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473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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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12 21:50
에반가의 비밀
목차
1. 카일러스 에반
2. 나태에 대한 고해
3. 라이너스 에반
1. 카일러스 에반
습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축축한 진흙의 냄새가 섞인 수분의 향은 비강 깊은 곳까지 밀려들어와 존재감을 알렸다. 곧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카일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습기를 머금어 촉촉해진 흙이 발걸음에 의해 부드럽게 무너져 내렸다. 좁다란 오솔길에 발자국을 찍어가며 걷던 청년의 발을 멈추도록 한 건 어디선가 들리는 가느다란 소음이었다.
“우… 우우우….”
“무슨 소리지?”
산비둘기 소리라고 하기에는 더 낮고, 어딘가 그르렁거림이 섞인 소리였다. 심지어 미약하게 끼잉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카일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중충한 하늘 때문에 한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숲은 온통 깜깜했다. 평소 잘 알던 산책길이 아니었다면 거닐 생각을 하지 않았을 법한 어두컴컴한 곳에 카일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으응, 우…, 우으으….”
“뭐야….”
가만히 서서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나는지 귀를 기울였다. 큰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집중해야만 했다. 카일은 소리의 근원지가 스무 발자국 정도 떨어진 풀숲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래된 나무뿌리 위를 수북하게 덮은 풀 더미에서 나는 소리였다. 조심스럽게 몸을 숙이고 풀숲을 손으로 들췄다. 그곳에는 젖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털뭉치가 있었다.
“이건….”
작은 짐승은 몸 여기저기에 진흙이 묻어 무슨 동물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정수리에 퐁, 하고 물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 카일은 고개를 들었다. 조금씩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체도 모를 짐승을 과연 저택까지 데리고 가도 되는지 고민에 빠졌다. 어디선가 어미를 잃은 동물은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고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척 보기에도 작은 짐승은 야윈 데다 며칠은 굶은 것처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앓는 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
카일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털뭉치를 만져 보았다. 손에 따뜻한 온기와 함께 움찔, 하고 새끼 짐승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상처 입은 동물이라면 물거나 경계했을 텐데, 그럴 힘도 없는 듯했다. 한참 자리에 서서 고민하던 카일은 결국 조심스럽게 동물을 안아 들었다. 깨끗한 셔츠에 진흙이 묻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어느새인가 조금 더 거세져 있었다. 작은 동물이 비를 맞지 않도록 품에 꽉 끌어안고 좁은 길을 내달렸다. 품에 안으니 확실히 뜨끈한 몸체가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 후….”
달음박질은 금방 멈추고 말았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허파에 쐐기를 박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누가 목구멍을 긁어대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흉부가 욱신, 쑤셔왔다. 카일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신발은 진흙이 들러붙어 엉망이었다. 불타는 것처럼 빨간 머리카락도 비에 젖어 이마와 뺨에 달라붙었다.
“도련님…!”
우산도 없이 산책 나간 이를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놀라서 소리쳤다. 비에 쫄딱 젖은 것도 모자라 더러운 털뭉치를 품에 안고 있는 카일의 모습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었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해서 이런 날씨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짓이었는데, 카일은 뭐가 좋은지 베실베실 웃는 중이었다. 집사는 대책 없다고 그를 꾸짖으려다가 일단은 젖은 몸을 닦아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두터운 수건을 가져오도록 시켰다. 하인들이 수건을 건네자 카일은 품에 안고 온 작은 동물을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말았다. 지저분한 흙탕물이 흰 수건에 묻는 것을 보던 집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이상한 걸 잘도 주워 왔다는 눈치였다.
“비가 올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어. 다쳤는지 아닌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다쳐서 죽게 되면 그게 자연의 섭리인 겁니다.”
“그렇지만 이미 데려와 버렸잖아. 죽게 둘 수는 없어.”
카일의 고집에 집사는 낮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하는 수 없이 털뭉치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자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바짝 마른 새끼 강아지였다. 보나마나 어디 들개의 새끼라고 생각한 집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그사이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카일은 자신이 데려온 생명체를 보기 위해 친히 따뜻하게 데운 우유까지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피곤하실 텐데 누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괜찮아. 자러 가기엔 이른 시간인걸…. 배가 고픈 것 같았는데, 우유라도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건 제가 대신 해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데리고 왔잖아. 책임감 없이 대충 맡겨놓고 싶지 않아.”
자신이 돌볼 수 있다고 우기던 카일은 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새까만 강아지에게 우유를 건넸다. 우유 냄새를 맡은 강아지는 연신 코를 킁킁거렸지만 어디에 그릇이 있는지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카일이 손에 우유를 찍어서 코끝에 대주자 겨우 낼름, 하고 손가락을 핥았다. 굶고 있던 와중에 우유 맛을 본 강아지는 손가락을 계속해서 핥아대며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배가 많이 고팠나 봐.”
작은 동물이 우는 소리를 내자 마음이 약해진 카일은 그릇을 코앞으로 끌어다 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푸석푸석한 털결이 더욱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카일이 이 개를 키우게 해달라고 요청할 것을 예상한 집사는 어떻게 거절할지 계속 생각했다. 안 그래도 몸이 아파서 요양 중인 주제에, 동물까지 키운다는 건 바람직하지 못했다.
“어미를 잃은 것 같은데…. 역시…,”
“안 됩니다.”
“아, 아직 무슨 말 할지 안 들었잖아.”
“키우는 건 안 됩니다. 도련님이 매일 산책을 책임지고 다닐 수 있으신가요? 그리고 털이 날리는 동물이기 때문에 분명 기관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렇지만 다시 버릴 순 없어…. 이렇게나 오래 굶었는데.”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집사는 갖은 이유를 대가며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카일도 만만치 않았다. 거의 반평생을 이 저택에서 혼자 친구도 없이 지냈는데, 반려동물 정도는 허락해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딱 봐도 대형견종의 새끼처럼 보였기 때문에 집사는 완강했다. 이 개가 크게 되면 집 안이 좁을 것이라는 이유도 댔다.
“그럼, 새끼 때는 손이 많이 가니까 집 안에서 돌보다가 크면 밖으로 내보내면 되잖아.”
“…도련님.”
잘 시간을 아득히 넘어서까지 계속해서 조르는 통에 결국은 집사가 패배하고 말았다.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느낄 만한 존재가 없는데, 이런 식으로 쓸쓸한 날이 계속되면 결국은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계속 물고 늘어진 끝에 얻어낸 승리였다.
그렇지만 어떤 병균이 있을지 모르니 일단 깨끗하게 씻기고, 도련님 또한 오늘은 무리했으니 푹 주무셔야 한다는 잔소리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집사의 한소리를 다 들은 뒤에야 카일은 자신의 방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
그 뒤로 카일은 꼬박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비가 오는 숲을 한 시간도 넘게 거닌 것이 원인이었다. 앓고 일어난 카일이 강아지와 다시 만났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주워 왔을 때보다 한 주먹은 더 커져 있었고, 훨씬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작은 강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킁킁 냄새를 맡던 강아지는 손을 할짝였다.
“옳지, 착하지. 내가 누워 있는 동안, 네 이름을 쭉 생각해 봤는데….”
아픈 와중에도 이름은 뭐가 좋을까, 하고 내내 생각했었다. 부르기 좋은 이름, 쉬운 이름.
“네 이름은 벤이 좋을 것 같아. 멋져 보이잖아.”
강아지는 자리에 앉아 헥헥거리는 소리를 내며 카일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힘이 없는 건지, 지나치게 차분한 느낌이었다. 돌아다니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응시할 뿐이었다. 카일은 그런 벤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산책은… 며칠 뒤부터 나갈 수 있을 거야. 나도 빨리 낫도록 노력해 볼게.”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비가 그치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흐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내내 비가 왔었기 때문에 어차피 산책은 못 나갔을 거라며 미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 이름은 카일이야. 카일러스 에반.”
이 강아지가 주인의 이름을 직접 부를 일은 없었음에도 카일은 직접 자기소개를 했다. 넓은 저택은 혼자 지내기에 너무도 외로운 공간이었다. 하인들은 말상대를 해주기보단 일을 하거나, 교외로 나가기 바빴다. 게다가 대부분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친구처럼 지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들을 사랑했으나, 가끔은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했다. 지겹도록 책을 구해다 읽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힘차게 뛰는 장면이라거나 너른 바닷가를 달리는, 상상만 해도 멋진 장면들을 직접 따라하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였다. 그렇게 달려댔다간 몸이 아파서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게 분명했다. 이 저택에 들어온 건 10살 때였으며, 그때는 막연히 몸이 자주 아프고 남들보다 허약한 체질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커갈수록, 병의 징조는 깊어져만 갔다.
일종의 결핍이었다.
에반 가는 평범하게 잘나가는 가문이었다. 적당한 지위와 부족하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유능한 인재를 배출하는. 보통의 서민들보다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아주 특출나게 영향력이 있거나 규모가 크지는 않은 그런. 그리고 카일러스는 현 가주의 막내아들이었다. 부친은 제 어미를 완전히 빼닮은 카일의 호박빛 눈동자를 지극하게 사랑했으나,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창백한 피부 톤이나 마른 몸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병원의 검진 결과, 정상적인 부분이 드물 정도였다.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카일은 열성 오메가였다. 오메가 형질이 발현되긴 했으나, 아주 미미했다. 아들이 오메가인 것도 달갑지 않은데, 그 희귀하다는 열성이라는 소식에 가주 에반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알파, 혹은 오메가라는 것은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열성의 경우 약을 평생 복용한다고 해도 심각한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몸이 제대로 성장, 기능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더 심각했다.
부친은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도 오메가인 카일의 모친과 결혼한 것이었다. 다른 형제들 중 알파나 오메가가 태어나긴 했지만 그들은 모두 건강했고, 다만 사춘기가 지나게 되면 약을 먹으면서 지속적으로 관리에 신경 써야 할 뿐이었다.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시대는 지나갔다. 요즘에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위안하며 이미 오메가와 알파인 카일의 형제들을 두고도 막내아들까지 낳게 된 에반 가의 가주였다.
그래서 열성 오메가로 태어난 아들을 사랑하는 한편,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 덕에 카일은 검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공기 맑고 물 좋은 저택에 혼자 남게 된 것이었다. 어릴 때에 비하면 엄청 건강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다른 베타, 즉 일반인들에 비하면 허약했다. 그리고 다소 적적한 유년기를 거쳐 성인식을 앞두게 된 나이까지 자라게 되었다.
“우리,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어.”
한참 창밖을 바라보던 카일이 벤에게 건넨 말이었다.
*
“우으응….”
“안 돼, 벤. 이건 나만 먹을 수 있는 거야. 착하지.”
책상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병과 통들 사이로 하얀 약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약만 손에 한 움큼이었다. 4번에 걸쳐 나눠 먹은 카일은 인상을 썼다. 알약이 목구멍을 긁으면서 넘어가는 느낌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이었다. 무릎 아래에서 벤이 낑낑거리며 약에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부쩍 털과 덩치가 동시에 불어난 벤은 이제 제법 새끼 강아지 같은 자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식탐이 아주 왕성해서 카일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꼬리를 흔들고 코를 들이대려 했다.
끼잉, 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져서 모질게 굴 수가 없었다. 벤의 주둥이를 밀어내던 카일은 쉿, 크게 울면 안 되는 거 알잖아, 하고 북슬거리는 털을 쓰다듬었다. 저택 안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하인들이 많았지만 어느 때보다 밝아진 카일의 얼굴을 보고 감히 그 짐승을 내보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모든 시간을 벤과 함께 보내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던 집사는 의사를 불러 혹시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병균을 옮기진 않는지 철저히 검사하도록 했다.
“정말 빨리 자라는구나…. 나도 건강했다면 이렇게 쑥쑥 자랐을까? 형님들처럼.”
품에 안고 숲을 거닐 수 있을 만한 크기였던 작은 강아지는 간데없었다. 아직 어리게 보이긴 해도, 벌써 무릎까지 올 정도로 자라 있었다. 힘 있게 흔드는 꼬리는 꽤 단단해서 치이기라도 하면 묵직한 둔통이 올라올 정도였다. 호박색 눈동자에 사색이 깃들었다. 쓰다듬는 손길이 점점 느려졌다. 숲을 거닐 때마다, 분주히 움직이는 하인들을 볼 때마다, 심지어 아침에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들을 때마저도 갖지 못한 강렬한 생명력에 대한 동경을 느끼곤 했다.
카일은 책상에 놓인 두꺼운 책의 표지를 매만졌다. 배를 타고 모험을 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창창한 하늘을 마시는 것같이 청량한 새벽의 바다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 있었다. 섬세한 글귀를 읽으며 그 느낌을 상상해 보려 했지만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를 마시는 순간, 폐에 들어차기 시작한 바람은 바늘이 200개도 넘게 박힌 구슬처럼 폐포를 찔러댈 게 분명했다. 현실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벤, 이렇게 허약해서 미안해.”
요즘 카일은 하인들에게 부탁해서 개를 기르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자라나는 속도나, 날렵한 얼굴 모양을 보면 벤은 그냥 들개가 아니었다. 아주 튼실한 대형견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대형견의 경우 필요한 산책 시간도, 식사량도 아주 많다는 것을 안 카일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아서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약을 거르지 않고, 먹기 싫은 야채도 꼬박꼬박 먹고, 최대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의사가 해준 조언은 하나도 어기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체력이 늘어나길 바랐다.
“나는 얼마나 살 수 있을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 50살이 돼도 살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어.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카일이 상심한 것을 알아챈 벤은 무릎을 앞발로 딛고 몸을 뻗어 턱을 핥았다. 긴 혓바닥이 턱 아래와 목을 간질이자 카일은 낮게 웃으며 벤을 밀어냈다.
“간지러워, 벤….”
약을 아무리 먹어도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따위의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비감에 빠지곤 했다. 남은 삶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할 때마다 다들 곧 의학이 발전할 거라고, 혹은 잘 이겨내고 있다고 조언과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렇지만 카일은 그런 허울뿐인 위로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성의껏 핥아주는 게 어쩐지 더 위안이 된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날이 완전히 갤 테니까, 같이 나가 보자.”
짧은 털이 보송보송한 콧잔등에 이마를 턱, 부비며 말했다. 벤의 신체 중 가장 좋아하는 부위였다. 나날이 길어지고 있는 주둥이는 벤을 성견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벨벳처럼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이마를 천천히 대고 문지르자 벤은 킁킁거리다가 혀를 내밀었다. 코끝, 입술 할 것 없이 낼름거리는 바람에 카일은 곧바로 떨어져야만 했다.
*
누워있거나 책을 보는 것 이외엔 하는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벤을 데리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어지간한 중형견만 한 크기로 자라났다. 카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벤은 산책 가자고 끈덕지게 조르고 아침부터 크게 짖었다. 그게 싫지 않아 카일은 졸린 몸을 이끌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집 근처를 벤과 함께 돌았다. 규칙적인 운동을 그가 담당해주는 셈이었다.
“오늘은 못 나가겠는걸. 비가 오고 있어.”
보통 사람이라면 우산을 쓰고 나갈 수 있겠지만 카일에게는 무리였다. 특히, 벤을 비 오는 날 데려오고 나서 바로 앓는 것을 본 하인들이 비 오는 날의 외출은 극구 말리고 있기도 했다. 벤도 이제는 비 오는 날이면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풀이 죽어버렸다.
“우, 우우-.”
불만을 표하듯 벤이 고개를 치켜들고 낮게 울었다. 우는 폼이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생각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칭찬에 곧바로 귀를 파닥거리며 머리를 비벼대는 모습은 아주 귀여웠다. 벤의 눈동자 또한 자신과 비슷한 빛의 호박색이었다. 그러나 맑은 빛을 띠는 자신과 달리 완연한 짐승의 눈빛이었다. 여기서 더 커지면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한 침대에서 자고, 아침에 깨워주는 일이 벌써부터 그리울 것 같았다. 잠이 잘 오지 않다가도 북슬거리는 털 밑의 따끈한 뱃가죽을 만지면 금방 눈이 감기곤 했다. 카일은 벌써 벤과 정이 아주 많이 든 상태였다.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야지…. 여기 이불 깔아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카일은 그렇게 말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벤은 그의 말대로 얌전히 자리에 배를 깔고 누웠다. 발끝에 닿는 털의 느낌을 만끽하며 한창 책을 읽을 때였다.
“끄응, 우…, 으으웅….”
갑자기 벤이 우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카일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한창 책에 집중하고 있던 카일은 왜 그러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나 벤이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계속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왜, 왜 그래? 벤?”
이름을 부르자 순간적으로 벤의 눈동자가 형형히 빛났다. 곧바로 몸을 훌쩍 들어 앞발로 카일의 허벅지를 딛고 아랫배를 다리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밖으로 불거져 나온 성기를 비비는 것이었다. 벤이 다리에 매달려서 갑자기 그런 행위를 하자 카일은 난감해졌다.
“벤…? 벤, 왜 이러는 거야.”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개들의 발정에 대하여. 보통 중성화 수술을 한다고 읽었던 것 같은데, 벤에게도 그런 처치가 필요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아주 한적한 시골이었기 때문에 수술을 하려면 교외에 있는 병원으로 나가야 할 터였다. 당장은 다리에 마운팅 하는 벤을 떼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머리를 밀어냈다.
“끄우…, 우우, 우응….”
헥헥거리며 긴 혀를 내밀고 있던 벤이 낑낑 울었다. 밀어내지 말라는 듯 아주 애처로운 울음소리였다. 벤이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들어본지라 카일은 당황했다. 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더욱 다리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마구 비벼대는 통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벤….”
심지어 그로부터 새어 나온 정체불명의 액체 때문에 바지가 축축이 젖기까지 했다. 꼿꼿하게 선 것이 자꾸 다리를 쿡쿡 찌르는 통에 카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순간적으로 카일은 하인들을 불러서 벤을 떼어내고 수의사를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부르게 된다면 이제 성견이 된 것 같으니 집 밖에서 지내야 한다고 할 확률이 높았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책에서 수컷 개는 딱히 발정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1년 내내라는 문구를 읽었던 것이 기억났다. 게다가 마운팅 등을 하는 행위는 단순히 성욕 해소 이외에도 원인이 다양할 수 있었다.
그래, 발정이 난 게 아니라 그냥 장난 혹은 다른 무언가를 주체하지 못한 거겠지.
산책을 못 가서 그런 걸 수도 있다며, 카일은 벤이 발정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바지는 벌써 완전히 푹 젖어있었다. 마운팅만을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벤이 흘린 쿠퍼액으로 인해 바지가 젖어드는 중이었다. 성기를 비벼대는 행위 이외에도 벤은 수시로 킁킁거리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찾아내려 했다. 쇠약한 환자의 몸으로 그를 떨어 놓는 것은 무리였다.
“벤, 놔, 가만히.”
짐짓 단호한 척 말해봐야 듣지 않는 것도 여전했다. 젖어버린 바지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인들에게 약간 지린내가 나는 그 바지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조차 난감했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일단 바지가 더 많이 젖기 전에 벗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책상 위에 따라 둔 물컵이 눈에 띈 것이었다. 대충 물을 쏟았다고 둘러대면 될 듯했다. 생각해보니, 점심을 먹고 아직 약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으웅, 크….”
카일은 엉덩이를 들썩여가며 바지를 벗어 내렸다. 허벅지를 짚고 있는 벤의 발을 치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의 발이 제법 묵직한 데다, 긴 발톱이 자란 덕이었다. 마침내 한 번도 햇빛에 노출된 적이 없는 뽀얀 허벅지가 드러났다. 벤은 맨다리에 대고 더더욱 빠르게 성기를 부볐다. 미끈거리는 액체와 함께 뜨끈거리는 성기의 감촉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옷 위로 느껴지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윽….”
요상한 느낌에 카일은 얼굴을 찌푸렸다. 벤이 저녁 먹을 때까지도 떨어지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며 그가 언제 지칠지, 개들의 발정이나 마운팅이 얼마나 반복되는지 찾기 위해 책으로 손을 뻗었다. 내친김에 약도 먹자고 생각하며 책을 펴고 약통에서 알약들을 꺼냈다. 평소 먹는 거라면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벤은 시큰둥했다. 오로지 마운팅을 하며 헐떡이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던 카일은 약 한 움큼을 입안에 털어 넣고 삼켰다.
“하….”
약을 전부 먹고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책에는 개들이 마운팅 하는 것에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에 혼내거나 소리치는 것은 개들의 정서에 좋지 않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카일은 그 대목을 읽으며 어차피 누군가에게 소리치는 것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크우우….”
벤이 두리번거리는 주기는 점점 잦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매달려 있던 다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하도 비빈 나머지 살끼리 맞닿은 부분이 붉어진 상태였다. 벤은 무언가를 찾듯 으르릉거리고 연신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바닥에 우두커니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점점 걱정이 깊어져만 갔다. 만에 하나, 벤도 자신처럼 몸이 아픈 거라면. 정말 그럴 리는 없지만 병이 옮았거나 안에서 키워서 이상 행동을 보이는 거라면.
“도련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벤을 바라보던 중, 밖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카일은 놀라서 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 바람에 책상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던 컵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흘린 물을 대충 젖은 바지로 닦은 카일이 말했다.
“나갈게, 그리고 바지 한 벌 더 준비해 줘. 물을 쏟아서 다 젖어버렸어.”
약간 떨리는, 자연스럽지 못한 목소리였다.
그 후로도 벤의 이상스러운 행동은 간헐적으로 반복되었다. 어떤 날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어떤 날은 어김없이 달라붙어 성기를 비벼댔다. 머리로는 지금 이 행동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가 끼잉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짖으려 하면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처음 생긴 작은 친구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다른 이들이 잘 돌봐줄 거라곤 하지만, 찬바람 부는 바깥에서 비와 햇볕을 피하지 못한 채 갇혀 사는 삶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고 잔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딘가에 갇혀있는 삶이 얼마나 갑갑한지는 몸소 실감한 바가 있었다.
어차피 벤에게는 안이나 밖이나,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건 똑같은 거 아닌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카일은 더 침울해졌다. 어쩌면 집사의 말대로 그 자리에서 데려오지 않는 게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미 데려와 버렸으니, 앞으로 완벽히 성체가 되면 자연에 놓아주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그때가 오기 전까진 그와 최대한 잘 지내자고 다짐했다.
제대로 놀아 주지도 못하는데 마운팅 좀 하는 걸 받아주는 것쯤이야, 라고 마음먹자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다. 대신, 매번 물을 쏟았다고 변명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래서 카일은 벤이 성기를 비벼대면 그에 맞춰 바지를 벗었다. 햇빛에 노출된 적이 없어 희다 못해 투명한 피부는 마찰에 곧바로 붉어지곤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남들은 모르는 벤과의 비밀이었다. 다리 한쪽을 내어주면, 카일이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주의를 끌기 위해 행동하지도 않고, 심지어 먹는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다리에 매달려 자신이 수컷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카일이 식사를 하면 빠르게 잠잠해졌다.
산책을 제외한다면 거의 나가지 않고 대체로 방에서 지냈기에 벤의 마운팅을 받아주는 건 어느새 일과가 되었다. 주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리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 그런 행동이 심해졌다.
누군가는 바쁘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게 하는 일이 없어도 여전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벤이 몸에 대고 마운팅을 한 지도 한 달이 넘게 되었다. 그사이 벤은 몸집을 더 불려, 앞발을 들고 몸을 세우면 거의 카일과 비슷할 정도였다. 카일의 성장이 더디다 못해 멈춘 탓도 있었지만 벤의 먹성과 성장속도는 눈에 띄는 수준이었다.
카일이 마운팅을 할 때면 바지를 벗어준다는 사실을 학습한 벤은 이제 옷을 벗으라는 듯 바짓가랑이를 물거나 킁, 하는 소리도 낼 줄 알게 되었다. 카일은 군말 없이 요구에 따라 바지를 벗었다. 처음엔 종아리에서 허벅지만 내어주면 되는 일이었지만, 벤의 몸집이 커져서 그것도 쉽지 않았다. 몸을 딛고 성기를 문질러오는 벤의 앞발은 묵직했고, 오랜 시간 당하면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다. 여전히 벤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연신 킁킁거렸다. 목덜미에 대고 킁킁 소리를 내면 하던 일에 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카일은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곧 헤어질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털을 쓰다듬거나 몸을 끌어안곤 했다. 아마 한 달, 길어봐야 세 달이면 완전히 성체가 될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하인들의 말에 의하면, 벤은 들개가 아니라고 했다. 갈수록 날렵해지는 얼굴이나 몸집으로 볼 때, 그는 늑대라는 것이었다. 삽화로 본 늑대는 작은 형상이 고작이었기에 늑대가 이렇게 거대한 동물인지 알 턱이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개도 키우기 어려운 형편에 늑대를 키우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모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벤을 어릴 때부터 키운 덕에 사람을 물거나 포악하게 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마운팅을 하면서 달려들 때 빼고는 아주 온순한 늑대였다. 달려든다 한들 기다리라고 말하면 알아듣는 눈치였다. 어쩌면, 카일이 거절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들어준다는 사실을 학습했기 때문에 온순한 것일지도 몰랐다.
한창 벤에게 마운팅 당하고 투명한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다리를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온 카일은 다소 피곤해하며 몸을 씻어냈다. 벤이 큰 덩치로 몸을 짓이기듯 달라붙어서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앞으로 벤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관한 고민은 거의 잊을 만하면 머리 한구석을 잠식하는 수준이었다. 뜨거운 물을 맞으며 상념에 젖어있던 카일은 물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공기 덕분에 피부 표면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헥…, 헥.”
벤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카일은 복합적인 감정이 실린 표정을 지으며 그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자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지 않고 씻으러 들어갔던 바람에 홀딱 벗은 채 옷을 찾아야만 했다. 카일은 침대 옆 옷장에서 잠옷을 찾아 꺼낸 뒤 갈아입으려고 몸을 숙였다. 막 부드러운 재질의 잠옷 바지에 발을 집어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벤이 카일의 엉덩이 쪽에 코를 바짝 대고 킁킁거렸다. 갑자기 숨결이 닿아 놀란 나머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던 카일은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바닥에 나자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벤이 더 빨랐다. 성큼, 침대 위로 올라온 벤은 카일의 아래쪽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냄새를 맡다가 혀를 내밀었다.
“벤…!”
머리를 밀어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벤은 완고했다. 축축한 혀로 계속해서 성기와 고환, 그리고 그 주변부를 핥았다. 누군가와 일절 닿은 적 없던 곳에 자극이 느껴지자 카일은 당황했다.
“하, 하지 마….”
그가 말을 잘 안 듣는다는 걸 알았기에, 만류하는 목소리는 작았다. 이렇게 늦은 시각 큰 소리를 내면 다른 이들이 방에 찾아올지도 몰랐다.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한 상상이 온갖 나쁜 방향으로 곁가지처럼 뻗어나갔다. 벤은 그토록 찾던 것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듯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핥았다.
“헥, 헥…, 우우….”
늑대는 낮게 우는 소리를 내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진득한 혀 놀림에 따라 카일의 성기는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면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데다 매일같이 먹는 약 중엔 성욕과 성감을 저하시키는 성분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자위 한 번 해본 적 없는 몸이었다. 어차피 카일은 가문의 대를 잇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부친은 과감히 생식 능력 대신 건강을 선택했다. 열성 오메가였기 때문에 임신할 확률이 희박한 건 둘째 치고, 당장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는 입장이었다.
“아, 으읏…, 그, 그만, 그만해….”
카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뜨겁고 긴 혀가 하반신을 유린하는 감각은 낯설다 못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긴 혓바닥의 반절도 안 되는 성기가 서서히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축 늘어져서 핥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던 것이 드디어 일어설 기미를 보인 것이었다. 오랜 시간 마운팅당해 피곤했던 나머지, 오늘 저녁은 약 먹는 것을 잊은 카일이었다. 벤의 후각은 아주 예민해서, 그에게서 풍기는 아주 희미한 오메가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약을 먹게 되면 감쪽같이 냄새가 사라져버리곤 했다. 그래서 오메가의 냄새를 찾아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었다.
드디어 오메가의 향이 짙어지는 근원지를 발견한 벤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한 달도 넘게 찾던 냄새였다. 희미하게만 느껴지던 체향은 특히 구멍 쪽에서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속옷 한 장만 입어도 냄새가 옅어질 정도로 미미한 향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카일은 완전한 나신이었다.
“하…, 응, 읏…. 흑….”
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카일의 신경은 문밖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조금 일찍 자려고 준비한 덕에 밖에는 아직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의 도련님이 발가벗고 침대 위에서 늑대에게 성기를 애무당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치 못할 것이었다.
“흐, 흐읏, 아…, 벤….”
결국 카일의 성기가 완전히 발기해버렸다. 뜨겁고 축축한 혀는 요도 구멍 쪽을 집중적으로 핥고 있었다. 거의 파고들듯, 귀두 부분만을 자극해대는 통에 카일은 버티지 못하고 몸을 들썩였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쾌락 때문에 그를 거절하는 것도 잊은 채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중이었다.
“으, 윽, 아, 이, 이상해, 흐으…!”
소변이 마려운 것처럼 찌릿거리는 감각이 간헐적으로 아랫배부터 성기 끝을 관통했다. 필사적으로 분출되려는 것을 참아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일의 성기 끝에서 방울방울 흐르던 액체가 줄기를 그리며 뿜어져 나왔다. 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액을 남김없이 핥았다. 건강하지 못해 진하진 않았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벤….”
벤은 혀를 내밀고 헐떡이며 카일을 응시했다. 샛노란 눈동자는 온전히 카일을 담고 있었다. 카일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두려운 한편, 처음 사정한 여운이 가시지 않아 심장이 벌렁거리는 걸 느꼈다.
공포스러운 동시에 기분이 좋았다.
다행히 벤은 그 이상 어떤 짓을 하지 않고 옆으로 가, 털썩 누워버렸다. 큰 침대는 벤이 옆에 눕는 것만으로도 꽉 들어차게 되었다. 카일은 벌벌 떨리는 몸을 겨우 다잡고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벤이 핥은 곳을 씻고, 옷을 챙겨 입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몸이 너무 피곤했다. 보통 사람들이 사정을 한 뒤 느끼는 나른함의 배 이상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카일은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아…, 아으, 흣….”
얇지만 그려낸 듯 진한 눈썹이 일그러지며 곡선을 만들어냈다. 카일의 눈은 감겨 있었으나, 입은 벌어진 채로 달뜬 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쾌락을 느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 먼저 눈을 뜬 벤은 눈앞에 보이는 흰 나신과 달달한 오메가의 체향을 가만두지 못했다. 다리 사이에 코를 박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그곳을 핥았다. 자는 와중에도 성기는 확실히 반응했다. 약을 먹지 않은 지 12시간이 지나고 있는 시각이었다. 침대 위에서 벤이 큰 몸을 이끌고 움직여댄 탓에 이불은 저만치 아래로 흘러내려간 상태였다. 깨끗한 시트 위엔 마른 나신의 청년과 새카만 늑대 한 마리뿐이었다.
“하, 아… 앗….”
성기를 길게 핥아 올리던 혀가 다른 곳을 발견했다. 굳게 다물린 애널이었다. 또 다른 구멍 쪽에서도 짙은 오메가의 냄새가 났다. 벤은 그곳으로 혀를 옮겨 싹싹 핥았다. 깊이 잠든 와중에도 애널은 움찔거리며 혓바닥에 반응했다. 긴 혀가 입구를 두드리다가 마침내 안으로 침범을 시도했다. 동시에 카일의 얼굴이 조금 더 미묘하게 구겨졌다.
“으, 으읏….”
짭짭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질이는 통에 인상을 쓰던 카일이 결국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게 된 건 짧은 털이 빽빽하게 박힌 검정색 귀였다. 움직이는 기척을 감지하는 듯, 귀가 쫑긋거렸다. 혀를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든 벤과 눈이 마주쳤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나신을 비추는 가운데, 샛노란 짐승의 눈과 오래간 눈빛을 교환하는 건 몸속 어딘가가 울렁거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벤, 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힘없이 중얼거리며 두꺼운 털뭉치를 밀어냈다. 이불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심지어 성기는 또다시 발기한 상태였다.
“우으응….”
벤은 밀어내는 손길에 순순히 밀려나지 않고 괜스레 새끼 때 내던 소리를 내며 손바닥에 대고 이마를 비볐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이 닿자 카일은 마음이 약해질 뻔했으나, 짐짓 단호하게 그를 밀어냈다. 자는 동안에도 이런 식으로 성기를 핥아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곧 있으면 하인들이 아침 식사하라고 부를 시간이었기에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카일은 씻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크으응…!”
카일이 말을 들어주지 않자, 벤은 심통 난 것처럼 더 크게 소리를 내며 몸을 비벼댔다. 자신이 덩치가 꽤 있는 데다 무겁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영리한 늑대였다. 힘을 실어 짓누르면 주인은 꼼짝도 못 할 것을 알았다. 벤의 의도대로 카일은 침대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두꺼운 털 아래로 깔리고 말았다.
“안 돼, 벤, 밥 먹어야 해, 너도 밥 먹어야지.”
그가 밥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카일은 그에게 설득하듯 말했다. 그러나 벤은 막무가내였다. 애널 쪽에서 진한 오메가의 향을 맡고, 벌써 발기해버린 상태였다. 언제 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학습한 늑대는 아주 고집스럽게 굴었다. 몸 위를 덮치고서 카일의 허벅다리에 대고 성기를 빠르게 비비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비빈다기보단 피스톤질을 하듯 끝부분으로 다리를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이 강해졌다는 점이었다.
“벤…, 제발….”
카일은 불안해하며 문 쪽을 살폈다. 하인들이 함부로 문을 여는 일은 없었어도, 헥헥거리는 이 거대한 늑대의 숨소리가 들리기라도 할까 걱정되었다.
“도련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으, 으응, 금방 가!”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전히 자신은 늑대의 밑에서 나체로 그에게 마운팅 당하는 중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심장이 벌렁거린 적이 드물었다. 멋대로 달리기를 시도했을 때보다 더 빠르게 심장이 요동치는 중이었다. 카일은 자신의 머리카락 색만큼이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벤과 닫힌 문을 번갈아 보았다.
“크으으으응….”
한창 성기를 비벼댄 끝에 벤이 묽은 액체를 다리와 배 위에 쏟아내며 낮은 소리로 짖었다. 카일은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바지부터 챙겨 입었다. 벤이 더 응석부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잠들었을 때부터 그가 정성스레 핥아댄 덕에 서버린 성기가 여전했지만 꾸물거릴 여유가 없었다. 벤은 가지 말라는 듯 카일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카일은 그를 다리로 밀어내며 문밖으로 도망치듯 나와 문을 닫아버렸다. 안에서 우우,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 벤이 아침부터 장난을 쳤어.”
“그 늑대가 또 그랬단 말입니까? 도련님, 역시 밖으로 내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날이 더 풀리고 계절이 바뀌면 분명 털갈이가 시작될 겁니다.”
아침 식사에 늦은 이유를 숨 가쁘게 설명하는 순간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카일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다행히 아침 식사는 이미 준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하인들이 음식을 나른다고 분주히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그 덕에 자리에 앉는 것으로 솟아오른 하반신을 무사히 가릴 수 있었다. 잠옷이 아주 헐렁하고 긴 옷이었기 때문에 상의가 아래쪽을 덮으면서 내려온다는 것도 안도할 만한 일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호흡과 헝클어진 머리칼, 그리고 아직도 발그레하게 물든 얼굴을 본 집사는 혀를 찼다. 그 모든 게 키우던 애완 늑대와의 음란한 행위로 인한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커다랗고 털 달린 짐승이 치대는 것에 병약한 주인이 체력적으로 견디지 못한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알았으니까….”
카일은 그만하자는 듯 그릇만을 응시하며 식기를 들었다. 스프가 맹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신이 빠진 상태였다. 먹는 둥 마는 둥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도련님을 내려다보는 집사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옷도 엉망으로 흐트러진 게, 분명 그 커다란 들개 같은 녀석이 혓바닥으로 핥아서 옷을 더럽혔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련님의 건강이 악화되면 주인어른께 저희가 면목이 없게 됩니다. 부디, 본가에 계신 어르신을 생각해 주십시오.”
“알아….”
잔소리의 긍정적인 부분은,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힌다는 점이었다. 집사의 말을 들으면서 카일은 고기를 씹어 삼키고 야채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최대한 빨리 방으로 돌아가서 배에 흩뿌려진 축축한 액체를 닦아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게다가 도련님, 요즘 늑대를 돌본다고 집회에도 안 나가신 지 꽤 되지 않으셨습니까. 장로님이 기다리십니다.”
“집회, 가긴 가야 하는데…. 그렇지만 비를 맞고 돌아온 뒤에 기침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었어. 장로님의 설교를 방해하면 모두가 눈총을 줄 거야.”
“그러니까, 그 털덩어리를 하루 빨리 방에서 내보내야 한다, 이 말입니다. 도련님 기관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잖아? 그냥 내 몸이 약한 거야.”
틈만 나면 벤을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집사의 주장에 카일은 지지 않고 의견을 내세웠다. 집사 또한 카일이 얼마나 심심하게 문명과, 사회와 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완고하게 주장을 관철하고 늑대를 바깥으로 끌어내지는 못했다. 21세기였지만 적어도 이 시골 마을과 작은 별장만큼은 약 40년 전,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흔한 전화도 없이 오로지 편지로만 외부와 소통해야 했고 TV나 인터넷 같은 문명의 이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모든 전자장비는 카일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며 그것은 주인 어르신의 뜻이었기 때문에 하인들 전원까지도 집 안에서 전자기기 사용을 삼가야 했다.
카일이 밥을 먹고 일어서는 동안 집사는 측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잔소리하면서도 그저 도련님이 건강해져야 할 텐데, 하는 마음뿐이었다. 벌써 5년도 전에 작별을 준비하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었으나 카일은 죽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물론 카일이 각종 자연 치유 요법을 끈질기게 잘 따라와 준 덕도 있었지만, 역시 그의 생존에는 장로님이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했다.
산간에 위치한 이 작은 시골 마을은 거의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한 오지였다. 차를 타고 2시간은 가야 근교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외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업이나 임업에 종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어귀에는 그럴싸한 건물이나 상가가 몰려 있었다. 의외로 주마다 외지인들이 방문하는 덕에 마을 입구부터 시가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작은 거리까지는 꽤 현대적인 건축물이나 시설들이 빠르게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안쪽까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을 역행하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신성회였다. 소문으로는 장로의 할아버지가 이 마을 출신이었다고 하며, 신학대학을 나온 그는 성경을 재해석하는 데 성공해 그리스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섰다고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근간이기도 한 이 마을부터 가르침을 설파했고, 그 덕분에 마을의 아이들 중 글을 모르는 아이가 없게 되었다. 그의 아들, 그리고 손자가 대대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교리를 공부하고 설파한 끝에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해석에 동의하여 가르침을 얻고 싶어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존의 교회와 갈라져 신성회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종파가 생겨난 것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존 교리에 대해 믿음이 너무나도 굳건한 나머지 이단이나 사이비로 보는 시각도 있었으나, 적어도 이 집안에서 일하는 하인들 중 그런 생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독실한 신성회의 신자였으며 매주 장로의 설파를 듣기 위해 열심이었다. 심지어 이 마을에 연고가 전혀 없는 타지 사람 중에는 오지에 위치한 본원에서 열리는 설파를 듣고 싶으나 비용적, 거리적 문제로 인해 에반 가 별장에 하인으로 자원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신성회는 한 세대를 걸치면서 세력을 키워 시골 마을 전체에 영향력을 뻗치게 되었다.
에반 가의 가주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신성회를 믿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장로와 신성회의 입장 탓이었다. 한 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작스럽게 대두된 알파와 오메가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성별에 관계없이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꽤나 충격적인 사실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짐승이 발정기를 가지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게 문제를 야기했다. 곳곳에서 우리는 짐승과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슬로건이 나붙기도 했고 종교계에서는 문란한 성행위를 일삼은 나머지 신벌을 받은 거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자기 아이가 알파나 오메가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제때에 검사받지 못해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는 등 사회적으로 소란이 이는 와중에 신성회는 모두 같은 하나님의 자손이기 때문에 차별받지 아니함을 주장했다. 본원 옆에 기도원을 짓고, 간절히 기도하고 깨끗하게 생활하면 자연치유 되거나 증상이 완화될 것이라는 말을 설파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또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그 또한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시간이 지나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알파와 오메가는 호르몬 문제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한번 뿌리 깊이 박힌 차별의식을 바꾸는 데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에반 가의 가주 역시 종교 활동은 일절 하지 않는 무신론자였으나, 아픈 자식을 슬하에 두게 된 순간부터 백방으로 치료법을 찾아 전전하면서 신적인 것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는 어떤 병원에서도 현대 의학으로는 열성 오메가를 치유하거나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을 통보받았고, 그저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참담함에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는 지경에 달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것이 신성회였다. 병색이 완연한 아들을 업고 어디든 내달리던 그에게 장로와의 만남은 허허바다에서 한줄기 등대 빛을 만난 것만큼 희망찬 순간이었다. 증상이 완화됨은 물론, 혹여 완치가 불가하더라도 아이가 차별받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남은 생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장로의 말에 에반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아들을 작은 별장에 홀로 떼어놓고 돌아오는 길에 그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별장의 모든 하인들이 아는 일화였다.
전자기기와 모든 발전하는 문명으로부터 떨어져, 건강식만을 먹고 주기적으로 주치의가 방문하며,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혼자 지내게 된 카일은 힘겹게 한 해 한 해 버텨냈고, 마침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신성회에 대한 에반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져서 마침내 열성 오메가를 치유하는 일이라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에반에게 장로의 말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내막을 카일이 알 턱이 없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살아남기’였다. 아파도 좋으니,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아 더딘 속도라도 건강을 회복해가는 일이 최우선의 과제였다. 또래, 혹은 형제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발육도 더디고 병색이 완연한 몸이었으나 카일은 이제 성인이었다. 본가에서 걱정하고 있을 아버지를 위하여 언제나 편지를 썼고, 항상 편지의 끝머리에는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아들, 카일러스 에반 올림.’ 따위의 문구가 적히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이제 슬슬 미뤄둔 것들을 써 내려가야만 했다. 흡사 일기 쓰는 것을 밀려버린 나머지 아무렇게나 지어내는 어린이처럼 카일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방으로 들어온 카일은 한숨을 쉬며 주저앉아 버렸다. 집사의 잔소리를 들은 것 때문에 집회에도 꼬박꼬박 나갔어야 했다는 자책감과 더불어 아버지께 보낼 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위장에 음식물을 쑤셔 박은 덕에 뒤늦게 배가 불러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문 앞에 주저앉은 카일에게 기다렸다는 듯 다가온 것은 벤이었다. 킁킁거리며 옷에 희미하게 밴 음식의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곧 그의 머리칼과 목덜미 그리고 섬유질에 듬뿍 묻은 오메가 향을 코로 낚아채고 기쁘다는 듯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크으으응….”
축축한 코가 목과 뺨에 닿자 카일은 간지럽다는 듯 작게 웃으면서 그를 밀어냈다. 당장 할 일이 생각난 덕에 아침에 있었던 일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들어오자마자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대신 책상 앞에 앉는 카일을 보던 벤은 실망스럽다는 듯 낮게 짖는 소리를 내며 의자 주변을 빙빙 돌았다.
“벤, 착하지.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에게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건네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지에 써야 할 일주일 치의 일상을 떠올리기 급급했다. 했던 일이 있던가? 그저 집 안에 누워 있거나 그날의 밝은 햇살을 받아 잠에서 깨어난 일, 식사를 한 일이 전부인데. 분량이 너무 짧으면 아버지께서 실망하실 게 분명하니 허투루 쓰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벤에 대해서….
옆에서 입을 조금 벌린 채 헥헥거리는 소리를 내는 털짐승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오점 하나 없이 샛노란 눈동자는 보고 있을 때마다 기묘한 감각을 자아냈다. 벤을 들여왔으며, 그와 지내고 있다는 말은 이미 편지에 적은 바가 있었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즐겁다는 내용, 작은 들개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늑대개 혹은 늑대일 수도 있다는 내용도 써서 보냈었다. 지난주의 편지를 받아 본 아버지는 당연히 늑대의 위험성에 대하여 우려했지만, 그와 지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적힌 문장에 대고 부정적인 답변을 하지는 못한 듯했다. 조심해야 한다고 거듭해서 적힌 답장을 읽으며 그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여러 장의 답장을 읽어 내려가며 쓸 내용을 구상하는 동안, 벤은 자연스럽게 카일의 무릎에 앞발을 대고 몸을 일으켜 귓가에 코를 바짝 대고 킁킁거렸다. 그게 간지러워서 어깨를 움츠릴지언정 카일은 그를 뿌리치거나 하진 않았다. 이미 몸을 부비는 일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방에 들어와서 옷 벗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벤은 카일의 바지 끝부분을 물고 잡아당기며 크르릉거렸다. 더는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카일은 결국 펜대를 내려놓고 옷을 벗어야만 했다. 그의 나신 전체를 마주한 채 성기를 세운 적이 있던 벤은 하의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듯 상의도 물고 늘어졌다. 바지 끝자락 정도야 잇자국이 나거나 늘어져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기에 상관없었으나 상의가 망가지면 하인들이 단번에 알아볼 확률이 높았다. 결국 카일은 벤의 응석에 못 이겨 속옷까지 빠짐없이 벗은 채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한 번도 나신으로 책상 앞에 앉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벤은 기다렸다는 듯 헐벗은 카일의 몸에 대고 성기를 문질렀다. 저택에 들여오는 서적은 언제나 하인들이 면밀히 검토하기 때문에 성적인 내용이 과하게 묘사된 책은 읽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성적인 지식은 이론에 그치는 수준이었고, 이것이 음란한 행위라는 자각은 없었지만, 본질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부끄러운 동시에 아랫배 쪽이 은근히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친애하는 아버지께….]
벤의 허릿짓을 받아내면서 카일은 글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의자가 살짝씩 끌릴 정도로 행위가 심해지면 잠깐씩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을 멈춰야 했지만 그런대로 버틸 만했다. 어젯밤, 그리고 오늘 한 것처럼 성기를 핥거나 엉덩이를 핥는 행위에 비하면 성적 자극이 미미한 탓이었다.
“하…, 벤, 조금만 살살….”
카일은 손으로 벤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를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밀어내자 보드라운 털에 손이 푹 파묻힘과 동시에 절대로 밀려나지 않겠다는 듯 기 싸움을 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머리가 느껴졌다. 귀를 바짝 눕힌 채 밀려나지 않는 것을 본 카일은 한숨을 쉬며 손을 치우고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툭 맞대며 말했다.
“진짜야, 나 이 편지 꼭 써야 한다고…. 다 쓰면 하자는 대로 놀아 줄게.”
카일은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순전히 야생에서 멋대로 활보해야 할 정도로 자라났는데 계속 집 안에만 갇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해서라도 당장 풀어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가 없다고 생각하면 쓸쓸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스스로 참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카일은 부끄러운 자신의 마음에 대하여 기술했다. 육체적 접촉에 대한 수치감은 이기심에 대한 수치감으로 물들어 편지에 낱낱이 공개되어갔다. 근래 들어 가장 큰 사건이었던 늑대와의 성적 접촉에 대해서는 한 단어도 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적당한 분량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편지 쓰기를 마친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앞에 편지 봉투를 두려다가 자신이 나체임을 깨닫고 문 여는 것을 주저했다.
밖에 누가 돌아다닐까?
이미 벤이 허벅지와 허리 쪽에 흥건히 체액을 발라 둔 뒤라 그것을 닦아내고 다시 옷을 입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편지 봉투를 밖에 두고 다시 안으로 들어오면 그가 옷을 벗으라고 요구할 게 뻔했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채 빳빳하게 선 채로 검은 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붉은빛의 성기를 곁눈질하던 카일은 숨죽인 채 문밖의 소리에 집중하다가 방문을 살짝 열고 편지 봉투를 바깥에 두었다. 탁, 하고 문이 완전히 닫히면서 공간이 밀폐되고 나서야 안도의 숨소리를 내뱉을 수 있었다.
“크으응….”
이제 카일의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린 벤은 그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허벅지 안쪽에 머리를 부비적댔다. 종아리에 몸 전체를 비벼가며 그에게 자신의 체취를 듬뿍 묻히려고 했다. 카일은 어제저녁부터 약을 먹지 않고 있었고, 그 덕에 억제되지 않은 오메가의 향은 거의 절정에 달한 상태였다. 물론, 저택의 어느 하인도 그 향을 맡을 수는 없었다. 그들 중 제아무리 민감한 우성 알파가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미비한 후각으로 맡을 수 있는 페로몬의 냄새는 한계가 있었다. 오로지 짐승만이 그 존재감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접근할 수 있었다.
성적으로 성숙해 갈수록 제 주인의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게 된 벤이었다. 이제는 그의 냄새와 몸짓만 감지하더라도 슬슬 아래쪽이 간질거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같은 인간이 아닌 짐승과 정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역겨워하는 이도 있을 테고, 짐승까지도 알파와 오메가가 발현된다면 생태계가 교란될 것이라고 우려하거나 흥미로워하는 이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 모든 의견들은 이 작은 별장에서 무색해졌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별장 안의, 문이 굳게 닫힌 방 안이었다.
벤은 고개를 쳐들고 카일의 성기 쪽에 코를 문질거렸다. 희미했던 오메가의 향이 점차 강해짐에 따라, 교미하지 않고 버틸수록 스트레스가 가중되었다. 당장이라도 교미하고 싶어 몸 밖으로 삐져나온 성기는 벌써부터 끝부분에서 액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카일은 아직도 문 근처에 선 채로 벤의 몸집에 가로막혀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벤…? 놀아주겠다고 했잖아….”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성급하게 얼굴을 하반신에 들이미는 행위에 카일은 다시 한번 말리기를 시도했다.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했을 때 말을 알아듣는 양 얌전히 있던 걸로 보아, 그는 분명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만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본인이 듣고 싶을 때만 듣고 아닐 때는 제멋대로 군다는 점이었다.
“으…, 간지러워…!”
카일을 입막음하려는 듯 벤은 고개를 들고 그의 늘어진 성기와 작은 고환을 날름거리면서 핥았다. 몸집이 커져서 그냥 서 있기만 해도 그의 허리까지 머리가 닿았기 때문에 하반신을 애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좀 비켜보라며 그를 밀어낼 요량으로 방 안쪽으로 몸을 돌린 카일은 꼼짝없이 앞쪽은 늑대, 뒤쪽은 문에 가로막히게 되었다. 하인들 중 그 누구도 항상 정숙한 차림을 한 막내도련님이 나체로 편지를 쓰고 방 문간에 기댄 채 늑대에게 성기를 애무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라도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카일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길고 가는 혀가 기둥 전체를 휘감은 채 핥는 행위를 반복했다.
“베, 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죽어있던 성기는 어느 한 곳을 빼놓지 않고 샅샅이 핥는 정성에 감복하기라도 했는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보다 조금 더 짙은 빛의 체모는 아랫배와 성기 사이에 아주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분명히 2차 성징까지 마친 성기였지만, 정상적인 성인에 비하면 어딘가 미흡해 보였다. 별장에서 지내지 않고 보통의 또래들처럼 이성이든 동성이든 교제하고 성적인 교류를 하게 된다면 필히 트라우마나 고민으로 남을 만한 신체였다. 머리와 성기 부분을 제외하면 신체의 다른 부위는 털도 없이 멀끔했다. 전반적으로 희멀건 몸에 검은 늑대는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인간들의 미의식은 그에게 있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저, 상대가 내뿜는 미약하지만 육감적인 페로몬의 향취와 쉽게 정복할 수 있는 우유부단한 태도가 중요할 뿐이었다.
카일이 발기한 것을 확인하고 더 집요하게 혀로 핥아대다가, 경로를 비틀어 회음부 아래로 향하던 벤의 눈에 오늘 아침까지 혀를 비집어 넣고 핥던 구멍이 들어왔다. 그의 피부라면 모든 구석이 흰 빛깔일 것 같았지만, 애널 근처는 옅은 핑크빛이었다. 탐욕을 자극하는 빛깔이었기 때문에 벤은 지체하지 않고 얼굴을 거의 가랑이 사이에 들이박다시피 하며 그곳을 핥았다.
온종일 갈구하던 곳은 여전히 여리고 민감했다. 조금만 안을 휘저으면 거의 경련하듯 수차례 움찔거리며 혀를 꽉꽉 조여왔다. 고작 혀만으로도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데 단단하게 부풀어있는 곳을 넣으면 어떻게 될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할 지경이었다. 벤은 천천히 좌우로 꼬리를 흔들어대며, 짭짭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일의 아래쪽을 세심하게 핥았다. 그런 그의 애무를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카일은 소리를 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목구멍 안쪽을 벅벅 긁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목구멍부터 가슴팍, 아랫배를 관통하는 간질거림은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중이었고, 발기한 곳은 벤의 털이 닿기라도 하면 따끔거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분명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지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질 정도로 이상한 감각이었는데 고통스러워서 몸을 버둥거리게 되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벌써 몇 번이나 느껴본 쾌감이었지만 카일은 적응하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지 않은 반대쪽 손을 말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벌써부터 견디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카일은 벤을 만류하는 것도 하지 못한 채 온몸을 떨어가며 간헐적으로 전신에 퍼져나가는 쾌락과 싸웠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쓴 약을 먹었을 때처럼 눈썹이 아치형을 그리며 일그러져갔다.
“아…! 하으, 벤….”
소변이 마려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벤을 겨우 불러보았지만 검은 늑대는 듣는 척도 하지 않고 하던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결국 카일은 벤의 윤기 나는 검은 털 위로 잔뜩 사정해버렸다. 새카만 털 위로 뿜어져 나온 하얀 탁액은 지나치게 눈에 잘 띄었다. 본인이 싸지른 액체가 소변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적나라하게 보이는 사정의 흔적에 양 뺨에 따끔거릴 정도로 혈액이 몰렸다.
“크으, 으우우….”
정액 냄새를 맡은 벤은 안을 휘젓던 혀를 빼내고 자리에서 불안한 듯 움직였다. 마음 같아서는 정액을 싹싹 핥아먹고 싶었지만, 한창 가랑이 사이에 코를 박은 상태에서 사정해버린 덕에 뒤통수와 목덜미에 액이 달라붙게 된 것이었다. 겨우 벤에게서 해방될 수 있던 카일은 비틀거리면서 침대 쪽으로 갔다. 몸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침대로 걸어가 그대로 푹 엎어져버렸다. 허약한 몸은 사정 한 번만으로도 나른한 감각에 휩싸여 손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는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달아오른 뺨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으우, 으응….”
벤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말고 카일의 몸 위에 올라타서 가녀린 어깨에 묵직한 턱을 얹었다. 커다란 늑대의 몸은 등 전체를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였다. 그의 무게에 숨이 막힌다는 듯, 카일이 길쭉한 주둥이를 쓰다듬으며 비켜보라고 말했지만 벤은 못 들은 척했다. 그 대신 이마를 목덜미 부근에 들이대고 비비적대며 은근하게 발기한 물건을 엉덩이 골에 대고 문지르는 것이었다. 길쭉한 성기는 몸만큼이나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했다.
벤의 몸 거의 모든 곳에는 검은 털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하지만, 몸 밖으로 자태를 드러낸 붉은빛의 성기는 지나치게 미끈거리고 뜨거웠다. 카일의 몸에 대고 성기를 비비며 학학거리는 소리를 내던 벤은 참지 못하고 몸 위로 액을 분사해버렸다.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보다 오메가의 향이 짙었다. 귓가에서부터 목덜미 내려오는 곳까지 코가 얼얼할 정도로 진한 냄새가 풍겨 올라왔기 때문에 과하게 킁킁거리며 흥분했다. 엉덩이 골 위쪽부터 허리까지 늑대의 정액으로 흠뻑 젖어버린 카일은 그의 밑에 깔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기만을 기다렸다. 몸을 내리누르고 있는 늑대를 자력으로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벤, 제발….”
카일은 덜컥 겁이 나버렸다. 벤이 의도적으로 못 들은 척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벤은 못 들은 체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처럼 가라앉지 않는 성기를 마구 문대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엉덩이 골에 미끈거리는 정액이 엉겨 붙자 움직이기가 더 수월해졌다. 방금까지 핥던 곳이 예민해진 채 벌름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벤은 카일의 입구에 집중적으로 성기 끝을 문질거리다가 힘을 주어 그곳을 벌리고 들어가려 했다.
“아…!”
한 번도 침입을 허락한 적 없는 곳이 벌어지자 카일은 고통에 찬 외마디 신음을 내질렀다. 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란 성기를 꾸역꾸역 몸 안으로 집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통각에 카일은 눈앞이 새하얗게 번뜩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면서도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 이런 모습을 하인들이 발견한다면 벤이 집 밖으로 쫓겨나는 처분을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터였다. 주인에게 해를 가했으니 누군가 벤을 엽총으로 쏴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카일은 이불을 세게 움켜쥔 채로 어떻게든 소리가 새어나가는 걸 참아보려고 애썼다.
카일은 자신이 지금 늑대에게 범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카일이 읽을 수 있는 범주의 책들은 모두 청소년을 위한 모험담이나 소설, 혹은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의 책들뿐이었다. 성적인 접촉을 밀접하게 다룬 책은 별장에 반입된 적이 없었을뿐더러, 똑같이 남성기가 달린 수컷의 교접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로맨스는 오로지 남과 여 사이에서만 이루어졌고, 대체로 고전 명작 취급을 받는 그러한 소설들은 오메가와 알파의 발현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지기 이전에 쓰인 것들이었다. 카일의 아버지와 하인들은 오메가와 알파의 사랑, 혹은 차별을 다룬 책들을 절대로 카일이 읽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에는 카일은 너무 약했고, 언제 이 복잡스러운 세상으로 나온 나들이를 마치고 흙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몸이었다. 그런 이유로 하인들은 최대한 즐겁고 좋은, 희망을 꿈꿀만한 내용들만 도련님이 읽게끔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카일이 태생을 거스르지 못하고 페로몬으로 알파를 유혹하여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들과 차이점이라면 유혹당한 대상이 거대한 늑대이며, 본인이 알파의 성욕을 자극했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카일이 두려움에 빠진 채 잔뜩 경계하며 숨을 죽인 이유는 통증 때문이었다. 벤이 자신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상황에서 위협을 느낀 것이었다. 장난을 치면서도 이빨 한번 세운 적 없던 얌전한 늑대였다. 하인들 중에는 더러 물지는 않을까, 사납게 구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벤은 아주 유순한 늑대이며 그런 포악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당부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착했던 벤이 몸을 가르고 안에 들어오고 있었다. 구멍이 찢어지다 못해 몸이 절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버거운 감각에 카일은 이불에 얼굴을 푹 파묻고 억눌린 신음소리를 냈다. 주인을 해한 나쁜 늑대는 짐승으로 취급받아 사냥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벤을 그런 식으로 잃고 싶지 않았다. 왜 그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고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명 원인이 있을 터였고, 최소한 그것을 교정하는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간 행복하게 지냈던 시간들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카일은 손가락 마디가 새빨갛게 변할 정도로 이불을 붙잡고 압박감을 참아냈다.
“크으으…, 큿….”
벤은 카일이 얼마나 복잡한 생각을 하며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카일도 분명 기뻐할 거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의 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웠고, 기분 좋게 조여 들어왔다. 좁아서 성기가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꽉꽉 달라붙는 내벽은 어서 추삽질하고 싶다는 욕망을 부추겼다.
“학, 학….”
그의 목덜미를 길게 핥았다. 자신의 주인이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진즉에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털이 거의 없는 매끈한 몸이었고, 네발로 기지도 않았으며, 자주 침대에 누워 있곤 했다. 밖에 나가는 게 즐거웠지만 그와 함께라면 방 안에 오랜 시간 있어도 좋았다. 기억할 수 있는 순간부터 항상 그가 있었고, 카일은 벤에게 있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주인을 교미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이 관계를 여기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언제나 방 안에는 알파와 오메가 단둘이 머무르고 있었고, 알파 쪽은 통제를 교육받지 못한 네발짐승이었으며 오메가 쪽은 몸이 병약하며 약 없이는 페로몬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병자였다.
늑대의 예민한 코는 조금이라도 오메가의 체취를 더 들이켜기 위해 연신 벌름거리며 카일의 몸 위를 탐색했다. 이례적으로 카일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차가운 코가 등판에 닿을 때마다 흠칫, 하면서 몸을 떨었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배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온 육봉이 요동치는 감각에 숨을 멈추고 몸을 굳혀야만 했다. 고통스러워하면서 아래에 깔려 바르작대는 것을 무시하고 삽입을 시도하던 벤은 결국 끝까지 카일의 몸 안에 자신의 것을 박아 넣는 데 성공했다.
비쩍 마른 환자의 몸에는 가혹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성기였다. 벤은 이미 카일보다 훨씬 거대한 늑대였기 때문에 몸길이에 비례해서 성기도 길고 두꺼웠다. 작고 흰 엉덩이 사이로 시뻘겋고 굵다란 성기가 쑤셔 박힌 모습은 충분히 음란해 보였지만, 새카만 털에 가려져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흰 피부 위로 털옷처럼 뒤덮인 검은 털 덕분에 얽혀있는 둘의 몸이 더 대비되는 구석이 있었다. 얇은 몸은 늑대의 성기가 들어찬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였다. 벤의 것이 워낙 컸던 탓에, 삽입당한 모양대로 아랫배가 불룩해진 상태였다.
카일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세세하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몸 안에서 요동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온몸이 뜨거워서 머리가 핑글 돌아버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제아무리 열성 오메가라 해도 알파와 직접적으로 합을 맞추고 온몸으로 그를 받아내며 알파의 페로몬에 노출되어 있는데 반응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통증 사이로 미묘한 감각이 고개를 들었다. 너무 아파서 숨을 헐떡거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뜀박질을 했을 때보다 더한 아픔이었는데 거부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는 감각이었다. 당장 그와 몸을 접하고 있는 부분이 온통 불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아랫부분이 그랬다. 벌어진 입구는 화끈거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다.
“베, 벤…. 아파, 아프다고….”
한 번도 그에게 신경질을 내본 적이 없었으나, 단번에 삽입당한 고통이 차츰 가라앉으면서 몸이 적응하자마자 카일이 내뱉은 말은 아프다는 짜증이었다. 카일은 그가 말 못 하는 동물이었음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성숙한 지성인으로서 접근해왔었다. 그러나 그런 판단력을 전부 와해시켜버릴 정도로 삽입의 충격은 엄청났다.
카일이 투정부린다고 생각한 벤은 열심히 그의 등판을 핥으며 깊은 곳까지 박혀 들어가 있던 것을 천천히 몸 밖으로 끄집어냈다. 꽉 맞물려 있던 것이 풀어지는 순간, 카일은 눈을 질끈 감고 억눌린 소리를 흘렸다. 길고 두꺼운 게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한참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통각인지 쾌락인지 모를 감각에 몸을 떨면서 숨을 헐떡대고 눈꺼풀 위로 흘러내리는 땀을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한창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을 때처럼, 몸이 뜨거운 동시에 추위를 느끼고 으슬으슬 떨려왔다.
“벤, 이제 그만….”
분명 놀아주겠다고 했잖아. 그와 교미하고 있다는 건 인지하지 못해도, 이것이 놀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벤은 대답 대신 헥헥대는 소리만을 흘리다가 다시 삽입을 준비했다. 카일의 안은 아주 기분 좋고 뜨거웠기 때문에, 그만하라는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벤에게 있어 카일은 완벽한 교미 대상이었다. 옅은 오메가 냄새가 조금 더 진했더라면 이미 진작에 정신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었을 터였다. 이제라도 그 향의 근원지를 알았으니 다행이었다. 늑대는 카일과 다르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성체에 가까워질수록 성적으로 성숙해져, 짝을 식별하고 교미를 맺을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기어이 어리숙한 주인의 몸에 올라탄 벤은 앞발을 그의 어깨 앞에 딛고 허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크으으우…!”
거대한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카일의 내벽이 조금씩 풀려갈수록 움직임도 그에 맞춰 점차 빨라졌다. 이제는 카일의 키보다 몸길이가 더 길었기 때문에 흔히 개과가 교미하는 것처럼 주인의 몸 위에 앞발을 딛고 허리만 흔드는 건 무리가 있었다. 운이 좋게도 카일이 딱 허벅지 절반 부분까지만 침대에 올라가도록 비스듬하게 엎드렸기 때문에, 벤 역시 뒷발은 바닥에 짚은 채 쉽게 추삽질을 하는 중이었다.
조금 적응해서 몸이 덜 아픈가 싶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벤의 묵직한 것이 내벽을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왔다. 카일은 이마를 침대에 대고 침음을 삼키며 벤의 앞다리를 손으로 꽉 붙잡았다. 있는 힘을 전부 짜내 붙잡고 있었으나, 벤에게는 악착같은 감각으로 다가오기는커녕 마르고 힘없는 손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 흣…!”
안을 꽉 채우기만 해도 압박감 때문에 몸의 장기가 모조리 위로 밀려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안에 처박히는 것이 너무 커서 숨쉬기 힘든 건 절대 착각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깊이 찌르고 들어오면 순간적으로 시야가 새까맣게 점멸되면서 사물이 일그러져 보였다. 현기증이 날 때의 순간적인 감각이 피스톤질을 할 때마다 무수히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알파가 주는 쾌락을 느끼기엔 카일은 미숙한 열성 오메가였다. 선천적으로 페로몬에 둔감했고, 성적인 매력이 있는 몸도 아니었다. 그저 육체적 고통에 섞인 간헐적인 쾌감에 반응하여 발기한 성기는 바들바들 떨며 말간 액을 뿜어냈다. 한 번 사정하는 것도 버거운 몸은 벌써 정액을 모조리 토해내고 쿠퍼액만 찔끔찔끔 흘려댔다.
소변을 지렸을 때와 유사한 느낌이 들어 카일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물들었다. 아래쪽에서 흐르는 게 소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부끄럽다는 생각은 무지막지하게 안을 쑤시고 들어오는 육봉에 의해 순식간에 짓이겨지고 말았다.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생리적 고통으로 인해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 카일은 결국 벤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벤, 사, 살살…! 조금만, 아…! 천천히…!”
그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애걸했다. 누가 들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미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늑대에 의해 말소된 지 오래였다.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양, 벤은 뱃가죽을 카일의 등판 위에 딱 붙인 채 힘 있게 허리를 움직여대다가 갑자기 움직임을 딱 멈춰버렸다. 그가 이제 그만둬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이불에 푹 파묻으면서 한숨을 내쉬는 찰나였다. 벤은 뜨거운 정액을 배 안으로 질펀하게 뿜어내 버렸다. 단발적으로 사정하고 마는 인간과 달리, 사정량이 어마어마해서 배 속을 꽉 들어 채울 정도였다. 여전히 성기로 꽉 들어찬 데다 내부는 좁았기 때문에 단단히 맞물린 접합부 틈새로 정액이 터져 나왔다.
안에 사정까지 당한 카일은 몸을 떨며 축 늘어졌다. 성기가 부풀고 사정하는 것을 본인의 몸으로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벤도 지쳐서 당분간은 이런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순간적으로 기대했던 것이었다. 벤은 그 기대를 보기 좋게 깨버렸다. 갑작스럽게 아랫배 쪽을 강타한 고통에 카일의 금빛 눈동자가 작아졌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못 낼 정도의 복통을 느끼면서, 그가 마운팅을 할 때 꽤 오랜 시간 동안 매달려 있던 것이 떠올랐다. 이게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걱정보다 안에서 크기를 점점 불려오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더 컸다. 사정하고 나면 가라앉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성기는 그와 반대로 점점 부풀면서 딱딱해져갔다.
“아파…, 진짜 아프니까, 그만….”
얇은 팔목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 정도로 벤의 앞다리를 꽉 붙잡은 상태였다. 욱신거린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둔통이 아래에서 찌릿거리면서 몰려왔다. 숨을 조금이라도 크게 들이쉬면 어김없이 통각이 아랫배를 타고 가슴까지 올라와서, 숨이 자연스럽게 얕아지고 헐떡거리게 되었다. 벤과 맞닿아 있는 등판은 땀이 흥건해져 벤의 털까지 축축하게 적신 상황이었다.
“흐…!”
벤은 그럴수록 몸을 더 깊게 파묻었다. 안에서 계속 확장되는 것이 고통스러워 몸을 반사적으로 꿈틀거릴 때였다. 갑작스럽게 통각 사이로 고개를 든 기묘한 감각에 카일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몸 깊은 곳이 지끈지끈거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불쾌감과 유사하면서도 중독적인 느낌이 있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손에 차츰 힘이 풀려갔다. 몸을 굳힌 채 벤의 아래에서 얌전히 호흡을 고르자 그 느낌도 희미해져갔다. 그러나 몸을 조금이라도 비틀거나 허리를 움직이면 다시 안에서 깊은 울림이 반복되었다. 대놓고 그 감각을 탐하기에는 몸에 힘도 없었고 겁이 났다. 알지 못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매달려 짐승처럼 쾌락을 탐할 준비가 아직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벤은 카일의 내벽이 아까부터 계속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을 느끼고 그 또한 만족스러워하며 자신의 구애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만일 자신을 반려로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주인은 목을 물어뜯거나 거세게 울부짖는 등의 행위를 했겠지. 인간의 말을 대체로 알아듣는 편이었지만, 성욕에 잠식당해 늑대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일 때 소통에 필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벤은 오로지 몸짓으로만 상대를 파악해 나갔고, 카일은 대체적으로 순종적인 모습으로 상대를 기다리는 듯했다. 자신의 짝을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건 모든 수컷들의 기저에 깔린 욕망이었다. 아직 완전한 성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할 것을 염두에 두었었지만, 자신의 주인은 퍽 관대한 게 분명했다. 벤은 카일에게 성의껏 애정을 표현하며 꼬리를 느긋하게 휘적거렸다.
“벤….”
짐승의 눈빛을 하고 있던 그가 다시 평소의 영악하지만 귀여운 애완 늑대로 돌아왔을 때 카일은 안도하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연신 머리를 부비며 커다란 주둥이를 들이대는 그에게서 어떠한 위협이나 폭력성도 느낄 수 없었다. 귀가 뒤로 푹 누운 모습은 애교를 부릴 때나 나타나는 모양새였지만, 하반신까지 유순해진 것은 아니었다. 슬슬 오메가의 몸 안에 씨를 뿌리고 노팅까지 하고 있던 성기는 다시 원래의 발기 상태로 돌아와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아 두껍고 굵직한 크기인 데다 얇은 배 위로 성기 모양이 그대로 도드라지는 모습을 보면 흉악스럽기까지 한 물건이었다.
벤은 슬금슬금 안에 박혀있던 것을 다시 밖으로 뽑아냈다. 처음 삽입한 직후 성기를 빼낼 때보다는 거부감이나 통증이 덜했지만 여전히 맞물려 있던 내벽이 같이 밖으로 딸려나가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카일은 몸을 움찔, 떨며 박혀 있던 것을 세게 조여버렸다. 빼내는 것을 만류하듯 조여드는 게 기분 좋았던지, 벤은 그르릉거리는 신음을 흘리며 다시 천천히 삽입해왔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조급하지도 않고 많이 누그러진 기세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늑대의 체중이 실린 거대한 살덩이를 품는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으흣…, 아, 이, 이상해….”
평범한 남성, 즉, 베타가 동성끼리 하는 성관계를 맺었더라면 전립선을 자극당했을 때 큰 쾌락을 느낄 터였다. 그렇지만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는 조금 달랐다. 기본적으로 서로의 체취를 통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데다 성별에 관계없이 오메가는 임신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알파와 오메가라는 새로운 성별이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복잡한 체계와 매커니즘에 대하여 밝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생식에 관련된 구분인 만큼 성관계를 할 때 일반 베타들과는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동종 개체가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작용하는 게 바로 페로몬의 정의였다. 알파와 오메가의 경우는 서로의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식으로 페로몬이 작용했고, 대체로 발정 주기를 가지고 있어 특정한 시기에 자신이 성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식이었다. 당연히 알파의 정액에도 그런 흥분을 촉진시키는 페로몬이 섞여 있으며, 이 페로몬은 오메가의 흥분뿐만 아니라 가임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다. 알파의 정액을 뒤집어쓰거나 안에 사정당하면 오메가의 몸은 자동적으로 임신할 준비를 한다. 이 경우에 취사선택이란 없었다. 물론 카일과 벤은 동종이 아니었고, 때문에 이 문제에서 퍽 자유로울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둘은 카일 그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예상과 기대를 엎고 알파와 오메가로서 자신의 애완 늑대와 배를 맞추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몸에 푹 뒤덮여 성행위를 한 것도 모자라 안에 사정당하는 일이 페로몬의 홍수에 휩쓸리는 것과 동일한 수준이라는 것을 카일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인간에게서는 대체로 나타나지 않는 특징인 노팅을 개과 동물에 해당하는 벤이 시도하는 중이었다. 원래도 개들은 정액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노팅을 하지만 알파의 경우 조금 더 특별했다. 그들은 오메가의 성욕과 더불어 임신하고 싶다는 욕구를 발산하게끔 하는 내부 장기를 건드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노팅을 활용했다.
카일은 벤에게 노팅당하면서 내부에 감춰져 있던 스위치가 눌려버린 것이었다. 둔감한 열성 오메가의 몸은 그제야 주인을 회임시킬 수 있는 짝이 나타났음을 감지하고 뒤늦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피스톤질이 반복될수록, 아픔보다는 기묘한 감각이 배 속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조금 더 격렬한, 이를테면 안을 꽉 채우다 못해 아플 정도로 확장되는 그 감각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벤의 밑에서 헐떡이던 카일은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깊은 곳에 닿는 감각을 오래 느끼고 싶어 허리를 움찔거렸다.
“크…, 하, 우윽….”
한 줄기 쾌락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여전히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허리를 움직여 보려다가 즉각적으로 안을 버거울 정도로 찔러오는 것에 카일이 앓는 소리를 냈다. 벤은 자신을 품는 것을 힘겨워하는 주인을 이해한다는 듯 서두르지 않고 반복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처음 삽입할 때는 흥분에 휩싸여 박고 싶은 대로 박았다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반려였다. 노팅까지 했는데도 거부하는 기색 없이 받아들여주었고 어설프지만 직접 허리를 움직이며 호응하려 하기도 했다. 이는 필히 긍정적인 신호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늑대는 카일에게 머리를 부비며 그에게 한껏 자신의 체취를 묻혀냈다. 이미 구멍을 가득 채우고 그곳을 질척하게 만들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카일은 식사를 할 때면 항상 혼자 움직이곤 했다. 그의 머리칼에서 묻어난 냄새를 통해 그가 식사를 하러 간다는 것을 알아 차렸지만, 동행하면서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은 크나큰 유감이었다. 무릇, 짐승에게 있어 밥을 먹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 같은 존재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한다는 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희미하긴 해도 이렇게 달큰한 향을 풍기고 있는데 무방비하게 돌아다니는 것 때문에 더더욱 안심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니 건드릴 수 없도록 체취라도 듬뿍 묻혀 놔야만 마음이 조금 놓이는 수준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부비는 벤 덕분에 카일은 그의 아래에 깔려서 간헐적으로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큰 몸을 들썩이면서 틀어대고 고개를 부비면 덩달아 안에 든 거근도 함께 배 속에서 꿈틀거렸다. 피스톤질이 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여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헥헥거리는 소리,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벤의 머리, 그리고 등을 축축하게 적시는 따뜻한 혀. 벤과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게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아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지금 혹시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헉…!”
꿈이라고 하기엔 모든 감각이 너무 선명하게 말단부터 올라왔다. 성기 바로 위쪽, 단전 부분을 누가 전기 신호를 내보낼 수 있는 작은 침으로 쿡 쑤시는 것 같은 감각의 연속이었다. 그 감각은 숨만 쉬어도 안에서 거근의 존재감이 확인될 때마다 불규칙하게 올라오다가 깊은 곳까지 푹, 쑤셔 박히면 극대화되곤 했다. 카일은 바들바들 떨면서도 벤의 것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굳이 아래쪽을 핥아주지 않아도 뻣뻣하게 서버린 성기는 전립선과 오메가의 스위치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짓눌리는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찔끔거리며 물을 내뱉고 있었다.
“아, 흐…, 벤…, 벤…!”
추삽질이 점점 빨라졌다. 헥헥거리는 소리의 간격도 짧아져갔다. 넓고 푹신한 침대가 둘에 무게 덕분에 푹 눌린 채 들썩거리길 몇 번 반복하다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이미 카일의 안은 가득 차서 더 정액을 뿌릴 공간도 없는 상태였다. 정액은 좁은 곳에서 또 한 차례 터져 나와 허벅지 안쪽을 타고 질질 흘러내렸다. 흡사 흰 소변이라도 지려버린 것처럼 하반신은 엉망이었다.
“크흑…! 아, 아아윽….”
배 속에서 부푸는 것이 급격한 고통을 선사하자 카일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인상을 쓰며 손을 뻗어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얇은 뱃가죽 아래로 부풀어버린 벤의 것이 느껴졌다. 살덩이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손바닥으로 읽어내자마자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 몸 전체를 감쌌다. 하면 안 되는 일을 했을 때의 위화감과 닮아있는 감각이었다.
“크우…, 큭….”
성기 크기에 맞춰 벌어져 꽉 맞물린 곳에 몸을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몇 번이나 절정할 것 같은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었는데, 뱃가죽 밖으로 손의 느낌이 느껴지자 벤은 움찔, 몸을 떨었다. 본의 아니게 카일은 스스로의 배를 쓰다듬으며 벤을 자극한 것이었다. 그것이 늑대식의 구애 방식은 아니었지만 음란하기 짝이 없는 행위라는 사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 보고자 한 행동이 유혹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카일은 천천히 숨결을 가다듬었다. 움직이지만 않으면 묵직한 둔통이 뒤따를 일이 없었기 때문에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대신, 배 속에서 더욱 몸집을 불린 것 때문에 불쾌감에 가까울 정도로 찌릿거리는 통증과 함께 자꾸만 그 감각을 느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마치 어쩌다가 날카로운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면 따끔하고 아린 느낌과 더불어 하루 종일 그곳이 신경 쓰이다 못해 간질거려 자꾸만 건드리게 되는 것과 유사했다.
“읏…, 우, 하윽…. 하….”
벤의 성기가 안에서 최고조로 부풀었을 때 카일은 눈에 띌 정도로 팔을 후들거리면서도 자발적으로 허리를 앞뒤로 움직여가며 스스로를 고통에 밀어 넣었다. 한 번도 자위해본 적 없는 그가 스스로의 쾌락을 위해 움직인 첫 순간이었다. 안에서 극도로 팽창한 것이 내벽을 거칠게 긁어댔다. 크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겨우 조금씩 헉헉거리면서 잘게 움직이는 수준이었지만 충분했다.
벤이 눈을 깜빡이면서 가만히 있는 동안 카일은 부지런히 엉덩이와 허리를 비틀고 문질러대가며 고통 섞인 쾌감을 만끽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아픈 것을 알면서도 반쯤 풀린 눈으로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감각은 두려움 너머에서 강하게 손짓하는 중이었다. 언젠가, 심하게 열병을 앓았던 날, 진통제를 먹고 몽롱한 상태에 있을 때와 비슷하단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분명 앓고 있는 데다 온몸이 열기로 휩싸여 괴로울 법도 한데, 허공에 붕 떠서 비현실적인 감각을 느끼고 있는 상태.
카일은 벤의 아래에서 몇 번이고 엑스터시를 경험하며 경련하듯 허리를 떨고 눈물을 흘렸다. 환희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절정에 달한 자들이 훈장처럼 얻을 수 있는 특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흐으….”
움직임에 따라 꺼떡대던 성기에서 마침내 물이 쏟아져 나오고서야 카일은 침대 위로 늘어져 버렸다. 그래봐야 엉덩이가 들린 채 여전히 늑대의 것을 한가득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새빨간 성기는 이제 서서히 몸집을 줄이고 다시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굵다란 기둥이 밖으로 천천히 뽑혀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왕복운동을 할 때마다 크림처럼 흰 정액이 접합부 틈새로 찔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터져 나왔다. 질척거리는 움직임이 빨라지기라도 하면 음란한 교접음은 배가 되고 거칠게 움직인 나머지 정액에서 거품이 일어났다.
벤은 도무지 지칠 줄을 몰랐다. 카일은 그에게 그만하라고 할 기력까지 소진해 버린 채 침대에 반쯤 엎드려 그를 받아내고 있었다. 이미 침대의 프레임 부분과 가장자리는 체액으로 푹 젖어 엉망이었다. 그러나 어질러진 것을 어떻게 하인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이 깨어있지 못했다. 늑대에게 사로잡혀 엉망진창 범해지면서 카일은 그에게 동화되다시피 해버렸다. 짐승처럼 아주 간단한 소리밖에 내지 못한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싸고 싶으면 정액을 싸지르면서 자제력을 상실해갔다.
반쯤 기절한 듯 늘어져 있던 카일은 벤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을 때 겨우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벤도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건지, 하인들이 방해할 것을 예견하고 드디어 결합을 풀어준 것이었다. 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살덩이가 빠져나가자마자 안에서 체액이 왈칵 터져 나왔다. 그 느낌이 썩 유쾌하진 않은 데다 씻으러 가는 동안 방을 더 어지르고 싶진 않았기에 카일은 일어서면서 엉덩이 구멍을 손으로 막고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벤은 카일을 따라 움직이며 발치에서 킁킁거리다가 엉덩이 바로 아래쪽 허벅지를 혀를 내어 핥아 올렸다. 자신의 주인이 구멍을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체액 범벅이 되어 자신의 씨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금 소강기를 맞은 듯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시금 주인을 함락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띠게 된 성기는 몸 밖으로 빠져나와 금방이라도 바닥에 닿을 듯, 거대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따뜻하고 축축한 혀가 엉덩이 부근에 닿자 카일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욕실까지 들어오는 데는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주저앉으면서 방바닥에 정액으로 작은 웅덩이를 만들 뻔했다. 다물리지 못한 곳에서 흘러나온 정액은 카일 밑으로 작은 영역을 그려 나가며 타일의 틈새를 타고 배수구로 기어들어갔다.
“벤, 안 돼, 씻어야… 웃…!”
카일의 목 부근과 가슴팍에 연신 고개를 들이밀고 축축한 코를 부비고 머리부터 귀 뒤까지를 문질거리던 벤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넘어간 주인의 위로 올라탔다. 줄곧 후배위 자세를 취하면서 그의 늘씬하다 못해 볼품없이 마른 뒷모습을 마주해야만 했었으나 이번엔 반대였다. 난처한 표정의 얼굴은 눈물 자국이 선명한 야한 모습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를 병약한 환자로 봤겠지만 벤의 시야에는 그 어느 존재보다도 완벽한 자신의 오메가로 보였다. 자신과 닮은 호박색 눈동자는 혼란을 한 조각 담고 있었다. 사실, 그에게서 죽음의 냄새를 맡지 못한 건 아니었다. 뼈마디가 드러난 손과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 그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근거들이었다. 지금의 얼굴이 훨씬 보기 좋았다. 은근히 달아올라 붉은빛을 띠는 뺨은 평소에 비하면 훨씬 생기 있어 보였고,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고 소리를 내는 그는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벤은 긴 혀로 가슴팍을 핥으며 그의 하반신에 대고 흥분한 것을 문질렀다. 카일은 또, 라고 작게 내뱉으며 난색을 표했지만 막지 않았다. 쾌락의 맛을 알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벤을 어떠한 말과 행동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버린 것이었다. 분명 이 크고 강한 존재가 몸을 짓누르면서 좁은 곳을 벌리고 들어오는 상황이 두려워야만 했는데,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카일은 몸이 떨리던 것이 멈추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타는 것처럼 일렁거리는 눈동자는 샛노란 빛으로 빛나며 결 따라 난 검은 털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했다.
그 어떤 안료로도 모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진한 노란빛이었다. 완벽한 짐승의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잡아먹힐 것이라는 공포, 혹은 이 강력한 존재가 자신을 함부로 대할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카일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자신에게 상해를 입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성기를 삽입하고 노팅까지 해버렸지만 그건 상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적어도 벤이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낼 리 없다는 굳건한 믿음은 그가 하는 거친 행위들을 묵인하게 만들었다.
카일은 그렇게 욕실 바닥에서 다리를 벌린 채 늑대가 교접을 시도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차가운 바닥이 등에 닿는 감각은 전혀 익숙지 않은 것들 중 하나였다. 천식이 우려된다고 항상 따뜻한 곳에만 눕길 권고받았었고, 딱딱한 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눕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흔들리는 몸이 누워 있는, 잡을 것 하나 없는 매끈한 곳은 분명 맨바닥 위였다. 차가운 곳에 누우면 큰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서 놀랐다.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차가운 바닥이 기분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허리를 놀리며 살을 벌리고 들어오는 늑대를 끌어안았다. 따끈거림을 넘어서 후끈거리는 온기가 털가죽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푹신거리는 털뭉치를 안고 있으면 그 아래에서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근육이 움직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퍽, 하고 끝까지 성기가 밀려 들어왔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몸을 섞다 보니 찌그덕거리는 교접음과 헥헥대는 짐승의 소리가 더욱 적나라하게 들렸다. 뼈마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마른 손등이 사력을 다해 늑대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육봉이 들락날락하면서 허리 부근이 들렸다 바닥에 닿기를 반복했고 덕분에 방금 뱉어낸 정액 웅덩이에 둔부가 비벼지면서 하반신 전체가 정액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흐아…! 으, 흣…! 응…, 하윽….”
뺨과 목을 핥는 기다란 혀 때문에 정신이 분산되어 괴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삽입에 익숙해진 몸은 어서 직전에 느꼈던 그 쾌감을 다시금 안겨 달라며 들어온 것을 꽉꽉 물어댔다. 뾰족한 성기 끝이 정점을 찍어 올리면 지잉거리는 쾌락이 올라왔으나 그걸로는 충분치 않았다. 조금 더 깊은 곳을 정복해주기를 바라는 무의식이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가늘고 긴 다리로 늑대의 허리 부분을 감싸자 조금 더 깊이 결합되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입에서 허억, 하고 고통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왜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새까만 털에 푹 파묻힌 희멀건 다리는 성기가 박혀 들어올 때마다 더 세게 매달리는 한편, 발가락을 잔뜩 오므리며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거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열이 묻어났다. 이제는 등에 닿는 바닥이 차갑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욕실 전체가 온통 열기로 익어버려서, 뜨거운 물을 틀지도 않았는데 거울에 뿌옇게 김이 서릴 지경이었다.
“아…!”
안에서 성기가 부풀면서 영역을 확장해가는 통증에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감각을 고대해왔지만 고통스러운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한번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굵직한 통증이 전신을 훑고 지나가면 그 뒤로 잔잔한 쾌감이 쇄도하다가 이내 해일처럼 순식간에 몸을 쓸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카일은 후들후들 떨면서 사정해버리고 그대로 축 늘어졌다. 시야에 벤의 새까만 코와 턱이 들어왔다. 킁킁거리는가 싶더니 귓가 부근을 핥으면서 성기가 가라앉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다시 어린 늑대로 돌아온 그에게 이번에는 진짜 기다려줘야 한다고 재차 말하며 콧잔등을 쓰다듬었다. 벤은 끄응거리는 소리를 냈으나 울망거리는 노란 눈동자를 보니 이제는 방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양보해 줄 듯도 했다.
마침내 성기가 제 크기로 돌아오면서 결합이 풀리게 되었다. 카일은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몸을 닦아냈다. 더는 새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점성 있는 탁액을 긁어내는 것도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하인들이 이상하게 여길까 봐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몸 전체를 박박 씻어낸 다음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 속에서 희미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벤이 꼬리를 붕붕 흔들면서 달려들어 입술부터 핥아댔기 때문에 그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기 바빴다.
*
한번 몸을 허락한 이상, 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은 곤란하다’라고 설명을 해도 벤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지금 당장 하고 싶으면 해야 하는, 욕구를 통제할 줄 모르는 짐승이었다. 이제 막 성체가 다 되어가는 건장한 알파 늑대의 의지를 병약한 열성 오메가 인간의 체력으로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녁 식사 이후 해가 저물고 내리 관계를 하다가 카일이 기절하듯 잠에 들어버린다 해도 벤은 멈추지 않았다. 절정에 달하는 꿈, 늑대에게 엉망진창으로 범해지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면 실제로도 벤이 성기를 부풀린 채 엉덩이에 박아대고 있었다.
그야말로 난잡하고 질척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늑대는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는 습성이 있는 데다, 하인들 중 오메가가 있다 하더라도 벤은 그들에게서 페로몬을 맡아내진 못했다. 그러므로 늑대의 성욕을 처리하는 일은 오롯이 카일의 몫이었다. 저택 안의 다른 어떤 인간들도 벤에게서 알파의 향취를 맡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벤에게서 나는 냄새는 여느 개들과 다르지 않은, 동물 특유의 냄새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오로지, 그와 직접적으로 육체적 관계를 맺은 카일만이 그의 몸 전체에서 은은하게 풍겨 올라오는 진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전부 약을 끊은 덕이었다.
하인들이 방에 들어오는 일은 청소할 때를 제외하면 잘 없었으나, 만일을 대비해 꼭 창문을 열어두었다. 진득한 정사 이후 방에서 나는 텁텁한 냄새는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반갑지 않은 탓이었다. 창문을 열어두고 자도 북슬거리는 벤의 털을 덮고 자면 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별장이 현대의 문명과 단절되어 있다지만, 도련님이 방 안에서는 아예 인간 사회의 문명 자체와 단절된 채 헐벗고 원초적인 삶을 즐기고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누군가 한 명쯤은 수상스레 여길 법도 했음에도, 워낙 복도 끝방인 데다 평소에도 카일은 조용히 지냈기에, 그리고 감히 늑대와 교접할 거라고 망상을 펼칠 정도로 음란한 마음을 가진 하인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모두들 독실한 신성회의 신자였기 때문에 건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아픈 도련님을 위해 정성을 담아 기도하는 데 열중했다.
방 밖으로 나갈 때 걸치는 옷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밤새도록 벤에게 시달리고 나서도, 카일은 꼬박꼬박 그의 산책을 거르지 않고 햇빛이 너무 강해지기 전에 나가는 것을 고수했다. 내심 산책을 나간다면 그가 피로를 느끼고 덜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과격한 정사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아침 기도는커녕 집회에 못 나가게 된 데다 책은 등한시하게 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슬슬 걱정이 되던 차였다.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지? 더 자주 데리고 나왔어야 했는데….”
게으름에 대한 응징은 아닐까? 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카일은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별장 뒤쪽으로 걸어가면 마을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산길이 있었고, 그곳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면 작은 호수가 나왔다. 호수는 산책의 종착역이었다. 호숫가에서 물이 넘실거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주된 산책 일정이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벤을 처음 주워 왔던 작은 덤불을 지나칠 수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카일은 많은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벤은 제 주인이 복잡한 생각을 하는지 아닌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가다가 왜 이렇게 천천히 오냐는 양 뒤돌아보기를 반복했다. 비록 겉모습은 처음 보는 이라면 두려움을 느낄 만큼 커다란 맹수였지만 아직 아기였을 때처럼 행동하는 걸 보면 절대로 모질게 굴 수 없었다. 카일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호숫가까지 걸어가면서 천천히 가라고 연달아 외쳤다.
벤은 카일의 몸 위에 올라탈 때는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으나, 조금 천천히 가달라고 말하면 또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발걸음을 늦춰주었다. 그가 보통 영악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카일은 호숫가 근처의 넓적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다소 서늘한 바람이 옷소매를 타고 몸을 훑어 내렸다. 조금 으슬한가 싶어 양팔을 손으로 감싸고 문지르자, 호숫가의 물을 날름거리던 벤이 고개를 슥 들었다. 주둥이를 물에 처박고 기다란 혀로 물을 퍼 올려 짭짭대며 마시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주둥이 부근 수염에 물방울을 잔뜩 달고 있는 입가 아래로 늑대 특유의 날카롭고 긴 이빨이 드러났다. 집중해서 물을 마시는 것 같아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수시로 귀를 사방으로 움직여가며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미세한 소리를 잡아내고 있었다. 덩치만 큰 어린 짐승이라고 하기에는, 완연한 늑대의 모습을 갖춘 그는 날렵하고 멋들어진 모습이었다. 비록 종이 달랐지만 카일은 알 수 있었다. 그는 퍽 잘생긴 늑대였다.
물에 첨벙첨벙 걸어 들어가나 싶더니, 벤은 거기서 고개를 치켜들고는 아우우, 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한참을 울던 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내 멱을 감다가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나무를 발톱으로 할퀴고 여기저기에 영역 표시를 하며 이 구역이 완전히 자신의 것임을 확고히 하는 데 열을 올렸다. 카일은 햇볕으로 잘 익은 바위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재미있어 하는 중이었다. 볕을 오래 쬐는 것도 위험했지만, 서늘한 그늘 밑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으레 나무 바로 아래쪽의 바위는 차가울 뿐만 아니라 축축하기도 했기에. 카일이 구경하는 동안 늑대는 집 안에 갇혀 있던 통에 억압되어 있던 욕구를 표출하기라도 하듯 짖고 풀숲에 나뒹굴며 야성을 잃지 않았음을 과시했다.
“크우…!”
카일 옆으로 바짝 다가온 벤은 작게 콧김을 내뱉으면서 크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풀숲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이리저리 들쑤셨는지 콧잔등에 풀 조각들이 묻어있었다. 카일은 기다란 늑대 주둥이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마르고 작아 보이는 손으로 열심히 콧잔등에 붙은 풀 조각들을 떼 주었다. 코가 축축했다. 열중한 채 말없이 풀을 털어주는 도련님을 잠시 응시하던 벤은 기습적으로 그의 뺨을 핥아 올렸다.
“으븝, 얌전히 있어 봐.”
입술을 핥자 카일은 귀여운 척해도 안 된다며 머리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손을 옮겼다. 벤은 장난치는 게 재미있다는 듯 능청스레 얼굴을 몇 번 더 핥다가 푸르륵 몸을 털어버렸다. 털끝에 묻어 있던 물이 일제히 카일에게 분사되어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워낙에 풍성하고 빽빽하게 자란 데다 빛을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검은 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줄은 몰랐던 카일은 결국 벤의 코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혼을 냈다.
“나쁜 늑대 같으니라고…. 옷은 더럽히면 안 된다고 했잖아.”
“우, 우우….”
벤은 왜 혼내냐며 오히려 따지고 들었다.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사실, 옷이 젖으면 사람이 벗는다는 사실을 보고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자발적으로 옷을 벗기를 바란 것이었다. 아예 대놓고 몸 위로 올라타서 가슴팍에 머리를 턱 얹으며 카일이 바위 위로 드러눕게끔 했다. 털가죽 밖으로 비어져 나온 성기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서 노골적으로 하반신을 부벼댔다. 뜨겁고 딱딱한 것이 옷 위로 닿자 카일은 결국 항복했다는 듯 벤의 머리를 밀어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옷은 더럽히면 안 된다니까?”
집에는 걸어 들어가야지. 간신히 벤을 몸 위에서 비키게 만드는 데 성공한 카일은 누운 채 웃옷의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셔츠의 색만큼이나 핏기 없이 흰 피부가 공기 중에 노출되었다. 차가운 바람이 한 번 더 몸을 훑고 지나가자마자, 천 아래에서 납작하게 있던 젖꼭지가 빳빳하게 도드라져 버렸다. 벤은 자기 혓바닥보다 더 색이 옅은 유두를 혀로 쓱 핥아 올렸다. 타액 범벅이 된 곳을 난처하게 바라보면서도 바지를 벗어 내려가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교미하면 몸을 씻고 싶어질 텐데, 호숫가의 물은 너무 차갑지 않나 하는 생각 따위를 하며 카일은 바위 위에서 나체가 되었다. 어두운 회색빛의 바위 위에 늘어진 흰 몸은 유독 두드러져 보였다.
별장 뒤에 있는 샛길로만 오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그래도 실외에서 이렇게 알몸이 되는 건 역시 낯뜨거운 일이었다. 카일이 벗은 옷가지를 바위 한구석에 잘 정리해두는 동안, 벤은 그의 사타구니 안쪽을 핥고 킁킁 체취를 맡으며 끊임없이 확인하려 했다. 그가 자신의 오메가이자 반려라는 것을, 이대로 몇 번만 더 씨를 뿌리면 귀여운 새끼까지도 낳아줄 것이라는 사실을.
“하…, 후우….”
넓은 혓바닥으로 성기 부근을 휘감고 싹싹 핥는 건 인간이 하는 것에 비해 정교하지도 않았고 굉장히 날것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얼굴을 핥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동작이었는데 왜 이렇게 혓바닥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는지 통 영문을 모를 노릇이었다. 카일은 벤의 머리를 손으로 꽉 붙잡고 허리를 튕기며 가쁘게 숨을 내뱉었다. 킁, 하고 벤이 숨을 들이쉬면서 체취를 빨아들일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민감한 부위를 간질였다. 저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리려고 하면 앞발로 허벅지 안쪽을 지그시 누르면서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아…, 아아앗…, 벤, 간지러워…, 거, 거기 너무….”
타액으로 성기가 미끈거릴 정도로 적셔대다가 혓바닥이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축 늘어진 고환의 주름 사이사이까지 말끔히 핥아대다가 회음부를 지나 애널에 주둥이를 들이박고 짭짭거리는 소리를 내가며 탐닉했다. 몸이 길들여진 만큼 알파에게 반응하는 법을 배우기라도 한 건지, 애널은 이제는 알아서 뻐끔거리면서 혓바닥을 조이고 곧장 진한 오메가의 페로몬이 잔뜩 섞인 말간 액을 흘려댔다. 이전에 비하면 굉장한 발전이었다. 거의 목석같던 몸은, 넣는 것도 버거웠던 데다 성기를 잘라버릴 것처럼 억세게 조여대는 것 말고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관계를 거듭할수록 민감해져서 이제는 코끝으로 은밀한 곳을 간질이기만 해도 액을 흘려대며 박아달라고 벌렁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유혹을 마다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벤은 카일이 준비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혀를 빼내고 좁다란 곳에 자신의 길고 두꺼운 성기를 들이밀었다. 육벽이 벌어지면서 부드럽게 기둥을 감싸는 동시에 꽉 조여왔다. 흡사 성기 모양에 꼭 맞게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루 압박감을 선사하며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으…, 아아…! 읏…, 하, 하아…. 후윽….”
점차 성기가 깊숙이 들어옴에 따라 카일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끄트머리를 받아들이면서 경악으로 커다래진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육봉에 잔뜩 찡그리며 최대한 고통을 쾌감으로 치환하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틀어가며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하반신에 힘이 너무 들어가지 않도록 최대한 남은 정신을 끌어모으며 짧은 간격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했다. 벤은 거칠고 급박하게 삽입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크기가 버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듯 자비가 없었다. 끝까지 다 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고 밀어붙였고 결과는 언제나 카일의 패배였다. 배 속을 가득 채우면 내장 전체가 위로 짓눌리면서 딸려 올라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베, 벤…, 자, 잠깐, 잠깐만….”
내부 어딘가의 기관이 짓눌리는 건 사실이었다. 삽입하는 것만으로도 가버릴 때가 종종 있었다. 숨을 잘못 들이쉬어 복부가 압박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만큼 비좁은 곳에 간신히 살덩어리를 다 담고 있는 것이었다. 애무 당할 때부터 등 뒤에 딱딱하게 닿던 바위가 신경 쓰여, 역시 체위를 바꾸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카일은 벤에게 움직이지 말아달라고 재차 당부하며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흐, 하앗…, 우, 으윽, 아, 크흣….”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리를 벌리자 몸끼리 연결된 곳이 훤히 드러나 버렸다. 벤의 털에 가려져 있던 곳에 바람이 들자 차가운 느낌이 들어 힘이 들어갈 뻔했으나, 잘 참아내어 그를 자극하지 않는 데 성공했다. 카일은 조심히 박힌 채로 몸을 돌리려고 했다. 벤의 다리는 길었고, 자신의 몸은 작았기 때문에 서 있는 그의 아래에서 몸을 돌릴 만한 공간은 충분했다. 딱딱하고 까슬거리는 바위 표면을 땀이 배어나 축축한 손으로 붙잡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몸을 돌렸다.
“흐아아아…, 악….”
몸을 돌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제까지 해본 적도 없거니와, 큼지막한 것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안에서 요동을 치는 탓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고일 지경이었다. 맨발이었으면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카일은 옷만 탈의했을 뿐 여전히 양말과 신발은 신고 있는 상태였다. 벤은 자신의 몸 아래에서 꼬물거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뭐라도 해보려는 주인을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그가 카일을 기다려주는 것은, 순전히 흥미 때문이었다. 주인이 먼저 무엇을 요구하거나 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꾸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야릇한, 짐승 소리 같은 것을 내는데 참아 주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작에 그가 자신과 같은 종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원래 그래야 할 섭리를 따르는 것처럼 제 주인을 탐하고 그에게 숨김없이 욕망을 표출해냈다. 카일의 노력을 봐주는 것도 거기까지였다는 듯, 벤은 허리를 뒤로 뺐다가 앞으로 콱 처박으면서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하으으!”
거의 다 성공했는데. 충격이 가지 않도록 안에 성기를 품은 채 체위를 바꾸길 시도하던 카일은 바위 위로 엎어지고 말았다. 익숙한 자세였다. 손바닥이랑 무릎이 조금 쓸린 것 같았지만, 부딪히진 않았다. 대신 한계까지 안을 벌리고 들어온 것 때문에 몸이 반으로 갈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충격과 더불어 전립선을 제대로 찔려버린 나머지 방뇨하는 것처럼 정액을 바위에 지려버리고 말았다. 점성 있게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정액 자체는 희었지만, 구불거리며 만들어내는 길은 새까맣게 바위를 적셨다.
그것을 시작으로 벤은 참아왔던 욕구를 분출해냈다. 거의 헐벗은 상태에서 몸에 잔모래를 묻혀가며 헐떡였다. 엉덩이만 들린 채 늑대의 좆으로 사정없이 범해지는 중이었다. 철퍽거리는 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누구의 소리인지 모를 짐승 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딱한 곳을 짚은 손에 온통 따끔거리도록 모래가 박히고 무릎이 쓸려도 허리를 달싹이며 쾌락을 탐하는 짓을 멈출 수 없었다. 이따금씩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 올라오면 몸을 떨어대며 말간 액을 싸지르고 조금 진정된 것 같다 싶으면 그 강렬했던 감각을 향해 다시 허리를 움직이는 일의 반복이었다.
“크, 흐으윽…, 으, 흡….”
노팅당할 때면 눈앞이 일그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안에서 부푼 것이 어서 씨를 받아내라고, 본능을 거부하지 말라고 외쳐대는 것 같았다. 배 속에 정액이 꽉꽉 들어차다 못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부글거리며 흘러내린 것은 노팅하는 내내 일정한 속도로 기울어진 몸을 따라 물줄기를 그려냈다. 회음부를 타고 발기한 성기 기둥을 따라 내려와 카일의 쿠퍼액과 섞여드는가 하면, 배꼽을 타고 가슴팍까지 흘러내려가 판판한 가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기도 했다. 분명 벤이 늑대의 자지를 처박고 있는 곳은 애널 한 곳뿐인데 결국은 전신이 체액으로 흥건해지기 십상이었다.
“크웃….”
등을 말고 카일의 목과 등을 정성스레 핥아주던 벤이 다시 허리를 비틀며 박혀 있던 것을 뽑아냈다. 어제도, 그제도 거의 온종일 박혀 있었으므로 빨갛게 붓고 짓무른 내벽이 시뻘겋고 굵직한 성기에 들러붙어 밖으로 약간 딸려 나왔다. 베타라면 절대 감내하지 못할 행위였지만 오메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열성이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오메가로서의 발육이 상당한 부진한 상태였고, 심지어 카일은 아직도 벤의 체취를 희미하게나마 느끼는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그러나 벌써 며칠간 열다섯 번도 넘게 한 행위였다. 전신에 늑대의 정액을 뒤집어쓸수록, 노팅당할수록 알파의 페로몬에 노출되고 몸의 기능이 더디게나마 회복되고 있었다. 카일은 자신의 미흡했던 성기능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단지 벤의 어리광을 거절하지 못해서, 저택에서 유일하게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 그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서 몸을 허락하게 된 상황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고통에 비례하는 쾌락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그 감각은 마약과도 같아서, 조금만 고통을 감내하면 눈앞이 하얗게 번뜩이고 몸이 경련하듯 떨리는데도 아찔함을 자꾸만 느끼고 싶은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을 학습하고 말았다.
남는 건 질펀한 짐승식의 교미뿐이었다. 호숫가에서 해가 한참 기울 때까지 살을 부딪치고 개처럼 엎드려 침을 질질 흘려가며 늑대 좆을 받아냈다. 정액으로 배가 빵빵해져서, 아랫배를 꾹 누르기만 하면 정액이 왈칵 터져나올 정도가 되어서야 벤은 만족했다는 듯 결합을 풀어주었다. 호숫가의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도 구분 못 할 지경이 되어 몸을 닦아내고 대충 옷을 걸쳤다. 걸어갈 힘이 없어 비틀거리자, 벤은 카일의 허리에 가볍게 코를 들이박으며 자신의 등을 머리로 가리켰다가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타라고?”
말이나 소를 탄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늑대를 탄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무렴, 이대로 있다가는 날이 저물도록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카일은 벤의 위에 늘어졌다. 몸 길이는 길어도 키가 아주 큰 것은 아니었으므로, 축 늘어진 카일의 다리는 땅에 닿았다. 벤은 그러건 말건 주인의 가벼운 몸을 싣고 타박타박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신발이 땅에 질질 끌려 더러워지고 벤이 땅을 디딜 때마다 허리에 짜릿거리는 둔통이 잇따랐지만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털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깜깜한 털과 어쩐지 진득하면서도 좋은 냄새가 어우러져 정신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벤에게 실려 저택까지 돌아온 뒤였다. 하인들은 모두 걱정했으며 산책을 어디까지 갔다 온 거냐고 다그치는 집사의 말에 어색하게 웃을 뿐, 무엇을 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냥, 좀 넘어졌는데 벤이 데려다 줬나 봐. 벤이 없었으면 거기 그대로 조난당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벤한테는 상으로 고기를 줘야겠어.”
“고기야 매일 주고 있지 않습니까.”
몸이 좀 좋아졌다고 무모한 짓만 골라서 한다며 혼을 내던 집사는 벤을 싸고 돌며 잘했다고 털을 쓰다듬는 카일을 보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주인만큼이나 극진한 관리를 받아 털에서 윤기가 줄줄 흐르는 늑대는 유독 카일 앞에서 어리광을 피우는 게 뻔히 보였다. 하여간 영악한 족속들이라고 눈을 흘기던 집사가 나가자마자 아예 침대로 펄쩍 올라온 벤은 카일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으우웅.”
“나, 힘들어…. 내일, 내일 해….”
카일은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벤을 끌어안았다. 그의 머리는 품에 꼭 맞는 크기라 끌어안기 좋았다. 어차피 더는 할 생각 없었다는 듯, 벤은 크응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머리에 힘을 빼고 주인에게 기대었다. 어차피, 날은 많았고 언제든 그에게 달려들면 그만이었다. 식사로 제공되는 고기는 결과적으로 카일을 즐겁게 하는 데 쓰이는 격이니, 수컷으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고 여기는 벤이었다. 그를 위해 직접 사냥을 나가 고기를 물어다 주지 못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만회하기 위해 사랑을 퍼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한 카일이 앞으로도 난잡하게 생활하는 건, 거의 예고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2. 나태에 대한 고해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는 일련의 과정에서 카일은 본인이 원시인이 된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안에서도 식사를 할 때는 어찌저찌 옷을 걸치기는 했었으나, 완전히 옷을 다 갖춰 입은 뒤 신발을 신은 채로 흙바닥을 밟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원시와 본능의 세계에서 문명 속으로 단박에 끌어올려지는 듯한 느낌은 미약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팔을 감싸는 소매와 딱딱한 신발 굽의 느낌이 끊임없이 어색함을 상기시켰다. 카일의 단독 외출에 벤은 불만스러운 듯 낮게 우짖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건강 악화라고 핑계를 대는 데도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회신이 아주 강력한 명령을 담고 있던 탓이었다.
건강이 악화된 것은 분명 집회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고 신앙심이 약해져서이니, 사랑하는 애완동물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다시 그와 힘내서 산책을 하고 싶다면 어서 장로님을 만나 축성 기도를 드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아들의 건강을 매우 염려하고 있다는 뜻을 담아 대략 한 문단 정도 더 덧붙인 정성스러운 편지였지만 카일의 눈에는 벤에 대한 내용들만 들어찼다.
혹시 아버지께서 뜸해진 편지와 늑대에 관한 잦은 언급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것은 아닐까?
집회에 가는 길 내내 카일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생각에 젖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여유가 없었다. 벤에 대한 이야기를 애초에 적지 말았어야 했었나 하는 후회부터 장로님께 그동안의 불참에 대하여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따위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팠다고 하면 그만이긴 했다. 실제로 아파서 몇 달간 집회에 불참한 적도 있었고, 장로님은 언제나 인자하게 눈감아 주시는 편이었기에 눈 딱 감고 거짓말을 하면 모든 게 순조로울 만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일은 계속해서 고뇌했다. 이미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버렸다는 생각에 속이 날마다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애초에 거짓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처음으로 거짓말을 배운다. 그러나 카일의 경우,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몸이 아픈 탓이라고 둘러대면 아무도 추궁하지 않았다. 침대 밖을 벗어나 산책 따위를 하는 일도 최근 들어서 가능해진 일이었기 때문에 누워서 지내던 동안에는 이렇다 할 실수를 저지를 기회조차 없었다. 남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은 흔히 아이들이 거짓말을 배우는 두 번째 이유였다. 그렇지만 카일의 경우 구태여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모든 관심을 받을 수 있었고, 주위의 사람들은 항상 염려하거나 따뜻한 말을 건넸었다.
벤과 저질러버린 일들을 숨기고 집회에 나가지 않고 몸을 섞으며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아팠었다고 핑계를 대기엔 양심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하인들에게는 엉겁결에 숨기게 되었다 해도, 이번 상대는 장로였다. 장로의 매서운 눈빛이 미간부터 가슴팍을 관통한다고 상상하니 벌써부터 등판이 따끔거리는 듯했다.
단지 늑대와 교접했다는 사실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다른 이들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카일은 그것의 심각성을 알기에는 무지한 상태였다. 단지, 살면서 그 어떤 것에도 그렇게 자신을 잊고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깊이 빠져 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고 겁을 먹은 것이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중독되다시피 탐닉한 경험은 전무했다. 스스로를 망각한 채 행위에 몰입하여 방종에 가까운 행태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어떤 면에서 충격적일 정도였다.
몸이 아파 활동 반경이 줄어들고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곧 어른들에게 순종적인 아이로 비춰지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다들 카일을 불쌍히 여겼으며 참 착하고 바른 아이라고 여겨왔다. 누워 있느라 도무지 사고를 칠 겨를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규율을 내재화한 아이가 처음으로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내키는 대로 해버리는 방탕한 생활을 경험한 것이었다. 무언가 안에서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감각이 연일 이어졌고, 카일은 자신이 얌전하고 금욕적인 이미지를 더는 고수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원래 어른이 되려면 많은 것들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하지만 카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늦은 성장이 아니라 명백한 타락이었다.
음란함이 무엇인지 알기도 이전에 야릇한 감각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그것에 몰두하며 더한 자극을 갈구했다. 희미했던 본능이 벤에 의해 되살아나는 중이었다. 몸을 무너뜨릴 정도로 지독했던 호르몬의 교란은 상반된 존재로 인해 주린 배를 채운 아귀처럼 흔적도 없이 잠잠해지게 되었다.
지금 카일의 얼굴은 약간 피곤하고 수척한 사람처럼 보였다. 사유는 뻔했다. 수면 부족이었다. 그러나 평소 병색이 완연하던 것에 비한다면 아주 건강해 보이고 생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카일은 불꽃처럼 빨간 머리를 창에 기댄 채 빠르게 바깥을 스쳐 지나가는 수풀들로 시선을 옮겼다. 규칙적으로 진동하는 모터 엔진의 소음은 벤의 그르릉대는 소리와 유사하게 들렸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차가 굴러가면서 덜컹, 하고 차체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시트에 기대고 있는 허리와 엉덩이를 따라 고스란히 지끈거림이 올라오면서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몸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피스톤질과 비슷했지만 살덩어리를 품고 있지 않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집회에 가는 길. 유일하게 현대 문명이 허락된 시간이었다. 산길을 따라 별장에서 마을로 차를 타고 내려가는 것. 카일은 문명의 결정체인 자동차 안에 앉아 원초의 상징인 벤에 대해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정확히는, 그와 오늘 새벽까지 교미했던 것을 떠올려버렸다. 몸이 달아오를 듯 말듯 했다. 차체가 흔들릴 때마다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구멍을 꽉 조이며 괜스레 헛헛함을 느끼고 허벅지를 움찔댔다. 옆에 동행한 하인들이 알지 못하게 엉덩이를 차 시트에 비비며 교미하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구멍에 손가락이라도 넣고 허전함을 달래길 원했다. 카일은 그대로 눈을 감고 어둠에 몸을 던졌다. 금빛 눈동자가 속눈썹 아래로 잠기는 모습을 보며, 하인들은 그가 아침잠을 이기지 못한 것이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차에 타고 있던 그 어느 누구도 카일이 난잡한 섹스에 대한 망상을 하며 자위하고 싶다고, 나아가 거대한 개과 동물의 성기로 육욕을 달래길 원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카일은 언제나 보호해야 할, 주인 어르신의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 도련님일 뿐이었다. 모두 신실한 신성회의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겨우 이 정도 거리를 이동하는 데도 벅차서 눈을 감는 도련님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건강을 기원했다.
동상이몽이었다.
음몽과 염원은 교차점 없이 산길을 따라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함께 흘러 지나가버렸다. 차가 멈추는 것을 느낀 카일은 눈을 떴다. 웅성거리는 소음 하나 없이 조용한 걸 보니 사람들이 전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집회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하인들은 서둘러 차 문을 열어주고 조용히 뒤쪽에 자리 잡자고 속닥이며 집회실의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카일이 마주한 것은 수십 개의 뒤통수들이었다. 아무도 문 열리는 소음에 뒤를 쳐다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수십 쌍의 눈동자들이 응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꽤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며 맨 뒷줄에 앉았다.
장로님.
장로의 설교 또한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마치, 카일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은 애초부터 이 공간에 울려 퍼진 적이 없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봤는데도 바로 엊그제 만났던 것과 같은 친숙함이 느껴졌다. 중간에 들어와서 그가 무엇에 대해 열띤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카일은 사람들이 함께 박수칠 때 박수치고 기도할 때 기도했다. 장로와는 확실히 눈이 마주쳤다.
그는 옅은 푸른 눈동자를 소유한 건장한 사내였다. 키는 꽤 큰 편이었고, 눈에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면 큼지막하고 흰 손이었다. 손을 뻗어 이런저런 제스처를 취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검은 의복 덕분에 희멀건 얼굴과 손이 유독 눈에 밟혔다. 그를 마주하지 않고 장로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한다면 바로 특유의 눈매와 손이 떠오를 정도였다. 어두운 곳에서 보면 푸른빛에 가깝지만 빛을 받으면 회백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였다. 그가 서 있는 교단은 볕이 군데군데 들어오게끔 설계되어서인지, 긴 시간 동안 설교를 할 때 햇빛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면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그 빛나는 눈동자가 신도들을 바로 보게 되어 있었다.
모두 그의 눈동자 속에 진리가 담겨있다고 믿었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밝게 빛나는 눈 앞에서 감히 거짓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설교가 이어지는 동안, 카일은 불안한 듯 다리를 꼬고 발을 수시로 움직여가며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중간부터라도 잘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긴 한데, 그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했을 뿐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 설교가 조금 졸립거나 집회실이 추워서 집중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느낀 적은 있어도, 이렇게 붕 떠버린 것처럼 집단과 유리된 감각은 처음이었다. 카일은 갑자기 사람들로 들어찬 공간 속에서 홀로 남겨진 듯한 충격을 받았다. 불안감이 엄습했고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역시 게으름을 피워서 벌을 받은 거야. 바보가…, 된 걸지도 몰라.
진즉에 고해하러 왔어야 했다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감히 거짓을 고하고 집회 불참에 대하여 변명하려 했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고 잘못된 존재처럼 느껴졌다. 자나 깨나 섹스밖에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 그런 짓밖에 하지 않는다면 바보가 아니고 뭐겠는가. 벤이랑 뒤엉켜 구르는 동안에 글 한 자라도 읽은 적이 있던가? 아마도 책상 위에 있는 모든 사물들, 약통과 책을 포함한 물건 전체에 뽀얗게 먼지가 앉았을 거라고 속으로 탄식했다. 교리 공부까진 아니더라도, 집회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었는지 정도는 하인들에게 물었어야 한다고 반성하며 카일은 양손을 마주잡고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이 기도가 끝나는 대로 당장 장로님을 찾아 뵈어 나태하고 엉망이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축성을 부탁드리고 싶었다.
“다들, 눈을 감고 생각하십시오. 이번 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을.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일을. 즐거움은 곧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이요, 고난은 곧 자질에 대한 시험입니다.”
기나긴 설교는 알아듣지 못했으나 인자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흘려보낸 마지막 문장만큼은 똑똑히 귀에 집어넣었다. 카일은 눈을 꼭 감고 즐거웠던 일에 대하여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밑바닥부터 끌어모으려고 시도했다.
즐거웠던….
왜 장로님은 하필 이번 주라고 말한 걸까? 이번 주에 한 일이라곤 방에서 헐벗겨진 채 묵직한 늑대 자지에 꿰뚫리는 일뿐이었는데.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선명하게 지난날들이 그려졌다. 그간 살면서 어떠한 영상 매체도 마주하지 않고 글만 읽으면서 장면을 그리는 것이 버릇이 된 탓인지, 당장 늑대의 것이 눈앞에 들이밀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조용한 와중에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카일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계속 기도했다.
감사, 감사했었고….
무엇이? 책 한 자 읽지 않고 늑대와 교미한 일주일이? 이것이 정녕 주님께서 바라신 일이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카일은 더는 기도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가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고, 하반신은 뻐근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쯤이라면, 벤이 몸을 벌리고 들어와 추삽질하면서 뺨을 길게 핥아줄 시간이었다. 차 안에서 느꼈던 헛헛함이 더 커져서 허기가 진 것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한 주림으로 발전했다. 카일은 맞잡은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성기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어느새 상상 속의 자신은 나체였다. 모두가 눈을 감고 기도하는 와중에 혼자서만 알몸으로 집회실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환상을 위해 집중하고 있었고, 카일은 그 사이에서 홀로 눈을 뜬 채 주변을 곁눈질했다. 정적을 깨고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카일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오후의 밝은 햇빛이 어두컴컴한 집회 현장 안으로 길게 늘어지며 스며들어오는 가운데, 기다랗고 검은 그림자가 집회실 입구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다. 벤이었다. 자동차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소리는 바랐던 대로 늑대가 내는 그르렁거림이었다. 집회실에 본인이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사람들은 뒤쪽의 소음에 대하여 신경 쓰지 않았다. 벤은 천천히 타박거리는 특유의 발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대번에 카일이 앉아있는 곳을 찾아낸 그는 이런 곳에서 뭐 하고 있냐는 듯 불만 섞인 울음소리를 내며 코끝으로 허리를 간지럽혔다.
“간지러워, 벤, 잠깐…!”
사람들이 늑대를 보면 혼비백산할 거라 생각한 카일은 다급하게 그의 머리를 밀며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속닥거렸다. 집회실의 침묵을 조성하는 이들 가운데 자신을 제외한 단 한 사람이 눈을 뜨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자각한 카일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장로가 빛나는 회백색의 눈동자로 말없이 자신이 앉아있는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장로에게 무어라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떠들 수도 없었기 때문에 카일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란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꽤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실제로 발가벗겨진 몸을 장로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심장을 뱉어낼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벤은 막무가내였다. 두꺼운 털덩이가 등과 허리를 짓눌렀다. 엉덩이에 닿는 뜨끈뜨끈하고 미끈거리는 것의 정체는 익히 아는 그것이었다. 벤은 사람들이 이토록 빼곡히 들어앉은 장소에서 발정해버리고 말았다. 안 된다고 만류하는 소리가 사람들을 기도로부터 깨울까 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방금 전까지 팔을 올리고 기도하던 곳에 엎어진 채 구멍 입구를 꾹 누르고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받아냈다.
“흐…, 아, 큿….”
조금 있으면 기도 시간이 끝날 텐데, 다들 눈을 뜬 순간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인간에게 교미를 시도하는 장면을 볼 텐데. 그래선 안 된다고 비명처럼 머릿속에서 걱정이 메아리 치는 것과는 반대로, 성기는 삽입당하자마자 뻣뻣하게 발기하여 허공의 찬 공기를 가로질렀다. 가쁘게 숨을 몰아쉴수록 기도실 특유의 습하고 서늘한 공기가 폐에 가득 찼다. 오로지 장로 혼자서 자신과 벤의 교미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몸을 더 긴장 상태로 밀어 넣었다.
제아무리 긴장해서 몸에 힘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연일 교미 말고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던 몸은 너무도 익숙하게 육봉을 몸에 받아들이고 기쁜 듯 그것을 조여댔다. 차를 타고 내려올 때부터 덜컹거리는 흔들림을 고대하지 않았던가? 엎드린 채 몸을 지지하고 있는 곳이 덜컹덜컹 흔들릴 정도로 맹렬한 피스톤질이 이어졌다. 격렬한 교접과는 별개로 겉으로 보기엔 단지 시커먼 털가죽에 사람이 깔린 것처럼 보였다. 늑대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적나라하게 살덩이를 파묻고 있는 장면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육중한 덩치를 가진 생물이 체구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하반신만을 움직여가며 피스톤질 하는 모양새는 그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음란한 일을 상상하도록 부추겼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삽입당해도 이렇게 기분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고 생각해버린 카일은 소리를 참지 못하고 내질러 버렸다.
“형제님.”
단정한 목소리와 함께 따뜻한 온기가 어깨를 감쌌다. 만일 목소리만 듣는다면, 분명 셔츠의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그고 흐트러진 구석 하나 없이 깔끔히 차려입은 건장하고 금욕적인 남성을 상상하게 될 법한 울림이었다. 카일은 화들짝 놀라 몸을 떨며 균형을 잃고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기도하는 동안,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꾸었던 야한 꿈의 단편적인 장면이 생생했다. 대개 꿈은 꾸고 일어나면 꿨던 꿈의 분위기나 중요한 부분만 흐릿하게 기억날 뿐이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모두가 있는 공간에서 교미하던 순간과 냉정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장로의 시선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하반신에 피가 쏠려있는 상태였다. 카일은 몸이 기울어지면서 부딪힌 이마를 문지를 새도 없이 부풀어버린 앞쪽에 손을 올려 가리며 장로를 살폈다.
“장로님…. 안 그래도 제가, 찾아뵈려고 했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님들께는 잠깐 대면을 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거리가… 많았나 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모두 기도를 끝마치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는 마무리 축사까지도 듣고 자리를 뜬 것이었다. 카일은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끼는 한편, 꿈에서 봤던 것과 달리 온화한 푸른빛을 띠고 있는 장로의 눈을 바라보며 안도했다. 그는 전혀 추궁하는 기색이 없었다. 겸연쩍게 웃는 것도 잠시, 안도감을 주는 그의 온화한 얼굴에 자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물밀듯이 솟아오르는 죄책감과 불안함, 신경을 자극하는 모든 것들을 그를 통해 가라앉힐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카일은 갈라진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 드릴 말씀이 많아요. 그렇지만, 오늘 제가 집회에 늦는 바람에….”
“우리 형제님은 무슨 고민이 많은 걸까요? 수심이 깊어 보입니다.”
장로는 유연한 동작으로 일어서라는 듯 손짓했다. 그는 풍채가 꽤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서면 깡마른 카일은 더욱 왜소하고 어딘가 결함이 있어 보이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는 원래 비범한 사내였으므로. 근근이 농산물을 팔아 먹고살던 이 촌동네에 주마다 외지인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신성회의 장로로서 점점 명성을 떨치는 그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는 마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마도 맑은 하늘 아래 밀밭 근처에서 그와 마주친다면 그 또한 신의 사랑을 받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동등한 피조물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장로는 여우처럼 명민하고 교활한 사내였다. 자신의 위세를 한껏 드러내고 권위를 펼칠 수 있는 집회실과 신성회의 건물들 이외의 장소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그는 언제나 연단 위에 서 있는 존재였다. 즉, 모든 사람들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신자들을 내려보는 인물이었다. 일부러 의도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일 정도로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동시에 주도면밀한 구석이 있는 작자인 셈이었다.
장로는 고해소 옆의 사제관으로 카일을 인도하면서 그의 얼굴뿐만 아니라 몸을 꼼꼼히 살폈다. 구부정한 자세로 뒤따라오는 카일은 하반신의 중심부를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꼭, 소변이 마려운 사람처럼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였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그가 집회실에 등장했을 때 장로는 꽤 놀랐다.
사실, 카일은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신도였다. 그의 아버지가 상당한 액수의 돈을 헌금했고, 언제나 아들을 잘 보살펴 달라며 지극정성으로 연락하긴 했지만 정작 그 아들은 전혀 유별나지 않은 인물이었다. ‘유약하다’라는 한 단어로 그를 정의할 수 있을 만큼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인상의 소유자였다. 물론 병색이 혈통을 완전히 뒤덮지는 못했다. 그의 부친처럼 아들 역시 불타는 듯한 빨간 머리의 소유자였고, 대부분의 빨간 머리들이 주근깨가 박힌 피부에 초록 눈동자인 것에 비해 유리처럼 매끈하고 잡티 없는 흰 피부와 짙은 호박색 눈동자가 특징적이었다.
목뼈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덜미 부근을 보고 있으면 그가 굉장히 마르고 수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목과 손가락 마디를 봐도 마찬가지였다. 병자를 마주한다면 대개 죽음과 맞닿은 모습으로부터 본능적인 불쾌감을 느끼겠지만 카일은 조금 달랐다. 무욕해 보이는 그 얼굴은 은근히 퇴폐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 병상에 누워있기만 한 도련님이 세속적인 욕망에 대하여 알 턱이 없었으나, 바로 그 사실이 보는 이로 하여금 구미가 당기게 만들었다. 정말로 손대기만 해도 부스러질 것처럼 오늘내일하는 병자가 아니었다면 그를 꼭 품어보리라는 음험한 마음을 품게 만들 정도였다.
장로는, 차츰 병세가 호전되는 카일을 보며 언젠가는 그를 범하고 싶다는 추잡한 생각을 한편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 조그마한 동네에서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금방이었지만, 반대로 권위를 이용한다면 그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게 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게다가 상대는 그 누구와도 연이 닿아 있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였다. 수많은 하인들이 그를 보필하고 있지만 그들과 카일은 일종의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카일을 돌보는 것이 그들의 주된 업무였고 아무도 이 도련님과 인간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정신적으로 교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장로는 일찍이 파악했다. 그런 그가 카일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 완전히 그를 사로잡았다고, 그와 자신 간에는 어떠한 비밀도 없이 허심탄회한 사이이며 그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믿을 때였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가 집회에 참석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열병이 올라서 결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었으나,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도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장로는 아직은 카일이 죽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실은, 언제가 됐든 죽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전개였다. 아이가 살아 있어야 가주 에반은 신의 은총에 감사하며 막대한 헌금을 하고 이 실세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줄 터였다. 아주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중 카일의 존재를 모르는 이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네의 코흘리개 꼬맹이조차도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별장에 살고 있는 도련님이 몸이 아프지만 신의 은덕을 입어 예고된 삶보다 훨씬 길게 살아가고 있다는 기적적인 일화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로는 꾸준히 저택의 하인들에게 카일의 안부를 물었다. 하인들도 주치의는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부쩍 잠이 늘었다는 대답을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집회실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장로는 놀란 기색을 숨기고 천연덕스럽게 설교를 이어가며 카일을 주시했다. 매일 도련님을 보필하는 하인들은 무감각하게 느낄지 몰라도, 장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카일은 아주 미세하지만 분위기가 변한 데다 키도 조금 자란 것처럼 보였다. 뒷줄에 앉을 때 다른 신도들에 모습이 가려지기 일쑤였는데 오늘만큼은 그가 기도하는 모습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뺨도 발그레하고 살이 붙은 게 조금 더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앓았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항상 신경 써주는 듯한 좋은 인상을 남기는 동시에, 관리대상으로서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인들이 말했던 대로 카일은 기도를 하면서 졸고 있었다. 몸은 더 건강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데 반해 졸음을 느낀다는 건, 설교에 흥미를 잃었거나 아니면 겉모습이랑 관계없이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기도 시간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눈을 감고 얼굴을 살짝 찡그린 청년을 응시하면서, 장로는 하인들에게 대기하고 있어달라고 일러두었다. 아마도 카일이 지각하지 않고 일찍 왔다면 고해소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테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사제관이 조금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터였다.
장로는 평소 신도들에게 자주 죄를 털어놓고 반성하는 것을 권장했다. 보속을 내려주는 것이 조금 성가신 일이긴 했지만, 신도들을 알고 휘두르려면 그들의 신뢰를 얻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털어놓도록 만드는 게 중요했다. 카일은 신도들 중 고해하는 횟수가 가장 적은 축에 속했다. 기껏해야 조금 늦게 잤다거나 식단을 어기고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무시했다 정도의 가벼운 죄를 토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가 작은 늑대를 숲에서 주웠다는 사실도 직접 들은 바가 있었다. 그 늑대가 어찌 되었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꽤 옛날에 말했었으니 지금쯤이면 엄청 커져서 내보냈을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시름시름 앓게 된 이유가 늑대와 관련이 있는 걸까? 장로는 속으로 질문거리를 생각해 두며 카일을 앉혔다.
“공개된 장소에서 말하기 곤란한 내용인 것이지요? 거기 앉으십시오. 차라도 내드릴 테니.”
“그, 그렇긴 한데…. 차까지 주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마침내 도련님의 비밀에 대해 들을 시간이 다가왔다. 카일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장로와 단둘이 아늑하기까지 한 공간에 들어오니 한층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주님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무엇이든 말해 보십시오.”
“장로님…, 저는….”
카일은 말을 삼켰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너무도 막막했다. 장로는 카일이 먼저 말을 하기 전까지 어서 말하라고 다그치거나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잠잠히 손을 맞잡고 있을 뿐이었다. 카일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결심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많이 이상한 이야기지만 믿어 주셔야 해요. 거짓말… 아니니까요.”
카일은 자신이 털어놓을 이야기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알지 못했다. 사실상 이 발설의 목적은 늑대와 노닥거리느라 방종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아주 잠깐이지만 장로에게도 거짓말을 하려 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함이었다. 혹여라도 장로가 늑대를 악한 것으로 규정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러나 혼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하인들이 언제 그를 내보내라고 할지 걱정하기보다는 확실히 말하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상담을 부탁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제가, 이전에 늑대를 데려왔다고 말한 걸 기억 하실 겁니다…. 이름은 벤인데요.”
장로는 듣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늑대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사실 정말 모르고 데려왔어요. 작은 강아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점점 크게 자라다 보니 이제는 저보다 훨씬 큰데. 이쯤 오는 거 같아요. 지금은.”
카일은 손으로 벤의 크기를 가늠해 보이며 말했다. 어쩐지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점차 내용을 조리 있게 담아낼 수 있었다.
“아마 몇 달 전이었을 텐데…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질 않아요. 보통의 개들보다 조금 더 커졌을 때 그… 저한테 대고 거기를 문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설명하면서 카일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누군가에게 마운팅에 대해 말하는 것도 처음이었거니와, 그 장면이 상상되자마자 가라앉아 가던 하반신에 슬쩍 간지러움이 타고 올라온 것이었다. 장로는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가 이상치 않게 여긴다는 것을 확인한 카일은 조금 더 대담해지기로 했다.
“저는…. 무서웠어요. 벤이 성숙해지면,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할까 봐요. 늑대를 집 안에서 키우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인 걸 알지만, 그렇다고 밖에 내보내 버리면 그것도…. 벤은 원래 야생동물이니까 그편이 더 행복할지도 몰라요. 저도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애가 계속 옆에 있었으면 했거든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불안의 고백이었다. 고집을 피워 벤을 바깥에 내보내지 않은 것. 따지고 보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카일은 하인들에게 억지를 부렸던 것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벤은 사람 손을 타서 야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면서도, 밖에 풀어 뒀다가는 아직 남아 있는 야생의 본능으로 인해 밤에 다른 집 가축을 건드릴지 모른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았었다. 물론 주치의로부터 털에 알레르기가 없다는 검진 결과를 받았고, 청소만 제때 잘한다면, 그리고 늑대의 호기심과 이갈이 정도만 주의하면 집에서도 기를 수 있을 거란 수의사의 자문도 받았다고 변명처럼 덧붙였다. 동거의 경위를 이야기하는 동안 장로는 아무런 의사도 표하지 않았다. 이미 하인들이 도련님의 별난 애완동물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계속 제 방에서 같이 자고, 산책도 가고 그랬는데…. 물론 어릴 때는 이것저것 많이 물어뜯었지만 한 번도 저를 물어뜯거나 공격하진 않았고요. 그러면서 계속 선 것을 저한테 문질러댔어요. 그것만 빼면 정말 착한 아이였으니까 하게 뒀고, 우리는 정말 잘 지냈어요. 그러다가…, 그걸, 저한테 넣었어요.”
카일은 마침내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에 한발 다가갔다. 확실히 그 말을 꺼내자마자 장로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담담히 들어주려고 해도 꽤나 충격을 줄 만한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당장 ‘짐승에게 강간을 당한 것인가?’라고 물어봐야 했으나, 우선은 더 들어보기로 결정하고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걸 넣었… 는데…. 매일, 그랬거든요. 그래서 기도도 못 하고 집회에도 못 나오고. 잘못했습니다. 사실, 집회에 참석하기 전까지도…, 많이 생각했어요. 사실대로 말할지 말지요. 그런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카일은 재빨리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뛴 것도 아니고 벤이랑 몸을 섞는 것도 아닌데 겨우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장로는 카일의 얼굴을 통해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내려 하며 질문했다.
“…매일, 그랬군요. 너무 두루뭉술하게 설명한 것 같은데,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실지요.”
카일은 적어도 그 늑대를 원망하는 어조로 말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성적인 결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를뿐더러, 그게 이종 간에 행해지는 게 얼마나 금기시되는지도 명확히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카일은 집회에 나오지 못한 것과 거짓의 유혹에 흔들린 것을 반성한다고 했을 뿐, 늑대와 교접한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장로는 고민스러워졌다. 하필이면 가장 큰 돈을 헌금하고 있는 집의 도련님이 늑대와 수간을 즐기는 취미를 갖고 있다니. 내심 그를 범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작 동물 따위가 먼저 선수 쳤다는 것도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이전에 비해 은근히 색기를 흘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나? 하는 물음이 속에서 떠올랐다. 지금의 카일은 전보다 훨씬 생기 있게 보였고, 붉어진 눈가나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워하는 태도에서 남아 있는 순수함마저 짓밟고 끌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끔 하였다.
그밖에도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보통 늑대는 인간이 억지로 길들이지 않는 한 인간을 교미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람을 공격하면 공격했지 범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제아무리 강아지처럼 소중히 키웠다 한들, 제 주인에게 성욕을 품게 된 경위 자체가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수간을 취미 삼는 사람들이 동물을 훈련시켜 사람에게 성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시발점이었다는 사례는 들어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장로는 수간에 대한 흥미로움을 드러내기 이전에, 감히 음란한 짓을 하느라 집회에 나오지 않은 것은 꽤 벌을 줄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악의적인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늑대랑 관계했습니까?”
“그…,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 지금부터라도 세어 볼까요?”
장로는 가학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몇 번이나 관계했냐고 물어보는 말에 카일은 당황하다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관계 횟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 번도 넘게 했으니, 일주일만 해도 20번이 넘어간다고 계산할 수 있었으나 정확히 얼마만큼 몸을 굴렸는지는 추산하지 못했다. 장로는 그를 경멸하거나 못되게 굴면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줄 생각은 없었다. 다른 신도라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카일만큼은 예외였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그에게 죄의식을 자극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었을 뿐더러, 재미를 볼 기회를 놓치는 것과 동일했다.
“정확하지 않군요. 혹시…, 반성할 마음이 없으신 거 아닙니까?”
“아니, 그건 아닙니다…. 정말로 반성하고 있어요.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언제까지 하인들한테 비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장로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하지만, 어떤 조언을 해드리거나 아니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많은 걸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늑대의 자지는 얼마나 컸던가요?”
“예…? 자지요…?”
“늑대의 생식기 말입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카일은 커다란 호박색 눈동자를 깜빡였다. 그것이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몰라도, 장로가 물어보는 것이니 성실히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벤의 성기 크기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카일은 검지 끝부터 팔목과 팔꿈치 한중간 되는 지점까지 되는 것 같다고 어림잡았다. 눈대중으로 봐도 대충 30cm 언저리쯤 되는 것 같은 길이였다. 그만한 것을 이 작고 마른 몸으로 품어냈다고? 하며 속으로 장로는 불경한 상상을 했다. 자지라는 천박한 단어도 모르는 주제에, 거근에 뚫려 밤낮 구분 없이 뒹굴었다고 생각하니 상대에 대한 정욕이 들끓기 시작해서 희롱하지 않고는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질문은 한층 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 카일에게 파고들었다.
“굵기는?”
“아마… 굵기는 이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그걸 손으로 잡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남에게 물건의 굵기를 설명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설명 방식은 조악했다. 그 점이 더욱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카일은 알지 못했다. 장로는 역시 이걸로는 안 되겠다는 투의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불분명하군요. 늑대와 교합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 가능하면 자세히 설명하거나 직접 보여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여드려야 하나요…? 그렇지만….”
“압니다. 쉽지 않은 일이란 것 말입니다.”
“여기엔, 벤도 없는데 어떻게요?”
“…방법이 없지는 않죠, 그 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하, 장로님, 어떡하죠? 사실 자신이 없어요. 지금 이렇게 반성하고 있고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는 말하지만, 또 그러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요….”
“왜 자신이 없습니까?”
“모르겠어요,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벤이랑 그 짓을 하고 있어요. 그만해야지, 오늘은 꼭 책을 읽어야지 하는데도 하고 있어요. 그만둘 수가 없어요…!”
카일의 눈동자에 눈물이 비쳤다. 불안감이 마침내 눈물의 형태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장로는 그가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쾌락을 탐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으나 조용히 되물었다.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늑대가 강요하던가요?”
“그… 그렇긴 한데…. 사실, 제가 완강하게 거절을 하지 못하겠어요. 하인들한테 말하면, 누군가는 벤을 사살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제 건강에 해가 된다고…. 그건 원치 않아요. 단지…, 단지 조금 적당히 하고 싶은 것뿐인데…. 벤은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까요. 음, 아니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걸 수도 있지만.”
이것저것 변명을 덧붙이는 말 속에서 장로는 날카롭게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했다.
“적당히 하고 싶다라…. 그럼 늑대랑 교미하는 게 좋다 이겁니까?”
“그…. 그런 것 같아요.”
카일은 머리카락 색과 피부가 구분 가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답했다. 솔직하게 대답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부끄럽고 아랫배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감각이 올라오는지 알 수 없었다. 실은, 아까 벤의 성기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부터 엉덩이 구멍이 조금 허전하다고 느끼고 있던 차였다. 계속해서 음란한 감각에 취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쾌락을 바라고 있단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결코 떳떳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얼마나 좋은지 고백하십시오.”
“얼마나요…?”
당혹스러운 요구는 계속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비교 우위를 두란 말일까? 카일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장로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형제님. 이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습니다…. 지금, 마음속에서 혼란이 일고 있지 않습니까? 그 무엇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한 채 덧붙이기에 급급하신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어떤 조언도 드릴 수 없겠군요.”
“그건…. 맞아요. 죄송합니다. 저도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형제님께 필요한 건 무엇이 잘못인지 명확히 알고, 자신의 의지와 기호를 파악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인 것 같으니 특별한…, 특별한 시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 대해 알 만한, 그런 시험 말입니다.”
“장로님….”
엄한 말투였지만 추궁하는 대신, 나아갈 길을 비교적 정확하게 제시해주는 장로에게 카일은 신뢰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시험이라는 말의 앞에 붙는 ‘특별한’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약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다시 계신 곳으로 돌아가기 전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고 앞으로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로부터 마음의 확신이 든다면, 돌아가서 그 늑대를 제게 데리고 와주십시오.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으니까요.”
“벤을요…?”
카일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장로는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빠르게 덧붙였다.
“예. 흔히 검은 늑대라고 하면 어둡고 악한 것, 가축을 물어 죽이는 악마의 권속쯤이라고 여겨질 테지만…. 어쩐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를 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염려 마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은 이제 무엇을 하면 되는 건가요?”
“우선은….”
장로는 들어올 만한 누군가가 있는지, 문은 제대로 걸렸는지 빠르게 확인했다. 사제관에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이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안전했다. 그의 회백색 눈동자가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그는 별거 아니란 듯, 매우 건조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말을 했다.
“옷을 벗으십시오.”
“옷을요…?”
“형제님은… 한 번이라도 스스로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신 적이 있습니까? 자신에 대하여 알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나요?”
“아, 아뇨….”
“이것이 제가 드리는 시험입니다. 반성하기 전에 당신에 대해 먼저 알아내십시오.”
카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다가도 워낙 장로가 강경히 나오는 탓에 웃옷의 단추를 풀었다. 아마도 그가 다른 날에 같은 요구를 했다면 이상스레 여겼겠지만, 오늘은 그것을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물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물가의 잔가지라도 붙잡으며 기어 올라가려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판단을 내렸다. 이미 직전의 음몽에서 그의 앞에서 헐벗고 있었다. 꿈속에서는 벗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정작 그 일이 현실로 일어나려 하자 놀라울 만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간 대부분의 시간을 헐벗은 채 지냈기 때문에 의복을 갑갑하게 느끼고 있던 것도 공공장소에서의 탈의를 어느 정도 부추겼다.
순간 사제관 안에는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아 툭, 하고 옷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적나라하게 들렸다. 장로는 이제 어떻게 할지 명령을 내려달라는 듯, 바지를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을 보고 마저 벗으라고 고갯짓했다. 척추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마른 몸이 드러났다. 일주일가량 움직이기는커녕 섹스하는 일을 제외하면 먹어대기만 했기 때문에 전보다는 살집이 조금 올랐으나 그래도 여전히 앙상해 보이는 몸이었다. 이렇게 마르고 약해 보이는 몸으로 30cm에 달하는 커다란 것을 집어삼켰다니, 장로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카일을 발가벗긴 장로는 그를 한 켠에 세워둔 전신 거울 앞에 서도록 했다. 좁은 전신 거울은 햇빛에 그을린 흔적 하나 없는 깨끗한 몸을 바로 비추었다.
“어디로 늑대와 교합했습니까?”
“그, 그야…. 엉덩이 쪽의 구멍으로요.”
카일은 말을 약간 더듬었다. 배출만을 위한 곳에 내리 삽입을 하고 있었다고 밝히는 게 영 껄끄러웠다. 슬쩍 장로의 얼굴을 살폈으나, 그는 여전히 백지처럼 아무런 색도 띠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의자를 끌어온 그는 카일이 벽 한쪽에 구비된 전신 거울을 마주 보고 나체로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샤워할 때 세면대의 거울을 통해 쇄골 부근까지만 보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럼 그 구멍을 잘 관찰하셔야겠군요. 형제님의 욕망이 시작되는 곳일 테니. 다리를 벌리십시오.”
“이렇게요…?”
“더. 더 벌리십시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범해지던 곳이 드러났다. 희고 잡티 없는 피부 사이에 자리 잡은 애널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퍽 거만해 보일 만큼 다리를 벌리고 은밀한 곳을 훤히 드러내는 자세에 카일은 거울을 마주하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시선을 피하지 말고 거울을 바로 보십시오. 형제님은, 그 구멍에 늑대 좆을 받으면서 쾌락을 느꼈지 않습니까.”
“그…, 네.”
“기분이 좋았지요? 분명 형제님의 자지도 단단해졌을 텐데.”
“그렇습니다….”
“쾌락은, 기분 좋은 일이지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장로는 나무로 된 함을 가져와 열었다. 정교한 모양으로 세공된 함이었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전부 성기를 본뜬 것들이었다. 크기도, 굵기도, 모양도 다양한 것들이 일렬로 함 안에 나열되어 있었다. 왜 그런 것이 사제관에 있느냐 물어본다면, 본인이 저지른 음란함을 간언하고 속죄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해소가 철저히 익명을 보장한다고는 하나, 고정된 신도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결국 그들이 누구인지는 목소리를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약해진 틈에 부채질을 하면 곧 못 보일 꼴까지 보여가며 ‘착실한 신도’가 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제관에는 언제나 은밀한 물건들이 준비된 상태였다. 사제의 개인적인 공간이 주는, 밀폐된 장소 특유의 무겁지만 완벽히 사적인 공간이라는 분위기가 그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음란한 기구가 든 함은 이 집단이 종교의 탈을 쓴 사이비라는 증거였다.
카일의 경우는 그런 음탕한 신도들보다도 꼬드기기 쉬웠다. 그는 판단 기준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순진한 자였다. 아직 타인의 발기한 성기를 본 적이 없는 카일이었지만 세공된 것이 무엇을 본뜬 것인지는 눈치챌 수 있었다.
“이전에도 형제님처럼 자신의 성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던 사람들이 많이들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도 무탈히 해결되었으니, 지금은 내 말에 의심을 갖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장로는 함에 같이 들어 있던 콘돔을 뜯으며 물었다.
“이 중, 그 늑대의 자지와 가장 유사하게 생긴 것은 무엇입니까?”
“아마…, 이것 같아요. 그, 근데 아무것도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는데… 굳이 고르자면 이거요.”
카일이 고른 것은 길쭉한 모양의 모조 성기였다. 장로는 그것에 콘돔을 씌우고 카일에게 건넸다.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 카일은 적나라한 딜도의 생김새에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놓치거나 미끄러뜨리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밑동을 꽉 그러쥐었다.
“그럼…, 어떻게 구멍에 자지를 받았는지 보여주십시오.”
“이, 이걸로요?”
“예. 그것은 어차피 진짜 성기도 아니고, 제 허락하에 하는 일이니 죄의식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로는 친히 윤활용 젤까지 듬뿍 짜서 모형에 발라주었다. 벤이 달려들어서 박아주던 경험뿐이었기에 직접 삽입한다는 게 생소했지만, 크기가 그의 것보다는 작았다. 상대적으로 위압감이 덜했기 때문에 카일은 구멍에 딜도 끄트머리를 가져다 대고 꾹 눌렀다. 난잡한 교미의 성과가 빛을 발하는지, 딜도는 아무런 문제 없이 부드럽게 몸을 벌리고 미끄러져 들어갔다.
“읏….”
삽입당할 때마다 몸이 벌어지는 충격에 고개를 비틀고 배 깊은 곳부터 억눌린 소리를 진심으로 끌어내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벤의 것만큼은 아니어도,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닌 딜도였다. 그러나 카일은 그 큼지막한 것을 아무런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손잡이 부분만 남겨두고 끝까지 딜도를 집어넣고 나서 다음 지시를 받기 위해 장로를 돌아보았다. 장로는 거울을 통해 벌어진 다리 사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무도 쉽게 굵직한 몸체를 먹어 치우는 것을 보고 카일이 생각보다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장로는 쓰게 웃었다.
오메가는 오메가다, 이건가.
남성 오메가의 경우, 몸 내부에 알파만이 회임시킬 수 있는 생식기관이 자리 잡은 것에 비해 아이를 낳는 길은 오로지 한 곳뿐이었다. 흡사 닭과 비슷한 구조였기 때문에 남성 오메가를 닭에 빗대어 야유하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풍자 그림이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었다. 어쨌건 간에, 병상에 오래 있었고 성교육을 받지 않은 몸이라 해서 애널이 유연하지 않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장로는 바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그럼, 그것을 늑대가 했던 것처럼 움직여 보십시오.”
“움직이라니….”
못 해요, 라는 소리가 나올 뻔했다. 인간의 나약한 팔로 늑대의 허릿심을 재현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카일은 일단 시키는 대로 손을 움직였지만 몇 번 피스톤질을 하다가 사실대로 고백했다.
“안 될 것 같아요…. 벤만큼 할 수 없어요.”
괜히 굶주려 있던 곳을 자극한 꼴이 되어버렸다. 육봉을 먹어 치우는 데 익숙해져 있던 밀부는 충족감을 주지 못하는 모형에 불만스럽게 반응했다. 깊은 곳까지 단번에 찌르고 들어오면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충격적인 압박감을 선사해야 했는데 딜도는 턱없이 기준에 모자랐다. 분명 끝까지 다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반밖에 집어넣지 않은 애매한 감각에 카일은 불편함을 느꼈다. 겨우 흥분의 문턱에 닿을락 말락 하는 간지럽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그 증거로 성기는 아직까지 축 늘어져 있었다.
“흠….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장로는 다른 기구를 권해 주었다. 진동 기능도 있는 장난감이었지만 박아주는 기능은 없었기 때문에 직접 손을 놀려야 함은 여전했다. 박혀 있던 보잘것없는 딜도를 뽑아내자 벌어진 애널은 꿈뻑거리면서 빨리 제대로 된 것을 박아 주길 요구했다. 장로 앞에서 다 벗고 바이브레이터를 삽입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잊은 채 카일은 육욕을 달래기 위해 급히 물건을 집어넣었다. 크기가 더 크긴 했지만 여전히 몸 안을 자극하기엔 길이가 부족했다. 몇 번 쑤시곤 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려는 찰나였다. 장로는 바이브레이터의 스위치를 켤 것을 명령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웅웅거리는 진동이 몸 안에서 울려 퍼졌다.
“흐…, 흐으읏….”
안에서 덜덜거리며 진동하는 기구 덕에 카일은 움찔거리다가 허리를 들썩였다. 오르가즘에 가까워지느라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더 몸을 애타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거울 에 느낄 듯 말 듯한 애타는 감각 때문에 불만족스러워하는 표정과 꿈틀거리는 허벅지 안쪽 근육이 고스란히 비쳤다. 깊은 곳까지 자취를 감췄다가 질척거리는 윤활젤에 흠뻑 젖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바이브레이터의 모습도 선명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카일은 본인이 그렇게 큰 걸 넣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한편 이만한 크기로는 절대 기분 좋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학습해버렸다.
“아, 흐, 장로님…, 안 되겠어요, 제발, 아…!”
간질거리는 감각이 커지자 버티지 못하겠다고 토로하며 카일은 바이브레이터를 붙잡고 몸 안으로 푹푹 쑤셔 넣었다. 어떻게든 절정에 달하려고 애쓰며 점점 손을 빨리 놀렸다.
“흐읍, 하…, 아, 으…, 흐윽….”
최대한 세게, 깊은 곳으로 퍽, 찔러 넣어야만 조금 만족스러운 듯했다.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바이브레이터를 세게 붙잡고 스스로를 괴롭히는데도 좀처럼 발기조차 할 수 없었다. 카일은 결국 지친 나머지 덜덜 떨리는 것을 손에서 놔 버렸다. 이런 것들 따위로는 벤이 해줬던 것처럼 즐거워질 수 없음이 명백해진 것이었다.
“이런 도구보단 늑대가 훨씬 좋다는 것이군요.”
“그런 것…, 그런 것 같아요, 장로님, 너무 힘들어요….”
카일은 우는소리를 내며 안에서 제멋대로 진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장로는 혀를 차며 기구의 전원을 끄고 빼냈다. 다물리지 않는 애널은 게걸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몸의 빛깔과는 대비되게 짙은 빛을 띤 곳은 윤활젤로 축축하게 젖어, 당장이라도 박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로는 카일에게 품었던 성욕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혼자서 음란한 행동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를 함부로 덮치는 건 그래도 된다는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이전에 그의 몸을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열성 오메가들은 몸에 음모도 나지 않고 성적 능력도 충분치 않다고 익히 들어왔었다. 어린아이의 몸에서 팔다리만 길어지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대체로 열성 오메가들의 나신을 봤을 때 평범한 베타들의 감상은 흡사 속눈썹이 없는 눈을 보는 것 같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어딘가 이질감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당연히 카일의 몸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카일은 멀쩡히 음모가 자란, 평범한 남성의 몸이었다. 단지 몸 곳곳이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마른 것을 제외하면 충분히 일반적인 오메가로 보였다. 성기가 거대한 편까지는 아니었지만, 왜소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보통 사람이 쉬지 않고 섹스를 한다면 제아무리 튼튼한 사람이라도 금방 체력과 정력이 고갈되어 앓아눕게 될 터였다. 물론 카일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꽤 오랜 기간을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비실대는 몸으로 그 정력적인 늑대를 받아냈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딜도와 바이브레이터를 집어삼키다 못해 정욕에 불타올라 애걸하는 것을 보면 교미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한다면, 카일이 말한 늑대는 적어도 일반적인 늑대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겉으로는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단체인 만큼, 장로는 숱하게 많은 알파들과 오메가들을 만나왔었고 그들의 결합이 불안정한 호르몬 교란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파악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인류는 페로몬만을 채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알파와 오메가에게 작용하는 호르몬을 통제하는 건 기껏해야 발정을 조금 억제하는 것이 다였다. 의학적인 도움없이 호르몬 교란을 피하려면 본능대로 짝을 짓고 번식을 하면 그만이었다. 이른바 인간 버전 발정 스트레스였다. 필히 그 늑대는 알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장로는 원하는 대로 카일을 범해서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교단에서 그 늑대를 이용하는 쪽이 바람직할 거라 여겼다.
카일은 재능이 있었다. 그 늑대를 본다면 좀 더 상황이 확실해지겠지만, 오늘은 스스로가 얼마나 야한 몸을 가지고 있고 성욕이 대단한지를 자각시키는 게 최종적인 할 일이었다.
“형제님은…. 생각보다 욕망이 크시군요. 다른 쪽을 만지면서 몸을 달래보십시오. 그것이 늑대가 삽입했을 때랑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십시오.”
장로는 카일이 스스로의 가슴을 더듬도록 명령했다. 판판한 가슴팍을 더듬는 것에서 아무런 쾌락을 느끼지 못하던 카일은 유두 부근을 만지자 다른 곳보다 각별한 느낌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벤이 핥을 때는 워낙 넓은 범위를 무자비하게 핥아댔기 때문에 손가락이 주는 것만큼 섬세한 감각을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간질거리는 느낌으로는 불이 붙어버린 몸을 달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노팅으로 길들여진 몸은 내벽을 찢을 듯 안에서 부풀면서 정점을 누르고 들어오는 그 감각을 원했다.
“안 되겠군요. 형제님은…. 이곳을 거쳐 간 그 누구보다도 음심이 크다고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장로는 거울 앞에서 카일이 일어나도록 했다. 사제관 옆으로 통하는 다른 문을 열자, 창문 하나 없는 완전한 밀실이 이어졌다. 그곳에는 괴이하게 생긴 조형물이 여러 개 있었다. 눅눅하고 습한 공기가 흡사 고문실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장로는 문을 닫고 전등을 켰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방에 놓인 조형물이 선명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십자가의 모습과 닮아 있었으나 십자가보다는 훨씬 넓었다. 카일이 틀을 보고 십자가를 떠올린 것은, 정말로 양끝에 손목을 결박할 수 있을 것 같은 장치가 매달려 있는 탓이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 건가요?”
“마지막 시험입니다. 형제님의 성욕에 대하여 탐구하기 위한, 마지막이요. 누우십시오.”
장로는 카일에게 십자가 형틀처럼 보이는 곳 위에 누울 것을 명령했다. 언젠가 형님이 보내준 의학 관련 소재의 소설에서 수술대에 눕는 순간 빛이 번쩍이는 게 눈이 아팠다고 묘사되었던 부분이 떠올랐다. 흐릿한 전등 불빛이 이 순간만큼은 눈동자를 부술 것처럼 밝게만 느껴졌다. 십자가의 몸통 부분은 몸 전체를 누이고도 공간이 남을 만큼 넓었고, 허리춤이 오는 곳에는 또 다른 작은 팔걸이가 있어 흡사 성 베드로의 십자가와 보통 십자가를 합쳐 둔 것처럼 보였다. 카일은 장로가 시키는 대로 그 위에 누웠다. 손목 구속구를 보면서 불안함을 느꼈는데, 장로는 그것을 정말로 팔에 채우면서 심하게 움직이면 미끄러질 수 있으니 안전을 위한 것이다,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십자가 모양의 틀은 살짝 경사가 있어서 눕게 되면 바로 선 것도 완전히 누운 것도 아니게 되었다.
“다리를 벌리십시오.”
아래쪽의 걸이에 양쪽 다리를 고정하는 의식마저 끝이 났다. 카일은 형틀에 완전히 M자로 다리를 벌린 채 음부를 드러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아픔을 느끼진 않았지만 차가운 틀의 느낌은 묶여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자극했다.
“장로님…?”
“겁먹지 마십시오. 단지, 묻는 말에만 착실히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장로는 바퀴가 달린 기구를 끌고 왔다. 직사각형의 몸체에는 이것저것 부품이 붙은 채 길고 굵은 전선도 연결되어 있었고, 은색으로 빛나는 쇠꼬챙이도 달려 있었다. 장로가 그 꼬챙이 끝에 지금까지 몸을 쑤시도록 시킨 물건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실리콘 모형 좆을 끼웠다. 심지어 투명한 재질이었기 때문에 쇠막대가 어떻게 안에 고정되는지 들여다보이는 물건이었다. 그것은 감히 모조 성기라고 부를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서, 모형 좆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상스럽고 투박한 외형이었다. 기계 장치에 전원을 넣고, 카일의 아래쪽에 흉물스러운 것의 끄트머리를 갖다 대었다. 바이브레이터로 발기조차 하지 않았다면, 최종적인 관문은 바로 기계 장치였다.
일명 세간에서는 퍼킹머신이라고도 부르는 물건. 이 촌구석에서는 이미지로나마 본 사람도 드물 만한 성기구. 그것이 사제관과 통해 있는 쪽방에 구비된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되는 탓이었다. 음란함을 고백하는 신도들 중에는 꽤 명문가의 자제도 있었고, 누구보다 매력적인 알파나 오메가, 혹은 타고난 자질이 변태 같은 이들이 은근히 있었다. 그들을 꼬드겨 음성화된 곳에서 몸을 팔게 하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후원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식으로 장로는 꽤 많은 수익을 창출해냈다. 벌써 조부 때부터 내려오던 전통이었으며 신성회가 달리 사이비라고 지탄받는 게 아니었다. 종교는 계기 혹은 허울일 뿐, 실질적으로는 여러 가지 범죄에도 발을 걸치고 있는 셈이었다.
신도들을 이해하고 세간의 논쟁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것 역시 진실이었으나, 그들을 이용해 각종 불법적인 일을 행하고 눈물 젖은 돈을 쓸어 담는 것 또한 진실이었다. 본디 매달릴 곳 없고 마음이 바로 서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부덕한 일에 쉽게 현혹되는 법이었다.
카일의 부친이 그러했다. 에반은 자식이 이런 곳에서 기계로 범해지는 것을 모르니 그렇게 큰돈을 선뜻 내놓을 수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남자의 눈에 어린 광기를 알아본 장로는 그를 부추겨 어린 아들을 볼모로 잡아 두었다. 카일이 오랜 기간 죽지 않고 생존한 건 큰 행운이었다. 비록, 늑대와 정을 통하게 된 건 아까웠지만. 만에 하나, 그 늑대가 정말로 알파라면. 열성 오메가를 회임까지 시킬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전화위복급의 일이 되는 격이었다. 성이라곤 알지 못하는 도련님이 변태적인 취미를 가진 일화에 병을 극복한 기적의 산증인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 어차피 아들이 ‘무엇’이랑 천박하게 나뒹굴든 간에 병이 치유되었다고만 하면 기뻐서 눈물을 흘릴 노인네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늑대가 우성 알파라 불쌍한 열성 오메가의 배를 잔뜩 불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계의 전원을 넣었다. 사동을 시작한 기계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으로 천천히 실리콘이 밀려들어가나 싶더니, 곧 카일의 입이 벌어졌다.
“흐…, 아아아…! 자, 장로님…!”
뱃가죽이 불룩해지면서 그 큰 것이 완벽히 자취를 감추지 못하고 끝끝내 안에 들어갔다는 티를 내는 게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벤이 박을 때처럼 굉장한 압박감이었다. 장로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에는 한 줄기의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비록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고 형틀에 묶여 팔다리를 들썩여대며 덜컹거리는 소음을 빚어냈지만, 성기가 탄력을 받고 있었다.
크기를 제대로 골랐다고 생각하며 장로는 기계에 단단히 꿰뚫려버린 육체를 감상했다. 그가 자기 밑에서 펠라치오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었지 이런 식으로 다리를 벌리고 자위 기구에 묶여 있는 모습은 기대한 적조차 없었다. 물론 이것도 꽤 봐줄 만했다. 투명한 모형 좆이 살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짙은 빛의 내벽이 벌어지고 꿈틀거리며 그것을 조이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잔뜩 느끼고 있는지 앞뒤로 액을 비질비질 흘리면서도 꽉꽉 물어대는 모습을 보고 흥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가능만 하다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몸과 얼굴이었다. 눈가가 붉어져 눈물이 고인 채, 아직 피스톤질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함락당한 얼굴이 되어 애가 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가 발산하는 페로몬을 맡을 수는 없었지만 만일 체취를 감지하는 게 가능만 했다면 분명 상대방의 이성을 끊어 버릴 듯한 강렬한 향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 늑대가 맡은 게 그런 냄새겠지.
페로몬, 이라는 단어가 혓바닥 위를 맴돌았다. 확실히 개과 동물이니 인간보다는 향취에 민감한 걸 수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기계의 강도가 점차 거세져, 인간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움직임으로 변모해갔다.
“크, 흐으앗…! 우, 아…! 아흐, 응…!”
카일의 성기 끝에서 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정점 부근을 찔려버린 것이었다. 벤이 해줬던 것처럼, 삽입만으로도 내부 전체를 압박해가며 전립선과 오메가 스위치를 괴롭혀 대는 감각이 선명했다. 푹푹 쑤셔대는 왕복 운동과 더불어 아랫배도 튀어나왔다 평평해지길 반복했다. 정말 발정 나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오메가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장로는 질문했다.
“좋습니까?”
“흐아아…! 조, 조아요…! 아, 조은데에…!”
카일은 뭉개진 발음으로도 헐떡이면서 열심히 대답했다. 이렇게 인위적인 방식으로도 늑대가 주는 것과 비슷한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건지, 본인이 느끼고 있는 쾌락을 부정하려는 듯한 시도를 했다. 그건 안 될 말이라며 장로는 카일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아아아…!”
기계는 가열차게 내부를 헤집어댔다. 손바닥 표면에 뱃가죽 밑으로 울렁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전립선과 입구가 동시에 찔려서 정신 차리기 힘들었는데, 배 위를 두텁고 거친 손이 눌러대자 카일은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소리를 내지르며 가버리고 말았다. 깨끗하고 얼룩 하나 없는 옷에 정액이 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장로는 빙긋 웃으면서 카일에게 세뇌하듯 말했다.
“진짜 자지가 아니라도 좋은 겁니까?”
“끄흑…! 그, 그런 거, 같…! 아요! 후으아아…!”
“인정하십시오. 형제님은 남들보다 쾌락에 약할 뿐만 아니라, 음란해 빠진 몸을 가졌다고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개자지가 아니면 만족을 못하시는 것 같은데. 짐승 자지에 박히는 걸 즐긴다고 말하십시오.”
“짐승 자, 지, 에…. 박히는…, 힉! 즐겨요, 좋아해….”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르는 오메가를 가엽다는 듯 내려다보며 사제는 가증스러운 목소리로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기도했다.
“형제님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오메가일 뿐. 기적적인 일이군요…. 신이시여.”
철퍽거리는 소리와 기계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흐느낌에 가까운 신음이 쟁쟁히 울리는 가운데 정갈한 가운을 입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는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특히 지금 카일이 이용하고 있는 퍼킹머신은 오메가를 괴롭혀주는 동시에 열락에 빠뜨리기 위해 고안된 기구였다. 기본적인 구조는 기존의 것과 동일하지만, 쇠막대 부분에 매다는 딜도가 오메가 전용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투명한 딜도는 탐욕스러운 사용자의 내벽이 얼마나 떨리면서 입질을 해대는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성감대 두 곳을 동시에 공략하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 오메가들은 자궁과는 유사하지만 미세하게 차이가 있는, 번식을 위한 내부 장기를 가진 채 태어난다. 정액이 요도를 타고 방출되는 것처럼 그곳으로 통하는 길은 애널이었다. 평소에는 장벽 쪽의 구멍이 닫혀 있지만 몸이 흥분하고 알파의 페로몬을 감지하게 되면 벌어지면서 정액을 받아들이는 식이었다. 억지로 잡아 벌리지 않으면 벌어질 일이 없는 곳이었고 그곳이 벌어지는 것은 출산을 할 때가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통로의 입구가 벌어지면 즉각적으로 통증을 감쇄시키고 극강의 쾌락을 느끼게 만드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식으로 작동했다.
연구를 통해 그 사실을 알아낸 사람들은 오메가들의 성적 쾌락을 위해 적극적으로 그 부분을 공략하는 기구들을 개발해냈다. 오메가의 자궁구를 벌리고 자극을 주는 초대형 딜도는 그중 하나였다. 오메가의 생식기관 입구를 두드릴 수 있는 작은 가지가 달려 기계의 힘으로 내리 찌르고 들어갈 것처럼 반복적인 자극을 주는 식이었다.
굳이 벤에게 노팅을 당하지 않아도, 카일은 그때와 유사한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몇 번 가버렸는지 기억도 못 하고 장로가 시키는 대로 음란한 말을 지껄여대며 헐떡였다.
“잘하고 계십니다.”
“장로, 장로님, 우, 아…! 아크읏….”
“형제님에게 아버지의 축복이 있기를. 빛을 찾아 바른길로 나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아멘.”
지쳐서 더는 몸을 들썩거리지 못할 정도까지 카일을 몰아붙이고 나서야 장로는 기계 장치를 꺼 주었다. 자신의 신도가 가장 음란한 짓을 하도록 장치에 묶어둔 주제에 그가 올바른 길을 찾기를 희망하는 기도를 하는 모습은 이율배반적이고 기만적이었다.
“흐으, 흐…. 하아….”
“형제님은 이 방을 거쳐 간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타고난 오메가이신 것 같습니다…. 이제 본인이 어떤 체질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만큼 좆으로 쑤셔줘야 만족하는지 아시겠죠. 사실은, 여태 만족하지 못하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구제 불능이군요, 하는 소리를 삼켰다. 아직도 발기해 있는 곳을 손으로 붙잡고 선액을 문질러 기둥에 펴 바르며 말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머리 전체에 피가 쏠린 채로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 말이 사실이었다. 기계로 노팅이 주는 자극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안에 뜨거운 액체를 한가득 쏟아내며 꽉 들어 채워주는 충족감까지 흉내 낼 수는 없었다. 의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알파의 페로몬도, 체액도 없는 인위적인 자극은 정욕을 달래 주기는커녕 더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카일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벌려져서 기계에게 당했는데도 아직까지 불이 붙어 진정하지 못하는 자기 몸에 놀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다. 당연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입술을 읽어낸 장로는 명쾌하게 답을 말해 주었다.
“열성 오메가라는 이유로 외부와 단절되어 억눌린 채 살았으니, 어쩌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요.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탓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스스로 음란한 몸을 타고난 것을 알았으니 그것을 부정치 않고 제때에 관리하면서 신실히 기도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겁니다. 확실한 것은, 숨기려고 하고 부정할 때는 지났다는 것. 아마도…. 형제님을 일깨워준 그 늑대를 만나봐야 확실히 나아갈 길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다음 집회는 반드시 참석해주십시오. 당신의 늑대와 함께.”
신성회를 믿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보았다면, 장로가 제대로 된 기도문을 읊지도 않으며 자기 좋을 대로 해석을 갖다 붙여 사적인 음심을 채우는 악한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카일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본원 바로 옆의 별장에서 살아왔고, 그의 말을 말씀이라 칭하며 하늘같이 여기는 아버지와 하인들의 영향을 받아 이 상황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판단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장로에게 농락당해 놓고도, 덜덜거리며 십자가 형틀에서 내려오면서도 찌릿거리고 진정하지 못하는 배를 부여잡은 채 옷을 걸치러 들어온 문을 통해 사제관으로 향했다. 터져 나온 애액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벅지 사이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평소라면 정액으로 배가 빵빵해졌어야 했는데, 속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것이 견딜 수 없는 열망으로 다가와, 어서 늑대에게 달려가라고 충동질했다. 옷을 챙겨 입은 카일은 집회실에 들어올 때보다도 더 안달 난 상태로 급박하게 자동차 문을 열었다.
잠깐 볼 일이 있다더니, 거의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장로가 도련님을 잡아두고 있는 것을 걱정하던 찰나에 그가 물기 어린 얼굴로 어서 집에 가자고 조르는 모습을 본 하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보고, 아마도 나태에 대하여 강하게 질책받은 것 같다고, 여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긴 하인은 서둘러 운전을 했다.
전혀 말이 없는 카일에게 동승한 하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로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냥…. 다음번에 벤을 데려오라고 하셨어요.”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 하인은 결국 그 늑대가 원흉임을 장로님도 아셨구나, 하고 속으로 탄식했다. 생각해보면, 정확히 늑대를 들이고 난 뒤부터 카일이 종교 의식에 해이해진 경향이 있었다. 아마도 그 늑대를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았을 뿐더러 날이 갈수록 커가는 늑대가 아직도 어린 새끼인 줄 알고 치대는 것을 받아주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치는 면이 없지 않았을 테니. 이 김에 장로님이 바른 판단을 하시고 그 늑대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든, 아니면 어떤 조치를 취해 주시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하인은 차마 그 말을 입 밖에 내진 못했다.
“흣….”
차가 비탈을 올라가면서 흔들리면 아랫배부터 애널까지 이어지는 부분과 회음부 전체가 찌르르 울렸다. 옆에 앉은 하인은 카일이 갑자기 창백해져서 손을 꽉 말아 쥐는 것을 보면서 지금 도련님께 필요한 것은 안정임을 강하게 확신했다.
*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식사를 하고 방에 올라가자마자 카일은 벤을 찾았다. 오늘 온종일 그가 보고 싶었다. 아마도, 옷을 어색하게나마 걸치고 집 문을 나섰을 때부터 집을 지키고 있을 커다란 늑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그에 대한 향수는 문을 열자마자, 환기되지 않은 공간의 온기를 머금은 공기가 얼굴에 훅 끼쳐 올라오는 순간 더더욱 강렬해졌다.
“벤…!”
‘오래 기다렸지?’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카일은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벤이 거의 불길이 일 것처럼 맹렬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와 함께한 동안 이렇게 무서운 모습을 본 적이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럽다 못해 딸꾹질이 났다. 눈빛만 봐도 그가 화가 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벤은 불같이 화를 내는 중이었다.
“내… 내가 너무 늦게 왔어? 혼자 둬서 화가 난 거야…?”
생각해보면, 그를 기른 뒤로 혼자 내버려둔 적은 딱히 없던 것 같았다. 언젠가 책에서 분리불안증에 대하여 읽은 적도 있는 듯했다. 카일의 머릿속은 재빨리 분리 불안과 관련된 기억들을 뒤져냈다. 혼자 남겨진 개들이 방을 엉망으로 만들거나 하울링을 한다는 등의 사례를 든 간결한 서술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방은 놀라울 만큼 말끔했다. 벤은 그동안 그 어느 곳에도 눕거나 몸부림치지 않고 오로지 지금처럼 곧게 앉아 문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미안…, 미안해, 혼자 있게 해서….”
그가 알아듣지 못해도 사과했다. 자신이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사력을 다해 표현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떨리는 작은 목소리였다. 몸이 어둠 속에 잠겨 눈동자만 번뜩이는 상태에서, 미세하게 귀가 꿈틀, 하고 움직였다. 인간의 시각 능력으로는 불빛 없이 어두컴컴한데서 움직이는 검은 털에 뒤덮인 귀를 지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일은 벤이 자신의 사과에도 반응하지 않고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미안, 흐윽…!”
거대한 짐승이 갑자기 달려드는 통에 카일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가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르렁대는 저주파의 소리는 저절로 다리 안쪽을 저리게 만들었다. 온종일 기다려왔던 자신의 주인을 바닥에 쓰러뜨린 벤은 거칠게 셔츠 깃을 물어뜯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드는 것만으로도 셔츠는 매우 쉽게 뜯겨 나갔다. 하의도 마찬가지였다. 너덜너덜해진 천 조각들이 원래는 옷이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발톱과 이빨에 갈가리 찢겨 나갔다. 아주 조금 발톱이 스쳤을 뿐인데도 허벅다리는 금방 빨갛게 부어오르더니 선혈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픔은 뒤늦게 엄습했다. 따끔거리는 통증은 넘어지거나 쓸렸을 때보다 덜 성가셨지만, 화끈거리는 정도가 달랐다.
“베, 벤…, 미안, 진짜 미안해….”
카일은 그를 달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원치 않는다는 양, 벤은 앞발로 카일의 손을 잡아 누르고 목덜미에 코를 들이박았다. 차에서 카일이 내렸을 때부터 벤은 사방에 진동하는 오메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가 말없이 사라진다 해도, 며칠이든 방에 앉아 기다릴 자신만큼은 충분했다. 그러나 방에 그가 들어왔을 때 맡은, 짙은 향 밑에 깔린 낯선 사내의 냄새는 눈매를 매서워지게 만들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향을 맡을수록 확실해졌다. 낯선 사내가 카일에게 손을 댔었다. 불쾌함을 이기지 못한 벤은 크게 짖거나 우는 대신 카일에게 달려드는 것을 선택했다. 냄새를 맡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옷을 찢어발기고 그 아래의 맨들거리는 피부에 코를 파묻었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향이 단단히 기분을 언짢게 했다. 이토록 강한 소유욕을 느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분개하면서 두려움에 휩싸였다.
확인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던가?
어찌 되었든, 모르는 놈이 카일에게 손을 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텐데. 이빨이 드러났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표정에 공격성이 깃드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단지, 카일은 그 공격성이 향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장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왜 이렇게 주인에게서 오메가 향이 진동하는지도 알지 못해, 벤은 더욱 분노에 휩싸인 채 그르렁대는 소리를 흘렸다.
카일이 정말로 다른 남자를 유혹하려 든 걸까? 그리고 그로 하여금 흥분을 했다고?
카일이 느끼고 행복해할수록 달달한 향이 흘러나온다는 걸 뻔히 알았다. 낯선 남자의 냄새를 묻히고 왔는데도 이렇게 달큰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향을 내뿜고 있다는 사실이 지독히도 쓰라렸다. 낯선 이의 체취를 지워 버리기라도 할 듯, 벤은 거듭해서 카일의 아랫배를 핥았다.
“으, 크흐웃…, 하, 윽….”
간질거리고 조금씩 흥분할 듯 뻐근한 감각이 단전을 타고 내려가 중심부를 두드렸지만 감히 미동도 하지 못한 채 카일은 벤의 아래에서 소리를 흘렸다. 그의 화를 달래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허벅지에 생긴 상처 같은 건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태어난 지 2년도 안 된 어린 늑대가 처음으로 본인의 소유의 것이 침범당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만큼, 카일도 두려웠다. 다른 이와 감정적으로 제대로 된 관계를 맺어본 적 없는 도련님은 처음 맺어보는 친밀한 관계가 산산조각이 날까 겁을 집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몸이 혹사당하는 것을 알면서, 그토록 이 관계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쥐고 있으려고 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외로워서였다. 단지, 혼자 있고 싶지 않다고 칭얼거리고 자꾸만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한숨을 쉬거나 슬퍼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그것을 내색하지 않아 버릇하게 된 것이었다.
“잘못, 했…! 아, 벤, 잘못했어…, 혼자 두지 않을게….”
카일은 그에게 잘못했다고 빌었다. 축축한 혓바닥이 아랫배를 쓸고 허벅지 안쪽으로 기어들어갈 동안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얌전히 다리를 벌리고 거듭 사과했다. 벤은 뒤통수가 보일 정도로 고개를 하반신에 푹 파묻고 아직까지 밖으로 조금씩 흐르고 있는 체액을 다급하게 핥았다. 후각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 정도로 짙은 향에 서서히 분노가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성욕이 채워나갔다. 핥는 대로 발씬거리면서 어서 찔러 넣어 달라고 말간 액을 토해내는 애널은 먹음직스럽기 짝이 없었다.
벤은 참지 않고 성난 것을 좁은 곳에 욱여넣었다. 열기가 올라 뜨끈거리는 곳이 기다렸다는 듯 물건을 조여대며 질척거리는 소리를 냈다. 평소 느긋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삽입하던 것과 달리 단번에 끝까지 밀어붙이며 카일을 한계까지 몰아세웠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핥아서 조금 풀렸나 싶었으나, 착각임을 깨닫고 카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눈앞에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음에도 눈이 절로 감겼다.
“크핫…!”
기구에 의해 사정없이 헤집어진 곳이었다. 그런 실리콘의 인위적인 움직임보다는, 역시 힘줄이 도드라지고 꿈틀거리기까지 하는 진짜가 더 좋은 게 분명했다. 넣기만 했는데도 오늘 내내 채워지지 않던 욕구가 충족되는 감각이었다. 좋다고, 나도 너를 오늘 보고 싶었다고 말해줘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벤은 여전히 격노한 상태로 피스톤질 하고 있었다. 자지러질 듯한 신음마저도 지겹다는 양, 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처럼.
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어두운 방에 적나라하게 울렸다. 찔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철퍽거리면서 늑대의 살이 인간을 가르는 교접음. 평소라면 카일이 억눌린 소리를 내거나 앓는 듯한 신음을 흘렸겠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한 편이었다.
“그, 흐읍…, 아, 흐욱…!”
뾰족한 성기 끝이 오메가의 생식 기관으로 통하는 입구를 퍽, 하고 찔러온 순간 카일은 어둠 속에서도 빛이 번뜩이는 듯한 착시를 느꼈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면서 턱을 타고 타액이 흘러내렸다. 오메가의 정점을 뚫어 버리기라도 할 듯, 난잡하게 그곳을 들이박으면서 벤은 확실히 살아 있는 인간의 몸에 영역을 표시했다. 다시는 다른 놈의 체향을 묻힐 수 없게, 다른 어줍잖은 놈이 늑대의 경고가 담긴 향을 맡게 된다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만들 심산이었다.
“크르륵…! 크으으…!”
벤은 혀를 이용해 공격적으로 주인의 체취를 담아냈다. 물을 퍼마시는 것처럼 카일의 가느다란 목과 쇄골을 게걸스럽게 혀로 낼름거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가슴팍에 닿을 때마다 카일의 몸이 꿈틀거렸다. 벌써 배 속이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늑대 정액이 가득 들어찼지만, 벤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거의 굶주린 검은 늑대가 인간을 뜯어먹는 것처럼 보이는 야만적이고 원색적인 현장이었다. 괴로워 마지않아야 하는데, 기분이 좋아서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카일은 벤에게 다 이해한다는 태도로,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화를 가라앉히라며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성기가 우악스럽게 안에 쑤셔 박히고 몸을 갈라놓을 때마다 허덕이며 늑대의 머리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자꾸만 손이 미끄러지고 팔에 힘이 풀렸다. 반나절을 십자가 모양 형틀에 묶여 있었던 탓에 아직까지도 흰 피부에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칠 법도 했지만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떠가면서 벤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정말, 크후웃…, 아, 흡, 계속 같이 있어줄 테니까….”
벤은 웅성거리는 소리와 동시다발적인 발소리를 감지했다.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더는 이 관계를 숨기고 싶어 하는 카일의 기대에 부응해줄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그가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는 몰라도, 관계할 때마다 바깥을 신경 쓰고 그 모습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소리를 참기 위해 털에 얼굴을 파묻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거나 함께 외출해서 몰래 몸을 섞는 건 좋았지만 예전부터 그를 자신의 오메가라고 공표할 수 없는 것에 큰 불만을 느끼던 벤이었다. 이참에, 그에 대한 소유를 확실히 하고 싶었다.
소음이 점차 커지는가 싶더니 문이 덜컥 하고 열렸다. 어두운 방 안을 밝은 복도의 등이 한 번에 밝히면서 검은 털가죽에 엉킨 나신이 단번에 하인들에게 드러나 버렸다.
“신이시여…!”
한동안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외마디 탄식을 내질렀다. 그 외침을 기점으로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짐승 우는 소리가 아래층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려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하인들이 몸을 보호할 만한 도구를 들고 몰려온 것이었다.
벤을 달래는 데 온 정신을 쏟아붓고 있던 카일은 갑작스럽게 눈동자에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바로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다시 눈을 떠야만 했다. 방금 전까지 의식이 부스러질 것 같았는데. 기절할 것 같은 것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는데 충격으로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산탄총을 쥔 채,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자신과 벤을 내려다보고 있는 집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금 처음 알게 된 카일은 다급하게,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끌어올려 해명하려 했다.
“아으, 아냐…! 아니야, 벤은, 날…, 흐아앙…!”
안에서 부풀어 있던 시뻘건 살덩이가 몸 밖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리고 다시 둔탁한 교접음을 내며 안으로 쑤셔 박혔다. 벤은 번개가 튈 것처럼 맹렬한 눈동자로,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카일을 범하기 시작했다. 퍽, 퍽 살이 부딪히면서 카일이 짐승처럼 교성을 내지르는 모습이 모두에게 보여졌다. 카일은 신음으로 말소리가 뚝뚝 끊기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흐극…! 으, 아흐읏…, 베, 벤은 해치지 않아, 하으…! 괜찮, 앗…!”
“…괜찮다고요?”
필사적으로 벤이 무해함을 주장하려고 애쓰는 막내 도련님을 보며 집사는 비탄에 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행동은 추접스러운 늑대가 기어이 저항하지 못하는 어리고 순박한 도련님을 억지로 범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팔뚝만큼 굵고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것이 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그것이 흉물스럽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집사는 벤에게 떨리는 손으로 총을 겨눴다. 하필이면 둘이 몸을 섞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함부로 총을 쏠 수도, 짐승을 해칠 수도 없었다. 자칫하면 카일이 다칠 확률이 컸다. 그만큼 둘은 아주 약간의 틈도 허용하지 않은 채 딱 붙어 있었다.
하인들이 방에 들이닥쳤음에도 피스톤질은 수 분간 계속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은 괜찮다고 사람들에게 말로 설득을 시도하던 카일의 언어가 점차 무너져갔다.
“아, 우, 하, 으후앗…! 으, 으응…! 베, 벤…, 조금만 살, 살…!”
카일은 야해 빠진 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비틀었다. 하도 쥐어 짜내다시피 분출해버려서 더는 액이 나오지 않는 발기한 물건이 아래에서 덜렁거렸다. 누가 보고 있다 해도, 행위에 제재를 가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한번 늑대 자지에 박히게 되면 벤이 풀어줄 때까지는 몇 번이고 그의 씨를 받으면서 쾌락에 함락되어 가도록 길이 들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눈빛이 흐릿해진 채, 열락에 잠식당한 오메가의 얼굴을 본 하인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진정으로 오르가즘을 느끼면서 자지러질 듯 신음하는 모습은 아주 천박해 보이는 동시에 음심을 부추겼다. 대다수는 카일이 뿜어내는 페로몬을 맡지 못했지만, 아주 예민한 우성 알파들은 희미하게 사람을 자극하는 그 향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자신들이 보필해왔던 도련님이 헐벗겨지고 상처 입은 몸으로 늑대의 큼지막한 좆에 퍽퍽 쑤셔 박히고 있는데. 아래쪽이 이상스럽게 뻐근하고 에로틱한 신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이 달아올라 누군가는 헛기침을 하고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다.
그 요물 같은 늑대에게 억지로 당하고 있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집사는 천천히 겨눴던 총을 내려놓았다. 카일은 정말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팽팽히 발기한 그의 성기가 증거였다. 정액이 부글거리면서 박을 때마다 다리 사이에서 후두둑 떨어지고 흘러넘쳤다. 늑대의 검은 털에 희멀건 탁액들이 엉겨 붙은 게 유독 눈에 잘 들어왔다. 정말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동시에 사람을 자극했다. 도련님이 짐승과 교미하는 취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집사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은 채 중얼거렸다.
“어르신…, 정말, 어찌해야….”
열심히 기도한 끝에 막내 도련님도 건강을 회복하고 기적이 일어나나 싶었는데. 최근 들어 카일의 키가 크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좋은 징조라고 믿고 더 신실한 신자가 될 것을 다짐했었는데. 그간 믿어왔던 것들이 한 번에 산산조각나면서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눈물을 흘리는 집사의 뒤로는 눈이 벌게져서 성기를 세우고 반응하는 알파 혹은 오메가들과 어찌하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보고만 있는 다른 하인들이 서 있었다. 벤의 페로몬 역시 강력했기 때문에, 고용된 하인들 중 오메가들을 반응하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그가 어슬렁거릴 때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했으나, 직접적으로 정액을 구멍에서 차고 넘칠 만큼 뿜어대고 헐떡대며 추삽질하는 광경이 오메가들의 음심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방을 가득 채운 눅눅하고 비린 냄새가 개과 동물의 털 냄새, 혹은 정액 냄새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맡으면 맡을수록, 날것의 냄새와 가까운 그 향취는 오금이 저리고 몸이 떨리게 만들었다. 다들 본능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감지가 더뎠던 것이었지, 알파 중에서도 그 어느 인간보다 강력한 존재인 벤에 의해 자극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설명, 할 수 있어, 하아…, 장로님, 장로님은 다 알고 계시니까….”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노팅을 당하면서 카일이 집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울 것도 아니고 정말 괜찮다고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능력도 되지 않았거니와, 카일이 다른 이들에게 신경을 쓰려 할 때마다 벤이 거칠게 전립선을 후벼댄 덕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장로였다. 그가 모든 것을 설명해줄 거라고 생각한 카일은 장로님도 알고 계시고, 문제될 게 없다는 의미로 입을 열었다.
“신이여….”
장로가 이 사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집사는 안도하는 듯한 목소리로 짧게 신음을 내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사태에 있어, 조언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인도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크나큰 위안이었다. 정신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집사는 우선 하인들을 뒤로 물리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매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장로님을…. 모셔오게.”
*
흥분한 알파와 오메가 하인들이 더 큰일을 벌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이게 다 그 짐승 때문이라고 이를 갈면서 초조하게 장로를 기다리던 집사는 창밖으로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마자 현관문을 열며 고대하던 구원자를 안으로 들였다.
“큰일이 났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사람을 보내왔을지 짐작은 했으나 이렇게 빨리 찾아오게 된 것은 정말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 짐승과의 이상적인 조우는 적어도 다음 주, 정기 집회가 끝나고였다. 절망이 뚝뚝 묻어나는 집사의 얼굴을 보고 천연덕스럽게 온건한 미소를 지으며 장로는 진정하라는 듯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장로님….”
복합적인 감정이 푹 눌러 담긴 부름이었다. 뜨끈한 손이 어깨에 닿는 것만으로도 안도되어, 집사는 그를 붙잡고 자신이 받은 충격에 대하여 하소연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저는… 이 상황을 주인 어르신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직접 상황을 봐야 조언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도련님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집사는 힘없이 장로를 2층으로 안내했다. 터벅거리는 발소리가 계단을 통해 울리자, 누군가 급박하게 몸을 숨기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발을 잘못 눌린 나머지 보기 좋게 복도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자, 장로님…?”
넘어진 이는 젊은 알파였다. 도련님의 방을 엿보지도 말고,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페로몬에 취하지 말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욕을 이기지 못한 채 그 앞에서 자위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직도 뻣뻣하게 서 있는 성기와 내리다 만 바지는 그가 꽤 급박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장로 앞에서 추한 꼴을 보였다고 생각한 그는 가라앉지도 않은 것을 바지 속으로 숨기며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고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반복했다. 장로는 무어라 말을 하는 대신 그의 곁을 빠르게 지나쳐버렸다. 어떠한 대꾸도 해주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는 것이 가장 가혹한 대응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기에 할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러나 젊은 알파를 무심히 지나쳐온 옅은 푸른빛의 눈동자는 곧 흥미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열성 오메가가 다른 알파를 동하게 만들 정도로 페로몬을 뿜어낸다는 것은 들은 적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몸이 아파서 고생하기도 하지만, 운이 좋게 면역력 부분이 정상에 가깝다면 열성 오메가라 할지라도 카일처럼 격리된 채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반 사람들처럼 멀쩡히 다른 사람들과 연애하고 성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시대에, 그들의 열악한 페로몬과 성적 능력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 문 너머에서, 형제님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군요.”
교감이라도 하듯, 장로는 나무로 된 문을 손바닥으로 슬슬 쓰다듬었다. 짐승이 그르렁대고 짖는 소리를 듣고서 방에 들이닥쳤다가 참담한 꼴을 봤다는 집사의 증언과는 달리, 그 너머는 불길할 정도로 조용했다. 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짧게 상상하던 장로는 손잡이를 돌리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또다시 어두운 방 안에 빛이 들이닥쳤다. 형형한 노란 눈동자가 불빛을 등지고 방 안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두 쌍의 호박색 눈동자는 똑같이 짐승 같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둘 모두 사람의 형상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이었다.
“신이시여.”
이번에 탄식을 내뱉은 것은 장로였다. 카일이 늑대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했었지 않았던가? 이 집에 소속되어 있던 모든 하인들이 한 번씩은 이야기한 주제가 바로 크고 검은 늑대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장로는 그가 당연히 문자 그대로 늑대를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방 안에서 침입자를 압살해버릴 듯한 눈빛으로 사람을 노려보는 존재 역시 인간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짐승처럼 매섭고 다른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는 눈동자를 가질 수 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털 달린 짐승이 아닌 매끈한 구릿빛 피부를 가진 거구의 사내였다. 하지만 그의 이명이 늑대라고 한다면 이견이 없을 정도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장로는 정신을 차리고 카일의 몸에 아직도 성기를 꽂고 있는 사내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벤입니까?”
“크으…!”
사내가 짐승이 하는 것처럼 이를 드러냈다. 보통의 인간보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시뻘건 잇몸이 드러났다. 벤의 동공이 날카롭게 좁아졌다. 그것은 빛이 갑자기 들이닥친 탓이 아니었다. 오늘 처음으로 강렬한 분노에 사로잡히게 만든, 심지어 네발로 기는 것마저도 포기하게 만든 그 체취가 눈앞에서 강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낯선 남자가, 기어이 카일을 빼앗으러 온 것이었다.
카일은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벤의 아래에서 늘어진 채, 힘없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는 모습은 집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겨 주었다. 감히 총을 들고도 그 늑대로부터 도련님을 지키지 못했었지만, 이번에는 장로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자신감을 등에 업고 집사는 호통을 치듯 벤에게 말했다.
“이…, 사악한 짐승! 당장 도련님에게서 떨어지거라!”
털을 벗고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언어를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밥을 먹자거나, 좋아, 싫어 같은 간단한 어휘 정도는 늑대의 모습일 때도 알아듣는 데 문제가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벤에게는 도덕관념이나 사회의 규칙이란 개념이 생소했다. ‘사악한’은 적어도 그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크아아!”
늑대의 발성 기관으로 내는 것만큼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할 만한 위엄 있는 울음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완전히 실성한 사람처럼, 탈인간적으로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그들에게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늑대로 돌아갈 수 있기도 했다. 다만, 카일이 늑대 모습을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발 양보한 것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의 것이라고 못 박아버리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으나, 연결된 동안 끝도 없이 불안해하는 반려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것이었다.
“짐승이라니…. 그는, 문자 그대로 늑대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분명… 장로님을 모셔오기 전까지만 해도 늑대였습니다. 마을의 돼지들을 물어 죽이는 그 늑대 말입니다! 저, 저 남자는… 저도 처음 봅니다.”
“가엽게도 말을 못 하는 것 같군요…. 게다가, 여전히 짐승처럼 헐벗은 채, 우리의 불쌍한 형제님을 괴롭히고 있는 듯하고 말입니다.”
장로가 수간을 암시하는 말을 꺼내자 집사는 얼굴이 달아올라 변명하듯 언성을 높였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네발로 기던 짐승이 인간으로 변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 대하여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카일은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해진 상태였다. 장로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열성 오메가이지만, 사람들을 동하게 만들 만큼의 강력한 페로몬을 뿜어낼 수 있다. 그리고 늑대는 실제로 짐승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카일의 진술들을 조합해보면 그는 전례 없이 강력한 알파이다.
마을에서 이름난 가문의 도련님이 수간을 즐긴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는 건 곤란했지만 어찌 보면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늑대가 인간으로 둔갑한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악마의 소행으로 일컬어질 테지만, 있을 수 없는 일로 하여금 인간을 시험하고 시련을 이겨낼 경우 끝내 보상으로 기적을 일어난다고 설파한다면 그것은 신이 행하는 일이 되었다.
더불어 페로몬이야말로 천연 마약이었다. 지금도 각지의 퇴폐적인 분위기의 클럽을 운영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암암리에 알파와 오메가들을 불러 모아놓고 난교를 펼칠 정도로 페로몬은 사회의 문제를 야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이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본능적 영역이기도 했다.
‘종교 단체를 표방하고 있으면서 그런 문란한 집회를 열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였다. 사제 한두 명이 권위를 가지고 신도들을 희롱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신도 모두가 서로에게 그렇게 해버린다면 아무도 서로를 고발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신성회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알파와 오메가들을 옹호한다. 그들이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문란한 행위를 하는 것을 두고 신의 징벌 혹은 일탈이라고 보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거의 유일한 종교였다. 본성을 죄악시하고 숨기기보다는 조절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얻고 모두가 평등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평등은 모두가 서로를 탐하는 선에서 평등함을 의미했고, 원색적인 행위를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 은근히 암시했다.
계산을 끝낸 장로는 벤과의 눈싸움을 그만두고 몸을 돌리며 집사에게 말했다.
“우선, 형제님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립시다. 제가 보기엔, 악마가 아니라…. 주께서, 아버지께서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 시험이라뇨? 저것은 분명 요사스러운….”
“아버지께서 말을 못 하는 짐승을 보낸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를 악으로 규정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동요하면 안 됩니다. 천사는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반드시 두려워 말라.’라고 전언합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는…. 이 일에 대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잘못된 소문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주인 어르신께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집사의 걱정을 상기해 낸 장로가 말했다. 이 일이 잘못 발설되는 순간 가장 고통받게 될 것은 카일 본인이라는 말에 집사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을 위하는 척하는 이 교주가 그를 음습한 공간에 가둬놓고 음란한 기계로 희롱한 바가 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집사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가 있음에 감사하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완전히 말을 맞추고 확정적으로 퍼뜨리기 전에 소문이 새어 나가면 곤란했다. 카일은, 열성 오메가로서 끝없이 고통받고 시련을 겪었으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신이 보낸 전령을 받아들인 끝에 오래도록 살아남고 병마를 이겨낸 기적의 사례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시나리오를 그려낸 장로는 그 늑대가 어떻게든 사람의 말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상의 선택지라고 여기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기적적인 사례를 이용해 신도들을 더 끌어모으고 결속력을 다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짐승은 절대로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패배를 시인하고 먼저 뒤를 보이는 이는 반드시 물어뜯기게 되어있음을 직감한 장로는 오싹한 전율이 발끝부터 올라오는 것을 체감했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쇳덩이는 넣어둬야 했다. 이 일에 어울리는 것은 차가운 총이 아니었다. 문을 닫고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다는 의사를 밝힐 때까지 벤은 둘을 공격하지는 않았으나 집요하게 시선으로 훑으며 경고를 보냈다. 마침내 문을 닫고 돌아선 장로는 집사를 따라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서 끈적거리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페로몬으로 인해 억제 효과가 깨지게 된 이들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엉겨 붙고 있는 듯했다.
좋은 징조였다.
거의 죽을상이 되어가는 집사와는 다르게 장로의 입가는 묘한 호선을 그렸다.
“내일, 이른 시각에 다시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기나긴 밤이 될 것 같군요….”
“아침 해는 뜨기 마련이니까요. 형제님께,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장로를 보내고 나서 집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감히 장로의 결정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도련님을 그 마귀와 분리시키고 상태를 살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방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쿵 울렸다. 문을 열자마자 펼쳐진 장면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지는 다른 하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따금씩 사람들이 헐떡이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회에서 알파와 오메가들은 쉽게 손가락질을 받았고 어디에서나 소수자였다. 그들의 얼굴만 보고 알파인지 오메가인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천년만년 비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어디에나 있었고, 여전히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고통받고 있었다. 집사는 그들을 동정하며 구제하려는 신성회가 좋은 일을 하는 곳이라고 굳게 믿었다. 자식이 알파와 오메가도 아니고, 주변 인물 중에 그 문제로 고통받는 이가 없었음에도 이 집을 위하여 일하는 건 딱 하나, 주인 어르신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함이었다. 한 번도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집사는 오롯이 혼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이 집에서 이제 소수자는 본인이었다.
“구원하소서.”
손을 맞잡고 이마를 가져다 대며 낮게 읊조렸다. 불러도 절대 신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황만 봐도 뻔했으나 상황이 악화될수록 믿음은 굳건해져갔다. 이제는 그를 믿지 않는다면 미쳐버릴 것이란 사실을 무의식이 먼저 알아차리고 광기로부터 나약한 인간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
집사의 우려와는 달리, 카일은 다음 날 멀쩡히 제 발로 1층으로 걸어 내려왔다. ‘식사는 아직 준비 안 됐어?’ 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물어보자 화들짝 놀라 곧 준비될 거라고 말하며 집사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렇게 모진 일을 당했는데도 카일은 조금 창백해 보일 뿐, 멀쩡히 걷고 행동했다. 다만 이제야 왜 그가 의자에 앉을 때 조심스럽게 앉거나 부자연스럽게 행동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는 것의 범위가 늘어날수록,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세밀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련님…,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물론이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벤은 날 해치려는 것도 아니고. 장로님께… 설명은 들은 거야? 장로님이 왔다 가시긴 했어?”
마지막으로 기력을 쥐어짜내 장로를 언급한 것은, 그가 늑대와 몸을 섞는 것을 힐난하지 않고 오히려 두둔했기 때문이었다. 그라면 충격에 빠져있는 집사에게 충분히 설명을 제공하고 과열된 걱정을 가라앉힐 거라고 믿었다.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러 내려왔는데, 평소보다 적막한 대신 집사가 노발대발하거나 당장 그 늑대를 쏴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 카일은 속으로 굉장히 안도했다.
지난밤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 옆으로 북슬거리는 털뭉치가 만져지는 것을 느끼고 다행히 사람들이 벤을 해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워서 범해지면서도 총을 든 집사의 형상을 똑똑히 보았고,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꿈에도 나올 지경이었다. 악몽으로 밤을 지새운 카일은 방 안에 규칙적으로 울리는 숨소리를 통해 벤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침대로 기어 올라가 겨우 다시 잠을 청했다.
“명확한 답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오시겠다고만 말씀하셨는데. 아마 곧 오실지도 모르죠. 그 남자는 누구입니까, 도련님. 정말로…, 정말로 그가 그 늑대와 동일 인물입니까?”
아침 해가 뜨고 햇살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오고 나서야 카일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자고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는 덩치가 굉장히 컸다. 가끔씩 마을에 내려가고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그만큼 큰 사람은 본 적이 없었고, 장로보다도 더 큰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엔 사람처럼 보였지만 꼬리뼈가 위치해야 할 부근에 검고 긴 꼬리가 돋아나 있었고, 인간보다 더 긴 손톱이 두드러져 보였다. 일어나자마자 벤을 찾았으나 벤은 없고 그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잠이 덜 깼나 싶어 스스로의 몸을 더듬어 보고 허벅지를 꼬집어 보던 카일은 발톱에 긁힌 상처가 빨갛게 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살살 그 위를 건드리기만 했는데도 멍이 든 것처럼 얼얼한 느낌과 따끔거리는 느낌이 잇따랐다.
결코 꿈은 아니었다.
그럼 저 남자가 벤이란 말인가? 아마도 어젯밤 잠결에 만졌던 털뭉치는 그의 검은 꼬리 부근이고, 생사를 확인하는 기준이 되었던 숨소리 역시 지금은 자고 있는 사내가 낸 것이 분명했다.
그를 깨워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만일 그가 정말로 벤이라면 틈도 주지 않고 달려들 것만 같았다. 새까만 속눈썹 아래로 잠긴 눈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형형한 금빛 눈동자일 게 뻔했다. 잠시 넋 놓고 낯선 남성의 얼굴을 보고 있던 카일은 그가 자고 있는 기회를 이용해 사람다운 일들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마… 그럴 거야. 사람처럼 보였지만, 꼬리가 있었으니까.”
오히려 카일은 빠르게 납득했다. 평생을 어딘가 모험하는 종류의 책과 함께 지냈었고, 드래곤이나 요정, 혹은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는 갖은 종류의 요사스러운 존재들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탓이었다. 오로지 철저히 현실 세계에 속해 있는 집사와 다른 하인들만이 이 일을 불길하고 두려운 것으로 여겼다.
“도련님…. 왜, 이때까지 말을 안 하신 겁니까. 그 늑대가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요. 저희가 그렇게 못 미더우셨습니까?”
장로가 두려워 말라고 말했으나, 인간성을 상실한 지난밤의 관계는 집사가 보기에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상대가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기함을 하며 그 관계를 반대했을 터였다. 카일이 책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동안 집사는 현실에 남아 아픈 아이를 돌봐 왔고, 이제는 아프지 않은 카일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멀쩡한 사람도 감당하기 힘들 만한 일을 카일이 견뎌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집사가 나무라는 대신 상처받은 듯한 얼굴을 해 보이자 카일은 당황해서 그를 달래 주려 했다.
“정말, 괜찮다니까? 벤이 애정 표현이 조금 과했던 거지 날 해치려고 한 것도 아니고, 평소엔 말을 잘… 들으니까. 어제는 아마, 아마도… 오랫동안 집에 혼자 둬서 조금 심술이 났던 걸 거야. 그뿐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냥, 다들, 벤을 좋아하지 않았잖아. 총으로 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도련님, 그건….”
애정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는 못하고 혓바닥 위로 굴리며 집사는 식탁보의 무늬로 시선을 돌렸다. 진짜 총기를 들었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카일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참담한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운 기색을 완벽히 감추지 못했다. 집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누군가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장로였다. 약속했던 대로 아침부터 찾아온 것이었다.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있는 카일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평소처럼 유한 미소로 카일을 응대하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형제님.”
“네. 안녕하세요, 장로님.”
장로를 집회실이나 본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이질감이 들어 카일은 눈을 깜빡였다. 카일에게는 벤이 사람의 형상을 취한 것보다 장로가 자신의 집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벤 말씀하시는 건가요? 위층에서 자고 있어요.”
“그럴 만도 하죠.”
그렇게 날을 세운 채로, 지치지도 않고 사람을 안아댔는데.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병마와 싸우기 바빴던 카일이 이렇게 멀쩡히 앉아 있는 것도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만일 자신이 추론한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거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아침에 방문하겠다고 한 이유는, 조금 멀쩡한 상태의 그 늑대를 볼 수 있을까 해서였습니다. 어젯밤 그는, 물론 짐승들이 으레 그렇겠지만 이성적인 판단 같은 건 불가능한 모습이었으니까요. 겉이 어떻게 보이든 간에 말입니다. 그리고…, 형제님께도 드릴 말씀이 있군요.”
“저,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다음 집회 때 그 늑대를 데리고 와달라고 했었는데. 사실 저는 이렇게 빨리 그 늑대와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요청을 한 이유는, 늑대가 사람의 형상이 된 것도 상당히 이상스러운 일이지만 형제님이 멀쩡히 살아 있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이여….”
잠자코 듣고 있던 집사가 낮게 탄식했다. 저질스러운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가 들어도 그런 거대한 것에 박히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했다. 카일 본인도 인정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긴, 하죠. 사실 벤을 처음 데리고 온 날 비를 맞았는데 꼬박 일주일을 앓아누웠었으니까요. 저도 사실 몸이 약한 제가 어떻게, 이렇게 잘 지내는지 모르겠어요.”
“약은 제때에 드시고 계신가요? 의사의 소견은요? 주치의가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음, 아마 개과 종류 동물의 털에 알러지가 없다는 것을 검사해 주신 뒤로 방문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딱히 아프지 않아서 부를 일이 없기도 했고, 아직 정기 검진을 오실 때가 아니기도 하거든요. 이제 조만간 검진하고 새 약을 주러 오실 텐데…. 그러고 보니 약도 잘 챙겨먹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몸이 아프지 않게 되었으니까. 아픈 사람이라면 약을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절대 빼먹지 않고 약을 챙기는 법이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은 건강보조제를 섭취하는 일도 당장 몇 번 빼먹는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카일 본인도 약에 대하여 망각하고 있다가 장로에게 이야기하면서 약을 먹지 않은 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럴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형제님께선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어젯밤 페로몬에 영향을 받은 하인들도 있고 말입니다. 모든 상황을 통틀어 보았을 때, 건강이 회복됨과 동시에 보통의 오메가들처럼 페로몬을 발산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게 가능한 정도로 몸 상태가 정상화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죠.”
“그, 그것이 정말입니까 장로님?”
집사는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확인받고 싶다는 듯 되물었다. 이 작은 도련님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굉장한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았던가? 그런 병증이 한 번에 호전되었고, 그것이 사탄의 분신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새까맣고 거대한 짐승 덕분이라니.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가장 타당한 설명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의사가 검사해봐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겠지만요.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장로는 말끝을 흐렸다. 어제부터 아연실색한 집사의 표정을 자주 보다 보니, 흡사 자신이 재앙을 전파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핵심적인 내용은 두 번째였다. 반드시 제기 해야만 하는 의문이었다.
“임신 가능성에 대한 것입니다.”
“예?”
집사는 자신이 이 대화를 이미 한참 전부터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장로는 그의 반응을 살피다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 늑대는, 정말 광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번식 행위에 집착을 했습니다. 성적인 것을 유희로 즐기는 동물은 많지 않습니다. 인간을 포함해 지능이 높은, 고작 몇몇 동물들뿐이지요. 다시 말해 그 늑대의 목적이 번식이라면? 그리고 알파였기 때문에 오메가를 번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면? 하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말이 되지 않습니다! 동물이, 어떻게 하찮은 존재가 알파와 오메가일 수 있단 말입니까!”
알파와 오메가가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긴 하였으나, 그것 역시 오롯이 인간만의 특징으로 규정지어지고 연구되어 왔었다. 동물 또한 알파일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집사는 처절해 보일 지경이었다. 오직 카일만이 둘의 대화를 담담하게 듣고 있었다. 사실, 알파이든 오메가이든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벤과 끌리는 무언가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상태일 뿐이었다.
“사실 저도 의심했습니다. 동물이 어떻게… 그렇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셨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인간의 모습을 취한 것을 말입니다. 절반 이상 인간의 특질을 가지고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시겠지요. 하지만, 주님의 뜻 앞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저 따라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형제님을 혼돈에서 구원할 수 있을지 생각하십시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믿음을 시험받고 있습니다.”
장로는 임신 검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일의 건강 상태가 호전되었고, 늑대가 인간의 형상을 취할 수 있는 존재인 만큼 알파임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사는 아직도 사고가 지난밤에 멈춰 있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를 다독이던 장로는 카일에게도 검사받을 것을 권유하며 넌지시 말했다.
“형제님, 두려워 마십시오. 만일 형제님이 진정 아이를 잉태한 것이라면, 불임에서 구원받으신 것입니다. 그 늑대는 악의 형상처럼 보이는 성령일 수도 있으니, 의심치 말고 걱정하지도 마십시오.”
오메가로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니까요. 인자한 미소와 함께 장로가 그렇게 말하자 카일은 끄덕이며 안심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결론적으로 일단 벤의 안전은 보장받은 셈이었다. 그거면 됐다며, 카일은 겨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
검사 결과 정말 임신으로 판정되었을 때, 집사는 이제 이 일에 대하여 해탈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이롭다는 것을 끝내 학습한 결과였다. 겉보기에 심각하게 티가 나지 않았을 뿐, 벌써 임신한 지 시간이 꽤 지난 상황이었다. 날이 갈수록 카일의 마른 몸에서 배 부분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벤은 회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도 잠잠해지긴커녕 카일을 가만두지 않고 제 것임을 확인하려는 듯 끊임없이 냄새를 맡고 품에 안으며 핥아댔다.
장로를 굉장히 경계하고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카일이 장로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벤에게 계속해서 어필한 끝에 늑대는 어느 정도 타협한 듯했다. 카일의 설득에 힘입어 벤은 장로에게서 인간의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그를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장로는 벤이 어떤 전능한 존재가 보낸 미신적 존재보다는 야생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알파의 형질을 가진 최초의 늑대와 인간이 배가 맞아 새끼를 낳으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새끼를 낳을 수 없는 두 개체가 섞이게 된 거라고 보는 게 가장 타당했다. 그러나 그런 추론에 관해서는 일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지금은 역사나 과학적 설명에 대해 탐구하려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벤은 장로 앞에서 유독 카일에 대한 소유를 주장했다. 그제야 장로는 그가 왜 그렇게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지 알게 되었다. 카일을 비밀의 방으로 인도한 날, 제 것을 탐했다는 사실을 늑대가 귀신같이 알아차린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장로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며, 한동안 자신을 물려고 달려드는 늑대를 상대하느라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집회에 벤을 데리고 와서 몇 시간씩 언어를 가르치던 장로는 슬슬 새로운 평일 집회를 신설할 준비를 마쳐갔다. 일의 마무리를 위해 카일에게 늑대가 직접 언어를 배우게 함이 어떻냐고 넌지시 물어보면서 그가 본원에서 살도록 부추겼다. 그렇게 하면 둘을 관리하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더 본격적으로 카일을 세뇌할 수 있을 터였다. 장로는 카일을 탐하는 것을 포기한 대신, 다른 방향으로 이용할 계획 세우기를 완수하고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
“하…, 아, 베엔…, 처, 천천히….”
카일은 벤에게 애원했다. 이제 제법 사람다운 말을 할 수 있게 된 벤은 그르렁거림이 섞인 목소리로 키득거리는 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크윽…, 못 해, 네가 너무 좋아서.”
늑대의 음성은 듣기 좋은 중저음의 소리였다. 그가 담아내는 말은 대체로 짧았고, 직설적이었다. 게다가 외설적인 단어를 내뱉는 데 망설임이 없기도 했다. 벤의 성격 자체가 꽤 투박하고 공격적이기도 했거니와, 언어를 배운 상대가 장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로는 벤이 적극적으로 ‘나쁜 말’을 쓰도록 격려했다.
“자지 좋아하잖아.”
“좋아, 조은데, 흐으윽…!”
네발 달린 짐승에 비해 인간이 갖는 이점은 체위가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벤은 갖은 체위로 배가 불러온 카일을 희롱했다. 이제는 완전히 판판한 가슴도 아니었다. 새끼들을 먹일 준비를 하는지, 이전보다 봉긋해져 있었다. 벤은 항상 자신만만하고 다소 위압적인 태도로 자신의 오메가에게 사랑을 퍼부었다. 혓바닥으로 정성스럽게 몸을 핥고 입술도 핥았다. 그러다가 혀를 얽으며 상대를 품에 안고 전력을 다해 박아댔다.
이 모든 행위는 은밀한 자리가 아니라 대중들 앞에서 행해지는 중이었다. 장로는 정 못 미덥다면, 카일이 당신의 것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겠다고 벤을 설득했다. 장로가 그에게 제안한 것은 평일의 비밀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평일에 모이는 사람들을 위한 집회실은 평소 집회를 열던 그곳이 아니었다. 조금 더 은밀한, 지하에 마련된 아늑하고 밀폐된 장소였다. 그들 앞에서 카일은 나신으로 거근을 가진 반려와 관계하는 모습을 보였고, 때때로는 늑대 본연의 모습을 한 벤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 으우…!”
깊숙한 곳에 성기가 푹 처박히자 카일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카일의 몸이 앞으로 무너지지 못하도록 벤은 손으로 단단히 그의 몸을 지탱한 채 한쪽 허벅다리를 붙잡아 큼지막한 것이 어디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했다. 마른 몸에 아랫배만 조금 불룩한 정도의 사내가 그렇게 크고 검붉은 것을 다 집어삼킬 수 있다는 걸 보고도 못 믿는 신도들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그들에게 따라붙었다.
“아…, 우, 앗! 크, 하아…!”
피스톤질이 점점 격렬해졌다. 한 차례 사정해 놓고 또 들이박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일의 금방이라도 자지러질 듯한 신음이 밀폐된 공간에 가득 울리게 되었다. 힘 있게 안을 들쑤시면 마른 몸임에도 불구하고 봉긋해진 가슴과 허벅다리 살, 아랫배가 세차게 흔들렸다. 한 번 내부를 찔릴 때마다 찔끔거리며 물을 쏟아내는 카일의 성기를 주시하던 신도들은 공간에 들어찬 오메가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몸을 서서히 데워갔다.
헌금을 크게 하는 사람들 중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집회실이었다. 장로는 카일에게, 벤에게 사랑받고 있고 병마를 이겨낸 채 임신까지 한 모습을 부끄러워 말고 드러내 보이라고 언질했다. 집회는 벤에게 있어 자신이 얼마나 강한 알파인지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고, 카일에게는 기적의 상징으로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는 행위인 동시에 사람들의 변태적인 성욕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자리였다.
기적에 대한 신화와 그날의 좋은 말,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집회의 ‘메인 쇼’가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흥미로, 혹은 개인의 음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둘의 관계를 관음하러 온 사람들도 차츰 행위가 농밀해져감에 따라 흘러나오는 페로몬에 취해 성적으로 흥분하면서 충동에 휩쓸리게 되었다. 포르노를 틀어놓고 흥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관음이었다.
“흐으, 흑…, 하아, 벤….”
“아직, 아직이야.”
카일이 지쳐서 축 늘어져도 벤은 그를 달래며 한 번만 더 하자고 졸랐다. 야한 목소리로 헐떡대며 근육질의 남성에게 카일이 완전히 정복당하는 것을 본 신도들은 점차 눈앞의 장면에 집중하지 못하고 욕구를 해소하고 싶어져 몸을 들썩였다. 혼자서만 흥분했다면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겠지만. 어느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앞쪽에 손을 가져다 댄 채 자위하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격렬하고 끈적한 정사를 보며 거리낌 없이 외로운 몸을 달래게 되는 것이었다. 종래에 집회는 음란한 사교의 장으로 변모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보통의 집회처럼 매주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임신한 몸으로도 헐떡이며 쾌락을 추구하고 벤에게 매달리는 카일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언제나 비밀 집회실은 꽉 차게 되었다. 특히 집회가 시작하기 전 본원 마당에서 상냥한 얼굴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는, 단정한 차림새의 도련님이 단상 위에서 헐벗겨진 것을 보고 성적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로가 카일에게 처음 느꼈던 것처럼, 야한 얼굴을 한 주제 한없이 금욕적인 평소 모습을 고수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장로는 그들이 내는 특별한 액수의 돈을 각별히 여겼다. 비밀 집회에 참여하는 신도는 돈이 아주 많고 특이 성벽이 있는 베타들, 그리고 젊고 혈기왕성하며 호기심이 많은 알파와 오메가들이었다. 함부로 발설하거나 발을 뺄 수 없는 인물들로만 구성한 집회였고, 만에 하나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신도들 서로가 잔뜩 취한 채 난교하도록 만들었다. 모두가 집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심지어 그 상황을 즐긴 것으로 간주해버렸다. 장로는 충동보다는 미래의 득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사내였다. 절대 그 가운데서 신도들과 몸을 섞지 않고 상황을 통제했다. 이럴 때는 스스로가 베타인 것에 대하여 정말 주의 가호가 따랐다고 생각했다.
“후….”
카일의 몸 안에서 성기가 빠져나오는 순간 벌어지는 구멍 밖으로 정액이 쏟아져 내렸다. 발그레해진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몸 전체가 후끈거리는 동시에 힘이 없어 나른한 감각에 취할 듯, 정신이 몽롱했다. 카일은 벤에게 기댄 채 아직도 쑤셔 박히는 것처럼 울리는 아랫배를 더듬었다. 몸 전체가 성감대가 되어버린 것처럼, 피부 위로 달라붙는 지하의 차가운 공기마저도 자극적인 나머지 절로 몸서리치게 될 지경이었다.
관계가 끝난 시점에선 이미 사람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옆 사람과 반쯤 헐벗고 서로의 몸을 더듬기 바빴다. 이제 할 일은 끝났다는 양, 벤은 카일의 몸을 안아 들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발걸음에 따라 쿵쿵 몸이 울리자 카일은 미약하게 신음소리를 내며 벤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오늘의 집회는 이걸로 끝이었다.
비밀 집회에 몇 회 걸러서 오는 이는 있어도, 한 번만 발을 들인 이는 없었다. 그 어떤 퇴폐적인 클럽이 주는 것보다도 강렬한 엑스터시를 경험하게 된다면, 그 감각을 알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일의 배는 나날이 불러왔고, 이제는 벤이 뒤에서 가슴을 그러쥐고 쥐어짜주면 이따금씩 말간 액체가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곧 태어날 새끼들에게 젖을 물릴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평일 집회 참석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카일이 낳을 아이에 쏠렸다. 당연히 사람의 형상을 한 아이를 낳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짐승을 낳는다면 그거야말로 재미있는 거라며 가학적인 생각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신도들은 알음알음 거기에 내기를 걸기도 했다. 저질스럽기 짝이 없는 내기였지만 사람들은 진지했다.
결국은 아무도 내기에서 승리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카일이 낳은 아이는 총 네 형제였는데, 그중 둘은 늑대의 형상이고 다른 둘은 인간의 아기였다. 서로 전혀 겉모습이 다른데도 아이들은 서로가 제 형제임을 인식하고 물거나 장난치는 등의 행동을 하며 자라났다.
넷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느라 정신없으면서도 카일은 행복하다고 느꼈다. 우선 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기괴하긴 하지만 사람들도 자신을 퍽 좋아해 주는 듯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아본 적도 처음이었으며 그렇게 될 거라 꿈꿔본 적도 없었다. 물론 함께해주는 벤만 있다면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건강한 몸으로 그의 아이까지 낳은 것은 확실히 신의 축복이라고 여겼다. 카일이 이렇게 믿게 된 데는 장로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매일 신앙심에 대하여 설파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행복한 일이라고 세뇌한 덕에 아무런 불만 없이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이를 낳은 직후에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관계하는 수를 크게 줄이게 되었다.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벤은 집회가 없는 날이면 카일을 안는 것 대신 그와 함께 평범히 시간을 보내거나 말을 연습했다. 알아듣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수십 가지가 넘었음에도, 하는 말은 꽤 한정적이었다. 사랑한다는 말, 계속 같이 있을 거라는 말. 거의 그런 내용뿐이었다. 계속 같은 말을 꽤 매끄럽지 않은 발음으로 말해주는데도 즐거워하는 카일이 좋았다. 관대하게 실수를 이해해주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하나뿐인 반려가 사랑스러워서, 그를 영영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반려를 지키고 싶어 했고, 강함을 증명해 보이려 들었다. 아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더라면 당연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눈요깃거리로 전락하는 일에 대해 굴욕감을 느꼈을 테고, 심지어 살해 충동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벤의 절반은 늑대였다. 힘을 과시하고, 자신이 얼마만큼 누리고 있는지를 대놓고 드러내는 혈통을 따르고 있는 짐승이었다. 카일의 향을 맡고 발정해서 헉헉대는 인간들이 불쾌하긴 했으나 결국 카일을 취할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 중 감히 늑대에게 도전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벤은 집회에 참석해 신도들 앞에서 자신의 정력을 과시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더 열성적으로 카일을 느끼게 만들려고 애썼다.
오히려 장로를 언제나 경계했다. 그는 속이 검었으며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종자였다. 동물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그를 보면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우호적으로 굴지도 않았다. 벤은 그를 마주할 때마다 꼬리를 치켜들고 반가운 표정을 짓지 않고 조용히 노려보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할 따름이었다.
*
본원에 들어와 그렇게 아이를 낳고 보내는 나날들은 카일의 일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한때였다. 아예 본원에서 지낸 뒤로는 가끔 집사가 찾아오고 그를 만나 대화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새끼들이 태어난 이후 벤도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달라붙지 않았다. 이제는 아비가 되기도 한 데다 카일이 자신의 짝이란 사실이 공고해졌으므로 그렇게 아이를 갖게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흘리는 달달한 오메가 향이나 햇볕 아래에서 붉은빛의 머리를 한껏 흩날리며 바깥 구경을 하는 순박한 모습을 보면 금방 혈기가 왕성해졌다. 벤은 인간으로 치면 이제 겨우 20대 성인의 나이였고, 한창 힘이 넘칠 때인 탓이었다.
장로는 아버지가 되고 성숙해진 벤 덕분에 카일의 기력이 관리된다는 점을 달갑게 여겼다. 동시에 끊이지 않고 비밀 집회를 열 수준은 되었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었다. 이제 관리할 사항은 그의 새끼들뿐이었다. 과연 인간의 피와 짐승의 피가 섞여서인지, 아이들의 발육은 보통 인간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빨랐다. 특히 늑대의 외형을 가진 쪽이 더 그러했다. 그들은 제 아비를 닮아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져 카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카일은 늑대 형상을 한 자식들이 스스로가 어린 줄로만 알고 어리광을 피우며 달려드는 것도 벤과 어린 시절과 닮았다고 느꼈다. 가급적이면 그들의 장난을 받아주려고 했으나 중형견만 한 새끼 늑대 두 마리가 동시에 뛰어들면 뒤로 나자빠지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벤은 새끼들에게 꽤 엄한 아버지였다. 조금만 카일에게 기어오르려 하면 낮게 짖는 소리를 내거나 손으로 아이들을 들어 어미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면서 서열을 확실히 정리했다. 평소 벤이 어리광피우는 모습을 보면 봤지, 그렇게 새끼들에게 엄하게 훈육할 줄이라곤 상상도 못 했었는데. 카일에게는 아직도 벤에 대하여 새로운 모습을 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한 동시에 감사히 여겨질 뿐이었다.
서열과 규칙을 바탕으로 나름의 질서가 유지되는 모습을 보며 장로는 카일의 가족을 유심히 관찰했다. 지금이야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했지만 영원치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젠간 새끼 늑대들도 자랄 테고, 그들 역시 자신의 짝을 원할 게 뻔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 늑대들은 전부 우성과 열성의 차이만 있을 뿐 알파였다. 아버지 쪽의 체력과 정력을 물려받아서인지 약하고 병든 아이들은 없었으나, 열성 알파로 태어난 아이는 분명 카일 쪽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했다. 지금이야 다들 어리니 형제들끼리 잘 지낸다지만, 커가면서 서열 다툼을 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만 했다.
장로는 계속해서 계산했다. 그들을 상징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사업적으로도 이용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다들 행복해하는 데다 수익도 창출하고 있으니 결코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도이든 아니면 다른 곳에서 구한 사람이든 때가 되면 새끼들도 장가를 보내주는 식으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아마 몇 대를 거치면 굳이 관리할 필요 없이 그들에게 인간의 피가 많이 섞여 평범한 아이들만 태어나게 될 테니, 지금 몇 아이들만 관리한다면 지속적으로 ‘은밀한 집회’를 유지해갈 수 있을 법했다.
비밀 집회는 꽤 충격적인 장면인 동시에 뇌리에 강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한번 집회에 참석한 신도들 중 충격 받은 이들은 아마도 다음 집회까지 수많은 고민과 번뇌 끝에 한 번 더 참석해보고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을 테고. 한 번이 여러 번이 되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참석하면서 페로몬 파티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겠지. 순조롭게 참석자의 현황이 적힌 장부를 넘기며 장로는 음험한 미소를 입 끝에 걸었다.
다만 관리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판이 커지면 잡음이 들리기 마련인데 비해 집회 참석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증가해갔다. 집회를 신설하기에는 카일의 건강과 체력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된다는 보장 또한 없었다. 그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신앙심을 갖고 허리를 흔들어야지, 억지로 착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장기적으로 봐야 했다. 역시나, 새끼들이 충분히 성적으로 성숙한다면 새로운 오메가 후보자를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었다. 기적은 좋은 허울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이가 진짜 기적을 경험한 이든, 아니면 만들어진 기적이든 중요치 않았다. 어느 쪽이든 이익만 된다면 상관없었다.
카일은 종종 비밀 집회뿐만 아니라 일반 집회에도 불려나가 살아있는 기적으로 칭송받았다. 물론, 이 경우에는 멀쩡히 옷을 입고 언제나 인간의 형상을 한 벤과 나란히 서곤 했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을 믿었고 종래에는 믿어야 할 이유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이유는 만들면 그만이었고, 미리 지어낸 이야기가 현실이 되도록 하면 더없는 성인이 하나 탄생하게 되는 것이었다.
“좋은 후보자가.”
장로는 펜을 내려놓고 장부를 덮었다. 일렁이는 불꽃을 보며 생각을 거듭했다. 밝게 타오르는 속불꽃은 카일과 늑대들의 눈동자 색 같았고, 붉은 겉 표면은 그 빨간 머리칼 같다고 생각하며.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오메가인 데다, 카일과 같은 핏줄을 타고난.
결정은 빠를수록 좋았다. 늑대들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한 주먹씩 커져갔다. 인간의 모습을 한 형제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우는 시기인데 반해 그들은 제법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서 강아지처럼 울거나 장난치는 일에서 졸업을 한 지 오래였다. 아직 완전히 성체가 된 것은 아닌지, 벤처럼 인간의 형태로 변하지는 못했으나 날렵해진 주둥이나 날카로워진 발톱이 그들의 성장을 증명했다. 벤에 의하면, 자신의 기원이 확실하진 않지만 성체가 되었을 때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될 경우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그는 자신의 신체적 비밀에 대하여 털어 놓았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늑대의 형상을 한 둘도 자연히 의지만 있다면 언젠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 터였다. 마치 전승에 내려오는 늑대인간처럼. 벤은 아주 능숙하게는 아니지만 늑대와 인간의 모습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아이들도 보통 또래들이 뒤집기를 할 때 걷고 뛰었으나, 늑대 쪽은 벌써 인간으로 치면 사춘기에 접어든 모양이었다. 알파인 형제끼리 페로몬으로 다투고 있는 건 아닌지 장로는 의심했다. 이들 중 오메가는 단 한 명, 카일뿐이었고 지금은 벤이 꽉 잡고 있지만 위계가 무너지는 순간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왜 이 늑대들이 다른 숱한 오메가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였다. 본원을 드나드는 신도들 중 수많은 오메가들이 있었을 터인데. 일반 신도들이 억제제를 꼭꼭 챙겨 먹는다 해도, 평일 집회에 참석하는 신도들은 한바탕 페로몬 샤워를 하기까지 했을 텐데도. 적어도 모든 오메가들이 알파 늑대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몸집을 착실히 불려가는 새끼들을 보면서, 장로는 한 가지 시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카일은 비밀 집회 참석자들에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지만, 언제나 변태성욕자들은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했다. 슬슬 그들의 또 다른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도 있었고, 새끼들의 짝을 찾아줄 시기도 다가오고 있었다. 결단을 내린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일이 머무르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문 앞부터 야릇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카일의 성생활을 방해하기보다는 다른 사제들이 그 앞을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편이 빨랐기 때문에 복도에 울리는 신음소리를 제외하면 주변은 조용했다.
“들어가겠습니다.”
대답해줄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뻔히 알았기 때문에 대답을 듣지 않고 문을 열었다. 새까만 늑대가 울리는 소리를 내며 침입자를 경계했다.
“자, 장로님….”
그 밑에 깔려 실컷 혹사당하면서 기쁜 소리를 내지르던 카일이 고개를 들었다. 늦은 시각에 어쩐 일이냐는 물음을 읽은 장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형제님께, 형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형님은 많, 아요, 아아…!”
벤은 장로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카일을 안았다. 그는 여전히 짐승 같은 생활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에 자식들이 보고 있든, 장로가 드나들든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장로를 경계하는 건 여전해서, 그가 모습을 드러내면 더 억척스럽게 박아대고 카일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려고 기를 쓰기도 했다.
“그, 바로 윗분 말입니다. 그분 얼굴을 못 본 지 꽤 되었군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우읏…! 아, 그, 형님은…! 흐아윽…, 바쁘시다고….”
당연히 거짓이었다. 어린 카일이 충격받지 않도록 가족들과 하인들이 잘 둘러댄 변명이 아직도 유효한 상황이었다. 장로는 카일의 많은 형제 중 바로 위의 형이 집안과 의절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서 운을 띄운 것이었다. 다른 신앙심이 투철한 형제들이라면 일이 조금 더 쉬웠겠지만. 애석하게도 카일의 또 다른 오메가 형제는 그가 유일했다. 그는 카일과는 다르게 우성 오메가인지,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다만 신앙심이 없어서 신성회를 꽤 싫어했던 걸로 기억했다. 그의 얼굴을 떠올려보던 장로는 카일을 부추겼다.
“저런…, 형님이 보고 싶진 않으신지요?”
“보고, 싶어요…. 형님은, 아…! 좋은 분이신데….”
“기왕이면, 이렇게 병이 나아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으실 텐데요.”
“물론이죠….”
노팅당하면서 카일이 희미하게 웃었다. 벤이 낼름거리면서 혀를 핥고 얼굴을 들이대다시피 하면서 부비적대자 털에 파묻혀서 웅얼거리는 소리로 들렸지만 분명 형님이 보고 싶다는 뜻으로 장로는 이해했다.
하여간, 대화를 방해하기는.
둘이서만 따로 시간을 내고 싶어도 벤이 극구로 경계하면서 반대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런 시간에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장로는 카일이 털 밑에서 고개를 내밀자 본론을 말했다.
“형님을 이곳으로 초대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와 주실까요…? 안 오신 지 한참 됐는데.”
“직접 편지를 보낸다면, 와 주실 겁니다.”
“주소도 모르는걸요.”
“그건 형제님의 아버지께서 아실 테니까요. 제가, 반드시 형님께서 여기로 올 법한 근사한 문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꼭 편지쓰기를 도와주셔야, 윽, 벤 간지러워.”
카일은 노팅당하는 것을 즐겼다. 인간이 제아무리 자유자재의 체위를 구사하고 더 밀접한 교류를 할 수 있다 해도 노팅까지 따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몇 번씩은 꼭 늑대 모습으로 관계를 가지곤 했다. 장로는 그런 모습이 참 솔직하다고 여겼다. 카일은 무지했을 뿐, 자제하지 않았다. 쉽게 유혹에 흔들렸고 충동에도 약했다.
과연 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그의 형은 어떨 것인가? 기억 속의 그는 고집 세고 꺾기 힘든 종류의 사내였다. 반항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청소년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본디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던 장로는, 관계하느라 바빠 헐떡대는 카일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그의 형은 신성회를 이단을 넘어선 사이비로 규정하고 끔찍한 집단으로 취급했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방법이 반드시 먹히리라 믿었다.
별다른 문장은 아니었지만, 장로는 일부러 관계 직후 손에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하는 카일에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삐뚤빼뚤하게 휘갈겨 쓴 글씨는 누가 봐도 엉망이었다. 카일은 조금 더 잘 쓰고 싶어 했지만 장로는 낮에 아이들이 깬 시각에는 바빠서 편지를 쓸 시간이 없으니 이걸로 마무리하자고 말했다. 정확히는, 문구가 아닌 필체가 효력이 있을 것이었다. 사이비 종교에 갇힌 동생이 보낸, 엉성한 글씨체의 보고 싶다는 편지. 그가 가족에 대해 아예 관심을 끊었든, 거부감을 느끼고 찾아오지 않는 것이든 신경을 자극할 만한 강렬함이 담긴 편지임은 분명했다.
장로는 가장 먼저 성적으로 성숙할 알파 개체에게 어울리는 짝인지, 그의 형을 시험하고 싶었다.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하면서 오메가이기까지 한다면, 다른 어떤 오메가보다도 확률이 높았다. 만일 아니라면 아쉽게 되겠지만.
순종적인 사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이 복잡했으며 실패 확률도 존재했다. 만일 그를 불러들였는데 카일의 아이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자신의 동생이 사이비 종교에 갇혔다고 길길이 날뛰는 청년을 달래는 데 시간을 소비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구미가 당겼다. 어차피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카일의 얼굴만 보고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진상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아마도 늑대 아이들이 카일의 자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저 몸이 회복된 동생이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다, 정도의 불편한 사실만 안고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이건 최악의 상황이었고, 최상의 결과는 카일과 같은 길을 걷는 쪽이었다.
대중들은 기적을 원했다.
그들은 이야기를 갈망했다. 장로는 무신론자가 강렬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만큼 기가 막힌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했다.
3. 라이너스 에반
편지지를 들고 있는 길고 가는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원래도 희고 뼈마디가 도드라져 보이는 손이었지만, 손의 주인은 손바닥과 손가락의 붉은 기가 싹 가시도록 억세게 편지지를 쥐다가 이내 구겨버렸다.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종이를 박박 찢어 버리기까지 했다. 붉은 머리의 사내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씨근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급스러운 편지지는 조각을 맞춰보면 내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정도로 성기게 찢겨나간 상태였다.
[친애하는 나의 아들, 라이너스에게.]
담담하고 온화한 인사말로 시작한 편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지만, 라이너스는 이미 연을 끊다시피 한 집안에서 이렇게 끈질기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정말 진절머리 난다고 생각했다. 장남도 아니었을뿐더러, 가문을 책임질 의무도 없었고, 광적으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있는 아버지는 어떤 면에 있어선 치부로 생각되어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기까지 했다. 그가 무슨 종교를 믿든 거기에 돈을 얼마나 퍼붓든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그의 인생이었고 자신은 에반이라는 성을 거의 버리다시피 한 상태였으니.
그러나 대체의학 따위를 들먹이며 막냇동생을 깡촌 별장에 처박아 놓고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는 꼴은 눈뜨고 봐주지 못할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는 사람이었고, 그게 바로 크나큰 결점으로 작용했다. 관계가 어떻든 간에 가족으로 태어났으면 서로를 사랑해 마지않고 반드시 어딜 가든 함께해야 하며 각박한 세상에서 결국 남는 건 혈육뿐이라고 굳건히 믿는 보수적인 사내였다.
동생 문제에 관해 의학으로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만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 그만하십시오, 하는 목소리를 냈으나 소용없었다. 그럴 때마다 광기에 물든 금빛 눈동자는 처량하게 일렁거렸고, 어떻게 그렇게 매정한 말을 혈육에게 퍼부을 수 있냐는 힐난 섞인 목소리가 뒤따랐다. 겉으로 보기엔 부를 축적한 번듯한 신사이면서 왜 그런 헛된 것에 매달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듯했다. 어릴 적부터 그 문제에 대해선 ‘애초에 평생 약물을 달고 살면서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해하고 일반적인 삶을 살 수 없는데,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볼 수 있는가? 고통뿐인 삶에 가치가 있는가?’ 따위의 회의적인 질문이 잇따랐다.
카일과는 나이 터울이 제법 되었다. 이제 라이너스는 30대였고, 벌써 결혼도 해서 가정을 꾸린 사내였다.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오메가로 태어나 그 또한 험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카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카일이 태어난 이후로 라이너스에게 향해 있던 모든 관심은 막냇동생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싫거나 질투 나는 것이냐고, 그래서 이렇게 광적으로 막내 아이에게 매달리는 아버지가 미운 거냐고 자라면서 수도 없이 자문했으나 이렇다 할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잘 자라기만 해도, 목숨 줄만 잡고 있어도 기적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온 가족이 막내를 걱정하고 그 아이를 불쌍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을 평생토록 복용해야 하는 건 본인도 마찬가지였고, 직접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동생만큼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도 꼬박꼬박 약을 먹는 삶이 즐겁지 않다는 것쯤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한창 폭풍 같은 사춘기를 맞이했을 때 카일을 신성회의 본거지 바로 옆 별장에 보내는 것을 보고 라이너스는 드디어 아버지가 미쳤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집을 떠나, 집안의 지원 없이 약을 타 먹으면서 남들과 똑같이, 별 탈 없이 살아주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다른 형제들도 결코 제정신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하나같이, 막냇동생을 위해 돈을 쓰고 약을 지어주고 좋은 별장을 알아봐 주었지만 그 누구도 그 아이와 대화를 해주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별장에 방문했다는 아버지나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대화는 하나같이 ‘병세는 좀 괜찮냐’로 시작해서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렴’으로 끝났다.
이 모든 게 하나의 거대한 종교 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두들 병간호에 지친 것인지, 아픈 환자를 사람이 아니라 종교적 상징으로 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막내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의례였으나 그 애가 무엇을 좋아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흡사 집에 대충 떠다 놓은 물에 기르는 물고기처럼 가끔 밥을 주고 환경을 개선해주면서 방치하듯 관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속으로 조용히 비난했다. 어차피 얼마 안 가 죽을 거니 미래 계획 같은 건 없어도 그만인가? 그럴 거면 왜 생명을 억지로 연장해 주고 있는 것일까?
라이너스는 서점에서 책을 사면 꼭꼭 카일의 별장으로 보내주곤 했었다. 그가 자신처럼 직접 발로 세상을 돌아다닐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나마 세상을 들이마시길 희망한 까닭이었다. 한때는 카일은 앉아만 있는데 자유롭게 학교도 다니고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건지 고민하며 미안해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런 죄의식이 모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라이너스는 그때부터 가족들의 화법이 싫어졌다. 너는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니, 따위로 시작하는 말들. 카일이 불행하기 때문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 말인가? 내가 그의 행복을 뺏고 있는 건가? 행복이 그런 식으로 총량이 정해져 있고 남과 비교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개념이라면 차라리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라이너스가 신성회에 이를 가는 건 바로 그 탓이었다. 원래는 평범하고 유복한 가정이었는데. 그 빌어먹을 종교를 믿게 된 뒤부터 가족들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묘하게 공격적이고 가학적인 발언들을 종교로부터 곧잘 수용해왔고, 모든 불행은 우리가 성실하지 않고 못된 것들을 꿈꿔왔기 때문이라는 허황된 말도 입에 담아냈다. 그렇게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면 도대체 언제 행복해질 수 있는 거냐고, 왜 잘되면 신 덕이고 안 되면 내 탓인 거냐고 대들었던 경험도 있었다. 라이너스가 심한 말을 하면서 대들었을 때 아버지는 훈계하거나 방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더니 바로 다음 날 그를 신성회 본원으로 보내버렸다.
거기서 처음 현재의 장로를 만나게 되었다. 회백색으로 보이는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라이너스는 그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눈빛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도 시간에 매번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궁리했고, 나긋한 말씨로 말을 거는 장로에게 빈정거리는 대신 최대한 말을 잘 듣는 척했다. 아픈 동생을 만나보고 싶다며 눈물짓는 등 갖은 노력을 해서 최대한 이 유배 기간을 줄이고자 했다. 최악의 여름방학이었다.
그때 당시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카일은 몇 년 전 별장이 아닌 집에서 함께 살던 때에 비해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조금 더 자랐나? 하고 여기저기 살폈으나 여전히 너무 말라 있었기 때문에 몇 센티미터 자랐다고 해도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였다. 카일은 오랜만에 방문한 형제를 진심으로 환영했고, 이제는 스스로 걸어서 주변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었다. 이게 다 기도 덕분이라고 말하는 하인에게 몰래 눈을 흘기며 라이너스는 몸 관리 잘하라는 영양가 없고 틀에 박힌 덕담 대신 책을 건넸다. 책상에서 이전에 선물했던 책들이 꽤 낡아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역시 책을 선물로 가져오길 잘했다고 속으로 끄덕이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없는 것에 애석해했다.
당연히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영양식을 먹으며 의사의 집중적인 관리를 받는다면 그 어느 병이라도 호전되는 게 뻔한 것을. 기도 덕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을 보며 여기 있다가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도 세뇌당하고 말 거라고 생각했었다. 본가 사람들은 그간 들인 돈과 믿어온 기간이 있으니 의심이 들더라도 투자한 게 아까워서 믿고 있을 거라 추론한 적도 있었는데, 고용인들까지 한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전부 한통속이며 여기 멀쩡한 사람은 없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다. 라이너스는 집구석에 더는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본가로 돌아오자마자 짐을 챙겨 떠나버렸다.
지원 없이 오메가로 살아남는 건 어린 시절 투정 부리던 것과 격이 달랐다. 당장 갈 곳도 미래 계획도 없는데 비싼 억제제와 각종 약물들은 필요했고, 주기적인 건강관리도 필요했으며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사회적 불이익도 감내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사이비의 마수가 뻗친 집보단 낫다는 생각 하나로 버텨냈다. 그렇게 소식을 끊고 살길 몇 년째 되던 어느 날이었다. 집 앞에서 쭉 기다리고 있던 집안사람을 늦은 밤까지 시가지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던 길에 마주했을 때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크고 건장한 체격의 사내를 보자마자 혹시 오메가인 걸 알고 해코지하거나 억지로 몸을 취하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긴장하며 경찰을 부르려 했었다.
라이너스 도련님, 하고 부르는 상대를 아연실색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늦은 시간에 뭐 하고 있는 거냐고 화를 냈던 기억이 생생했다. 집에서는 답장을 하든 안 하든,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발신지를 보지 않고도 누가 보낸 편지인지 알 수 있었다. 고급지고 두꺼운, 향이 나는 종이에 멋들어진 필체로 글을 써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편지 말미는 고정적인 문장으로 끝나곤 했다.
[사랑을 담아, 아비가. 우리는 언제든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럴 마음은 없었다. 벌써 이렇게 편지를 받게 된 지 5년째였다. 집안과 관련된 사람들은 번호를 모조리 차단해 놓았고, 함부로 이메일조차 보낼 수 없지만 편지만큼은 예외였다. 거처를 옮겨도 그들이 끈덕지게 따라붙어서 신경쇠약증에 걸릴 지경이었던 시절도 존재했었다. 라이너스는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으며, 자신은 없는 자식으로 쳐달라고 의사를 밝혔으나 그럴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차라리 혼자 살면 불쑥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거나 모르는 번호 혹은 발신인으로부터 연락이 올 때의 걱정이 덜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진지하게 미래를 고려하면서 교제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에게 이 사실에 대하여 밝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녀는 평범한 베타였으며, 오메가에게 편견을 갖지 않는, 주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비록 부유한 가문 같은 것은 소설 속에나 나오는 일 혹은 가끔 뉴스에 나오는 정도의 커다란 집안들이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시민이었으나, 오히려 라이너스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에게 이해받을 때는 마음 깊은 곳 부스러졌던 상처들을 보드라운 손길이 어루만져 주는 기분이었다.
오메가라는 사실을 털어놓기까지도 꽤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그녀에게서 당신이 오메가이든 알파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는 답을 듣는 데 성공했다. 라이너스는 살면서 그때만큼 벅찼던 적도 드물 거라고 생각했다. 풍랑이 멈추지 않는 험난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비밀스러운 안식처와도 같다고 여겼다. 이대로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은연중에 내비쳤고 그녀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집안 문제에 대하여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하는 한편, 본인이 오메가이기 때문에 아이가 없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고 생각하며 몇 달을 골몰했었다.
참 이해심이 깊은 여자였다. 남편이 오메가라 아이를 낳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 알고도 프로포즈를 받아주었고 단둘만 있는 미래를 쓸쓸하거나 불안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어찌 보면 오메가에 대해 차별의식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부분일지도 몰랐다. 라이너스는 그 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며 프로포즈를 받아준 순간 현재 아내가 된 그녀의 무릎을 끌어안고 오열했었다.
결혼을 앞두고 남은 문제는 집안뿐이었다. 예비 신랑이 본인의 집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을 통해 라이너스가 집안과 사이가 안 좋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하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결혼식은 우리 둘만 작게 해도 상관없다고 운을 띄웠다. 그 제안이 너무도 고마웠으나 언제까지고 비밀로 하거나 둘만의 공간에 집안사람들이 훼방을 놓도록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라이너스는 거의 7년 만에 집안과 담판을 짓기 위해 방문했다. 이제는 꽤 노쇠한 기색이 희미하게나마 감도는 아버지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자신의 끈덕진 편지 공세가 기어이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퍽 감격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라이너스는 대뜸 결혼할 거라는 말부터 꺼냈다. 에반은 그에게 어떤 가문의 아가씨냐고 물었고, 라이너스는 가문도 없고 평범한 베타인 아가씨라고 대답했다. 다른 가문의 자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한 듯했으나 오메가인 아들이 결혼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며 하객을 얼마나 부를지 셈하던 나이 든 사내는 혼자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라이너스는 그의 망상을 더 들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딱 잘랐다. 결혼식은 둘이서만 올릴 거고, 앞으로도 조용히 살아갈 테니 제발 놔 달라고. 아버지가 가족에 대한 집착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타협이 없는 그를 넘어오게 하려면 무리수를 두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라이너스는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데리고 본가로 돌아오겠습니다.’
본가로 돌아올 일 없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태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아이를 걸고 이런 한심한 약속이나 하는 자신이 경멸스러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이를 데려올 테고, 그 아이에게 에반 성을 쓰게 할 테니 결혼식에 참석하려 하지도, 집에서 축하를 명목으로 어떤 것도 보내려고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연락 또한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으나 에반은 그것만은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며 답장은 바라지 않을 테니 편지만 보내게 해달라고 아들에게 간청했다. 매정한 아들에게 간청하는 아비의 모습은 이 일에 관하여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혀를 찰 만한 광경이었으나 라이너스는 흔들리지 않고 싸늘한 얼굴로 혈육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이 작자들은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해서 재화와 시간, 그리고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라고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좋으실 대로 하라고 통보하듯 말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가를 떠났다. 이후의 삶은 순조로웠다. 가끔 예기치 못하게 편지가 날아오는 것을 제외하면 한 번도 본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지내왔었다. 문득, 아무 죄 없는 막냇동생은 찾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방문했다는 소식이 아버지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감당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질까 싶어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가족들을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욕했지만 에반의 피가 흐르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라이너스 역시 마찬가지였고, 정말 몇 년 안에 동생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척진 것처럼 살아가는 자신에게 가족에게서 느끼던 환멸감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라이너스 에반이 일그러진 얼굴로 편지를 찢어버린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편지에 카일의 소식이 담겨있던 탓이었다. 평소라면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았겠지만, 이번만큼은 직접 눈으로 내용을 확인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편지 봉투의 색이 평소와 달랐다. 에반 가에서는 특별한 내용을 담은 편지는 내용에 따라 흰색 이외의 봉투색을 채택하는 전통이 있었다. 주황색은 집안의 대소사 소식을 알릴 때 사용하는 봉투였다. 예전에 형님이 결혼할 때 청첩장을 그 봉투에 넣는 것을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열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집안에서 형제 중 결혼을 하지 않은 건 카일뿐이었고, 결혼 소식이 아니라면 집안의 소식을 알릴 일은 부고 정도만 남아 있었다.
설마 죽은 건가?
동생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손을 떨며 봉투를 열어본 라이너스는 편지 내용을 읽고 분노에 차 폐부로부터 끌어올린 깊은 탄식을 내뱉게 되었다. 이전에 집안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와 함부로 집 근처를 서성였을 때만큼 화가 났다. 편지가 알리는 바는, 카일이 결혼을 했으며 이미 아이도 낳았다는 소식이었다. 결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가 죽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다고 졸랐다면 백번 양보해서 했을 수도 있다지만 아이를 낳았다는 내용은 읽고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회임하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엉망인 몸인데 누가 아이를 낳았다는 건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카일은 오메가였고 다른 사람을 회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안 될 테니 낳는다면 그 애가 낳았을 텐데.
‘라이너스 형님이 보고 싶어요.’
게다가 봉투에는 아버지의 편지뿐만 아니라 카일이 보낸 편지도 동봉되어 있었다. 이때까지 카일이 자신을 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도 없었고, 편지를 보내는 일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편지는 카일이 썼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급하게 휘갈겨 쓴, 메모에 가까운 글이었으며 심지어 글씨체도 엉망이었다. 카일의 편지를 읽었을 때 섬칫한 감각이 발끝부터 올라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라이너스는 몸서리를 쳤다. 누군가 질 나쁜 유령 괴담을 말했을 때보다 더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분개해서 그것을 구기다 못해 찢어버린 것이었다.
그 어리고 몸도 약한 아이한테 미쳐버린 사이비 놈들이 결국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짐작한 라이너스는 깊은 혐오감에 몸을 떨었다. 그걸 아버지가 묵인했다는 것도, 이 상황을 기쁜 듯 서술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광기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듯했다. 카일이 완치되었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생이 단명하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허황된 꿈에 젖어 현실을 외면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라이너스는 소파에 앉아 화를 삭이며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더 늦기 전에, 동생을 놈들이 죽여 버리기 전에.
만나야겠다고. 가능하다면 그 애를 사이비 가족들의 마수에서 빼 오든 아니면 더는 학대당하지 못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
샛노란 밀밭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자동차 한 대가 부드럽게 주행하고 있었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 때문에 차 꽁무니에 뿌옇게 먼지가 일었고 간혹 가다 돌부리가 있는지 자동차는 털걱거리는 소음을 뱉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시골처럼 보이는 곳을 아주 쉽게 주행했다. 그 말은, 자신처럼 자동차를 몰고 이 좁다란 길을 오고 간 사람이 많다는 의미였다.
라이너스는 누군가의 차에 실려서가 아니라 제 발로 이 길을 찾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0대 때 기억과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촌동네. 작고 평화로운 시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이비의 온상인 암울한 구석. 전형적인 집촌 형식이었다. 마을에 도달하려면 마을 사람들 소유의 넓은 밭을 지나야 했고, 그제야 마을 어귀부터 다닥다닥 모인 농가들을 발견할 수 있는.
하지만 이제 라이너스는 30대였고, 마을의 시간도 마냥 정체된 것만은 아니었다. 20년간 전국의 신도들 돈을 빨아먹고 함께 성장해서 이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게 된 마을 어귀를 지나온 라이너스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문제는 순전히 집안 문제였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주말 동안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고, 집안일이라고 일러두고 이곳으로 향한 상태였다.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한편, 멀리 다녀와야 하니 무리하지 말라고 안아주는데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랬다. 이제 가족은 그녀였지, 편지 보내는 일에 집착하는 광신도 무리가 아니었다.
집을 나온 뒤로 한 번도 카일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그가 어떻게 변했을지 내심 두려웠다. 애초에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억 속의 카일은 언제나 희미한 인상의, 희고 마른 몸과 집안 내력인 불타는 것처럼 새빨간 머리칼을 가진 아이였다. 한 손으로 양 손목을 붙잡을 수 있을 정도로 살이 빠져있는 병자였는데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건지 아직도 납득하지 못했다. 이제는 아버지를 속이고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카일의 아이가 아닌데도 빨간 머리를 가진 아기를 데려다 놓고 거짓말을 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라이너스가 생각할 수 있는 범주는 딱 거기까지였다.
비탈길을 올라가 별장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볕을 받아 머리카락이 더 붉게 타올랐다. 라이너스는 겉보기엔 키도 크고 날렵한 턱선을 자랑하는 청년이었다.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을 봤을 때 아무도 30대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젊어 보였다. 짙은 눈썹은 꽤 급한 경사로 호선을 그리고 있었으며 그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으로 보이게끔 하는 데 일조했다. 진한 금빛 눈동자 또한 집안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형질이었다. 라이너스는 카일보다 조금 더 각이 잡히고 키가 큰, 만일 카일이 아프지 않고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늙어갔다면 이랬을 것이다, 하고 상상할 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절세의 미인이라고 칭할 정도는 아니어도, 길에서 흔히 보기 힘든 미남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라이너스 역시 오메가였기 때문에 호르몬과의 싸움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약은 몸의 털을 더디게 자라게 만들었고, 덕분에 면도를 자주하는 수고로움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호리호리한 몸매나 볕에 약한 희멀건 피부, 히트사이클에 시달리는 등의 번거로움 역시 언제나 뒤따라 붙는 문제였다. 어릴 때부터 다른 형제들이 이렇게 미형으로 잘생긴 건 혹시 오메가인 덕이냐고 물었을 때마다 치를 떨었던 기억이 있었다. 차라리 추남이어도 좋으니 이 불이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생각이었다. 태생이 모든 것을 결정하진 않지만, 꽤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지독하게만 느껴졌다.
“…계십니까.”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문이 열리고 집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라이너스를 보자마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라이너스 도련님?”
“…카일을 만나러 왔는데. 카일은 어디에 있지?”
“도련님은 여기 안 계십니다.”
대접은 할 필요 없다는 듯 라이너스는 집 안에 들어가서도 앉지 않고 서서 말을 했다. 카일이 낳은 아이가 몇 살일지는 몰라도 별장 안에 어떤 식으로든 아이의 흔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별장 안은 깔끔했다. 오히려, 전보다 하인들도 줄어들고 전반적으로 적막해졌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도련님은 별장이 아니라 본원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신성회 본원에서 기도하며 살고 있다는 말에 라이너스는 기가 막힌다는 듯한 반응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의 추궁하는 듯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양 집사는 아주 온건한 태도로 무슨 질문이든 받아줄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가 보필하는 것보다… 장로님의 곁에서 남편 분…, 과 지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 어르신께서도 허락하셨고요.”
“남편이라니, 나는 그 애가 자식은커녕,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그렇지만, 라이너스 도련님께서는 수년간 자취를 감추고 계셨지 않습니까? 여기에 오신 것도 분명, 카일 도련님이 먼저 어떻게든 서신을 보내서이겠죠.”
“그건….”
흡사 자신의 허락 없이 짝을 지어 아이를 낳은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처럼 말하는 라이너스에게 집사는 나긋나긋하지만 뼈가 든 말로 응대하였다.
“도련님이 주인 어르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카일 도련님에게까지 등을 돌리신 것처럼 행동하셨으니…. 아무도 알릴 생각을 못 했던 거겠지요.”
“그래, 그 부분은… 됐다. 그렇다면 카일은, 신성회 본원에서 지내고 있는 건가? 의사는? 아이를 낳고도 몸이 성한지….”
“도련님은 아주 잘 계십니다. 네 형제를 낳으셨고,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에 주말마다 본원 집회에 참석하러 가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집사는 라이너스의 말을 자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라이너스는 순간적으로 아주 불길함을 느꼈다. 무언가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집안의 고용인이 집안과 척진 사람이라고 말을 끊는 등의 무례한 대응을 해서가 아니었다.
“네 형제라고?”
쉬지 않고 임신을 했단 말인가? 쌍둥이라고 해도 최소 2년이었고, 그 기간 동안 카일이 내내 임신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도대체, 어느 놈이 내 동생한테 접근한 거냐? 어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
“그게…. 저희도 몰랐습니다. 저희가 알았을 때는 도련님이 이미 임신하신 상태여서….”
“뭐라고?”
거의 멱살을 잡을 것처럼 몸을 바짝 들이대고 위협적으로 말하는 라이너스에게 집사는 말끝을 흐리며 변명을 했다. 지난날, 늑대와 교미하고 있던 카일의 모습에서 하인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고, 다들 카일이 늑대와 그런 관계였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러나 곧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 장로의 감언이설 등을 통해 이것은 기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비록 방법이 인간성을 다소 저버리는 것이긴 해도, 병석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하던 꼬마 아이가 건강해져서 임신도 할 수 있게 되고 하루에 몇 번이고 늑대를 상대해도 탈진하지 않을 정도의 체력이 생긴 것은 확실한 기적이었다.
“도련님의 남편 분을 만나고 싶으신 거라면, 신성회로 가보십시오…. 저희는 아는 바가 많이 없습니다, 다 장로님의 주관이니까요.”
“그 남편이란 놈을 장로가 붙여준 건가?”
라이너스는 으르렁대듯 쏘아붙였다. 장로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불쌍한 카일은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에게 이 오지에 방치당하다시피 하며 알지도 못하는 남성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어느 것 하나 미치지 않은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며 라이너스는 이를 갈았다. 형형하게 빛나는 노란빛 눈동자에 집사의 질려버린 얼굴이 비쳤다. 집사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강력하게 부정을 표했다.
“아, 아닙니다! 그, 그분은…. 도련님이 직접 데려오신 분입니다.”
“하?”
갈수록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반복되자, 라이너스는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문 쪽으로 향했다.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시간 내줘서 고맙네.”
“도련님, 카일 도련님이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부디, 그분을 나무라지 마시고 상냥히 대해주십시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하니 신경 쓸 필요 없어.”
설마 그 아이를 다그칠 수 있을 리가. 최대의 피해자인 아이에게 윽박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이 추악한 시골 마을이 역겹고 구역질 날 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멀어져 가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들으며, 집사는 조용히 기도했다.
“부디…. 라이너스 도련님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원의 앞마당은 한적했다. 차에서 내린 라이너스는 본원의 마당에서 큰 검은 개와 눈이 마주쳤다. 밤하늘처럼 검은 털에 노란 눈동자가 박힌 털짐승은 가만히 서서 짖지도 않고 라이너스를 응시했다.
개도 키웠던가?
개 치고는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들에 사는 들개, 혹은 늑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낯선 이가 왔는데도 짖기는커녕 빤히 쳐다보는 게, 잘 길들여졌거나 아니면 신도로 오인받은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인 듯했다. 어찌 됐든 썩 달갑지 않은 시선이었다. 목줄도 묶여있지 않은 개였기 때문에 혹여 물기라도 할까 봐 라이너스는 빠르게 그 옆을 지나쳤다. 어쩐지 따가운 눈총이 뒤통수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본원의 안으로 들어간 라이너스는 여전히 음침하고 다 낡아빠진 건물을 고수하고 있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돈을 갈퀴로 쓸어 모았을 게 뻔한데, 검소한 이미지를 위해서인지 건물은 내부만 리모델링하고 허름한 외벽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신도들은 멀리서부터 찾아와서 그때 그 시절의 외형을 그대로 간직한 겉모습을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어릴 적 강제로 이 건물에 갇혀 기도하던 기억이 떠올라 라이너스는 초장부터 강한 불쾌감을 느꼈다.
“계십니까.”
입구에서 소리쳤다. 빈 집회실은 어두컴컴했고, 교단 쪽만이 천장에 난 창을 통해 햇빛이 직렬로 내리쬐고 있었다. 나무 의자 특유의 냄새와 더불어 폐쇄적인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습한 냄새를 맡은 라이너스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항상 집회실에 사람이 꽉 들어찬 모습만 봐오다가 이렇게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니 흡사 금지된 영역에 발을 들인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손님이 오셨군요….”
소란을 듣고 밖으로 나온 장로는 라이너스를 발견하고 눈가가 가늘어졌다. 말 안 듣는 10대일 때 봤던 것 같은데. 어릴 적의 얼굴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지만 그는 말쑥하게 키가 큰 남성이 되어 있었다. 더더욱 구미가 당겼다. 라이너스 역시 장로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군데군데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눈가가 처졌지만 그 소름끼치는 푸른빛의 눈동자는 여전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그야 아끼는 동생의 부름으로 오게 된 것이겠지만. 라이너스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는지 빠짐없이 알고 있었으나 장로는 모른 척 그에게 물었다.
“카일이 여기서 지낸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한 것입니까? 주치의라면 어차피 별장에 모실 텐데, 굳이 여기서 지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가장 불만스러웠던 사항부터 단도직입적으로 꺼내었다. 라이너스의 질문에 장로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전부 형제님의 선택이십니다. 저는 그분의 선택을 존중했기 때문에 따로 거처를 마련해 드린 겁니다.”
“정말로 그 애의 자의적인 선택이 맞습니까?”
불신이 담긴 물음이었다. 카일이 선택했다 하더라도, 장로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걸 과연 의지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지 라이너스는 강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의심이 많으시군요. 직접 만나서 물어보십시오. 안 그래도, 당신을 보고 싶다고 했었으니까요.”
따라오라는 듯 장로는 고갯짓을 하며 먼저 뒤돌아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웅장한 건물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에 대하여 깊은 이질감을 느끼며 라이너스는 그를 뒤따라갔다. 어째서인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야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사제복을 입은 이들이 일제히 장로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어릴 적에도 사제들을 만났었으나 그들은 그리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었다. 어째서인지 그 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자신을 곁눈질하고 이방인 취급하는 것 같다고 느낀 라이너스는 눈썹을 꿈틀대며 장로의 뒤를 밟았다.
“여기입니다.”
장로는 작은 문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
“형제간의 상봉에 저는 빠져 있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당신께 주님의 가호가 함께하길.”
가호는 얼어죽을. 정확히 라이너스는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불쾌감과 불안감, 죄책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먼저 찾아왔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이곳을 떠나자고 하면 카일이 들어주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이 카일을 위해 하는 말은 전부 가족을 척지고 있기 때문에 반감을 갖고 이간질을 하기 위해 하는 말처럼 들릴 것 같았다.
“카일러스?”
“라이너스 형님!”
의자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킨 건 아이가 아니었다. 거의 가슴팍을 지나쳐 턱 끝에 닿을 정도로 키가 큰 사내였다. 기억 속의 카일은 분명 키도 작고 빼빼 마른 소년이었는데, 이제는 앳된 티를 벗어던진 성숙한 모습이었다. 전보다 살도 붙었고 훨씬 보기 좋은 얼굴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지요.”
“아니, 아니야, 널 보러 오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좋아 보이네.”
“이제는 꽤 건강해졌으니까요. 형님은 잘 지내고 계셨었나요?”
“그럼. 나는 언제나 잘 지냈어.”
동생이 건강해졌다면 기뻐야만 했는데. 라이너스는 조금 충격받은 듯한 얼굴로 얼떨떨하게 서 있다가 앉으라고 의자를 빼주는 카일 덕에 자리에 앉게 되었다. 정말로 기적이라도 일어난 걸까? 생기 있어 보이는 동생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는 언제나 죽음에 한 발 걸쳐있는 몸이었고, 그를 통해 죽음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반강제적으로 주입받았던 청소년기의 시절은 결코 좋은 기억이라고 할 수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에 라이너스는 어떻게 하면 카일을 여기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준비해 뒀던 대본들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햇살을 머금기라도 한 것처럼 빙긋 웃는 얼굴은 전형적인 행복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못 보던 사이에 변하셨을 줄 알았는데, 정말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이시네요.”
“너는, 꽤 키도 자라고 튼튼해진 것 같네. 잘되었어…. 아버지가 좋아하시겠군.”
“물론이죠, 아버지도 뵙고 싶지만, 아무래도 아직 먼 길을 떠나는 것은 조금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시간을 내실 수 있다면, 아버지께서 절 보러 여기로 오시겠죠. 집회에도 참석하실 겸 말이에요. 요즘은 새로운 사업 때문에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아, 그래, 그랬지.”
집회라는 말을 듣자마자 라이너스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랬었다. 제아무리 동생이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보통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가족이 사이비에 미쳐 있고 이곳이 사이비 소굴이며 결정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외간 남자와 짝을 지어 아이까지 낳았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그래…, 듣기로는 벌써 결혼을 했다던데.”
“네…. 라이너스 형님께도 청첩장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유감이었어요. 조금 비공식적으로 장로님 앞에서 식만 올린 거라 사실 결혼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식이었거든요.”
카일은 조금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형님은커녕, 아버지와 모든 다른 형제들도 참석하지 못한 자리이니 어찌 보면 정상적인 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의식이었다. 어차피 벤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급하게 식으로 맺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기도 했다.
“카일, 괜찮은 거 맞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엇을… 말하시는 건가요?”
라이너스는 떨지 않고 말하기 위해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카일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되물어왔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동생이 맞기는 한 건가? 정말 한 치의 강압적인 요소도 없이 이 아이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일인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누가…, 억지로 결혼을 시켰다거나. 아이를 낳았다는 말도 들었어. 당연히, 고생했을 거 아니야.”
“억지로 결혼한 건 전혀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음…, 물론 아이를 낳는 건 힘든 일이긴 했어요. 그렇지만 조금만 아프다고 말해도 바로 의사 선생님께서 달려와 주셨고 벤도 엄청 신경 써줬고. 처음 겪는 일이라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라이너스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카일은 차분히 잘 지내고 있음을 설명해 나갔다. 두려운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하기엔 양심이 아팠다. 출산을 하기까지 물리적인 고통도 빈번하게 느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을 감내할 만큼 카일에게 벤과 아이들은 소중한 존재였다. 비록 기이한 일의 연속이긴 했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짜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알지. 이해할 수 있어. 가정을 꾸려서 행복한 모양이구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만나 함께 가정을 이루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삶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이미 몸소 경험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라이너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아이는 본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기도 했다. 베타인 아내와 오메가인 남편의 조합으로는 정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결혼했고, 심지어 그 점을 내세워 집안에 큰소리를 치기도 했었다. 아이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카일의 얼굴에 번진 수줍은 미소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네…. 아마 본원 뒷마당에서 아이들이랑 벤이 놀고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낮잠을 자고 있거나…. 평화로운 주말이죠. 사실, 집사님도 걱정하시긴 했었는데. 아이를 낳느라 몸이 아픈 것 보다는 넷을 전부 돌보는 게 훨씬 어려운 것 같긴 해요. 장로님과 다른 사제님들이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걸요. 하인들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앞으로 쑥쑥 자랄 그 아이들에게 작은 별장은 갑갑할 테니까요. 혹시 들어오시는 길에 아무도 못 보셨나요?”
“음, 못 본 것 같은데. 사제들이랑 장로를 제외하면. 그러고 보니, 집회실에 사람이 없는 걸 봤어. 집회가 없는 날인가? 오늘따라 엄청 조용하던데. 그렇지만, 보통 주말에 집회를 하지 않아?”
“으음, 그럼 애들은 다 같이 뒷마당에 있었나 보네요. 저는 일감을 조금 정리하고 있다가 형님이 오셨다는 말을 사제님께 전해 듣고 방으로 들어와 있었거든요. 아, 오늘은 아마 아침에 집회를 하는 날이라 사람들은 다 돌아갔을걸요? 점심시간 이전에 다들 나가곤 하니까…. 내일 정기 집회를 좀 늦게까지 할 거예요. 아마요.”
“뭐야, 독실하진 않나 보네.”
“하하…. 장로님께는 죄송하죠. 정기 집회까지 꼬박꼬박 나가고 싶기는 한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무리하지 말아야지. 괜찮다, 괜찮다 해도 아이를 낳고 몸이 덜 회복된 건 아니고? 그래, 선물로 몸에 좋다는 약이라도 사 왔어야 했나….”
“몸은 이상이 없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아마 아이들을 돌보고, 이것저것 하느라 기운이 빠져서 그런가 봐요.”
카일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비밀 집회에 관한 이야기는 참가자 이외의 사람에게 발설하는 게 금지였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고, 벤과 교미하는 일은 부부생활 영역이라 굳이 오랜만에 본 형님에게 이야기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국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본원에서 지내면서 하는 소일거리나 아이들 돌보기에 대한 것 정도였다.
“장로가 일을 시킨단 말이야?”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걸요. 여기 들어온 이상, 작은 거라도 도와 드려야죠. 사제님들은 제 하인도 아닐뿐더러, 이렇게 멀쩡히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몸이 회복되고 일해도 되잖아.”
“어려운 건 아니에요. 저는 정원에서 꽃을 관리하고 있어요. 잘 핀 꽃들을 말려서 찻잎으로 만들면 맛이 좋기도 하고요. 형님, 진짜 저는 괜찮아요. 형님이야말로, 힘드신 건 아닌가요? 조금 안정을 취하실 필요가 있어 보이세요.”
“나는…, 미안해. 너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취급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 그렇지만…. 나는, 사실 믿을 수가 없어. 네가 너무 걱정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이 부족하신 게 아닐까요…. 일단 제가 재배한 찻잎이라도 드셔 보실래요? 정신을 차분하게 하고 몸을 이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라이너스는 마지못해 카일이 건네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진한 향이 올라오는 암적색 빛의 맑은 액체가 들어 있었다. 찻잔 안에 비친 스스로의 얼굴을 보면서 라이너스는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정말 잘못된 의심을 하느라 동생을 몰아세운 것은 아닌지 고민할 때였다. 바깥에서 시끄럽게 발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쉬이잇!”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제 아비를 쏙 빼닮아 빛도 들지 않을 정도로 까만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동자를 지닌 아이는 짧은 다리로 해냈다기엔 놀라워 보일 정도로 날래게 움직였다. 문을 닫고 숨소리도 내어서는 안 된다는 듯 바짝 벽에 붙은 채로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라이너스는 아이의 놀음에 동참해줄 생각은 없었으나 그의 얼굴을 보고 복잡한 생각이 든 나머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지만 카일의 아이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4살쯤은 되어 보이는 듯했다. 이 정도로 아이가 자라려면, 도대체 언제 임신을 해서 낳은 것인지 하는 심란한 생각과 함께, 입술을 꽉 깨물게 되었다.
“술래잡기 중인 거야?”
카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면 안 된다는 듯 재차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진 나머지 라이너스는 잠자코 카일이 준 차를 연신 홀짝였다. 약간 떫은 끝맛이 있었지만 향이 좋은 차였다. 아이는 문에 기댄 채 바깥쪽의 소리에 집중하는 한편, 카일과 닮은 훤칠한 사내가 궁금한지 계속 곁눈질을 했다. 그러나 놀이 중이었기 때문에 말은 걸지 않고 궁금증을 꾹 참았다.
밖에서 끼잉거리는 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그리고 또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것은, 주둥이가 길쭉한 큰 개였다. 아이의 키보다도 훨씬 더 큰 개가 안으로 들어와서 몸을 비비적대는 장면을 본 라이너스는 술래잡기 상대가 개라는 사실에 놀랐다.
하기사, 생각해보면 다른 형제들은 쌍둥이라 할지라도 그와 동갑이거나 어릴 테니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동생들이 있을 터였다. 시간 순으로 따져본다면 지금 보고 있는 아이가 카일의 첫째 아이일 확률이 높았다. 제 아버지들을 제외한다면 놀아줄 사람이 마땅치 않은 게 분명했다. 애초에 다른 신도들이 이곳에서 머무를 일도 잘 없거니와, 방문하는 사람들도 집회에 참석하기 바쁠 터였다. 아이의 금빛 눈동자나 입꼬리, 눈매 등을 보면 카일과 꽤 닮아 있었다. 특히, 라이너스가 기억하는 카일의 모습은 어린 시절에 멈춰 있다시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인상을 받았다.
“아, 들켰어. 아빠 때문이야!”
아이의 다음 말로 둘의 관계가 더욱 확실해졌다. 카일이 술래잡기 중인 거냐고 물어봐서 들켰다고 툴툴대던 꼬마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큰 개도 함께 따라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등장과 퇴장을 마친 그들을 보며 라이너스는 다소 얼떨떨해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들이었구나.”
“아, 네…. 애들이 좀 활발하긴 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쑤시길 좋아해서. 그래도 막 싸우거나 하진 않아요.”
“그 나이면 보통 다 그러지.”
“그런가요…. 저는 그랬던 기억이 없어서.”
“아, 아닐 수도 있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실언했음을 자각한 라이너스는 바로 말을 정정하며 차를 홀짝였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지만 함부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기묘한 침묵이 이어졌고, 카일은 라이너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형님도…. 결혼하셨죠?”
손가락의 반지를 보고 물어본 것이었다. 카일의 눈빛이 다소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흔들렸다. 그러나 라이너스는 이미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은 나머지 그의 눈빛이 가라앉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 좀 됐어. 한 5년 정도.”
“그럼 형님도 아이가 있으신가요?”
“아니.”
“정말요…?”
카일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라이너스라면, 자신처럼 생식 능력 쪽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얼마든지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물론 아이를 좋아하지 않거나 자녀 계획이 없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릴 적 기억하던 라이너스는 언제나 어린 동생에게 친절한 형이었다. 그가 아이를 싫어할 리 없다고 여긴 것이었다.
“아내가 베타거든.”
라이너스는 담백한 말투로 말했다. 마치, 그 질문이 꽤 무례할 수 있었지만 이미 굳어진 사실이니 상처받지 않는다는 듯이. 카일은 섭섭하게 할 의도가 없었음을 밝히기 위해 재빨리 사과했다.
“몰랐어요…. 죄송해요.”
“아냐, 어차피 알고 결혼한 거고. 내가 선택한 일이니…. 네 아이가 잘 크는 모습을 보는 걸로 만족하면 될 것 같네. 카일, 아이는… 몇 살인 거야? 나는 젖먹이쯤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꽤 큰 것 같아.”
“젖을 뗀 지 얼마 안 되긴 했어요. 애들 젖 먹인다고 젖몸살도 오고 그랬었는데 다 옛날 일이 됐네요. 그러고 보니. 음, 이제 두 살이 안 됐겠죠?”
“아니, 막내 말고 말이야.”
방금 방에 들어왔던 큰 아이가 몇 살이냐고 재차 질문했다. 어차피 모든 아이들의 나이는 같았기 때문에 카일은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이제 아이들이 태어난 지 2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인간에 비하면, 임신 기간도 짧았고 갓 태어난 아이들의 크기도 현저히 작았다. 심지어 둘은 짐승의 형태이기까지 했다. 인간을 낳은 것이 아니었지만 라이너스는 감쪽같이 속고 있었다. 아이를 따라 들어온 커다란 개도, 그리고 본원에 들어올 때 마주친 개도 모두 카일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방금 그 아이가 두 살….”
머릿속이 몽롱해짐과 동시에 핑글, 도는 느낌이 들어 라이너스는 인상을 쓰며 카일의 말을 따라 했다. 아까부터 묘하게 편두통이 일었는데, 그것 때문에 뭔가 놓친 정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뇌는 과부하가 걸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포기한 듯했다.
“크흐윽…, 카, 카일….”
뻑뻑하고 건조한 시야와 계속 머릿속이 울리는 것이 거슬린 나머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때 시야는 탁자 위를 향하고 있었다.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 탁자 위로 몸이 고꾸라져 버린 것이었다. 라이너스는 손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고작 검지가 경련하듯 움찔거린 게 전부였다. 목구멍부터 식도까지 열기가 올라오는 동시에 혓바닥이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애들이 발육이 좀 빠르긴 하죠. 아마 2년 뒤면 둘은 어른이 될지도 몰라요.”
정말 다행이죠? 사실 운 좋게 이어가는 삶인 만큼 여전히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건 똑같은데, 애들 다 크는 건 보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삶인 것 같아요. 카일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려면 더 걸리겠지만, 늑대 쪽의 아이들은 제 아비를 키웠던 경험에 비춰본다면 곧 성체가 될 거라고 여긴 것이었다.
카일의 뒷말을 듣지 못한 라이너스는 눈을 감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면서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어둠 속으로 몸이 추락하는 것은 막아내지 못했다.
*
“하…, 하아…. 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에서 축축하게 땀이 배어나왔다. 라이너스는 식은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기 때문에 불안이 더욱 가중되었다.
“정신이 드셨군요.”
“너…! 너, 이 개자식,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장로의 목소리를 확인하자마자 라이너스는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팔과 다리만 결박한 게 아니라 목까지 결박해 둔 건지 컥, 하고 목이 졸리는 소리를 내뱉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차츰 감각이 돌아오는 듯했다. 앞은 보이지 않아도 대충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자각하게 된 순간, 라이너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팔에 닿는 느낌이나 하반신이 지나치게 시린 걸로 봐서 분명 나체였다. 게다가 치부를 스스럼없이 드러낸, 다리를 벌린 자세로 어딘가에 불편하게 고정된 듯했다.
“그럴 줄 알았다니요? 이거 섭섭합니다. 언제나 제가 악역인 양 말씀하시고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러셨었죠.”
장로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라이너스의 턱 끝을 건드리며 타고 내려왔다. 그의 몸 위로 성호를 그으며 이죽이는 목소리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물론 전혀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비열한 음색이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당신을 여기로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그게 무슨…,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사이비 짓도 적당히 해야지, 우리 아버지는 아둔했어도….”
“말 돌리지 마십시오. 당신을 부른 사람이 누구였는지 생각하십시오. 조금, 차분해질 필요가 있겠군요. 어차피 조만간 흥분하게 될 텐데, 벌써부터 열을 내면 지치지 않겠습니까.”
장로는 따지면서 위협을 가하는 라이너스의 말을 끊었다. 키도 크고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지만, 형틀에 묶인 이상 기계에 박히면서 질질 싸지르게 될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짝은 기계 따위가 아니었다. 아직 닥쳐올 본인의 미래와 이 일의 배후에 관해 하나도 파악하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머지않아 무너지다 못해 부서진 틈으로 신앙심이 싹틀 것을 생각하니 짜릿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놈의 말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한 라이너스는 이를 갈며 그의 말장난에 동조해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숱하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장로의 그 음성을 들어버린 뒤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카일이 그랬을 리가 없었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 아이가 편지를 썼기 때문에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맞았으나, 카일은 그저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부른 것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아프면 사람이 주변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다가, 건강해지게 되면 고통에서 허덕일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니까. 라이너스는 정신을 잃기 바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 했다.
카일과 작은 방에서 대화를 했었고, 그의 아이를 만났었고, 그가 대접해준 차를 마셨으며….
“이간질할 개수작인 거 다 알아, 당장 이거 풀라고!”
“당신을 여기로 오게 만든 건 당신의 동생 분임이 확실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그 애를 원망하기라도 할 것 같아?”
“오, 이런, 두 분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아셨으면 좋겠군요. 오히려, 두 분께서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게다가, 데릭도 당신을 꽤 마음에 들어 한 것 같던데. 그야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장로는 라이너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아까부터 곁에 앉아 라이너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커다란 늑대를 쓰다듬었다. 아직 성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의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제 아비만큼이나 영리하고 인간의 말을 잘 이해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벤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돌봐준 카일이나 함께 자란 형제들, 그리고 본원에서 지내는 사제들이나 다른 신도들까지. 데릭은 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와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풍부한 표현을 익힐 수 있었다. 카일도 그 부분을 몸소 느끼고 그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즐겼다. 비록 대답은 언제나 우우, 하는 낮은 짖음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직접 그를 낳은 존재인 카일은 그의 울음소리에 담긴 의미를 알아듣는 듯했다.
장로는 카일이 라이너스를 응대하는 동안 데릭에게 물었었다. 낳아준 아비의 형이 과연 베필로서 적절한지. 라이너스는 오메가였으나, 데릭이 그의 향을 맡지 못하면 그저 본원에 드나드는 수많은 신도와 다를 바가 없는 인물이었다. 이 계획이 헛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추진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야만 했다. 장로의 질문을 들은 데릭은 꼬리를 살살 흔드는 것으로 답을 했다.
낯선 남자였다. 어딘가 불만에 찬 것처럼 보이는 데다 거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서는 전신을 간지럽고 어딘가 떨리게 만드는 향이 은근히 새어 나왔다. 동공을 좁히고 멀찍이서 흘러들어오는 그의 체취를 맡는 동안 그는 빠르게 건물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던 데릭은 다른 형제들이 그 남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문간을 드나들어도 감히 그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그저 밖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엿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카일보다도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근본적으로 카일과 닮아 수려한 외모에 번뜩이는 밝은 색 눈동자를 지닌 사내는 카일에 비하면 향도 훨씬 짙었다.
평생 자라면서 유혹적인 향을 흘리는 오메가는 카일 단 한 명만을 알고 있던 데릭이었다. 그리고 카일의 짝은 자신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강대한 늑대이자 아버지인 벤이었다. 낳아준 부친에게 조금이라도 욕망을 흘렸다간 물려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네 형제 중 특히 늑대의 모습을 타고나 체취에 민감했던 두 아이는 욕구를 푹 죽인 채 사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친과 닮은, 심지어는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존재를 만난 순간 데릭의 세계는 크게 뒤흔들렸다.
단정하게 옷을 잘 차려입고 있던 그가, 형틀에 나체로 묶인 채 유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두운 실내였지만 데릭은 버둥거리는 발가벗은 몸을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냈다. 밀폐된 공간에 이미 그의 향이 가득했다. 장로는 데릭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나직이 말했다.
“가서 인사라도 하십시오.”
데릭은 기다렸다는 듯 라이너스가 묶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 축축한 코를 들이댔다. 카일과 닮은 듯 새로운 향이었다. 살결을 따라 코를 대고 움직이자, 뜨끈한 몸이 느껴졌다.
“뭐, 뭐야! 뭐냐고…!”
킁킁거리는 소리를 들은 라이너스는 더 심하게 움직였다. 구속구가 살을 파고 들어 빨갛게 자국을 남겼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보나마나 이 소리는 짐승이었다. 불현듯 카일의 아들과 놀아주던 개, 그리고 앞마당에서 눈을 마주쳤던 개가 떠오른 라이너스는 고개를 도리질 치려 했다.
“크헉…! 미쳤어, 미친 게 분명해!”
개를 이용해 겁을 주려는 것, 물어뜯게 하려는 거라고 상대방의 의도를 넘겨짚은 라이너스는 몸을 버둥거리는 대신 덜덜 떨었다. 장로가 왜 이런 짓거리를 하는지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카일과 자신을 이간질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종교에 심취하지 않은 자신이 모난 돌처럼 보여 징벌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변태적인 일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장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라이너스의 몸을 핥기 시작한 데릭을 내려다보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조카가 반갑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인사하는 건 처음이시겠군요. 데릭, 삼촌을 너무 곤란하게 하지 말아야지.”
“뭐?”
“풀어드리는 게 좋을까요? 일종의 가족 상봉인데.”
장로는 라이너스의 뺨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다가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어주었다. 소름끼치는 차가운 손가락의 감각에 인상을 쓰던 라이너스는 갑자기 들이닥친 전등빛에 눈을 감았다 떴다. 습한 냄새로부터 짐작했듯, 창문 하나 없는 답답한 지하실 같은 공간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서 수치스러운 자세로 어딘가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허벅지에 코를 들이박고 있던 검은 털뭉치와 눈이 마주쳤다.
정말 짐승 같은 눈빛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인간이 아니란 것이 명백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란 눈동자는 순수했다. 온통 욕망으로 점철되어 다른 것이라곤 들어찰 구석도 없는 탐욕스러운 눈빛이었다. 혀를 내밀고 헥헥대며 한동안 라이너스를 올려다보던 데릭은 다시 그의 몸을 핥는 것에 열중했다.
장로가 아직 완전히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리하게 행동하는 중이었다. 그의 말을 잘 듣는다면, 이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벤이 카일을 탐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수도 없이 욕망이 배 속에서 꿈틀거리지 않았던가. 그것은 낳아준 부친을 향한 성욕이라기보단, 독립된 개체로서 자신도 탐할 수 있는 짝을 원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데릭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있던 장로는 라이너스를 타락시킬 수단으로 그를 선택했다.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당신….”
“형제님께서 말하시지 않으셨나요? 이 아이가, 바로 자식이라고 말입니다. 당신의 조카입니다. 직접 낳은 아이고 이제 곧 두 살이 될 테죠. 슬슬 성적으로 성숙해서 짝을 구하고 싶어했는데, 마침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는군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카일이 개를 낳았다고?
라이너스는 아직도 장로의 말을 납득하지 못한 채 충격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마당에서 마주친 그 개가 카일의 자식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었고, 직접 들었다 해도 믿기 힘들었다. 이건 다 농락하려고 하는 헛된 수작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라이너스는 자신의 굳건한 상식을 지키기 위하여 독기가 서린 눈빛으로 장로를 노려보았다.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의 형제가 배를 맞춘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들짐승이란 뜻이지.”
“터진 주둥이라고 감히!”
모욕감을 느낀 라이너스는 주먹을 쥐고 묶인 팔을 들썩였다. 핏줄이 꿈틀거리는 희멀건 팔을 본 장로는 어느 때보다도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카일처럼 온순한 쪽도 괴롭히는 재미가 있었지만, 역시 반항적이고 신앙심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을 상대하는 게 더 구미가 당겼다.
“정말인걸요?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동생은, 늑대 자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라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집회에서도 개좆으로 박히면서 자지러지거든.”
“죽여 버리겠어!”
“그리고 그건 당신의 미래이기도 하지.”
장로가 웃는 얼굴을 본 라이너스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한 번도 그가 크게 표정을 바꾸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무의식적으로 장로라면 표정 변화 없이 언제나 정적인 모습만 보이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가 인간적인 표정을 짓는 순간, 이것이 그의 본모습이며 스스로가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뭐라는 거야! 너,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건투를 빌겠습니다. 부디, 본인이 어떤 몸으로 태어났는지 알고 회개하십시오. 조만간, 당신은 믿음이 간절해질 것입니다. 당신께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장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시야에 그의 소름끼치는 옅은 빛의 눈동자가 잔상처럼 머물다가 사라졌다. 이 방 안에는 이제 끔찍하기 짝이 없는 개와 단둘만 남게 된 것이었다.
“제, 제기랄, 핥지 마, 저리 꺼지란 말이야…!”
라이너스는 아까부터 몸을 핥기만 하는 짐승에게도 험한 말을 퍼부었다. 뺨이나 손을 핥았다면 또 다르겠지만, 이빨도 드러내지 않고 온순히 하반신, 특히 중심부 근처만 핥는 놈이 이상스럽다고는 생각했다.
“으…, 읏…!”
마침내 허벅지 안쪽을 싹싹 낼름거리던 혀가 중심부로 향했다. 기다랗고 뜨끈거리는 혓바닥이 타액을 잔뜩 묻히면서 성기를 핥자 라이너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친 거 아니냐는 욕설이 혀끝까지 걸렸다가 도로 들어가버릴 지경이었다.
지금 이 개자식이 뭘 하는 거지?
“하지 마, 제발….”
개는 아주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성기 아래쪽부터 핥아 올렸다. 고환의 주름까지도 혓바닥은 꼼꼼히 탐해갔다. 라이너스는 기겁하며 늑대의 이빨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숨을 죽였다. 설마 물어뜯어버리지는 않겠지. 고문 용도로 굶주린 개를 넣어둔 것은 아니겠지.
겁에 질린 나머지 늑대의 털가죽 바깥으로 빨간 성기가 천천히 밀려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데릭은 난생처음 맡아보는 아주 진한 오메가 향에 완전히 매료된 채로 라이너스를 핥고 또 핥았다. 폭발적인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그의 몸에 성기를 꽂아 넣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우, 우븝…!”
아예 발돋움하여 라이너스의 턱이 있는 곳에 고개를 들이민 늑대는 턱 선과 입술을 낼름거리며 하반신을 부벼댔다. 장로가 라이너스를 묶어둔 덕분에 옷을 찢어 버린다거나, 자세를 잡게 하는 등의 수고는 할 필요가 없었다. 준비된 신부를 맞이하기만 하면 됐다. 개가 입술을 핥는 것에 불쾌감과 공포를 느낀 라이너스는 고개를 틀어 혓바닥을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성기에 맞닿는 뜨겁지만 털 없이 맨들거리고 정체불명의 액체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의 감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혓바닥만큼이나 민둥하지만 뜨끈거리는 것이 늑대의 신체 부위 중 어디인가, 하고 생각하면 답은 간단했다.
“미, 미쳤어, 싫어, 미친 게 분명해….”
라이너스는 황망히 중얼거렸다. 발돋움을 하면 가슴팍까지 오는 이 커다란 개가 자신을 상대로 발정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었다. 성기끼리 맞닿고 있다고 생각하자 방금 전 핥는 것으로 발기할 뻔했던 것에서 혈액이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성기가 물어뜯겨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것도 썩 좋지 않은 결말이었지만, 수간당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데릭은 벌써부터 흥분해서 피스톤질 비슷한 것을 라이너스의 몸 위에 하고 있었다. 말간 쿠퍼액이 인간의 성기와 회음부를 적셨다. 알파의 향이 진득하게 묻어난 체액이었다.
“흣….”
제아무리 명문가의 자제라지만, 집을 나온 이상 오메가라는 이유로 숱하게 차별을 받아왔었다. 그래서 라이너스는 자신을 오메가처럼 보이게 할 만한 모든 것들을 사전에 차단했고, 그런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왔다. 단 한 번도 히트사이클로 인한 문제를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안 이후부터 꼬박꼬박 억제제를 챙겨 먹었고, 평소에도 운동을 하고 호르몬을 교란시킬 만한 것을 멀리하는 등 신경 쓰면서 관리를 했다. 알파와 교제해본 적도 없었고, 위협적으로 페로몬을 내뿜으며 달려드는 알파를 만난 적은 있었지만 그들의 페로몬에 오래 노출되어 흥분해본 경험도 전무했다. 데릭이 내뿜는 진득한 수컷의 냄새는 라이너스에게 불쾌감을 유발했다. 단지 사람이 아닌 것이 자신에게 흥분해서 곧 범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맡아보는 날것의 페로몬은 역하게 느껴졌다.
아직까지 라이너스에게 약효가 돌고 있다는 증거였다. 오메가의 히트사이클을 방지하는 약은 점차 발전해서, 히트사이클을 억제하는 동시에 평소에도 알파의 페로몬을 맡더라도 억제 효과가 깨어져 강제로 흥분되는 것 또한 막아 주었다. 라이너스는 평소 문란한 클럽에 가는 일이나 음주하는 것 등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오메가들이 여러 명의 알파들을 거느리거나 유혹한다는 통념에 맞서기 위해 더 열심히 약을 챙겨 먹었다. 특히 애인을 사귀고 나서부터는, 그녀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알파들이 모일 만한 장소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토할 것 같아.
상황적으로도 역겨웠고, 비강을 자극하는 체취도 비리고 쓰게만 느껴졌다. 상대 알파의 체취가 강할수록 반감도 커졌다. 데릭의 경우, 마찬가지로 페로몬 발산을 억제하기 위해 약을 먹는 인간 사회의 알파들과 달리 순수한 날것의 상태 그대로였다. 데릭은 제 아비의 것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성숙해서 그 어느 인간보다도 굵고 길쭉해진 것을 라이너스의 회음부에 대고 문질렀다. 뜨거운 액체가 피부표면을 타고 흘러 애널 입구에도 걸쳐지자 앞으로 당할 일이 실감나면서 라이너스는 헛구역질을 했다.
“크, 하, 아아악…!”
늑대는 봐주는 법이 없었다. 인간세계의 규율이 무엇이든, 그는 눈앞에 주인 없는 오메가가 있으면 취할 뿐이었다. 어두운 전등 아래에서 네 번째 손가락의 결혼반지가 빛을 받아 번뜩였다. 인간 사회에서 결혼을 했어도, 아직 한 번도 그 어느 알파와 성적으로 교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알파의 입장에서 라이너스는 동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처음을 자신이 차지해버렸다는 것에 벅차올라, 데릭은 뺨을 핥으며 진입을 시도했다. 뒤로는 한 번도 관계해 본 적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크기였기 때문에 라이너스는 비명을 질렀다. 어둡고 습한 공간에 남성의 비명소리가 울렸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오로지 끔찍한 늑대만이 헉헉거리는 소리를 내며 대답할 뿐이었다.
“아파, 아프다고 이 개자식…! 아, 크흑, 그만, 그만해!”
장로에게 대항하려고 몸을 버둥댈 때보다 더 격렬하게 들썩였다. M자로 다리가 벌어진 채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멋대로 오므리거나 진입을 막기 위해 힘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좁고 뜨거워서 집어넣기 힘든 곳이었지만 그 점이 더욱 데릭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생리적인 고통으로 인해 라이너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데릭은 싹싹 핥아 주었다.
그가 왜 이렇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지 데릭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카일은 분명 벤에게 박힐 때마다 좋아서 꺽꺽대는 소리를 내며 매달리거나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당연히 그런 반응을 기대했는데, 라이너스는 경악에 찬 반응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했다. 본원에서는 아무도 거친 욕설을 하지 않았던 탓에 데릭은 인간의 언어로 비속어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라이너스가 주워 담는 말이 부정적이고, 저주에 가까운 언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도, 그가 눈물을 흘린다는 점에서 완전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여겼다. 평소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던 카일이 관계할 때만큼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부짖는 모습을 봐오면서 자란 데릭은 지금 라이너스의 눈물을 긍정적인 것으로 여겼다. 애널이 너무 세게 조여들어서, 벌써부터 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서 조루로 취급받기는 싫었다. 최대한 자신의 오메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알파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데릭은 성의껏 라이너스의 뺨과 입술을 핥고 애정을 표현하며 그의 배 속으로 물건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흐으, 아, 그흑….”
라이너스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괴로움 섞인 신음을 흘렸다. 어두운 공간이 하얗게 번뜩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장기관이 그 망할 놈의 늑대 좆으로 몽땅 어그러져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감히 고개를 숙여 밑에 무엇이 들어오고 있는지 확인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만일 직접 두 눈으로 놈의 것이 박힌 모습을 확인한다면, 구토를 하지 않고선 배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개새끼…, 죽여버릴 거야, 개자식….”
라이너스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장로 앞에서 벌거벗겨져도 수치심으로 몸을 떨지언정 눈물은 보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한계였다. 이미 그때부터 위태롭던 정신은 늑대에게 정말로 수간당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했고, 이 징그러운 늑대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그저 몸을 떨면서 얌전히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 미안해 티나….”
조심히 다녀오라는 아내의 상냥한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상기되자, 라이너스는 그녀를 찾으며 울먹였다. 상대가 인간이 아니긴 했어도, 낯선 알파와 배를 맞추며 불륜을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아내를 두고, 다리를 벌린 채 성기를 받아들인다는 건 동물과 교접한다는 것만큼이나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워낙 충격적인 일이다 보니 육체적 아픔이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느껴졌으나, 한 번도 삽입을 시도해본 적 없던 곳이 한계까지 벌어져 있어서 숨만 들이 쉬어도 찌릿거리며 통증이 올라왔다. 카일만큼 마른 건 아니어도 라이너스 역시 살집이 없는 몸이었기 때문에 늑대의 것을 끝까지 다 받아들였을 때는 아랫배가 볼록하게 부풀어버렸다.
개과 동물이 쇄골부터 턱 선까지 핥아올리는 감각, 헥, 하는 소리와 함께 낮게 그르릉대며 머리를 비비는 느낌이 선명했다. 혹시 이것이 꿈은 아닌지, 카일을 방치하다시피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악몽으로 구현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들어와 있던 살덩어리가 쑤욱 빠져나갔다가 다시 안에 꽉 들어차는 감각에 입술을 깨물며 엉터리 같은 의심을 부정해야만 했다.
“으으윽…!”
인간을 겁탈하도록 훈련받은 놈인지, 갈수록 흥분해서 빠르게 박아대는 통에 라이너스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흘리며 괴로워했다. 묶여있는 형틀이 덜컹거릴 정도로 데릭은 힘을 실어 움직여댔다. 형틀이 덜컹거리는 소리는 그가 얼마나 욕구를 힘차게 발산하며 날뛰는지를 방증했다. 털이 몸 전면에 달라붙었다. 털가죽 아래로 달궈진 체온과 꿈틀거리는 근육이 느껴졌다. 이 짐승은 단순히 크기만 거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는 신체 조건으로 상대를 깔아뭉갤 것처럼 달려드는 중이었다. 심지어 형틀은 촬영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퍼킹머신의 삽입을 위해 조금 기울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라이너스는 늑대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내야만 했다.
상황적인 것을 제외하고 봐도, 그 늑대를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병약하지 않고 건강한 데다 키가 큰 인간이었음에도 늑대를 상대하는 건 벅찬 일이었다. 특히, 아내와의 성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교우위를 잴 수 있던 라이너스는 늑대의 힘과 정력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직접 피스톤질 하는 것의 3배 정도 긴 시간을 지치는 기색 없이 움직이다가 압도적인 양의 정액을 토해냈다. 반쯤 정신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배 속을 들어채우다 못해 접합부 틈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정액은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이미 전신으로 사람이 아닌 것과 관계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지만, 마침내 안에 사정까지 당하자 더욱 확실해져 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몸 깊이 성기를 파묻고 절대 빼주지 않던 늑대는 성기를 부풀리며 노팅하기 시작했다. 이미 꽉 맞물린 곳인데, 속에서 부풀자 라이너스는 경악하며 몸을 떨었다. 양 뺨에 눈물 자국이 선명한 데다 일그러진 얼굴은 그를 고통에 찌든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전적인 흰 피부, 그리고 눈물로 인해 벌겋게 물든 눈가나 특유의 구부러진 채 반항기를 띤 눈썹이 은근히 위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평생 오메가로 살면서 그는 언제든지 누군가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 지지 않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인물이었고, 큼지막하지만 호전적으로 보이는 삼백안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말로든 행동으로든 달려든 전적이 꽤 되었다.
지금 그 노란 눈동자가 공포와 충격으로 물든 채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아마도 같은 인간인 알파가 비슷한 짓을 했다면 경멸하고 욕설을 퍼부을지언정, 법적 대응 절차를 밟기 위해 한쪽으로 침착하게 머리를 굴리며 상황에서 빠져나오려 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성기를 쑤셔박고 씨를 뿌리다 못해 노팅하면서 자극을 가하는 상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이었다. 동물에게 이 행위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인권 유린적인지 설명할 길은 없었다. 아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안은 장로의 심기를 더는 건드리지 않고 이 방에서 무사히 탈출해서 그를 법정에 세우는 일일 테지만, 장로는 늑대가 두 번째 관계를 시도하는 동안까지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그허어억…, 흐, 으욱….”
오랜 시간 구멍을 막은 채 박혀있던 게 빠져나가자 정액이 기둥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기껏 뿌린 씨가 빠져나가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듯 데릭은 깊은 곳을 푹 찌르고 들어오며 도로 체액을 밀어 넣었다. 찌그덕거리고 질척거리는 소리가 밀실에 낭자했다. 라이너스는 울어서 아픈 머리를 애써 굴려가며 탈출 방법을 모색하려 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구멍에 콱콱 박혀 들어오는 것과, 몸 구석구석을 유린하는 혓바닥이 사고를 방해했다.
*
“제발 그만….”
라이너스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빛도 안 드는 곳에서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를 상대했다. 늑대는 지치지도 않는 건지, 몇 번씩 노팅을 해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장로는 이따금씩 들어와 몸을 닦아주거나 먹을 것을 주었지만, 위협을 하든 질문을 던지든 간에 입술끼리 붙어 버리기라도 한 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가 되면 데릭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흡사 씨받이용 가축이 된 기분이라 비참하기까지 했다. 이제 그 우스꽝스러운 형틀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바닥을 빌빌 기면서 일어나지 못했다. 구멍부터 허리까지가 너무 아팠고,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데다 하도 안에 싸지른 덕에 조금만 움직여도 액이 몸 밖으로 흘러나와 소름이 끼친 덕에 얼굴이 구겨지기 십상이었다.
“하아…, 하….”
머리가 웅웅 울렸다.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두통이 일었고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차가운 골방에서 헐벗겨진 채로 방치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한 라이너스는 바닥에서 일어나 앉아 몸을 웅크렸다. 어떻게 되어 먹은 방인지, 습한 데다 춥기까지 했다. 아직 계절적으로 햇볕이 쨍쨍해서 낮에는 꽤 더운 때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방에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기도 했다. 물론 전반적으로 신경이 과민해져 작은 것에도 흠칫하고 놀라거나 날을 세울 만한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문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를 통해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문이 열리더니 길고 검은 주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 놈이 들어온 것이었다. 놈은 실컷 성욕을 해소하고, 못내 아쉬운 듯 장로의 손에 의해 퇴장하기를 반복했다. 라이너스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다가 벽에 가로막혔다. 이 좁은 밀실에서 그를 피해 도망갈 수 있는 구석은 없었다.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서 그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건 더 끔찍했다.
“제, 제기랄…, 지치지도 않는 거냐고….”
코끝을 뺨에 부비는 짐승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고개를 뒤로 뺐다. 차라리 반항하면 짖거나 이빨을 드러내서 이 늑대에게 순응하지 않으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조금 기분이 덜 나빴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데릭은 정말 자신의 반려를 대하듯 꼬리를 흔들거나 반갑게 핥아대며 몸을 기대왔다. 아직 어린 데다 서열상 첫째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리광이 있기도 했고, 또 다른 늑대인 형제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기회가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었기 때문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어찌 됐건, 밀실에 갇혀 있는 자신의 오메가를 만나는 것을 허락받을 때면 성기가 뻐근해져 몸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흥분으로 전신을 떨어댔다. 기본적으로 데릭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성욕이었다.
“하, 으, 이, 망할 개새끼 진짜…!”
얼굴을 침 범벅으로 만들면 라이너스는 인상을 쓰며 욕을 했다. 머리를 손으로 밀어내는 건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데릭은 튼튼한 데다 욕구가 넘쳐흘렀고, 라이너스의 위에 올라타 온몸으로 그를 압박하며 성기를 부벼댔다. 이제는 형틀에서 풀려난 채로 감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오므리거나 발로 차는 등의 반항이 가능했지만, 그의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핥지 마, 윽…!”
라이너스가 버둥거리며 발로 턱을 노리고 차올리면, 데릭은 어김없이 앞발로 그의 다리를 짓누르며 허벅지 바깥쪽부터 슬금슬금 핥아서 안쪽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다. 인간 모습의 형제들과 뛰어놀고 몸을 부딪혀 가며 자랐기 때문에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하거나 거친 행동을 하는지 뻔히 알았다. 그리고 라이너스가 이렇게 반항적으로 굴고 여전히 욕을 하지만, 차츰 몸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마도 유달리 부끄러워하는 것 같으니, 그럴수록 잘해줘야 한다는 장로의 말에 힘을 얻은 데릭은 끈질기게 구애를 시도했다. 이렇게 몸을 말고 부끄러워하며 거부하는 것 같아도, 온몸을 핥고 부비면 결국은 스스로 다리를 벌리는 라이너스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는 정도에 그쳤었지만, 요즘은 핥기만 해도 발기하고 오메가향이 흐르는 진액을 질질 흘려대서 더욱 흥분감이 고조되었다.
“하, 흣…! 아, 젠장, 읏…!”
라이너스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이 늑대로 인해 처음 발기해버렸을 땐, 혀를 깨물고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분명 끔찍하기 그지없는 존재였고, 겁탈을 일삼는 놈인데 귀신같이 민감한 곳을 포착해 집요하게 자극해댔다. 허벅지 바깥쪽을 혓바닥이 긁어대면 간지러운 느낌 때문에 저도 모르게 다리를 들썩이며 뻣뻣하게 힘을 주고 있던 게 순간적으로 풀려버렸다. 데릭은 언제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주둥이로 허벅지 안쪽을 누르며 코를 들이밀고 혀를 내밀었다. 라이너스는 사타구니가 유달리 예민했다. 이전에는 자기 몸의 성감대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던 상태였다. 형틀에 묶여 있을 때는 첫 관계의 충격과 함께 장시간 한 자세로 고정되어 있던 나머지 다리에 피가 잘 통하지 않아 감각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풀려나서 하루, 이틀 늑대와 몸을 섞을수록 오메가로 타고난 몸은 알파의 체취와 테크닉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뜨끈거리고 부드러운 혀가, 인간보다는 얇지만 훨씬 긴 것이 허벅지 안쪽 전체를 훑고 지나가면 간질거리는 느낌 때문에 몸을 바르작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느끼지 않기 위해 갖은 싫은 상상, 불행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성기에 혀가 닿으면 끝이었다. 이제는 그가 이를 드러내거나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혀가 닿으면 몸은 반사적으로 성적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정성스럽게 싹싹 핥으면서 알파의 페로몬을 듬뿍 흘리면 결국에는 발기해서 숨이 거칠어져 버렸다.
그런 자기 자신이 싫어 깊은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라이너스는 흥분해서 데릭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꿰뚫린 애널은 이제 비정상적으로 굵은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것이 주는 충족감을 기대하기까지 했다. 머리로는 아무리 거부를 해도 삽입만으로 성감대를 압박할 만한 크기와 길이가 성감을 자극했다.
“아…! 흐, 으웃, 아파, 앗…!”
그러나 삽입할 때의 고통만큼은 여전했다. 매일같이 벌리고 들어와도 익숙해지기 힘든 감각이었다. 그래도 처음에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고 구역질이 나는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이제는 질척하게 잘 받아들일 정도가 되었다. 뜨겁기만 한 게 아니라 동시에 부드럽게 조여들며 기쁜 듯 육봉을 집어삼키는 곳을 데릭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한다면, 이렇게 액을 질질 흘려가면서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라이너스의 몸은 페로몬에 반응하여 부드럽게 풀린 채로 알파를 받아들였다. 특히, 한평생 자극당해본 적이 없던 오메가들만의 성감대에 성기 끝이 닿는 순간 숨을 멈추고 고개를 틀어대며 있는 힘껏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쾌락을 거부하려 했다.
늑대한테 박히면서 발기하다 못해 사정감을 느끼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경련하듯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정액을 쥐어짜내려는 하반신이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라이너스는 자신이 미쳐가는 것인지 진지하게 의심했다. 역한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통해 상대가 알파라는 사실까지는 짐작했으나, 알파와 몸을 섞는다는 게 이런 것인 줄은 몰랐었다.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으며, 홀린 듯이 몸을 받아들이고 종래에는 더한 자극을 갈구하게 되는 것. 늑대를 향해 자신도 욕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싫어, 하지 마,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으, 아…! 아흐읏…!”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몸을 뒤로 빼고 팔로 그를 밀어 보아도 더 힘을 실어 안을 콱, 쑤시고 들어올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전립선과 자궁구를 동시에 자극당하자 라이너스는 따지던 것도 멈추고 몸을 벌벌 떨며 늑대의 다리를 붙잡았다. 데릭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슬슬 짝도 흥분한 것을 감지하고, 천천히 성기를 뽑아냈다가 다시 들이박는 행위에 속도를 붙였다. 밀실이라 유달리 신음이 벽에 반사되어 쟁쟁하게 울리고 늑대가 우짖는 소리도 크게 들렸다. 데릭은 눈물 고인 라이너스의 눈가를 핥아주고 그의 상반신에 몸을 단단히 밀착한 채 하반신을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아…! 으, 흐으아아…! 아, 크핫, 으헉, 커, 살살, 살살 하라고!”
그러다 고조되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정말 짐승이라는 칭호가 어울리게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차가운 바닥에 몸이 부딪힐 정도로 크게 움직이면 라이너스는 놀라서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그의 목을 세게 끌어안았다. 정말 달라붙고 싶지 않은 상대였지만, 바닥에 몸이 박는 대로 부딪힐 만큼 들썩이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따뜻하기도 했다. 이 추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발산하는 존재였다. 땀을 몸이 흥건해질 정도로 흘려대며 겨우겨우 성기를 받아들이는 주제에 몸은 추위를 느끼고 털에 파묻히려 들었다.
“큭…! 으, 으으…, 아….”
기계만큼이나 반복적이고 흉악한 움직임이 멈추면 즉각적으로 사정이 이어졌다. 매일 그렇게 정액을 짜내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농후하게 사정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양도 많았다. 라이너스는 뜨거운 게 배 속에 퍼지자마자 바르르 떨리며 간헐적으로 정액을 토해내는 자신의 성기를 황망히 쳐다보았다. 사실 덮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노팅이었다.
이미 무지막지하게 큰 것이 몸에 처박히는 것도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치고 있는 주제에, 속에서 더 부푸는 것에 느끼고 싸버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안에서 팽창하면 악, 하는 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아프다가 차츰 처음의 고통이 가시고 나면 곧 찌릿거리면서 숨만 쉬어도,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쾌감이 쇄도해댔다. 아파서 눈을 질끈 감거나 반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면 바로 느껴버린 나머지 정액을 지릴 정도였다.
“흐으, 흐…, 하으….”
그게 너무 싫은데, 기다려졌다. 몸은 알아서 거대한 쾌락을 기대하다 못해 아예 안에 사정만 당해도 탁액을 뿜어내며 노팅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꿰뚫린 채로, 성기가 빠지지 않아 꼼짝도 못하면서 왜 느끼고 싸지르는지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개과 동물의 생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거니와, 그 어느 인간 알파도 이런 행동을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라이너스는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닌지 두려움에 떨며 발정 난 것처럼 쉼 없이 사정하는 몸을 걱정해야만 했다.
성기 끝이 부푼 것으로 인해 확실히 자극당한 자궁 입구는 페로몬 분비를 촉진했다. 라이너스가 내뿜은 말간 쿠퍼액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의 땀과 눈물마저도 데릭에게는 달게 느껴졌다. 그래서 온몸을 싹싹 핥았다. 그의 전신이 달고 매혹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카일이 열성 오메가라는 점은 제아무리 건강이 회복되어도 변치 않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벤과 관계를 할 때 발산되는 페로몬이 이 정도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라이너스는 우성 오메가였고, 이제 슬슬 약효가 떨어져 가는 중이었다. 날이 갈수록 페로몬도 더 진해지는 데다 잘 느끼는 몸이 되어 아주 질척이고 성기에 딱 맞춘 듯한 애널로 조여댔다.
데릭은 매일같이 착실하게 라이너스에 대한 호감을 키워갔고, 라이너스는 점점 변해가는 자기 몸에 공포를 느끼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차츰 역하게만 느껴지던 짐승의 비린내가 옅어지고, 대신 맡으면 어딘가 아랫배가 간질거리고 몸을 덥게 만드는 냄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의식적으로 체취를 맡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헛된 짓이라는 걸 알아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냄새를 맡을수록 스스로가 이상해져가는 것 같아서 라이너스는 필사적으로 숨을 참거나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그 늑대가 방에 들어오기만 해도 밀실 전체를 가득 채워버리는 냄새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코로 숨을 쉬지 않는다 해도, 결국은 공기 중에 흩뿌려진 페로몬들이 입안의 점막과 비강 안쪽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특히, 늑대가 성기를 파묻으면서 피스톤질을 해대면 헐떡대다가 결국은 페로몬이 가득한 공기를 들이쉬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욕구와 함께 와해되어 가던 의식은 행위가 끝나고도 돌아오는 데 한참이나 걸리곤 했다.
*
“흐….”
라이너스는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아팠다. 목이 따끔거렸고 빈속이라 신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안에 고여 있던 정액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오랜 시간 몸 안에 머물면서 점성을 잃어버린 정액은 물처럼 구멍 밖으로 밀려나와 바닥을 적셨다. 데릭은 피폐해진 눈동자로 방 안의 모습을 주워 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리를 벌렸다. 스스로 구멍을 쑤시는 행위는 용납하기 힘들었지만, 늑대의 씨를 배가 빵빵하게 부풀다 못해 거북한 느낌이 들 지경이 될 때까지 품고 있는 건 더더욱 가만 둘 수 없었다. 희고 긴 손가락이 반쯤 벌어진 구멍으로 향했다. 바닥이 더러워지든 말든, 어차피 꼴도 보기 싫은 장로 놈이 치워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정액을 긁어냈다. 차라리 쭈그리고 앉아 배출하는 게 더 빠르게 느껴질 만큼 정액은 끝도 없이 흘러 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데릭은 아랫배를 손으로 꾹 눌렀다. 정액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맥없이 욕을 하며 얼추 속을 비워냈다. 장로가 매일 손수 물까지 틀어 씻기고 닦아주었기 때문에 그가 뒷구멍을 쑤시는 치욕스러운 꼴을 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정리를 해놓아야 했다. 한쪽 구석에 호스와 수도꼭지가 있었지만 반드시 전원을 넣어야만 작동했고 전원을 넣는 장치에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혼자서는 물을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밀실에 갇혀 사육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몸에 지니고 있는 거라곤 그가 미처 거둬가지 못한 결혼반지뿐이었다. 결혼반지에 얼룩이 묻은 것을 확인한 데릭은 손으로 문질러 얼룩을 닦아내고 한동안 멍하니 반지를 바라보았다.
“티나….”
그녀는 지금 남편이 정신 나간 사이비 종교 단체에 붙잡혀 며칠째 수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어쩌면 벌써 사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구하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이 미친 시골마을에 방문하는 것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속에서 격렬히 부딪혔다. 라이너스는 차츰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갇힌 지 얼마나 지났을까? 사흘? 나흘?
어쩌면 일주일.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 개와 교접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고, 빛을 보았던 것이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시간 개념 없이 때가 되면 장로가 와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제공했다. 그가 들어왔다 나간 횟수로 대략적인 날짜를 유추하려 해도, 언제나 같은 옷차림에 같은 음식을 들고 왔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늑대와 유의미한 기억을 만든 것도 아니었고, 그가 달려드는 것도 매번 같은 패턴이었기 때문에 어제가 오늘 같았고 오늘이 어제 같았다.
라이너스는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거나 탈출할 만한 구석을 찾아보려고 밀실의 구석구석을 조사해 보았다. 그러나 소름끼치게 생긴 형틀 세 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디오 같은 검은 상자,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있는 배수구와 잠겨 있는 호스가 전부였다. 실로 누군가를 고문할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방에 들어와 있다는 게 실감났다. 이곳이 신성회 본원 안에 있는 곳이든, 아니면 어딘가 소리쳐도 도달한 민가조차 없는 외진 곳에 있는 곳이든, 자력으론 탈출할 수 없을 듯했다. 드나드는 문은 쇠로 되어 있었고, 밖에서 잠금쇠를 풀어야만 들어오는 게 가능했다.
“아니, 약해질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자고…. 살아서 나갈 수 있어.”
장로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가둬 뒀는지는 몰라도. 라이너스는 혹여 죽고 싶은 충동이 들더라도 이겨내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온다.”
불길한 발소리였다. 딱딱한 것이 돌바닥에 닿는 소리. 이번에 오는 건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깨어 계셨군요?”
장로가 말을 했다. 그동안 어떤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부어도 대응하지 않다가, 드디어 먼저 말을 건 것이었다. 라이너스가 다소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장로는 유하게 웃으며 라이너스를 일으켰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수돗물을 틀어 라이너스를 씻겼다. 그를 한 방 먹일만한 기회가 수시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도 늑대에게 시달린 탓에 라이너스는 축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로는 사람이 아닌, 개를 씻기는 것처럼 라이너스를 대했다. 실제로 신도들 중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길 바라는 이들에게 그렇게 해왔었고, 라이너스는 이미 개과 동물과 실컷 배를 맞춘 사이이니 별문제가 없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을 수건으로 대강 닦아내고 그를 형틀에 뉘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텼으나, 라이너스는 그때 처음으로 장로가 억센 힘을 낼 수 있는 사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지 키가 크고 뼈대가 굵다고만 여겼었는데, 절대 맨살을 드러내지 않는 옷 아래의 몸이 근육질이 아니고서는 낼 수 없는 힘이었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불편한 곳에서 지냈다 해도 성인 남성인 라이너스를 그렇게 어린애 다루듯 할 수 있는 장로는 분명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라이너스를 억지로 형틀에 묶은 장로는 그의 등허리를 슬슬 쓰다듬으며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새 배우자가 꽤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이 새끼, 또 뚫린 입이라고 개소리를 지껄이지, 뭘, 뭘 하려는 거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M자 개각을 시켰던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엎드린 자세였다. 라이너스는 그가 목을 고정시키기 전에 어떻게든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고, 마침내 얼굴에 침을 뱉는 데 성공했다. 장로의 광대뼈를 타고 침이 흘러내렸으나 그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라이너스는 그가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기계인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사실, 그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건 라이너스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그러나 ‘새 배우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사고가 정지되고 그에게 어떻게든 모욕을 되갚아 줘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히게 되어버렸다. 어차피 별 쓰레기 짓을 다 당한 거, 이제는 더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해 침을 뱉고 욕을 했다. 라이너스의 저주에도 장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몸을 고정시키고, 카일을 범했던 기계장치에 전원을 넣었다.
“최상의 배우자 아닙니까? 당신의 음란한 마음을 바로 알아보고, 밑바닥부터 욕구를 채워줄, 바로 그런 존재 말입니다. 당신도 그를 꽤 원하고 있던 것 같던데.”
“누가 그런 개새끼를 좋아한다고 그래?”
“글쎄요….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지요? 아마 혼자서 성찰을 하고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인정과 신앙심이라는 사실을 언젠간 알게 될 것입니다.”
장로는 늘 그랬듯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며 기계 끝에 실리콘 딜도를 부착했다. 오메가들을 위해 고안된 딜도인 만큼, 라이너스가 버틸 수 있는 확률은 희박했다. 이런 기계에 처음 당하는 거라면 실신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데릭을 상대하면서 딜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굵기를 가진 채 페로몬을 내뿜는 물건에 익숙해진 몸이었다. 아마도, 쾌락을 느끼되 제대로 된 절정에 달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본인이 얼마나 나약하고 본능을 좇는 원초적인 존재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었다.
장로는 본격적으로 기계를 작동하기 전에 라이너스의 목에 목줄을 매달아 그가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본디 얼굴이 닿아 있어야 할 곳에 얇은 접시를 두었다. 흰 접시에는 접시만큼이나 희뿌연 액체가 담겨 있었다. 냄새를 맡자마자 라이너스는 액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정액이었다. 그냥 누군가의 정액을 담아두고 희롱하려는 역겨운 의도가 아니었다. 정액의 주인은 데릭이었다. 특유의 날것과도 같은 비린내가 섞여 있으나, 맡을수록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몸이 달아오르는 그 냄새. 사정한 지 얼마 안 된 게 분명했다. 몸속에 남아 있던 것을 비워낼 때만 해도 페로몬 냄새가 거의 날아가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이번엔 냄새를 맡자마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더러운 새끼, 미친놈들….”
“저런, 발기하신 것 같은데요.”
버티자고 마음먹은 게 무색할 정도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빨리 들 줄은 몰랐다. 라이너스는 정말로 혀를 깨물지 고민했다. 그러나 장로가 한 발 더 빨랐다.
“당신의 목소리는 충분히 듣는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 좋은 목소리이지만…. 아껴 두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당신의 배우자 밑에서 예쁘게 울면서 그를 만족시킬 거 아닙니까. 게다가, 입이 좀 걸어서 말이죠. 그가 욕설을 알아듣지 못해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입에 소리를 낼 수 없도록 볼 개그를 채웠다. 정말로 헐벗겨진 채 형틀에 묶여 얌전히 엉덩이를 드러내놓고 발기하고 있는 모습은, 당장 포르노 페이지에 메인으로 올라와 있는 장면이라 해도 아무도 의심치 않을 만한 수준이었다. 장로는 쉬익거리며 공기 흐르는 소리를 내는 라이너스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독 전등 아래에서 짙게 음영 잡힌 그의 얼굴이 매섭게 느껴졌다. 회백색의 눈동자는 명백히 조롱을 내비치고 있는 중이었다. 장로는 접시에서 데릭의 정액을 손가락으로 찍어 라이너스의 뺨에 천천히 펴 발랐다. 잡티 없이 투명한 피부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정액이 발린 게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흰빛이었다.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라이너스가 몸을 버둥거렸다. 장로는 뺨부터 천천히 인중까지 손가락을 그었다. 딱 코 아래쪽에 정액을 발라, 페로몬이 훅 끼쳐 올라오도록.
“으우우…!”
“그렇게 기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는…. 접시에 코를 박고 정액을 핥아먹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짐승처럼 구걸하게 될 테니까요.”
얌전히 있으라는 듯, 장로가 엉덩이를 손으로 세게 내리쳤다. 라이너스는 화들짝 놀라 버둥거리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어릴 때도 당하지 않던 체벌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해서 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손자국이 빨갛게 남을 정도로 장로의 손은 매서웠다. 아마 제대로 체벌을 당한다면, 피멍 정도는 쉽게 만들어줄 수 있을 만한 힘이었다. 장로는 잠잠해진 라이너스를 잘했다는 듯 쓰다듬다가, 엉덩이 살을 젖히고 애널이 드러나도록 했다. 연일 데릭에게 시달려 부어오른 애널은 손가락 정도는 아무렇게나 푹 집어넣어도 흐물흐물해져서 조일 만큼 풀려 있었다.
“좋군요. 아주, 잘 길들여졌어.”
장로는 자신의 가학적인 성향이나 지배적인 성향을 감추지 않았다. 투명한 실리콘 딜도 전체에 윤활액을 충분히 발라 두고, 가동을 시작했다. 살을 가르며 기구가 들어오는 게 느껴지자 라이너스는 까드득 소리가 나도록 입에 물린 것을 깨물었다. 데릭이 박을 때처럼 고통스럽다거나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은 밀려오지 않았지만, 이런 자세로 묶인 채 기계에게 쑤셔진다는 건 새로운 충격이었다. 천천히, 끝까지 실리콘을 집어넣던 기계는 조작하지 않아도 속도가 알아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푹, 쑤실 때마다 꿈틀거리며 조여드는 내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장로는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으, 으우…! 흐우우…!”
라이너스의 울부짖음을 뒤로한 채 장로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또 밀실에 혼자 남게 된 라이너스는 덜걱거리며 쉴 틈을 주지 않고 파고드는 기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벌써부터 실감하는 중이었다.
기계는 지치지 않았다. 오직 명령에 의해서 제 할 일을 너무 조급하지 않게, 꾸준히 반복할 뿐이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쑤시는 거라면 벌써부터 질리고 지쳐서 널브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오메가를 괴롭히고 발정나게 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는, 지쳐서 늘어지려 하는 순간 정확히 정점을 파고들어와 정신을 차리도록 만들었다. 앞으로 몸을 숙이지 못해 목이 뻐근했고 벌어진 입가가 아파왔다. 덜컹거리는 소음이 익숙해지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 으, 으우, 크흐으으…, 흣…!”
라이너스는 진정으로 괴로워서 몸을 비틀어대고 기계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굵다란 게 퍽퍽 연속적으로 처박혀서가 아니었다. 이제 이쯤하면 슬슬 노팅을 하면서 안에 있는 게 부풀어야 했는데, 끝없이 피스톤질만 반복하니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들어오는 것을 조이고 물어대도, 절대 부풀거나 압박감을 가해주지 않았다. 하필이면 전립선과 자궁구 양쪽 모두를 자극하게 만들어진 딜도였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쾌락이 올라와서 기대를 놓지도 못했다.
“흐어, 흑…, 아, 그흣….”
라이너스는 삼키지 못한 타액을 흘리며 눈을 깜빡였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처럼, 눈동자가 일순간 까뒤집혔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했다. 괴로워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하는 게 옳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몰라도, 사정하기엔 불충분한 자극이 끊임없이 가해지는 데다 코끝으로는 계속 페로몬의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차라리 전신에 쇄도해올 정도로 페로몬으로 샤워를 해버렸다면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을 텐데. 오직 코끝에서만 냄새가 미약하게 맴도는 게 더 힘들었다. 이겨낼 수 있다고, 버텨내자고 스스로를 격려하기에는 너무 많이 망가져 있었다. 어차피 장로는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는 기계 장치를 꺼 주지도 않을 터였고, 강제로 회개하겠다는 뜻을 받아내려는 걸지도 몰랐다.
그가 예고했던 대로, 접시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지나치게 유혹적이었다. 이 괴로움을 해소시켜줄 한 줄기의 단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반복된 자극으로 인해 의식이 몽롱해져 갈 때쯤, 라이너스는 눈을 내리 감았다. 눈꺼풀을 타고 흘러내린 땀이 긴 속눈썹에 맺혔다. 머리카락보다 더 짙은 빛의 속눈썹 밑에서 눈물이 배어 나왔다. 땀과 섞인 눈물방울은 접시로 미끄러져 섞여 들어갔다.
“흐으…, 흐으우…, 크흡, 하….”
라이너스는 기계에 박히면서 흐느꼈다. 비참하다거나, 이 상황이 수치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가고 싶어서였다. 30분 이상 가지 못하고 절정 언저리에만 머무를 수 있는 자극이 가해지고 있는데, 바로 코앞에 알파의 페로몬이 냄새를 풍기니 울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다. 정말 어린애처럼 꺽꺽대며 울었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점이 사무치게 외롭고,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아, 흐으으으…, 흐윽, 흣….”
누가 제발 박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기계에 의해 쉼 없이 쑤셔지고 있었지만, 부서질 정도로 박고 안에서 부풀려서 이성을 잃고 싸지르게 만들어주길 원했다. 추악한 날것의 욕구와 눈이 마주친 라이너스는 덜덜 떨며 허리를 움찔거리고 비틀었다. 더 자궁구 쪽을 꾹 누르고 찢을 듯 그 근처에서 팽창해야만 했는데, 딜도는 얄밉게도 얇고 뭉툭한 가지로 그 부분을 쿡 찌르고는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덜컹거리며 몸 밖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딜도를 꾹 조여봐도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내벽이 긁히고 마찰돼서 더 자극만 느끼고 몸을 틀어대는 결과로 직결됐다. 반쯤 발기한 성기는 지치면 가라앉는 듯했다가도 그렇게 괜히 몸을 움직여서 자극당하면 다시 꼿꼿해졌다.
슬슬 뺨에 발린 정액이 마르고 굳어가면서 냄새도 희미해져갔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접시 쪽을 향했다. 접시 위에서 굳어가는 액체는 징그러울 정도로 불투명한 흰빛이었다. 라이너스는 그것을 핥고 싶다고 생각했다. 목이 너무 말랐다. 하도 소리를 지르고 울어대서 목이 마르니, 그거라도 핥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으…! 으, 으우….”
라이너스는 지쳐서 늘어진 채 허덕였다. 지금 상태라면 장로가 구두를 핥으라고 요구해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힘이 들어서, 그만하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성적인 판단과 탈출 계획, 사회적 체면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모든 것을 제쳐두고 갈망했다.
싸게 해줘. 안에 싸줘.
딱 정신을 잃을 만한 지점에서 문이 열렸다. 장로는 기계를 멈춰주고 라이너스를 형틀에서 풀어주었다. 그리고 얼굴에 묻은 것도 말끔히 닦아주었다. 온몸에 체액을 묻혀가며 정사를 나눈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품에 늘어져 몸을 가누지 못하고 헐떡대는 걸 제외하면 아주 멀끔한 모습이었다.
“굉장한 시간을 보내신 것 같군요.”
어딘가 즐거운 듯한 음색이었다. 장로는 라이너스를 바닥에 내팽개치다시피 떨쳐내고 그의 얼굴 위로 받쳐 두었던 접시를 들어 고여 있던 액체가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걸 바라고 있었지요?”
무어라 대답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저주를 퍼부으려는 건지 입술이 달싹였다. 그러나 지친 나머지 라이너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기 바빴다. 금빛 눈동자가 탁해진 채로 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은 제 동생이랑 똑같았다. 진심으로 야해 빠진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장로는 흐트러진 그의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이미 얼굴이 정액으로 더럽혀져서 땀에 젖은 머리칼을 정리해주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일종의 기만이었다.
“당신이 아무래도,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거니와 배우자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듯하여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장로는 가버렸다. 그가 회개하라며, 혹은 그 늑대 놈과 정을 붙이든 사랑에 빠지든 어떻게 하든 간에 몸을 섞으라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의 유린은 거기까지였다. 라이너스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얼굴에 묻은 것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밤새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며 배 속을 울리는 헛헛한 느낌 때문에 힘들어했다. 무언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되었다. 이제는 굳어져서 페로몬 냄새도 옅어진 정액인데,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자극만 받고 정액을 채워주지 않자 내부에서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장로는 그다음 날도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묶어두고, 기계로 괴롭히되 절대로 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다음 날도, 어쩌면 다음 날이 아닐지도 모르는 날도. 매일인지 아니면 이틀 걸러인지는 알지 못해도, 늑대와 수간시키는 것 대신 기계에 묶어놓고 가학적인 행위를 당하게 만들었다. 체위는 다양했지만 결국은 사정 한 번 하지 못한 채 끝나는 건 똑같았다. 날마다 늑대를 상대할 때보다 더 빠르게 무너져 내려갔다. 라이너스는 이제 욕설을 입에 담지도, 장로를 노려보지도 않았다. 아내가 혹시 구하러 와줄 수도 있다는 희망도 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가고 싶다, 혹은 엉망진창으로 쑤셔 박히고 사정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했다. 스스로 그런 음란하고 위험한 망상을 떠올렸다는 것을 자책하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구멍이 근질거려서 견디기 힘들었다. 주기적으로 쑤셔지고 있었지만, 불충분했다. 손을 댈 생각조차 들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손가락 따위로는 절대 원하는 것을 이뤄낼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는 덕이었다.
“저런, 밤잠을 설치기라도 한 얼굴이신데. 남편이 보고 싶으신 겁니까? 말만 하면 불러다 드리겠습니다.”
라이너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장로가 지칭하는 남편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자각하자마자 소름이 끼쳐왔다. 왼손의 주먹을 꽉 말아 쥐며 결혼반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졌다. 갇혀 있는 동안 망상 대상의 절반은 티나였다. 절실하게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목소리, 얼굴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갔다. 둘이 갔던 곳이나 했던 일들은 선명히 기억났지만, 정작 그녀의 얼굴을 그려보려고 하면 누가 뭉개버리기라도 한 듯 뿌연 이미지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음욕이 완전히 머리를 지배해 버릴 것 같아서 기도문을 찾는 사람처럼 거기에 매달렸다. 라이너스의 신앙심은 그녀를 향해 있었다.
라이너스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장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에게 친절하게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지금까지 기계에 매달아 범했던 것보다 더 크고 굵은 딜도였다. 그리고 정액이 한가득 담긴 그릇도 옆에다 놓았다. 우유처럼 보이는 그것이 정액이란 것을 바로 알아챘다. 그만큼이나 정액을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라이너스는 소름이 끼쳤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로는 라이너스가 질겁하든 말든, 온건한 목소리로 설교하듯 말했다.
“오늘은 집회가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제시간에 돌봐 드리기 힘들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지만 쑤셔주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니, 그걸로라도 달래고 있으십시오. 윤활젤이 필요 없는 몸이 되었겠지만…, 남편 얼굴도 못 보는데 정액이라도 있으면 위안이 될 거 같아서 준비했답니다.”
끝까지 위하는 척이었다. 장로가 나가자마자 라이너스는 신경질적으로 딜도를 문에 집어 던졌다.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오를 기운이 있다기보다는, 그걸 계속 손에 쥐고 있으면 정말로 스스로 뒤나 쑤시면서 더 비참해질 것 같아 겁이 난 것에 가까웠다.
“미친 새끼들….”
그 미친놈들에 자신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지독한 악몽이었다. 깨어나길 바란 것이 수십 번이 넘었지만 절대 깨어날 수 있을 리가 없는 끝없는 악몽. 이쯤 되면, 카일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 애는 내가 여기 갇혀 있는 걸 알기는 할까?
모를 수도. 장로에게 다 같이 속아 넘어간 게 맞겠지. 의심의 싹을 빠르게 잘라낸 라이너스는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삼켰다. 사랑하는 동생까지 의심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이 상황도 환멸스럽게 느껴졌다.
“하….”
내친김에 정액이 든 그릇도 엎어버릴까 했지만 괜히 냄새가 퍼져 못 볼 꼴을 보일 바에야 거기 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라이너스는 기운 없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연일 페로몬에 노출된 몸은 왜 씨를 받지 않냐고 추궁하기라도 하는 듯,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흐…. 제기랄, 빌어먹을.”
충동을 쫓아내기 위해 바닥에 머리를 찧고 이마를 냉돌에 대고 문질렀다. 벌써 여기 갇힌 지 열흘이 넘어간 게 확실해졌다. 약 없이 주는 음식만 먹고 버티고 있는데, 히트사이클이 오지 않는 게 이상했다. 게다가 알파의 페로몬에 그렇게 많이 노출이 되었으니, 조만간 히트사이클이 올 게 뻔했다. 그게 언제일지 몰라 라이너스는 불안해했다. 지금도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있고, 틈만 나면 애처럼 울면서 헛된 생각에 사로잡히는데 얼마나 더 추락을 해야 하는 걸까.
관리라는 명목하에 히트사이클을 겪어본 적 없이 무수한 소문만 들어왔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컸다. 조금만 성기 쪽에 자극을 느끼거나 나아가 성욕을 느껴도 죄책감을 느끼고 비정상적인 것인지 의심했다. 늑대의 자지를 원하긴 했어도, 그 기계까지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매일같이 기계로 범하면서 자극을 주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시간이 갈수록 뒷구멍이 허전해서 허리를 달싹이게 되었다. 라이너스는 내던진 딜도와 정액이 담긴 그릇을 번갈아 보았다.
정말로 자발적으로 장로가 두고 간 것들에 손을 댄다면 인간 실격이었다. 사람이길 포기하고, 놈들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걸 인정하게 되는 꼴이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으로 타액이 넘어가는 감각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쿵쿵대서, 귀를 틀어막고 시끄럽다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라이너스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엉금엉금 기어가 내던진 것을 붙잡았다. 오랜 시간 걷지 않아 걷는 법을 잊어가고 있어도, 기어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딜도는 차갑고 단단했다. 그 물건을 마찬가지로 식어가는 그릇에 처박은 다음 휘저었다. 새까만 몸체에 희멀건 정액이 잔뜩 들러붙었다.
“으…, 으으….”
이걸, 집어넣는다고?
이걸. 손이 벌벌 떨렸다. 그렇지만, 페로몬의 냄새를 맡았을 때부터 그것을 핥고 냄새 맡는 걸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안에 받아들이고 싶었다. 뜨거운 정액을 안에서 차고 넘칠 만큼 싸질러 주길 희망했다.
“흐, 흐으…, 윽….”
볼품없는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애널 입구에 질척거리는 차가운 물체를 가져다 댔다. 손에 힘을 꾹 주자, 흉물은 쉽게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앉은 자세로 굵직한 물건이 들어온 통에 숨이 저절로 거칠어졌다.
“하아…, 흐….”
효과가 있었다. 알파의 페로몬 덩어리인 정액이 묻은 딜도를 처박는 순간, 그간 몸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느낌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라이너스는 굶주린 사람처럼 자위했다. 혼자서 뒤를 쑤셔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엉성한 동작이었고, 오랜 감금으로 팔에도 힘이 없었으나 필사적이었다.
“아! 흐읏…, 하, 윽….”
조금만 움직여도 팔이 뻐근했다. 양손으로 번갈아 가면서 해도 늑대는커녕, 기계가 하던 것의 반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딜도는 바닥에 흡착할 수 있는 형태의 물건이었고, 뒤늦게 그것을 알아챈 라이너스는 바들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몸에서 딜도를 뽑아내는 것조차 아까워서 그러지 못했다. 장로의 고문이 성과를 드러낸 것이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미약한 페로몬에 의지해서 허리를 놀렸다. 바닥에 딜도를 붙여놓고 그 위에서 몇 번이고 방아를 찧으며 들썩였다. 그래도 절정에 달하진 못했다. 몸을 비틀어가며 들어온 것을 조여도, 노팅당하지 않는 한 가지 못하고 계속 뻣뻣하게 세운 채 겨우 쿠퍼액이나 질질 흘릴 뿐이었다.
“으, 흐윽…, 아, 하아…, 하게, 해줘…. 제발, 앗…!”
누구에게도 하는 애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지칠 때까지 가지 못하고 자위하던 라이너스는 앞으로 엎어진 채 씨근덕거리며 흐느꼈다. 서럽게 울면서 손가락으로 차가운 바닥을 짚고 숨을 헐떡였다. 이제는 노팅 없이는 정말 사정할 수 없는 몸이란 것을 철저히 깨닫고 절망에 부딪혀 버린 것이었다.
“흐…, 흐읍…, 하, 으흑….”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는데 문이 열렸다. 실내의 희미한 전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밝은 빛이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그 가운데에는 장로가 서 있었고, 순간적으로 라이너스 눈에 그의 등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다.
“심심할까 봐 드린 장난감이 도움이 되었나 보군요.”
장로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뒤에서 기다리던 이들을 안으로 들였다. 좁은 밀실이 꽉 차게 되었다. 데릭뿐만 아니라, 카일과 벤까지 들어와 있었다. 카일을 알아본 라이너스는 언어를 잃다시피 한 상태가 되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운 실내에서도 카일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땀에 젖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간 서늘한 실내에서 그의 몸을 따라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듯도 했다.
“라이너스 형님….”
“카일, 러스…. 이게, 이게 도대체….”
동생 앞에서 시꺼먼 딜도를 뒤에 꽂은 채 나체로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동생 역시 나신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아주 건장하고 키가 큰, 어두운 피부를 가진 남성이 서 있었다. 라이너스는 보자마자 그가 바로 카일을 차지한 그의 알파이자, 데릭의 아버지임을 눈치챘다. 데릭과 분위기가 아주 똑같았다. 다만 그는 늑대가 아니라 사람의 모습이었고, 라이너스에겐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님…. 어떤 설명도 드리지 못한 건, 죄송해요. 그렇지만, 비밀 집회는 참석자들께만 관련 내용을 이야기 해 드릴 수가 있어서요….”
카일은 엎드려 있는 라이너스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몸을 숙였다. 악의라곤 하나도 없는, 순진무구한 얼굴 그대로였다. 다만 헐벗었을 뿐이었다. 이 방에서 의복을 걸친 이는 오로지 장로 단 한사람이었다.
“형제님은, 당신을 구원하려는 이 계획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보고 싶다는 편지를 남기게 된 것이었죠. 정식으로 소개하는 건 지금이 처음이겠군요. 다소 거친 방법이었음은 동의합니다. 이분이 바로 형제님의 남편 되는 분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새로운 배우자의 아버지이기도.”
“어쩌라는 거야…. 도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 거냐고.”
“저희는 당신에게 기회를 드린 겁니다. 어릴 때부터 당신은 신앙심에 대해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본성을 부정해오셨지 않습니까. 당신의 몸은 축복입니다. 그것을 억지로 감추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옳은지는…. 이곳에서 충분히 생각하셨지 않습니까?”
“이런 게 축복일 리가 없잖아…. 그냥 다 그만두고 싶어, 힘들어….”
라이너스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데릭이 들어온 순간부터, 그의 숨소리까지도 신경을 긁어댔다. 눈앞에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두고 끊임없이 방해받는 것만큼이나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형님, 형님이 우려하신 것과는 다르게, 저는 굉장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병마로부터 구원받은 이후, 형님도 구원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쭉 하고 있었어요.”
카일은 손을 뻗어 라이너스의 뺨에 흘러내린 눈물 자국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나뿐인 가족을 위하는 얼굴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공유하고 싶어하고, 좋은 것을 보면 언젠가 함께 와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구원을 받았으니 라이너스에게도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날 길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카일은 진심으로 본인이 구원받았다고 믿고 있는 중이었다. 기적이라는 말 이외의 것으로는 지금껏 겪은 일을 설명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시간 전체를 본원에서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장로의 말을 듣고 내재화하게 되어버렸다.
재앙이라고 여겨졌던 병색 깊은 몸은, 사실 다른 이들은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축복이 될 수 있으니 소중히 하라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같은 오메가로서 힘들게 살아가는 라이너스 형님도 도와드리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왔었다.
카일의 손길이 닿자 라이너스는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그러다가 안에 들어 있던 것의 존재가 다시금 상기되어 몸을 굳혔다. 동생에게 못 보일 꼴을 보였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얼굴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형님…. 장로님을 미워하지 마세요…. 그분은 저희를 도우려 하시는 거니까요. 믿으셔야 해요.”
진정으로 안타까운 이를 바라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카일이 말했다. 그를 감화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행복한지 직접 보여야 한다는 장로의 말에 따라 손길을 거두고 대신 벤의 목을 끌어안았다. 방금 전까지 숱한 사람들의 앞에서 기적의 증인인 모습을 보이고 왔지만, 아직 한 번 더 할 체력 정도는 남아 있었다.
“제발…. 형님이, 믿으시고 제대로 된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라이너스는 정말로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카일은 평소와 똑같았다. 며칠 전, 혹은 몇 주 전에 음료를 따라주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정말로 순수하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뒤틀리고 광기에 물들었다는 사실을 본인은 모르는 듯했다. 라이너스는 너무 겁이 나서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가 하려는 짓을 보고만 있었다.
카일은 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끈적하게 얽히던 두 사람은, 이내 결합했다. 흰 다리사이로 알파의 강인하고 두꺼운 살덩어리가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퍽, 퍽 하는 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것을 보는 동안, 라이너스는 충격으로 뒤로하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으으응…! 아, 하으, 응…, 흐읏…, 벤, 하아….”
분명 사람의 형상 둘이서 관계를 맺는 건데, 둘 다 짐승처럼 보였다. 카일이 주워 담는 말은 인간의 언어였지만, 등 뒤에서 자신의 오메가를 거칠게 탐하는 이의 눈빛이라거나, 그에게 번쩍 들린 채로 박히는 몸 모두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둘의 페로몬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라이너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카일이 말한 대로,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더는 열성처럼 보이지 않는 자지를 발딱 세운 채, 정점을 찔릴 때마다 우는 소리를 내며 정액을 찔끔거렸다. 벤은 아예 그의 몸을 들고 처박아대며 삽입하는 장면을 라이너스에게 보여주었다. 자신의 정력을 과시하는 행동이었다.
“형제님은, 아주, 잘, 지내십니다.”
장로가 라이너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한 단어씩 끊어 분명하게 말하면서 그를 충동질했다. 발기한 채로 부모의 관계를 지켜보던 데릭을 끌고 와, 그의 성기를 라이너스의 입가에 대고 문질렀다. 갑자기 시야를 가로막는 검은 털에 인상을 쓰는 것도 잠시, 뜨끈거리면서도 날것 그 자체의 냄새가 확 풍겨오자 라이너스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짧은 찰나에 수도 없이 되뇌었다. 무너져가던 이성을 동생 앞에서 추한 꼴을 보였다는 한줄기 수치심이 간신이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쿠퍼액으로 푹 젖은 것이 금방이라도 입술로 파고들 것처럼 문대졌다. 라이너스는 그것을 깨물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가까스로 이겨냈다.
여기에서 도망갈 방법은 없었다.
“으, 싫…, 싫어…. 난, 아내가 있어…! 아내가, 티나가 있다고….”
최후의 수단이었다. 아내라는 단어를 염불처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외며 저항하려 했다. 그렇지만, 장로는 참을성 있게 라이너스가 직접 혀를 내어 늑대 배우자의 자지를 핥을 때까지 입술에 문지르는 행동을 반복했다. 입안으로 쿠퍼액이 들어오면서 입안과 코 안으로 페로몬이 확 퍼지자, 라이너스는 절제력을 잃었다. 입술이 벌어지고 혓바닥을 허락했다. 간을 보듯 성기를 군데군데 낼름거리던 혓바닥은 곧 참지 못하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그것을 빨아댔다.
그간 차가운 접시 위에 굳어가던 정액과 결이 달랐다. 뜨겁고, 살아 있는 알파의 체액은 라이너스의 이성을 끊어 놓기 충분했다. 장로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아예 성기를 붙잡고 늑대의 하반신에 고개를 처박은 채 쪽쪽 소리를 내어가며 빨기 시작했다.
“크으우…, 큿….”
데릭은 기분 좋다는 듯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신을 받아준 반려의 몸을 핥았다. 참았던 정액이 퍽, 터져 나오며 라이너스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그러고도 가라앉지 않은 성기는 아플 정도로 부풀어 어서 오메가의 안을 들쑤시고 싶어 했다. 라이너스는 얼굴에 엉겨 붙은 정액을 손가락으로 훔쳐냈다. 아래쪽에 처박혀 있던 딜도를 빼내자 벌어진 애널이 뻐끔거리며 말간 액을 뱉어냈다. 체액을 먹고 싶은 게 아니었다. 허기를 채우려면 안에 싸줘야만 했다. 얼굴에서 걷어낸 액체를 멍한, 조금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밑에다 쑤셔 넣고 있는 걸 본 데릭은 라이너스를 밀어 눕히고 위에 올라탔다.
“으…, 으으….”
데릭의 노란 눈동자 속에서 욕구에 패배한 사람의 얼굴과 눈이 마주친 라이너스는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자신이 한 짓을 자각해버린 동시에, 흥분돼서 미칠 것 같은 하반신의 감각을 느껴버린 것이었다.
“큿, 흐, 아아아…!”
오랜만에 들어온 것을 반기는 애널은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꽉 물어댔다. 너무 커서 아팠다.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좋은지, 라이너스는 박히자마자 그대로 정액을 지려버리고 말았다. 며칠 동안 사정하지 못해 울고 이성을 잃어갔던 것에 비해 너무도 쉬운 사정이었다. 늑대에게 박히기만 하면, 스스로가 조루인지 의심하게 될 정도로 몇 번씩 사정했었다. 벌써부터 몸은 흥분감을 제어하지 못하고 잔뜩 조여대며 정액을 짜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헉, 흐으, 읏…! 아, 으큿…! 흐, 아, 아냐…, 아니야….”
이성이 본능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라이너스는 반사적으로 부정하며 고개를 저어댔다. 쾌락을 원했던 만큼 그것에 몸을 내던지는 것에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데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게 된 카일은 그를 이해한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앗…! 아, 하으으윽…, 형님, 좋아 보이세요…. 어서, 행복을, 받아…! 으응…, 들이세요….”
어느새 벤은 늑대의 모습으로 변해 추삽질을 하고 있었다. 비밀 집회에 나설 때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갈 때도, 아닐 때도 있었다. 어떤 모습이든 카일은 변함없이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요즘에는 굳이 인간의 모습으로 있으려고 애쓰지 않는 중이기도 했다. 본모습이 더 편하기도 했거니와, 카일이 노팅당할 때마다 그렇게 야하게 군 탓이었다.
동생이 자신을 안고 있는 늑대의 것보다 더 큰 것에게 박히면서, 배가 볼록해졌다 꺼지길 반복하는 모습을 본 라이너스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말도 제대로 못 잇고 짐승에게 함락당하고 있었지만 카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침대에서 죽어갈 날을 기다리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마땅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카일은 혼자서 길을 찾아낸 것이었다.
“하…, 하하…, 으, 윽…! 아, 흐윽….”
라이너스는 자조적으로 웃다가 헐떡이며 몸 위를 뒤덮고 있는 늑대를 붙잡았다. 깊은 곳을 찌를 때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로 오싹한 쾌락이었다. 점점 추삽질이 느려지자, 라이너스는 안에서 부푸는 성기를 기대했다. 며칠간 바랐던 순간이었다.
“데릭. 말했었죠?”
갑자기 장로가 끼어들었다. 데릭은 불만에 찬 듯 우우, 하는 소리와 끼잉대는 소리를 번갈아 내다가 성기가 다 부풀기 전에 몸에서 느릿하게 빼냈다. 안에 온전히 박힌 채 자궁을 압박하고 씨를 뿌리길 기대했던 라이너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흥분이 가라앉고 그렇게 식히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옆에서 카일이 3번쯤 가는 동안, 라이너스는 한 번도 씨를 받지 못한 채 헐떡여야만 했다.
“흐, 왜…, 왜 그러는 거야….”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데릭은 말을 하지 못했고 장로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하늘 아래 배우자를 둘이나 둘 수는 없죠?”
“무슨, 무슨 말이야….”
“선택을 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어, 억지로, 하게 만든 건 너잖아…!”
아내가 있다고 몇 번씩 울면서 애원하지 않았던가? 왼손 약지의 반지를 무시한 건 장로 아니던가? 이제 와서 아내를 언급하자 라이너스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놀리듯 바라는 것을 해주지 않고 애만 태우면서 괴롭히자 발정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이었다. 장로는 교활한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당신의 아내인가요? 아니면… 남편인가요?”
“무, 뭐라고?”
“당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자지로 봉사할 수 있는 남편인지, 평범한 베타 아내인지 선택하십시오.”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에도 성기는 빠져나가고 있었다. 데릭은 느릿느릿 몸에 박았던 것을 뽑아내는 중이었다. 라이너스는 당황해서 반박도 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대답이 늦어지자, 데릭은 거의 끝까지 빼냈던 것을 추궁하듯 단번에 안으로 푹 쑤셔 넣었다. 라이너스는 ‘흐앗!’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젖혔다. 데릭은 자신을 선택해달라는 양 얼굴과 목을 핥고 끄응거리는 소리까지 냈다.
“이미 즐길 걸 다 즐겨 놓고…. 없던 일로 하고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지난날, 당신이 늑대 좆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스스로는 알지 않습니까. 오늘도, 정액을 펴 바른 딜도로 뒤를 음란하게 쑤셔댔고 말이죠.”
“네가…, 네가 시켜서….”
“안 시켰어도 했을 거잖아요.”
장로는 라이너스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선택하세요. 늑대를 원하신다면, 반지를 반납하시면 됩니다.”
분명 사제복을 입고 있는 그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혓바닥이 긴 악마로 보였다. 라이너스는 과호흡이 온 사람처럼 빠르게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했다. 노팅당하고 싶었다. 만일 오늘까지도 그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고 여기서 끝난다면, 스트레스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조금만 더 해주면 되는데, 자꾸 빼내려는 늑대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크우우….”
데릭의 성기가 거의 빠져나갔다. 라이너스는 조급해졌다.
“아, 아아…, 흐, 으어….”
어찌하지 못하고 손을 떨었다. 어차피 선택지는 없었으나, 장로는 그가 스스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회개하길 바랐다. 결국 성기가 밖으로 쑥 빠져나갔다. 몸을 꽉 채우고 있던 살덩이가 빠져나가니, 벌어진 틈으로 냉기가 들어차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허전한 곳을 채우고 싶은 굶주림이 커져만 갔다. 자극당할 대로 당해 놓고, 안에 정액이 퍼지는 뜨끈한 감각이 빠지게 되자 몸은 견뎌내지 못했다. 라이너스가 흘린 투명한 액이 길게 늘어지며 데릭의 성기에 매달려 있다가 툭 끊어져버렸다. 울 것 같은 얼굴로 일그러진 채 몸을 떨던 라이너스는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고 왼손을 내밀었다. 직접 반지를 벗겨 가란 의미였다. 떨면서 선택을 내렸으나, 차마 그 광경을 볼 수 없다는 듯. 소리 없는 오열이 이어졌다.
“반지를 빼서 주십시오.”
장로는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어이 라이너스가 직접 반지를 빼서 건네야 한다고 강요했다.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지도 못한 채 울던 라이너스는 정말로 그런 요구가 합당한 거냐고 원망하는 눈빛으로 장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단호했다. 강요하지 않고 손만 내밀고 있었다.
티나, 사랑하는 티나.
혓바닥 위로 그녀의 이름을 굴려 보았다. 그녀에게서 받은 사랑을 이렇게 저버린 스스로가 세기의 악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착하고 상냥한 인물에게 에반 가의 저주받은 이기심을 물려받은 라이너스란 사내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데릭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계속 감금한 채로 강요당할 수도 있었다. 노팅당하기 직전까지만 몰아붙이고, 절정에 오르는 것을 금하는 식으로 몸을 서서히 고문해가면서….
내가 정말로 티나를 사랑했었나?
그랬었지.
지금도?
나는, 티나를…. 사랑했었어.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라이너스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땀과 체액으로 얼룩진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냈다. 이성을 붙잡고 있던 족쇄를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었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 티나…. 으흐흑, 흐, 윽….”
반지를 건네고 나서 라이너스는 큰 소리로 흐느꼈다. 처음 늑대와 몸을 섞었을 때와 동일한 반응이었다. 데릭은 성의껏 자신의 것이 되기로 결심한 오메가의 얼굴을 핥아주며 다시 삽입을 했다. 장로가 오메가를 차지하려면 참아야 한다고 거듭 설명해서 억지로 버티긴 했지만, 들이박고 노팅하고 싶은 건 데릭 쪽도 마찬가지였다.
“크우…, 크흐우…!”
그르릉대는 소리를 내며 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할 정도로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라이너스는 갑자기 절제력이 고장 난 것처럼 달려드는 늑대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를 끌어안은 채 숨을 죽였다. 전립선과 자궁구를 압박하듯 푹푹 찌르고 들어와서 감히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자극이 너무 강한 나머지 소리가 끊어진 쪽에 가까웠다. 한창 거칠게 박아대다 마침내 데릭은 안에서 성기를 부풀리며 그가 자신의 오메가임을 공표했다.
“흐…! 아, 하아아악…!”
기대하던 아픔에 라이너스는 데릭의 털에 파묻혀 탁액을 질질 흘려댔다. 좋아서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직 오메가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알아버린 라이너스는,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산산조각나다 못해 부서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장로와 카일이 거듭해서 말하는 신앙심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쾌락의 끝에서 보이는 환각을 각자의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제관 안쪽의 차가운 밀실이 체온으로 달궈지고 짐승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동안, 장로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두 형제를 직접 손에 넣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로써 신성회는 더더욱 번창하게 될 터였다.
*
“으흣…! 흐, 응…! 아, 하으!”
넓은 집회실에서 신음이 울려 퍼졌다. 빨간 머리의 늘씬한 남성이 짐승 같은 눈빛을 한 남성에게 범해지고 있었다. 발기한 물건에서 계속 물이 흘렀다. 성기 말단에서 흘러내린 선액은 끊어지지 않고 박히는 대로 함께 흔들거리며 배 위에 엉겨 붙고 있었다. 남자의 배는 조금 부푼 채 박는 대로 흔들렸다.
“그는, 신앙심이 전혀 없었으나…. 이제는 아주 독실한 신자가 되어, 기적의 씨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장로의 나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회개했다는 말에 집회 참석자 일부는 조소했다. 이 촌극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신앙심 때문이 아니라, ‘볼거리’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평일 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다가 이내 집회실이 조용해졌다.
라이너스는 부푼 배를 안고 데릭에게 키스했다. 섹스에 미쳐있는 사람처럼, 인간 형태의 남성에게 키스하자 곧 그는 커다란 진짜 짐승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야수 같은 존재에게 안겨 있다가 그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 몸을 흔드는 요부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곧 하나둘 페로몬에 취해 물건을 벌떡 세웠다. 신도들 중 상당수가 발기한 뒤로부터는 간간이 욕설이 들리거나 술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옆에서는 마찬가지로 카일이 벤과 관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스스로 위에 올라타 허리를 놀리는 순간, 부푼 배가 위아래로 부드럽게 출렁였다. 믿지 않았던 자가 짐승의 씨를 받아 임신까지 해놓고 이토록 음탕하게 굴고 있다니. 모두가 믿지 못했지만, 넘치는 배덕감에 기꺼이 돈과 욕정을 퍼부었다. 알파가 주는 쾌락을 인정한 순간부터, 라이너스는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금욕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해왔던 만큼 타락이 빨랐다.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반쯤 망가진 채로 데릭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데릭의 아이를 가진 순간, 더는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 되었으며 자신은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독실하게 신성회를 믿게 되었다.
믿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약속했던 대로, 아이를 낳게 된다면 에반이라는 성씨를 물려주기 위하여 아버지께 소식을 전할 편지를 작성했다.
[친애하는 아버지께.]
*
찌그러진 필체로 적힌 편지를 받은 에반은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다가 신성회 본원 입구 앞에 멈추고서야 숨을 돌렸다. 이제는 주차장에서 그 앞까지 걸어오는 것도 꽤 기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여전히 할 일은 많았고, 이리저리 사업적 계약을 맺으러 다니면서 본원에 오는 일을 소홀히 하긴 했었다.
라이너스가 카일을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동생을 보러 왔다가 자신이 얼마나 틀렸는지 반성하고서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에반은 눈물을 흘렸다.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편지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라이너스는 회개한 삶을 살기 위해 본원에서 지내기로 했으며, 심지어 본원에서 더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났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렇게 아내를 사랑한다고 열을 내던 아이가 다른 이랑 눈이 맞을 정도라니, 정말로 깊이 종교에 감화되었다고 믿은 에반은 시간을 내어 아들들을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고 마침내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오늘 집회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평일 집회 건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는데, 신설이 된 모양이었다. 카일도 만나고, 손자도 볼 생각에, 에반은 들떠있었다. 아무도 밖에 없는 걸 보니 벌써 집회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사제의 안내를 받아 비밀 집회실로 내려간 에반은 익숙한 빨간 머리 두 명이 헐벗은 채로 늑대와 교접하고 있는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신이여.”
늙은 남성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카일과 라이너스는 아버지가 방문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늑대의 씨를 받으며 배를 부풀리기 바빴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주시하고 있던 장로는 고갯짓을 해서 집회실의 문을 닫도록 만들었다. 지금이야 충격받겠지만, 그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식들이 행복하다고 믿을 만한 사내였다.
저렇게 기뻐하는 얼굴인데, 믿지 않을 수가.
믿음의 본질에 대하여 꿰뚫고 있는 장로였다. 카일은 발그레한 얼굴로 벤의 양 뺨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라이너스가 아이까지 갖고 날마다 자신의 아들과 관계하는 것을 보며, 조금 이상한 관계가 되긴 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행복해 보인다며 카일은 만족했다. 진정으로 병마로부터 형님을 구해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이 겪은 기적을, 형님에게까지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며 모든 것을 허락해준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여전히 모호했지만. 기왕 예고된 인생보다 더 긴 삶을 살게 된 것에 보답하는 의미로, 최선을 다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실행에 옮겼고, 아이들도, 남편도, 그리고 형님도 행복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맨 뒤쪽에서 배가 부푼 채로 늑대에게 추삽질을 당하는 아들을 본 에반의 곁으로 장로가 다가왔다.
“놀라지 마십시오. 처음 본 사람들은, 기적의 어마어마한 모습에 다들 무릎을 꿇곤 한답니다.”
“믿을 수가…, 없구만.”
“곧, 믿게 될 것입니다. 두 아드님들은 구원의 증인들이니까요.”
장로는 에반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나이 든 노인은 땀과 눈물을 동시에 쏟아내며, 진정하려 했다. 장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도닥였다.
“형제님께,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에반 가의 두 아들이 늑대와 배가 맞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비밀에 발을 들이게 된 또 하나의 에반을 장로는 진심으로 축복했다. 그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결국은 믿음을 갖게 될 것이었다.
에반가의 비밀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