님이네. 여행 오셨나요? 미안하지만 아직 가게를 열지 않았답니다.”
여인의 말에 안으로 들어오던 신사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그제야 휑한 내부를 바라보며 손님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문이 열려 있길래 영업하는 줄 알았습니다.”
사과의 말을 전한 그는 곧장 걸음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오늘은 그냥 일찍 가게 문 여는 걸로 하자고.”
가게 안쪽에 있는 주방에서 누군가 나왔다. 커다란 덩치와 잘 정리된 턱수염이 인상 깊은 남자였다.
남자는 손에 술병을 들고 바에 앉아 신사에게 손짓했다.
“식사하실 건가?”
“네.”
“뭐 해, 주문 받아야지.”
남자의 말에 여인이 투덜거리며 메뉴판을 건넸다. 신사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골랐고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향했다. 남자는 멀뚱히 서 있는 신사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서로 침묵을 지켰다. 신사는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남자는 들고 온 술병의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들이켰다.
이 조용한 침묵은 주방에 들어갔던 여인이 나오면서 깨졌다. 그녀는 한 손에 뜨거운 김이 나는 접시를 들고 신사에게 다가가 그 앞에 내려놓았다. 적당히 묽은 어니언수프와 간단하게 먹을 빵이었다.
여인은 잘 먹으라는 인사도 없이 곧장 옆에 앉은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더글라스, 대낮부터 술이라니 아직도 당신이 젊은 줄 알아?”
“늙은 나도 가끔은 낮부터 술을 마시고 싶다고.”
여인의 핀잔에도 남자, 더글라스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당당히 술병을 들어 올리며 보란 듯이 한 모금 들이켰다. 여인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원하게 몇 모금 더 들이켠 그는 뒤늦게 옆에 앉은 신사를 살펴봤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옷차림과 가방을 가진 말끔하게 생긴 중년 남자는 이 마을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행을 왔다고 해도 이상하고 말이지, 도대체 여기는 어쩐 일로 왔을까. 더글라스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것보다 이 마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뭐 하는 분인가?”
더글라스의 관심에 신사는 자신의 정장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명함을 건네받은 더글라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명함에는 변호사 샌더스라는 글자와 함께 그의 사무실 번호로 보이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변호사라, 대단한 분이 오셨군. 그런데 이런 마을에는 무슨 일로…?”
“아, 일 때문에 왔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는 이 지역에 자신이 모르는 일이란 없었다. 더글라스는 금세 관심을 가지며 의자를 끌어 변호사에게 가까이 붙었다.
“무슨 일이길래?”
“별건 아니고 그냥 유산 문제입니다.”
“유산?”
유산이라 하니 딱 한 군데가 떠올랐다. 최근에 이 마을에서 죽은 사람은 그자밖에 없었으니까. 더글라스는 자신이 며칠 전에 다녀왔던 장소를 말했다.
“혹시 클로이드 목장을 말하는 건가?”
“잘 아시나요?”
“알다마다. 며칠 전에는 그 집에서 저녁 식사도 한걸.”
“…그렇습니까?”
변호사는 더글라스의 말에 잠시 그를 주시했다.
시야에 들어온 그는 여느 나이 든 남자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딱히 특별한 점이 없는 그를 관찰하던 변호사가 슬그머니 말을 이었다.
“친하신가 봐요.”
“얼마 전에 온 그 집 아들하고 친해졌거든. 하벤이라고 굉장히 싹싹한 친구가 있어.”
더글라스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변호사가 들고 있던 스푼을 내려놓고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봤다.
“어떻던가요?”
“뭐가?”
“그 집 형제들 말입니다.”
갑작스러운 변호사의 말에 더글라스는 술병을 내려놓으며 생각에 잠겼다.
변호사의 물음에 그날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하게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던 그날 말이다. 정성 어린 저녁 식사와 기분 좋게 마신 술, 그리고 데면데면한 것 같아도 사이가 좋아 보였던 두 형제. 더글라스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식사를 하던 형제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굉장히 사이가 좋아 보였지. 특히나 그 집 동생이 제 형을 많이 아끼는 듯했어.”
“동생이면 페트로 씨 말입니까?”
“맞아.”
더글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날 있었던 일을 말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제 형을 챙기던 모습과 그의 취향에 맞춰 새로운 커피를 타던 것까지. 분명 관심과 애정이 묻어 나오는 행동들이었다.
한참 우애 좋은 형제들에 대해 설명하던 더글라스는 순간 가물가물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멈칫했다. 그런 그의 행동을 예리하게 알아차린 변호사가 물었다.
“왜 그러시죠? 더 말씀해 주실 게 있으신가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더글라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멈칫하던 순간의 찰나를 알아차린 변호사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하벤 씨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상당히 궁금합니다. 아시는 게 있다면 더 말씀해 주세요.”
간절한 부탁에 더글라스는 난처한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게… 확실한 건 아닌데, 그날 내가 술에 취해서 그 집에 하룻밤 지냈거든. 그런데 잠결에 이상한 걸 본 거 같아서…….”
“어떤 거 말입니까?”
변호사의 집요한 물음에 더글라스는 흐릿한 기억을 떠올렸다. 술기운이 완전히 돌기 전에 두 눈으로 봤던, 식탁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고 페트로의 손이 하벤의 다리 사이로 향하는 그 장면. 더글라스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긴가민가한 듯 말을 이었다.
“…페트로가 제 형을 만지는 거 같았는데… 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이봐, 못 들은 걸로 해 줘. 잠결에 이상한 꿈을 꿨나 봐.”
더글라스는 스스로 말하고도 놀란 듯 손사래를 쳤다. 무엇을 만졌는지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대충 짐작이 되었다. 변호사는 눈에 띄게 질린 얼굴을 마주 보며 웃긴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웃었다.
“진짜 꿈을 꿨나 보군요. 설마 형제끼리 그러겠습니까?”
“그렇지? 나도 참, 별 이상한 꿈을 꾼다니까.”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 변호사의 말에 더글라스는 안심한 듯 웃어 보이며 맞장구를 쳤다. 서로 가볍게 웃어넘기자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졌다.
변호사는 두 스푼 정도 먹은 수프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먹지 않았건만 식사를 마치는 데 미련이 없었다.
“이제 슬슬 일어나 봐야겠군요. 덕분에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목장으로 가는 건가?”
“네.”
식사의 값을 지불한 변호사는 중절모와 가방을 챙겨 들며 술집 밖으로 향했다. 세워 둔 차로 향한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초원 너머를 바라봤다. 시선 끝에 하얀 울타리가 닿았다. 변호사는 잠시 그 울타리를 바라보다가 차에 올라탔다.
3. 의문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방 안에 한가득 들어차는 밝은 햇살이 보였다. 하벤은 햇살이 눈부셔서 얼굴을 찡그린 채 몸을 뒤척였다.
조금만 더 자고 싶다. 며칠 내내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일을 했던 터라 늦잠이 절실했다. 특히나 질펀한 섹스를 하고 난 다음에는 더욱 그랬다. 하벤은 제 허리를 잡고 힘차게 박아 대던 페트로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녀석이 힘차게 자신의 성기를 박아 대면 그걸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자신의 허리는 바스러지다 못해 사라질 지경이었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짧게 퍽, 박는 것도 상당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녀석과 섹스를 하고 난 뒤면 온몸이 비명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하벤은 욱신거리는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뻐근한 허리 근육을 늘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등 뒤에서 다가온 손이 엉덩이를 살살 건드는 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잠기운이 하나 없는 말끔한 얼굴과 마주쳤다. 페트로였다.
“늦게 일어났네요.”
나른하게 말을 건 녀석은 전라의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벤은 그런 페트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전날 섹스를 하고 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아침 일찍 제 방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서 늦장을 부리다니, 녀석도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다. 하벤은 심드렁한 얼굴로 다시 앞을 바라봤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뜬 거 같은데, 페트로도 아직 침대에 누워서 쉬는 걸 보면 오늘 하루는 게으름 부려도 되지 않을까. 피곤한 몸으로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으니 저절로 일을 쉬고 싶은 생각만 든다. 뻑뻑한 눈가를 문지르며 딴생각을 하던 하벤은 순간 엉덩이 사이가 미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
이상한 느낌에 손을 뒤로 보내 엉덩이 사이를 건들자 미끈거리는 무언가가 만져졌다. 기겁하며 손을 바라보니 손가락에 뿌연 점액질이 묻어 있었다. 흰 액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느껴지는 미끄덩거리는 느낌이 어딘가 익숙했다. 하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네 거냐?”
분명 섹스하고 나서 녀석이 뒤처리를 했는데 이 정액은 뭐지? 영문을 몰라 페트로에게 묻자 등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하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벤이 굳어져 있는 사이, 페트로는 눈앞에 보이는 뽀얀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슬며시 벌렸다. 엉덩이를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멍 사이로 하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하벤은 갑자기 엉덩이 사이로 울컥 나온 정액에 놀라 엉덩이에 힘을 줬다. 그러자 구멍의 오밀조밀한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 앙다문 구멍을 보며 페트로가 말했다.
“피곤했나 봐요. 새벽 내내 박아 댔는데 깨질 않더라고요.”
덕분에 듬뿍 쌌어요. 낮게 이어지는 말에 하벤의 목덜미가 빳빳하게 굳어졌다. 듬뿍이라니, 얼마나 쌌다는 뜻일까. 하벤은 왠지 불룩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아랫배를 만지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정액을 빼야 한다. 이대로 배 속에 품어 봤자 좋을 게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당장 엉덩이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아래에서 꿀렁 하는 소리와 함께 진득한 정액 덩어리가 엉덩이를 타고 아래로 흐르는 게 느껴졌다. 분명 정액을 흘려보내는 건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럽고 수치스러웠다.
“형, 엉덩이로 싸는 거 같아요.”
“닥쳐! 윽…!”
힘을 주며 정액을 내보내는데 페트로가 성질을 건드렸다. 녀석은 뒤에서 가만히 엉덩이를 뚫어져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하벤은 도와주지 않고 구경만 하는 녀석의 태도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얼굴에 열이 올라서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쾅쾅.
“어, 어?”
아직 배 속에서 느껴지는 미끄덩한 느낌에 엉덩이 밑에 손을 넣어서 빼려는데,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바들바들 떨자 몸을 일으킨 페트로가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가 왔나 보네요.”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태평하게 말하는 녀석을 보며 하벤은 고함을 지를 뻔했다. 지금 이 꼴로 누워 있는데 저 여유 있는 태도는 뭐란 말인가. 제 일이 아니어서 저렇게 구는 건가 싶어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벤은 나가서 누군지 보고 오겠다는 녀석에게 베개를 집어 던졌다. 안타깝게도 베개는 벽면에 맞아 떨어졌고 페트로는 형편없이 떨어진 베개를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덕분에 하벤의 속은 더욱 부글부글 끓었다.
떨어진 옷을 입은 페트로가 방을 빠져나가자 하벤은 얼른 제 아래를 쑤시며 정액을 빼내는 데 집중했다. 스스로 구멍을 쑤시는 게 난생처음이라 조금 주저했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엎드린 채 구멍 안으로 긴 가운뎃손가락을 집어넣자 안에서 진득한 정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금방 빼낼 거라 생각했는데 어찌 된 게 밑을 쑤시면 쑤실수록 깊숙한 곳에 들어 있는 정액이 흘러나왔다. 누워 있던 자리를 더럽히는 많은 양에 혀를 내둘렀다.
한참을 밑을 쑤시고 있자, 방문이 벌컥 열리며 페트로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잠시 하벤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엉덩이를 쑤시는 우스꽝스러운 꼴을 샅샅이 훑어보고 있었다. 하벤이 벌게진 얼굴로 물었다.
“누, 누가 온 거야?”
“변호사예요.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뭐?”
하벤은 변호사라는 말에 경악했다. 며칠 뒤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올 줄이야.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맞이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런 꼴로는 무리였다.
“형하고 대화하려고 온 걸 텐데… 어쩌죠?”
안절부절못하는 하벤에게 페트로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하벤은 아직도 질질 흘러나오는 정액을 보며 낙담한 듯 중얼거렸다.
“어떡해, 계속 나오잖아…….”
“흠, 지금 빼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요.”
마치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 같은 태평한 태도에 하벤이 이를 갈았다. 재수 없는 새끼. 좋다고 자는 사람 건드려서 안에 질펀하게 싸 놓은 주제에 저런 식으로 굴어? 하벤은 하나 남은 베개를 집어 들었다.
“어쩔 수 없네요. 구멍에 힘을 줘요.”
“뭐?”
당장 얼굴에 던지려는데 뜬금없는 말에 멈칫했다. 페트로는 베개를 들고 자신을 노려보는 하벤에게 말했다.
“형이 제 자지를 무는 거처럼 꽉 힘을 주는 거예요. 그러면 정액이 흐르지 않을 거예요.”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소리다. 결국 하벤은 들고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고 이번에는 제대로 얼굴을 가격했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맞았지만 녀석은 아파하는 시늉 하나 하지 않고 멀뚱히 자신을 바라봤다. 녀석을 때리면 속이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풀리기는커녕 더욱 약이 올랐다.
“하.”
잠시 고민한 하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껏 조심스러워진 움직임에 그가 은밀한 부위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지, 줘…….”
하벤은 페트로에게 손을 내밀며 옷을 달라고 말했다. 그런 하벤의 요구에 페트로는 말없이 옷을 집어 들어 건넸다. 그러고는 제 앞에서 옷을 입는 것을 구경했다.
난처한 듯 붉어진 얼굴도 좋지만 바들거리는 잘빠진 다리와 움푹 들어간 예쁜 엉덩이 보조개가 환상적이다. 페트로는 제 형의 맨몸을 보며 예상보다 빨리 들이닥친 변호사 때문에 바닥을 친 기분이 비로소 나아지는 듯했다.
페트로는 옷을 입은 하벤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부축이라도 하는 듯 바들거리는 손을 붙잡고 방문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문을 열기 전에 고개를 숙여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정액을 흘려서 바지가 젖으면 예술일 거 같아요.”
“닥쳐…….”
“저 남자가 보면 형이 소변을 지린 줄 알겠죠?”
짓궂은 속삭임에 참다못한 하벤이 주먹을 휘두르려다가 움찔 떨었다. 몸을 크게 움직이자 밑에서 정액이 울컥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놀란 하벤은 손으로 밑을 만지며 바지가 젖지 않았는지 살폈다.
“조심해야죠.”
그런 하벤의 모습을 구경하던 페트로가 바지 사이를 움켜쥐며 이죽거렸다. 다행히 안 젖었네요. 이어서 들리는 말에 결국 참다못한 하벤은 페트로를 밀치고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약간 나이가 있는 중년의 남자는 거칠게 열린 방문을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변호사 샌더스입니다.”
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하벤을 마주 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이목구비가 인상적이었다.
중절모와 코트, 그리고 들고 온 서류 가방을 살펴본 하벤은 자신을 주시하는 밝은 벽안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벤…입니다. 반갑습니다.”
겨우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자 변호사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가만히 서서 두 형제를 바라봤다. 하벤은 말없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이른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네요.”
“괜, 괜찮아요. 자리에 앉으세요.”
집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변호사는 다시 소파 위에 앉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하벤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혹시나 그가 자신의 불편한 사정을 눈치챘을까 싶어 긴장했다. 하벤은 다시 엉덩이에 힘을 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방심하는 순간 안에 고여 있는 정액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변호사가 앉은 자리에서 조금 떨어져 앉은 하벤은 텅 빈 테이블 위를 보며 그에게 아무것도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벤은 곧장 페트로를 불렀다.
“커피 한 잔만 가져와 줘.”
턱으로 옆을 가리키자 페트로가 군말 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부탁한 커피 한 잔이 손님에게 대접할 커피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대충 손에 잡히는 원두를 꺼내 들었다.
하벤은 부엌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다가 눈을 돌려 옆을 바라봤다. 변호사는 하벤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변호사가 곧장 말을 꺼냈다.
“페트로 씨께 말씀은 들으셨나요?”
“대충은요.”
“그럼 자세히 설명해 드리는 게 좋겠군요.”
변호사는 들고 온 가방에서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족히 책 한 권은 될 만한 종이 더미를 훑어본 그는 그것을 하벤에게 건넸다. 말없이 건넨 종이 더미를 받은 하벤은 꽤 나가는 무게에 황급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마터면 아랫배에 힘 줄 뻔했다.
종이를 내려놓은 하벤은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엉덩이 사이에 집중했다. 미끌거리기는 하지만 아직 괜찮은 것 같다.
“클로이드 씨 유산에 관한 서류입니다. 이곳 목장뿐만 아니라 다른 재산들도 정리해 놓은 거지요.”
유산이라는 말에 엉덩이에 집중하던 하벤이 곧장 종이를 훑어봤다. 첫 장은 목장에 대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었고 그 다음 장은 하벤이 몰랐던 여러 재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은행에 묶여 있는 거액의 돈과 다른 지역에 있는 부동산에 대한 것이었다.
서류가 넘어갈수록 하벤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번져 갔다. 아버지의 재산이 꽤 되겠구나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풍족한 재산을 갖고 있던 양반이 이런 시골에 처박혀 있었다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 밑에 장은 직접 작성한 유언, 그리고 유언 공증에 대한 확인서입니다.”
하벤이 서류에 적혀 있는 금액에 눈을 떼지 못하자 변호사가 다음 장에 대해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다음이라는 말에 하벤은 부랴부랴 종이를 넘겼다.
“…자필인가요?”
타자기로 말끔히 작성된 서류들 사이로 거뭇거뭇한 잉크 자국이 가득한 종이가 나타났다. 그 위에 적힌 필기체는 어딘가 익숙했다.
약간 구겨진 종이 모서리를 만지며 묻자 변호사가 곧바로 대답했다.
“두 번 다 자필로 작성하셨습니다.”
“두 번이요?”
탁.
하벤의 물음과 동시에 테이블 위로 커피 잔이 놓였다. 다소 거칠게 내려놓는 커피 잔에 놀라 고개를 들자 언제 왔는지 모를 페트로가 두 사람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잠시 하벤과 변호사를 번갈아 보다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하벤의 옆이었다.
“커피 감사합니다.”
썩 친절하지 않은 대접이었지만 변호사는 불만 없이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한 모금 들이켠 그는 유언장을 들고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하벤에게 입을 열었다.
“중간에 수정을 하셨거든요. 아, 물론 그 과정에도 제가 있었으니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변호사의 덧붙인 설명에 하벤은 다시 유언장을 내려다봤다.
투박한 글씨로 작성된 유언장의 첫 시작은 죽음이었다. 앓고 있던 지병이 깊어져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자신은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니, 사후 남은 모든 것들을 요청하는 대로 처리하기 바란다는 문장이었다. 꽤나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내용이다.
하벤은 글을 읽으며 퍽 아버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구절 없이 담백하게 적어 내려간 글은 살아생전 그의 성격과 닮았다. 그런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자 중간부터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유산 상속인이 적힌 곳이었다.
하벤 클로이드 그리고 페트로 클로이드. 두 사람의 이름에서 눈을 떼지 않던 하벤이 입을 열었다.
“…사실 조금 의외였어요.”
“뭐가 말입니까?”
“아버지가 제 앞으로 유산을 남겼다는 점이요. 물론 이런 거지 같은… 아니, 조금 이상한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요.”
상속인 아래에는 긴 문장이 달려 있었다. 첫날 페트로가 말한 대로 6개월 동안 목장을 운영하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그 문장을 눈으로 확인한 하벤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변호사에게 물었다.
“이런 조건이 유효한가요?”
“그럼요.”
느릿한 물음에 변호사는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에 단호함이 묻어 있어서 더 이상 묻는 것이 소용없어 보였다. 아쉬움에 들고 있던 유언장을 내려놓자 변호사의 말이 이어졌다.
“이 조건에 큰 흠이 없는 한 유효합니다.”
“그렇군요…….”
확인 사살이다. 속으로 생각한 하벤은 멀끔한 변호사의 얼굴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변호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에 대해서 따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는 게 없어서 어떤 부분을 가지고 따져야 하는지 모르는 하벤은 그저 변호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변호사는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하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그 옆에 앉은 이를 바라봤다. 페트로는 줄곧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는지 바라보기가 무섭게 시선이 부딪혔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늪 같은 짙은 색의 녹안. 일 때문에 처음 이 목장에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 변호사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녹안을 바라보다가 다시 하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낙담한 채로 가만히 서류를 보는 녹안에는 밝은 빛이 가득하다. 같은 형제라도 이렇게 다르군. 변호사는 스스로 발견한 사소한 차이를 확인하며 남은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멍하니 있는 하벤에게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길 방문한 이유는 공증인으로서 조건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며칠에 여기에 오셨는지, 그리고 직접적인 운영을 위해 행한 업무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 그리고 기차표도 같이 제출해 주세요. 혹시 없으시다면 기차역에서 확인증을 발급받으셔서 주시면 됩니다.”
“…되게 철저하시네요.”
“저도 비싼 돈을 받고 일하는 거라서요.”
똑 부러지는 말에 하벤은 너털웃음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는 게 뼛속까지 변호사다.
하벤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구멍 사이로 뜨거운 정액이 울컥 나오는 것을 느꼈다. 큰일 났다. 방금 꽤 많은 양이 나온 거 같은데……. 하벤은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흘러나온 정액이 옷에 스며드는 느낌에 다급하게 말했다.
“그, 당장 필요한 건가요?”
“아닙니다. 하벤 씨가 준비되었을 때 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럼… 우선은 저 지금 몸 상태가 안 좋아서요…….”
“아, 그러십니까. 실례가 많았군요.”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말하자 변호사는 의심도 없이 알았다면 나갈 채비를 했다. 주저하지 않고 서류 더미와 중절모를 챙겨 든 그는 두 형제를 바라봤다.
“며칠 동안은 이 마을에 머물 겁니다. 그때까지 물어보실 게 있다면 찾아 주세요.”
“네, 네.”
마을에 하나뿐인 모텔에서 머물 거라는 말과 함께 그는 집을 나섰다. 갑자기 등장했던 것처럼 퇴장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낯선 사람이 사라지자 괄약근에 힘을 주며 버티던 하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거실 바닥에 엎드리며 달달 떨던 그는 제 엉덩이 부근을 더듬었다. 설마 바지가 젖은 건가? 아무리 만져 봐도 긴가민가하다. 바지를 만지던 하벤은 또다시 삐죽 새어 나오는 정액에 소리치고 말았다.
“계속 흐르잖아!”
구멍 밖으로 흘러나오는 정액은 몸속에 품었다 나온 탓인지 지나치게 뜨거웠다. 하벤은 마치 뜨거운 점액질을 배설하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에 울상을 지었다. 기분 나쁘다, 소름 돋아. 저절로 우는소리가 나왔다.
그런 하벤을 보던 페트로가 태평하게 다리를 꼬며 물었다.
“흠, 안에 스며들지 않았나 보네요. 빼 줄까요?”
“당연한 거 아냐?!”
하벤의 고함에 페트로는 바닥에 주저앉은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앉아 있는 자신의 무릎 위에 엎드리게 했다. 순식간에 페트로의 몸 위에 엎어진 하벤은 버둥거리다가 자신의 바지를 쭉 내리는 손길에 기겁했다.
“야, 뭐 하는 거야! 내려 놔!”
“정액 빼 달라면서요. 가만히 있어요.”
페트로는 하벤의 목을 잡아서 꾹 눌렀다. 그러고는 반쯤 내려간 바지를 마저 벗겼다. 그러자 흘러나온 정액으로 지저분해진 바지 안쪽과 엉덩이가 드러났다.
하얀 엉덩이와 회음부에 진득히 묻은 정액을 보니 마치 빵에서 새어 나온 하얀 크림 같았다. 누르면 삐져나오는 크림을 떠올린 페트로는 군침을 삼키며 손가락으로 엉덩이 골을 훑었다.
두 볼기짝을 벌리자 구멍에서 새어 나온 정액이 쭉 늘어났다. 새벽 내내 박고 아낌없이 싸지른 덕분인지 아직도 조금씩 흘러나왔다.
하벤의 몸에서 자신의 정액이 나온다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슬며시 차오르는 만족감에 엄지손가락으로 구멍 주변 살을 잡아 늘리자 좁은 입구에서 하얀 거품이 흘러나왔다.
아깝다, 이 흔적들을 긁어내야 하다니. 페트로는 뻐끔거리는 구멍을 어루만지며 혀를 찼다.
“으, 짜증 나…….”
말랑한 구멍에 정액을 묻히고 있는데 아래서 불만 어린 음성이 들려왔다. 귓가와 목덜미가 잔뜩 붉어진 하벤이 짜증이 난 듯 거칠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목을 붙잡힌 채 낑낑거리는 것이 퍽 어린 강아지 같았다.
페트로는 무릎 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하벤을 잠자코 바라봤다. 자신을 괴롭히려는 손길에서 달아나려고 엉덩이를 뒤로 쑥 빼는데, 안타깝게도 그 행동은 상대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페트로는 제 얼굴 앞까지 들이밀어진 하얀 엉덩이에 참지 못하고 한쪽 볼기를 베어 물었다.
“악!”
와그작, 하는 살이 씹히는 소리와 함께 하벤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군침이 돌 정도로 허기진 상태에서 엉덩이를 베어 물자 힘 조절이 되지 않았다. 입안 한가득 들어찬 탱글탱글한 살을 앞니로 잘근잘근 물자 혀 밑으로 침이 고였다.
“미친 새끼, 네가 개야? 왜 물고 지랄… 아악!”
하벤은 살이 뜯어질 거 같은 통증에 소리를 질렀다. 사람의 뭉뚝한 앞니인데도 강하게 무니 당장이라도 살갗이 찢어질 것 같았다.
미친놈, 정액을 빼 달라니까 물고 난리야.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목을 누르는 손을 붙잡으며 몸을 이리저리 틀었지만 힘센 거머리를 떼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페트로는 거세게 버둥거리는 몸을 보며 제가 깨물었던 엉덩이를 핥았다. 질겅질겅 씹어 배 속에 삼키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지만 꾹 눌렀다.
치아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진 엉덩이를 핥으며 조금씩 둔덕 사이로 입술을 옮겼다. 보드라운 살결을 즐기다가 정액으로 푹 젖은 구멍이 느껴지자 혀로 핥아 올렸다. 진득한 정액의 질감과 더불어 구멍의 말랑한 맛이 느껴졌다.
“히익…!”
하벤은 민망한 곳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혓바닥에 몸서리를 쳤다. 세상에, 더럽지도 않은가! 구멍에, 그것도 자신의 정액이 흐르는 곳에 혀를 갖다 대는 데에 기함을 토했다. 창피함에 몸을 틀었지만 목을 잡고 누르는 손길만 더욱 강해졌다.
살짝 핥고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던 혀는 집요하게 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길고 축축한 혀가 안으로 진입할 때마다 하벤은 얇은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어 내며 울부짖었다. 혀가 좁은 구멍 안으로 파고들어 예민한 내벽에 닿을라치면 간지러워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때요?”
페트로는 타액으로 푹 젖은 구멍에 입술을 붙이며 물었다. 벌렁거리는 구멍을 혀로 길게 핥자 끙끙 앓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 리… 빨리 해…….”
핥든지, 손가락으로 쑤시든지 빨리 정액을 빼 달라는 말이었다. 이제 하벤은 숨기는 거 없이 퍽 솔직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하벤의 대답이 반가운 페트로는 구멍에서 입술을 떼며 숙였던 상체를 세웠다. 깊숙한 곳에 고인 정액을 빼내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써야 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가차 없이 구멍을 푹 쑤셨다.
“으윽!”
길고 굵은 손가락이 예고도 없이 들어오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리 혀로 핥고 넓혔다고 해도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벤은 아픔에 어금니를 물고 버티다가 내벽을 긁는 손가락에 허리를 튕겼다.
“하악… 으응…!”
처음에는 실수로 긁은 거겠지 싶었는데, 어째 손가락이 예민한 지점만 집요하게 긁었다. 몇 번 신음을 흘리던 하벤은 농염한 제 동생의 손길이 순순히 정액을 빼는 게 아니라 섹스를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일을 치르겠다 싶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또 하려고? 싫어, 하지 마. 내가 알아서 뺄 거야.”
“빨리 하라면서요.”
하벤의 거부에도 페트로는 손을 거두지 않고 구멍을 깊게 쑤셨다. 집어넣은 중지와 검지를 빙글 돌리며 움찔거리는 내벽을 긁어내자 몸부림이 더욱 거세졌다. 페트로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들어 올려 치아 자국이 난 엉덩이를 내려쳤다.
찰싹!
“아! 엉덩이는 왜 때려?!”
“가만히 있어요.”
“아파!”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볼기가 화끈해졌다. 하벤은 자신을 말 안 듣는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페트로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이도 아닌 어른을, 그것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복형을 이렇게 대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찰싹! 찰싹!
“아! 아!”
하지만 하벤이 용서를 하든 말든 페트로의 손찌검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노려보는 하벤을 혼내듯 때리는 강도를 높였다. 손바닥 전체로 있는 힘껏 볼기를 내려치니 볼기 전체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찰싹!
페트로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갈수록 내려치는 소리는 커져 갔고, 속도도 빨라졌다. 벗어나려던 하벤의 머리까지 잡아 누르며 엉덩이를 때리고 구멍을 쑤시는 데 집중했다. 그의 가차 없는 손길에 엉덩이는 울긋불긋하게 물들었다.
“흐, 흐윽… 나쁜 새끼… 쓰레기 같은 새끼…….”
하벤은 멍이 든 것 같은 제 엉덩이를 느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픔으로 고인 눈물이 어느새 알 수 없는 억울함으로 한두 방울 흘러내렸다. 결국 부어오른 엉덩이를 내놓은 채 흐느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요.”
“내가 뺀다고 했잖아… 왜 내 말을 안 들어…….”
“혼자서 못 빼면서.”
페트로의 타박에 더욱 억울해진 하벤이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엉덩이를 맞은 것이 억울했다. 수치심과 억울함으로 터진 울분이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참을 끅끅거리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참아 내는데 집요하게 안을 쑤시던 손가락이 쑥 빠져나갔다. 하벤은 벌렁거리는 구멍에 힘을 주며 젖은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는 차분한 얼굴이 보였다.
“정액은 다 뺐어요. 이제 뚝 그쳐요.”
“흑, 개 같은 새끼야…….”
생각과 달리 녀석은 정말 정액만 빼 주었다. 마지막까지 엿을 먹이는 말에 결국 하벤은 고개를 숙였다. 왜 설레발을 쳤을까. 녀석은 섹스할 생각이 없었는데 혼자 착각해서 엉덩이까지 얻어맞았구나. 하벤은 두 주먹으로 소파를 내리치며 부끄러움을 삭혀야 했다.
* * *
한바탕 난리를 치니 어느새 오후다. 집에 혼자 남겨진 하벤은 뻐근한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페트로는 피곤할 테니 한숨 자라고 했지만 하벤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하벤은 침대 아래에 넣어 둔 가방을 꺼내 들었다. 약간 낡은 여행 가방은 첫날 하벤이 들고 온 것이었다. 그는 가방을 열고 안에 정리된 옷가지를 헤집었다. 고향에 들렀다가 바로 올라올 거라는 생각에 챙겨 온 옷이 몇 없었다. 그 옷들 사이로 지갑이 나타났다.
“분명 여기에 넣어 뒀는데… 아, 찾았다.”
지갑 주머니를 살피자 꾸깃꾸깃 접어 놓은 푸르스름한 종이가 나타났다. 찢어지지 않게 조심히 펼치자 상단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 마을 이름과 같은 역 이름이었다. 역시 버리지 않았구나. 하벤은 손에 들어오는 것들은 무조건 어딘가에 집어넣고 보는 자신의 버릇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기차표를 잘 챙긴 그는 방을 나섰다. 분명 오전에 봤던 변호사가 뭐라고 했더라. 여기서 무슨 일을 했는지 작성하라고 했나? 잠시 생각에 잠긴 하벤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여기에 와서 6개월을 잠자코 있으면 되는 거 아니가? 오랫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것도 짜증 나는데 귀찮게 됐다.
속이 답답해진 하벤은 부엌으로 가서 물 한 잔을 따랐다. 미지근한 물을 넘기는데, 집 밖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상치 않는 소리에 당장 밖으로 향했다.
“어딜 돌아다니다가 이제 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 하벤은 문 앞에서 엎드린 개를 발견했다. 녀석은 자신을 부르는 하벤을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반갑게 붕붕 흔드는 꼬리와 달리 엎드린 몸은 좀체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 모습이 이상해서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친구, 왜 그래?”
가까이서 본 녀석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분명 멀쩡히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는데 몸은 기력을 잃은 듯 축 늘어졌다. 하벤은 그런 개의 상태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장 커다란 녀석의 몸을 들어 올리며 축사로 향했다.
때마침 페트로가 축사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개를 안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하벤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왜 벌써 나와요. 좀 쉬지.”
“뭐?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얘 상태가 이상해.”
“개요?”
페트로는 그제야 하벤에게서 시선을 떼고 개를 바라봤다. 축 늘어진 개를 가만히 바라본 그는 하벤에게 말했다.
“차에 타요.”
“어떻게 하려고?”
“예전부터 더글라스의 아내가 동물을 잘 돌봤어요. 그녀에게 가 보죠.”
하벤에게 말한 그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차고로 향했다.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하벤은 부랴부랴 뒤를 따르며 품에 안긴 개를 내려다봤다. 눈이 마주친 녀석은 또다시 힘없이 꼬리를 흔들었다.
차에 올라타는 순간에도 개는 얌전히 안겨 있을 뿐,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거친 길을 달리느라 차가 크게 덜컹거리는데도 녀석은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하벤은 그런 개를 쓰다듬으며 불안으로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하벤에게 있어서 개는 나름 의미가 있는 녀석이었다. 갑갑했던 어린 시절에 작게 숨통을 틔워 주고 어둡기만 한 기억을 조금이나마 밝게 만들어 준 녀석이었다. 곁에 가만히 있어도 큰 위로가 되었다.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홀로 지냈을 때도 종종 생각했었다. 몇 년이 지나고서는 이제쯤 이 친구가 세상을 떠났겠지, 하고 짐작도 했었다. 그때도 슬프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직접 이별을 경험하려니 슬픔의 무게가 엄청났다.
“이제 죽는 걸까?”
하벤은 푸석한 털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잔잔하게 내뱉는 목소리는 축 가라앉았다. 그런 하벤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얌전하던 개가 귀를 털었다.
“이별하려니까 슬퍼요?”
운전대를 잡고 묵묵히 운전하던 페트로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털을 쓰다듬던 하벤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무슨 의미로 물어본 걸까. 단순히 슬픔이라는 감정을 동조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다른 뜻이 담겨 있는 질문 같았다. 하벤은 페트로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침묵했다.
끼익.
달리던 차가 멈춰 서자 앞만 바라보던 페트로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신을 보는 하벤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속삭였다. 둘의 얼굴은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슬퍼하지 마요.”
“하지만…….”
“이렇게 슬퍼하라고 살려 둔 게 아닌데…….”
“뭐?”
제대로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에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페트로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차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조수석으로 걸어와 손수 문을 열어 줬다.
“너 뭐라고…….”
“얼른 내려요.”
하벤은 문을 열고 가만히 서 있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품 안에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듣고 겨우 차에서 내렸다. 마지막 말이 궁금했지만 우선은 아픈 개가 먼저였다.
차에서 내리자 낡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더글라스의 술집인가. 하벤은 이제 불을 켜기 시작한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자신이 대신 들겠다는 페트로의 말이 들렸지만 무시하고 어깨로 문을 밀었다. 기름칠이 되지 않은 낡은 문이 거칠게 열리자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바 안에 한 명, 그리고 테이블에 앉은 더글라스와 낯선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게 누구야, 페트로 아니야?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
바 안에서 술잔을 닦던 여인이 하벤을 보며 소리쳤다. 거칠면서도 능글맞은 말투가 퍽 가까운 사이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하벤은 여인의 말에 눈만 껌뻑이며 서 있었다.
“어? 페트로가 아니잖아.”
여인은 멀뚱히 서 있는 하벤을 보며 눈치챈 듯 말했다. 이제 보니 생김새만 비슷하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하벤을 한참 동안 관찰하던 그녀는 뒤에 따라오는 페트로를 보며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외쳤다.
“아, 그 소문의 형?”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당신이 하벤이죠?”
여인의 물음에 하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자신을 더글라스의 아내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소개에 하벤도 인사를 나누다가 품에 안은 개의 거친 숨소리에 황급히 말을 꺼냈다.
“죄송한데, 이 녀석 좀…….”
“오늘도 기운이 없어 보여요. 부탁드려요.”
하벤이 허둥지둥하자 페트로가 대신 말을 이었다. 그는 익숙하게 개를 안아다가 가게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여인이 따라붙었다. 순식간에 가게 안에 있는 방 안으로 사라진 두 사람을 보며 하벤은 멀뚱히 서 있었다.
따라 들어가야 하나.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쩔 줄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더글라스가 손짓했다. 하벤은 자신을 부르는 손짓에 다가갔다.
“영업 중에 죄송해요.”
“손님도 별로 없는데, 뭐. 앉아.”
그는 힘없는 하벤을 보며 씩 웃었다. 기운이 빠져 있는 상대에게 힘을 주려는 듯 과장된 웃음이었다. 그런 더글라스의 위로를 알아차린 하벤은 굳은 얼굴을 폈다. 위로하는 사람 앞에서 어두운 얼굴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벤이 얼굴을 펴자 더글라스가 바 안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마실 술과 얼음을 꺼내 왔다. 그러고는 잔에 술을 따르며 하벤에게 건넸다. 목을 축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하벤은 제 앞에 놓인 술잔을 들고 바라봤다.
“다들 뭔가 익숙하네요.”
“저 개가 아플 때마다 이렇게 찾아왔거든.”
“페트로가요?”
더글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매번 크게 아플 때마다 여기로 와서 지극정성으로 돌봤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 금방 기운을 되찾을 거야.”
“네.”
하벤은 더글라스의 말에 술잔을 들고 한 모금 머금었다. 녹은 얼음과 적절히 섞인 알코올이 마른 입안을 적셨다.
그깟 개 한 마리가 뭐라고 야단이냐는 태도가 아닌 진심으로 위로하는 말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더글라스와 선뜻 도와주는 그의 아내가 고마웠고 지금까지 늙은 개를 돌봤다는 페트로도 고마웠다. 하벤은 어릴 때도 느껴 보지 못한 끈끈한 감정에 가슴 한편이 뻐근해졌다.
그 감정에 젖어 멍하니 있는데, 앞에 앉은 더글라스가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둘 사이는 괜찮은 거지?”
뜬금없는 물음에 하벤은 더글라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지?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에게 물었다.
“뭐가요?”
“…….”
더글라스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꾹 다물었다. 말을 하려다가 마는 태도가 의아해서 다시 물으려는 찰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방 안에서 나오는 페트로를 보며 하벤이 물었다. 그러자 페트로는 손을 뻗으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에 하벤이 냉큼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니 페트로의 손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괜찮은 거야?”
“어느 정도는요. 밖에서 주워 먹은 게 목에 걸렸었나 봐요. 토하더니 금세 괜찮아졌어요.”
방 안으로 들어간 둘은 어느새 제대로 서서 자신을 반기는 개를 보며 기쁨의 대화를 이어 갔다. 하벤은 천천히 꼬리를 흔드는 개를 보며 신이 난 듯 말했고, 페트로는 그런 하벤을 보며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한눈에 봐도 우애 좋은 형제의 모습에 방을 빠져나오던 여인이 신기한 듯 말했다.
“사이가 좋네?”
“…지나치게 좋아서 문제지.”
더글라스는 가까이 붙은 두 형제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깨를 끌어안은 손을 보는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 * *
한동안 아픈 개를 돌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제법 서늘해지는 기온에 하벤은 몸에 좋다는 것을 죄다 찾아 먹이는 정성을 보이며 하루 종일 개를 돌봤고,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몫까지 도맡으며 목장 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니 각자의 일이 얼추 정해진 느낌이었다.
하벤은 엎드려서 졸고 있는 개를 쓰다듬으며 시계를 바라봤다. 어느덧 늦은 저녁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늦게 끝나는 건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페트로가 걱정이 된 하벤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네.”
“오늘도 늦게 끝났네.”
“바쁠 때라서요.”
온종일 일하고 돌아온 페트로는 하벤의 말에 대답하며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밖에서 저녁은 뭐가 좋냐고 묻자 곧바로 생각이 없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하루 종일 일해서 힘들 텐데 식사도 거르다니. 슬슬 걱정이 되었다.
욕실 밖에서 서성이던 하벤은 씻고 나온 페트로의 뒤를 따르며 이것저것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냐? 간단한 거라도 만들어 줄까? 하지만 묻는 족족 거절의 의사가 날아왔다.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지친 얼굴이 안쓰럽다. 마치 자신 때문에 더 지쳐 하는 거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하벤은 푸석푸석한 피부를 보며 말했다. 저녁 생각도 없다는데 뭐라도 해 줄까 싶어서였다. 그런 하벤의 말에 페트로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가늘게 뜬 눈으로 느릿하게 하벤의 몸을 훑었다.
푸르스름한 셔츠와 하얀 면바지를 입은 몸이 예뻤다. 특히나 약간 짧은 듯한 바짓단 아래로 보이는 얇은 발목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럼 올라탈래요?”
“뭐?”
피곤한데도 구미가 당긴다. 페트로는 멀뚱히 서 있는 하벤의 손목을 잡아끌며 말했다.
“형이 가장 필요해요. 그러니 당장 올라와요.”
소파에 앉아 가만히 쳐다봤다. 과연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늘 그랬듯이 거절의 의사를 보일까, 아니면 순순히 요구에 응할까. 호기심과 약간의 기대감에 집요하게 주시하자 하벤이 난처한 듯 시선을 피했다. 그의 입에서 확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페트로는 기분이 좋은 듯 눈꼬리를 접었다. 예전처럼 ‘싫다’라는 거절도 나오지 않는다. 그 사실만으로도 흡족했다. 그는 하벤에게 손을 뻗었다.
“얼른.”
짧은 명령에 하벤이 얼굴을 구기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소파 앞에 서서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파렴치한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진짜 이럴래?”
“싫으면 거절해도 돼요.”
미련이 없는 말투에 하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태도는 분명 섹스하자는 의미인데, 표정이 덤덤하기 그지없다. 그런 녀석의 행동이 마치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해서 짜증이 올라왔다. 재수 없어. 마음 같아서는 손을 쳐 내며 보란 듯이 콧방귀를 뀌고 싶었지만 손목을 감싸 쥔 녀석의 따뜻한 온기에 그러기 쉽지 않았다. 무심한 얼굴과는 달리 붙잡는 손길은 집요했고 손목 안쪽의 예민한 살을 지분거리는 손가락은 꽤나 애절했다.
마음속으로는 무시하라고 수없이 외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몸은 애틋한 어루만짐에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결국 하벤은 페트로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의 손목을 내어 주었다.
페트로는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하벤을 보며 손목을 잡아끌었다. 훅- 딸려 오는 몸뚱이가 긴장으로 굳어지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페트로는 자신의 무릎 위로 올라온 늘씬한 몸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듯 목청을 울렸다.
쉽게 다가오는군. 형이 어느 정도 쉬운 사람이란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런 물러 터진 몸과 마음으로 혼자 도시에 가 있었단 말인가. 순간 약간의 짜증이 올라왔지만 셔츠 아래에서 느껴지는 허리의 굴곡을 매만지며 꾹 눌렀다. 마주 보는 얼굴에 불만이 서렸지만 상관없었다.
“이런 거 이상하다니까…….”
허리부터 시작해서 둔부로 내려가는 손길에 하벤은 반항했다. 무릎에 올라타긴 했지만 이런 것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몸을 더듬는 집요한 손을 피해 무릎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하벤은 자신의 아래를 꾹 누르는 단단한 허벅지에 멈칫했다. 그러자 페트로가 허벅지를 들어 올리면서 하벤의 사타구니를 건드렸다.
“읏…….”
그는 멈추지 않고 무릎을 세워서 회음부를 꾹 눌렀다. 딱딱한 무릎 끝으로 회음부를 인정사정없이 문지르니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하벤은 곧장 자신의 몸을 바로 세워서 벗어나려 했지만 허리를 끌어안은 두 팔 때문에 소용없었다. 그는 자신을 옭아매는 팔 안에서 버둥거렸다.
“전에도 말했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요. 여기에는 우리 둘뿐이니까.”
페트로는 하벤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느리고 잔잔하지만 어딘가 무게감이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끔찍이도 싫어하는 아버지도 없어요. 형을 비난할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죠. 이어지는 속삭임에 하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허공을 주시하던 눈은 어느새 과거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기억. 그리고 그 정체성을 밝혔을 때 닥쳐온 끔찍했던 나날들. 그 기억들을 회상한 하벤은 떨리는 눈으로 페트로를 쳐다봤다.
“그러니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말해 봐요, 지금 뭘 하고 싶어요?”
“무슨…….”
마주하는 눈은 올곧다. 불안하게 이곳저곳을 바라보는 자신과 달리 페트로의 눈은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기만 하다. 마치 잔뜩 흔들리는 자신을 지탱하고 위로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하벤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작게 코웃음을 쳤다. 지금 섹스를 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녀석에게서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하다니. 스스로 한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
하지만… 괜찮지 않을까? 녀석의 말대로 지금 여기는 단둘뿐이다. 누구의 눈치도, 비난도 신경 쓸 거 없이 오로지 둘만 생각하면 된다. 하벤은 곧바로 페트로의 질문을 되뇌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거… 그는 자신의 몸을 꿰뚫었던 굵은 성기를 떠올렸다. 박기만 했던 자신에게 또 다른 쾌감과 절정을 알려 준 동생의 그것. 엉덩이 아래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살덩어리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젠장, 알았어. 알았다고.”
마침내 결심한 하벤은 페트로의 상체를 소파 등받이로 밀쳤다. 줄곧 애매하게 굴었던 그답지 않게 확고한 태도였다. 페트로는 달라진 하벤의 행동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드디어 고대하던 시간이 도래했다.
하벤은 페트로의 바지춤에 손을 올렸다.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자 불룩한 속옷 앞부분이 드러났다. 하벤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 위로 올라타며 자신의 하체를 문질렀다.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성기를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고양감에 휩싸였다. 처음엔 동생과 이런 짓을 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충격 따윈 찾을 수 없다. 그저 하벤은 자신을 휘어잡는 페트로와의 섹스를 떠올리며 기대할 뿐이었다.
“하아…….”
허겁지겁 자신의 바지를 벗은 하벤은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기만 하는 페트로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피곤하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하벤은 그런 녀석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차라리 여기저기 만지고 박았을 때가 더 나았지 이렇게 손 놓고 있으니 난처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욕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터라 어쩔 수 없다. 하벤은 곧바로 페트로의 성기를 꺼냈다.
속옷 안에 들어 있는 성기를 꺼내 들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굵은 몽둥이 같은 성기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이걸로 안을 쑤실 때에 느낌이 생생하다. 하벤은 한 손으로 성기를 쓸어내리며 다른 손으로 자신의 아래를 더듬었다. 둔덕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자 벌써부터 벌름거리는 구멍이 만져졌다. 그는 조금 주저하다가 천천히 검지를 집어넣었다.
“윽!”
마른 구멍을 억지로 벌리자 입구가 따끔했다. 지난번처럼 페트로가 혀로 핥아 주면 이렇게 아프진 않을 텐데. 하벤은 괜한 억울함에 다른 손에 쥔 성기를 단단히 움켜잡았다. 강한 힘에 아플 만도 한데 페트로는 음, 하는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이런 심술조차도 그에게는 흥분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하벤은 하는 수 없이 입구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안으로 들어간 손가락이 하나에서 두 개, 그리고 세 개로 늘어나자 하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내부를 늘리기 위한 오랜 준비에 벌써부터 지쳤다. 이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근질거리는 내벽에 멈출 수 없었다.
손가락 세 개가 얼추 수월하게 드나들자 하벤은 다급하게 페트로의 성기를 움직여 구멍에 조준했다. 벌써부터 힘을 받아 단단히 선 기둥 끝에는 묽은 액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액을 훔쳐 와 기둥 전체에 펴 발랐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들어 올려 그 위로 천천히 앉았다.
“아, 아파… 으응!”
둥근 귀두가 구멍에 닿았다. 하벤은 매끈한 귀두 끝이 녹진하게 풀어진 살을 가르고 들어오는 생생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너무 굵어… 하벤은 신음하듯이 중얼거리며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하으…….”
겨우 귀두를 집어삼키자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핏줄이 선 성난 기둥을 야금야금 집어삼키며 주저앉은 하벤은 거친 숨을 골랐다. 페트로의 하체에 엉덩이를 문지르자 엉덩이 아래에서 거친 음모가 느껴졌다.
하벤은 힘겹게 성기를 조이며 두 손을 자신의 가슴께에 올렸다. 어느새 단단해진 유두가 셔츠에 쓸려서 신경이 쓰였다. 만지고 싶다. 꼬집고 싶어. 그는 자신을 관찰하는 페트로의 시선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얇은 셔츠 위로 조금씩 유두를 건드렸다. 처음에는 손가락 끝으로 건드리더니, 이내 두 손가락으로 꼬집고 비틀었다.
유두를 꼬집고 구멍을 조이며 할딱이는데 앞에서 불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끝나요? 얼른 엉덩이를 흔들어야죠.”
페트로는 움직일 생각을 않는 하벤을 재촉했다. 파들거리는 둔부 살을 움켜쥐며 말했지만 도통 시원스럽게 움직이지 못한다. 결국 참다못한 페트로가 그의 엉덩이를 내려치며 명령했다.
짜악!
“아…!”
“빨리 움직여요.”
사나운 명령에 하벤이 겨우 하체를 움직였다. 앞뒤로 흔들며 동생의 명령에 따랐지만 돌아오는 건 성난 허리 짓이었다.
“페, 페트로!”
페트로는 무게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려는 하벤의 상체를 붙잡으며 허리를 움직였다. 매끈한 등을 붙잡으며 빠르게 허리를 털자 위에 올라탄 하벤의 몸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그는 꼬집고 있던 자신의 유두를 놓고 곧장 페트로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거 같은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아, 응! 으응! 거기, 거기… 더! 아!”
“발정 난 암캐에요? 응? 침을 질질 흘리겠어.”
자신의 머리를 끌어안고 헐떡이는 하벤을 보며 모진 말을 내뱉은 페트로는 눈앞에 있는 가슴팍에 입술을 묻었다. 얇은 셔츠 위로 딱딱한 젖꼭지를 물고 빨자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신음 소리에 곧장 셔츠 단추를 풀고 젖꼭지를 쪽쪽 빨았다. 그러자 혀끝에서 단물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맛깔나게 양쪽 유두를 먹어 치운 그는 숨을 할딱이는 하벤의 상체를 끌어안으며 허리를 튕겼다. 앉은 소파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페트로는 자지에 쩍쩍 달라붙는 쫄깃한 내벽을 즐기기에 급급했고 하벤은 배 속을 들쑤시는 굵은 기둥을 맛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배, 배 속이… 흐으응! 간지러워… 응…….”
하벤은 일부러 간지러운 지점을 비껴가는 성기에 애가 탔다. 거기만 찔러 주면 소원이 없을 거 같은데, 어째서 페트로는 엉뚱한 곳을 찌르는지 모르겠다. 하벤은 아래를 쑤시는 성기에 박자를 맞추듯 허리를 돌리며 저도 모르게 투정을 부렸다. 그런 투정 어린 작은 신음에 페트로가 이죽거렸다.
“간지러워요?”
“으, 응…….”
“왜 간지러울까. 제대로 찌른 거 같은데.”
어느새 뭉근해진 허리의 움직임에 하벤은 가쁜 숨을 내쉬며 품에 안은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제대로 쑤셔 줬으면 하고 바라는데 순간 눈앞이 빙글 돌았다. 눈앞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얼마 안 가 머리 뒤로 푹신한 소파가 닿았다. 위에 올라탔던 하벤은 어느새 소파에 처박혔다. 갑자기 바뀐 자세에 어리둥절했다.
“어쩔 수 없네요. 배 속을 가득 채워 주는 수밖에.”
소파에 누운 하벤은 어느새 자신의 위로 올라탄 페트로를 보며 눈을 굴렸다. 성기를 꽂은 상태로 자세만 바꾼 걸 보니 이제 제대로 박을 생각인가 보다. 하벤은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보이는 은밀한 연결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이제 그토록 기다리던 쾌감이 다가올 순간을 기다렸다.
“어… 어… 잠깐, 잠깐만, 페트로! 뭐 하는 거야? 아…!”
하지만 그 기대도 잠시, 하벤은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분명 페트로는 성기를 박은 채 가만히 있는데 배 속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찼다. 당황한 하벤이 몸부림을 치자 가만히 있던 페트로가 그의 다리를 붙잡고 벌렸다.
“음…….”
“흐윽, 뜨거워…! 그만, 그만해!”
벌어진 다리 사이로 힘이 들어간 페트로의 아랫배가 보였다. 순간 덜컥 겁이 난 하벤이 그만두라고 외쳤지만 페트로는 듣지 않았다. 그는 보란 듯이 성기를 깊숙이 박아 아랫배에 힘을 주며 뜨거운 물줄기를 쏟아 냈다.
“아아! 그, 그으…만… 흐으윽!”
하벤이 예민한 내벽을 강하게 때리는 힘찬 물줄기에 자지러졌다. 지금 뭘 하는 거지? 머릿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숨만 헐떡이자 배 속에 가득 찬 소변이 느껴졌다. 기겁한 하벤이 붙잡힌 두 다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아, 안에… 읏! 싸지… 마 …으응! 헉!”
또 한 차례 쏟아진 물줄기가 전립선을 건드렸다. 고개가 뒤로 넘어간 하벤은 절정에 도달한 듯 몸을 떨었다. 한껏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삼키지 못한 맑은 타액이 흘러내렸다. 페트로는 잡고 있던 하벤의 두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마지막 소변까지 안에 쏟아 낸 그는 잡은 다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착해라, 소변도 잘 받아먹네요.”
“흐…으…….”
박아 넣은 성기를 빼자 다물지 못한 구멍 사이로 묽은 물줄기가 주르륵 나왔다. 깊숙한 곳에 싸지른 소변이 흘러나와 붉게 부어오른 둔부 사이로 흘러내렸다.
페트로는 자신의 소변으로 더러워진 하벤의 사타구니를 보며 만족스레 웃었다. 그의 몸 구석구석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에 희열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래, 형은 여기 있어야지. 바로 여기, 내 아래에서. 페트로는 어느새 정액을 분출하는 하벤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형.”
“읏… 흐으윽!”
“형도 나에게 목맸으면 좋겠어요.”
“하아! 아…!”
작게 속삭이는 소리는 하벤의 신음에 묻혔다. 하벤은 페트로가 하는 말을 듣지도 못하고 그저 사정하는 데 집중했다. 더 세게 잡아 줬으면, 더 흔들어 줬으면. 기둥을 잡은 채 가만히 있는 손에 하벤은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사정의 여운을 느꼈다.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예요. 형이 나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도록.”
페트로는 아래에서 들리는 헐떡이는 호흡과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신음 소리에 짙은 웃음을 지었다. 그가 바라던 꿈이 머지않아 다가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 * *
등을 덮는 부드러운 이불 감촉에 어렴풋이 잠에서 깼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하벤은 잠결에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손끝에 닿는 머리카락은 약간 푸석하면서 조금은 부드러웠다. 손끝으로 조심히 잡아당기자 옆에서 커다란 몸이 훅 다가왔다.
하벤은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온 이를 바라봤다. 전라의 몸과 자고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정을 나누고 난 뒤의 나른한 눈빛. 그 모습에서 어젯밤의 정사를 떠올린 하벤은 이제 자책과 혼란이 아닌 차분함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인정을 하니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다. 동생과 붙어먹은 주제에 이런 감정을 느낀다니, 하벤은 품으로 들어오는 머리를 끌어안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품에 안긴 페트로는 잠시 얌전히 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쇄골을 깨물었다. 앞니로 잘근 물던 그는 입술을 모아 살갗을 빨며 외설적인 소리를 냈다. 춥, 츄읍. 타액이 쇄골과 목을 적셨다.
“하아…….”
하벤은 그런 페트로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꽉 끌어안으며 헐떡일 뿐이다. 동생을 품에 안은 그는 달뜬 신음을 흘리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편안함이었다.
* * *
“징그러…….”
부엌에 서서 생닭을 이리저리 만지던 하벤은 칼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토막을 내기 위해 칼을 들었지만 건드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그는 하는 수 없이 눈을 감고 칼을 들어 올렸다.
그가 이른 오후부터 칼을 들고 생닭과 대치 중인 이유는 아침 식사 때문이었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는 페트로를 위해 부랴부랴 아침을 차렸는데, 다 차리고 보니까 새삼 빈약하기 그지없는 요리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이렇게 만들어서 줬던가? 갑자기 드는 의문에 하벤은 자신이 직접 식사를 준비하면서 식탁 위가 풍족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익숙한 재료로만 만들다 보니 늘 같은 요리가 나왔었다. 심지어 그다지 맛있는 것도 아니고 양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식사를 받고도 불평은커녕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페트로를 보며 하벤은 민망함에 몸서리를 쳤다. 자신의 몫까지 열심히 일하는 녀석을 정성껏 챙겨 줘도 모자랄 판에 이런 허접한 식사를 차려 주다니.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하벤은 저녁만큼은 맛있고 푸짐하게 준비하리라 다짐했다.
탕-.
“으, 잘랐다.”
어설픈 칼질로는 잘리지 않던 생닭이 여러 번 힘차게 내려치니 겨우 조각이 났다. 뼈가 잘리는 느낌에 몸서리를 치던 하벤은 용기 내어 몇 번 더 조각냈다. 있는 힘껏 칼로 내려치자 살이 꽤 작게 잘렸다. 하벤은 닭 조각을 한쪽으로 치우며 찬장을 열었다. 그러고는 탐탁지 않은 눈으로 찬장을 샅샅이 살폈다. 여기 오고 나서부터 한 번도 장을 보지 않았던 터라 쓸 만한 재료가 별로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장부터 봐야겠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시간을 확인한 하벤은 거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놓인 외투와 페트로의 차 키를 챙기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거실 바닥에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집을 나섰다.
집 밖으로 나가서 차고까지 걸어가는 내내 페트로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축사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하벤은 잠시 차와 축사를 번갈아 보다가 냉큼 차 문을 열고 안에 올라탔다. 잠깐 빌려 타는 거니까 허락은 받지 않아도 되겠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시동을 걸었다.
목장에서 작은 마트까지 차로 삼십 분.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어서 한번 가려면 큰마음을 먹고 가야 했다. 이왕 가는 거 식료품을 많이 사야겠다. 자신과 동생, 성인 남자 둘이 먹을 양이면 꽤 많이 필요할 것이다. 하벤은 어느새 둘의 식단을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쇼핑 리스트를 적어 내려갔다.
차는 목장 밖으로 빠져나가 익숙한 길을 내달렸다. 창밖에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얼마 안 가 저 멀리서 강이 나타났다. 운전대를 잡은 하벤은 힐끔 옆을 쳐다보며 강을 눈에 담았다. 여기는 정말 바뀐 게 하나도 없구나. 하벤은 어린 시절에 지겹게 놀러 다녔던 강을 보며 살포시 웃었다.
강은 이 근방에 사는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노는 장소였다. 자신은 물론이고 나중에 이 마을로 온 페트로도 그랬다. 강에서 나뭇가지 하나 들고 낚시를 하기도 하고 어디선가 구해 온 그물로 어설프게 어부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하벤의 뒤에는 늘 페트로가 조용히 따라붙었다. 딱히 놀이에 흥미를 보이는 것도 아닌데 밖으로 돌아다니는 자신의 뒤를 매일같이 따랐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달리니 어느새 저 멀리서 작은 마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벤은 강에서 눈을 떼며 앞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기억이지만 다시 떠올리니 감회가 꽤 새롭다. 그는 다시금 느껴지는 추억에 입꼬리를 올리며 차를 세웠다.
마트 안으로 들어선 하벤은 카트를 밀며 익숙한 듯 내부를 돌았다. 예전에 자주 다녔던 마트는 물건 위치도 거의 그대로라 물건을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벤은 생각해 둔 식재료와 필요한 생필품을 카트에 담고 금방 카운터로 향했다.
“이런.”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자 구겨진 종이가 딸려 나왔다. 이제 보니 변호사에게 주려고 챙겼던 기차표였다. 하벤은 그것을 주우려다가 옆에서 누군가 대신 주워 주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려는데, 종이를 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만나네요.”
“아.”
놀랍게도 종이를 주워 준 이는 변호사였다. 하벤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변호사를 올려다봤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정장 차림이 아닌 꽤 편안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나이 들어 보이는 중절모도 없어서 첫 만남 때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그런 변호사를 가만히 보고 있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몸이 괜찮은가 보군요.”
“아… 네.”
그의 말에 하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괜히 정액을 머금었던 느낌이 되살아나는 듯해서 저절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망할, 그날만 생각하면 창피해서 얼굴이 달아오를 것 같다. 하벤은 애먼 기억을 떨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며칠 전에 찾아가려고 했었어요.”
“그렇습니까?”
하벤은 변호사가 주워 준 기차표를 보이며 웃었다. 일에 대한 내용이라는 뜻을 알아들은 변호사는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밖으로 나갈까요?”
“아, 그래요.”
계산을 하고 나가겠다고 덧붙이자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마트를 나섰다. 하벤은 물건을 계산하는 내내 창밖을 바라봤다. 홀로 밖으로 나간 그는 어느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렇게 보니 또 다르구나. 하벤은 꽤 낯선 느낌에 어깨를 으쓱 올렸다.
구입한 물건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자 변호사가 다가왔다. 얼른 차에 놓고 나오겠다는 말에 그는 같이 짐을 옮겨 주겠다며 나섰다. 호의는 고마웠지만 크게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아서 거절했다.
“식사를 하면서 얘기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좀 그런데… 저녁때는 집에 가야 해서요. 페트로가 기다리거든요.”
하벤의 말에 변호사는 잠시 그를 쳐다봤다. 말없이 바라보는 눈에 이채가 돌았다. 하벤은 대답을 하면서도 멋쩍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변호사를 바라봤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변호사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자세한 대화는 내일 만나서 얘기하도록 하죠.”
“네.”
저는 언제든지 좋아요. 이어지는 말에 변호사는 작게 웃었다. 그날도 느꼈지만 제 형제와 정말 다른 사람이다. 쉽게 드러내는 웃음과 마치 싱그러운 풀을 담은 듯한 눈빛이 그랬다. 변호사는 말간 얼굴을 보며 충동적으로 말을 꺼냈다.
“그것보다 잘 지냈는지 궁금하네요.”
“네?”
“두 분 말입니다. 두 분이서 오랜만에 만난 거라고 알고 있는데요.”
하벤은 갑작스러운 물음에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줄곧 유산에 대해서만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안부를 물으니 조금 어색했다. 물론 예의상 안부를 묻기는 하지만 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 지내죠. 형제인데.”
“그렇습니까?”
변호사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하벤은 그것이 퍽 신경 쓰여서 변호사를 쳐다봤지만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둘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자 보다 못한 하벤이 그를 불렀다.
“샌더스 씨,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하벤의 부름에 변호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젊은 청년을 바라봤다. 햇빛을 받은 얼굴은 맑기만 하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변호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시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하벤은 변호사의 물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오지랖이 있거나 친한 이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만 자신에게는 초면이나 다름없는 변호사가 저런 사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너무 의아했다. 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고 뜬금없이 왜 물어보는 거지? 하벤은 의심쩍은 눈으로 그를 보다가 이내 관심을 끊었다. 뭐, 별 뜻 없이 물어본 거겠지. 오늘 자신은 너무 바쁠 예정이라 저런 질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차 트렁크에 넣어 놓은 짐을 떠올린 하벤은 변호사에게 말했다. 이만 갈까요?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집으로 찾아갈까요?”
“그러면 저야 좋죠.”
변호사는 차 문을 여는 하벤에게 말했다. 정확히 몇 시쯤에 오겠다는 말은 안 했지만 저번처럼 일찍 오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에 묻지 않았다. 하벤은 운전석에 올라타며 인사를 건네려고 하는데, 순간 손목을 강하게 붙잡는 손이 느껴졌다. 손목을 틀어쥐는 힘에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드니 이쪽을 내려다보는 변호사가 보였다. 그의 시선은 하벤의 얼굴에서 약간 아래로 향해 있었다.
“왜 그래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내일 저녁때 술집에서 뵙죠. 꼭 나오셔야 합니다.”
“…아, 알겠어요.”
하벤이 순순히 대답하자 변호사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말만 하면 되지 왜 손목을 잡고 난리야. 욱신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변호사를 흘겨봤지만 그는 이렇다 할 변명도, 사과도 없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먼저 갈게요.”
하벤은 이상한 기분에 황급히 차 문을 닫았다.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을 때까지 밖에 선 변호사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제자리에 서 있었다.
“도대체 뭐야.”
차를 끌던 하벤은 사이드미러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저 사람이 이상하다. 갑자기 쓸데없는 걸 묻지를 않나, 사람의 손목을 대뜸 움켜잡지를 않나. 생긴 거와 어울리지 않는 그의 무례한 행동을 떠올리며 하벤은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결국 사이드미러에서 시선을 거두며 앞을 바라봤다.
한참을 달려 목장에 도착한 하벤은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들었다.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사다 보니 짐이 꽤 많아졌다. 품에 한가득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현관 옆에서 엎드려 있던 개가 꼬리를 흔들며 조용히 반겼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손이 모자란 탓에 다녀왔다는 인사만 건넸다.
걸음을 옮겨 부엌으로 향하는데 거실 한가운데 놓인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한창 일하고 있어야 할 페트로였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온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벌써 일 끝났어?”
하벤은 식탁 위에 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식재료부터 하나씩 꺼내던 그는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의아한 듯 뒤를 돌아봤다. 소파에 앉은 페트로가 이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 말이 없어? 이어지는 물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보다 못한 하벤이 들고 있던 브로콜리와 당근을 내려놓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어디 갔었어요?”
“장 보러 갔었어. 집에 먹을 게 없더라.”
소파 근처까지 다가가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평소와 같은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얼굴에 진 그늘이 심상치 않았다. 하벤은 그 얼굴을 보며 소파 옆에 멈춰 섰다. 말도 없이 사라져서 걱정을 했나?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으며 페트로의 어깨를 건들자 녀석이 허리를 휘감았다.
“나랑 가지 그랬어요.”
“너 바쁘잖아.”
툭 튀어나온 불평에 하벤이 힐끔 페트로를 살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하벤은 허리를 강하게 옭아매는 팔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너를 위해 근사한 저녁을 차려 주려고 장을 봤지.”
“다음부터는 나한테 말하고 가요.”
일부러 아부 섞인 말을 했지만 찡그러진 미간이 풀릴 생각을 않는다. 평소에도 무뚝뚝한 녀석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정도가 심하다. 하벤은 점차 조여 오는 허리에 몸을 틀었다. 빈틈없이 허리를 휘감은 팔뚝을 잡고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별일 없었어. 빨리 오려고 했는데 거기서 변호사를 만나서 잠깐 대화 좀 하고 왔어. 그것뿐이야.”
그렇게 늦지도 않았는데 이러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말없이 차를 끌고 가서 그러는 건가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반응이 좀 과했다. 하벤이 따져 묻자 페트로의 팔이 움직였다. 끌어안은 허리를 당겨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이 꼴로요?”
“뭐?”
페트로의 눈은 아래를 향해 있었다. 그를 따라 고개를 숙은 하벤은 단추 한두 개가 풀어진 자신의 셔츠를 발견했다. 단추를 잠그는 데 신경 쓰지 않은 탓인지 셔츠 앞섶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이게 뭐 어떠냐고 물으려다, 벌어진 틈으로 훤히 드러난 가슴을 발견했다. 가슴에는 울긋불긋한 울혈과 선명하게 새겨진 치아 자국이 가득했다. 이게 언제… 아! 하벤은 새벽에 자신의 가슴을 빨았던 페트로를 떠올렸다. 품에 안겨 부드럽게 빠는 것을 그냥 내버려 뒀더니 이 꼴이 되고 말았나 보다.
“이런 꼴로 그 남자랑 만난 거예요?”
그 남자? 페트로의 질문에 하벤은 마트 앞에서 만났던 변호사를 떠올렸다. 설마 봤을까. 경악한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페트로의 날카로운 눈과 마주쳤다. 하벤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녀석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말해 봐요. 그 남자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어디서 거하게 몸을 굴렸다고 알리고 싶어서?”
물어보는 말투였지만 작게 속삭이는 것이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하벤은 작은 속삭임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페트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면 이런 천박한 꼴로 꼬시려고 그런 거예요?”
“너…!”
도를 넘는 말에 하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좋았던 사이가 한순간에 틀어지는 것 같았다. 또 어디에 꽂혀서 저 난리일까. 성질이 뻗친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재료들을 보니 또다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거칠게 집어 들었다. 저런 녀석을 위해서 저녁을 차리기는 개뿔. 씩씩거리던 그는 재료를 하나둘씩 치웠다.
그러기를 한참, 등 뒤에서 어깨를 잡아 누르는 손길에 하벤의 몸이 식탁 위로 엎어졌다.
“윽, 뭐야!”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
어느새 소파에서 일어나 등 뒤로 다가온 페트로가 하벤의 상체를 누르며 말했다. 등을 누르고 목을 붙잡자 거짓말처럼 힘이 빠졌다. 하벤은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에 억눌린 신음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딱딱한 식탁에 가슴이 눌려서 고통스러웠다.
“그 남자에게 물고 빨린 젖을 보여 주면서 유혹했어요?”
“비켜…!”
하벤의 고함에도 페트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제 아래에 깔린 몸을 어루만지며 계속해서 물었다. 부어오른 유두를 보여 줬어요? 치아 자국이 난 유륜을 보여 줬나요? 위에서 쏟아지는 낯 뜨거운 음담패설에 하벤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그만하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목덜미를 누르는 힘만 거세질 뿐이었다.
“컥.”
“그러니까 왜 혼자 나갔어요.”
결국 저게 이유였구나. 하벤은 페트로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자기가 무슨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아니고 혼자 두고 외출했다고 이런 식으로 화풀이를 하다니. 어처구니없어진 하벤은 자신의 목을 누른 손을 붙잡았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목을 잡고 한참을 누르던 페트로가 불현듯 위에 올라탔다. 커다란 체구답게 무게가 상당했다. 하벤이 흉부를 터트릴 거 같은 무게에 괴로워했지만 페트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되레 하벤의 엉덩이에 자신의 하체를 붙이며 가까이 밀착했다. 위에 올라탄 페트로와 식탁 사이에 끼인 하벤은 겨우 숨을 내뱉었다. 당장 내장이 터져 버릴 거 같았다.
“으윽…….”
“자꾸 그러면 혼내 줄 거예요.”
페트로는 셔츠 뒷부분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뒤로 당겨진 셔츠 사이로 하벤의 목덜미가 드러났다. 제 흔적으로 지저분한 가슴, 쇄골과 달리 깨끗한 목덜미를 본 그는 망설임 없이 물어뜯었다.
“크윽!”
살이 뜯기는 듯한 아픔에 고통 섞인 비명을 토해 내고 싶었지만 억눌린 흉부 때문에 쉽지 않았다. 겨우 색색 숨을 내쉬던 하벤은 화끈거리는 목덜미가 축축하게 젖어 가는 것을 느꼈다. 따끔한 것이 아마 피를 본 게 아닌가 싶었다. 놀란 그는 겨우 팔꿈치를 세워 등 뒤를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쯧.”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몸부림을 보며 혀를 찼다. 감히 말도 없이 사라진 주제에 반항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장을 봤다는 알랑거리는 말에 넘어갈 뻔했지만 그의 잔뜩 풀어진 꼴을 보니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 풀어진 셔츠와 그 사이로 보이는 붉은 울혈. 그리고 그 아래에 숨은 약간 부푼 유두까지. 이런 꼴로 돌아다닌 것도 모자라서 남자를 만났고 왔다니. 페트로는 깨문 살을 있는 힘껏 씹었다. 그러자 입안 가득 비릿한 쇠 맛이 퍼지기 시작했다.
“으흑! 아, 아파.”
밑에서 꼼지락거리는 몸을 내리누르며 상처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를 빨았다. 긴 혀를 내밀어 목덜미를 쓸어 올리자 예민한 몸이 움칠거린다. 역시 예민하다. 목덜미와 그 아래에 자리 잡은 승모근을 빨아 당기자 꽤 솔직한 반응이 돌아왔다.
“읏, 후으…….”
가쁜 숨소리 사이로 들리는 신음 소리가 애처롭기 그지없다. 페트로는 두 손으로 하벤의 양옆을 짚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숨통이 트인 하벤은 팔로 식탁을 짚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갑갑해서 죽을 뻔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 내뱉은 그는 아직 자신의 위에서 비키지 않은 페트로를 쳐다봤다.
“저리… 으읏…!”
식탁을 짚은 팔을 밀어내는데, 뒤에서 엉덩이를 누르는 힘이 느껴졌다. 하벤은 자신의 엉덩이에 착 달라붙은 페트로의 하체를 보며 이를 갈았다. 목덜미를 물어뜯은 것으로 녀석의 심술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엉덩이를 누르는 하체의 힘이 꽤 묵직했다. 하벤은 벗어나기 위해 반쯤 접힌 무릎을 바로 세우려고 했지만 이내 목덜미를 무는 힘에 다시 엎어지고 말았다.
“윽…….”
미치겠다. 아까부터 성기가 식탁 모서리에 눌려서 신경 쓰인다. 하벤은 예민한 곳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하반신을 이리저리 들썩였다. 고간이 아프면서도 묘하게 저릿했다. 식탁 모서리를 피해 엉덩이를 뒤로 쭉 빼려던 하벤은 또다시 밀어붙이는 페트로의 하체에 또 한 번 식탁에 성기를 문지르고 말았다.
“아흑!”
하벤의 신음을 들은 페트로는 눈을 아래로 내렸다. 자신의 아래에서 움찔거리는 몸이 심상치 않다. 그는 식탁을 짚었던 손을 내려 하벤의 고간을 쓸었다. 모서리 끝에 눌린 성기가 조금 부풀었다. 이렇게도 느끼는군. 페트로는 물고 있던 목덜미를 놓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요. 형이 없어지는 줄 알고 놀랐단 말이에요.”
“후으.”
“대답 안 해요?”
“하아… 알겠어. 알게… 으응!”
마치 섹스를 하듯 허리를 흔들자 밑에 깔린 하벤이 몸서리를 친다. 얇은 바지 너머로 느껴지는 탱탱한 엉덩이에 성기를 문지르자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혼내려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서로의 욕구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되었다.
하벤은 힘차게 앞으로 밀어붙이는 페트로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작정하고 움직이는 하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짐승처럼 목덜미를 문 채 허리를 튕기는 페트로 때문에 하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식탁 위에 엎어져서 할딱거리는 거밖에 없었다.
“응, 으응… 아파, 페트로…….”
앞에는 부푼 성기를 누르는 뾰족한 식탁이, 뒤에는 당장이라도 구멍에 성기를 박을 거 같은 동생의 거친 몸동작이 하벤을 괴롭혔다. 그는 원치 않은 페팅에 괴로워하다가 슬쩍 허리를 들썩였다. 통증 속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야릇한 자극에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하벤은 통증에 앓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모서리에 성기를 문지르는 데 집중했다.
끼익, 끼익. 두 남자의 무게에 식탁이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하벤은 손을 아래로 내려 모서리에 짓눌린 성기를 감싸 쥐려고 했지만 페트로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하벤의 손을 붙잡아 식탁 위에 고정하며 말했다.
“싸고 싶어요?”
“응, 싸고 싶어… 쌀래. 하아…….”
성기는 완전히 기립했고 문지르는 것으로는 더 이상 성이 차지 않았다. 당장 바지를 내리고 자위를 하고 싶었다. 한껏 달아오른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 그런 하벤의 요구에 페트로는 양손을 붙잡고 하체를 문질렀다. 싸고 싶다는 솔직한 말에도 순순히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에서 조금씩 싹트는 음습한 감정을 느끼며 하벤의 바지 지퍼에 손을 댔다.
“그러면 혼자 싸 봐요.”
“흐으… 으, 응?”
“혼자서 잘만 돌아다녔는데, 싸는 것도 혼자 해야죠.”
페트로는 의아해하는 하벤을 뒤로하고 그의 바지를 내렸다. 앞이 젖은 속옷마저 벗기자 끈적한 쿠퍼액으로 더러워진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페트로는 그것을 건들지도 않고 하벤의 몸을 눌렀다. 엎어진 몸 위로 그가 말했다.
“자, 뭐 해요. 얼른 문질러야죠.”
우물쭈물하는 하벤의 모습에 페트로는 등 뒤에 붙어서 허리를 움직였다. 페트로의 움직임에 덩달아 하체를 흔든 하벤은 차가운 식탁에 성기를 문지르며 부르르 떨었다.
맨성기에 닿는 식탁은 훨씬 차갑고 딱딱했다. 발기한 성기를 어쩔 줄 몰라 하던 하벤은 페트로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다 이내 스스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뜨거운 성기에 닿는 찬기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천천히 귀두 끝을 비비다가 이내 기둥 전체를 비볐다.
페트로는 얌전히 허리를 흔드는 하벤을 보며 뒤로 물러났다. 식탁에 올라타서 정신없이 고간을 비비는 꼴이 음란하기 그지없었다. 식탁에 뭉개진 성기와 동그랗게 튀어나온 고환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흔들렸다. 성기를 보던 페트로는 회음부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움찔거리는 구멍이 눈에 들어오자 참을 수 없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오물거리는 게 당장이라도 쑤셔 달라고 조르는 것 같았다.
“기분 좋아 보이네. 내 자지는 필요 없나 봐요?”
“아, 아니야… 필요해… 흐읏! 아, 좋아… 으윽.”
어느새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꺼낸 페트로가 하벤에게 말했다. 하벤은 고개를 흔들며 부정하면서도 뾰족한 모서리에 성기를 문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그는 기둥뿐만 아니라 부푼 고환도 문질렀다. 금방 사정할 거 같은 기분에 성기가 아파져도 멈출 수 없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허리는 이내 리듬을 타는 듯 빠르게 흔들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쌀 거 같은데… 집중하던 그는 자신의 허리를 잡는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페트로가 허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하던 거 마저 해요.”
“무… 무슨… 으윽, 아… 아아…….”
페트로는 꺼내 든 자신의 성기로 하벤의 엉덩이 사이를 툭툭 두들겼다. 일부러 벌름거리는 구멍 위를 때리자 하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어느새 이쪽에 시선을 고정한 하벤의 얼굴이 보였다. 잔뜩 기대감이 서린 눈동자에 페트로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왜 그렇게 봐요? 혹시 이걸 바라는 거예요?”
그는 보란 듯이 잡은 성기 끝을 구멍에 비볐다. 선단에 맺힌 끈적한 쿠퍼액이 메마른 구멍을 적셨다. 하벤은 맞다는 듯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당장 저 굵은 게 안으로 들어와서 예민한 내벽을 쑤셔 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을 외면한 페트로는 둔부 사이로 성기를 끼워 천천히 하체를 들썩였다.
“아, 싫어… 으으, 쑤셔 줘…….”
“이거 없이도 갈 거 같은데요?”
“아아!”
엉덩이 골에 성기를 넣은 페트로는 허리를 단단히 잡고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에 덩달아 몸이 흔들리기 시작한 하벤은 짓눌린 성기에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페트로의 허리는 무자비했다. 하벤은 이대로 손 놓고 있다면 아래에 깔린 성기가 터질 거 같아서 두 손으로 식탁을 짚었다. 힘찬 허리 짓에 식탁은 덜컹거렸다.
“아! 안 돼… 터, 터질 거 같아! 으흑!”
하벤은 자신이 쾌감을 느끼는 건지 고통을 느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신음만 흘리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흔들리던 그는 부푼 성기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끓어오른 사정감이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았다. 치미는 사정 욕구에 갈 거 같다고 중얼거리자 등 뒤의 몸짓이 더욱 거칠어졌다.
“아, 으으윽……!”
자지러지는 신음과 함께 식탁 위로 뿌연 정액이 뿌려졌다. 강렬한 사정에 헐떡이던 하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꾸라졌다. 오르내리는 등 뒤로 페트로가 자신의 성기를 빠르게 흔들었다. 지쳐 버린 형을 끝까지 괴롭히고 싶었지만 꾹 참은 그는 성기 끝을 애널에 맞추고 정액을 쏟아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구멍을 뜨겁게 적신 정액이 회음부를 타고 흘러 고환 끝에 맺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정을 끝낸 페트로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식탁 위에 널브러진 하벤을 바라봤다. 겨우 바닥을 디딘 두 다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고 훤히 드러난 사타구니는 하얀 탁액으로 흥건했다. 그런 자신의 형을 두 눈에 담던 페트로는 가까이 다가가 핏방울이 맺힌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몸 곳곳에 남은 제 흔적이 반가웠던 그는 느릿하게 속삭였다.
“역시 형한테는 내가 필요해요, 그렇죠?”
그 속삭임에 반응이라도 하듯 힘을 잃고 축 늘어진 몸이 작게 움찔거렸다.
* * *
“흐음.”
“그만 따라붙지?”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근 하벤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페트로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아침부터 귀찮게 따라붙더니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뒤에서 알짱거리는 녀석을 무시하고 거울을 바라보니 초췌한 얼굴이 나타났다. 푸석한 피부, 거뭇한 눈 밑은 누가 봐도 밤새 시달린 남자의 얼굴이었다. 하벤은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 식탁에서 시작된 애무는 장소를 바꿔서 계속 이어졌다. 페트로는 사정으로 진이 빠진 하벤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욕심을 채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액으로 흥건하게 젖은 애널을 보며 풀어 주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을 한 그는 무작정 성기를 박아 넣었다. 그렇게 시작된 색사는 저녁을 지나 밤새 계속되었다.
내내 이어진 몇 번의 삽입과 사정으로 쌓인 피로는 아침이 되고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벤은 뻐근한 허리를 톡톡 두들기며 페트로를 돌아봤다.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서서 불만스레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쳐다보고만 있자 그가 먼저 가까이 다가왔다.
“이 정도면 많이 참은 거예요.”
“으읏.”
코앞까지 다가온 페트로는 고개를 숙여 하벤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그러고는 입을 벌려 셔츠 위를 깨물었다. 살짝 문 거 같았지만 셔츠 위로 느껴지는 단단한 치아의 느낌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어깨를 깨문 치아에서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 턱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하벤은 그런 녀석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투정 아닌 투정에 벌써부터 기진맥진하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머리를 툭툭 두들기다가 쓱 밀어내며 말했다. 어깨를 문 치아도 순순히 물러났다.
“그럼 나갔다 올게. 바로 올 거긴 한데, 같이 저녁 먹게 되면 조금 늦어질 수도 있어.”
“…….”
“왜 그런 표정이야?”
변호사와의 선약을 전해 들은 페트로는 딱히 별말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한 채 얌전히 있을 뿐이었다. 하벤은 그런 녀석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단순히 불만스럽다기보다는 어딘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에 과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아니에요. 얼른 다녀와요.”
말없이 바라만 보자 페트로가 등을 밀었다. 조심히 미는 손길에 현관으로 향하자 목과 어깨를 주무르던 페트로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뒤를 바라보니 잔잔하게 웃고 있는 녀석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벤은 그런 녀석을 못마땅하게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 * *
저녁 시간임에도 더글라스의 술집 주변은 조용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하벤은 휑한 술집 내부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손님이 별로 없다. 이래서 장사가 되기는 하는 걸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바 의자에 앉았다.
“어머, 반가워라. 혼자 왔어요?”
의자에 앉자 곧바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하벤은 그런 그녀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지난번 개가 아팠을 때 받았던 도움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저번에 너무 감사했어요. 덕분에 한시름 놓았어요.”
“덕분은 무슨. 내가 한 것도 별로 없는데.”
그녀는 겸손한 대답을 하면 손사래를 쳤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더욱 호감을 가진 하벤은 거듭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예의 바른 하벤의 태도에 여인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하벤을 보며 기분 좋게 웃던 그녀는 가게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이를 불러 줄까요?”
“아니요. 오늘은 만날 손님이 있어서요. 아, 들어오네요.”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변호사에 여인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라는 말을 남기며 물러났다. 하벤은 그런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가까이 다가온 변호사를 반겼다. 그는 어제보다 신경 쓴 듯한 차림새였다.
“일찍 오셨네요.”
짧은 인사를 건넨 변호사는 긴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다가오자 차가운 바람 냄새가 훅 끼쳤다. 무심코 코를 킁킁거린 하벤은 바로 옆으로 다가온 얼굴을 보며 인사했다. 그의 인사에 변호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잡고 만난 두 사람 사이에서는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하벤은 옷깃을 여미며 옆을 바라봤다. 이 알 수 없는 침묵의 원인이 자리에 착석하고 줄곧 입을 다문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벤은 침묵을 깨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건 어느 정도 준비했어요.”
하벤은 들고 온 가방을 꺼내 들며 변호사에게 말했다. 첫날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얼추 준비한 서류였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잘 몰라서 되는 대로 가져왔다는 말과 함께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설마 이게 아닌가. 하벤은 멍하니 있는 그를 보며 물었다.
“혹시 부족한가요? 필요하다면 더 준비를…….”
“아니요, 아닙니다.”
드디어 제대로 대답했다. 하벤의 말을 자른 변호사는 머리를 흔들며 입을 달싹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게 먼저일 거 같습니다.”
“어떤 거요?”
변호사는 제 앞에 놓인 서류를 한쪽으로 치웠다. 그러고는 몸을 옆으로 틀어 하벤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어제처럼 얼굴이 아닌 아래에 위치했다. 시선의 위치를 알아차린 하벤은 목 부근을 만지며 제대로 잠긴 단추를 건드렸다. 목 끝까지 잠근 단추에 그는 태연한 척 입꼬리를 당겼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여유로운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니 그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거든요.”
변호사는 말과 동시에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은 하벤의 어깨를 지나쳐 목덜미로 향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손가락이 향한 곳은 피딱지가 내려앉은 목덜미였다. 기다란 손가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상처를 쓸었다.
“읏.”
하벤은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에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직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처의 아릿한 아픔을 느끼고 나서야 상처를 짚은 변호사의 손을 알아차렸다. 목덜미를 잡고 있는 손을 쳐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조용한 내부에 울려 퍼지는 의자 소리에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붙었다. 몇 없는 시선이었지만 하벤을 당황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변호사는 얼어붙은 하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반항 없이 순순히 끌려온 하벤이 다시 의자에 앉자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
“이 상처, 그리고 쇄골에 있던 흔적들까지… 누가 만든 겁니까?”
변호사는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본 짙은 울혈과 방금 목덜미에서 발견한 물어뜯긴 듯한 상처는 그의 의혹에 불을 지피는 흔적이었다. 그는 굳어진 하벤의 얼굴을 보며 질문을 이어 갔다.
“혹시 제가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무슨 소리예요, 샌더스 씨. 누굴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걸 왜 당신한테 말해야 하는…….”
“그럼 누구의 흔적인가요?”
하벤은 색사의 흔적이라고 단정 짓는 듯한 그의 말에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울혈과 상처는 누가 봐도 명백한 타인의 흔적이었다.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수상쩍은 거짓말밖에 되지 않았다. 하벤은 경고도 없이 폭탄을 던진 변호사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동생과의 근친상간에 대해 들통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무례하게 구는 변호사의 태도를 따져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주절거리는 말을 단번에 자른 변호사는 계속해서 하벤을 압박했다. 그는 얼어붙어 대답을 않는 하벤을 보며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혹시 당신의 동생이 남긴 흔적입니까?”
고개를 숙이고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말에 순간 하벤의 눈이 요동쳤다. 그 짧은 찰나를 놓치지 않은 변호사는 입술을 다물며 반응을 살폈다. 과연 그는 뭐라고 말할까. 확실한 건 어떤 대답을 하든 활활 타오른 의심은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하벤은 이 위기를 벗어날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 왜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 묻는 것이며 거기에 이복형제인 페트로와 연관을 짓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납득이 가는 이유가 없다. 하벤은 셔츠 깃을 만지며 침을 삼켰다. 고작 이런 흔적들로 무작정 근친상간을 의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걸고넘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와 페트로는 형제입니다. 비록 아버지뿐이지만 피를 나눈 형제란 말이에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경악한 얼굴로 말하자 변호사가 입을 다물었다. 하벤은 그의 얼굴을 살피며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의심을 피해 넘어갈 수 있을까. 여기서 잘못되면 자신과 페트로의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가 들통나고 만다. 하벤은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연기를 이어 갔다. 찡그려진 표정과 경멸이 섞인 목소리를 흉내 낸 그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정말 무례하군요. 어떤 생각으로 그런 끔찍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줄곧 한 가지 의혹이 들어서 말입니다.”
변호사는 질색하는 하벤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죠? 두 번의 자필 유언장.”
또 대화 주제가 이리저리 튄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이 맥없이 풀린 하벤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갑자기 무슨 소릴…….”
“처음 작성한 유언장을 수정했을 때 제가 클로이드 씨의 곁에 있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한다. 그날 유언장을 든 자신에게 변호사는 확고한 말투로 설명했었다. 같이 있었으니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더 이상 자세한 걸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한 번 더 작성을 했구나, 이렇게 간단하게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벤이 기억한다고 답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작성한 유언장에는 당신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상속인으로 지정된 이는 페트로 씨 단 한 명뿐이었죠.”
“뭐라고요?”
변호사의 덤덤한 설명에 순간 하벤의 얼굴이 굳어졌다. 첫 번째 유언장에 자신의 이름이 없었다는 건 아버지가 자신에게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하벤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아들에게 유산을 남길 만큼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변호사는 하벤의 구겨진 얼굴을 보며 말했다.
“처음 유언장에 대한 공증을 마치고 며칠 뒤, 당신의 아버지는 또다시 저를 불렀습니다. 유언의 내용을 바꾸고 싶다면서 말이죠. 그렇게 수정한 게 두 번째 유언장입니다. 그때 당신의 이름이 상속인으로 올랐죠.”
“그럼 유언장을 수정했던 이유가… 저 때문이라는 거예요?”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길어지는 대화에 그는 손을 들어 올려 이름 모를 술을 두 잔 시켰다. 하벤은 자신의 몫까지 시키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바짝 타오르는 속에 당장에 뭐라도 들이켜고 싶었다. 술 주문을 받은 여인이 이쪽을 힐끔 쳐다봤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여인이 물러나자 변호사는 말을 이었다.
“유언장의 달라진 부분은 상속인이 한 명 늘었다는 것과 그 상속인에게 조건이 걸렸다는 겁니다. 페트로 씨를 뺀 당신한테만 말이죠.”
듣고 보니 그랬다. 6개월이라는 기간과 목장 운영이라는 구체적인 조건은 하벤의 것이었지 페트로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페트로가 혼자서 목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아니면 순전히 자신을 미워하는 아버지의 심술 때문에? 뭐가 되었든 납득하기에는 어려웠다.
“잠깐, 잠깐만요. 그래서 이게 당신이 의심한 그…것과 무슨 상관이라는 거예요?”
동생과 붙어먹었다고 의심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차마 물을 수 없었던 하벤은 말을 얼버무리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변호사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 같은 일을 제법 맡았습니다. 정치인, 갑부, 유명 배우부터 시작해서 자수성가한 집안이나 평범한 시민들의 자잘한 유산 상속까지 말이죠. 그들의 재산은 천차만별이었고 가족들과의 유대 관계도 다 달랐습니다. 죽을 때까지 다 쓰지 못할 재산을 가진 집이 있는가 하면 재산은커녕 하루 벌어먹기 힘든 집이 있고, 사랑이 넘쳐서 화목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남들보다 못한 가족도 있었죠. 어디 하나 똑같은 집안은 없었습니다.”
변호사는 마치 회상이라도 하는 듯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허공을 보며 기억을 되짚던 그는 하벤을 돌아봤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그들도 마지막에는 늘 같았습니다. 바로 유산 분할에 관해서였죠. 유산에 관해서는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납게 싸웠습니다. 신문에서도 나오지 않습니까? 유산을 둘러싼 가족들의 비극. 뭐, 이런 거 말입니다.”
그는 마치 웃긴 농담이라도 하는 거처럼 실소를 머금었다. 때마침 나온 술잔을 들어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가린 그는 하벤의 멍한 얼굴을 발견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변호사는 그를 위해 단서를 던졌다.
“그런데 당신의 동생은 다르더군요.”
“페트로가요?”
동생이라는 지칭에 하벤이 반응했다. 변호사는 흔들리는 하벤의 에메랄드빛 눈을 보며 그날을 떠올렸다.
변호사가 기억하는 그날의 페트로는 다소 특이했다. 처음 유언장을 작성할 때 방관했던 태도와 달리 두 번째 유언장을 작성했을 때 그는 마치 감시라도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아버지의 손을 주시하며 날을 세웠고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날의 태도는 확실히 의심스러웠다. 유언장의 작성과 더불어 공증이 이뤄지는 그 순간에 보인 페트로의 행동은 클로이드의 유언장이 그의 강압으로 인해 작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싹트게 했다. 변호사는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 유언장이 작성되었을 때보다 더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당신 때문에 상속받을 자신의 몫이 줄어들었는데 말이죠.”
변호사가 남은 술을 마시며 하는 말에 하벤은 고개를 숙여 제 앞에 놓인 술잔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술잔을 들어 천천히 입술에 붙였다. 얼음으로 차가워진 술이 마른 입안을 적시며 목을 타고 안으로 넘어갔다. 알싸한 술을 삼키며 생각했다. 구구절절 말한 변호사는 결국 한 가지를 묻고 싶은 거였다.
“설마 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데 제 동생이 관여를 했다는 거예요? 도대체 뭐 때문에요? 샌더스 씨 말대로 자신의 몫이 줄어들었는데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하벤의 황당하다는 물음에 변호사의 눈이 그의 목으로 향했다. 목 끝까지 잠긴 셔츠를 바라보던 그는 손을 뻗어 단추를 툭 건드렸다. 새하얀 목과 그 밑에 지저분하게 남은 울혈. 그리고 보란 듯이 새겨진 목덜미의 상처까지. 그 흔적에서 읽히는 지독한 집착에 변호사는 서서히 선명해지는 직감을 느꼈다.
변호사로 일하는 그에게 직감은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직감에 크게 휘둘려서 아둔해지기도 하고 직감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한 사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변호사는 점점 확실해지는 직감을 믿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까짓 유산쯤은 쉽게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변호사는 하벤의 셔츠 깃 안으로 손가락을 넣으며 물었다. 긴 손가락은 지독하게 물어뜯긴 상처를 건드렸다. 하벤은 손톱을 세워 상처를 건드는 손가락에 몸을 떨었다. 따끔한 아픔에 떨었다기보다는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라서 떠는 모양새였다.
하벤은 변호사의 말에 한참을 생각했다. 그의 말은 마치 페트로가 자신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꾸몄다는 뜻 같았다.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형을 불러들이기 위해 유언장의 내용을 바꿨다는 거 말이다. 곰곰이 생각을 곱씹던 하벤은 불현듯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샌더스 씨는 변호사가 아니라 소설가인가요?”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에 순간 술집에 고요가 깨졌다. 한참을 웃던 그는 손가락으로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쳤다. 진정한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래서 생각한 스토리가 이거예요? 집 나간 형제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아버지의 유산을 내걸었다? 세상에, 삼류 영화가 더 재미있겠는걸요.”
비웃음이 가득한 질타에도 변호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상처를 힐끔대며 작은 단서를 찾는 데 집중했다. 그에 하벤은 보란 듯이 단추를 풀어 목을 내보였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조금도 옅어지지 않은 수많은 울혈이 드러났다.
“이 흔적을 보고 무슨 상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다 틀렸어요. 이건 페트로가 만든 자국이 아니에요. 아무리 저라도 형제와 붙어먹는 취미는 없거든요.”
어떻게, 누가 이 흔적들을 만들었는지 세세하게 설명할까요? 짜증을 참는 듯한 말투에 목을 바라보던 변호사의 시선이 거둬졌다. 그는 하벤의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서로 앞을 보며 침묵을 지키는데 불현듯 하벤이 입을 열었다.
“이제 됐나요? 이만 일어나고 싶은데요.”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다는 표정에 변호사가 품 안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명함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명함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일 때문에 며칠 뒤에 사무실로 돌아갑니다. 명함에 사무실 번호가 적혀 있으니 만약 무슨 일이 생기거든 그 번호로 전화를 주세요.”
“네, 유산 받을 때쯤 전화하지요.”
하벤은 테이블 위에 놓인 명함을 흘겨보며 대꾸했다. 잔뜩 날이 선 말투에도 변호사의 덤덤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벤은 명함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같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변호사는 재빨리 술집을 벗어나는 뒷모습을 보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진실을 확인하지 못한 그의 얼굴에는 답답함이 서려 있었다. 한참 문을 바라보던 그는 시선을 돌리며 여인을 불렀다. 평소 즐겨 마시지 않는 술이 유난히 생각났다.
* * *
헐레벌떡 뛰는 발걸음, 가빠지는 숨소리. 정신없이 달리다가 다리가 풀려서 수차례 휘청거렸지만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현관 앞까지 다다른 하벤은 문고리를 잡으며 가쁜 숨을 골랐다. 입 밖으로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젠장, 젠장!”
한참 숨을 내쉬다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마치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소리치던 그는 문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당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복잡한 머릿속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땅바닥에 앉은 하벤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목을 훑는 눈빛과 상처를 건드리는 손에는 확신이 서 있었다. 왜지, 고작 이런 이유로 형제 사이를 의심할 수 있는 걸까? 변호사가 말한 이유는 심증뿐이었다. 수상쩍은 페트로의 행동과 때마침 흔적을 달고 나타난 자신. 고작 그것뿐인데도 그는 자신에게 형제간의 부적절한 관계에 관해 물어보는 대담한 행동을 보였다.
무엇이 변호사를 확신하게 했을까. 골똘히 생각한 하벤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유언장을 작성하고 공증하던 그날의 페트로. 변호사는 페트로의 행동에 의심을 가지고 형인 자신의 목의 남겨진 흔적을 보며 확신했다. 처음에는 근친상간을 의심하는 그의 말에 당황해서 무작정 부정하고 말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조금 신경 쓰였다. 한 차례 바꾼 유언장과 그 안에 적힌 한 사람에게만 걸린 구체적인 조건은 분명 평범한 유언장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
만약, 그의 의심대로 그 모든 상황이 페트로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하던 하벤은 달칵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형, 무슨 일이에요?”
“페트로…….”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페트로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바닥에 앉아 있는 하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 내며 쳐다봤다. 들어오지 않고 여기에 이러고 있는 이유를 묻는 듯한 시선에 하벤은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푹 떨궜다. 할 말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깨를 안고 안으로 이끄는 손길에 따랐다. 그가 이끄는 대로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왜 그래요?”
페트로는 옆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 어깨를 끌어안은 팔은 여전했다. 하벤은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한 것도 잠시,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얼굴을 마주 봤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우선은 자신과 페트로를 의심하는 변호사에 대해서 말하는 게 먼저였다.
“그 남자가 이거 네가 만든 거냐고 물었어.”
하벤은 자신의 목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페트로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는 손가락이 가리킨 목을 주시했다. 셔츠에 가려졌지만 하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페트로는 끌어안은 어깨를 쓸어내렸다. 손바닥에서는 조금씩 떨리는 어깨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라니. 왜 이렇게 태평해? 그 사람이 우리 둘을 의심했다고.”
“상관없지 않아요?”
“뭐?”
순간 하벤은 얼이 빠졌다. 페트로의 대답은 지금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자신을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상관없지 않냐고? 그래, 서로 좋았으니까 섹스를 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 비밀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건 얘기가 달랐다. 하벤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페트로가 말을 이었다.
“사실이잖아요.”
“하, 아무리 사실이라도 다른 사람이 아는 건 얘기가 다르지.”
어깨를 안은 손을 밀쳐 내자 페트로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떨어져 나간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하벤은 그런 페트로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널 의심했단 말이야.”
계속해서 피어나는 의심에 무심코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버지의 유언장에 관여했냐고 물어도 되는 걸까? 하고 생각한 하벤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내 봤자 서로 기분만 상할 거다. 그렇게 생각한 하벤은 시선을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떤 의심이요?”
어느새 바짝 붙은 얼굴이 하벤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코앞에서 보이는 음울한 녹안이 시선을 붙잡았다. 전등을 등진 탓인지 빛 한 점 들어가지 않은 눈동자가 섬뜩했다. 괜히 말을 꺼냈나. 의심하는 듯한 말을 꺼내서 녀석의 감정이 상했나? 하벤은 미동조차 않는 페트로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뒤늦게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순간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다. 애써 얼버무렸지만 페트로의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괜찮게 흐르던 둘 사이의 분위기가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하벤은 느껴지는 불편함을 털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뭐, 됐어. 무슨 일이 있어도 몇 달만 지나면 당장 도시로 올라갈 거니까. 그러면 이런 소문 따위는 잠잠해지겠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주변을 둘러싼 분위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하벤은 침묵하는 페트로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음울한 눈동자는 더욱 가라앉았다. 페트로의 음성이 들린 건 어느 정도의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요?”
“그래.”
페트로는 되물었다. 마치 자신이 들은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거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또 질문을 던졌다.
“왜요? 굳이 다시 도시로 갈 이유가 있어요?”
“당연하잖아. 돈만 받으면 여기는 볼일이 없다고.”
“여기는 이제 형이 좋아하는 것들만 남았잖아요.”
“뭐?”
형이 좋아했던 개도 아직 살아 있고, 늘 즐겨 마시는 원두도 있고 말이죠. 이어진 말에 하벤은 의아했다. 페트로의 말은 마치 자신을 붙잡는 것처럼 들렸다. 가지 말고 여기에 머물라는 듯이 말이다. 물론 며칠 동안 서로 가졌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몸정이 생길 수는 있지만 이렇게 설득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벤은 구구절절 말을 이어 가는 페트로를 바라봤다. 페트로는 자신을 희한하게 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형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도 죽고 없잖아요. 그런데 올라가요?”
“너, 뭐라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섬뜩한 말에 하벤이 부르르 떨었다가 어느새 다시 어깨 위로 올라온 팔을 발견했다. 가볍게 어루만지던 아까와 달리 강한 악력이 둥근 어깨를 그러쥐었다. 당장이라도 어깨가 빠질 거 같은 지독한 통증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페트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괴로워하는 하벤을 뒤로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것도 아니에요? 그럼 뭐가 문제일까…….”
“으윽!”
아파! 어깨를 잡은 손을 때리고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힘이 좋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괴력인 줄은 몰랐다. 손이 어깨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자 하벤은 페트로의 가슴을 밀어냈다. 있는 힘껏 밀어내는 힘에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 형이 원하는 밤이 아니어서 그래요?”
형이 그랬죠. 환상적인 상대하고 밤을 보내고 싶다고. 이어지는 말에 하벤이 눈을 홉떴다. 이 순간에도 녀석이 하는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흘러가는 상황이 하벤에게 썩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그는 달아나기 위해 버둥거리며 애를 썼다. 그러나 어깨를 틀어쥔 손이 어느새 밑으로 내려가 허리를 옭아매면서 소용이 없어졌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부족했나 봐요. 그럼 형이 환상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박아 주면 되나요?”
허리를 끌어안은 힘에 이끌려 마주 본 페트로의 얼굴은 이성을 상실한 이의 얼굴 같았다. 하벤은 기이하게 번뜩이는 눈을 보며 간헐적인 호흡을 내쉬었다. 마치 굶주린 포식자 앞에 놓인 작은 짐승처럼 전신이 떨려 왔다.
4. 본색
당장 벗어나야 한다. 녀석이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허리를 끌어안은 팔을 풀어내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꿈쩍하지 않았다. 떨어질 생각을 않는 팔은 버둥거릴수록 허리를 더욱 조여 왔고 하벤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에 페트로의 이름을 연신 부를 수밖에 없었다.
“페트로, 놔!”
다급한 외침에도 페트로는 듣지 않았다. 그는 거칠게 반항하는 몸을 자신의 품에 욱여넣으며 미소 지었다. 순수한 미소가 아닌 어둡고 위험한 미소였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발견한 하벤은 재빨리 몸부림을 쳤지만 이내 소파로 내동댕이쳐졌다. 푹신한 소파 위로 거칠게 넘어진 그는 곧장 발목을 움켜쥐는 손에 붙들리고 말았다.
“큭!”
순간 발목이 비틀어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하벤은 발목을 망가트릴 듯 움켜잡는 힘에 앓는 소리를 냈다.
페트로는 소파 위에서 얌전해진 하벤을 보며 생각했다. 비록 그가 스스로 나간 집이지만 터를 닦아 놓고 그 위에 서로의 정을 섞으면 조금이라도 머물지 않았을까 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지금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한 모든 것을 보고도 하벤은 달아날 생각뿐이었다. 망설임 없이 유산만 받고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에는 아무런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집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말이다.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잠이 들었던 지난날은 모두 자신의 착각이었을까. 페트로는 아직도 자신을 끌어안으며 헐떡거렸던 형의 숨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기대했는데.”
페트로는 작게 속삭였다. 나지막하게 내뱉는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아파하던 하벤이 똑바로 쳐다봤다. 올려다본 페트로의 얼굴은 어두웠다.
“도대체 뭘?”
하벤은 자신이 마치 공포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캠핑을 하다가 잔인한 살인마에게 붙잡혀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주인공. 이런 상상이 떠오를 만큼 눈앞에 있는 동생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하벤은 이유를 물어보고는 몸을 흠칫 떨었다. 음영이 진 얼굴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형이 스스로 여기에 남는 거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물음에 페트로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 묵혀 두었던 썩은 욕망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그는 그토록 원하는 바를 말하면서 점점 더 갈망하는 스스로를 느꼈다. 이제는 방법이 없었다. 무슨 짓을 해도 형은 나갈 테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그는 잡고 있던 발목을 옆으로 넘겼다.
“무슨… 윽!”
옆으로 넘어간 한쪽 다리가 뻐근했다. 갑자기 늘어난 근육에 아파했지만 페트로는 멈추지 않았다. 벌어진 다리를 더욱 넓게 벌린 그는 자신의 무릎을 세웠다. 그러고는 훤히 드러난 하벤의 사타구니를 지그시 누르며 체중을 조금씩 실었다. 하벤은 갑작스레 눌린 사타구니에 괴로워했다. 뾰족한 무릎으로 성기를 누르자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이 아팠다.
사타구니를 누른 무릎은 조금씩 움직이며 가운데에 살덩이를 건드렸다. 아직 힘을 받지 않았지만 꽤나 묵직한 성기를 이리저리 쿡쿡 찌르자 밑에서 괴로워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원치 않은 자극에 괴로워하는 사내의 소리였다.
페트로는 물러서지 않고 무릎을 내려 고환이 자리한 곳을 눌렀다. 무릎 끝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감각이 우스웠다. 바지 속에 숨은 고환을 조심히 누르자 하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통증에서 쾌감을 느끼기라도 하는지 물컹한 살이 힘을 받는 게 느껴졌다. 이런 몸을 하고도 쉽게 이곳을 떠나겠단 소리를 하다니. 페트로는 괘씸한 자신의 형에게 몹쓸 짓을 하고 싶었다.
“아, 으읏!”
떨어질 줄 모르던 무릎이 순식간에 물러났다. 하벤은 드디어 벗어나는 건가 싶어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은밀한 부위를 찌르는 손가락에 다시 눕고 말았다. 아래를 보니 사타구니에 자리 잡은 페트로가 손가락을 세워 바지 위를 찌르고 있었다. 얇은 천 쪼가리를 사이에 두고 긴 손가락으로 회음부 아래에 위치한 구멍을 누르는 모양새가 노골적이었다.
“으응, 아… 그만둬.”
구멍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에 하벤의 몸이 꿈틀거렸다. 발목을 붙잡은 손도, 아래를 탐하고 싶어 하는 손가락도 하벤의 욕정을 살살 건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못 이기는 척 몸을 섞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여기서 순순히 페트로와 몸을 섞으면 영영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하벤은 다리에 힘을 주며 페트로와 대치했다. 녀석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밀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래에서 들리는 부욱- 하는 생경한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선을 내리자 바지 밑을 찢은 페트로의 손이 보였다.
“아악!”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벤은 좁은 구멍이 찢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바지를 찢은 페트로가 메마른 애널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망설이지 않고 좁은 구멍을 가르고 들어온 손가락이 고통으로 덜덜 떠는 내벽을 건드렸다. 어디를 느끼고 어디를 힘겨워하는지 뻔히 안다는 듯 손가락은 익숙하게 이곳저곳을 찔렀다.
페트로의 농락에 하벤은 반항은커녕 헐떡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찌르는 곳마다 구멍이 움찔거리는 건 물론이고 가만히 있는 성기마저 발딱 설 지경이었다. 전립선을 꾹 누르는 손가락에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쾌락이 먼저 온몸을 강타했다. 하벤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소파를 쥐어 잡았다. 달싹거리는 몸으로 반항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런 하벤을 내려다본 페트로는 자신의 성기를 끄집어냈다. 역시 몸이 쉬운 사람이었다. 조금만 입맛에 맞게 만져 주면 반항하는 것도 어려워할 만큼 민감하고 솔직한 몸. 때때로 하벤은 입보다 몸이 더 솔직했다. 벌렁이는 구멍을 쑤시던 손가락을 뺀 페트로는 구멍이 다물기 전에 재빨리 성기를 박았다.
“으, 흐으윽!”
손가락 두 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굵직한 기둥에 하벤은 자지러졌다. 벌어지는 입을 채 다물지 못하고 호흡하다가 뿌리 끝까지 들어오는 성기에 겨우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배 속을 가득 채우는 자지가 당장이라도 내벽을 찢고 나올 것만 같았다. 평소보다도 더 굵게 느껴지는 성기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하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페트로는 힘차게 자지를 박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벤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허, 허억! 으응, 응…!”
귀두가 내벽을 가르고 안으로 들어오면 핏줄이 선 울퉁불퉁한 기둥이 뒤따라와 내벽을 가득 채운다. 여기서 더 움직이면 배가 터질지도 몰라. 순간 드는 아찔한 생각에 겁을 먹어야 정상이건만 이상하게 흥분이 일었다. 하벤은 자신도 모르게 구멍에 힘을 주며 들어온 성기를 야금야금 물었다.
“지금은 어때요? 아직도 별로예요?”
“윽, 으윽! 도대체… 흐읏, 왜 이러는 건데…!”
“얼른 말해 봐요.”
계속되는 물음에 구멍을 쑤시던 움직임이 느려졌다. 하벤은 박는 속도가 느려지자 안달이 난 듯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만두라고 말하는 입과 따로 노는 몸짓이었다. 누워서 들썩이는 하체를 보며 페트로는 하벤의 목을 잡았다. 한 손으로 목을 잡고 소파에 누르자 순간 숨이 막혔는지 하벤이 기침을 터트렸다. 콜록! 거칠게 기침을 하면서도 들썩이는 허리는 멈출 생각을 않았다.
페트로는 아래서 바들바들 떠는 몸을 보며 움켜잡은 목을 어루만졌다. 훤히 드러난 목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그에게서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자신은 마음이 급하다. 페트로는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네.”
“으읏! 하아… 아, 응…!”
쯧,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소파에 누워 있던 하벤의 몸을 들어 올렸다. 성기를 꽂은 채 걸음을 옮기자 들어 올린 몸이 무너져 내린다. 페트로는 밑으로 흘러내리는 몸을 추어올리며 어디론가 향했다.
“아, 아… 그만, 흐응! 아, 아. 계속, 아읏, 계속 들어와…….”
하벤은 걸을 때마다 깊게 들어오는 성기에 맥을 추지 못했다. 걸음에 맞춰 들락거리는 자지가 벌렁이는 구멍 입구를 거칠게 쑤시며 들어왔고 그럴 때마다 하벤은 우는소리를 내며 몸을 버둥거렸다. 허공에 흔들리던 두 다리는 페트로의 허리를 휘감았고 두 팔은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겨우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자 페트로의 걸음이 멈췄다.
“여, 여기는… 아!”
빠르게 박히던 성기가 멈추자 어렵사리 정신을 차린 하벤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찢어진 아래를 쓸고 지나가는 차가운 공기에 놀라 고개를 드니 어둠이 깔린 초원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하벤은 페트로의 목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어째서 여기에? 의문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자 페트로는 다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는 곳은 굳게 닫힌 축사였다.
설마 하는 마음에 바라보자 페트로가 차분한 얼굴로 마주 봤다. 요동 없는 표정에 녀석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벤은 불안한 마음에 몸을 들썩이다가 아래를 푹 찌르는 성기에 등을 둥글게 말았다. 예고도 없이 깊숙이 들어온 성기가 예민한 지점을 푹 찔렀다.
“으읏…….”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축사 안으로 들어온 하벤은 페트로의 다부진 허리를 감은 다리를 이리저리 꼬았다. 안달이 난 몸은 방금 전까지 싫다고 하던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축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페트로의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미에 걸맞게 그가 관리한 축사 또한 깨끗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끝에 위치한 우리는 깔끔하다 못해 텅 비어 있었다. 안긴 채로 이동하던 하벤은 애널 입구를 살짝 건드는 귀두에 흐느끼다가 살며시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봤다. 그제야 자신이 우리 안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비어 있는 우리는 하벤에게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안겨 준 곳이었다.
“아, 아! 으응…!”
페트로는 굳어진 하벤의 얼굴을 보며 양손으로 볼기를 잡았다. 양쪽 볼기를 잡고 뿌리 끝까지 성기를 박자 벌렁이던 구멍이 일순간 수축했다. 마치 자지가 뿌리까지 들어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강하게 무는 입구에 페트로가 숨을 들이마셨다. 어금니를 물며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넓은 축사 안에서 울려 퍼지는 살 부딪치는 소리에 하벤의 발끝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쫀득한 내벽과 자지를 잘라먹을 거 같은 입구를 맛보던 페트로는 들고 있던 몸을 내려놓으며 구멍에서 성기를 뺐다.
구멍을 채웠던 성기가 빠져나가자 겨우 두 발로 선 몸이 휘청거렸다. 당장이라도 넘어질 거 같은 느낌에 하벤이 우리를 잡고 서 있는데 뒤로 물러난 줄 알았던 페트로가 그의 목덜미를 살며시 잡았다.
“크윽!”
“형 스스로 남겠다고 할 때까지 여기서 지낼 거예요.”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잡은 그는 익숙한 밧줄을 꺼내 들었다. 곁눈질로 그의 손에 들린 밧줄을 확인한 하벤은 몸을 거칠게 떨었다. 저 밧줄로 무슨 짓을 할 건지 눈치를 챈 것이다. 하지만 저항하는 몸짓을 가볍게 제압하는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페트로는 하벤의 목에 밧줄을 걸며 귓가에 속삭였다.
“물론 형이 좋아하는 섹스도 마음껏 할 거고요.”
그는 마치 선심을 베푸는 사람처럼 말했다. 목을 조르는 밧줄에 하벤이 소리를 지르자 머릴 쓰다듬던 페트로의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머리가 눌린 하벤이 중심을 잃고 엎어지자 밧줄을 잡은 페트로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새 하벤의 양쪽 손을 뒤로 끌고 와 밧줄로 한데 묶었다. 순식간에 몸이 묶인 하벤은 꼼짝 않는 팔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팔에 힘을 줄수록 같이 묶인 목이 팽팽하게 조여 왔다. 작정하고 단단하게 묶었는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누르는 손길이 사라지자 하벤은 냉큼 상체를 바로 세웠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페트로를 올려다보자 그가 실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진작에 이럴 걸 그랬어요.”
미묘하게 만족스러워 보이는 얼굴에 하벤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벗어나기 어려울 만큼 목과 양팔을 옥죈 밧줄은 단순한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 도가 지나쳤다.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본 하벤은 미간을 찌푸리며 당장 밧줄을 풀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에 갇힌 제 형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삐뚤어진 감정이 넘실거렸다.
* * *
어느새 아침이 되었는지 축사의 금이 간 벽면 사이로 미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하벤은 흔들리는 시야에 눈을 부릅뜨며 벽면을 바라봤다. 그는 푸르른 빛이 들어오는 걸 보며 이제 막 동이 텄다는 걸 알아차렸다. 세상에, 그러면 하루 꼬박 밤을 새웠다는 소리군. 멍하니 빛을 보던 그는 하루 종일 잠을 자지 못했다는 사실에 난색을 표했다.
“으읍.”
그런 하벤의 기색을 읽었는지 입안 가득 찬 성기가 뿌리 끝까지 들어왔다. 하벤이 목구멍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성난 성기에 쿨럭거리며 거칠게 기침을 토해 냈지만 들어온 성기는 빠져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어림없다는 듯이 꾸역꾸역 들어왔다. 끈적한 타액으로 흥건히 젖은 성기가 좁은 목구멍을 들락거리자 물기 어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벤은 목젖을 누르는 기둥에 헛구역질을 멈출 수 없었다.
“츄웁, 춥…….”
차마 삼키지 못한 타액이 턱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많은 침이 흘렀음에도 다시 고이기 시작하자 하벤은 입을 다물며 입안에 남은 침을 꿀꺽 삼켰다. 타액은 물론이고 자지 끝에 맺힌 묽은 액도 핥아 먹자 머리 위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페트로는 거친 숨을 내쉬며 밧줄에 묶여서 자신의 자지를 무는 얼굴을 어루만졌다.
목구멍에 처박았던 성기를 살짝 빼서 볼 안쪽의 점막을 찌르자 홀쭉한 볼이 불룩 솟았다. 페트로가 그 볼을 쓰다듬자 볼살을 사이에 두고 둥근 귀두가 만져졌다. 성기 모양대로 불룩 튀어나온 볼에 또다시 단전이 묵직해졌다. 한 차례 힘을 받은 그는 양 볼을 붙잡으며 목구멍 안으로 성기를 박아 넣었다.
“커헉! 켁, 크흡…!”
목젖을 찌르는 귀두에 구역질이 나왔다. 입안 한가득 고인 침을 턱 밑으로 흘려보내자 바닥에 동그랗게 젖은 흔적이 만들어졌다. 하벤은 그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성난 성기를 받아 냈다.
밤새 이어진 지독한 섹스에 하벤은 수면을 취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페트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처럼 하벤을 묶어 두고 박아 댔다. 성기를 박고 구멍 안에 정액을 싼 다음 반쯤 죽은 성기를 입에 물렸다. 그러다가 성기가 다시 힘을 받으면 또다시 벌렁이는 구멍에 박았다.
수차례 이어진 이 행위에 하벤의 모든 구멍은 비릿한 정액으로 가득 찼다. 아래 구멍에서는 하얀 정액이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위 구멍에는 비릿한 맛이 가시지 않았다.
“하, 야… 말 좀, 말 좀 하… 웁!”
“얼른 받아먹어요.”
하벤은 잠깐의 틈을 타 말을 꺼냈지만 다시 입안으로 들어오는 성기에 끝을 맺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 꺼떡거리는 성기가 깊숙이 들어와 목구멍에 자리를 잡았다. 뒤통수를 붙잡힌 하벤은 상대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파묻으며 괴로워했다. 거친 음모에 얼굴이 쓸렸고 묵직한 음낭이 턱을 때렸다.
괴로움에 소리를 내자 몇 번의 깊고 거친 허리 짓과 함께 목구멍에서 뜨거운 정액이 터져 나가는 걸 느꼈다. 하벤은 목을 타고 넘어가는 걸쭉한 정액을 꿀꺽 삼키며 기침을 터트렸다.
“켁, 콜록, 콜록!”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거친 숨을 내쉬던 하벤은 다리를 잡는 손길에 눈을 치켜떴다. 페트로가 바닥에 주저앉은 자신의 다리를 잡아끌었다. 징그러운 새끼. 하벤은 사정으로 반쯤 죽은 성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계속되는 색사에 녹초가 된 건 서로 마찬가지일 텐데 더 해 봤자 힘만 들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페트로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다리를 잡아당겨 하벤을 뒤로 눕힌 그는 그 위에 올라타며 자신의 성기를 잡았다.
금방 사정해서 가라앉은 걸 어쩌려고 저러는 건가, 하고 생각한 하벤은 이어지는 페트로의 말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정액은 조금 있다가 주고 지금은 이걸 먹여 줄게요.”
페트로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곧바로 성기를 구멍에 집어넣었다. 자꾸만 빠져나가려는 성기를 욱여넣자 하벤의 등이 휘어졌다. 고개는 뒤로 넘어가고 뒤통수가 지푸라기 깔린 바닥에 닿았다. 머리를 움직이자 귓가에서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우윽…….”
안으로 들어온 성기는 아까보다 물컹했다. 한 발 뺀 정액이 윤활유가 되어 찔꺽거리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려왔다. 지푸라기 소리보다 더욱 잘 들리는 음란한 소리에 귓가에 열이 올랐다. 이미 사정한 성기를 박아서 뭐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던 하벤은 그저 구멍을 조이며 달아오른 체온을 진정시키기에 집중했다.
그 순간, 배 속 깊숙한 곳에서 터지는 뜨거운 물줄기가 느껴졌다. 하벤은 좁은 내벽에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놀라 바들바들 떨었다.
“크윽! 서, 설마… 으, 아… 아아.”
페트로가 자신의 배 속에 소변을 갈겼다는 것을 알아차린 하벤은 점차 차오르는 물줄기에 울음을 터트렸다. 정상적이지 않는 행위가 주는 쾌락을 기억하는 그는 덜컥 겁이 났다. 힘차게 분출하는 소변 줄기가 예민한 내벽을 건들기라도 하면 자신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짐승처럼 울부짖을 것이다. 하벤은 그 쾌락이 기대되면서도 두려웠다.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미약하게 반항했지만 금세 잡히고 말았다. 페트로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 잡은 다리를 접어서 자신의 몸으로 내리눌렀다. 거구의 몸에 눌려 제압당한 하벤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소변에 괴로워했다.
구멍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소변은 하벤의 엉덩이 사이로 흘러내렸다. 밑이 찢어진 바지는 물줄기에 짙은 색으로 젖어들어 갔다. 철퍽, 철퍽. 페트로의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둘의 연결 부위에서 물기 젖은 소리가 들려왔다.
밀려오는 졸음으로 녹초가 된 채 하염없이 박히던 하벤은 가물거리는 눈을 겨우 떠 앞을 쳐다봤다. 엉망진창일 자신을 주시하는 녹색 눈동자를 보며 그는 술집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술집에서 만난 말끔한 차림의 변호사가 자신에게 했던 말, 그리고 그가 짓던 미심쩍은 표정까지 머릿속에서 차례대로 지나갔다.
“우으… 너, 너… 하 으응!”
진짜 변호사의 말이 맞을까. 그의 말대로 원하는 것, 그러니까 자신을 얻기 위해 이렇게 구는 걸까. 하벤은 뒤죽박죽 섞이는 생각을 정리하며 그를 불렀다. 지금까지 이끄는 대로 당하며 헐떡이기만 하던 자신이 어렵게 말을 걸자 페트로가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훅 내려온 얼굴은 금방이라도 코끝이 닿을 것 같이 가까웠다. 페트로는 말을 하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하아, 하윽… 으읏. 도대체, 크읏…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으음.”
“시발, 네가 이렇게 구니까… 헉, 그딴 소리 나, 나오는 거잖아…!”
한번 내뱉고 나니 입이 멈추지 않았다. 때마침 배 속에 쏟아지는 물줄기도 멎었고 자신도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하벤은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안광을 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 남자가 그랬어! 흐으… 네가 아버지의 유언장에 관여한 거 같다고. 내 이름이 있는 것도, 그 좆같은 조건이 있는 것도… 헉!”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숨을 들이마셨다. 고개를 내리자 다리를 잡고 있던 페트로의 손 하나가 하벤의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주변 살을 모아서 그러쥔 손가락 사이로 딱딱하게 선 젖꼭지가 툭 튀어나왔다. 하벤은 살이 뜯길 거 같은 고통에 울먹였다. 그만두라는 하벤의 애원에 페트로는 무심하게 물었다.
“그러면 안 돼요?”
“하지… 무, 뭐?”
“형은 형 마음대로 나갔는데, 나도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냐고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와 달리 내뱉는 말속에는 케케묵은 원망이 섞여 있었다. 그 낌새를 읽은 하벤이 재빨리 물어보려는 찰나, 유두를 꼬집는 손톱에 입술을 깨물었다. 유두 끝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꼬집던 손톱이 천천히 유륜을 긁었다. 손가락이 주던 아픔이 야릇한 애무로 바뀌자 아랫입술을 깨물던 하벤이 탁한 신음을 토해 냈다. 그 모습을 보던 페트로가 고개를 돌려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맞아요. 아버지의 유언장, 제가 손쓴 거예요.”
페트로는 경악으로 커지는 눈을 보며 짓궂게 웃었다. 곱게 올라가던 입꼬리가 멈추지 않고 옆으로 쭉 찢어졌다. 괴기하게 웃는 입과 그 사이로 드러난 하얀 치아는 본색을 드러낸 짐승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어째서?”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저 한마디뿐이었다. 어지러운 머리로는 다른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벤은 또다시 물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냐고.”
“유산을 걸면 형이 돌아오지 않을까 했거든요. 다행히 제 예상이 맞았죠.”
“그러면 애초에 아버지의 유언장에 내 이름이 없었던 게 맞아?”
“네, 없어서 제가 넣었어요. 다 죽어 가는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병간호를 걸고 부탁을 하니까 냉큼 형 이름을 넣더라고요. 그 양반도 나이가 드니까 어쩔 수 없었나 봐요.”
형도 그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이어지는 웃음기 어린 속삭임에 하벤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턱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강하게 깨물자 뿌드득거리는 치아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턱을 조심히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화가 나요?”
“개새끼야, 화가 나냐고? 당연한 걸 묻는 거야? 네 말은 결국 나는 아버지가 죽으면서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던 자식이고, 너는 그런 나를 돈으로 농락했다는 뜻이잖아!”
페트로가 쏟아 내는 혼란스러운 사실에 하벤은 문득 울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걸 보란 듯이 이용한 배다른 동생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버지하고는 틀어질 만큼 틀어진 사이여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식인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외면해야 하나 싶어서 서러움이 치솟았고,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을 이용하면서까지 자신을 속인 페트로에게서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결국 변호사의 말이 맞았다. 하벤이 휘몰아치는 격한 감정에 고개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자 페트로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농락이라뇨. 이렇게까지 해서 형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이죠.”
“그러니까 왜… 흐윽!”
마치 사랑하는 정인에게 말하듯 부드럽게 전하는 말과 함께 여태 구멍에 꽂혀 있던 성기가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어느새 크기를 키운 성기는 소변으로 푹 젖은 안을 마구잡이로 들쑤셨다. 성기가 뿌리 끝까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면서 안에 고여 있던 액체가 분수처럼 쏟아졌고 하벤의 두 다리는 덜덜 떨렸다. 페트로는 그런 다리를 붙잡으며 매끈한 무릎에 입술을 붙였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크고 나니까 형에게 가진 감정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왜 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는지, 왜 형의 곁에 있으려고 아등바등했는지…….”
“하, 하아… 아앗!”
“형이 없어지니까 확실히 알게 됐어요.”
예민한 무릎 위에 쏟아지는 뜨거운 숨결과 발기한 성기의 난폭한 움직임에 하벤은 몸서리를 쳤다. 휘어지는 늘씬한 허리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봉긋한 엉덩이를 눈으로 탐한 페트로는 지금껏 표출하지 못한 자신의 욕망을 토해 냈다.
“저는 영원히 형과 함께하고 싶은 거예요.”
드디어 입 밖으로 내뱉은 염원에 어린 시절의 자신이 기지개를 켠다. 감정을 깨닫기도 전에 홀연히 사라진 형을 그리워하며 갈증에 허덕이던 어린 페트로는 이제야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원치 않았던 과거의 이별을 보상받을 시간이었다.
* * *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두운 축사 안에 갇히면서 알 수 있는 건 밥 먹을 때와 잠을 잘 때뿐이었다. 이 두 가지를 몇 번 반복하면서 날짜 세는 걸 포기하자 자연스럽게 시간 개념이 사라졌다. 추운 날씨는 우리 한편에 마련된 화목 난로로 버틸 수 있었고 훤히 드러난 맨몸은 바닥에 한가득 쌓인 깨끗한 지푸라기가 보호했다. 하벤은 그저 준비된 우리에 묶여 페트로의 수발을 받으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페트로는 절절한 고백 이후 작정한 사람처럼 굴었다. 일도 등한시하고 온종일 하벤의 곁에 머물며 제 욕구를 채워 갔다. 그의 성기는 하루는 쫀득한 구멍을 쉴 새 없이 탐하고 또 하루는 축축한 입안을 탐했다. 그러다가 충족감을 느끼면 아기처럼 가슴을 빨거나 엉덩이를 만지며 색사의 여운을 즐기기도 했다.
“흐, 흡… 아… 또 나와…….”
지푸라기가 깔린 바닥에 앉아서 우리에 등을 기댄 하벤은 자신의 다리 사이를 보며 헐떡였다. 다리 사이에는 성기를 집어삼킨 유축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커다랗고 투명한 관 안에는 가득 찬 허연 정액과 함께 빨갛게 퉁퉁 부은 성기가 안쓰럽게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손이 묶인 하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흐느끼면서 정액을 싸는 것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빼 줬으면 좋겠는데. 하벤은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페트로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사정감에 허리를 들썩였다. 이제는 사정을 참는 것보다 곧장 정액을 쏟아 내는 게 훨씬 쉬워졌다. 하벤은 터질 거 같은 귀두 끝에서 흘러나오는 묽은 정액을 보며 부르르 떨었다. 원치 않은 쾌감이 잦아 몸이 괴로웠다.
사정으로 성기가 힘을 잃어 수그러들자 빽빽하던 유축기가 헐거워졌다. 몸을 뒤척이자 정액이 고인 유축기에서 찔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벤은 하얀 액으로 더러워진 하체를 내려다보며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동생의 손에 이 지경이 된 자신의 처지가 우스웠다. 정액 범벅이 된 모습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벤은 이제 느낄 수치심마저 바닥났다는 생각에 허탈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갇혀 살면서 영영 나가질 못하는 걸까.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미래에 망연자실했다.
그렇게 한참을 눈만 껌뻑이고 있을 때였다. 축사 밖에서 낯선 인기척이 났다. 처음에는 페트로가 돌아왔나 싶었지만 조용한 그의 기척과 달리 밖에서 느껴지는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곳을 방문했다는 걸 알려 주었다.
“어, 어… 누가 온 건가?”
설마 누군가 이곳에 온 건가. 하벤은 누가 왔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목청을 높였다. 널브러진 몸을 바로 세웠지만 이내 우리에 묶인 밧줄에 제지되고 말았다. 바닥에서 버둥거린 그는 문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이봐요! 거기 누구 있어요?!”
넓은 축사에서, 그것도 문과 가장 멀리 떨어진 빈 우리에 묶인 터라 소리가 전달되었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하벤은 포기하지 않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제발 들어라. 누구라도 좋으니까 들어 줘. 갈라지는 목소리로 힘껏 소리를 지르자 축사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계속해서 지르는 고함에 드디어 축사 문이 조금씩 열렸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빛에 하벤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다.
소리를 듣고 누군가 들어왔구나 싶었는데 눈에 들어온 건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뚜벅뚜벅, 바닥에 닿는 신발 굽 소리에 몸이 굳어진 하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축사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기대와 달랐다. 무표정한 페트로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를 부르는 거예요?”
“아, 아까 누가 있었는데…….”
“잠깐 더글라스가 왔었어요. 집에 형이 없는 거 같은데 어디 갔냐고 묻던데요?”
“더글라스? 그가 날 찾았어?”
“네. 그래서 제가 잠시 도시로 올라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별 의심을 않고 가더라고요.”
우리 안으로 들어온 페트로는 하벤의 물음에 픽 웃으며 대답했다. 얄궂은 웃음이 마치 헛된 기대를 품은 얼간이를 보는 듯했다. 하벤은 그의 비웃음에 얼굴을 찌푸리며 사납게 발을 굴렀다. 발밑에 깔린 지푸라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흐트러졌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페트로는 하벤의 앞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의 눈은 정액이 가득 담긴 유축기와 그 사이로 흘러내린 액에 푹 젖어 뒤엉킨 음모로 향했다.
“이런 꼴을 하고 그 남자를 부르려 하다니.”
웃음기 가득했던 얼굴이 점차 굳어진다. 하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표정 변화에 몸을 움츠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날 동안 페트로와 같이 살면서 그의 표정이 주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기분 좋을 때 짓는 은은한 미소, 못마땅할 때 짓는 미간의 주름. 그리고 화가 났을 때 순식간에 굳어지는 표정까지도 말이다. 하벤은 무섭도록 경직된 얼굴을 보며 긴장했다.
“으으…!”
긴장으로 눈치를 살피는 순간 페트로가 손을 뻗었다. 그는 하벤의 다리 사이에 있는 유축기를 잡았고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잡아당겼다. 질퍽한 소리와 함께 유축기 안에서 부운 성기가 나왔고 하벤의 입에서는 비명과 비슷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무슨 우유 같네요. 형이 젖소에요?”
하벤은 페트로의 질 낮은 농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예민해진 성기에 다리를 배배 꼬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안 그래도 계속되는 유축에 자극받았던 성기가 페트로의 무자비한 손길로 더욱 아파졌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을 보며 손을 뻗었다. 이제 시작인데 형의 엄살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앉아 있는 몸을 억지로 엎드리게 하자 우리에 묶은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벤이 밧줄에 손목과 목이 묶여 아프다고 외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페트로는 하벤의 허리를 누르며 들고 있던 유축기의 입구를 엉덩이 사이에 집어넣었다.
“시발… 크흡, 그만… 그만해… 아, 아앗! 잘, 잘못했어!”
구멍 안으로 들어오는 유축기에 하벤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페트로의 정액과 소변으로 찼던 배가 이번에는 자신의 정액으로 가득 차게 생겼다. 놀란 하벤이 주춤하는 동안 유축기의 입구가 벌어진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하벤은 내벽을 가르고 들어오는 굵은 관에 경련하며 바닥을 기었다. 그동안 익숙하게 받은 페트로의 자지보다도 더 굵고 딱딱한 관에 덜컥 무섬증이 일었다. 이러다 찢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얌전히 엎드려 있는데 유축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들어왔다.
“찌, 찢어져… 흐윽, 찢어진다고… 흐흑…….”
“쉬, 괜찮아요. 형 구멍이 잘 늘어나서 찢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아니야, 안 돼. 흐응! 흑, 아! 아랫배가 가득 차…!”
거북한 느낌에 하벤이 소리를 질렀다. 몸이 망가질지도 몰라, 하는 절박한 외침에도 페트로는 듣지 않았다. 그는 유축기 안에 남은 한 방울까지 넣어 주겠다는 듯이 집어넣었다. 어느새 기다란 관이 반이나 사라졌고 하벤은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과 내벽에 숨이 넘어갈 듯 떨었다. 페트로가 밀어 넣은 유축기가 성감대를 건드리자 쪼그라들던 성기가 조금씩 힘을 받았다. 고통과 쾌감 사이에서 하벤은 조금씩 이성을 잃어 갔다.
“형 정액을 다 넣었는데 어때요?”
숙여진 상체와 올라간 엉덩이를 감상하던 페트로가 볼기를 주무르며 물었다. 하얀 엉덩이의 솜털이 오소소 섰을 정도로 하벤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더 하면 망가질까? 페트로는 마음속에서 싹트는 가학성에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 보면 페트로의 모든 처음의 시작은 늘 자신의 형이었다. 처음 느껴 보는 타인에 대한 궁금증과 시선을 뗄 수 없는 관심. 떨어질 때 느끼는 갈증 나는 그리움과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음습한 욕정. 그리고 상대를 아끼면서도 제 손으로 망가트리고 싶은 이상한 가학성까지 말이다. 페트로는 텅 빈 자신을 다양한 것들로 채워 주는 하벤이 신기하면서도 더욱 탐이 났다.
“아아… 흐읍, 흑. 페트로… 나 쉬고 싶어. 흐윽, 제발…….”
울먹이던 하벤이 겨우 숨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며칠 동안 이어진 모진 섹스에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았던 그는 오로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여기서 더 있다가는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이미 한계까지 내몰린 그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부탁하는 자세가 글렀잖아요. 성의를 보여야 들어주죠.”
페트로는 바닥에 처박힌 하벤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결 좋은 머리카락을 잡아 올리며 말했다. 하벤은 점차 가까워지는 얼굴에 그가 말하는 ‘성의’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가까이 다가온 페트로의 얼굴은 서로의 코끝이 닿자 멈췄다. 하벤은 집요한 페트로의 눈을 보며 그 안에 깔린 짙은 욕망을 발견했다.
쏟아지는 뜨거운 숨결에 하벤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천천히 움직이던 서로의 입술이 마침내 닿았다.
지금껏 몸을 섞으면서 서로의 입술을 탐한 적이 있었던가. 하벤은 거친 입술에서 느껴지는 말캉한 감촉을 느끼며 생각했다. 섹스하면서 몸에 입술이 닿은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입술끼리 맞닿은 건 처음이었다.
동생의 입술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촉촉했다. 하벤은 붙잡힌 머리카락에 아픔도 잊고 입술을 달싹였다. 살짝 벌어진 부르튼 입술 안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숨결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뱉었다. 그렇게 말없이 호흡을 주고받길 한참, 드디어 입안으로 물컹한 혀가 들어왔다.
“웁…….”
들어오는 혀를 받은 하벤은 입안을 가득 채우는 크기에 버거워했다. 커다란 혀가 고른 치아를 쓸고 입천장을 쿡 찌르자 발끝이 오그라들 정도로 간지러웠다. 신음 소리를 내자 머리채를 잡은 악력이 거세졌고 저절로 입도 벌어졌다. 그러자 혀가 더욱 깊숙이 들어와서 활개 쳤다.
하벤은 헛구역질에 고통스러워했지만 페트로는 입술을 탐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앞니로 껍질이 일어난 아랫입술을 씹고 굳어 있는 혀를 끌고 와 맛을 보며 혀뿌리에서 나오는 침을 삼켰다. 그는 갈급증이 난 사람처럼 입술을 탐하며 참은 숨을 내뱉었다.
“하, 츄읍…….”
“후우…….”
페트로는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동안 호선을 그리는 입모양은 제법 봤지만 유순하게 풀어진 눈매는 처음이었다. 상대의 입안을 휘젓는 집요한 키스 후 잔뜩 풀어진 얼굴이 시선을 끌었다. 하벤은 그런 페트로를 신기하는 듯 쳐다봤다. 키스 때문에 기분이 좋은 건가. 하벤은 구속된 제 처지도 잊고 상대의 생경한 표정을 구경했다.
“하, 좋아요. 잘했으니까 부탁을 들어줄게요.”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핥은 페트로는 하벤의 엉덩이에 꽂혀 있는 유축기를 조심히 뺐다. 버겁게 들어왔던 만큼 빠져나가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하벤은 저절로 힘이 들어가려는 구멍을 애써 풀어 주며 얼른 유축기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깊게 들어왔는지 빠져나가는 데 한참이 걸린 것 같았다. 하벤은 묘하게 배 속 깊숙한 곳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엉덩이를 들썩였다.
“얌전히 있어요. 이러면 다시 박고 싶잖아요.”
“시, 시발…….”
눈앞에서 흔들리는 둥근 볼기에 페트로가 웃음 섞인 농담을 던졌다. 눈앞에 작은 엉덩이가 덜덜 떨고 있고 그 가운데에 정액 범벅이 된 구멍이 벌렁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참겠냐며 투덜거리자 하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올랐다.
긴 유축기를 빼며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굴에 빤히 드러난 감정에 웃음이 나왔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보니 이 사람이 얼마나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페트로는 감정 하나 숨기지 못하는 하벤이 단순하고 쉬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깊숙이 박혀 있던 유축기가 빠져나왔다. 정액으로 가득 찼던 유축기는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하벤은 제 옆에 놓인 텅 빈 유축기를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 배 안에서 출렁이는 것이 자신의 정액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유축기가 빠져나가고 높이 들어 올렸던 엉덩이를 내려놓은 하벤은 힘겹게 페트로에게 물었다.
“…날 언제까지 여기에 가둘 셈이야?”
“글쎄요. 형이 여기 남겠다고 할 때까지?”
“미친 새끼, 이게 정상이냐.”
“그럼 동생 손에 자지를 세우는 형은 정상이에요?”
제 손에 몇 번이나 세웠는지 기억해요? 하고 덧붙이는 말에 하벤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를 드러내는 게 당장이라도 물어뜯으려 잔뜩 성을 내는 짐승 같았다. 페트로는 하벤의 얼굴을 보며 그가 골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페트로에게 하벤은 이렇게 단순하며 욕망에 잘 휩쓸리고 쉽사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분노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고, 또 돈이라는 욕망에 눈이 멀어 다시 고향에 나타난 그. 그렇기에 미끼를 흔들고 아가리만 벌리면 냉큼 입안으로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페트로는 쉽사리 먹히려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해소되지 않은 갈증을 느꼈다.
목이 마르다 못해 온몸이 말라가는 느낌. 페트로는 잠시나마 이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그래, 들어가고 싶어…….”
“형이 먼저 키스한다면 생각해 볼게요.”
이번에는 형이 혀를 집어넣어요. 페트로의 속삭임에 하벤은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서로 입을 맞췄던 주제에 자신이 리드하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다가오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는 페트로에 하벤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조금 내밀었다. 입술이 닿고 용기를 내어 혀를 내밀자 굳게 닫혔던 입술이 쉽게 열렸다. 혀를 밀어 넣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는 커다란 혀에 둘의 키스는 또다시 격해졌다. 춥, 츄읍……. 주변을 감싸는 음란한 소리에 하벤의 귓가가 다시금 달아올랐다.
* * *
며칠 만에 들어온 집 안에서도 페트로의 구속은 여전했다. 양손과 목을 묶은 밧줄은 풀렸지만, 그것을 대신해서 페트로의 집요한 시선이 들러붙었다. 그는 하벤이 축사를 나오는 순간부터 집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도망갈 거라 생각하고 그러는 건지 가까이서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하벤은 페트로의 감시가 있든 말든 상관 않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기로 했다. 페트로의 수발이 있었지만 며칠 동안 축사에서 지내다 보니 몸이 엉망이었다.
몸을 씻는 내내 온몸에 난 상처를 확인했다. 밧줄에 묶였던 손목은 자잘한 생채기로 가득했고 목덜미도 쓸린 상처와 지워지지 않은 울혈로 얼룩덜룩했다. 이것뿐만 아니라 몸뚱이 전체에 과거 정사의 흔적들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몸에 물을 묻히던 하벤은 흔적들로 가득한 피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흔적이 페트로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손에 묻은 물로 손목을 문지르자 상처가 따끔했다. 그 통증마저도 저절로 동생을 상기시켰다.
“젠장…….”
그런 제정신이 아닌 놈한테 시달렸으니 이럴 수밖에. 하벤은 고향에 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봤던 페트로의 모든 행동들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유산 때문에 제 발로 돌아온 자신을 보고도 모르는 척했던 녀석의 소름 끼치는 표정부터 시작해서 오로지 형을 위해 도와준다는 소리를 하면서 희롱했던 일까지 전부 다 가증스러웠다. 하벤은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뿌득 갈았다.
쾅.
“뭐야?”
한참을 몸을 살피고 있는데 문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고개를 돌려 욕실 문을 바라봤지만 별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문을 쳐다본 하벤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이번에는 철컥, 철컥.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방이라도 문고리가 빠질 듯 거칠게 돌아가는 소리에 하벤은 다급하게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늘 그렇듯 페트로가 서 있었다.
“하, 걱정했잖아요. 왜 이렇게 늦게 나와요.”
페트로는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으며 말했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힘이 들어간 손바닥이 피가 통하지 않은 거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벤은 그런 손을 보며 침을 삼키다가 페트로를 올려다봤다.
“무슨 걱정?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네.”
곧바로 나오는 대답에 기가 찼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쏟아 내고 싶었지만 무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하벤은 문 앞에 선 그의 몸을 밀쳐 내며 욕실을 빠져나갔다. 순순히 물러나던 페트로는 상의를 벗어 훤히 드러난 어깨를 바라보며 말했다.
“참,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이제부터 제 말 잘 듣는 게 좋을 거예요.”
“…뭐?”
“안 그러면 다시 우리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요.”
갑작스러운 말에 하벤이 뒤를 돌아봤다. 돌아본 얼굴에는 황당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페트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어깨에 관심을 가지며 충고를 이었다.
“그때는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을 거예요.”
이것은 경고이자 페트로의 바람이었다. 그는 어느새 하벤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어깨를 끌어안아 상체를 품 안으로 이끌었다. 씻느라 살짝 물기에 젖은 살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페트로는 촉촉한 피부를 쓸어내리며 반응을 기다렸다. 얌전히 품에 안긴 몸은 어느새 덜덜 떨고 있었다. 축사에 갇힌 게 무서웠나? 고개를 내려 얼굴을 바라보니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네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정상이었던 적이 없었죠.”
맞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하벤을 만나고 지금까지 정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점점 그에게 미쳐 가고 있는데 제정신일 리가. 페트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어깨를 끌어안은 손을 위로 움직여 자잘한 상처가 가득한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강하게 붙잡힌 목에 하벤이 컥, 기침을 터트렸다. 기침을 하느라 벌어진 입술을 탐스럽게 보던 페트로가 명령했다.
“형, 입 맞춰요. 다시 들어가기 싫으면.”
자상한 명령에 하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하지만 다시 우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그는 고분고분 손을 뻗어 페트로의 목을 끌어안았다.
굵직한 목에 두 팔을 걸자 허리로 손이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끌어안는 손에 두 몸은 밀착되고 서로의 가슴팍이 닿았다. 순간 하벤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박동 소리에 멈칫했다. 탄탄한 가슴팍에서 빠르게 요동치는 박자가 심상치 않았다. 놀라서 목을 끌어안은 한 손을 내려 넓은 가슴을 짚었다. 쿵쿵, 착각이 아니라는 듯 손바닥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거칠게 뛰다가 당장 멈출 거 같다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이 일 정도로 페트로의 심장은 크게 뛰었다.
가슴을 짚은 채 하벤이 입맞춤을 주저하자 참다못한 페트로가 고개를 숙였다. 안고 있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아 눈앞에 있는 입술을 허겁지겁 집어삼켰다. 씻으면서 물기를 머금었는지 거칠었던 입술이 제법 촉촉해졌다. 페트로는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깊숙이 밀어 넣으며 끈적한 타액을 삼켰다. 음욕을 자극하는 입맞춤에 페트로는 사납게 목청을 울렸다.
격해지는 키스에 점차 뒤로 밀려나던 하벤은 다시 페트로의 목을 끌어안았다. 맞닿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박동은 여전했다.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겨우 키스에 집중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혀와 숨결. 예민한 입안의 점막을 사정없이 쓸어내리고 침샘에서 나오는 침을 모조리 삼킨다.
분명 키스를 하는 게 맞는데 왜 잡아먹히는 거 같을까. 하벤은 공격적으로 들어오는 혀를 집어삼키며 머릿속에서 드는 쓸데없는 생각을 저 멀리 날렸다.
* * *
축사에서 나오고 며칠이 흘렀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하벤과 페트로는 늘 그렇듯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다만 예전처럼 일에 집중했던 시간보다는 둘이서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게 조금 달랐다.
페트로는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목장 일에 관심을 줄였고 대신 하벤과 시간을 보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시간을 할애했다고 해서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었다. 둘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여유로운 오전을 보내고 섹스로 남은 시간을 죽였다. 특히나 페트로는 키스를 길게 이어 가며 애무를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럴 때마다 하벤은 여러모로 난처했다.
무차별적으로 성기에 박히고 정신없이 섹스를 할 때는 몰랐는데 서로 연인이라도 되는 양 구니까 심장 한구석이 간질거려서 괴로웠다.
“손 줘 볼래요?”
“내 손은 왜.”
소파에 앉아서 하염없이 창밖만 보고 있는데 발밑에 앉은 페트로가 무릎에 머리를 올리며 말했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황당해서 쳐다보고 있자 페트로가 손을 가져갔다. 그는 하벤의 한쪽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며 주물렀다. 꽤 힘 있게 주무르는 손에서 따끈한 열이 느껴졌다.
“손이 차갑잖아요.”
하벤은 그제야 자신의 손끝이 시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포근했던 기온이 어느새 떨어지면서 공기가 서늘해졌다.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에 눈만 껌뻑이며 가만히 있자 페트로가 말을 덧붙였다.
“형은 옛날부터 그랬어요.”
확신하는 말투에 하벤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이 구는 행동이 불편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여기에 내려오고 나서 페트로는 종종 저런 태도를 보였다. 무엇을 좋아하고 즐겨 마시는지 다 아는 사람처럼 굴었다. 페트로에게 말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그런 적이 없었다. 서로 데면데면했는데 녀석에게 사적인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했다지만 결코 서로 가까운 형제 사이는 아니었다. 각자의 어머니가 달랐던 탓에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 있었다. 심지어 조용하고 무덤덤한 페트로의 성격은 이 거리를 더욱 넓히는 데 일조했다. 서로 남보다도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제에 친근한 척을 하다니, 그답지 않았다. 하벤은 페트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을 뒤로 뺐다. 다시 붙잡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페트로는 순순히 손을 놓아주었다.
“아는 척하지 마.”
하벤이 냉정한 목소리로 일축하자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하벤은 손을 거뒀고 페트로의 손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길게 이어지던 정적은 페트로의 낮은 음성으로 깨졌다.
“옛날에… 운 좋게 형 손을 잡은 적이 있었어요. 기억나요? 추운 겨울인데 형이 친구들하고 강에 놀러 나가겠다고 한 날.”
갑자기 꺼낸 말에 하벤은 어리둥절했다. 어릴 때는 강가에서 노는 게 전부였기에 언제를 묻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질문을 던진 페트로는 대답을 바라지 않았는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몇몇 아이들과 얼어붙은 강을 구경하면서 그 위를 조심히 걸어 다녔죠. 얼음이 어찌나 꽁꽁 얼었는지 깨지지도 않았어요. 형은 신이 나서 그 위를 뛰다가 넘어졌고 친구들은 넘어진 형을 일으켜 줄 생각도 안 하고 웃기 바빴어요.”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을 말하자 하벤도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페트로는 그날을 기억하는 듯한 하벤의 얼굴을 보며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 그 기억이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형이 저를 불렀어요. 늘 뒤따르던 저를 신경 쓰지 않던 형이었는데 그날은 저를 불러서 손을 내밀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손을 잡았어요. 형의 손은 제가 시리다고 느낄 정도로 차가웠죠. 지금처럼 말이에요.”
페트로는 다시 하벤의 손을 붙잡았다. 재빠르게 잡아챈 손을 강하게 움켜쥐어 자신의 얼굴에 문질렀다. 하벤의 무릎과 손에 얼굴을 문지른 페트로는 배부른 맹수처럼 깊은 숨을 들이마시다가 푹 내쉬었다.
“살면서 그날만큼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형이 여기에 있는 동안 저는 그보다 더한 행복을 맛보았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겠죠. 형은 계속 여기에 있을 테니까.”
낮게 읊조린 말은 집착이 덩어리진 듯 무거워서 숨을 막히게 했다. 하벤은 무릎에서 올라와 사타구니에 고개를 파묻는 페트로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그날의 기억을 애틋한 추억으로 곱씹었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은 아니었다. 추억을 회상하는 그의 말 하나하나에 짙은 욕망과 집착의 냄새가 지독하게 풍긴 탓이었다.
하벤의 몸은 마치 무릎 위에 사나운 짐승을 올려놓은 듯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동생이 당장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숨을 죽이던 하벤의 예상과 달리 페트로는 얌전히 있었다. 그는 사타구니에 얼굴을 문지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고 이내 기분이 좋은지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답지 않은 어리광을 부렸다.
하벤은 점점 위로 올라오는 얼굴에 긴장을 하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에 흠칫했다. 페트로의 팔이 주머니를 건드리자 뾰족하고 단단한 종이가 허벅지를 찔렀다. 하벤은 보지 않아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술집에서 만났던 변호사가 건네준 명함. 아무 생각 없이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게 여기 있었나 보다. 하벤은 생각지도 못했던 명함을 떠올리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목이 말라요.”
“어?”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애꿎은 시선만 이리저리 돌리던 하벤은 아래에서 들리는 속삭임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고개를 틀어 이쪽을 바라보는 페트로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그는 한쪽 눈으로 하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고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하벤은 재빨리 얼굴 표정을 풀었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뒤로 빼서 둘 사이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허리를 감았던 페트로의 팔이 조금 풀어졌지만 이내 다시 끌어안는 통에 소용이 없었다.
“형 우유를 마시고 싶어요.”
“…….”
페트로는 허리를 단단히 안으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우유가 무엇인지 알아들은 하벤은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혔다. 짓궂은 농담에 정색하기도 전에 솔직한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그런 하벤의 모습에 페트로는 채근했다. 당장 입에 자지를 물려 달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며 반응을 즐기는 것 같았다.
사타구니에 깊숙이 고개를 파묻은 채 숨을 들이마시는 페트로를 보며 하벤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동한 그가 정액이 먹고 싶다 말했고 자신은 그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하벤은 페트로의 손이 허벅지를 쓰다듬자 재빨리 대답했다.
“…그래. 먹여 줄게.”
다리에 놓인 손을 잡아당겨 허리 위로 끌었다. 손이 주머니에 닿기 전에 멀리 떨어트리자 페트로는 의심하지 않고 얌전히 따랐다. 살이 없는 허리를 진득이 어루만지는 손길에 하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바지춤에 손을 올렸다.
느리게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는데 페트로는 재촉하는 말 한 마디 없었다. 그는 그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깜빡이지도 않고 바라보니 저절로 손끝이 떨려 왔다. 하지만 하벤은 멈추지 않고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갈색의 음모와 힘이 들어가지 않은 성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페트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붙였다. 마치 은밀한 냄새를 탐하듯 사정없이 코를 문지르던 그는 입을 쩍 벌려서 말랑한 성기를 머금었다. 발기하지 않아 작은 크기의 성기를 삼키며 데일 거처럼 뜨거운 타액으로 성기와 밑에 달린 두 알을 적셨다.
“흡.”
쪽, 쪼옵. 마치 갓난아기가 젖을 빠는 거처럼 흡입력 있게 빠는 입에 소름이 돋았다. 페트로는 마냥 부드럽게 핥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삼키는 것처럼 집요하기 빨았다. 있는 힘껏 입을 조이며 말랑한 성기를 자극하자 작은 그것이 점차 몸집을 키워 갔다. 불편해진 가랑이에 엉덩이를 들썩이던 하벤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얇은 종이에 몸을 바로 했다. 머릿속에서 페트로에게 변호사의 명함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읏!”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하벤은 후르릅 소리를 내며 타액으로 젖은 성기를 빨아먹는 입에 몸을 떨었다. 갑작스러운 쾌감에 고개를 내리자 페트로가 이쪽을 올려다보며 성기를 맛깔나게 빨고 있었다. 그는 둥근 귀두를 사탕 빨듯 빨다가 뱉으며 물었다.
“나 목마른데, 안 줄 거예요?”
딴생각을 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올려다보는 눈초리가 곱지 않다. 점차 매서워지는 눈매에 하벤은 그의 머리를 잡아 눌렀다. 그러고는 다시 입에 성기를 물리며 말했다.
“아, 알았어. 금방 줄게…….”
페트로는 하벤의 대답이 우스웠는지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의 콧바람이 음모 위로 쏟아졌다. 작게 웃은 그는 입안으로 들어온 성기를 쭉 빨았다. 혀로 기둥에 선 울퉁불퉁한 핏줄을 더듬다가 얇은 피부를 쓸어 올렸다. 비릿한 맛과 향이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어야 마땅한데 입에 머금은 자지는 구미가 당길 정도로 맛있기만 하다.
혀를 움직이며 성기를 게걸스레 맛보던 페트로는 눈썹을 휘며 하벤을 올려다봤다. 얼른 정액을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페트로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머리를 잡아 천천히 허리를 흔들었다. 얼른 그가 원하는 대로 정액을 싸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물쩍거리다가는 주머니에 넣어 둔 명함이 들통나고 말 것이다. 하벤은 페트로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작은 종이 쪼가리를 찾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손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쥐고 구강성교에 집중하지만 신경은 바지 주머니로 향했다. 명함에는 변호사 사무실 연락처가 적혀 있을 텐데, 기회를 엿보아서 전화를 해야 할까. 그래서 페트로가 했던 짓에 대해서 고해야 하나. 알고 보니 당신의 의심이 맞았고 그걸 눈치채지 못한 내가 병신이었다고? 하벤은 절로 드는 자괴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에 바보 같은 자신을 비웃는 변호사의 얼굴이 그려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딴생각에 성기가 풀이 죽을 법도 한데, 페트로의 입안에서 죽기는커녕 더욱 몸집을 키워 갔다. 머릿속이 복잡하던 하벤도 계속되는 자극에 결국 달뜬 신음을 흘리며 구강성교에 빠져들었다.
페트로의 입술은 능숙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는지 성기를 빠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고 서툴렀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녀석은 정성을 들여 성기를 핥았다. 끈적한 액을 흘리는 귀두부터 시작해서 기둥으로 내려가 그 아래 있는 뿌리와 고환, 그리고 얇은 음모까지 샅샅이 핥았다. 하벤은 힘 있는 남자의 흡입력과 노골적인 애무에 헉헉거리다가 잡고 있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허리를 크게 튕겼다.
“아, 싸… 쌀 것 같아. 아! 으윽…!”
하벤은 사정을 참지 않았다. 동생의 입에 정액을 분출한다는 게 부끄럽고 껄끄러웠지만 당장 정액을 원하는 녀석의 재촉에 참지 않고 싸질렀다.
하벤은 아랫배에 힘을 줄 때마다 느껴지는 입 근육에 열이 올랐다. 싸는 대로 착실하게 받아먹는 게 어느 남창보다도 음탕해 보였다. 크게 정액을 한 발 싸면 입술을 오므리고 혀로 정액을 긁어모은다. 그리고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입안을 채웠던 정액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아, 맛있어요…….”
정액을 한 방울마저 남기지 않고 말끔히 핥아 먹은 페트로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는 비릿한 정액이 맛있는 단물이라도 되는 거처럼 입맛을 다시며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벤은 그의 밝게 펴진 안면을 보며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노골적으로 만족스럽다는 상대의 반응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기 힘들었다. 남자 좆을 빤 게 뭐가 좋다고 저런 표정인지, 하벤은 고개를 홱 돌리며 그를 외면했다.
“형은 정액도 정말 맛있는 거 같아요.”
그런 외면에도 페트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벤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잔뜩 풀어진 나른한 목소리가 사랑을 나누고 한껏 만족감을 느끼는 남자의 목소리 같았다.
부랴부랴 바지춤을 여미던 하벤은 그런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평소 같으면 코웃음을 치며 비웃거나 무슨 소리냐며 사납게 윽박을 질렀겠지만 생각이 많아진 지금으로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페트로는 그런 미묘한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그저 무릎에 머리를 비빌 뿐이었다.
하벤은 제 무릎을 벤 머리통을 보며 멈췄던 고민을 다시 이어 갔다.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도대체 언제 해야 하는 걸까. 목장 일을 신경 쓰지 않는 동생은 더 이상 전처럼 바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 머물면서 자신과 놀다가 가끔 한 번씩 축사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가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 잠깐 사이에 전화를 거는 건 불가능했다.
생각해 보면 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 혼자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하벤은 새삼 깨닫는 사실에 질색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평생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해야 하는 건가. 제정신이 아닌 페트로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고 녀석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자신도 없었다. 하벤은 고민하다가 페트로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얌전하게 있을 줄 알았던 녀석이 어느새 손을 뻗어 왔다.
“자, 잠깐만.”
남의 자지를 빨면서 욕구가 동했는지 페트로가 몸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하벤은 앉은 자신의 위로 올라오는 커다란 몸에 긴장했다. 이대로 섹스를 할 수는 없었다. 바지 주머니를 움켜쥔 그는 번뜩이는 생각에 곧장 페트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상대의 행동을 막는 거라고 하기에는 허리를 안은 팔이 퍽 애처로웠다.
갑자기 허리를 안은 힘에 페트로의 몸이 멈췄다. 품에 안긴 몸에 놀란 듯 나른하게 풀어졌던 두 눈이 크게 확장됐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정확히는 품에 안긴 하벤을 내려다봤다. 믿기 힘든 것을 본 거처럼 시선이 경직되었다. 하벤은 그런 반응을 살피며 허리를 더욱 끌어안았다.
“페트로, 나 힘들어.”
페트로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속삭였다. 녀석에게 반항하거나 거부하면 돌아오는 건 강압적인 것뿐이었다. 도망가려고 하면 녀석은 자신을 가두고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기에 하벤은 방법을 바꾸자 생각했다. 도망가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고, 마치 녀석에게 정을 붙인 거처럼 순종적으로 굴면 녀석의 강압적인 집착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과연 먹힐까. 갑자기 고분고분한 행동에 되레 의심을 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면서도 당장 알아보고 싶었다.
그런 하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페트로는 한참 동안 말을 아꼈다. 그저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하벤은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하는 자책을 하는데 순간 어깨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슬쩍 위를 쳐다보니 페트로가 자상한 얼굴로 하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많이 힘들어요?”
“으응.”
어깨를 토닥이는 손이 뒤로 넘어가 하벤의 몸을 끌어안았다. 부드럽게 끌어안으면서 묻는 말에 하벤은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얼떨결에 대답했다.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물음에 마치 자신의 힘들다는 말이 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졌다. 수치스러웠지만 끌어안은 허리는 놓지 않았다. 시도가 좋았다. 이렇게 순종적으로 굴다가 녀석이 방심하는 순간을 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미안해요. 그럼 들어가서 쉴까요?”
그런 하벤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페트로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고는 등을 토닥이는 손길로 부족했는지 정수리에 입술을 묻으며 자잘한 입맞춤을 남겼다. 입술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두피 곳곳을 탐했다.
하벤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입맞춤에 목을 움츠렸다. 당장이라도 페트로가 같잖은 수작을 부리지 말라며 목을 움켜잡고 소파 위로 내동댕이칠 거 같았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고 싶었지만 긴장으로 굳어진 몸은 어쩔 수 없었다. 하벤은 어깨를 안고 침실로 향하는 손에 의지해 걸음을 옮겼다.
낑, 끼잉.
천천히 침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등 뒤에서 애처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가 내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았던 개가 어쩐 일인지 애달프게 울기 시작했다. 걱정이 된 하벤이 어깨를 감싼 손을 치우고 뒤를 돌아보려는데 페트로가 이를 봐주지 않았다. 어깨를 부드럽게 움켜쥐던 손이 어느새 우악스러워졌다.
“신경 쓰여요?”
작게 속삭이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부드럽게 풀어졌던 분위기가 조금씩 굳어지고 있는데 멍청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벤의 대답이 정답이었는지 어깨를 움켜잡던 손의 힘이 느슨해졌다. 둘은 다시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마침내 침실 문이 닫혔다. 끄응. 등 뒤에서는 연신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벤은 그 소리가 마치 개장수에게 끌려가는 개의 서글픈 울음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의 늙은 개는 집에 있고 어디로 끌려가지도 않는데 말이다.
달칵.
하벤은 문을 잠그는 소리에 입을 달싹였다. 왜 잠그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무엇을 물어보든 페트로의 심기를 건드릴 것만 같았다. 하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마음을 졸였다.
“이리 와서 누워요.”
먼저 침대로 걸어간 페트로가 두꺼운 이불을 걷어 내며 손바닥으로 툭툭 두들겼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푹 쉬라는 뜻이었다. 마지못해 가까이 다가간 하벤은 손길에 이끌려 침대에 누웠다.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자 페트로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침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옆에 누웠다. 손으로 머리를 괴고 내려다보는 시선에 하벤은 이불을 끌어와 눈 밑까지 덮었다.
“이해해요. 한 발 뺐으니까 피곤할 만하죠.”
“…조용히 해.”
“부끄러워요?”
가까이서 보이는 개구진 얼굴이 제 나이로 보이게 한다. 하벤은 페트로의 어린 나이를 새삼 느끼며 푹신한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마지못해 누웠지만 포근하고 따뜻한 온기가 몸을 늘어지게 했다. 눈앞에 보이는 앳된 얼굴과 옆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체온. 하벤은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임에도 풀어지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휘몰아치던 시간이 지나가고 고요한 시간이 찾아오자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언제 녀석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당장 기회를 바라는 건 말도 안 되겠지. 하벤은 이불 속에서 바지 주머니를 더듬으며 생각했다. 성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괜한 조급함으로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생각에 잠겼던 하벤은 눈도 붙이지 않고 계속해서 쳐다보는 페트로의 시선에 등을 돌렸다. 피곤하다는 자신의 말에 녀석도 얌전히 있으니 다행이었다. 밀려오는 안도감에 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윽.”
하지만 안도도 잠시, 등 뒤에서 훅 끼쳐 오는 체온에 하벤은 몽롱해지는 정신을 바로 차렸다. 힘들다고 말했는데 끝끝내 섹스를 하려는 걸까 하는 걱정에 몸이 굳어졌다. 순식간에 페트로의 손이 허리에 닿고 바지가 반쯤 내려갔다. 하지 말라고 말하려던 하벤은 엉덩이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긴 기둥에 멈칫했다. 잔뜩 성이 난 성기는 구멍으로 파고들지 않고 엉덩이 골을 문질렀다.
“구멍에 박지 않을게요. 형은 가만히 있으면 돼요.”
어느새 허리를 안은 손이 올라와서 가슴 부근을 토닥인다. 하벤은 골 사이를 들락거리는 뜨거운 성기에 저절로 다리를 모았다. 마치 섹스를 하는 거처럼 거칠게 움직이는 페트로의 허리에 덩달아 몸이 뜨거워졌다.
귓가에는 잔뜩 흥분한 녀석의 뜨거운 호흡이 쏟아졌고 등 뒤에서는 서로의 살결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불 속이 덥다고 느껴질 정도로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는 엉덩이 골에 비비던 성기가 자리를 옮겨 다리 사이로 향하자 걷잡을 수 없어졌다. 예민한 허벅지 안쪽 살에서 느껴지는 성기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하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성기에 허벅지 안쪽이 데일 거 같았다.
“형은 자지가 잘빠졌어요. 으음, 크기도 적당하고 색도 예쁘고 심지어 정액도 맛있죠.”
“하아…….”
다리 사이에서 슥, 슥 비비던 소리는 어느새 물기를 머금은 질척거리는 소리로 변했다. 귀두의 갈라진 틈으로 흘러나온 말간 액이 다리 사이를 적시기 시작했다. 물기 어린 소리와 함께 보드라운 허벅지 안쪽은 젖어 들어갔다.
다리를 꼬며 헐떡이던 하벤은 슬쩍 이불을 들추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사타구니 사이로 선단에 묽은 방울이 맺힌 검붉은 성기가 들락거리고 있었다. 하얀 다리와 대조되는 붉은 성기는 한눈에 봐도 잔뜩 성이 나 있었다.
“그 자지로 많은 사람들의 구멍을 쑤셨을 거라 생각하면 참 속상해요.”
거친 호흡이 들어간 속삭임에 목뒤로 솜털이 돋았다. 페트로는 속상하다는 말을 내뱉으면 허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성기가 드나드는 허벅지는 마찰로 빨갛게 달아올랐고 사타구니는 성기가 쏟아 내는 액으로 더럽혀졌다.
하벤은 성기가 움직이면서 고환을 찌르는 통에 몸을 움찔거렸다. 이미 사정으로 예민해진 몸은 작은 자극으로도 쉽게 달아올랐다. 한참 동안 이불을 끌어안으며 신음을 흘리던 하벤은 손을 뒤로 뻗었다. 그러고는 페트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제는 그럴 일이 없는데.”
“하아… 크윽.”
“으응!”
하벤은 페트로의 말속에서 불만이라는 감정을 읽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불만스러워서 투정을 부리듯 페트로의 말과 행위에도 그런 불만이 느껴졌다. 이럴 때는 어르고 달래야 한다고 생각한 하벤은 그가 좋아할 만한 말을 주절거렸다. 그리고 그 판단이 옳았는지 곧장 페트로에게서 반응이 왔다.
허리를 잡고 움직이던 페트로가 하벤의 몸을 끌어안으며 속도를 올렸다. 헐렁한 다리 사이가 불만인지 직접 두 다리를 모으고 허리를 강하게 쳐올렸다. 장골에 부딪힌 둔부가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거칠게 박아 대는 힘에 하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이불을 틀어쥐며 모은 허벅지가 벌어지지 않도록 힘을 줄 뿐이었다.
허벅지 사이가 마치 구멍이라도 된 거처럼 거칠게 박아 대던 허리가 한순간 멈췄다. 낮게 울리는 성대와 동시에 다리 사이로 뜨끈한 정액이 흘러내렸다. 하벤은 손을 내려 다리 사이를 만졌다. 정액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이불을 적셨다. 손에 묻은 정액을 문지르자 숨을 고르던 페트로가 등 뒤에서 속삭였다.
“맞아요. 이제는 그럴 일이 없죠. 형이 두 번 다시 다른 구멍에 자지를 박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죠?”
하벤은 페트로의 물음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페트로가 등을 끌어안았다. 등 뒤에서 뻗은 팔이 몸을 단단히 옭아맸고 등에 밀착된 가슴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떨리는 호흡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녀석의 벅찬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벤은 그 감정에 입을 꾹 다물었다. 꾸며진 말 한 마디에 반응하는 녀석이 신기하면서도 똑바로 마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하벤은 자신을 안은 팔을 토닥이며 애정이 섞인 듯한 자상한 어루만짐을 흉내 냈다. 이걸로 페트로가 방심했으면 좋겠다. 같은 마음이라고 착각하고 방심해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영영 놓쳤으면 좋겠다. 하벤은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그리며 눈을 감았다. 같은 침대에 누웠지만 아마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 *
“기운이 없네.”
한겨울로 접어들면서 늙은 개의 상태가 더욱 나빠졌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봤던 생기 넘치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거처럼 지금은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겨우 숨만 쉴 뿐이었다. 하벤은 그런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녀석이 기운을 차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녀석은 눈만 깜빡일 뿐, 쓰다듬어 주는 이를 쳐다보는 것도 힘겨워했다.
“왜 이러는 거지.”
“이제 때가 온 거죠.”
하벤의 물음에 때마침 집으로 들어온 페트로가 어깨에 쌓인 눈을 털며 답했다. 축사에서 돌아온 그는 찬 기운을 달고 들어왔다. 덩달아 추워진 하벤이 부르르 떨다가 개에게 덮어 준 담요를 여몄다. 혹여나 찬바람에 상태가 더 나빠질까 싶어서였다. 꼼꼼히 담요를 여민 하벤은 페트로를 올려다봤다. 무슨 의미냐는 시선에 페트로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죽을 때요.”
“…설마.”
“그 녀석 꽤 오래 살았잖아요. 오늘 당장 죽어도 이상할 건 없죠.”
소름 끼치게 냉정한 말에 괜히 서글펐다. 하벤은 색색 숨을 쉬는 개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죽을 때가 되었다는 건 은연중에 알고 있었지만 막상 코앞에 닥치니까 믿기 힘들었다. 이별은 늘 이랬다. 예기치 못한 이별도 슬펐지만 어느 정도 예상한 이별도 그에 못지않았다. 힘이 빠진 하벤은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무릎을 끌어안았다. 착 가라앉은 기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을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형이 원한다면 더글라스에게 데려갈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얼굴을 보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미소 덕분에 무뚝뚝한 얼굴이 한껏 자상해졌다. 하벤은 그런 페트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창밖을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강해지는 눈보라에 밖의 상황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런 날씨에 차를 끌고 갈 수 있을까. 아마 끌고 간다고 해도 눈보라가 더 심해진다면 돌아오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어…….”
“어쩌고 싶어요?”
하벤은 순간 빠르게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페트로를 바라봤다. 어쩌면 벗어날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거 같았다.
마주치는 시선에 하벤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움찔거리는 얼굴 근육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자 바닥에 엎드린 개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가쁘게 내쉬는 호흡에 둥글게 만 몸뚱이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런 개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죽어 가는 친구를 보며 놀랍게도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가자. 가서 도와 달라고 하자.”
하벤은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페트로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벽난로에 불을 지핀 덕에 따뜻해진 손이 그렇지 못한 차가운 손을 감싸 쥐었다. 얼음장 같은 손가락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하자 페트로가 손을 마주 잡았다. 손은 마주 잡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괜스레 조급해진 하벤이 재촉했다.
“내가 갈까? 너 바쁘잖아.”
근래에 목장 일에 등한시한 페트로라도 눈이 휘몰아치고 기온이 떨어진 요즘 목장을 내버려 두기는 어려웠다. 어린 젖소들이 갑자기 떨어진 기온을 버티지 못하고 동상에 걸려 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정을 잘 아는 하벤은 페트로에게 말하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마주 잡은 손은 여전했지만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묘하게 불만이 서려 있었다. 이를 빠르게 알아차린 하벤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 내키지 않으면 여기 있을게.”
내가 여기서 나가는 걸 원치 않겠지. 속으로 생각한 하벤은 아까보다 한층 풀어지는 눈빛을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하벤의 말에 페트로는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깜빡이다가 물었다.
“혼자서요?”
“응.”
“그냥 같이 가죠.”
페트로는 마주 잡은 손을 당겼다. 그러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하벤은 훅 가까워진 몸이 부담스러워 뒤로 주춤 물러섰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대로 같이 갈 수는 없다. 둘 사이에 거리를 벌리며 하벤이 다시 용기를 내었다.
“아, 아니야. 계속 눈이 오는데 둘 다 자리를 비우기는 좀 그렇잖아. 게다가 일 안 끝난 거 아니야?”
태연한 척하려고 애를 썼다. 긴장으로 굳어지는 표정을 풀며 말하자 페트로가 고개를 기울이더니 그렇다고 긍정했다.
“맞아요. 더 추워질 거 같은데 자리를 비우는 것도 걱정이죠.”
“그럼 어쩔 수 없네. 내가 여기서 축사를 살펴보고 있을게.”
여기서 얌전히 있을게. 망설이지 않고 덤덤하게 내뱉는 말에 잠시 페트로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이럴수록 아무렇지 않게 굴어야 의심을 사지 않는다. 하벤은 애처로운 표정을 연기하며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얘 좀 부탁할게.”
여태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앞에 선 페트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굵고 탄탄한 허리를 안자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팍에 머리를 부빈 하벤은 페트로가 자신의 이런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았는지 페트로에게서 거절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른 다녀와, 페트로.”
하벤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속삭였다. 그러자 줄곧 얼어붙어 있던 페트로가 황급히 몸을 부둥켜안았다. 그는 마치 서로의 몸이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처럼 두 팔로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힘겹게 마주 안은 하벤은 그런 페트로의 진득한 소유욕을 애써 모르는 척 외면했다. 쓸데없이 녀석의 감정에 일일이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더글라스에게 개를 데려가기로 결정한 두 사람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발이 더욱 거세질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페트로는 외투를 챙겨 입으며 나갈 채비를 했고 하벤은 마지막까지 개의 곁에 붙어서 마른 등을 쓰다듬었다.
쇠약해지는 개를 보니 슬펐지만 이번 기회로 변호사에게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한시름 놓았다. 아픈 개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벤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녀석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갔다 올게요. 눈 때문에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페트로가 아픈 개를 안고 현관으로 걸어가자 하벤이 얼른 뒤를 따랐다. 나서는 페트로를 배웅하자 그가 뒤를 돌아보며 입을 맞췄다. 자주 입술을 붙였던 둘이었기에 이런 입맞춤에 놀라지 않았다. 하벤은 입술을 핥는 혀에 입을 살짝 벌렸다. 안으로 들어오는 혀를 앞니로 물자 페트로가 흡족한 듯 쉽사리 물러났다.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형이 다녀오라고 말해 줘서 기뻐요. 돌아와도 형이 여기 있을 거라는 소리잖아요.”
은근한 미소와 말에 하벤은 잠시 당황했다. 눈앞에 보이는 밝은 표정 때문이었다. 그는 다녀오라는 하벤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말없이 손가락 끝을 까딱거리던 하벤은 해맑기만 한 얼굴과 마주하며 굳어지는 입꼬리를 애써 풀었다. 그러고는 페트로의 등을 밀며 늦게 전에 다녀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녀올게요.”
하벤은 부드러운 인사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페트로가 밖으로 나갔다. 서서히 닫히는 문틈 사이로 멀어지는 등을 보며 하벤은 주먹을 쥐었다. 탁, 이내 문은 닫혔고 넓은 집 안에 오로지 혼자가 되었다. 혼자 남겨진 하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 막히는 정적에도 숨소리마저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휭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 사이에서 페트로의 기척이 조금이나마 들리는 거 같았다.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조금씩 사라지자 옴짝달싹 않던 하벤이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향했다. 커튼 사이로 밖을 바라보자 새하얀 눈발 위로 그려진 차바퀴 자국이 보였다. 드디어 갔구나. 하벤은 그제야 부랴부랴 걸음을 옮겼다. 침실과 방을 오고 가며 명함을 숨겨 둔 옷가지를 찾았다.
“여기 있을 텐데…… 찾았다.”
꽁꽁 숨겨 둔 명함을 겨우 찾은 하벤은 그것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탁상 위에 놓인 전화기를 찾았다. 곧장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는데 긴장한 탓인지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젠장! 밀려드는 조급함에 거칠게 욕을 내뱉은 하벤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며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 3, 7, 1……. 숫자를 하나씩 돌리자 드디어 통화 연결음이 가기 시작했다.
몇 번의 연결음이 흘렀지만 상대는 받지를 않는다. 하벤은 바짝 마르는 입술을 혀로 적시며 상대가 빨리 받기를 기도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전화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연결음이 흐르고 얼마 안 가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샌더스 변호사 사무실입니다.]
“샌더스 씨?! 저…!”
[오, 잠시만 진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전화를 받은 이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았다. 하벤은 전화를 받은 상대가 변호사가 아니라 낯선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당황한 그가 겨우 이름을 밝혔다.
“하벤, 하벤 클로이드입니다. 저 혹시 샌더스 씨는…….”
[자리에 계시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벤 클로이드라고 하셨죠?]
“네, 네!”
하벤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상대는 여유롭기만 하다. 또다시 시작된 기다림에 하벤은 괜스레 창밖을 힐끔거렸다. 혹여나 페트로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밖을 힐끔대던 눈은 아예 창문에 고정되었다.
[하벤 씨?]
“샌더스 씨!”
짧지만 긴 기다림 끝에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변호사의 목소리였다. 하벤은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변호사가 당황한 듯 물었다.
[어쩐 일입니까? 혹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려는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의 의혹이 맞았고 페트로는 유언장이라는 미끼로 자신을 가지려고 한다, 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다가 다시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왜지, 그냥 말하면 될 텐데. 당황한 하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변호사가 또다시 자신을 불렀다.
[하벤 씨, 말씀하세요.]
변호사의 목소리에 하벤은 순간 변호사에게 모든 걸 말하고 나면 페트로와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페트로의 의도대로 적인 유언장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그 안에 적힌 유산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두 번째 유언장에만 상속인으로 적힌 자신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르는 물음에 점차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전에 샌더스 씨가 말씀하셨던 거… 만약 진짜로 페트로가 그랬다면 아버지 유언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정확히는 유언장에 적힌 상속인은 어떻게 되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노골적인 물음을 던질 자신이 없어 에둘러 물었다. 그런 물음에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하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짙어졌다. 결국 참다못한 하벤이 변호사를 부르려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 의혹이 맞는다면, 타인의 강압으로 인해 작성된 두 번째 유언장은 효력을 잃게 됩니다.]
“…그렇단 얘기는 제 상속인 신분도 무효가 된다는 건가요?”
[…….]
변호사의 침묵은 두 번째 유언장에 적힌 자신의 이름도 효력을 잃게 된다는 뜻이었다. 하벤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혹시나 했던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한 하벤은 수화기를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에 봤던 유산을 정리한 서류가 눈앞에서 휘날리고 있는 듯했다. 얼마였더라, 이곳 땅이랑 다른 부동산, 그리고 은행에 묶인 돈까지……. 액수를 헤아리던 하벤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엄청난 금액에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올 거 같았다. 이대로 유언장이 무효가 된다면 자신의 손에 떨어질 거액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충격으로 제대로 된 통화를 이어 갈 수 없었던 하벤은 수화기만 들고 하염없이 서 있었다. 하얗게 변한 머릿속으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을 거 같았다. 분명 페트로에 대해 말을 꺼내야 하는데 눈앞에 있는 돈이 걸렸다. 유언장, 동생, 감금 그리고 돈. 머릿속이 뒤죽박죽 뒤엉킨 하벤은 끝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하하!”
그런 하벤의 뒤에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느껴지는 차가운 한기와 인기척에 하벤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등 뒤에는 언제 돌아왔는지 모를 페트로가 허리를 접어 가며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하벤은 온 집 안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에 황급히 송화기 쪽을 손으로 막았다. 무의식적으로 취한 행동이 마치 페트로의 웃음이 송화기를 타고 흘러가지 않게 하려는 거 같았다.
[하벤 씨?]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잠시만요, 끊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변호사가 다급하게 하벤을 불렀다. 하지만 그런 부름을 무시한 하벤은 망설이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탁.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뒤를 돌아본 채로 굳어 있자 어느새 웃음을 거둔 페트로가 한 걸음 다가왔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페트로에게서 차가운 바람 냄새가 났다. 하벤은 눈발에 젖은 그의 어깨와 바지 밑단을 바라봤다. 분명 밖으로 나간 흔적이었다. 나간 그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몰랐던 하벤은 가만히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 봤다.
“왜…….”
묻고 싶은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얼굴을 보자 그런 생각들이 증발했다. 무섭도록 무표정한 얼굴에 소름이 끼쳤다. 페트로는 번뜩이는 두 눈알로 하벤의 얼굴을 샅샅이 살펴보더니 말을 꺼냈다.
“요즘 들어 유난히 나긋하게 굴더니, 이거 때문이었어요?”
어쩐지 너무 말을 잘 듣더라. 귀여워서 발라 먹고 싶은 걸 꾹 참았어요. 나른하게 읊조리는 말이 귓가에 박혔다. 하벤은 본능적으로 드는 두려움에 다리가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물었다.
“…더글라스에게 간다며. 개는 어쨌어?”
“개요? 가는 길에 죽었죠. 제가 말했잖아요, 당장 죽어도 이상할 거 없다고.”
대화를 이어 가면서도 페트로는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피해 조금씩 뒤로 물러나던 하벤은 등 뒤로 탁상이 닿자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전에 느꼈던 절망이 그새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 잠깐 사이에 개가 죽었다니, 하벤은 페트로가 풍기는 음습한 기운에 그가 개를 죽였다고 말해도 이상할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깨끗한 그의 손을 힐끔거리자 머리 위로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접 확인해 보니 어때요?”
“…….”
“암담한가요? 변호사에게 사실대로 말하자니 형 손에 떨어지는 유산이 없고, 제 말대로 하자니 여기서 갇혀 살아야 하는데…….”
“갇혀 살기는 누가…!”
“그러면 당장 나가게요?”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낮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벤은 그 웃음소리가 자신을 비웃는 듯해서 얼굴을 사납게 구겼다.
페트로의 말처럼 당장 이곳을 박차고 나가기에는 아버지의 재산이 걸렸다. 재산은 한두 푼 하는 애매한 금액이 아니라 평생을 손에 쥐어 볼까 말까 한 거액이었다.
하벤은 시골에서 살았을 때는 잘 알지 못했던 부의 진정한 의미를 도시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돈이 지위였고 신분이었다. 흉악한 범죄자라도 돈이 있으면 어느 누구보다도 고귀한 신분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런 도시에서 하루 벌어 먹고살았던 하벤은 돈에 대한 갈망을 키워 갔다. 그곳에서는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것과 같았으니까 말이다.
쉬이 대답을 하지 못하는 하벤을 보며 페트로가 입을 열었다. 그의 양손은 어느새 하벤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형… 저는 며칠 동안 너무 행복했어요. 물론 우리 둘 사이에 다툼이 있었지만 나름 사이좋게 잘 지냈잖아요.”
페트로의 자상한 속삭임에 하벤의 입꼬리가 경련했다. 다툼이라는 둥 사이좋게 지냈다는 둥 지껄인 말들이 죄다 하벤의 입장에서는 옳지 못한 말이었다. 그가 말하는 다툼은 일방적으로 한쪽이 농락당하는 것이었고, 사이좋게 지냈다는 나날은 하벤이 페트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납작 엎드려서 눈치를 본 나날에 불과했다. 하벤은 제멋대로 내뱉는 페트로의 말에 눈 밑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렇게 날 떠날 궁리를 하다니…….”
페트로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말없이 창밖을 보던 그가 다시 하벤을 바라본 건 한참 뒤였다. 놀랍게도 두 눈에는 약간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물기 어린 눈동자에 놀란 하벤이 입을 벌리자 페트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어요? 또 나를 버리면서?”
웃고 있는 입가와 촉촉하게 젖은 눈매가 상반되었다. 페트로는 자신의 감정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괴기하게 웃는 입과 달리 젖은 두 눈은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하벤은 그런 페트로의 얼굴을 보며 얼어붙었다. 얼굴을 보자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던 순간순간이 떠올랐다. 자신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확연히 드러나는 녀석의 감정. 입술을 맞추자 느낄 수 있었던 터질 거 같은 심장 박동. 하벤은 그때처럼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얼굴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형이 선택해 줘요.”
“뭐?”
“형은 어쩌고 싶어요?”
내게서 도망가고 싶어요? 목이 잠겨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 뒷말에 하벤은 고개를 숙였다. 분명히 상황을 본 페트로가 자신을 우리에 감금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기회였다.
어깨를 붙잡은 손은 떨어진 지 오래였다. 하벤은 차가운 손이 움켜쥔 제 어깨를 어루만졌다. 나는 어쩌고 싶은 거지. 마음속으로 수십 번을 되물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유산과 페트로 사이에서 갈등하던 자신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오면 분명 도망가기로 했는데……. 하벤은 줄곧 페트로에게서 도망치는 자신을 상상했다. 녀석과의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이 싹트기 전에 재빨리 도망가는 자신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 아니, 정확히는 정상적이지 않은 이복동생에게 도망치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난…!”
고개를 든 하벤은 마주치는 얼굴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서 있는 꼴이 마치 감정에 서툰 어린아이 같았다. 어쩔 줄 모르고 마냥 가만히 있는 아이. 하벤은 페트로의 낯선 모습에 망설였다.
“나는…….”
하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새 녀석에게 몸정이라도 든 걸까.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와 이성이 충돌을 했고 놀랍게도 자신은 그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미안한데 난 가야겠어, 페트로.”
하지만 하벤은 이 모든 걸 내려놓았다. 결국 끝끝내 발목을 잡던 유산도 하벤의 결단을 막지 못했다. 하벤은 앞을 막아선 페트로의 어깨를 밀치며 걸음을 옮겼다. 이내 고요한 집 안에서 빠르게 달아나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홀로 남겨진 페트로는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하염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에는 여전히 거센 눈발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 * *
눈이 녹아 질척한 초원을 내달리는 낡은 지프차가 돌부리를 밟고 덜컹거렸다.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던 더글라스는 혀를 차며 창문을 내렸다. 내린 창문 사이로 매서운 찬바람이 들어오자 불만이 서려 있던 얼굴이 더욱 뚱해졌다. 이런 추운 날씨에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러 가는 자신의 처지가 퍽 안타까웠다.
한적한 길을 내달리며 찬바람을 맞던 더글라스의 눈에 익숙한 울타리가 들어왔다. 페인트칠을 한 지 꽤 되었는지 울타리 곳곳에 칠이 벗겨져 있었다. 그는 말없이 울타리를 보다가 잡고 있던 핸들을 옆으로 돌렸다. 주문한 술과 식료품을 받기 위해서 마을 입구로 향하던 차는 달리던 길을 벗어나 울타리 안으로 향했다. 차바퀴가 풀을 짓밟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요란한 엔진음에 축사 안에서 누군가 나왔다. 건장한 체구와 잘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돋보이는 사내였다. 더글라스는 사내를 확인하자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가자 사내가 그를 쳐다봤다. 말없이 보는 시선에 더글라스는 익숙하게 손을 들어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어어, 지나가다 잠깐 들렀어.”
껄렁거리는 성의 없는 인사에 사내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빠져나왔던 축사 문을 닫았다. 빈틈없이 닫은 사내는 더글라스에게 다가갔다. 작업복을 입은 모양새가 일을 하다가 나온 거 같았다. 더글라스는 그런 그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 부지런하네, 페트로.”
“늘 바쁘니까요.”
사내, 페트로는 축사 입구에 쌓아 놓은 볏짚을 살피며 대꾸했다. 한가득 쌓인 볏짚이 그가 이른 새벽부터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저게 몇 개람. 더글라스는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득 쌓인 볏짚에 혀를 내둘렀다. 하긴 혼자서 이 넓은 목장을 관리하는 거부터가 대단하기는 했다. 가만히 볏짚을 바라보던 더글라스는 줄곧 묻고 싶었던 것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자네 형은 아직 안 돌아왔나?”
벌써 몇 달이나 지났지? 이어지는 질문에도 페트로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그저 가득 쌓인 볏짚을 들고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더글라스는 그런 페트로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몇 달 전에 도시로 갔다는 그의 형이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벌써 계절이 한 차례 바뀌었건만 여태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니 그와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았던 더글라스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서운하고 답답했다. 타인인 자신도 이런데 혈육인 페트로는 오죽할까…….
처음에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의심했던 더글라스는 이제 의심보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클로이드 형제에게 가족이라고는 서로뿐인데, 그중 한 명이 소식조차 없으니 홀로 남겨진 페트로가 안타까웠다.
“거참, 언제쯤 돌아올는지…….”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생각에 더글라스는 헛기침을 하며 대화를 바꿨다. 요즘 손님이 별로 없어서 힘들다는 둥, 늘 술집에 죽치고 있는 주정뱅이가 기어코 술잔을 깨 먹었다는 둥 시답지 않는 이야기뿐이었다. 더글라스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그는 눈치를 살피다가 사과했다.
“…괜한 소리를 해서 자네 기분만 상하게 했네.”
“괜찮아요.”
질책이 담기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에도 더글라스는 눈치 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쭈뼛거리던 그는 일하는 페트로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당장 물건을 받으러 가야 하는 처지인데도 눈앞에 사내가 신경 쓰여서 쉽사리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평소에도 재미없고 심심한 사내지만 이번만큼 축 가라앉은 적이 없었다. 제 형이 떠난 뒤로 말수는 더욱 적어지고 조용하던 분위기는 가라앉다 못해 땅굴을 파고 들어갈 정도였다. 이렇게 달라진 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 않고 뒤에서 알짱거리고 있는데, 묵묵히 일만 하던 페트로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젖소를 팔려고 하는데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젖소를? 몇 마리나?”
“전부 다요.”
우유가 아닌 젖소를, 그것도 전부 다 팔겠다는 말에 더글라스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졌다.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금까지 목장을 관리하던 페트로가 모든 젖소를 팔겠다고 말하니, 이는 목장을 접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뜬금없는 소리에 놀란 더글라스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목장을 접으려고?”
“네. 그동안 아버지 유언 때문에 계속 이어 왔는데, 이제는 필요 없어져서 정리하려고요.”
단호한 음색에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더글라스는 더 캐물으려다 말았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할 텐데 눈치 없이 물을 수는 없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침음에 잠겼다가 물었다.
“허어… 그럼 이 부지도 팔 건가?”
“땅은 그대로 둘 생각입니다.”
“어째서?”
땅을 팔지 않겠다는 말에 더글라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젖소를 키우지 않는다면 이 넓은 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시골 땅이 기다린다고 값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어 봤자 애물단지밖에 안 되니 차라리 팔고 돈으로 가지고 있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런 더글라스의 의문을 알아차린 페트로가 말을 덧붙였다.
“젖소 대신 다른 걸 키우게 되었거든요.”
“다른 거? 뭐야, 목장을 접겠다며. 아니 그럼 젖소가 아니라 다른 목장을 하겠다는 소리야?”
페트로의 말을 제멋대로 해석한 더글라스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페트로에게서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무엇을 키울 거냐는 물음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던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볏짚을 들어 올리며 더글라스를 돌아봤다. 말없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 더글라스는 혀를 내둘렀다. 저 눈빛을 보니 절대 대답해 주지 않을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먼저 물러서기로 했다.
“그럼 알아보고 다시 오지”
“부탁드릴게요.”
“끝끝내 안 알려 주는군.”
매정한 녀석이라며 혀를 찬 더글라스가 차에 올라탔다. 비록 궁금증을 풀지 못했지만 오래간만에 페트로와 긴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것에 퍽 만족스러웠다. 하벤의 빈자리가 길어질수록 점점 과묵해지는 페트로가 걱정스러웠던 그는 앞으로도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글라스는 시원스레 웃으며 운전석 문을 닫았다. 순간 거칠게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멀리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였다.
소리에 집중하던 더글라스가 닫았던 차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다 열기도 전에 밖에서 문을 막는 손길에 멈추고 말았다. 어느새 운전석 앞으로 다가온 페트로가 차 문을 막고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는 더글라스의 얼굴을 주시하며 말했다.
“조심히 가세요.”
“어… 그래.”
더글라스는 축사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대답했다. 분명 무슨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굳게 닫힌 축사 문을 보며 젖소의 울음소리겠거니 생각한 그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여러 번 시동을 걸자 지프차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출발했고 이내 목장을 벗어나 고요한 길을 내달렸다.
거친 엔진 소리가 멀어지자 곧이어 투박한 차가 육안에서 사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페트로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을 서서 길만 쳐다보던 그가 움직인 것은 목장의 적막을 깨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긴 다리로 빠르게 걷던 페트로는 굳게 닫힌 축사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소란스러운 소리는 조그마한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같기도 하고 어린 아기의 칭얼거림 같기도 했다. 축사 앞에 우두커니 선 페트로는 그 소리를 감상이라도 하듯 눈을 감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서 있던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축사 문을 열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축사 안으로 밝은 햇빛이 드리워졌다. 페트로는 그 빛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페트로의 등장에 우리에 갇혀 있던 가축이 저마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민한 가축답게 정신 사납게 머리를 흔들거나 꼬리를 흔들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축사의 가장 깊숙한 곳을 바라보며 다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안쪽에 마련된 넓은 우리. 그리고 그곳에 묶여 있는 무언가. 그것을 발견한 페트로의 얼굴 위로 슬며시 감정이 드리워졌다.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기던 두 다리는 우리 앞에서 멈춰 섰다.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와 작은 난로가 전부인 깔끔한 우리 안에는 무언가가 묶여 있었다. 훤히 드러난 알몸과 그 알몸을 꽁꽁 묶은 밧줄. 페트로는 그것을 보며 달뜬 숨을 내쉬었다. 지금껏 표정이 없던 얼굴에 기대가 잔뜩 서렸다. 페트로는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형.”
페트로의 짧은 부름에 우리에 묶인 몸뚱이가 거세게 요동쳤다. 더불어 울먹이는 소리와 힘겹게 내뱉는 호흡이 느껴졌다. 밧줄로 꽁꽁 묶여 엎드린 몸뚱이가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얼마 못 가 우리에 부딪치고 만다. 페트로는 그런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부딪힌 몸뚱이가 그새를 못 참고 또다시 움직이자 보다 못한 그가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밧줄로 묶인 몸뚱이, 우유를 짜는 젖소처럼 머리가 고정되고 가슴과 성기에 유축기를 달고 엎드린 꼬락서니가 멀끔했던 전의 모습을 잊게 만든다. 페트로는 그런 제 형의 모습을 샅샅이 훑어봤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천으로 눈을 가린 게 조금 아쉬웠지만 한결 얌전해진 걸 보니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트로는 긴장으로 들썩이는 등을 쓸어내렸다. 밧줄에 쓸려 생긴 자잘한 생채기를 어루만진 그는 가엽게 덜덜 떨고 있는 하벤에게 말을 걸었다.
“그날은 꽤 기대를 했어요.”
시야가 차단된 채 겁에 질려 있던 하벤은 갑자기 울려 퍼지는 낮은 음성에 흠칫 떨었다. 전에는 익숙했던 목소리가 이제는 공포로 다가왔다. 두려움에 몸을 둥글게 말자 양쪽 가슴에 달린 기다란 유축기가 서로 부딪쳤다.
페트로는 몸을 움츠리는 하벤을 보며 혀를 찼다.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두려워하는 꼴이 안타까우면서도 음심을 동하게 했다. 페트로는 뻐근해지는 중심부를 느끼며 말을 이었다.
“내 곁에 남겠다고 말하는 형을 기대했죠.”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그날을 떠올린 페트로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강인한 턱에 힘이 들어가자 까드득,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에 하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땅에 박을 듯이 숙인 고개를 보며 페트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헐벗은 새하얀 몸을 눈에 담으며 속내를 풀어냈다.
“그런데 보란 듯이 그 기대를 부숴 버렸네요. 형은 예나 지금이나 저한테 참 잔인한 것 같아요. 그렇죠?”
“흡, 으읍!”
하얀 둔부와 뼈가 드러난 마른 등을 바라보던 페트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그는 가슴팍에 붙은 유축기 하나를 떼어 내고 부풀어 오른 가슴을 움켜쥐었다. 장시간 유축기를 붙이고 있던 탓에 큼지막하게 부어오른 유륜을 인정사정없이 꼬집으며 말랑한 감촉을 즐겼다. 하벤이 가슴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소리를 질렀지만 유륜을 탐하는 손은 집요했다.
“난 형의 입으로 여기에 남겠다는 말을 듣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 말 듣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음울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하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에 몇 달 동안 갇혔던 그는 페트로의 목소리를 듣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착 가라앉은 음습한 목소리는 위험을 알리는 목소리였다.
하벤은 닥쳐올 일을 기다리며 덜덜 떨었다. 눈이 가려져서 페트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우리에 갇혀 지내는 내내 그가 그날의 일로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절실히 알 수 있었다.
눈이 휘몰아치던 그날. 거액의 유산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에게 집착하는 동생에게서 도망친 하벤은 눈발이 휘몰아치는 길을 무작정 뛰었다. 차를 타고 가자니 페트로가 차 키를 가지고 있어서 여의치 않았기에 걷는 거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소복이 쌓이는 눈을 밟고 거칠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으며 걸음을 옮겼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가야 하나, 조금만 더 참으면 유산을 받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하벤은 주저하지 않고 떠났다. 집에 남겨 둔 짐을 챙기지도 않고 도망치듯 달아났다. 페트로가 순순히 보내 주는 이 순간이야말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악!’
어느새 쫓아온 페트로가 재빠르게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 잡아챈 목덜미를 잡아 누르며 위로 올라탔다. 눈밭에 처박혀 육중한 체구 밑에 깔린 하벤이 버둥거리자 되레 목을 움켜쥐며 숨통을 틀어막았다. 꺽꺽거리는 숨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는 말없이 하벤을 내려다봤다.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하벤은 겨우 고개를 돌려 제 위에 올라탄 페트로를 쳐다봤다. 휘몰아치는 눈발을 고스란히 맞은 그의 얼굴은 괴기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화가 난 거처럼, 혹은 오열을 하는 거처럼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한참 동안 하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둘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페트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침묵하는 사이 목이 붙잡힌 하벤은 숨을 헐떡거리다가 차가운 눈 위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또다시 우리에 갇혀 있었다. 마치 우유를 짜는 젖소처럼 꽁꽁 묶인 채 말이다.
그날 이후로 하벤에게는 두 번 다시 자유가 찾아오지 않았다. 처음 우리에 갇혔을 때와 달리 페트로는 두 다리와 팔을 묶고 짐승처럼 목줄을 채웠으며 급기야 눈과 입을 틀어막았다. 이 모든 건 조금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구속 속에서 하벤은 긴 시간 동안 천천히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페트로의 체벌을 기다리던 하벤은 자신의 등을 감싸는 뜨거운 체온에 부르르 떨었다. 등 뒤로 탄탄한 가슴팍이 빈틈도 없이 밀착되었다. 곧이어 들어올 굵은 성기를 상상하자 구멍이 움찔거렸다.
페트로는 번득이는 눈으로 제 아래에 깔린 몸을 내려다봤다. 입에 물린 재갈 사이로 침을 뚝뚝 흘리는 것이 사람보다는 가축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손으로 하벤의 흥건한 턱을 훔치며 밧줄이 묶인 목덜미에 입을 맞추자 요동치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포식자 앞에서 자포자기한 초식동물의 행태였다. 페트로는 턱을 닦던 손을 움직여 자신의 바지춤을 내렸다.
“그러니 이제는 어쩔 수 없어요. 평생 이렇게 사는 수밖에.”
“흐, 흐읍… 흐…! 흡! 으음! 읍!!”
“하…….”
묵직한 성기를 꺼내 봉긋한 엉덩이에 문지르다 곧장 구멍에 쑤셔 넣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번들거리는 귀두와 굵은 기둥이 두 볼기 사이로 사라졌다.
하벤은 헐거운 구멍 안으로 들어오는 성난 성기에 소리를 질렀다. 쉴 새 없이 박힌 구멍은 더 이상 풀어 주지 않아도 한껏 발기한 성기를 잘 받아먹었지만 아직까지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찢어질 듯 늘어난 구멍의 주름과 배 속에서 울리는 찌걱거리는 소리에 앙상한 두 다리가 절로 모아졌다. 소름 끼치는 쾌감이 전신을 강타하자 하벤은 발정 난 암캐처럼 벌벌 떨었다.
“이렇게 내 자지를 뽑아 먹을 거처럼 굴면서…….”
“웁, 우웁! 흐응, 응! 으응…! 흐으으윽!!”
퍼억, 퍽! 하벤이 엎어져서 엉덩이를 맞는 아이처럼 서럽게 울자 페트로가 그를 책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지를 맛있게 먹을 거면서, 좋아서 구멍을 조일 거면서 어째서 형은 나를 떠났나 질책하던 페트로는 벌을 주듯 하벤을 절정으로 밀어 넣었다. 재빠르게 터는 허리에 커다란 성기가 여린 구멍을 망가트릴 기세로 난폭하게 움직였다. 결국 몇 번의 거친 허리 짓에 하벤은 쾌락의 끝에 도달하고 말았다.
야윈 허리가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자 밑에 달랑거리던 쪼그라든 성기 끝에서 소변 줄기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 탓에 성기에 달려 있던 유축기 안으로 소변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강한 자극에 겨우 숨을 들이마시던 하벤은 제대로 된 신음을 내뱉지도 못하고 경련했다. 어느새 페트로의 성기를 뱉어 낸 구멍이 바들바들 떨었고 그런 구멍 사이로 묽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페트로는 그 광경을 보며 감격한 것처럼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하는 형의 오르가슴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페트로는 엎어진 하벤을 끌어안으며 또 다시 부풀어 오르는 성기를 박아 넣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쫀득하게 무는 내벽에 페트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다급한 손놀림으로 하벤의 눈을 가린 천을 풀었다. 영롱한 녹색의 눈을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하벤은 눈을 뒤집어 깐 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페트로는 쾌락으로 망가진 얼굴을 구경하며 훤히 드러난 흰자위로 입술을 갖다 댔다. 입술 끝에서 느껴지는 안구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법도 한데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상한 입맞춤을 남긴 페트로는 애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후우…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함께하는 거예요.”
마치 애절한 사랑 고백을 하는 것처럼 깊은 곳에 숨겨 놓은 속내를 쏟아 낸 페트로는 박아 넣은 성기를 움직이며 끝나지 않은 색사를 이어 갔다. 성기 끝으로 예민한 내벽을 가차 없이 찌르자 정신을 놓고 있던 하벤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페트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터질 거처럼 부푼 성기를 뿌리 끝까지 쑤셔 넣었다.
여러 번 성기를 박아 넣자 하벤이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페트로는 그의 눈이 초점을 되찾는 것을 보며 나지막이 소곤거렸다.
“형이 원하던 유산과 환상적인 밤을 줄게요.”
“흐, 흐윽…….”
그러니 형은 평생 제 곁에 있기로 해요. 이어지는 페트로의 속삭임에 하벤은 대답이라도 하는 듯 거칠게 울부짖었다. 쾌락에 젖은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넓은 축사 안에 계속해서 울려 퍼졌고 이를 들은 페트로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형을 우리에 가두고 나서야 비로소 페트로의 행복이 완성되었다.
외전. 그 후
겨울의 막바지이건만 날씨는 심술이라도 부리는 듯 제법 추웠다. 이런 날씨에 난방이 전혀 되지 않은 낡은 기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두꺼운 외투의 앞섶을 여미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라도 하니 다행히 시린 목덜미가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변호사는 창밖에 펼쳐진 익숙한 풍경에 곧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휑한 들판과 몇 없는 낮은 건물에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차에서 내려 익숙하게 걸음을 옮겼다. 기차역 입구를 둘러보니 전에 만났던 덩치 큰 운전사가 알은체를 해 왔다. 그는 변호사에게 또 그곳으로 가냐고 물었고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변호사는 구면이라고 반가워하는 운전사에게 적당히 대꾸했다. 수다스러운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변호사는 그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멈추지 않는 말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자연스레 목장에 있을 그가 떠올랐다.
께름칙했던 첫 통화 후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던 그가 며칠이 지나자 먼저 전화를 걸어 왔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는 그날처럼 다급하지도, 또 격양되지도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물었지만 그는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변호사는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하벤 씨, 정말 괜찮은 겁니까?]
계속되는 물음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이내 또다시 괜찮다는 상투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그 후로 지금까지 걸었던 몇 번의 전화 통화에서 나눴던 대화는 비슷했다. 그에게서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이 외에 별다른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마치 깊은 대화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태도 같았다.
변호사는 그런 그에게 그날의 일에 대해 묻는 것을 주저했다. 자신은 일개 변호사이고 상대는 의뢰의 상속인이었다. 둘 사이에 연결된 거라고는 일뿐이라 그 외의 것을 물을 처지가 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관심을 저버릴 수 없었다. 변호사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말간 눈동자를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착했수.”
때마침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멀찍이 떨어진 익숙한 집을 본 변호사는 값을 지불했다. 돌아갈 때도 차가 필요하지 않냐는 운전사의 은근한 말에 그에게 돌아갈 시간을 일러 주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떠났다. 떠나가는 차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긴 변호사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넓은 초원을 걸었다.
몇 달 만에 찾아온 목장은 지난번에 왔을 때와 비슷했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가축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축의 소리가 울려 퍼지던 축사가 잠잠하기 때문일까. 관찰하듯 주변을 살피며 걷던 변호사는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시선을 거두었다. 신경이 쓰였지만 당장은 일이 먼저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변호사는 문을 두드리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유 모를 긴장이 입을 마르게 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잠깐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 순간 문 너머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문고리가 돌아가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드러난 갈색 머리카락을 발견하는 순간 곧바로 맑은 녹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형인 하벤이었다. 변호사는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목에 걸린 넥타이에 손을 댔다. 그리고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어째서인지 자꾸만 목이 조이는 것처럼 답답했다.
넥타이를 풀 동안 하벤은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가 입을 연 건 변호사의 손이 넥타이에서 떨어질 때였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여유롭게 건네는 인사와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가가 평온하기 그지없다. 변호사는 그런 얼굴을 보며 잠시 입을 달싹이다가 겨우 대답했다. 느긋한 상대와 달리 사뭇 긴장한 목소리였다. 하벤은 변호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비켜섰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의미였다.
변호사가 안으로 들어오자 하벤은 현관을 닫았다. 그러고는 소파로 자리를 안내했다. 커피를 가져오겠다는 말과 부엌으로 향하는 움직임에서 여유가 넘쳤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좋아 보인다면 거짓말일까. 변호사는 하벤의 뒷모습을 좇으며 그를 살펴봤다. 잘 다려진 하얀 셔츠 사이로 드러난 목이 깨끗했다.
“여기 커피요.”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하벤이 커피 세 잔을 들고 왔다. 각자의 자리에 한 잔씩, 그리고 자신의 옆에 마지막 한 잔을 둔 그는 변호사를 돌아봤다. 어서 마시라는 손짓도 함께였다. 변호사는 그의 손짓대로 천천히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데일 만큼 뜨거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커피를 몇 모금 삼키고 나서야 말을 할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신 겁니까?”
전화상으로 알지 못했던 그의 삶이 궁금했다. 육안으로는 별일 없어 보였지만 그것만으로 지난 몇 개월 동안의 생활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했다. 과연 페트로와 함께한 몇 개월은 괜찮았을까.
변호사의 물음에 하벤은 음, 하는 소리를 내며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그냥, 평범했어요. 저와 페트로는 일을 하면서 지냈죠. 서로 바빴어요. 샌더스 씨는 잘 모르시겠지만 목장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할 일이 많거든요.”
덤덤하게 내뱉는 처음과 달리 뒷말은 기어들어 간다. 그것을 눈치챈 변호사가 뒷말을 이었다.
“오늘로써 상속이 이루어질 텐데, 이제 무엇을 할 건가요?”
어느새 6개월이 지났고 그를 옭아매던 구속이 드디어 풀린다. 변호사는 이를 상기시켰다.
조심스러운 물음에 하벤의 고개가 약간 기울어졌다. 생각에 잠긴 듯 살포시 눈을 감자 유난히 긴 속눈썹이 드러났다. 변호사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쓰고 뜨거웠다. 씁쓸한 향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드디어 하벤이 입을 열었다.
“음, 똑같을 거 같은데요. 여기서 계속 지낼 생각이에요.”
“…원래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지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계속 있을 이유가 있습니까?”
질문이 제법 집요해졌다. 변호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묻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하벤의 표정을 살피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여태껏 여유가 넘치던 얼굴이 조금씩 굳어지는 걸 발견했다. 변호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전화상으로 줄곧 대답을 회피하기만 했던 그에게서 다른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변호사는 다급한 마음에 옆으로 다가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조금 마른 듯했지만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손목이었다. 부드러운 살결을 슬쩍 쓰다듬던 변호사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마주했다. 하염없이 맑고 깨끗한 눈동자는 감정을 숨기기에 역부족이다. 그렇기에 변호사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그가 숨긴 것을 읽어 내려 했다. 지난날 저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 변호사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하벤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당당히 마주 보던 조금 전과 달리 자신을 숨기려는 모습이었다. 옆으로 틀어 버린 얼굴을 놓칠세라 잡고 있던 손목을 당겼다. 그러자 고통 섞인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는 다시 드러난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벤 씨, 여전히 제 의혹이 틀린 겁니까?”
결국 말을 꺼내고 말았다. 그동안 물어보지 못했던 물음을 면전에 대고 내뱉자 상대에게서 큰 반응이 나타났다. 커진 눈, 살짝 벌어진 입. 그리고 경직된 안면의 근육. 허를 찔린 사람의 그것이었다.
변호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하벤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뒤엉킨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이제 사실을 모조리 말하고 인정하길 바랐다. 당신의 의혹이 맞았노라, 하는 대답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하벤은 자조 섞인 말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새 조소를 머금은 얼굴 위로 약간의 체념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속에서 체념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정체 모를 열띤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게 무슨 표정이지.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그가 보이는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던 변호사는 멍하니 하벤을 쳐다봤다.
벌어진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고 그가 또다시 말을 이으려는 찰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굳어 있자 하벤의 어깨 위로 커다란 손이 내려앉았다.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소파 뒤로 선 남자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모를 남자는 다름 아닌 페트로였다. 그는 말없이 변호사를 쳐다보며 하벤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다.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페트로는 말없이 변호사를 내려다봤다.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는 번들거리는 눈에 이유 모를 긴장감이 어렸다. 변호사는 제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끈적한 땀에 주먹을 쥐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 것만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한참을 그렇게 대치한 상태로 있는데, 하벤의 어깨를 잡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셔츠가 구겨질 정도로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은 손의 손등 위로 굵은 핏줄이 돋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모습에 변호사가 나서려는데, 이보다 하벤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가까이 붙어 앉아 있던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하벤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유산… 얼른 마무리 짓죠.”
다시금 얼굴 위로 여유로운 미소가 지어졌다. 변호사는 또다시 만들어진 표정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이후로 세 사람 사이에선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재산을 분할하고 소유권을 이전하기 위한 서류를 주고받으며 일을 신속히 처리했다. 길고 까다로웠던 유산의 조건과 달리 유산을 상속하는 과정은 간결했다. 그렇기에 변호사는 조바심이 났다. 이 일이 끝나면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이대로 끝인 걸까. 사인을 받은 서류를 살피던 변호사가 힐끔 두 사람을 쳐다봤다. 어느새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 하벤과 그의 옆에 앉은 페트로는 바쁘게 펜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일을 하는 두 사람은 언뜻 보면 평범한 형제지간처럼 보였지만 저들 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미묘한 분위기를 일찌감치 눈치챈 변호사는 그에 속지 않았다.
평범한 척 연기하기에는 서로를 의식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벤은 애써 태평하게 굴었지만 그의 동생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예민한 초식동물처럼 몸을 떨었고, 페트로는 그런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듯 일부로 어깨를 부딪치거나 허벅지를 건드리며 반응을 살폈다. 마치 애처롭게 떠는 제 형이 맛있는 먹잇감이라도 되는 듯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변호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래 놓고 제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결국 계속 앉아 있기가 거북해 몸을 들썩이는데, 코앞에 흰 종이가 내밀어졌다.
“여기요. 이게 마지막인가요?”
“…예, 다 끝났습니다.”
빠짐없이 꼼꼼히 작성한 서류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서류를 훑어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던 오류가 생기지는 않았다. 변호사는 자신을 쳐다보는 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이 자리에 머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하벤을 불렀다.
“저, 하벤 씨.”
“수고하셨어요. 시간이 꽤 지났군요. 이만 돌아가시죠.”
부름과 동시에 잠자코 있던 페트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커튼 한쪽을 들춰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다급해진 변호사가 그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한 반응이었다.
“잠깐만…….”
“이제 당신의 일은 끝났어.”
페트로가 살짝 들췄던 커튼을 완전히 걷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훤히 드러난 창밖에는 어느새 어스름한 하늘이 펼쳐졌다. 하는 수 없이 변호사는 창밖에서 시선을 돌려 하벤을 바라봤다.
“하벤 씨, 저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제가 한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변호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벤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변호사에게 손바닥을 내보였다.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변호사를 불렀다.
“샌더스 씨.”
“네?”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제는 샌더스 씨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당신…….”
이만 돌아가세요. 이어지는 말에 변호사는 입을 다물었다. 완벽하게 선을 긋는 그의 태도에 더는 나설 수 없었다.
이쯤 되니 하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유산 때문에 이런다고 한들 자신을 노리는 게 분명한 형제의 곁에 있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와주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밀어내는 그의 완강한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이러한 상황도 기꺼이 감내할 것인가, 비정상적인 형제 관계를 계속 이어 갈 생각인가. 변호사는 하벤이 어리석고 안타까웠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더는 간여할 수 없었다. 그가 원하지 않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변호사는 나갈 채비를 했다. 흐트러진 서류들을 챙기고 일어서 현관으로 향하자 문 앞에 선 페트로가 자신을 쳐다봤다. 곧바로 마주치는 눈은 아까와 같이 메마르지 않았다. 음울한 눈동자에는 어느새 흉흉한 안광이 번득이고 있었다.
시선과 마주하자 마치 성난 맹수 앞에 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튼짓을 하다가는 당장 목덜미를 물어뜯길 것 같았다. 살벌한 시선과 마주한 변호사는 마지못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탁,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변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묘한 답답함에 심호흡을 한 그는 한참을 서 있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집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데 등 뒤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는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형제의 집에서 들렸다.
변호사는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그의 시선은 커튼이 반쯤 걷힌 창문으로 향했다. 페트로가 밖을 내다봤던 그 자리였다.
창문을 바라보니 커튼 사이로 두 사람이 나타났다. 소파에 앉은 페트로와 곁에 선 하벤이었다. 두 사람은 듣는 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로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며 밀담을 속삭이고 있었다. 마치 누가 엿듣기라도 하는 거처럼 말이다.
한참 들리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페트로였다. 그는 하벤의 몸을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순순히 따르는 몸을 팔로 끌어안고 큰 손으로 등을 더듬었다. 군데군데 빠짐없이 더듬는 손이 왠지 모르게 음란해 보였다.
하벤은 그런 페트로의 무릎 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간혹 등을 쓰다듬던 손이 겨드랑이로 파고들거나 허리를 움켜쥘 때 흠칫거렸지만 크게 반항하지 않았다. 등을 돌려 앉아 있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변호사는 하벤의 얼굴이 분명 잔뜩 굳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줄곧 얌전하던 하벤이 움직이면서 그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하벤은 손을 뻗어 넓은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점차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끝내 입술이 맞닿았다. 변호사는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넋을 놓았다.
“아…….”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틀어지는 고개와 크게 벌어지는 입술을 보며 그들의 입맞춤이 점차 깊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형제끼리, 그것도 집착으로 점철된 상대와 입맞춤을 하다니.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인 것일까. 충격으로 굳어진 몸이 움찔거렸다. 당장 들어가서 말려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여 발이 저도 모르게 움직였지만 창문 너머로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에 다시 멈추고 말았다.
창문에서 등을 돌린 하벤과 달리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은 페트로였다.
페트로는 입을 맞추면서도 두 눈으로 창문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창문 너머로 집 안을 훔쳐보는 변호사를 바라봤다. 눈은 창밖에 고정하고 입은 보란 듯이 크게 벌려 제 형의 입술을 크게 베어 물었다. 멈추지 않은 애무와 덤덤한 눈빛은 마치 거기서 볼 줄 알았다는 듯 태연했다. 변호사는 그런 남자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제 형도 모자라 자신도 농락하는 꼴이었다.
아!
키스를 계속 이어 가던 페트로가 느닷없이 하벤의 몸을 뒤로 밀쳤다. 그 탓에 빈틈없이 밀착했던 둘의 몸이 조금 떨어졌다. 등과 허리를 어루만지던 페트로는 손을 앞으로 뻗어 하얀 셔츠 차림의 몸을 더듬었다. 아랫배를 쓸어 올리고 한쪽 가슴을 움켜쥔 손이 위로 올라가 셔츠 앞섶을 힘껏 잡아챘다. 그러자 목 끝까지 채워졌던 단추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앞이 벌어진 셔츠는 끈질긴 남자의 손에 의해 완전히 벗겨졌다.
옷에 가려졌던 매끈한 몸이 드러났다. 꽤 다부진 등과 잘록한 허리가 눈앞에 펼쳐지자 변호사는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그런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끝내지 못한 애무를 이어 갔다. 페트로는 젖가슴을 빠는 아이처럼 제 형의 한쪽 가슴을 입에 물었고 하벤은 그런 동생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어깨를 떨었다.
애무의 끝은 결국 절정이었다. 가슴만 빨렸는데 하벤은 쉽게 흥분한 사람처럼 몸을 들썩였다. 기어코 상체가 뒤로 넘어갔고 그 탓에 페트로의 입에서 짙은 유두가 빠져나왔다. 넘어간 상체가 전등 불빛에 의해 비춰졌다. 변호사는 훤히 드러난 가슴과 휘어진 허리에 눈을 떼지 못했다. 깨끗한 몸 위에 새겨진 수많은 울혈과 잇자국이 시선을 붙잡았다. 대부분은 오래전에 빨린 자국처럼 짙은 흔적이었다.
집요하게 빨린 듯 탱탱하게 부어오른 유두가 손가락에 무참히 짓눌리고 비틀어졌다. 한눈에 봐도 거친 애무였지만 하벤은 날카로운 신음을 흘리며 페트로의 머리와 목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애처롭게 내뱉던 신음 소리는 이내 흥분으로 젖어 들었다. 작게 들리는 앓은 소리는 큰 쾌락을 바라는 칭얼거림으로 변했고 얌전히 앉아 있던 몸뚱이는 안달이 난 암캐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변호사는 그런 그를 보며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내렸다. 여태 시선을 거두지 않은 페트로가 무엇을 알리고 싶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는 이제 유산이 아닌 몸으로 길들여진 자신의 형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
변호사는 눈물을 흘리며 절정에 치닫는 얼굴 보며 고개를 돌렸다. 의혹이 틀렸냐는 물음에 하벤은 제대로 말하지 않았지만 이로써 대답이 확실해졌다. 그들의 말대로 완전한 타인인 자신이 간섭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변호사는 지체 없이 발걸음을 서둘러 목장을 떠났다.
외전. 페트로
“인사해라, 네 형이다.”
그날은 페트로에게 난생처음 형이 생긴 날이었다.
낯선 남자의 손에 이끌려 목장에 온 날, 남자는 자신을 아버지라 말했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어린 소년을 데려와 형이라고 소개했다. 허름한 술집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페트로는 아버지도 처음이었고 형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같이 살았던 어머니와 이별하고 순식간에 새로운 두 명의 가족이 생겼다. 그는 그 사실에 슬픔보다도 호기심이 일었다. 줄곧 애정 한 번 주지 않은 어머니와의 이별보다는 하루아침에 생긴 아버지와 형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다.
특히 자신과 닮은 저 얼굴. 페트로는 이쪽을 노려보는 앳된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게 될 거다.”
남자. 아니, 아버지는 짧은 말만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대치 중인 두 아들을 덩그러니 두고 홀로 방으로 들어갔다. 친절한 설명도, 이렇다 할 관심도 없는 무심한 태도였다. 투박한 발소리가 방 안으로 사라지자 이내 거실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페트로는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아버지가 휑하니 사라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올 때도 이렇다 할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그저 서로 침묵을 지키며 시골로 내려왔기에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 그의 행동이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 서 있는 소년의 입장은 조금 달랐나 보다. 소년의 뿔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흐윽…….”
소년의 뾰족하게 솟은 눈매가 촉촉하게 젖어 들더니 급기야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한참 숨을 헐떡이며 흐느끼던 그는 아버지가 들어간 방문과 페트로를 번갈아 노려봤다. 원망과 슬픔이 한데 뒤섞인 눈초리는 이내 페트로에게 고정되었다. 서럽고 화가 난 건지 작은 얼굴이 그새 눈물범벅이 되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우리 엄마가 떠났어.”
페트로는 작은 콧잔등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웅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울고 화를 내는 걸까. 소년이 우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페트로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울음이 금방 터졌던 것처럼 그치는 것도 금방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갔다. 기다리는 것이 꽤 지루했지만 촉촉이 젖어 맑은 눈과 영근 과실처럼 붉게 달아오른 양 뺨을 구경하니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럽게 우는 소년에게 미안하지만 페트로는 그를 구경하느라 바빴다.
소년은 그런 페트로를 보며 대뜸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두 눈을 표독스럽게 뜨며 다가왔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도 페트로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 위에 보이는 소년의 얼굴을 더욱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하벤은 그런 페트로를 보며 사납게 소리쳤다.
“너 같은 건 꼴도 보기 싫어!”
형제가 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딱히 순탄치 않았다.
* * *
페트로가 목장에서 지낸 지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목장의 일을 제법 능숙하게 깨우칠 정도의 시간이었다. 아직은 어린아이였기에 큰일은 하지 못하고 자질구레한 잡일뿐이었지만 말이다.
목장에서의 하루 일과는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단조로웠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고 일이 끝난 뒤에는 심심한 휴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목장에 있는 모든 것이 신기해서 지루할 틈이 없었지만 그것도 고작 며칠이 전부였다. 제 몸집보다 큰 젖소도 이제는 흥미롭지 않았다. 그런 일상에서 페트로의 지루함을 해소시켜 주는 건 그나마 자신의 형뿐이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서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까딱거리던 페트로는 아직 방에서 나오지 않은 하벤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하벤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적당히 천진하고 적당히 진중했다. 그 나이대에 아이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런 그에게 다른 점이라고는 유난히 솔직하게 드러나는 감정과 그것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는 생동감 넘치는 얼굴뿐이었다. 어찌나 감정에 솔직한지, 자신에게 냉랭하게 굴다가도 간식을 내밀면 완전히 풀어지는 날이 허다했다. 그런 하벤을 지켜보자면 그의 솔직한 감정에 자신마저 물드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하벤의 친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 외도의 상대는 당연히 자신의 친모였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던 술집 여자와 외도로도 모자라서 아이까지 만들었으니 당장 이혼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는 하면서도 혼자 남겨진 하벤을 보니 그녀의 선택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싶었다. 외로움이 익숙한 자신과 달리 감정에 솔직한 하벤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그에 대해 생각하는데, 어느새 하벤이 방문을 열고 나와 식탁으로 다가왔다. 텅 빈 식탁 위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 그는 부엌으로 걸어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재료들을 꺼내 들고 바삐 움직인 그는 한참 뒤에 접시를 들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접시 위에는 두 명분의 식사가 담겨 있었다.
페트로의 옆에 앉은 하벤은 각자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힐끔 옆을 쳐다봤다.
“뭘 봐.”
눈이 마주치자 하벤이 앙칼지게 물었다. 나란히 앉아서 옆얼굴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울분과 슬픔이 서려 있지 않았다. 대신 사춘기 소년의 반항심이 가득했다.
페트로는 하벤의 말에 대꾸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노려보는 시선이 무서워서 피한 게 아니라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던 탓이었다. 뭘 보냐는 물음에 부루퉁한 입술을 보았다고 솔직히 말할 자신이 없었다.
페트로는 대꾸하는 대신 그가 차려 준 아침 식사에 집중했다. 식빵 몇 조각과 어설프게 만들어 낸 스크램블 에그가 전부였지만 어린 시절 밖으로 나도는 친모 때문에 굶는 게 일상이었던 자신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마찬가지였다. 식빵을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자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첫 만남에 화를 냈던 하벤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눈이 띄게 물러졌다. 어느새 냉랭했던 행동은 사그라들고, 이따금씩 어린 동생을 챙기는 행동을 보였다. 그 행동은 탐탁지 않던 이복동생이 한순간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자신이 데려온 아들을 전혀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쩔 수 없이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작은 관심조차 받아 본 적 없는 페트로에게는 하벤의 행동 하나하나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의 작은 보살핌 하나, 하다못해 시선 한 번 받게 되면 이렇게 가슴 한구석이 울렁거렸다.
챙겨 준 아침 식사를 느리게 씹고 있는데, 접시 옆으로 얇은 책 한 권이 놓여졌다.
책 표지에는 형형색색의 정신 사나운 그림과 휘갈겨 쓴 글씨가 난잡하게 쓰여 있었다. 그것을 쳐다본 페트로가 고개를 올렸다.
“보고 싶으면 보든가.”
어느새 아침 식사를 마친 하벤이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다. 그는 흥미 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내뱉었지만 시선은 페트로의 얼굴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반응을 살펴보는 모양새였다.
책의 표지를 쓰다듬던 페트로가 제목을 읽었다. 익히 아는 히어로의 이름이었다. 표지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을 입은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한껏 힘을 준 머리 스타일을 뽐내는 듯 의기양양한 남자의 표정이 익살스러웠다. 페트로는 가만히 책을 집어 들었다. 설마 나한테 주는 건가. 가만히 있는 하벤의 반응을 보니 맞는 듯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아 본 건 처음이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랬기에 책을 집어 든 페트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조금씩 떨리는 엄지손가락으로 책의 표지를 쓸어내릴 뿐이었다.
“재미없기는.”
하지만 하벤의 눈에는 페트로가 흥미 없어 하는 거처럼 보였나 보다. 그는 콧방귀를 뀌고는 미련 없이 등 돌려 나갔다.
* * *
무럭무럭 자라나는 초원의 들풀처럼 두 형제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잡일만 하던 어린 몸은 어느새 아버지의 일을 도맡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중 페트로는 아버지를 대신해 목장을 관리하는 데 큰 재능을 보였다. 하벤보다 뛰어난 일머리와 학교를 갔다 와도 매일같이 일을 빼먹지 않은 성실함 덕분이었다. 장남인 하벤보다는 차남인 페트로가 목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진 건 당연지사였다.
그런 페트로와 달리 하벤은 따분한 시골에서의 삶을 싫어했다. 지루한 것을 못 견뎌 하는 그는 매일같이 도시에 관한 상상을 하며 낭만을 키워 갔고, 그 속에서 펼쳐질 환상적인 경험을 꿈꿨다. 늘 입버릇처럼 목장을 벗어나 도시로 향하겠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그런 하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벤과 아버지가 사사건건 부딪치기 시작했던 것도 이맘때쯤이었다. 하벤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하루도 쉬지 않고 다투었다. 다투는 전개는 매번 똑같았다. 명령을 하는 아버지와 그의 말을 듣지 않은 하벤의 언쟁이 그 시작이었다.
“그거 알아요? 아버지랑은 대화가 전혀 안 돼요.”
다툼은 하벤이 늘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로 종지부를 찍었다.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하벤이 자리를 뜨면 잠자코 있던 페트로가 나서서 아버지를 진정시켰다. 지루할 만큼 똑같은 일상이었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변화가 소리도 없이 찾아왔다. 폭우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아까 낮에 마을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비가 와서 강이 꽤 불어났대. 이대로면 우리 집이 떠내려갈지도 몰라.”
“그럴 리가요.”
“혹시 모르는 거잖아.”
매일같이 비가 오는 우기였지만 그날은 유난히 강한 폭우가 쏟아졌다. 집이 떠내려갈 듯 퍼붓는 빗줄기와 간간이 들리는 천둥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날, 어김없이 아버지는 자리를 비웠고 큰 집에는 두 형제뿐이었다.
하벤은 태연한 척했지만 밖이 보이지 않는 굵은 빗줄기에 질색한 표정이었다. 낡은 집이 떠내려갈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말을 진지하게 할 정도로 그는 꽤 긴장해 보였다. 쾅! 때마침 크게 울리는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란 하벤이 페트로를 돌아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페트로는 하벤에게 같이 잠자리에 들자고 부탁했다.
“네가 무서워해서 같이 자는 거야.”
하벤은 마지막까지 페트로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그에 페트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되었든 같이 한 침대에 누워 자는 거니 상관없었다. 둘은 그나마 침대가 조금 더 넓은 하벤의 방으로 향했다.
처음 들어가는 하벤의 방 안에는 그의 냄새로 가득했다. 성장하는 남자애들의 쿰쿰한 땀 냄새가 아닌 은은한 살 냄새에 페트로는 괜스레 코를 킁킁거렸다. 가만히 방 안 냄새를 맡다가 홀린 듯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푹신한 침대에 눕자 방 안 가득했던 형의 내음이 짙게 풍겨 나왔다.
망설임 없이 침대에 누운 페트로와 달리 하벤은 어째서인지 눕지 않고 쭈뼛거렸다. 누울 생각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모습에 페트로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제야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페트로는 공간을 내어 주기 위해 구석으로 몸을 움직였고 이내 침대 한쪽이 비었다. 하벤은 그 자리를 보며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맞대고 누웠다. 하염없이 비가 쏟아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던 어둑한 밤, 하벤은 폭우와 천둥에 겁을 먹었던 것이 무색하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페트로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코끝에서 짙게 맡아지는 내음에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가만히 붙은 등에서 형의 체온이 느껴졌다. 잠든 사람의 높은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지자 페트로는 몸을 움직이며 등을 더욱 가까이 붙였다. 얇은 옷감 사이로 느껴지는 마른 등과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둥근 엉덩이가 맞닿았다. 페트로는 그 감촉을 인지하는 순간 긴장했다. 모든 감각이 그와 맞닿은 등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하벤과 함께할 때면 종종 느꼈던 가슴의 요동침이 또다시 느껴졌다. 페트로는 점차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입술을 살짝 벌렸다. 숨이 가빠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작게 숨을 내쉰 그는 덮고 있던 담요를 올려 얼굴을 파묻었다. 냄새를 들이마시며 형의 체취를 탐한 그는 달뜬 숨을 내뱉으며 가까스로 호흡했다.
진정이 되길 기다리는데 등 뒤에서 하벤이 뒤척였다. 등을 지고 있던 그는 잠결에 뒤로 돌아누웠고 추운 듯 작게 잠꼬대를 하며 페트로의 등으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작게 울렁이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날 페트로는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움켜쥐며 긴 밤을 지새웠다.
* * *
페트로는 하벤에게 가진 자신의 감정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만 반응하는 몸과 마음은 평범한 형제간의 우애라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눈으로 형을 좇는 자신이 결코 정상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벤에게서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함께하기 위해 애를 썼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감정을 외면하기보다는 쫓으려고 아등바등했다. 밖으로 나다니는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늘 함께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선 하벤은 자신보다 어린 동생과 쉽게 어울려 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페트로는 목이 말라 왔다. 하벤이 성년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목장을 벗어나 먼 도시로 영영 날아갈 거 같았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은 그곳으로. 그런 생각을 하자 울분이 치솟고 정신이 아득했다.
이따금씩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가라앉히지 못할 때면 페트로는 늘 하벤의 방으로 향했다. 비어 있는 방을 돌아다니며 채취를 맡고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으면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침구에 깊숙이 밴 냄새를 맡던 그의 눈에 침대 위에 놓인 구겨진 셔츠 한 장이 들어왔다. 방주인이 황급히 벗어던지고 간 옷이었다. 페트로는 곧장 옷을 집어 들었다.
셔츠는 평범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하벤의 살 내음이 짙게 배었다는 것뿐, 이 점만 빼면 여느 옷과 다름없는 평범한 옷이었다. 하지만 페트로는 그 옷이 특별한 것이라도 되는 듯 두 손으로 소중히 들어 얼굴을 파묻었다.
“흐으읍.”
깊게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던 그는 이내 욕구에 이끌려 바지 지퍼에 손을 올렸다. 허겁지겁 지퍼를 내리고 살짝 부푼 성기를 밖으로 꺼내 들고 있던 셔츠로 감쌌다. 발기한 성기에 손을 대 본 적이 별로 없어 어색할 법도 한데 본능적으로 움켜쥐고 흔들었다.
“하…….”
점차 고양되는 흥분은 성기를 쥔 손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쥐고 흔들어서 흥분의 끝을 맛보고 싶었다. 부푸는 기둥을 쥐어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선단을 문질렀다.
“크윽!”
성기를 감싼 하얀 셔츠가 조금씩 젖어 들었고 얼마 안 가 부푼 성기 끝에서 하얀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길게 뿜어진 정액은 셔츠를 더럽혔다. 제 손으로 절정을 맛본 페트로는 달아오른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셔츠 위로 흩뿌려진 정액이 상당했다. 뿌연 정액을 바라보던 페트로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셔츠에 펴 발랐다. 하벤의 체취를 더럽힌 페트로의 첫 자위였다.
* * *
페트로가 형에 대한 무언의 감정을 키워 갈 즈음, 하벤과 아버지와의 갈등은 나날이 고조되었다. 하벤이 자라나면서 정체성을 확립할수록 자신과 정반대인 아버지와 늘 부딪쳤고 종래에는 그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일같이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일상이었고 간혹 욕설을 뱉어 내기도 했다.
“제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세요? 작고 예쁜 여자가 아니라.”
어김없이 목장에서의 삶, 그리고 자신에게 순종하는 삶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하벤은 홧김에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의 눈치에 자신을 숨기면서 살 수 없었던 그가 토해 낸 마지막 발악이었다. 당연히 아버지는 경멸이 섞인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고 끝내는 커다란 손을 들어 올렸다. 페트로가 달려든 것도 이때였다. 흥분한 아버지와 말리는 페트로 사이에서 거친 몸부림이 일어났다.
몸이 가로막히자 아버지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입에서 듣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저주 섞인 욕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듣다 못한 하벤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숙인 얼굴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페트로는 아버지의 몸을 붙잡으며 하벤을 쳐다봤다. 둘은 시선이 마주쳤고 하벤은 눈을 부릅떴다.
“…왜, 너도 내가 더러워?”
하벤은 말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등 털을 세운 짐승이 달려들기 직전에 위협하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을 보며 침묵했다. 그의 물음보다는 그가 조금 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남자를 좋아한다. 작고 예쁜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한다. 페트로는 그런 하벤의 말을 곱씹었다. 아버지의 계속되는 폭언을 견디다 못해 뒤돌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문뜩 그가 입은 하얀 셔츠가 눈에 들어왔고 동시에 단전이 묵직해졌다.
하벤이 집을 뛰쳐나가고 한참이 지나자 아버지의 화가 잠잠해졌다. 페트로는 진정이 된 아버지를 뒤로하고 하벤을 찾아 나섰지만 목장 주변으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말하지 않고 나간 그가 걱정되었지만 늘 그렇듯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금방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하벤은 계절이 바뀌어도 오질 않았고 아버지는 집 나간 하벤을 찾지 않았다. 페트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줄곧 이 집에서 함께 자란 형이 한순간에 사라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페트로의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벤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무언의 감정은 사그라들 생각도 않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형의 체취를 맡으며, 또 그의 기억을 더듬으며 무섭게 커져 갔다. 그 몸집에 짓눌려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쯤, 아버지가 지병으로 앓아눕게 되었다.
병든 아버지의 얼굴에서 예전에 당당했던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병약해지고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한부 판정까지 받은 그는 찬찬히 마지막을 정리했다. 변호사를 불러 유언까지 남겼지만 끝끝내 그의 입에서 하벤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페트로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기가 찼다. 그에게 하벤은 이미 없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페트로는 그런 아버지와 달랐다. 잃어버린 형을 다시 되찾아야 했다. 그래야만 이 감정의 확실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페트로는 힘없이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부탁이 있어요.”
병색이 짙어진 얼굴을 보고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하벤을 달아나게 만들었고 마지막까지 그를 찾지 않았다. 덕분에 자신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비가 오기만을 바라는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페트로는 기력 없이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뒷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병간호를 바라신다면 유언장을 다시 써 주세요.”
잔잔했던 첫말과 달리 이어지는 음색은 건조하게 메말랐다. 마치 명령을 내리는 듯한 무정한 말투에 아버지의 거뭇한 눈가가 파르르 떨려 왔다. 페트로는 이제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곁을 떠나간 형을 붙잡기 위한 중요한 순간이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페트로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한쪽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며 속삭였다.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말에 아버지의 얼굴 위로 참담한 빛이 내려앉았다.
비를 바라는 마른 나무처럼, 페트로는 형이 무척이나 고팠다. 그렇기에 다 죽어 가는 아버지 앞에서 그는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떠난 형을 목장으로 부르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었다.
“저는… 유산이 아닌 형을 가질 생각이에요.”
完
발행일 2021년 02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