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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1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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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맨(Wicked man)
세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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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화
3화
4화
1화
이지훈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쓸데없이 넓은 복도가 보였다. 복도에 세워진 커다란 고무나무 화분을 보고 감상할 새도 없이 사무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비서가 일어나 인사했다. 그도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대충 고개를 주억였다.
비서가 수화기를 집어 들어 말했다.
“이사님, 손님 오셨습니다.”
짤막하게 네, 라고 대답한 비서는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리고 지훈에게 “들어가시면 됩니다”라며 맞은편 문을 가리켰다. 짧은 시간 동안 비서의 잘록 들어간 허리와 튀어나온 엉덩이를 훔쳐보던 지훈이 고개를 까딱이고 문으로 향했다.
두껍고 큰 문은 복도처럼 쓸데없이 무거웠다. 비서도 보고 있겠다, 남자로서 허세를 부려서 한 손은 여전히 주머니에 꽂은 채로 한 손만으로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사무실 내부도 쓸데없이 넓고 고급스러웠다. 바닥에 광택이 돌아서 감히 들어서기 어려웠다.
지훈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 큰 창을 등지고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키와 덩치에 창에서 쏟아지는 빛이 책상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한낮이라 블라인드를 내려도 반투명의 블라인드는 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문과 책상 사이의 거리가 멀어도 그림자는 금방이라도 지훈의 발끝까지 닿을 것처럼 보였다. 양복을 정석으로 빼입은 남자는 삼십 대 중반 즈음으로 보였다.
“바쁘신데 오시라고 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지훈이 미소 지었다. 미소라고 해봤자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모양새였다. 이십 대인 자신보다 분명 나이가 많을 게 뻔한 남자를 앞에 두고 여전히 주머니에 꽂은 손 하며, 검은색 목 폴라에 가죽 재킷을 걸치고 기우뚱하게 선 모습에 비식거리는 미소는 겸손하지 않았다. 그래도 남자는 흔들림 없이 마주 보며 웃었다.
남자가 앉아 있던 책상과 문 사이는 몇 미터의 거리가 있었고, 그사이에 넓은 가죽 소파가 있었다. 당연히 거기 앉으라고 할 줄 알았던 지훈은 남자가 안내하기도 전에 소파를 향해 발을 뗐다.
남자는 소파로 다가오는 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양복에 어울리는 구두가 뚜벅거리며 낮고 둔탁한 소리를 냈다.
지훈이 조금 당황하며 소파를 앞에 두고 발을 멈췄다. 순식간에 그의 그림자가 발끝을 침범해 종아리, 허벅지를 넘어 얼굴까지 올라왔다. 정면을 바라보던 시선도 조금 올려야 했다.
“오시는데 힘들진 않으셨고요?”
“아뇨, 차 타고 왔는데요.”
남자가 손을 내밀어 엉겁결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어 악수했다. 지훈은 곁눈질로 남자의 뒤, 저 끝에 있는 책상에 놓인 명패를 확인했다. 검고 광택이 도는 명패엔 ‘박승혁 이사’라고 적혀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았다.
“이지훈 경위님 맞으시죠? 박승혁 이사입니다. 통성명이 늦었네요.”
박승혁이 눈치채고 먼저 운을 띄웠다. 지훈이 “아닙니다” 하며 얼버무렸다. 악수하는 손을 두어 번 흔들고 빼려는데 그가 놓지 않아 몇 번을 더 흔들어야 했다. 박승혁이 한 번 힘주어 잡은 뒤에야 손이 떨어졌다. 지훈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풀어진 손은 이번엔 뒷주머니에 들어갔다.
“김 경감님께 들었습니다. 저희가 관리하는 영업소에 신고가 들어갔다고요.”
“아, 예에.”
“안 그래도 형사님들 바쁘신데 번거로우시겠어요.”
“아닙니다, 뭐…”
지훈은 한 손은 뒷주머니에, 한 손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 보는 사이에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와 서 있는 그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 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느꼈던 아니꼬운 감정이 더 진해졌기 때문이다.
겉으론 번듯한 건물과 번듯한 기업명을 쓴 보통의 대부업 회사이지만, 내부는 대부업과 더불어 클럽, 유흥업소, 도박업소를 운영하는 범죄조직에 불과했다. 합법적인 대부업 아래에는 불법 사채업도 성행했다. 조폭 주제에 이사란 이름 달고 뻔뻔하게 앉아 있는 것도 우스운데, 건물의 규모나 고급스러운 내부 모습에 더 아니꼬웠던 거다.
‘경찰 나부랭이는 앉지도 말란 거지.’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앉으라고 안내하지 않는 모습에 그런 감정은 더 심해졌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유치해 보여도, 그런 부분이 더 사람 자존심을 긁는 것이다.
지훈은 아닌 척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구경하는 척 시선을 돌렸으나, 저도 모르게 실룩대는 눈가나 안쪽 입술을 깨무는 모습에선 그런 감정이 드러났다. 그가 코앞에 있어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걸 구태여 숨기고 싶지도 않은 상대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멀끔한 얼굴에 이사 달고 쫙 빼입어도 조폭 새끼일 뿐인 놈. 이지훈에게 박승혁은 그런 이미지일 뿐이었다.
딴청을 피우려고 둘러본 사무실 내부는 자기 월급으론 몇 년을 모아도 사지 못할 게 뻔한 물건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이나 고급 장식장 위에 놓인 청자 화병, 소나무 분재, 이상한 모양의 수석을 보고 있자니 꼬인 속이 더 꼬여졌다.
그런 그를 박승혁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빤히 쳐다봤다.
“미적 감각이 없어서, 대충 꾸몄습니다.”
“멋진데요.”
속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잠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아, 귀한 분 세워놓고… 앉으시죠.”
박승혁이 이제 생각났다는 듯 감탄사와 함께 뒤를 돌았다.
들어온 지 몇 분 만에 앉아본 소파는 넓고 푹신했다. 끝까지 등을 붙이고 앉기엔 깊어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다. 모든 게 고급스러운 이곳에서 자신이 제일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박승혁은 지훈이 앉는 동안 소파를 지나쳐 책상으로 갔다. 전화기 버튼을 눌러 “차 부탁합니다”라고 말한 뒤 돌아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경위님치고 상당히 젊어 보이시네요. 나이 좀 있으신 분이 올 줄 알고 일부러 이렇게, 새로 들인 것도 있는데.”
박승혁이 소파 중앙 탁자에 놓인 분재를 가리켰다. 분재를 가리키는 손 위로 굵은 은색 시계가 반짝였다.
지훈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자신도 나름 비싼 시계랍시고 할부로 결제한 시계를 차고 있었으나 맞은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할부금도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시계를 찬 손목을 가렸다.
“뭐, 여기 분위기랑 잘 어울리는데요.”
똑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비서가 들어와 차를 한 잔씩 각자 자리에 놓아주었다. 뒤를 돌아 나가는 비서의 다리를 흘겨보는 지훈을 박승혁이 차를 마시는 척 흘겨봤다.
지훈은 자기 앞에 놓인 차를 마시지 않고 보기만 했다. 차는 옅은 붉은색이 돌았다.
“그래서, 여기로 부르신 이유가…”
“먼저 차부터 드시죠.”
“아뇨,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좀 바빠서.”
“네.”
박승혁이 차를 내려놓고 말문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는 나라에 정식으로 등록한 대부업체입니다. 따로 운영하는 클럽이나 주점도 다 합법적으로, 건전하게 운영하는 곳이고요. 불법도박장을 운영한다든가, 뭐, 마약 같은 걸 유통한다든가… 그런 건 없습니다. 조사해보시면 다 아시겠지만.
그런 영화 같은 건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거죠. 실제로 그런 데가 있다고 해도, 저희 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요. 제가 겁이 많아서 그쪽은 생각조차 못 하겠네요.”
‘구라 치고 있네.’
“아, 불법적인 게 하나 있다면…”
속으로 조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이던 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룸살롱이나 마사지 업소를 여기저기 운영하긴 합니다만. 2차 뛰는 아가씨들도 있고.”
갑자기 훅 들어온,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당황한 티를 애써 숨기려던 생각도 못 하고 되물었다.
“… 예?”
“뭐, 솔직하게 말은 해야죠.”
박승혁이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경위님이 즐겨 가시는 곳인데.”
휘어진 눈이 자신을 찌르는 듯했다.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젊으신데, 골고루 상납받으신다면서요. 밑에서 다 보고하더군요. 젊은 형사가 높으신 분들 못지않게 받아 간다고.”
“……”
“아가씨들도 어리고 새로 들어온 애들로 골라서 받고, 마사지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받으시고. 아, 중간중간 용돈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잘 받아 가신다고 하더군요.”
정확하고도 자세한 말에 시계를 가리려고 올린 손으로 손목을 움켜쥐었다.
“어린 애들 좋아하는 건 이해합니다. 경위님도 젊으시니까 또래랑 놀고 싶으신 거겠죠. 나이 든 노인네들도 어린 여자 좋아하지 않습니까.”
“협박하려고 부른 겁니까?”
뜨거운 얼굴을 꾹 참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시선은 차로 떨구어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느끼신다면 어쩔 수 없고요. 저는 단지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무시할 수는 없는 위치라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밑에서 하도 우는 소리를 내서.”
아래에서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수치심과 더불어 올라왔다. 그제야 왜 단순 신고를 이유로 이사나 되는 놈이 자신을 부른 건지 알아챘다. 이미 자신이 젊은 경위라는 건 알고 있었을 거다.
뒤로 해 먹는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아래 후배도, 위의 선배도, 팀장도, 심지어 서장도 잘 대접받는다는 건 알게 모르게 퍼져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 이곳에 신고를 핑계로 부른 건 ‘네가 주제도 모르고 지나치게 받아 처먹는다더라’라는 이유 때문이라는 말투에 수치심이 들었다.
“형사 월급이 하는 일에 비해 박봉이긴 하죠.”
“책 잡아서 협박하려고 불렀다면 사람 잘못 봤습니다. 찌르려면 찌르세요. 어차피 윗사람 중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습니다. 나보다 더 더럽게 노는 인간들 수두룩해요.”
더 있다가는 얼굴이 불타 사라질 것 같았다. 맞은편은 보지도 않고 벌떡 일어났다. 여기서 더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자신을 콕 집어 갔다 오라고 한 팀장이 눈앞에 있다면 하극상이든 뭐든 멱살부터 잡고 싶었다. 어차피 팀장과 박승혁 사이에 서로 연락이 오갔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낸 것이니까.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사는 나중에 서에서 정식으로 나올 겁니다.”
깊게 들어간 소파에 편하게 몸을 기댄 박승혁이 지훈의 등을 보며 물었다.
“징계받아도 괜찮으신가 봐요?”
능청스러운 말투에 주먹을 쥐었다. 될 대로 되라 싶어 뒤를 돌아 쏘아붙였다.
“그걸로 찔러봤자 파면까지 가지도 않아. 다 똑같은 것들이 짜고 내리는 건데. 몇 개월 정직 받고 끝나겠지. 그거 무서우면 애초에 상납받았겠어?”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을 마주 본 박승혁이 알듯 말 듯 한 묘한 표정을 짓다가 입술을 훑었다.
지훈은 욕설을 뱉으며 몸을 돌려 발을 뗐다.
“시발, 시간도 없는데…”
“언론에서 경찰이 룸살롱 아가씨랑 놀았다는 말보다는.”
나가려던 발이 멈췄다.
“남자랑 놀았다는 말을 더 좋아하겠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주먹 쥐어 감춰진 손가락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고여 있던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일주일 전에 우리 영업소에서 남자한테 접대받았었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박승혁이 부드럽게 맞은편으로 고갯짓을 했다.
“앉으시죠.”
“……”
“이대로 나가면 징계에서 끝날까요?”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이다. 가만히 서 있던 지훈이 발걸음을 떼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소파에 앉기까지 몇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박승혁의 맞은편에 얌전히 앉은 그가 몇 초간 있다가 입을 열었다.
“… 원하는 게 뭡니까.”
“차 안 마십니까? 비싼 찬데. 비싼 건 귀신같이 고르신다고.”
“원하는 게 뭐냐고.”
입술을 깨물어 화를 삭였다. 을인 데다 몇 살 아래인 지훈이 반말을 하든 인상을 구기든 박승혁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꽤 마음에 들어 하는 태도였다.
“그냥 궁금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계속 여자만 데리고 놀던 당신이, 왜 갑자기 남자랑 놀았는지.”
“……”
“남자 맛이 궁금하기라도 했습니까? 이왕 공짜로 상납받는 거, 남자 맛도 보고 싶어서?”
“… 그냥 순간적인 호기심이었습니다.”
“그게 끝입니까?”
“네.”
“어떻던가요?”
“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지훈이 얼굴을 들었다. 황당한 얼굴을 보고도 박승혁은 웃지 않고 진지하게 물었다.
“남자 맛은 어땠냐고.”
“지금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 하는 겁니까? 그쪽 취향이 그런 쪽이라 공감대 형성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나한테 따질 입장 아닐 텐데.”
입을 다물었다. 다시 시선을 내렸다. 물을 펄펄 끓였는지 차에선 여전히 희미하게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봐요. 언론에 남자한테 성 상납받은 형사로 알려지기 싫으면.”
분명 경찰은 자신인데 고개를 반쯤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얌전한 태도나, 흘러가는 대화가 자신이 그에게 취조당하는 느낌이었다.
손톱을 만지작거리다 대답했다. 기가 한층 꺾인 목소리가 나왔다.
“… 밑에서 다 보고받았잖습니까.”
“난 남자한테도 접대받았다고만 들었습니다. 자세히 물으면 경위님 입장만 곤란할 거 같아서 배려 차 직접 물어보는 건데, 아니면 다시 아래에 물어볼까요? 정확히 어떤 접대를 어떻게 받았는지 자세하게 알아보라고.”
지훈은 일주일 전 순간적인 유혹에 넘어간 자신을 저주했다. 이 남자와 왜 이런 유의 대화를 나누고 있어야 하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왜 자신에게 이런 걸 궁금해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여느 때처럼 업무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로 여자를 끼고 놀다가 거나하게 취했고, 실장이 던진 유혹에 충동적으로 승낙해버렸던 일이다. 입술을 부풀도록 씹으며 한동안 침묵하다 결국 대답했다.
“씹… 여자나 남자나 비슷했습니다. 됐습니까?”
“어떻게 받았는데요?”
“……”
“응?”
“… 밑에…”
“입으로 해줬다고?”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게 끝입니다.”
박승혁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거만 받고 끝났다고? 자진 않고?”
끝나지 않는 질문에 지훈은 자포자기가 되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하… 거기 실장이 여자보다 남자한테 받는 게 훨씬 좋다고 해서 받아본 건데, 기분만 이상하고 영 별로라 거기서 끝냈습니다.”
“서비스해준 사람은 순순히 물러나려고 안 했을 거 같은데.”
“그쪽 계열은 그런 거에 자존심 상해하기도 하니까… 뿌리치고 나왔습니다.”
“자존심 상해서 끝까지 하려고 했다고 생각합니까?”
지훈이 눈동자를 올리자 박승혁이 묘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도 별말 없이 쳐다봤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물들어 불어진 귓불과 양 볼에 두 눈은 눈치 보듯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반항기 가득한 청년이었다. 그새 입술을 많이도 깨물었는지 일부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 얼굴을 찬찬히 보던 박승혁이 꼰 다리를 풀었다.
“아무튼… 잘 들었습니다.”
“이만 가도 됩니까?”
“아니.”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이젠 반대로 박승혁이 시선을 찻잔에 두고 있었다.
“아까 나한테 물었잖아. 원하는 거 없냐고.”
‘왜 갑자기 반말이야.’
불만스러워 미간을 찌푸렸다.
“돈은 없습니다. 다 다른 데 써서…”
“아니, 돈 말고.”
구둣발이 지익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 남자한테 받은 거 나한테 직접 해줘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지훈은 멍하게 찻잔을 보다가 시야에 들어온 허벅지를 의식했다. 꼰 다리를 풀고 벌린 다리 사이에 묵직해진 그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다. 자신한테도 달렸고, 그에게도 달린 것이었다.
그가 흥분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큰 건지 이곳에 들어온 이후 처음 의식하자 계속 눈에 들어왔다. 조폭이라 그런지 경찰 나부랭이인 자신에 비해 무식하게 굵은 허벅지라든가, 터질 것처럼 잠겨진 양복 조끼라든가.
박승혁의 시계 찬 손이 굵은 허벅지를 계속 두드렸다. 고개를 들지 않아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나 몸짓에서 묘한 흥분감이 전달됐다.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그가 다시 말했다.
“왜요? 못하겠습니까? 그동안 많이 받아봤으니 잘할 거 같은데.”
“… 그쪽 게이입니까?”
박승혁이 피식 웃었다. 이사님, 도 아니고 그쪽이라. 공직자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불법영업소에서 잘도 상납받아온 주제에, 기죽지 않으려는 태도는 뻔뻔하다. 버릇없는데 밉진 않았다. 밖에선 힘주고 다니는 놈들도 여기만 들어서면 다 자기 눈치를 보고 빌빌대서 그런가.
“물어볼 처지 아닐 건데. 자꾸 묻네요.”
지훈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처럼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 재밌었다. 기죽지 않으려 뻗대는데 부끄러워하거나 토라진 티는 다 드러난다. 그게 더 흥미가 돋게 했다.
“… 한 번으로 끝납니까?”
“경위님 하는 거 봐서.”
지훈이 문을 힐끔 쳐다봤다.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이대로 나가면 징계로 안 끝난다고 얘기했습니다.”
“……”
“언론에 이름 오르내릴 각오 한다면…”
“그게 아니라.”
문을 향한 고개가 정면으로 돌아갔다. 언제 당황했냐는 듯 묘한 미소를 띤 얼굴이 보였다.
“문 안 잠급니까? 하다 들키면 그쪽도 소문 안 좋게 날 건데.”
박승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서서히 데워지던 몸이 더 달아오르며 뒷골이 오싹했다.
2화
박승혁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은 지훈은 지퍼를 잡으려던 손을 내려 바닥을 짚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이를 세워 지퍼 고리를 물었다. 아래로 당기자 지퍼가 열리며 지이익, 하는 소리가 귓가를 메웠다. 위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잘 배웠네.”
벌써 흥분한 건지 숨소리가 빨랐다. 박승혁이 잘했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새끼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지금 하는 행위부터가 유쾌하지 않았다.
지퍼는 이로 내릴 수 있어도 벨트와 버클까진 무리다. 열린 지퍼 사이로 성기를 빼내 펠라티오를 받은 적은 있지만, 박승혁의 것은 너무 커서 나오지 않을 거다. 지훈이 얼굴을 뒤로 뺐다.
“벨트 풀…”
뒷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강하게 아래를 눌렀다. 순식간에 얼굴이 사타구니에 박혔다. 코에 희미한 밤꽃 향이 들어와 불쾌함과 구역질이 올라왔다. 인상을 잔뜩 구기며 신음했다.
“주문이 많네. 업소에선 원래 이런 거 알아서 할 건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해도 비역질하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바닥에 짚었던 손을 들어 허벅지를 잡고 머리를 떼어내려 해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힘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박승혁에 비하면 강아지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느껴져 속이 쓰렸다. 타의로 성기에 얼굴을 박고 비비면서 점점 단단해지는 게 느껴져 더 불쾌했다.
한참 얼굴을 잡고 중심부에 비비던 박승혁이 뒷머리를 잡고 떼어냈다. 허벅지를 잡던 팔로 보이지 않는 더러움이라도 닦으려는 듯이 구겨진 얼굴을 마구 비볐다.
“윽, 씨발…”
이건 앞으로 있을 일을 알리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서로 알고 있었고, 박승혁은 그래서 더 흥분됐으며 지훈은 더 절망스러웠다.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와중에 일주일 전 펠라티오까지만 하고 끝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어줄게요.”
박승혁은 서둘러 벨트와 버클을 풀었다. 생뚱맞게 돌아온 존댓말과 선심 쓰는 말투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곧 바깥으로 성기가 나왔다. 드러난 성기에 지훈이 학을 뗐다.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질린 느낌이었다. 흥분되어 반쯤 일어선 것만으로도 이런데 완전히 발기되면 입이 찢어질 것 같았다.
코끝에 조금 전보다 훨씬 진한 밤꽃 향이 들어왔다. 잠깐 머뭇거리다 손으로 잡고 입에 갖다 댔다. 벌린 입에 귀두부터 시작해 성기를 입에 담았다. 인상을 펴려고 해도 펼 수가 없었다.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성기를 입에 담는 얼굴을 보고 박승혁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훈의 펠라티오 솜씨는 썩 좋지 못했다. 업소에서 받을 때 나중에 직접 할 마음으로 경건하게 받지는 않으니까, 당연하다. 콘돔을 쓴다고 해도 이상한 병이라도 옮을까 봐 끝까지 한 적은 몇 번 없고 태반이 술 접대, 그 이상은 펠라티오나 애무 정도만 받아왔으나 그걸 직접 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입안에 가득 담고 점점 더 굵어지는 성기를 핥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박승혁이 영 마뜩잖게 말했다.
“많이 접대받은 거 맞습니까? 못하는데.”
‘불만이면 네가 해라, 씹새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성기는 딱딱해지는 게 혓바닥으로 느껴졌다. 어이가 없어 눈살을 찌푸렸다.
속으로는 욕해도 빨리해야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업소에서 펠라티오 받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어설프게나마 따라 했다. 성기를 혓바닥으로 넓게 감싼 다음, 얼굴을 앞뒤로 움직이며 피스톤질을 하듯 천천히 움직였다.
침이 가득 고인 입으로 성기를 빨아들이자 츄읍, 하는 척척한 소리가 울렸다. 만족스러운지 박승혁이 눈을 감고 나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렇지. 앞뒤로 움직이면서… 이 세우지 말고.”
넓은 손바닥이 머리를 토닥이다가 쓰다듬었다. 한창 집중하다가 쓰다듬을 받으니 칭찬받았다는 생각에 혀뿌리에 닿도록 성기를 삼켰다. 정신이 점점 이상해지는 듯했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으려니 구역질 나는 행위도 점차 익숙해졌다. 지금 자신이 뭘 하는지 자각되지도 않았고, 그런 생각조차 빠져나가고 있었다.
피스톤질이 점점 빨라졌다. 혀뿌리에 닿는 귀두도 더 깊게 들어왔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위에 몰두했다.
한창 집중하던 지훈이 저도 모르게 바닥을 짚던 손을 허벅지에 올렸다. 더 깊게 성기를 삼키기 위해서였다. 순간 허벅지가 얕게 떨렸다. 그리고 정수리에 올려진 손이 움켜쥐듯 머리카락을 잡고 당겼다. 동시에 성기가 목젖까지 치고 들어왔다.
“-컥, 억, 윽, 윽.”
박승혁은 발에 힘을 줘 지훈의 입안에 빠르게 피스톤질을 했다. 삽입 섹스를 하는 것처럼 머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허리를 쳐올렸다.
목 막히는 소리에 등골이 더 오싹거렸다. 허벅지를 움켜쥐었으나 좀 전에도 힘에서 한 차례 눌렸었다. 성기처럼 딱딱한 허벅지는 움켜쥐나 마나 소용없었다. 빨리 그가 사정하기를 기다리며 목젖을 쑤셔대는 성기를 참고 받아냈다.
분명 숨을 쉴 수 없고 목이 막히고 토기가 올라오는데, 아래는 묵직해지고 저린 감각이 올라왔다. 모순적이었다.
마침내 빠르게 허리를 쳐올리던 움직임이 멈췄다. 박승혁이 목젖 끝까지 성기를 찔러넣은 채로 머리카락 쥔 손을 더 앞으로 끌어당겼다. 정수리만 보이는 얼굴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허벅지를 움켜쥔 손이 풀리더니 가늘게 떨렸다.
그 모습에 쾌감을 느끼며 참아왔던 정액을 토해냈다.
“끝까지 삼켜. 바닥 더러워지지 않게.”
지훈의 목젖이 꿀렁꿀렁 움직였다. 끝까지 삼킨 후에야 머리카락을 쥔 손이 반대로 떨어져 나갔다. 따뜻하고 좁은 곳에 있던 성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정액이 삐져나온 입술이 성기에 긴 실선을 남기다 떨어졌다.
“-커흑, 콜록, 콜록! 욱, 우욱.”
지훈은 성기를 뱉자마자 엎드려서 토악질했다. 숨이 막혀 고였던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뒤로 물린 등이 소파 중앙 탁자에 닿는 걸 본 박승혁이 발로 밀어 탁자를 더 뒤로 보냈다. 무겁게 끌리는 소리에도 지훈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연거푸 기침만 토해냈다.
할 수만 있다면 손가락을 집어넣어 삼켰던 걸 죄다 게워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 미친놈이 다시 처음부터 하라고 할 수도 있다. 꾹 참고 이곳을 나가서 화장실에서 게울 생각이었다.
입가에 차가운 게 닿아 시선을 돌리자 찻잔이 보였다. 자신이 받아놓고 마시지 않은, 붉은색 액체가 든 차였다. 이젠 완전히 식었는지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목이 따가우면 마셔요. 밖에다가 무슨 일 있었다는 듯이 광고하지 말고.”
헉, 지훈이 문을 쳐다봤다. 올라오는 기침을 숨을 참아 막았다. 찻잔이 계속 입가를 톡톡 두드렸다. 목도 따갑고, 기침도 계속 올라와 입을 벌리자 바로 차가운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입에 들어온 액체는 빠르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시원해 머릿속이 조금 맑아졌다.
찻잔은 금세 비워졌다. 지훈이 차를 다 삼키자 박승혁이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빈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렸다. 팔로 입가를 훔쳐 정액을 닦아냈다.
겨우 끝났다. 다시는 이곳에 안 올 거다. 지훈은 소파에 몸을 지탱하며 일어섰다. 앞으로 곧장 가려는데 뒷덜미가 잡혔다. 비틀거리는 사이 우악스러운 힘에 몸이 돌려져 소파에 내팽개쳤다. 소파에 무릎을 꿇고 올라가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등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박승혁의 힘과 덩치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넓은 손이 목을 잡아 아래로 눌렀다.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들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지훈이 버둥대며 말했다.
“왜, 끝났잖아!”
“끝났다고 말 안 했는데.”
박승혁은 목을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지훈의 바지 앞섬을 더듬거렸다. 깜짝 놀라 손목을 잡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씹… 하지, 마…”
손톱을 세워 힘을 주려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져 눈을 세게 감았다가 떴다. 눈앞이 깨끗해지긴커녕 더 흐릿해졌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등받이에 이마를 대고 숨을 골랐다.
손이 양복을 몇 번 더듬거리다 맥없이 떨어졌다. 목을 짓누르던 손도 떨어졌으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들 힘이 나지 않았다.
박승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양복 재킷과 조끼를 벗어 던지고 고개를 숙여 지훈의 어깨에 턱을 괬다. 얕게 숨을 고르는 소리가 귓가에 더 잘 들어왔다. 자유로워진 두 손이 제대로 바지 앞섬을 침범했다. 중심부를 누르고 손바닥으로 넓게 비비다가 벨트를 풀었다.
버클이 풀어지고 자극받아 빳빳해진 성기가 바깥에 드러나는 동안 지훈은 계속 숨을 골랐다. 머릿속은 몽롱한데 몸에 닿는 자극은 예민하게 느껴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아으, 응, 으…”
넓은 손이 성기를 한 손으로 감싸 쥐었다. 불쾌함보다 쾌감이 올라왔다. 입에서 낯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무리 남자에게 펠라티오를 했다고 해도, 이러는 건 이상하다.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 머리가 조금 전 받아 마셨던 차를 떠올렸다.
고개를 뒤로 돌려 탁자 위에 놓인 빈 찻잔을 흘겨보기 무섭게 성기를 쥐지 않은 손이 머리를 눌렀다. 신음을 내며 가죽 소파에 다시 머리를 박았다.
“이미 마신 거 탓하지 말고.”
“미친 새끼.”
“버릇이 없어.”
“반말… 으읏!”
갑자기 성기를 틀어잡는 힘에 허리를 움찔거렸다. 손바닥 전체에 박힌 굳은살이 마구 쓸어 올리는 손짓과 더불어 거칠게 성기를 자극했다. 예민해진 감각과 더불어 참기 힘들었다. 정신력으로 ‘밖에 소리가 나가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 입술을 씹어 신음을 삼켰다.
“형사는 다르네. 잘 참아.”
박승혁이 웃으며 훤히 드러난 목에 입술을 비볐다. 한곳을 핥다가 빨아올리는 행위를 피해 고개를 움직여도 박승혁에겐 바르작거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군데에 동시에 가해지는 자극에 손이 어쩔 줄 모르고 다른 곳을 휘저었다. 소파 가죽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행위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의 바지가 아래로 내려갔다. 점점 내려가는 바지가 귀찮았던 박승혁은 한 손으로 바지와 속옷을 벗었다. 지훈의 바지는 헐렁해 이미 무릎에 걸쳐져 있었다. 바지와 속옷을 벗은 손이 지훈의 바지도 잡아 벗겨냈다.
사정이 가까워지자 박승혁이 손을 놓았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만 같던 성기를 내버려 둔 채로 손에 침을 가득 묻혀 둔부로 향했다. 소파에 얼굴을 기댄 채로 쾌감을 느끼던 지훈이 애널에 축축한 게 닿는 느낌에 고개를 쳐들었다.
“흐윽? 잠깐, 잠, 윽!”
약과 자극에 풀어진 몸은 손가락 두 개를 비교적 수월하게 삼켰다. 손가락 두 개를 삼킨 애널이 움찔거렸다. 박승혁의 관자놀이에 근육이 불거졌다.
“소리 나가면 안 된다면서. 잘 참아봐.”
“읏…”
다시 입술을 씹자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왔다. 몸서리치는 감각에 지훈이 입술을 더 강하게 깨물었다. 혀끝에 비릿한 맛이 돌았다.
손가락 세 개가 하나로 모여 이곳저곳을 찔렀다가, 벌려져 내벽을 넓혔다. 찌걱거리며 애널을 마구 휘젓는 느낌이 불쾌하면서도 오싹하게 좋아 주먹이 하얘지도록 쥐었다.
특정 부분을 누르자 허리가 얕게 튕기며 반응했다. 박승혁이 입술을 훑곤 손가락을 뺐다. 애널을 채우던 손가락이 빠져나가 순간 안심이 든 지훈이 몸의 긴장을 풀고 씹은 입술을 열었다.
숨을 한 번 길게 들이마셨을 때였다. 손가락이 빠져나간 애널이 오므라들기도 전에 몇 배나 굵은 기둥이 예고 없이 입구를 뚫고 들어왔다. 입술 사이로 고통에 전 교성이 튀어나왔다.
“-악!”
박승혁이 허리를 잡아당겼다. 골반에 둔부가 부딪히며 입구를 뚫은 성기가 단번에 치고 올라와 내벽 끝을 찔렀다. 손톱을 박아 넣은 가죽 소파가 뚫릴 것처럼 움푹 들어갔다.
절로 허리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들린 고개가 더 뒤로 젖혀졌다. 정면에 걸린 커다란 그림을 담은 액자에 자신과 등 뒤에 올라탄 박승혁을 비추었다. 입을 벌려 꺽꺽대는 자신이 낯설게 보였다.
흐려져 가는 이성 속에서 이곳에 들어올 때 마주쳤었던 비서가 생각났다. 허리가 잘록 들어가고 엉덩이가 예쁘게 튀어나온 여자. 평소라면 그런 여자를 만난 후엔 떠올리며 어떻게 말을 붙여볼까, 했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 여자가 소리를 듣고 ‘괜찮으십니까?’라며 문을 열면, 열어서 이 짓을 하는 자신을 보면.
간신히 입술을 다시 깨물었다. 입술이 너덜너덜해져도 더는 소리 낼 수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몸에 힘을 주자 애널이 성기를 꽉 조였다.
“으읏…”
“물어.”
뒤에서 참는 듯한 신음이 들리더니, 조급한 음성과 함께 시야에 넥타이가 들어왔다. 박승혁이 자신의 넥타이를 잡고 지훈의 얼굴에 들이댄 것이다. 동아줄을 본 심정으로 그 넥타이 끝부분을 물었다. 동시에 성기가 길게 빠져나갔다.
질척거리는 기둥이 길게 빠져나가는 감각에 몸서리칠 새도 없이 귀두가 내벽을 파고들었다. 철퍽, 둔부가 골반에 부딪히며 다시 고개가 젖혀졌다.
“으응!”
빠져나갔다 들어온 성기가 계속해서 빠져나갔다 들어오며 내벽을 찔러댔다. 귓가에 철떡대는 소음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머릿속이 빠르게 비워지며 그나마 모래 한 줌 정도 남아 있던 이성이 날아갔다.
“으응, 응, 으, 응, 읏.”
넥타이를 물어 조그맣게 앓는 소리만 잇새로 삐져나왔다. 눈을 감자 눈가에 가득 찬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갔다. 온몸이 뜨거웠다.
“흐, 죽여…”
골반에 부딪힐 때마다 차지게 흔들리는 둔부를 보며 박승혁이 중얼거렸다. 가죽 재킷 아래로 탄탄하고 마른 허리와 그 아래 허리처럼 탄탄한 허벅지가 보였다. 자신에 비하면 턱없이 마른 몸이지만, 충분히 건강미가 넘쳤다. 근육 없이 마르기만 한 여자나 뼈만 남은 남자보다 훨씬 더 색스러워 욕정이 끓었다.
약에 더 달구어진 몸이 구태여 성감대를 찌르지 않아도 강한 쾌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박승혁은 기억을 더듬어 성감대를 정확히 찾아내어 찔렀다. 지훈이 넥타이를 더 강하게 악물었다. 가죽 소파에 손톱자국이 불규칙하게 새겨졌다.
어지럽다. 어지럽다. 넥타이를 놓치면 전신을 공격하는 쾌감을 입 밖으로 내질러버릴 것 같다. 흔들리는 시야에 액자에 비치는 모습마저 읽기 힘들었다.
지훈의 눈이 반쯤 감겼다. 반쯤 감긴 눈과 넥타이를 문 입술 틈새로 계속 분비물이 흘러 내렸다. 기립한 성기가 꺼떡거리며 배를 때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행위가 이어지다가 성기를 끝까지 박아 넣은 상태에서 멈췄다. 박승혁이 성기를 찌른 상태에서 정액을 전부 사출했고, 좁은 내벽을 가득 적시는 감각에 지훈이 몸을 떨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터지는 느낌이었다. 자신도 사정하며 애널이 수축했다.
성기에 자극이 가해지자 언제 사정했냐는 듯 다시 단단해졌다. 박승혁도 아직 욕정이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더 다는 느낌이었다.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 싶었다. 성기를 빼내고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몸을 바로 해 등받이에 기대게 하자 엉망이 된 얼굴이 보였다. 얼굴엔 섹스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아래에 피가 몰리는 것 같았다. 박승혁이 자기 것을 만져 단단하게 세웠다.
“더 하고 싶지? 어?”
지훈은 아직도 넥타이 끝을 물고 있었다. 넥타이를 문 상태에서 돌아 길이가 짧아진 만큼 얼굴이 코앞에 있어도 그는 자각하지 못했다. 멍하게 반쯤 감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이젠 약효가 온몸 구석구석 퍼져 있었다. 남자로서, 형사로서 자존심이라곤 더 이상 없었다. 그냥 이 이상한 기분이 가실 때까지 엉덩이를 흔들고 싶었다.
박승혁이 무릎을 굽혀 높이를 맞춘 다음, 지훈의 양 허벅지를 잡고 내렸다. 벌린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세운 성기를 애널에 갖다 댔다.
“흐으…”
입구를 귀두로 튕기자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성마르게 웃으며 애널 안으로 넣었다. 이번엔 느리게 들어갔다. 예민한 내벽이 성기를 오물거리며 집어삼켰다. 지훈이 눈을 감고 허리를 비틀었다.
점액으로 뒤덮인 성기와 정액이 담긴 애널은 처음보다 더 쉽고 부드럽게 이어졌다. 허벅지를 끌어안고 움직일 때마다 질퍽거리는 소리를 냈다.
처음엔 느리게 움직이던 몸짓이 점차 빨라졌다.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두 사람의 얼굴에 맺혀있던 땀방울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지훈은 상의를 전부 입은 채로 두 다리를 어깨까지 올린 적나라한 자세에서 그를 받아내느라 고통까지 더했다. 굽혀진 허리가 저렸다.
“헉, 흐윽, 윽.”
박승혁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나왔다. 허벅지를 잡은 손이 성기로 향했다. 성기를 움켜쥐고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내벽이 찔리면서 성기가 만져지니 쾌감이 배가 되었다. 지훈은 그 입 좀 다물라고 말할 생각도 못 한 채 허리를 흔들었다.
찌걱거리며 성기가 애널에 드나드는 소리가 음란했다. 허리를 더 빠르고 강하게 쳐올릴수록 온몸이 덜컹거렸다. 머리가 흔들리며 소파에 뒤통수가 쿵쿵 찧었다. 뒷머리까지 울리니 원색적인 고통이 따랐다. 그럼에도 쾌감은 바늘처럼 뒷골을 찔러댔다.
“흐, 읏, 으읏, 응.”
지훈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그를 쏘아봤다. 할 말이 있는 듯 잇새로 나오는 신음에 쾌감이 섞여 있었다.
점차 절정에 다다르던 박승혁이 지훈을 보고 목줄 당기듯이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입에서 넥타이가 빠져나왔다. 고여 있던 침이 주륵 흘러나왔다.
“왜.”
잠깐 움직임이 멎었다. 두 사람 다 숨을 고를 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서로 얽혔다.
보나 마나 아프다고, 혹은 시끄럽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사실 바깥에 있던 비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 지 한참 됐는데 부끄러워하긴. 박승혁이 짓궂은 얼굴로 물었다.
“왜. 좋다고?”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달싹였다.
“… 살…”
“뭐라고?”
“살살… 좀…”
색욕에 완전히 젖어 엉망이 된 얼굴이 더듬거리며 뱉은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멍청하게 있다가 다시 허벅지를 움켜잡고 허리를 쳐올렸다. 지훈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흐윽, 사, 살살, 읍-”
넓은 손바닥이 입을 막았다. 입을 막은 박승혁이 더 강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멎었던 질퍽거리는 소리가 좁은 간격으로 이어졌다.
“씨, 흣, 윽, 읏.”
“으읍, 읍, 읏, 으응-”
내벽에 정액이 꾸역꾸역 퍼지는 순간, 눈이 감기고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뒤로 젖혀진 고개가 뻣뻣하게 절정을 받아냈다. 배를 때리던 성기에서도 정액이 분출되어 배를 더럽혔다.
“허억, 헉, 헉…”
박승혁이 숨을 내쉬며 입을 막던 손을 떼어냈다.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꺾였다. 소파를 긁던 손도 잠잠했다.
그가 기절한 지훈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건드리는 대로 얼굴이 흔들렸다. 검은색 목 폴라티와 재킷 이곳저곳에 정액이 튄 모습이 색정적이었다.
거칠긴 했지만, 고작 이 정도로 기절하나. 형사랍시고 센 척은 다 하더니만. 이런 주제에 꼬박꼬박 겁도 없이 상납은 골고루 잘 받아먹었다 이거지. 선배들 하는 거 보고 못 된 것만 배워먹어서일까, 아니면 어린 패기일까.
박승혁이 넥타이를 풀었다. 넥타이 끝이 침에 절어 이겨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목줄처럼 물고 버티던 얼굴이 생각나 다시 아랫도리가 묵직해졌다.
깨어나면 무슨 말을 할까. 자신이 한 행동을 떠올리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걸 생각하자 흥미가 생기며 보고 싶었다. 몸을 뒤로 물려 성기를 빼냈다. 젖은 성기가 빠져나오며 속에 그득하게 고여 있던 정액이 딸려 나왔다.
“수고했어요, 경위님.”
박승혁이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3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지훈은 어디가 팔인지, 어디가 다리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안개 속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손가락을 움직여보고 싶어도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시원한 게 입안에 들어왔다. 액체가 목구멍에 닿자 목이 까끌까끌하다는 걸 느끼고 액체를 삼켰다. 시원한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점차 의식이 돌아왔다. 온몸에 감각이 돌아오며 안개 속에 붕 떠 있던 느낌도 점차 사라졌다. 코끝에도 익숙한 냄새가 돌았다. 담배 냄새였다.
눈을 작게 뜨다가 여러 번 깜빡이자 또렷해진 시야에 처음 보는 풍경이 들어왔다. 등에 닿은 푹신한 감각은 침대인데, 방안 풍경은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이나 서류 더미가 쌓인 책상으로 보아 서재 같았다.
“음.”
몸이 추워 손으로 가슴을 더듬거렸다. 맨살이 만져져 옷을 걸치지 않은 걸 알았다. 귓가에 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민망한 광경에 눈을 찌푸렸다. 웬 덩치 좋은 벌거벗은 남자가 등을 보인 채로 서 있었다. 남자가 서 있는 곳에 욕실이 보였다. 서재와 침실의 기능을 같이하는 방인 듯했다.
몇 초 후 눈앞에 보이는 발가벗은 남자가 박승혁이고, ‘탁’은 박승혁이 컵을 낮은 책장 위에 놓으며 나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 설마 또 약이 든 차를 먹였나 했지만, 컵 옆에 놓인 생수통에 안심이 들었다. 약으로 보이는 물건도 없었다.
박승혁이 뒤를 돌아봤다. 속옷도 입지 않고 입에 담배를 물고 있던 그는 지훈을 보고 손가락에 담배를 옮겨 잡았다.
“빨리 깼네.”
눈앞의 남자에게 좀 전의 일을 상기시켜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날리고 싶은 마음 이전에, 그가 문 담배가 너무 피우고 싶었다. 팔을 지탱해 상체를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다, 담배 좀…”
목에서 쉰 목소리가 나왔다. 상체를 일으키자 아랫도리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소름 돋는 감각까지.
“… 씹…”
헐벗은 다리 사이에 흥건하게 흘러내린 액체가 보였다. 불쾌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좀 전에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아래에 힘을 풀자 안에 고여있던 정액이 흘러나왔다. 최악이었다.
박승혁은 지훈이 그러든 말든 느긋하게 걸어가 그가 있는 침대 위에 올라갔다. 지훈의 벌린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그가 담배를 쥔 손가락을 내밀었다. 자기 사타구니를 보던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씨발, 뭐야.”
욕설을 뱉으며 내민 손을 후려치자 담배가 날아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박승혁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대리석 바닥이라 담뱃불로 불이 날 가능성 따위는 없었다. 냄새는 계속 나겠지만.
“담배 피우고 싶다면서.”
침대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발가벗고 올라가 있는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박승혁은 몰라도 지훈에겐 특히 더 낯설었다. 이런 침대에는 반드시 남녀가 올라가는 게 그에겐 더 익숙했다. 냄새도 여자의 진한 향수 냄새, 분 냄새로 가득 차 있는 게 정상이었다. 업소 특유의 붉고 화려한 조명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게 그리울 지경이었다.
또렷한 정신으로 본 박승혁의 나신은 더 진한 남성미를 풍겼다. 좀 전에 자신을 마구 쑤셔댔던 거대한 성기나, 그에 걸맞은 덩치나 근육질의 몸에 감탄하면서 기가 죽어 무릎을 세웠다.
자신을 훑어보다가 기가 죽은 걸 알아차린 박승혁이 피식 웃었다.
“경위님도 몸 예뻐요. 기죽을 거 없습니다.”
좋은 것도 아니고 예쁘다는 건 욕 아닌가. 요즈음 업소에 많이 가느라 운동을 못 한 탓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말투가 처음처럼 돌아온 게 어이없었다.
박승혁이 지훈의 사타구니를 보고 말했다.
“흘러나온 거 닦아야 하지 않아요?”
“여기 어디야.”
“멀리 안 옮겼어요. 사무실 옆의 별실입니다.”
박승혁 너머로 닫힌 문이 보였다. 저 문을 열면 그와 신나게 몸을 섞었던 사무실이 있을 거다. 이미 섹스도 한차례 했는데 왜 여기로 데리고 온 걸까. 그것도 옷을 벗겨서. 그걸로 거래는 끝난 거 아니었나. 펠라티오에서 끝까지 해줬더니만. 불안함에 색색거리고 있으니 박승혁이 다시 말했다.
“안에 싸서 불편할 텐데. 괜찮습니까?”
“알면서 왜 안에 싸고 지랄이야.”
어린놈이 말하는 본새 하고는. 소리 없이 웃으며 손을 애널에 가져다 댔다. 지훈이 깜짝 놀라 뒤로 갈 자세를 취했다.
“뭐, 뭐하게.”
“긁어내야죠. 안 하면 고생인데, 하지 말까요?”
“……”
업소에서 ‘남자끼리 하면’이라는 주제로 여자들과 이야기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설마 그 장본인이 자신이 될 줄도 모르고 술을 마시며 ‘더럽게 같은 거 달린 놈들끼리 하냐’라고 웃어댔었는데… 자괴감이 들었다.
수긍의 의미로 가만히 있자 손가락이 입구를 더듬었다. 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침대 옆 협탁에 담뱃갑과 라이터가 보였다. 반가움에 손을 뻗어 두 개를 잡는데 아래에 이물질이 쑥 들어오는 감각에 신음을 냈다.
“으…”
“편하게 있으세요. 많이 싸서 꽤 긁어내야 하니까.”
고양이 쥐 생각한다, 는 생각에 대꾸하지 않고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니코틴을 깊게 빨아들이자 불안하던 머리가 진정됐다. 몸이 이완되고 기분이 좋아져 빠른 속도로 나른해졌다.
자연스럽게 상체를 마저 눕혔다.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손가락으로 내벽을 긁는 느낌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푹신한 침대에 누워 몸의 긴장을 풀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만큼 여유로움이 있었다.
천천히 정액을 긁어내던 박승혁이 눈동자를 올려 휴식을 취하는 지훈을 흘깃거렸다.
‘속이 편한 건지, 멍청한 건지.’
좀 전에 약이 든 차를 마시고 성기를 쳐올릴 때마다 허리를 비틀어 놓고는, 자기 넥타이를 목줄처럼 물고 끙끙댔던 주제에 이렇게 무방비로 있는 모습이라니. 오히려 처음에 업소에서 접대받았죠, 하며 운운했을 때보다 덜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접대받은 것보다, 접대하는 게 덜 부끄러운 건가.
지금 자신이 무슨 처지에 놓여 있는지 몰라서 이러나 싶었다. 어린 게 보통 배짱이 아니긴 하다. 좀 전까지 뒹굴다가 기절했는데 눈을 떠보니 침대 위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고, 기절시킨 당사자도 벌거벗어 코앞에 앉아 있는데. 그것도 금방이라도 침범할 수 있는 다리 사이에.
담배 하나 물었다고 긴장 풀고 누워있는 꼴이 우스우면서 한편으론 귀여웠다.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눈을 감고 누워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꽤 섹시하다. 마르고 탄탄한 몸도 잘 보였다. 눈 아픈 조명 아래에서 봤을 땐 이렇게 자세하게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가까이서 요목조목 뜯어볼 수 있어 만족스럽다.
한동안 내벽을 긁다가 한 곳을 쿡 찔러봤다. 긴장을 푼 몸이 잠깐 움찔할 뿐 잠잠했다. 한 번 더 쿡 찔러봤다.
“으응…”
잠에 물든 신음이 나왔다. 입으로 희뿌연 연기를 내뱉은 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반쯤 졸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가 아슬아슬하게 움직여 잡아 바닥에 던졌다. 그래도 요지부동이었다.
“하.”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머리 쓰진 않아도 되겠지. 애널을 긁던 손가락을 빼내어 자기 것을 만졌다. 몇 번 쓸어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자 금세 단단해졌다.
허벅지를 슬쩍 만져봤다. 몇 번 주무르자 마사지 받는다고 느꼈는지 지훈이 나른한 한숨을 쉬었다. 박승혁은 한쪽 허벅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성기를 잡아 애널 입구에 눌렀다. 충분히 풀어진 애널이 쉽게 성기를 받아들였다.
지훈이 몸의 힘을 빼고, 애널이 풀어졌다 해도 내부가 좁은 건 마찬가지였다. 박승혁이 숨을 고르며 천천히 성기를 넣다 한 번에 끝까지 찔러 넣자 허리가 덜컹거렸다.
“-윽!”
지훈이 눈을 떴다. 아래를 가득 채운 이물질에 고개만 들어 아래를 확인하곤 당혹감을 드러냈다.
“뭐, 뭐해, 씹…”
“2차 가야지. 알잖아.”
“지랄, 그리고 왜 반말, 흐윽!”
성기를 죽 빼냈다가 찌르는 움직임에 고개가 젖혀졌다. 또렷한 정신에 하는 건 더 생생해서 적나라했다. 좀 전의 행위가 다시 이어졌다.
한차례 행위로 젖어있던 애널은 철떡대는 소리는 내며 성기를 수월하게 집어삼켰다가 조였다. 제대로 된 물건이라는 생각에 박승혁이 마음껏 피스톤질을 했다.
아무것도 물지 않고, 물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지훈은 느껴지는 신음을 토해냈다. 한 번은 어려워도 두 번은 쉬운 법이었다. 이미 몸은 박승혁과의 섹스를 익숙히 받아들였다.
“아으, 응, 읏, 빠, 빠르, 흐, 윽.”
“잘하네, 헉, 어? 잘, 해… 흐.”
“씨발, 말투 진짜, 싸이코냐. 으응, 아, 읏.”
분명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정신은 멀쩡한데, 몸은 자연스럽게 성감대가 찔릴 때마다 쾌감을 느끼고 반응했다. 머릿속에 들었던 자괴감도 사라지고 있었다.
“네가 이상한 거야, 인마. 어린놈이, 흣, 응?”
“지, 랄, 흑, 으, 으- 아!”
갑자기 몸이 뒤로 넘어가는 듯했다. 박승혁이 두 다리를 잡고 넘겨 올린 것이다. 두 다리가 박승혁의 어깨에 닿을 정도로 접혔다. 적나라하게 아래를 드러내는 자세에 지훈이 얼굴을 붉혔다.
둔부가 들리며 성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꽂혔다. 고환이 철썩거리며 둔부에 닿고 떨어졌다. 단단한 귀두가 성감대를 더 후벼파자 젖힐 곳도 없는 고개가 뒤로 꺾였다.
“-아읏, 아, 미, 미친, 아, 아아! 아!”
구속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굵은 성기만 받아내는 자신이 수치스럽고 짐승 같았다. 오갈 데 없는 손이 이불보를 벅벅 긁었다.
“그만, 그만, 아, 하윽, 윽, 응, 으, 힉, 읏.”
“뭘 그만해, 큭, 좋아 죽는, 데…”
코앞에서 쾌감을 느끼고 신음을 질러대는 지훈이 더없이 보기 좋았다. 목부터 붉어진 기운이 얼굴을 뒤덮었다. 성기가 빠져나갈 때마다 몸이 딸려 올라갔다. 열기로 메워진 방안에서 두 사람이 마구 허리를 흔들었다.
고환이 부딪히며 정액이 몸 안에 흩뿌려지는 순간, 절로 허벅지 안쪽이 경련했다. 정액을 받아내고도 허리를 움찔거리는 자신이 창부 같았다. 쾌감을 느끼며 애널이 강하게 수축했다.
“하, 그거 알아? 내가 안에 싸면 꼭 한 번 조이더라. 나가지 말라고.”
박승혁이 귓가에 대고 키득댔다. 지훈이 수치심에 고개를 돌렸다. 드러난 목에 입을 맞춰 깊게 빨아올렸다. 키스 마크를 새긴 그는 고개를 따라가 입술을 맞추었다.
지훈은 입을 벌리고 그에 맞추어 같이 혀를 쓸어 올리고 치열을 훑어 키스하는 자신이 낯설었다. 마치 그와 숱하게 몸을 섞은 것처럼 여겨졌다.
“으, 응, 아니, 읍, 응.”
키스하던 도중 허리가 다시 흔들렸다. 입술을 떼어내도 박승혁이 집요하게 따라가 물었다. 사정한 적 없다는 듯 기립한 성기가 내벽을 쑤셨다.
“싫어? 헉.”
“싫, 다고, 흣.”
“그럼 직접 해봐.”
“응? 읏, 으!”
박승혁이 그를 끌어안고 뒤로 당겼다. 몸이 들리며 그 반동으로 누워있던 지훈이 앞으로 구르듯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자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박승혁이 뒤로 눕고, 지훈이 그 위에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그렇게 불만이면 직접 움직여봐.”
“아니, 그만하고 싶다고. 씹, 귀에 못 박았냐?”
“아까 약속한 거 기억 안 나? 하는 거 봐서 네가 받은 거 넘어가 주기로 했잖아.”
지훈이 미간을 구기며 으르렁댔다.
“끝까지 하자고는 안 했어. 받은 만큼만 하라고 했잖아.”
“하는 거 끝까지 해야지.”
박승혁이 허리를 한 번 들썩이자 성기가 더 깊게 내벽을 찔렀다. 대화하느라 바뀐 체위를 실감하지 못했던 지훈은 내장에 닿을 것처럼 깊이 박아오는 성기에 쾌감을 참아 입술을 깨물었다. 찢어졌던 입술이 따가웠다.
“어? 너도 아직 안 갔잖아.”
박승혁이 눈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조금 전의 행위 때 박승혁은 절정에 달했지만, 지훈은 달하지 못했다. 애매하게 곧은 성기가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지.”
가는 눈이 유혹하듯 휘어졌다. 지훈은 가만히 숨을 고르다가 뒤로 손을 대고 몸을 고정한 다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그렇지, 그렇게.”
“음, 으음…”
미친 척하고 직접 움직여봤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체위가 상대방이 박아 넣지 않아도 내벽을 깊게 찔러 오고, 스스로 더 찔러줬으면 하는 부분을 찾아 찌를 수 있었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는 데서 오는 자괴감만 덜어내면 됐다.
목이 탄 지훈이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젖혀 아래에서 오는 쾌감을 느꼈다. 유난히 기분 좋은 한 군데를 더 자극하고 싶었다. 잦게 찰박이는 소리에 맞춰 둔부를 들었다가 내렸다. 창부 같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박승혁이 넓은 손바닥으로 탄탄한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형사가 조폭 위에 올라타 다리를 벌리고 스스로 허리를 흔드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이지훈이. 생각만으로도 흥분되었던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어 더없이 만족스럽고 자극적이었다.
행위가 한동안 지속되어도 부푼 성기는 해소될 기미가 안 보였다. 절정에 닿을 듯 말 듯 한 느낌에 애가 달아 침을 여러 번 삼키고 더 빠르게 허리를 흔들었으나 좀체 닿을 수 없었다. 계속 지탱하고 움직이느라 두 팔과 다리가 저렸다.
누군가가 더 강하게, 더 빠르게 성감대를 찔러줬으면 좋겠다. 아플 정도로, 고통을 쾌감처럼 느낄 정도로 박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와줄까.”
그 말이 달콤한 유혹처럼 들렸다. 눈을 뜨자 박승혁이 보였다. 그도 해소되지 못해 답답한 듯 얼굴이 붉었다. 자신도 이렇게 붉을 것이다. 지훈이 고개를 위아래로 한 번 끄덕였다. 박승혁이 상체를 일으켜 허리를 잡았다.
“-으응, 아, 아.”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가 흔들렸다. 전초전 없이 빠른 속도에 몸이 마구 위아래로 흔들렸다. 이불보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성감대를 정확하고도 깊게, 빠르게 찧어오는 자극에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질퍽거리던 소리가 짧은 간격으로 철떡댔다.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제대로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 아, 아으, 읏, 응.”
“허억, 헉.”
허리를 잡은 손이 떨어지더니, 성기를 쥐었다. 굳은살이 쓸리도록 빠르게 성기를 감싸 쥐고 비벼대자 지훈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릿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뒷골을 찔렀다. 입술이 떨리도록 신음을 뱉었다.
“힉, 잇, 으, 아, 안…”
“안 돼? 하지 마? 흣.”
“흐읏, 아니, 아, 니이.”
“그럼 뭐, 계속해? 좋아?”
“으, 응, 계속, 해…”
“미치겠네.”
나중엔 아예 박승혁이 허리를 세워 더 안정적인 자세로 허리를 쳐올렸다. 지훈도 코앞에 박승혁이 보고 있든 말든 눈을 감고 신음을 토해냈다. 애널과 성기가 동시에 자극되는 쾌감에 머릿속이 텅 비워졌다.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하윽…!”
교성 같은 비명이 나옴과 동시에 성기에서 정액이 분출되었다. 내장이 밀려 올라갔다고 착각할 정도로 가득 채워진 내벽에도 정액이 터져 애널을 구석구석 적셨다. 엄청난 쾌감에 바보처럼 고개를 젖혀 껄떡댔다. 내부를 적시고도 남은 정액이 비집고 나와 입구를 더럽혔다.
“허억, 허억…”
지훈이 아래를 멍하게 내려다봤다. 자신과 박승혁의 몸 군데군데에 튄 정액 하며, 거대한 성기를 집어삼킨 애널에서 흘러나오는 불투명한 점액체가 낯설게 보였다. 지금 자신이 무슨 행위를 했는지 실감도 안 났다.
“재능이 있어.”
넓은 손바닥이 볼을 쓰다듬어 눈물을 닦아냈다. 그래도 미동이 없었다.
“직업을 바꿔보는 게 어때.”
“……”
“응?”
완전히 맛이 간 얼굴이다. 너무 충격받았나. 놀리는 한편 얼굴을 살폈다.
“이지훈.”
재차 부르며 말을 걸었다.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지훈이 시선을 올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텅 빈 눈동자에 이상하게 겁이 났다. 건방져서 좋았던 눈동자가 멍했다.
“왜.”
“……”
“왜 그러냐고…”
얼굴이 다가오더니 입술이 닿았다. 놀랄 새도 없이 지훈이 입술 사이로 혀를 넣고 오물거렸다. 박승혁이 놀라 잠시 멈칫했다가, 키스에 응해 입을 벌리고 혀를 옭아맸다. 침이 섞이며 질척거렸다.
한참 혀를 오가며 키스하다가 입이 떨어졌다. 서로 금방이라도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내쉬는 입김에 코가 뜨거웠다. 박승혁이 웃으며 속삭였다.
“왜. 좋았어?”
“서비스야.”
“서비스?”
박승혁이 키득대도 지훈은 웃지 않고 말했다.
“어, 서비스. 그러니까 팁 줘. 돈 많잖아.”
“팁? 얼마나 줄까.”
“이거.”
지훈이 그의 왼쪽 손목을 잡아 올렸다. 의아하게 보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 손목을 물어 핥았다. 혀로 할짝거리는 손목이 굳어갔다.
“… 하.”
헛웃음 치는 박승혁의 관자놀이에 근육이 불거졌다. 식었던 열기가 다시 오르는 듯했다. 지훈이 애널을 일부러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자극받은 성기가 단단해졌다.
곧이어 다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손목을 핥던 지훈이 성감대를 쑤시는 성기에 신음을 내며 입술을 뗐다. 이젠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다리로 허리를 감싸며 그 움직임에 맞추었다. 손을 둘러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머릿속이 다시 하얘져 갔다.
4화
지훈이 눈을 떴을 땐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이불을 덮고 누운 감촉이 나쁘지 않아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숨을 길게 내쉬며 허리를 움직여보려다가 올라오는 통증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씨발…”
미쳤지. 조금 전인지, 한참 전인지 모를 시간 전에 저지른 일에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이성을 잃고 창부처럼 신음을 지르고, 낯부끄러운 대사를 뱉으며 허리를 흔들다가 또 기절할 정도로 쾌감은 엄청났다. 지금까지 어떤 접대를 받았을 때보다 더. 마지막엔 거기 더 박아달라며 교성을 질렀다. 부끄러움에 주먹을 꽉 쥐었다.
머리카락이 눈을 가려 간지럽혔다. 손을 들어 앞머리를 치우는데, 손목에 무언가 걸린 듯 걸리적거렸다.
“… 미친…”
묵직한 손목을 확인해보니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자신의 시계가 부끄러워 숨기도록 만들었던, 박승혁이 차고 있던 시계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 굵고 값비싸 보였다. 자기 월급을 넘어 장기를 죄다 떼어 팔아도 그보다 비싼 걸 나타내는 로고가 조그맣게 박혀 있었다.
그냥 정신 나간 상태에서 해본 건데 정말 줬다. 이렇게 쉽게. 박승혁에겐 그렇게 비싼 물건이 아니었나 보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상납 안 하면 다음 단속 때 넘어가지 않겠다, 성의를 보이라며 저열하게 뻗대면서 악착같이 받아 살았는데 고작 허리 몇 번 흔들었다고, 신음 몇 번 내질렀다고 손목에 몇억짜리 시계가 생겼다. 고급 창녀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아 헛웃음을 쳤다.
시계 찬 손으로 머리를 헝클다가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방안은 조용했다. 서재 같은 침실엔 자신만 있는 듯했다.
‘남자한테 펠라 받은 거 하나 덮으려고 더한 짓을 했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혼란스러웠다.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다.
“한숨을 왜 그렇게 쉬어.”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라 감탄사를 내뱉었다. 엎드려 누워있어 뒤는 볼 수 없었다. 박승혁이 천천히 걸어 지훈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두꺼운 흰색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씻었는지 머리카락이 젖어있었다. 그걸 보니 자신도 씻고 싶었다. 얼굴이나 머리카락이 땀에 절어 있을 게 뻔했다. 아래도 축축해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이긴 힘들어 째려만 봤다.
“아파?”
“아프지, 그럼. 박혀볼래?”
작게 웃은 그가 걸어와 침대에 앉았다. 침대 한쪽이 기울어졌다. 박승혁이 지훈의 머리카락을 몇 번 건드리다가 말했다.
“앞으론 상납받지 말지.”
“큭.”
웃음이 터졌다. 제까짓 게 뭐라고. 마지막엔 자신이 먼저 달려들었다 한들, 애초에 협박하고 약 먹여 섹스한 주제에 아랫도리 간수라도 하라는 건가. 일부러 킥킥대며 비웃는 소리에 박승혁이 얼굴을 굳혔다.
“왜. 네가 대신 주게?”
“더 받다가는 내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찔렸어. 상납도 정도껏 받았어야지.”
“어쩌라고. 정직 몇 개월 받다가 끝나겠지. 윗대가리들 노는 거 그대로 따라 한 건데.”
“남자한테 서비스받은 것도?”
“……”
“앞으론 아무것도 받지 마. 서비스 포함해서. 주제 모르고 더 받다가는 언론에 알려지는 거 순간이야.”
“… 아까 협박한 건.”
“서비스가 만족스러워서 안 하려고. 안심해.”
지훈은 말없이 손목에 찬 시계만 무의미하게 뜯어봤다.
자기만족에서 상납받은 것도 있었지만 그에겐 돈이 절실했다. 경찰대에 재학하던 시절부터 아슬하던 가세가 졸업하자마자 완전히 기울어 월급 대부분이 거기에 들어갔다. 잘 나가던 집안이라 몰락해도 자존심만 센 가족은 힘든 일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잘 키운 아들 하나만 믿고 바라봤다. 그래도 이때 기울어서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만큼 키워줬으니 아들이 알아서 다 해주겠지, 하는 분위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학창 시절부터 모범생으로 잘 키워진 탓이다. 잘 나가던 집 자제가 다 그렇게 자라듯이.
힘들다고 가족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거절하면 천하의 불효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결국 혼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꼴이 되었다. 경찰 월급 가지고는 물이 아니라 물방울 모아 넣는 수준에 불과했다.
희생정신도, 정의감도 그렇게 투철하지 않으면서 형사과에 들어간 이유였다. 위험성이 높아도 형사가 되면 승진은 빠르다. 살아남으면 빠르게 승진해서 좋고, 혹여나 근무 중 죽더라도 명예롭고 고액의 보험금이 가족에게 돌아가니까.
솔직히 빠른 승진보다 후자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에서 들어간 것도 있었다. 근무하다 죽으면 명예롭게 순직한 아들이 보험금도 안겨주는 거니 아무도 아쉬워하지도, 불효자라고 손가락질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걸 상상하면 후련했다.
그런 주제에 동기들은 집에서 사줬다며 자가용이나 비싼 시계를 차고 다녔다. 질투도 나고 배알이 꼴려 자기 수준은 생각도 하지 않고 질러버렸다. 아직 차와 시계 할부금이 한참 남아 있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 상납금을 끌어모아도 저축도 하지 못하는 신세에 자포자기가 되어 놀았다. 상납을 핑계로 틈만 나면 주점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셨다.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아 더 강한 쾌락을 좇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바닥까지 추락한 기분이었다. 남자에게 박힌 마당에 더 내세울 자존심도 없었다.
“대신 나랑 만나.”
자기 처지를 생각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그를 쳐다봤다. 박승혁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랑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어때.”
“언제는 남자한테 접대받는 경찰로 알려지고 싶냐고 협박하더니…”
“이미 했잖아. 그거보다 더한 거.”
“……”
“나도 남자한테 접대받는 조폭이라고 알려지기 싫은데.”
박승혁이 시계를 툭 건드렸다.
“네가 받던 쥐꼬리만 한 상납금에 비하면 만족스러울걸.”
시계를 건드린 손이 머리를 이어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진탕 섹스하고 씻지도 않았는데, 더럽지도 않나 싶었다.
“응?”
“나랑 씹질하는 게 좋았나 봐.”
“어, 죽이던데. 특히 마지막에.”
지훈이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발갛게 변해가는 귓불을 박승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훔쳐봤다.
“아무튼, 알겠지? ”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뒷덜미에 새겨진 키스 마크를 건드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가 일어났다. 기울어진 침대가 다시 원래대로 올라왔다.
“사무실로 나가라고?”
“아니, 저 문으로 나가면 바로 엘리베이터야.”
박승혁이 욕실 옆 구석에 난 문을 가리켰다. 지훈은 안심하면서도 혀를 찼다. 이건 뭐 정부도 아니고.
그는 사무실로 통하는 문고리를 잡고 나가기 전 “아”하며 뒤를 돌아봤다.
“뒤처리하는 거 잊지 말고. 그거 놔두면 고생한다.”
“좆 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뱉는 욕설에도 박승혁은 타격 없이 웃었다.
“옷은 세탁해놨으니 편하게 입고 가시면 됩니다. 다음에 봅시다, 경위님.”
“씨, 또 저 말투…”
중얼거리는 걸 못 들은 건지 문이 닫혔다. 정말 아무도 없어 고요해진 방안에서 지훈은 한참 동안 시계만 쳐다봤다.
* * *
별실을 나온 박승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가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해진 사무실을 활보하는 발걸음이 신이 난 듯 가벼웠다.
“네, 경감님. 얘기 끝났습니다.”
박승혁이 책상 뒤로 가 창문 앞에 섰다. 큰 창문 너머로 아름다운 야경이 보였다.
“아닙니다. 얘기는 한참 전에 끝났는데, 일하느라 이제 전화할 여유가 생겼네요. 네, 네… 이 경위님이 젊어서 그런지, 얘기가 잘 통하더라고요.
앞으로 영업소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하는 중에 사라져도 저희는 결백합니다. 하하. 조사도 성실하게 받을 거고요. 네. 아, 조사는 내일 한다고요. 말씀처럼 간단히 끝날 수 있게 힘 좀 써주십시오. 그럼요. …아닙니다. 제가 늘 감사하죠. 네, 네. 알겠습니다. 언제 또 놀러 오시죠. 잘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네.”
박승혁이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전화를 끊은 그는 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야경을 내려다봤다.
사무실로 나올 때부터 줄곧 위로 걸려 있던 입꼬리가 점차 내려갔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자못 심각해졌다.
좀 전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자는 동안 채워 준 시계를 발견하고 좋아하기보다는 씁쓸하다는 표정을 짓던 얼굴이. 그 얼굴을 떠올리자 왠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점검차 들렀던 영업소에서 우연히 봤었다. 보통 유흥업소엔 내 육욕을 배설하러 오는 것이라 들뜨거나 기대한 손님이 대부분인데, 그는 어딘가 착잡한 낯빛이었다. 반항심은 많은데 그걸 꾹꾹 눌러놓은 듯한 인상. 불만을 완전히 해소하진 못해 답답한, 사춘기가 늦게 온 청년 같다고 생각했었다.
단지 그 얼굴이 마음에 들어 영업소 실장에게 ‘알아보라’라고 했는데 의외로 경찰이었고, 개인 수사라도 하고 있었나 신경 쓰였지만, 비리에 물든 형사일 뿐이었다. 젊은 주제에 상납금에 접대까지 골고루도 받는다며 우는 소리를 내는 실장의 말에 뻔뻔하다고 생각되어 더 흥미로웠다.
직접 코앞에서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머리도 좋고 얼굴도 반반한 놈이 경찰대를 졸업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면서 뭐가 아쉬워 푼돈에 목숨 거는 건지. 그 정도로 돈이 좋은 건가.
부하를 시켜 더 자세히 조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으나, 이지훈이 경찰대를 졸업한 형사라는 말만 듣고 대충 어떤 사람일지 견적이 나와 더 조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게 더 흥미를 돋게 만든 셈이었다.
직접 보고 몸까지 섞었으면서도 흥미가 떨어지지 않았다. 돈이면 무조건 다 좋아하는 단순한 놈이라 공략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사무실까지 몸소 오게 하는 데엔 별로 힘들이지 않았다.
그랬는데, 고작 상납금 하나에 목숨 거는 놈이라 시계를 보면 좋아서 뒤로 넘어갈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미적지근했다. 아니, 미적지근한 걸 넘어서서 씁쓸해 보였다.
네 거라고 줬음에도 자기 것이 아닌 걸 보는 표정. 마치 ‘이런 거 하나 받으려고 내가 그 짓을 했나.’ 하는 듯한 표정. 단순해 보여도 속내엔 숨겨진 게 많아 보였다. 더 궁금증만 생겨났다.
자신과 섹스한 걸 후회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지막엔 더 하자고 달려들지 않았나. 쾌감을 뱉는 얼굴도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생각보다 별로였나?’
그래도 경찰 월급에 비하면 비싼 건데. 자기 손목에 찬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인데. 생각보다 비싸게 군다. 입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나왔다.
‘앞으로 볼 날은 많으니까.’
너무 처음부터 비싼 거 주면 버릇만 나빠질 거다. 귀여운 강아지인데, 잘 길들여 옆에 두고 싶었다. 박승혁은 다시 빙긋이 웃으며 야경을 감상했다.
-fin.
‡ 공유금지. 교환금지. 개인소장 부탁드립니다 ‡